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Article

대전 원도심 소리풍경에 관한 의미론적 연구 -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 종소리를 중심으로 -

김명신1
Myeong-Shin Kim1
1서울대학교 조경학과 통합설계․미학연구실 박사수료
1Ph.D. Candidate, Integrated Design․Landscape Aesthetics, Seoul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Myeong-Shin Kim, Ph.D. Candidate, Integrated Design․Landscape Aesthetics,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Tel.: +82-2-880-4887, E-mail: mskim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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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Jan 20, 2022; Revised: Mar 06, 2022; Accepted: Mar 06, 2022

Published Online: Apr 30, 2022

국문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대전 원도심의 랜드마크이자 명소인 중구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 두 장소의 종소리가 지닌 사운드스케이프의 성격과 의미를 조명하는 것이다. 연구는 현장 답사 및 녹취, 관련 자료와 사운드스케이프 이론 등의 문헌연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전시는 20세기 초 일제강점기에 철도 대전역과 함께 생성된 도시로,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대전역 인근에 위치한 중구 대흥동과 은행동 일대는 크게 발달하며 원도심을 형성하였다. 90년대에 서구로 주요 행정기관이 대거 이전하면서 대전 원도심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세종시 개발로 쇠락은 가속화되었다. 그런 가운데, 대흥동 성당과 한국전쟁 당시 한 피난민에 의해 설립된 성심당은 원주민들이 떠나간 대전 원도심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대흥동 성당은 일제 강점기에 설립되어 2019년 들어 10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된 지역 랜드마크로, 일제 강점기에 탄생한 대전시와 역사를 같이 하는 역사문화자산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탄생한 성심당 또한 설립 60년의 역사를 지닌 역사문화자산이자 대전 명소 1위로 선정된 지역 랜드마크이다. 인근 주택가에까지 들려오는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에서 출발한 이 탐구는, 대로 건너에 위치한 은행동 성심당의 종소리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본 고는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의 종소리가 시그널 사운드(signal sound)를 넘어 사운드마크(soundmark)의 성격을 지님을 머레이의 사운드스케이프 소리 범주를 통해 파악하였다. 나아가 비교적 최근의 EU 사운드스케이프 정의에 따라 두 종소리의 의미 분석을 시도했다.

두 종소리는 표층적 차원에서는 시그널사운드이지만 심층적 차원에서는 대전 원도심의 사운드마크이다. 외형적으로는 규모나 스케일, 빈도, 유명도에서 차이가 있으나, 두 종소리는 특별한 인연의 역사성과 장소성, 로컬리티와 선한 영향력 등에서 의미를 공유한다. 본 연구의 시사점은 대전 중구 원도심 도시 재생 혹은 도시 개발에서 두 장소가 시각적 랜드마크 뿐만 아니라 사운드마크로서도 지역 역사문화자산임을 밝힌 데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lluminate the meaning of the soundscapes of two bells, Daeheung-dong Cathedral and Sungsimdang in Eunghang-dong, which are landmarks and attractions in the historic downtown of Daejeon. The study was conducted through field research and recordings, as well as literature studies of related documents and soundscape theory. Daejeon city was developed along with Daejeon Railway Stat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n the early 20th century. As the Chungnam Provincial Office moved to Daejeon, Daeheung-dong and Eunhang-dong in Jung-gu, located near Daejeon Station, developed significantly and formed the city centre. As major administrative agencies moved to Seo-gu in the 1990s, the downtown area of Daejeon was on a path of decline, and the decline accelerated with the development of Sejong city. Meanwhile, Daeheung-dong Cathedral and Sungsimdang, founded by refugees during the Korean War, firmly protected the historic downtown area of Daejeon, where the natives left.

Daeheung-dong Cathedral, establish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is a local landmark with a history of 100 years in 2019. Sungsimdang, which was created with the backdrop of the Korean War, is also a historical and cultural asset with a history of 60 years and a local landmark selected as the No. 1 tourist attraction in Daejeon. This research, which started from the sound of the bells of Daeheung-dong Cathedral, heard even in the neighboring residential areas, led to the discovery of the bells of Sungsimdang in Eunhang-dong, located across the street. In this paper, the bells of Daeheung-dong Cathedral and Eunhang-dong Sungsimdang have characteristics of soundmarks according to R. Murray Schafer’s soundscape sound category. Furthermore, this paper attempted to analyze the meaning of the two bells according to the relatively recent EU soundscape definition.

These two bells are signal sounds at the surface level, but are the sound marks of the historic downtown area of Daejeon at the deep level. Although there are outward differences in size, scale, frequency, and famousness, these two bells share a meaning in terms of locality and good influence with the historicity and spatiality of a special relationship. The implication of this study is that the two places should be preserved as local historical and cultural assets not only as visual landmarks but also as sound marks in the urban regeneration or urban development of Jung-gu, Daejeon.

Keywords: 사운드스케이프; 사운드마크; 역사문화유산; 도시재생; 로컬리티
Keywords: Soundmark; Historical and Cultural Heritage; Urban Regeneration; Locality

Ⅰ. 서론

로컬에 대한 관심은 기후위기와 국토균형발전 차원에서 중요하다. 지역의 발전은 사람과 물류의 이동거리를 줄여 이산화탄소 발생 억제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우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화와 지방 및 원도심 쇠락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 애정이 필요하다.

대전의 원도심은 서울과 부산을 잇는 대전역과 인접한 곳이라는 장소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이 풍부함과 동시에 중부 충청권 문화예술의 구심점 역할을 해오기도 했다. 대전의 원도심은 대전역 인근 중구와 동구, 좁게는 중구 대흥동, 은행동을 말한다. 본고는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과 관련도가 높은 대흥동에 초점을 맞추어 사례 연구를 하고자 한다. 또한 시각 위주의 관점으로부터 관심을 돌려 청각적 측면에 집중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소리풍경)의 지평에서 대전 원도심 지역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연구사 검토
1) 사운드스케이프의 정의

주지하듯이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사운드(sound)와 스케이프(scape)의 합성어로, 1960년대 말에 등장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한 자각이 증가하는 사회적 배경에서 캐나다의 작곡가 레이몬드 머레이 쉐퍼(Raymond Murray Schafer)가 제안한 개념이다.

머레이 쉐퍼의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은 개별 음이나 소리에 초점을 맞추는 요소주의에서 탈피하여 음향 세계의 외연을 문화로 확장하고, 기계론적 환경관에서 의미론적 환경관으로 환경에 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의의를 지닌다.

머레이 쉐퍼는 환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기조음(keynote sounds), 신호음(sound signals), 표식음(sound marks) 세 가지로 범주화하였다. 기조음(keynote sounds)은 의식적으로 듣지 않아도 한 지역에서 주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 폭포 소리, 원시림 소리 등을 말한다. 신호음(sound signals)은 청각적인 도형(figure)으로 의식적으로 들리는 모든 소리이다. 게슈탈프 심리학의 도형과 배경의 관계에서 도형에 해당한다. 항구의 경우 기조음에 해당하는 파도 소리와 기러기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들리는 뱃고동 소리가 신호음에 해당한다. 본고에서 중요하게 다룰 표식음(sound marks)은, 신호음 중에서도 특정 사운드스케이프를 뚜렷이 부각시켜 음향생활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또는 그 공동체 사람들에 의해 특히 존중되고 주의를 기울이게 될 것 같은 특질을 지닌 소리이다(Han, 2003).

사운드스케이프가 soundscape=sound+(land)scape이듯, 사운드마크는 soundmark=sound+(land)mark이다. 벤쿠버의 성 로자리 교회의 종소리와 같은 것으로, 한 소리가 그 공동체에서 일단 표식음으로 확립되면, 그 소리는 보호될 가치가 있고 보존활동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Han and Oh, 2008).

2) 사운드스케이프와 영역

쉐이퍼의 사상은 현재까지 예술과 사회, 공학을 아우르며 도시, 건축, 조경, 환경 등 여러 방향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 사운드스케이프는 구체적으로 소리와 영역, 소리와 장소성, 소리를 통한 소음 저감, 소리를 통한 도시 쾌적성 증대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접근을 통해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본 연구는 소리와 영역, 소리와 장소성, 소리를 통한 문화 경관, 다시 말해 사운드스케이프와 장소 및 문화와 관련된 연구의 한 갈래에 해당된다.

도시 연구에서는 도시 쾌적성과 공간 디자인 등에서 사운드스케이프 측면이 활발하게 검토되고 있다. 도시는 인구와 교통이 밀집되어 있으므로 대기질이나 교통체증 외에 소음도 중요한 환경요인으로 작용한다. 유럽의 경우, 쾌적한 도시 음환경을 위해 사운드스케이프 접근방식을 통한 소음관리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 내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2015년 이후 100여 건이 넘는 논문이 출간되었는데, 그 배경에는 유럽 내 최초의 사운드스케이프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 “Soundscape of European Cities and Landscapes”가 있다. 그 프로젝트는 ISO TC43 WG54(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Technical Committees43, Work Group54)의 모태가 되었고, 연구 결과는 “Soundscape and the Built Environment”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Hong, 2017).

2008년 EU 학자들의 주도로 국제표준화기구 ISO의 음향분과인 TC43에서 사운드스케이프의 평가(perceptual assessment of soundscape quality)를 주제로 연구 및 논의를 하는 WG54가 조직되었고, 2014년에는 논의 결과를 담은 첫 표준문서 ISO/DIS 12913-1(definition and conceptual framework)이 확정되었다(Hong, 2014).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여러 연구자들이 합의하여 결정한 사운드스케이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The perceived sound environment in context by an individual, a group, or a society”1)

정의를 살펴보면 ‘환경(environment)’, ‘인식/인지/지각(perceived)’, ‘맥락(context)’, 그리고 한 개인(individual)뿐만 아니라 집단(group), 사회(society)와 같은 다양한 ‘주체’가 핵심어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연관된 2016년의 SONORUS 프로젝트2)는 유럽 7개국의 연구 기관, 기업, 관공서가 컨소시엄을 결성하여 친환경, 친인간적인 도시 음환경 계획 방법을 연구 및 교육하는 프로그램으로, 최종 목적은 전문 인력들이 각 계에서 실제로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하는 것이었다(Hong, 2017).

소음학회, 음향학회 등을 통해 지속적인 연구를 발표하고 있는 홍주영은 소음 문제에서 쾌적성의 개념, 나아가 최근에는 미학적 주제로 나아감으로써(Hong, 2021) 국내 음향 공학적 사운드스케이프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환경미학이 음환경과 만나는 지점을 형성한다.

이처럼 도시 연구에서 그 관심과 중요도가 높아져 가는 사운드스케이프 연구는 앞서 서술했듯이 그 특성상 여러 영역에 걸쳐 있다. 국내 연구도 소음공학과 음향공학에서부터 인간을 둘러싼 환경으로서 건축과 실내 공간 설계, 도시, 조경, 지리, 생태, 그리고 문학, 예술,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음악과 음악교육, 생태와 생태 환경 교육 유관 연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AI를 활용한 복합 연구 등도 시도되고 있다. 또 시와 소설과 같은 문학, 음악과 음향을 사용하는 공연 예술 분야, 공감각적 차원의 미술 분야 연구 등이 있다.

3) 사운드스케이프와 장소

특정 장소와 관련된 사운드스케이프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대략적으로 살펴보자면, 남원시와 목포시의 거주환경과 소리환경에 대한 의식 변화와 특성(Han, 2013a), 무등산 소리풍경 명소 발굴사업의 성과와 실천과제(Han, 2013b), 나주 소리풍경 요소의 구성과 보존, 활용 연구(Noh, 2021), 도시 경쟁력 향상을 위한 도시문화 브랜드 전략: 울산과 크로아티아 자다르의 소리풍경 비교 관광연구(Kim et al., 2018), 장소 자산의 해석을 통한 도시문화콘텐츠 개발 방안: 부여군의 사운드스케이프 적용 방안을 중심으로(Kim, 2021), 교동도 사운드스케이프의 특성과 재현(Kim, et al., 2019) 등의 연구가 있다.

이들 장소 특정적 연구는 특정 지역의 소리를 채집하고 사운드 맵을 만들어 지역의 청각적 특성을 기록하거나 한 발 더 나아가 예술적 시도를 하는가 하면, 소리에 대한 분류를 하고, 설문을 통해 지역민들의 선호도를 조사했다. 대부분의 연구들이, 앞서 EU ISO TC43 WG54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로 도출된 정의가 음향 공학과 관계가 있는 사운드스케이프 평가가 목적이었듯이, 전자기계적 도구에 의하든 설문에 의하든, 평가 항목을 위한 소리 분류와 기록, 응답의 정량적 분석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본 연구의 의의는 특정 장소와 관련된 사운드스케이프 연구에 속하지만, 사운드맵 작성 등과는 달리 소리환경 내의 특정 소리를 중심으로 그 의미에 초점을 두었다는 데 있다. 이로써 지역 고유의 소리를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지역 정체성과 연관되는 사운드스케이프의 역할을 통해 쇠퇴한 원도심 도시 재생과 지역 문화유산의 보존을 촉구함에 있다.

2. 연구 방법

연구 방법은 사운드스케이프 이론을 포함한 역사문화적 접근으로 문헌 연구와 자료 조사 및 현장 답사와 현장음 채록 등이다. 대상지는 대전시 중구 원도심 대흥동과 은행동에 각각 위치한 대흥동 성당과 성심당을 중심으로 한다. 대전시와 중구 원도심 및 국가문화유산인 대흥동성당에 대한 자료는 국가 근현대 역사문화유산 아카이브와 대전시 공공 사이트, 지역에서 발간된 미디어와 간행물 등을 참조했다.

대흥동 성당의 경우, 2019년에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흥동 성당(주임신부 박진홍)과 대전시립미술관(관장 선승혜) 공동 기획에 의한 아카이브 전시가 있었다. 전시 내용은 “100 Years, 100년의 시간, 1919-2019: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 백주년 기념전(Daejeon Museum of Art & Catholicism Daeheung-dong Cathedral, 2019)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사람이 직접 쳐서 울리는 종소리라는 진정성과 희소성으로 인해 대흥동 성당 종소리에 관해서는 수많은 미디어 기사와 방문기가 있다.

대전의 명소로 자리 잡은 성심당의 경우, 전국에서 방문한 시민들의 수많은 방문기와 미디어 기사가 있다. 2016년 창업 60주년을 맞이하여 성심당이 펴낸 “Sungsimdang,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모두가 행복한 경제”(Kim, 2016)에 창업 이후의 역사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는 인근 주택가에서 직접 녹취하였다. 성심당의 경우 매장 관리자에게 요청하여 본점 내 종소리 현장음 녹취 자료 및 사진 자료를 확보하였다.

이상의 현장답사와 녹취, 자료 조사 및 문헌 연구의 바탕 위에서 다음과 같이 논문을 구성하였다. II장에서는 대흥동 성당의 역사와 성당 종소리에 대한 지역 시민들의 기록에 관하여 다룬 후, 종소리의 의미를 분석했다. III장에서는 은행동 성심당의 역사와 매장 내 종소리의 의미에 관해 다루었다. IV장에서는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지역 역사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조명하였다.

Ⅱ. 대흥동 성당의 소리풍경

1. 대흥동성당의 역사와 사람들
1) 대흥동 성당의 역사

대전은 1910년대에 철도가 놓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도시로, 대전역과 중앙로를 중심으로 원도심을 형성한다. 대흥동 성당 Figure 1은 그 원도심에서도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대흥동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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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Daeheung-dong Cathedral in Daejeon city. National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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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大田 大興洞聖堂)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되었다. 국가 등록문화재 643호로 대전 중구 대흥동 189(대전 중구 대종로 471)에 위치하고 있다. 근현대사 디지털아카이브에는 대흥동 성당의 역사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919년 11월 대전시 목동에 대전 본당 설립 (초대 이종순 신부 부임)

1920년 5월 성당 완공 이후 늘어난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여러 차례 성당 신축

1945년 10월 소재지를 대흥동으로 이전 대전 본당에서 대흥동 본당으로 개칭 (주임 오기선 신부 부임)

1950년 7월 한국전쟁 중 대흥동성당 건물 파괴

1962년 12월 현재의 대흥동성당 건물 완공

대흥동 성당은 기도하는 손 모양과 같은 독특한 외관의 건축물로, 형태나 건축 기술에서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 일반적이었던 벽돌 조적 건축물이 아닌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 국가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2) 대흥동 성당과 사람들3)

대흥동 성당은 대전 원도심의 근현대문화유산으로 대전시 근대문화탐방로의 주요 지점이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이 성당은 2019년 대전시립미술관과 공동기획하에 ‘100년의 시간’이라는 전시로 대전시민들과 만났다. 전시는 ⟨1부 대흥동 성당의 역사⟩, ⟨2부 대흥동 성당의 역사⟩, ⟨3부 대흥동 성당의 사람⟩ 총 3부로 구성되었고, 대흥동 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대전창작센터(구 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에서 열렸다. 전시 소개에 대흥동 성당이 갖는 장소적 의미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3부-대흥동 성당의 사람〉에서는 대흥동 성당의 상징인 ‘성당 종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사람들 100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이 품고 있는 ‘대흥동 성당의 의미와 상징’, 그리고 성당과의 특별한 추억을 같이 기억하는 공간이다. 그들 가운데 1955년~1965년에 대흥동 본당 보좌신부로 머문 두봉(Dupont) 주교와 50년 동안 매일 깊은 심해까지 울려 퍼지는 종을 치는 조정형 방지거, 드러나지 않는 낮은 곳에서 사제의 영혼과 육신을 위해 ‘한 끼’를 차렸던 대흥동 본당 식복사, 대흥동 성당의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사는 유동균 미카엘까지 ‘특별한 4인전’을 기대해 본다.

(100 Years: 전시 소개)

전시 소개에서 알 수 있듯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는 대흥동 성당의 상징으로 50년 이상 대전 원도심의 소리풍경을 만들어왔다. 대흥동 성당과 종탑은 그 자체가 시각적 랜드마크이지만, 종소리 또한 지역을 상징하는 사운드마크인 것이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가 지역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는 배경에는 50년간 자리를 지켰던 종지기가 있었다. 종지기 조정형(방지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은 서울생으로 피난길에 대전에 정착하여 1969년 10월부터 종을 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을 쳤다. 이후 가정집이 많았던 지역 특성이 고려되어 새벽종이 생략되고 평일 오후 12시와 저녁 7시, 2회로 정착되어 현재에 이른다.

대흥동의 많은 분들이 종소리를 듣고 위안을 받았다고 하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나는 그 스토리를 듣고 감명 깊었죠. 내 종소리가 이렇게 여러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구나 하고 더 아름답게 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100 Years: 100인의 사람 중 종지기)

이렇듯 종소리가 대흥동 시민들에게 선사한 위안은 종지기에게는 보람이 되었고, 이는 다시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울림으로 돌아가는 선순환을 이루었다. 그는 2019년 6월 초, 노령으로 퇴직을 맞이하게 되었다. 종탑은 12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체중을 있는 힘껏 실어야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불가피한 바 후임을 구하기 어려웠다4)(Figure 2 참조). 그의 퇴직으로 종은 사람이 직접 타종하는 방식에서 전자식으로 전환되었지만, 여전히 하루 2회 도심에 종소리를 들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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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The bell ringing of Daeheung-dong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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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 성당의 100년을 기록한 전시록은 시민 인터뷰를 통해 대흥동 성당을 사실적이고도 정감 있게 기록하고 있다. ‘나에게 대흥동 성당이란’이라는 질문에 대한 시민들의 대답이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다.

기도하는 곳, 마음의 안식처, 신앙의 주춧돌, 사랑, 영혼의 뿌리, 쉼, 그리움, 삶의 터전, 옛 친구의 모습, 늘 함께하는 생활, 생명의 길, 큰 은총, 풍경화, 우리 집, 영원한 어머님, 세상에서 가장 맑고 정확한 시계, 하느님과의 첫 만남, 친근한 건물, 특별한 은총, 랜드마크, 배우고 싶은 곳, 나의 삶이요 나의 집이요, 대한민국의 보물, 직장과 동시에 집, 행복함, 삶의 시간표, 고마움, 가족 같은 존재, 예수님에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곳, 무대, 웅장함 등이다. 이 중 지역을 지키는 친근한 명소라는 성격이 드러나는 서술로 ‘늘 함께 하는 생활’, ‘친근한 건물’, ‘풍경화’, ‘랜드마크’, ‘대한민국의 보물’ 등이 있다(Figure 3 참조). 한편, 종소리와 관련되는 것으로 추측되는 표현으로는 ‘늘 함께 하는 생활’, ‘세상에서 가장 맑고 정확한 시계’, ‘삶의 시간표’ 등이 있다(Figure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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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Daeheung-dong Cathedral 100th anniversary exhibition, ‘What is Daeheung-dong Cathedral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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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Daeheung-dong Cathedral 100th anniversary exhibition, ‘What is Daeheung-dong Cathedral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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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 성당은 따뜻한 느낌의 벽돌조가 아닌 수직선이 강조된 철골 콘크리트의 웅장한 흰색 건물로 ‘웅장’하고 ‘랜드마크’와 같은 두드러지는 외형을 지닌다. 작고 아담한 성당이나 곡선이 강조된 설계와 다소 거리가 있으며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생활교통소음이 있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서술에서 안식처나 쉼, 집, 어머님, 친근함, 사랑 등의 어휘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종교, 특히 성당이 갖는 수용적인 성격도 작용했겠지만,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대흥동 성당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림 의뢰를 받은 작가 최주희는 대흥동 성당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대흥동에서 작업실을 사용하면서 다른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흥동의 멋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특히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에 대해서는 한마디씩 했던 것 같다. 이번 작업 역시 그들이 대흥동 성당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감상과 스토리를 들으면서 그들이 바라본 성당을 표현하게 되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이전까지의 나의 그림들이 시선을 달리하여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그리게 되었다는 점이었다(Figure 5 참조).

(100 Years : 사람, 최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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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Choi, Joohee(2019) Looking at Daeheung-dong Cathedral. 117x94cm,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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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대흥동에서 성장하여 익숙한 장소를, 이번에는 다른 작가들의 경험을 통해 바라보게 되었다고 서술하면서, 특히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에 주목한다. “특히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에 대해서는 한마디씩 했던 것 같다”라고 서술한 부분에서, 한 장소에 익숙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장소의 정체성으로 뚜렷이 인식하고 발견하는 것 중의 하나가 대흥동에서는 성당의 종소리임을 알 수 있다.

2. 사운드마크로서 대흥동 성당 종소리의 의미

대흥동 성당 인근에는 중구정, 대전여중, 대전고, 평생학습관, 갤러리, 카페, 식당, 주택가 등이 있다. 종소리는 방문객들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종소리는 대전시 중구 대흥동과 인근 은행동 등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일상적으로 울림을 주고 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대흥동 사운드스케이프의 큰 특성이다. 도시에서 일상적으로 듣는 차 소리, 간혹 듣게 되는 앰뷸런스 소리, 숲이 가까이 있다면 새소리, 계곡에서라면 물소리, 부두라면 흔하게 들을 뱃고동 소리, 공원이나 문화거리와 같은 곳에서 듣게 되는 공연 사운드처럼 지역 주민에게는 익숙한 소리풍경인 것이다.

대흥동 종소리는 머레이 쉐퍼가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에서 설정한 소리의 세 범주의 관점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기도 시간, 일반 시민들에게는 평일 두 차례 시간을 알려 주는 신호음임과 동시에, 지역의 청각적 랜드마크, 즉 사운드마크-표식음(soundmark)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환경문화운동 차원에서 탄생한 머레이 쉐퍼의 소리 범주 구분에 이어, 21세기 들어 여러 학자들이 함께 도출해낸 EU의 사운드스케이프 정의를 다시 살펴보자.

“The perceived sound environment in context by an individual, a group, or a society”

이 정의에는 인식(perceived), 환경(environment), 맥락(context), 개인(individual), 집단(group), 사회(society) 등의 어휘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1. 인식/지각(perceived). 감관을 통해 지각되고 인식된 소리이다. 이는 인식/지각의 주체가 자신의 신체를 통해 체험하는 것이므로 직접성이라든가 경험과 같은 것이 중요하다.

  2. 환경(environment). 검색하거나 추출해서 찾아듣는 음원이 아니라, 인식/지각 주체를 둘러싼 주위 환경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다.

  3. 맥락(context). 인식 주체와 그 환경이 처한 상황, 일련의 시간적 흐름, 달리 말하면 시간 환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리가 상징하는 역사성, 장소성을 포함한다.

  4. 개인(individual), 집단(group), 사회(society). 인식/지각의 주체를 말하며 한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과 지역 사회도 포함한다. 한 개인의 주관성도 포함하고, 공동체도 포함하니, 상당한 유연함과 확장성을 갖는다.

이상의 EU 사운드스케이프 정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대흥동 성당 종소리의 의미를 짚어보자.

  1. 인식/지각: 대흥동 성당 종소리는 하루 두 차례 반경 200여 미터에 울려 퍼진다. 인근 주민이나 대흥동 혹은 은행동을 방문한 시민들에게 종소리는 하루 2차례 지각된다. 종소리 파동의 반경 내에서는 야외뿐 아니라 실내에서도 지각되고 인식된다.

  2. 환경: 성당 인근은 대흥동 예술문화의 거리와 대로 건너 은행동 쇼핑가로 구성된다. 근대문화 탐방로라는 문화적 환경을 시각 차원을 넘어 청각 차원에서 구현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3. 맥락: 첫째. 대흥동 성당은 역사적 맥락에서 일제 강점기 대전시의 탄생과 그 궤를 거의 같이해 왔다.

    둘째. 한국전쟁 후 한 피난민에게 밀가루를 나눠줌으로써 지금은 대전 지역 명소가 된 성심당을 있게 한 장소이다.

    셋째. 대흥동 성당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 시민들의 자발성에 의한 민주화의 외침이 종소리에 중첩되어 있다.

    넷째. 성당은 물리적으로 대흥동에 위치하지만 대로 건너 은행동으로도 종소리가 울림으로써, 경계를 초월한다.

    다섯째. 현대에는 성당이나 교회, 그리고 전통적인 사찰의 범종 소리가 도시에서 사라졌으나 대전 원도심에는 매우 특이하게도 성당 종소리가 유지되고 있다.

    여섯째. 최근까지 수십 년간 사람의 타종에 의해 종이 울렸으며, 현재는 디지털 음원으로 대체되었다.

  4. 주체: 대흥동 성당의 성직자, 구성원, 신자들에게 종소리는 성당의 상징이다. 또한 대흥동 성당을 거점으로 문화 활동과 민주화운동을 공유했던 지역 시민들에게도 대흥동 종소리는 그 기억 속에 내장되어 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성심당의 창업주 임길순에게는 깊은 인연이 담긴 소리이다.

사운드스케이프의 가치 중 하나는 지역문화 정체성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는 대전 원도심 중구 대흥동을 특별한 장소로 만드는 힘이 있다. 또한 대전시의 탄생과 시간을 같이 한 로컬리티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근 거주민들에게는 원도심의 정체성으로 기억된다. 한편 성당을 찾는 신자들에게는 위안과 추억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성심당 으로 연결되는 선한 영향력의 의미 또한 담고 있다.

Ⅲ. 은행동 성심당의 소리풍경

성심당은 최근 대전의 명소 1위로 선정되었다. 근대건축물유산이 많은 대전에서 한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제과점이 지역 명소 최고의 자리를 점하게 된 것이다. 성심당은 2016년 창업 60년을 맞이하여 “Sungsimdang,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모두가 행복한 경제”(Kim, 2016)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을 펴낸 출판사 역시 통영의 지역을 지키는 작은 출판사 겸 서점으로 이 책은 성심당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1. 성심당의 역사5)
1) 50년대, 한국전쟁 피난길에 맺은 대흥동 성당과의 인연

성심당의 창업주 임길순(1910~1997)은 함경남도 함주에서부터 가톨릭 신자였다. 40세 되던 해에 여섯 식구를 이끌고 흥남부두를 통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는 피난길에 처음 정착한 진해에서 생업으로 냉면을 만들어 팔았다. 당시 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은 음식 장사를 했고 냉면은 남쪽에선 생소하여 인기가 있는 데다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의 수요도 있었다. 그는 피난길에 살아남은 이유를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고 믿었고, 불안한 시대였지만 하루를 살아도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냉면 재료인 감자 전분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1956년 여름, 임길순은 서울로 이사를 결정한다. 그런데 서울로 가던 중 서울행 통일호가 대전역에 이르러 고장이 났다. 대전에서 살 길을 찾아보기로 하고 가까운 성당부터 찾아갔다.

당시 대흥동성당은 대전 지역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렸던 오기선 신부가 주임신부를 맡고 있었다. 임길순은 오기선 신부를 만나 흥남부두를 탈출해 거제와 진해를 거쳐 대전역에 도착하기까지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오 신부는 미국에서 지원받은 밀가루 중 두 포대를 임길순 가족을 위해 선뜻 건네주었다. 밀가루 두 포대를 받아 든 부부는 이를 가족의 식량으로 소비하는 대신 찐빵 장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대전 성심당의 첫 출발이었다.

(Kim, 2016:30).

부부는 같은 해 19월 대전역 앞에 노점을 내고 ‘성심당’ 간판을 세웠다. 임길순은 장사를 마친 후에는 역 주변에서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장사보다 오히려 이 나눔을 더 중요하게 여겨 남은 빵이 없을 때는 나눠줄 빵을 더 만들어 나누어 주기도 했다.

2) 60-70년대, 성당 종소리와 은행동 153번지

1956년 대전역 앞 천막 노천 찐빵집에서 시작한 성심당은 이후 근처 점포에 자리를 잡았고, 1967년 지금의 ‘성심당 케익부띠끄’ 자리인 은행동 153번지로 이전했다(Figure 6 참조). 당시 거리 경관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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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A view of Sungsimdang in Eunhag-dong, Jung-gu, Daejeon, 1967(Kim,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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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 상권과 두 블록 차이였지만 153번지 앞 도로는 포장도 되지 않았고 인근에는 빵집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목재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 발길이 뜸한 곳이라 불량배도 적지 않았다. 교회와 주유소, 목재로 빼고는 이렇다 할 점포가 없었다. 게다가 대전역과도 한참 멀어졌다. 당시 상식으로는 빵을 사러 두 블록이나 안쪽에 있는 칙칙한 골목으로 들어설 이유가 없었다.

(Kim, 2016:33)

사람 왕래가 빈번하고 상업적으로 자리도 잡은 대전역 인근에서, 굳이 이렇듯 사람 발길도 뜸하고 황량한 은행동 153번지로 이전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처음 성심당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던 대흥동 성당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성심당을 은행동153번지로 옮긴 유일한 이유는 바로 성당 종소리였다.

(Kim, 2016:33)

은행동 153번지는 대흥동 189번지에 위치한 성당에서 큰 도로를 건너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장소로, 이후 주변에 이런 저런 건물이 들어선 현재에도 여전히 성당에서는 성심당이, 성심당에서는 성당이 시야에 들어온다. 종소리 또한 잘 들리는 위치이다(Figure 7 참조). 현재 성당과 성심당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다른 동에 속해 있지만, 도로 주소는 대흥동 성당이 대종로 471, 은행동 성심당이 대종로 480으로 같은 도로명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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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Daeheung-dong Cathedral located at 189 Daeheung-dong, Sungsimdang(cake boutique) located at 153 and Seongsimdang(main store) located at 145 Eunha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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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 창업주의 장남 임영진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친을 도와 빵 배달을 시작했다. 그의 부친은 나눔에 더 관심이 많았고, 가게 운영의 핵심 기술이 주인에게 없다보니 고용된 기술자들에게 휘둘렸다. 74년 여름, 공장장과 제빵 기술사 다섯 명이 종적을 감추는 사태가 발생했다. 제과점의 높은 인기로 제과점 구인난이 심각하던 때였다. 이런 배경에서 장남 임영진은 1981년 가업을 이어 성심당의 2세대 대표가 되었다.

3) 80-90년대, 성심당과 원도심의 성장과 쇠퇴

80년대는 전문 제과점 전성시대로, 대기업에서 생산한 유통기한이 긴 빵과의 차별화가 시작되었다. 허기만 면하면 되던 시대에서 풍요의 시대로 돌입하자 ‘맛있고 건강하고 신선한’ 빵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 전문 제과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에는 단팥빵, 크림빵, 소보루, 도넛 등 종류가 많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성심당을 유명하게 만든 빵, 튀김 소보로가 탄생한다. 일명 ‘튀소’인데 임영진 대표와 오용식 공장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실험을 거쳐 도넛과 소보로와 단팥빵의 맛을 조화시켰다. 성심당은 튀소의 큰 성공에 힘입어 인근 은행동 146번지로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성심당은 당시 대전의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해가던 충남도청에서 대전역까지 이어진 중앙로로부터 확장된 대흥동과 은행동 일대의 트렌드세터로서 지역과 동반 성장의 길을 걷고 있었다. 거기에는 대전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한, 임영진의 부인 김미진의 안목과 아이디어도 크게 기여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성심당 외부 환경에 큰 변화가 있었다.

첫째,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출현. 경제 수준의 향상과 해외여행 자유화로 더욱 높아진 생활수준은 웰빙에 대한 요구로 나타났다. 제과업계에서는 전문 제과점에서 더 업그레이드된 대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시대로 전환이 되었다. 차남 임기석은 기존 성심당에서 독립해 프렌차이즈를 시도했고 1996년 은행동 153번지 건물은 주식회사 성심당이 되었다. 이로써 대전에는 153번지 프랜차이즈 성심당과 146번지 성심당, 2개의 성심당이 존재하게 되었다. 프랜차이즈 성심당은 국내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해외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임영진은 우여곡절 끝에 성심당 153번지를 인수한다.

둘째, 원도심의 쇠퇴. 90년대에 대전 서쪽에 위치한 둔산 신도시 개발로 인해 원도심인 중구와 동구가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93년 대전시교육청 이전, 97년 정부대전청사 완공, 98년 대전검창청과 법원, 시립미술관, KBS대전총국 이전, 99년 대전시청 이전이 있었다. 2003년 대전예술의 전당과 특허법원, 2009년 대전지방경찰청과 충청지방통계청 등 대전시청과 주요 정부기관이 둔산으로 이전했다. 신도시의 장점인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 체계적인 도로망, 넓은 보행 공간, 공원 조성 등으로 쾌적한 주거 환경이 완성되자 사람들이 이동했고, 이어 기업과 가계들, 상권도 이동했다. 둔산 신도시는 대전의 새 중심지가 되었고, 원도심은 점차 활기를 잃어갔다.

4) 21세기, 성심당의 재도약

유서 깊은 은행동 153번지 매각을 고심할 정도로 힘들었던 2005년 1월, 설을 앞두고 옆 건물에서 발화되어 옮겨 붙은 불로 성심당 3층 공장이 전소되었다. 경영진과 전 직원이 직접 복구 작업에 나섰고. 그 화재는 성심당이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임영진의 부인 김미진은 성심당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성심당 스타일’을 창출해 내었다. 화재 이후 성심당은 경영진과 직원이 다같이 힘을 모아 새롭게 자리를 잡아갔다.

서울 유명 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 큰 성과를 내는 가운데, 성심당은 백화점 측의 큰 수익이 나는 제안에도 대전 지역의 향토기업으로 남았다. 그 결과, 성심당은 현재 대전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고, 오히려 전국에서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Figure 8 참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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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8. Sungsimdang, 153 Eunhang-dong(Hankook 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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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운드마크로서 성심당 종소리의 의미

성심당은 유서깊은 153번지 건물을 매각 위기에서 지켜냈다. 그 장소는 창업주가 “성당 종소리를 들으면서 일하고자 힘겹게 마련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은행동 153번지는 성심당에서 상징성이 큰 장소였다. 153번지 성심당은 케이크 부띠끄로 특화되고, 146번지는 본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성심당에는 독특한 사운드문화가 있다.

성심당 본점 한쪽 벽에는 종이 하나 달려 있는데 직원들은 새 빵이 나올때 마다 이 종을 울린다. 마치 대흥동 성당 종탑이 삼종기도 시간에 맞추어 (새벽), 점심, 저녁, 매일 종을 울리듯 은행동 성심당에서는 매번 새 빵이 나올 때마다 종이 올린다(Figure 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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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9. The bell of the main store of Sungsimdang. On the wall on which the bell is hung, it reads ’Daejeon, Korea, Sungsimdang since 1956’(from Park Jo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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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 본점은 성심당이 확장하면서 기존의 은행동 153번지 인근에 열었던 145번지에 위치해 있다. 도로명 주소로는 같은 대종로 480번길에 위치한다. 은행동 153번지 성심당은 동생이 성심당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해 설립했던 주식회사 성심당 소유였으나, 이후 IMF 등 숱한 어려움 속에 매각 위기를 극복하고 지켜내 지금은 성심당의 케익 전문 매장이 되었다.

성심당 종소리의 의미를 앞서 대흥동 성당의 경우처럼 EU 사운드스케이프 정의에 토대해 인식/지각(perceived), 환경(environment), 맥락(context), 주체[개인(individual), 집단(group), 사회(society)]에 따라 그 의미를 분석해 보자.

  1. 인식/지각: 성심당 종소리는 매장에 직접 방문해야 들을 수 있다. 새 빵이 나올 때만 직원들이 짧게 종을 쳐서 매장 방문 손님들의 주의를 잠깐 환기하는 시그널 사운드로 다른 장소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풍경이므로 성심당의 개성으로 인식될 수 있다.

  2. 환경: 성심당 매장은 대전 제1의 명소인만큼 대체로 많은 사람들로 차 있다. 직원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의 일터에서 온기 있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손님들, 직원들의 기저음에 빵이 나왔음을 간단히 알리는 직원 목소리와 함께 작은 종소리가 울림으로써 시그널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이는 매번 독특한 소리환경을 연출해내게 된다.

  3. 맥락: 첫째. 성심당은 대흥동 성당에서 나눠준 밀가루에서 시작되었다. 성심당의 종은 대흥동 성당에 닿아 있다.

    둘째. 창업주 임길순은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물리적으로 그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153번지로 매장을 이전했다. 다시 말해, 153번지는 임길순에 의해 대흥동 성당과 ‘청각적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셋째. 은행동 153번지는 90년대를 지나오면서 성심당이 겪었던 대내외적 큰 고난 가운데 2대 경영진, 직원들, 인연이 있는 대전 시민들의 이런저런 도움으로 힘겹게 지켜낸 장소로 고난과 좌절, 시행착오 가운데 키워온 공동체의 역사적 맥락을 담고 있다.

    넷째. 새롭게 정의한 성심당의 ‘사랑’의 비전과 철학을 실천하는 지역 지킴이라는 맥락을 내포한다.

  4. 주체: 첫째, 방문객. IT테크와 네트워크로 지구촌이 된 세계에서 최근 그룹 BTS와 팬덤 아미라든가, 소비자들의 ‘돈쭐낸다’와 같은 시민 주체의 자발적 소비 이벤트 등이 보여주듯 선한 영향력이 부상하고 있다. 한 개인 혹은 그룹의 행위가 집단, 나아가 사회에 영향을 미쳐 사고와 문화, 나아가 제도를 바꿀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훌륭한 가게와 기업을 소비를 통해 후원하는 주체로 성장했다. 성심당의 종소리는 성심당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 성심당의 운영 철학과 분위기를 환기시켜줄 수 있다.

    둘째, 성심당 구성원. 성심당 종소리는 성심당의 운영주체인 경영주와 직원들에게 가족과 같은 일터 성심당의 정체성을 환기시켜주는 소리이자, 그들이 창의적이고 신선한 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부심의 시그널이다.

Ⅳ. 두 사운드마크의 종합적 의미 고찰

II장의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와 III장의 은행동 성심당 종소리는 모두 사운드마크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 의미를 표층적 의미와 심층적 의미, 두 가지 차원에서 파악해 보았다.

☖ 대흥동 성당 종소리의 의미

표층적 의미 시그널사운드

매일 2회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야외 큰 종소리

심층적 의미 대흥동 성당 사운드마크

성심당과의 인연

대전 원도심 대흥동의 장소성

대전의 근현대 역사성 공유

지역문화와 민주화의 성지

사랑과 나눔의 선한 영향력

☖ 은행동 성심당 종소리의 의미

표층적 의미 시그널사운드

새 빵이 나왔다는 공지의 실내 작은 종소리

심층적 의미 성심당 사운드마크

대흥동 성당과의 인연

대전 원도심 은행동 153번지의 장소성

대흥동 성당과 대전 역사성 공유

로컬리티 고수의 철학

사랑과 나눔의 선한 영향력

이들 두 종소리는 표층적 차원에서는 시그널사운드이지만 심층적 차원에서는 대전 원도심의 사운드마크이다. 비록 외형적으로는 그 규모나 스케일, 빈도, 유명도 등에서 차이가 있으나, 이들 두 종소리는 특별한 인연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지니며 로컬리티와 선한 영향력에서 의미를 공유한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는 카톨릭 종교문화에 해당하는 삼종기도 의례-새벽, 낮, 저녁, 하루 세 번 기도 시간을 알리는, 시계와 같은 시그널 사운드이다. 높은 첨탑에 달린 큰 종을 종지기가 종줄에 몸을 실어야 나는 그 종소리는 외부에 상당한 반경으로 울려 퍼진다. 타 지역에서는 들어보기 힘들며 원도심 지역의 오랜 소리 환경을 구성해온 만큼 사운드마크로서 손색이 없다. 대흥동 성당 건물 자체가 지역민들에게 랜드마크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그 성당의 종소리도 사운드마크로 자리잡고 있음을 앞 장에서 확인하였다.

대전시 원도심의 매력은 근현대 문화유산이 시각뿐만 아니라, 여타 지역에서는 듣기 힘든 도심 내 종소리가 청각적으로 지각되는 곳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오픈 스페이스에서 연출해내는 소리경관이 도시를 풍부하게 하고 있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는 하루 2회 일정 반경 내에서는 실내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점차 획일화되고 있는 도심의 풍경 속에서 종소리를 듣는 주체가 어디에 있는지, 하루 중 어느 때인지를 인지하게 해준다. 즉, 시그널사운드로서의 성격이 뚜렷하다. 그런 한편, 이 연구의 시작이 바로 그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를 반경 200여 미터에 위치해 있는 한 공동주택 실내에서 들은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도심에서 거의 들을 수 없는 종소리가 실내에서도 들리는 장소’ 라는 사실은 한 장소의 소리풍경이 그 장소의 정체성에 기여함을 보여준다(Figure 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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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0. Daehung-dong Cathedral bell sound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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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 성당은 문화예술의 장소이자,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위한 자선과 장학 사업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으며, 80년대에는 대전지역 민주화운동의 구심지였다. 한국전쟁 당시 종소리로 종교적 사랑의 메시지를 나누어주듯, 배고픈 피난민에게 밀가루를 나누어 주었고, 이후 대전 최고의 명소가 된 향토기업 성심당의 탄생계기가 되었다. 그 성심당의 비전 또한 ‘사랑’이다.

성심당 본점 내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처럼 외부로 널리 울려 퍼지는 큰 종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외지인과 외국인 포함해서 대전 원도심뿐만 아니라 대전 여타 지역, 나아가 전국에서 성지순례하듯 줄서서 끊임없이 방문하는 대전 제1의 명소로서, 수많은 시민들에게 노출된다는 점,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새 빵이 나올 때마다 성당의 종소리 횟수 이상의 빈도로 울린다는 점, 또 대전 시민의 자부심이자 큰 사랑을 받는 성심당만의 독특한 문화의 일부라는 점에서, 성심당의 종소리도 원도심 은행동의 사운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들 장소는 시간의 두께도 상당하여, 대흥동 성당은 100년간, 성심당은 60년간 대전 원도심을 지켜왔다.

무엇보다 그 상징성이 중요한데, 성심당의 출발이 대흥동 성당의 오기선 신부가 나눠준 밀가루에서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대를 이어 나눔을 실천하는 2대 경영진의 직원과 인근 노포,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의 실천 등이 종소리에 함축되어 있다. 그 나눔은 원도심에 남아 지역 경제에 기여하면서 건강하고 친환경적인 제품 생산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프렌차이즈의 경우, 본사에서 기획, 생산된 상품을 지점과 공유하려면 냉동이라는 과정을 비켜가기 어렵다. 성심당에서는 지역 가게 유지를 고수하며 갓 만든 빵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때마다 울리는 종소리는 성심당의 운영방식을 상징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더 큰 이윤보다 한 지역과의 인연을 더 소중히 하는 로컬리티 고수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에게 이 종소리는 성심당 정체성의 한 요소로 인식될 수 있으며, 성심당의 역사와 나눔, 진정성을 인지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나눔의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심당의 종소리는, 창업주에서 2대 경영진에게로, 성심당 직원들과 그 가족들, 또 인근 상인들, 원도심과 대전 시민들에게로 울려 퍼져나가는 선한 영향력의 매개가 될 수 있다.

V. 결론

이상으로 대전 원도심 중구 대흥동 성당과 은행동 성심당의 종소리 소리풍경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두 종소리는, 시그널 사운드이자 지역의 사운드마크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대흥동 성당은 그 자체로 대흥동 지역의 랜드마크인데, 성당 종소리 또한 사운드마크로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심당 역시 지역의 랜드마크이되 성심당의 종소리는 대흥동 성당이 갖는 사운드마크의 성격만큼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시그널 사운드 이상의 상징성과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EU에서 새롭게 정의한 사운드스케이프 개념에 의거해 인식/지각, 환경, 맥락, 주체 4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보았을 때, 사운드마크로서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와 성심당의 종소리가 갖는 의미는 로컬리티, 공동체 지향, 선한 영향력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이들 두 종소리는 원도심을 돋보이게 하는 매력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해주는 소중한 문화자원이다. 다른 시에서 참조할 가치가 있는 독특한 사례로 지속의 당위성을 지닌다.

그럼에도 최근 대흥동 성당 바로 옆에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건설되는 과정에서 국가문화재로 등록된 대흥동 성당에 피해가 발생했다7). 근대문화특구와 예술문화거리를 대전시와 중구가 어떻게 지키고 재정의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향후 대흥동 문화예술의 거리를 중심으로 원도심의 문화예술과 도시재생 연구 및 사운드스케이프의 미학적 탐구로 이어갈 계획이다.

Notes

이후 사람들의 인터뷰는, 대흥동 성당 100주년을 기념, 대전시립미술관과 대흥동 성당이 공동 기획한 전시 기록 ⟨100년:1919-2019⟩에서 발췌.

성당과 교회를 통털어 수십 년간 사람이 직접 종을 치는 경우는 대흥동 성당이 유일하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는 대전 구도심의 상징이 됐다. 충청투데이.

이후 성심당의 역사는 사진 자료를 포함하여, 성심당: 모두가 행복한 경제(김태훈, 2016)에서 발췌. 이 책은 성심당 창립60주년을 맞아 발간된 책이다.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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