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Article

조경가 정영선의 조경설계론 연구

안명준*
Myung June Ahn*
*조경시공연구소 느티 대표
*Head, nTi Landscaping

본 논문은 201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청구논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Corresponding author: Myung June, Ahn Head, nTi Landscaping representative, Seoul 05641, Korea, Tel.: +82-2-576-1432, E-mail: inplusgan@gmail.com

© Copyright 2024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r 01, 2024; Revised: Mar 26, 2024; Accepted: Apr 04, 2024

Published Online: Jun 30, 2024

국문초록

본 연구는 한국 조경을 살펴보기 위해 조경가 정영선에 집중하였다. 이를 위해 2014년까지의 작가의 사고, 정영선과 서안 작품, 관련 담론(조경가, 조경작품, 조경담론) 등을 대상으로, 조경설계안, 조경작품, 조경가의 사고 및 그것의 조경이론화 과정, 조경작품과 조경가의 설계사고 사이의 관계 등을 살펴보고 인터뷰(정영선 및 관련 인사), 문헌조사, 설계작품 분석 등의 방법으로 접근하였다. 자료를 종합한 결과 정영선 조경을 구분하여 볼 때, 조경을 처음 접하고 이를 수련하며 실무에 뛰어든 시기부터 독립 사무실을 운영하며 설계의 경향과 설계사고의 깊이를 달리하며 보이는 네 가지의 변곡 지점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초기 조경에 대한 학습기를 제외하면 정영선 조경의 범주는 현대 조경, 정원, 전통 조경의 세 가지로 나타났다. 이 세 가지 범주의 조경 활동을 통해 현대 조경의 수입과 내재화(현대조경론), 독자적 정원론의 성립과 그 실천(정원론), 전통 컴플렉스의 극복과 창의적 계승(전통조경론) 등의 세 가지 성취를 보여준다. 종합적으로 볼 때 정영선 조경은 지역주의적 사고와 작가주의적 사고의 실천이라 요약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the landscape architect Jung YoungSun to examine Korean landscaping. To do so, the research focuses on the artist’s thoughts, her and Seoan’s works, and related discourse (landscape architects, landscape works, and landscape discourse) up to 2014. Research was conducted through interviews (with Jung and related people), a literature survey, and the analysis of design works. As a result, four inflection points of Jung’s landscape architecture career emerged, from the time she was introduced to landscape architecture, trained in it, and entered into practice, to the time she operated an independent office, showing different design trends and the depth of design thinking. In this process, excluding the early learning period, Jung’s landscapes were categorized into three categories: contemporary landscapes, gardens, and traditional landscapes. Through these three categories of landscaping activities, Jung’s achievements include the importation and internalization of modern landscapes (modern landscape theory), the establishment of her own garden theory and its practice (garden theory), and overcoming of tradition complexes and creative succession (traditional landscape theory). In sum, Jung’s landscapes can be summarized as the practice of regionalists and auteurist thinking.

Keywords: 정영선 조경; 조경관; 정원관; 조경작가; 조경비평
Keywords: YoungSun Jung’s Landscape; Landscape Perspectives; Garden Perspectives; Landscape Artist; Landscape Criticism

1. 서론

1.1 연구 배경 및 목적

조경 분야에서 이론과 담론의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국내 조경작가나 조경작품에 대한 비평적 연구와 성과는 충분치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현대 한국 조경에 대한 성찰과 비판적 성장을 위한 담론의 생산과 이해가 필요하며, 본 연구는 한국 조경의 이론과 담론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조경가와 조경작품에 주목하였다. 이중 조경가 정영선은 이러한 탐색의 주요 대상으로 설정되었으며, 이는 정영선 조경이 보여주는 한국 조경에서의 위상 때문이다. 한국 현대 조경가의 1세대에 해당하는 정영선은 수입된 현대 조경이 한국적 특성을 형성하며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전통조경의 재해석과 재도입, 독보적 정원작품의 생산, 한국 조경계와 후학에 대한 영향 등 독자적 조경론을 형성한 몇 안 되는 한국의 조경가로 언급되곤 한다. 특히 한국 조경설계의 주목할만한 주제들을 처음 선보이고 끊임없이 조경실무를 통해 자신의 독자적 조경론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충분하다1).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는 조경가와 조경작품에 대한 담론 생산과 이를 토대로 하는 조경론 탐구라는 입장을 취하며, 조경가의 관심 주제, 설계 사고와 배경 및 그 작품을 통하여 한 조경가의 조경론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동시대 조경설계론의 단면을 살펴보고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 조경설계와 조경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논할 수 있는 계기를 갖고자 하였다.

1.2 연구 대상 및 범위

본 연구는 한국 조경을 살펴보기 위해 조경가 정영선에 집중하였다. 그렇다면 본 연구의 주요 대상으로 조경가 정영선을 살펴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영선의 조경은 희원과 같은 작품을 통해 이미 한국적 풍경과 특징을 잘 표현하는 조경가로 알려져 있다. 선유도공원을 통해서는 세계 조경사에 있어서의 위상까지 확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작품만이 아니라 조경가 정영선은 한국 현대 조경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본 연구의 주요 대상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한국 현대 조경의 1세대에 속하는 실천가로서 현재까지 활동하는 중요 조경가이다, 둘째 교육과 실무를 두루 경험하였고, 조경설계를 주업으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셋째 60여 년 간의 다양한 규모와 종류의 조경으로 독자적 조경 철학을 형성하였다. 넷째 한국 조경의 초창기부터 현대 조경의 형성과 성장의 중심에 있었으며, 한국 현대 조경 성장에 기여하였다.

그렇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한정된 자료와 시공간적 제약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 사람의 사고 체계를 온전히 고정된 한 가지로 규정한다는 것은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연구자는 비평적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 본 논문이 하나의 비평이자 담론의 생산이라는 점에서 이 점은 중요하게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이종건(2013: 138)의 말처럼 “비평가는 건축가의 발언과 진술을 참조는 할 수 있을지언정 그에 따라 글을 조직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비평이란 “근본적으로 하나의 창조적인 행위”이기 때문이고, 건축가(작가)의 “언사에 설득력을 더해 주거나 수사를 부가하는 대변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의 결과는 조경가 정영선과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생산된 창의적 담론 형성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1.3 연구 방법 및 자료

본 연구에서는 2014년까지의 작가의 사고, 정영선(인터뷰, 강연 녹취, 발표 글 등)과 그의 소속사인 조경설계서안(주) 작품, 관련 담론(조경가, 조경작품, 조경담론) 등을 대상으로2), 조경설계안, 조경작품, 조경가의 사고 및 그것의 조경이론화 과정, 조경작품과 조경가의 (설계)사고 사이의 관계 등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인터뷰(정영선 및 관련 인사), 문헌조사, 설계작품 분석 등의 방법으로 접근하였다(그림 1 참조). 다만 그가 설계가이면서 도면 없이 현장을 중심으로 시공하는 조경시공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영선의 작품(분석 대상)에 대한 담론화 또는 텍스트화 작업이 기본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이를 위해 그가 발표한 원고를 수집하고 특강 녹취록을 작성하였으며, 부족한 자료는 정영선 본인 인터뷰, 관련자 인터뷰 등을 통해 보완하였다.

jkila-52-3-1-g1
Figure 1. 정영선과 인터뷰이의 연보(2014년까지)
Download Original Figure
1.4 선행연구 고찰

작가와 작품에 관한 연구는 순수 예술 분야에서는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인접 분야인 건축 분야에서도 건축가를 중심으로 작품경향과 작가론을 연구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조경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식으로 조경가와 조경론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이에 반해 한국 조경에서는 조경가와 그 작가론에 대한 담론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이교원 1999; 우대준, 2012; 박승진 2013). 본 연구와 연관되는 선행 연구로는 다음이 있다.

조경가에 대한 연구는 옴스테드를 주제로 한 최정민(1993), 양호정(2000), 조경진(2003) 등의 연구가 있고, 그외 방경란과 최기수(1998)의 케이퍼빌리티 브라운에 대한 연구가 있다. 권정삼(2012)은 이안 맥하그의 조경관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실천과 그의 행적을 통한 이론, 그리고 생태조경과 같은 주요 주제들의 통합적 측면을 밝히고 있다. 서영애 등(2007)은 조경가 이교원의 조경 특성을 연구한 바 있다. 이교원 조경의 형성배경, 작품의 생산방식 탐구를 통해 그 특성과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대상 작가의 “독특하고 일관성 있는 스타일”에 대한 탐구 등으로 작가론적 접근보다는 “조경설계 실무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어 한 작가의 심층적인 작가론 또는 조경론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외에도 본 연구와 유사한 연구로 배정한(2003)은 한국 조경 도입 초기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대통령 박정희의 조경관을 살펴보는데 집중한다. 이후 한국 조경의 성장을 살필 수 있는 기초를 보여준다. 남기준(2008)은 국내 조경가 조명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조경 분야의 작가주의적 접근의 어려움을 설명하며 그가 주목한 조경가에 대한 단상을 펼쳐놓는다. 조경가를 작가로서 접근하기 어려운 한국적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경가를 조명해 보려는 시선과 노력의 부재를 탓하기도 한다. 한 분야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필수 작업이라는 점에서 그는 작가론에 대한 탐구를 중요하게 강조하지만 제목에서 드러나듯 국내 조경가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보다는 개략적인 스케치에 머문다. 백정희(2012)는 조경가 오휘영 연구를 통해 한국 현대조경 정착기와 이후의 발전 상황에 대해 밝히고 있다. 한 조경가에 대한 일대기 형식의 탐구를 통해 한국 조경의 형성과 한 조경가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한 작가의 작가론이나 조경관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형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 연구와 차별된다.

이처럼 국내에서 조경가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조경작품이 생산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한다면 본격적인 국내 조경가에 대한 조명 작업이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본 연구는 한국 조경설계에 대한 통시적 입장에서 한 작가의 조경론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1.5 논문의 구성

본 연구는 조경가 정영선의 조경을 통해 그의 조경론이 형성되는 과정 전반을 개괄하고, 연구 결과 확인된 그것에 담긴 조경론의 범주를 현대조경론, 정원론, 전통조경론으로 세분하여 살펴본다. 이를 종합하여 정영선 조경론의 특성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한 조경가의 조경관을 해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서술하였다.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정영선 조경을 분석하기에 앞서 그의 조경론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연대기 형식으로 살펴본다. 크게 4기로 나뉘는 정영선 조경의 형성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조경론 형성의 과정과 범주를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정영선 조경의 세 범주를 설정하여 보다 심도 있는 탐구를 진행한다. 3장에서는 2장에서 밝힌 정영선 조경의 세 가지 범주를 각각 살펴보고 각 조경론의 내용과 특성을 작품과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다. 이를 위해 인터뷰와 문헌자료 등을 통해 그의 조경관을 보완하고, 작가론과 작품론적 접근 방식을 통해 그 특징을 밝히게 된다. 4장에서는 정영선 조경설계론과 조경 방식에 대한 종합적 평가이자 문제제기가 이어진다. 첫 번째 검토의 주제는 정영선이 획득하고 있는 조경관의 위상과 관련된다. 두 번째 검토의 주제는 정영선 조경의 표현 철학과 관련된다. 5장에서는 정영선으로 대표되는 한국 조경의 위상과 의의를 되짚어 보며 경관과 조경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위한 방향을 점검한다.

2. 정영선 조경의 성장과 변천

이 장은 정영선 조경의 특성을 고찰하기 위한 기본적인 담론을 정리하는 과정이자 결과의 성격을 갖는다. 이를 위해 우선 정영선 조경의 흐름을 연대순으로 살펴보고, 각 작품과 경향에 따른 변화의 지점을 사건을 중심으로 구분하였다. 2014년까지 50여 년에 걸친 정영선 조경을 구분하여 볼 때, 조경을 처음 접하고 이를 수련하며 실무에 뛰어든 시기부터 독립 사무실을 운영하며 설계의 경향과 설계사고의 깊이를 달리 하며 보이는 변곡지점이 나타난다.

2.1 1기(국내: 조경학 도입기, 정영선: 조경 학습기 1973~1983)

정영선은 1941년생으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학과를 1964년 졸업(농학사)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인상 깊게 본 건축사진전의 영향을 받았고, 어릴 적 자랐던 과수원과 집 풍경으로부터 막연히 조경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 진학에 대한 동기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조경이라는 낱말조차 없었던 때였음에도 대학에 갈 때부터 이미 조경분야에 마음이 있었고(정영선, 1998b: 30) 농과대학을 선택한 배경이 되었으며, 4학년 때 일본에서 막 입국하여 강의하던 안건용 교수의 조원학 강의를 수강하였던 것이 조경에 대한 학부시절의 기억이라고 한다(정영선, 1998a: 30~35).

졸업 후 잠시 잡지사 기자로 일하였으며, 사이먼즈(John Ormsbee Simonds)의 Landscape Architecture(첫 번째 판)를 접하게 되면서 조경을 보다 깊이 알게 된다. 이후 1973년 당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처음 개설된 환경조경학과 1기 석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조경과 본격적인 연을 맺게 된다. 당시 입학생은 주간부 10명, 야간부 10명이었으며, 권태준, 최상철, 이광노, 김안제, 나상기, 오휘영 등의 교수진이 강의하였다. 당시 첫 프로젝트로 그린벨트 내에 공공건물을 세우는 일, 불국사 경역 내의 관광호텔, 노점상 등을 철거하고 성역화하는 일 등이 주어졌고, 불국사 성역화 사업의 경우는 보고서대로 공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정영선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석사를 마침과 동시에 청주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이후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청주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설계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까지 교편과 실무를 동시에 진행하며 조경 실무를 연마하게 된다. 당시 설계작품으로는 충북도립 시범공원묘지(그림 2 참고),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기본계획/기본설계(국내 최초의 자연학습원), 청주시내의 기념공원 등이 있다(정영선, 1982: 52). 학술 활동에도 매진하여 당시 국내 처음으로 조경분야 교과서 격인 “서양조경사”(정영선, 1979)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jkila-52-3-1-g2
Figure 2. 충북도립 시범공원묘원 기본계획도 자료: 정영선(1982) 『월간 조경』 1982년 창간호, p.52
Download Original Figure

1970년대 말에 그는 “학교가 문을 닫으면 짜여진 일정 없이... 주로 남도지방을 헤매고 다녔다.”고 한다. 담양, 강진, 해남, 완도, 보길도 등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대학원 시절부터 시작했던 정자를 찾아다닌 여정을 계속했다(정영선, 1998d: 32). 1980년에는 국토개발기술사(현 조경기술사)를 취득하였고, 최초의 여성 기술사로 주목받기도 하였다. 당시 한국 조경계는 1973년 한국조경학회 설립, 1974년 한국종합조경공사 설립, 1981년 조경연합회 결성, 1982년 조경전문지 『조경』(1985년 환경과조경으로 제호 변경) 창간 등의 사건이 있었다. 정영선은『조경』지의 시작단계에서부터 참여하여 주간으로서 한동안 잡지의 기틀을 다지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2.2 2기(국내: 조경설계 분야 정립기, 정영선: 실무 수련기, 1984~1995)

1983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1984년 대능건설 이사직으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조경설계 업무에 매진하게 된다. 정영선은 당시를 “여전히 실무를 해보지 않고, 설계를 하고 싶은 욕망 때문”(정영선, 2010a)이었다고 말한다. 본격적으로 설계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아시아공원/체육공원, 아시아 선수촌 아파트, 예술의 전당 조경설계, 한국전력 본사 사옥, 올림픽 선수촌/기자촌 아파트,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파리공원조성계획 등의 굵직한 업무를 통해 이후 독자 사무실 설립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조경설계서안(주)(이하 서안)’의 설립 초기 조경계는 시공과 설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으로 시공현장에서 설계 분야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안의 설립으로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조경설계’가 위상을 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건축이나 토목과 같은 다른 분야와 동등한 입장을 가질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디자인의 질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방책으로 시작된 조경설계사였고 이것으로 조경 분야의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인터뷰이A(2014)에 따르면 아시아공원의 조경설계 도면이 한국 조경설계에서의 거의 초기 업계 설계도면이자 설계도서로서 다른 조경설계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조경 내역, 조경 대가, 도면 작업 등이 모두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전한다.

대능건설의 조경설계 부서가 독립하여 1987년 조경설계서안으로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본격적인 조경설계 작업에 매진하게 된다. 당시 인터뷰이A를 중심으로 서안의 업무체계가 재편되고 외부 설계가와의 협업을 통해 설계안을 완성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당시의 조경설계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동기이자 청주대학교 교수였던 김윤희와 인터뷰이A가 주로 기본적인 틀을 구성하고 정영선이 식재를 중심으로 설계를 하는 등 일종의 업무 분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틀은 조경설계 서안을 설립한 이후 초기 한동안 유지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공공조경이 주로 행해졌던 조경설계 작업이었으며, 정원 설계 작업은 거의 없었던 때였다.

1984년 아시아공원(그림 3 참고)의 경우 공원이 밖에서도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잠실 방향으로 앉음벽으로 처리하는 등 적극적인 설계를 보인다. 19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파리공원조성계획의 경우 기본계획을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서안이 설계를 담당하는 등 설계 전문업체로서 다양한 협업에도 참여하였다. 1990년의 자연농원 문화지역과 1991년의 승지원 조경설계는 서안의 이후 작업에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승지원을 통해 정원과 관련된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호암미술관 희원으로 이어지는 서안만의 조경을 실험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사건이기도 하다.

jkila-52-3-1-g3
Figure 3. 외부와의 열린 경계를 구현하고 있는 아시아공원 자료: 한국조경학회 편, 『현대 한국조경 작품집 1963-1992』(도서출판 조경, 1992), pp.30, 31
Download Original Figure

1992년 서안 조경 작업들은 이전과는 다른 폭넓은 종류의 작업으로 확대되었는데, 단지 설계부터 공공공간 설계, 기념관 조경설계 그리고 아파트조경 설계 등 당시의 개발 상황과 맞물린 다종의 설계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이때의 서안 작업은 조경설계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관점들이 실험되고 정착되던 시기로 보인다. 인터뷰이B(2014)은 당시 서안의 설계 철학은 보기 좋은 것보다는 의미가 맞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데 몰두하는 등 생각에 있었다고 말한다. 땅과 현장에 대한 공부가 주를 이루었는데 땅이 원하는 바, 의뢰인의 생각, 그리고 설계 주제에 대한 공부가 당시 설계 방식의 핵심이었다고 회상한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많아지는 업무량 때문도 있었지만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설계 결과물의 표준화가 고민되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대학 교육과 실무와의 간극이 드러나게 되기도 한다. 또한 설계분야 업무환경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1990년대 중반의 설계 방법은 정영선과 직원들이 함께 전체 설계안을 만들어가면서도 몇 가지의 업무가 분업화되어 진행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구상을 하는 팀과 그 생각과 아이디어를 그림화하는 팀이 각각의 피드백을 유지하며 하나의 설계안을 다듬어가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생각과 그림 사이의 관계가 설계안 작업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실험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또 하나 특징은 수많은 전문가들과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95년 한솔 오크밸리 에코 빌리지의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로 생태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함께 땅을 읽는 작업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이 시기는 전체적으로 “서안정신”이라 불리는 서안만의 설계 철학과 방법이 정립되던 시기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후 정영선 조경의 정체성을 보이는 세계적 수준의 설계 사고들이 펼쳐지는 뿌리를 형성하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2.3 3기(국내: 다변화기, 정영선: 조경론 수립기, 1996~2002)

서안의 조경이 확장하면서 정착하지만 정영선의 공공조경은 여러 이슈들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 서안 소속의 조경가가 많아지면서 조경 작업이 계열을 이루며 분업화되며 시스템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때 정영선이 관여하는 프로젝트가 공공조경에서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펼칠 수 있는 정원 작업으로 중심을 옮겨가게 된다. 공공조경에서의 한계를 거기에서 찾은 셈인데 이로써 정영선 조경의 새로운 장이 확립되게 된다. 작가주의적 입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특히 희원 작업은 그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기회였으며, 그간의 조경 노하우와 전통조경에 대한 사고가 종합되며 독자적 조경론의 맹아를 형성하게 된다.

이 당시의 서안은 크게 두 줄기의 흐름으로 조경을 실천하게 된다. 현대조경의 흐름이 서안의 젊은 조경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작가주의적 접근이 가능한 설계와 정원에 정영선 본인이 직접 참여하고 시공 및 유지관리까지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림 4 참고). 반면에 서안에서 다루는 프로젝트는 이 시기에 다소의 편향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설계안의 구현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로 인해 아파트 조경설계를 중단한 것은 조경 현장의 문제보다는 보다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추구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때는 서안과 정영선의 노하우가 빛을 발하여 한국 조경의 위상을 변화시키던 시기로 볼 수 있는데, 희원 이후 선유도공원 설계안은 그 분수령이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01년의 선유도공원은 정영선 조경의 핵심적 사고가 세계적 위상을 획득한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다. 환경재생공원을 표방하는 당시 서안의 안은 다른 설계작들과는 다른 아주 독창적인 생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며 이것은 단순히 해외 사례를 벤키마킹한 것을 뛰어넘는다. 한국 최초로 세계적인 조경상을 수상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터뷰B(2014)에 따르면 이 당시 서안의 조경 방식과 결과는 한국 조경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설계의 주제를 찾으려 했고, 장소성과 이야기를 펼치려는 설계안을 고민했다. 설계안의 제목부터 신중하게 결정하였으며, 작명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둘째로 서안의 전문가 협업에 의한 땅 읽기는 생태 디테일에서 빛을 발하였고,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서안 초기의 도면이 다른 설계사에서 복사되며 사용되었듯 생태 디테일이 복사되어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셋째는 판낼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그래픽, 레이아웃뿐만 아니라 설계보고서 포맷까지 신경 쓰는 등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과 전략을 충분히 발휘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시기 정영선 조경은 레토릭이 아닌 땅 제대로 읽기에서 시작한 의미와 그에 따른 테마의 작명이라는 진정성, 그리고 설계안의 실질적인 운영을 고려한 작동하는 조경이라는 점에서 그 특징을 정리해볼 수 있다. 정영선의 설계는 이 시점에 새로운 방향으로 도약하는데 그것은 본격적으로 시공을 병행하며 장기적인 유지관리에까지 뛰어든다는 것이다. 시공후의 변화를 살피고 자신의 설계 사고를 확인하는 과정을 공고히 하면서 조경론이 한층 깊어지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2.4 4기(국내: 다변화기, 정영선: 독자성 형성기, 2003~2014)

선유도공원 이후 서안은 보다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확보하게 된다. 늘어난 프로젝트의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조경론이 각각의 분야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조경의 상황도 달라지게 되는데 대형 설계공모가 많아지고 지명초청설계도 자리 잡으면서 조경가들의 설계사고가 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서울숲 설계공모를 통해서는 한국 조경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이어지는 대규모 개발사업의 설계공모를 통해서는 조경의 도시적 역할이 보다 강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서안의 경우 현상설계와 지명초청설계를 주로 담당하는 부서와 건축가와의 협업이나 정원설계, 조경이 주가 되는 단지계획 등 스튜디오 또는 아틀리에 형식의 부서로 나뉘어 작업을 이어가게 된다. 본격적으로 작가주의적 조경을 펼칠 수 있는 업무 시스템이 자리잡은 셈이다. 이때부터 정영선은 작가주의적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하며 정원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정원의 설계뿐만 아니라 시공과 유지관리에까지 집중하게 되면서는 독자적인 정원론이 무르익게 된다(그림 5 참고). 특히 다수의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사고가 드러나게 되고 정원에 담긴 그의 조경관이 보다 분명해지게 된다.

jkila-52-3-1-g5
Figure 5. 모헌 조경 자료: 승효상, 홍동원, 『모용공간』(글씨미디어, 2012), p.80. 조경설계서안 설계자료
Download Original Figure

또 하나의 변화는 정영선의 작업이 해외로까지 진출하게 된다는 점이다. 특별히 해외 작업을 전략적으로 수행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으나 건축가와의 협업을 통해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의 조경관을 반영하고자 하는 인연을 통해서도 이는 수행되게 된다. 이 시기 한국의 전통조경문화를 알리려는 시도들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면서 전통조경의 진수를 보이고자 노력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광동성에 만들어진 한국정원의 경우 직접 설계하며 그의 이러한 생각을 펼쳐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시기 다수의 수상과 해외 작업이 새로운 작업 영역으로서 자리하게 되고, 한국 조경의 고유성을 보다 공고히 할 수 있는 작업들이 그의 손을 거치게 된다.

해외 조경가와의 협업은 그에게 변화의 기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작업시 마이클 반 발켄버그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실시설계에 참여하게 되었던 정영선은 컨셉에 미사여구 없고 군더더기 없는 그의 발표는 근사한 컨셉 찾기에 골몰하던 그에게 놀라움이었다(정영선, 2010a)고 말한다. 또한 직접 꽃에 맞는 토양을 제조하여 사용하는 그의 토양 작업에서도 그러했다. 정영선은 이때를 우리나라에서 토양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실천을 하게 되는 시발점이었다고 자평한다. 새로운 설계 사고와 실험이 많아지고 설계 시스템도 자리 잡은 시기이지만 이러한 조경설계 경향에 대해 정영선은 외형적으로만 크게 성장했을 뿐 여전히 전문가 의식은 결여되어 있다고 진단하는 등 한국 조경의 현황에 대한 발언도 이어간다.

2.5 소결: 정영선 조경의 실천 범주

정영선의 조경은 그 시작에서부터 학습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한국 조경학의 탄생과 진화의 현장에 그가 항상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 조경은 근대적 조경이 단절된 채 서구의 현대 조경이 수입되면서 시작되었고, 이것은 조경가들에게 전통 조경에 대한 일종의 부채 의식을 가지게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전통 조경과 현대 조경을 넘나드는 독특한 조경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정영선의 조경가로서의 특이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의 조경이 보여주는 특성을 통해 한국 조경과 현대 조경에 대한 비평의 지점을 확인할 수도 있다. 수입된 학문으로서 정착하였다는 점에서 정영선의 조경 또한 성장과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는데 1973년 이후의 정영선 조경은 크게 네 번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그의 작품 경향과 설계론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의 테마로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시기별로 변화의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정영선 조경을 범주화할 수 있다. 초기 조경에 대한 학습기를 제외하면 현대 조경, 정원, 전통 조경의 세 가지가 그것이다(표 1 참고).

표 1. 정영선 조경론의 범주와 주요 작품
범 주 특 징 주요 작품
현대조경론
  • - 조경의 전문성에 대한 탐구

  • - 관계, 접점, 맥락, 전문성 등이 중요함

  • - 조경가와 그 외 전문가 사이의 협업 및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김

  • - 아시아공원, 아시아선수촌아파트

  • - 마포 삼성아파트, 용인신봉 동일하이빌

  • - 서울 역사문화탐방로 인사동길

  • - 선유도공원 / - 안국동 근생시설

  • - 발트하우스 단지 조경계획

정원론
  • - 땅과 사람의 특성에 기반하는 독특한 정원론의 탐구

  • - 한국 정원의 특성을 반영한 정원 및 정원설계 개념 형성

  • - 터 읽기과 관계맺기를 중시

  • - 조안리 별서정원

  • - 승지원 / - 쉐라톤 워커힐 호텔 정원

  • - 신라호텔 영빈관 / - 모헌

전통조경론
  • - 전통조경 회복을 통한 지역주의 조경의 맥락 발현

  • - 차경론, 원로론, 지사론 등의 독자적 조경관 유지

  • - 전통조경에 대한 독특한 조경관 형성

  • - 호암미술관 희원 / - 알로에마임 연수원

  • - 미국 원다르마센터

  • - 중국 광동성 한국정원

Download Excel Table

첫째로는 현대 조경에 매진하던 시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대단위 개발 사업과 공공조경이 실무의 주를 이룬다. 도시계획과 맞물린 조경 활동들이 주를 이루며 수입된 조경 개념의 실천과 한국적 적용에 중점을 두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경설계의 방법론을 실험하고 서안조경의 방식을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조경론은 실무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부딪히게 되는 조경설계의 이슈들을 통해 확립되게 된다. 관계, 접점, 맥락, 전문성 등으로 강조되는 그의 조경관은 표준화된 조경의 프로세스에 덧대어져 고유성을 형성하는 기반으로 나타난다. 특히 해외 조경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유연한 접근들을 수용함으로써 그의 현대조경론이 점차 성장한다는 점은 의미 있게 볼 수 있다.

둘째로는 공적 조경에서 사적 조경으로의 관심과 실무의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정원론이 실험되고 확립되는 시기로 볼 수 있는데 이때에는 소규모 조경이 주를 이루며 대체로 정원 설계와 시공이 핵심을 이룬다. 또한 조경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직접 관리에 나서기도 한다. 설계의 한계를 보완하고 이후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시공과 유지관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때의 조경은 주로 정원을 대상으로 하고 심도를 높여가는 정원설계를 통한 그만의 정원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조경이라는 큰 틀의 접근보다는 정원이라는 보다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므로 그의 조경관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통조경이나 한국성과 같은 독자적 조경의 단면들이 성장하게 된다.

셋째로는 한국적 조경을 추구하며 보인 전통조경에 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땅의 특성을 반영하고 지역의 기후 조건과 지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한 조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전통조경의 핵심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읽을 수 있다. 전통이라는 요소는 선유도공원 같이 현대적인 조경 공간에서도 그 개념적 접근이 발견되며, 정영선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설계 사고의 일부로서 발견된다. 전통조경론은 단순히 한국적 경관의 고유성을 확인하려는 작업으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자연이 보여주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통해 한국적 조경설계의 적용이라는 측면으로서 강조된다. 그것은 땅에서 시작하는 그의 조경관이 도달한 독특한 조경관이라 할 수 있으며, 땅의 차이에서 시작하는 지역성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정영선 조경설계의 내용적 범주

정영선 조경은 그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된다. 시대적 변화와도 맞물리는 이러한 진화는 정영선 조경론의 2장에서 살펴본 대로 크게 현대 조경의 도입기에 보인 양상과, 작가주의적 정원예술론을 형성하던 시기, 그리고 전통의 재현과 관련된 실천 등으로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3.1 현대조경의 수입과 내재화(현대조경론)
3.1.1 현대조경의 주요 흐름과의 관계

정영선의 실무 궤적은 한국 현대조경의 흐름과 그대로 연결된다. 초기 조경설계업이 분화되던 시기로부터 시작되는 이러한 과정은 설계사고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설계론이 공고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땅을 읽는 과정과 설계안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국 조경의 사회적 위상이 명확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건축가 조성룡과의 오랜 협업은 그러한 성장의 과정이자 한국 조경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 현대조경의 도입 과정을 통해 그 흐름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현대조경이 시작된 것은 비교적 명확하게 그 시점이 지적된다. 1972년 한국조경학회가 설립되고, 1973년 대학교에 조경학과가 설립된 것을 그 시점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현대 조경/조경학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와 비슷하다. 산업이 성장하고 전문분야가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전문분야와 전문가가 먼저이고 산업이 뒤잇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전문가의 실무 활동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전문업을 확립해가면서 확장되는 양상을 띨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개발 중심 사회 분위기는 이를 더욱 가속화하기도 하였다.

정영선의 설계실무도 이러한 경향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설계 사고를 개척하는 과정이면서 한국 조경을 견인하는 초기 조경가의 임무를 그대로 짊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실무 궤적이 한국의 조경설계 방법론에 미친 영향은 다른 관점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한국 조경의 성장과정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영선 조경의 성장과정도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 이해할 수 있다. 인터뷰와 강연, 주변 인물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첫째 땅을 읽는 여러 기법들이 시험되고 도입되었다. 이때 조경가만의 참여가 아닌 생태학자나 수리학자 등 자연을 읽는 여타 전문가들과의 협업이 이루어졌다. 이런 과정은 이안 맥하그식의 생태조경과는 다소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이안 맥하그식의 접근도 생태와 인문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였지만 정영선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생태적 입장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맥락과 의뢰인의 요구를 동시에 반영하는 것은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고려한 그만의 독특한 땅 다루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신중한 조경공간의 명칭 사용으로 내용과 형식이 동시에 있는 설계안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름짓기에 대한 노력은 땅을 읽고 설계안에 생각을 담는 중요한 전략이었으며 수정된 자연의 작동성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짓기는 한국조경에 이름뿐인 조경이라는 비판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인터뷰이B(2014)에 따르면 서안 식의 패널과 작명이 내용은 따르지 못한 채 겉만 베껴져가는 식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이름에 담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슷한 이름만 작명하는 조경공간의 문제로 확산되기도 한다.

셋째 새로운 식재 재료의 발견과 도입도 중요하다. 식재 부분은 정영선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교목류 위주의 식물 소재 개발이 많아지고 수요가 많아지던 시대에도 그는 초화류와 교목류 가리지 않고 조경 소재로 활용하였다. 이는 그만의 초화류 사용 방식을 형성하게 하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통한 설계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스러운 경관 연출이라는 특징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넷째 해외 조경가, 건축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조경의 수준을 높이는데 일조하였다. 마이클 허그와의 작업은 흙의 중요성을 배운 좋은 사례였다고 강조된다. 마이클 반 발켄버그와의 작업은 군더더기 없는 작업 스타일을 영향을 받게 된다. 알바로 시자와 같은 건축가와의 작업에서는 그 치밀함과 꼼꼼함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이처럼 여러 건축가 및 해외 인물과의 협업은 그뿐만 아니라 한국조경이 성장하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였다.

다섯째 설계안의 혁신을 통해 한국조경의 수준을 높여왔다. 선유도공원의 설계안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감각과 재생이라는 테마를 적용한 설계적 해결책으로서 선유도공원은 이후 많은 다른 대상지에 환경의 재활용이라는 테마를 전파시킨다. 그 이전에는 희원 설계를 통해 한국 전통정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기도 하였고 전통조경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정원 만들기의 기폭제가 되기도 하였다.

3.1.2 현대조경의 전문성 재고찰

‘관계, 접점, 맥락, 전문성’으로 요약되는 정영선의 현대 조경설계는 그 성장의 과정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주어지는 대상지에 따라 그의 작업이 확장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요컨대 정영선의 현대조경은 전문성을 강화하며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고 그간의 궤적을 통해 볼 때, 일반적 조경의 방식 외에 그가 강조하는 조경의 측면들이 확인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 내용은 표 2와 같이 요약된다.

표 2. 정영선 현대조경론의 요약
구분 주요 내용
관계
  • - 조경 결과물은 단독 오브제가 아니므로 대상지 외부 요소들과의 관계가 중요함

  • - 조경공간을 접점으로 보아 이것이 가지는 관계성에 주목

  • - 전문가들의 관계 및 전문가로서의 윤리의식 강조

접점
  • - 조경의 대상지는 여러 공간들의 접점 역할을 함

  • - 조경 공간은 자기 완결적이어서는 안 되며 사회와의 관계가 중요함

  • - 조경 공간은 공적 역할이 강함(“공원적 공간”)

맥락
  • - 대상지 내외부의 맥락을 고려한 설계

  • - 조경 공간을 둘러싼 관계까지 생각하는 경관적 고려를 우선시 함

  • - 땅에 잠재된 프로그램을 이끌어내고

전문성
  • - 조경 분야는 경관을 매개로 하는 여러 분야 통합의 역할을 함

  • - 각 전문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는 협력이 중요함

  • - 전문가로서의 윤리의식 강조

Download Excel Table

여기에 그가 보여주는 실무적 흐름이, 혼합(협업)이 우선되는 현대 사회 및 전문 분야의 새로운 상황에 대한 하나의 단서이자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된다는 점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정영선이 강조하는 조경만의 전문성은 협업을 위한 필수 사항이다. 이를 기반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이 조경이 가지는 특수성으로서 강조된다.

첫째, 정영선에게 조경은 다양한 경관 요소들의 통합을 다루는 분야로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정영선은 조경가의 역할을 경관의 코디네이터로 설명한다. 조경을, 경관 요소를 다루는 다양한 전문분야들 사이에서 그 결과물들을 어떻게 하나의 경관으로 유기적으로 작용하게 할 것이냐에 중요한 임무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둘째, 그로 인해 조경은 그 전문성을 앞세우기보다는 관련 분야와의 협업과 협력적 설계가 중요한 역할로 강조된다. 생태학자들과의 공동 작업은 그런 면에서 그의 사고가 유연하게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가 된다.

셋째, 조경만의 전문성은 이러한 협력적 과정과 함께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살아있는 유기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조경만의 깊이 있는 지식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타 분야와 다른 조경만의 전문성은 조경가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질로 생각한다.

넷째, 전문가로서 조경가의 직업적 윤리성도 중요하게 강조한다. 그것은 땅의 본질과 향후 들어설 새로운 경관의 흐름을 조경가 만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의뢰인의 향후 유지관리까지를 고려한 총체적인 전문성의 발휘가 직업윤리로서까지 중요하게 지적되기도 한다.

3.2 독자적 정원론의 성립과 그 실천(정원론)
3.2.1 정영선의 정원관

정영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정원에 대해 설명하며 그 가치를 역설한다. 이것들을 살펴보면 그가 가진 정원에 대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가 강조하는 정원의 핵심은 결국 개인의 삶에 “자연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라는 점이다. 그는 정원설계를 “우리 삶과 가장 직결된 삶의 터를 살 수 있는 공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정영선, 2010b). 또한 정원은 개인적 차원의 의미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원의 깊이를 가진다고 지적한다. “정원이라는 것은 한 나라, 한 국가 민족의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공간이면서, 전통이면서, 그것이 그 나라 그 국민의 문화를 말하며, 문화이자 전통이자, 우리가 반드시 가꾸고 계승시키고 발전시켜야 할 요소”라는 것이다(정영선, 2010b).

그런 점에서 전통조경과 한국정원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그에게 있어 숙명과도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서부터 그의 정원관이 시작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정원은 이러한 사고를 펼칠 수 있는 중요한 실험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땅을 먼저 살피는 그의 설계사고가 정원에 대한 그만의 철학과 만나 4장에서 살펴볼 지역주의 조경으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영선의 조경관은 설계가로서의 의지와 의미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정원 작업을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지사에서 시작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을 통해 그의 조경론이 독특한 지점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것은 한국조경이 이룩한 특별한 설계스타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역조경의 양상으로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정원의 특징을 찾아내는 그의 생각과 설계철학에서 지역주의 조경의 단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원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정원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바로 전통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하고 우리나라 땅의 형태에서 찾아야 되고, 특징에서 찾아야 되고, 우리 기후의 특질에서 찾아야 되고,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고 정서에 맞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정영선, 2010b). 이처럼 정영선에게 정원은 단순히 자연을 대리하는 공간 이상의 깊이 있는 문화적 실천의 장으로 여겨진다. 또한 그것은 단절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중요한 문화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조경가는 단절되었던 전통문화와도 연결되는 것이며, 이것은 그의 정원에 전통조경의 요소와 방법론이 등장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3.2.2 정원예술로서의 조경 실천

정영선의 정원론은 정원에 대한 그만의 개념과 속성에서 시작된다. 그는 정원을 현대 정원문화의 중요한 축으로 보면서 그것이 결국 전통과 문화를 반영하고 형성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정원을 통해서 조경가이자 작가로서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중요한 활동으로 여긴다. 그가 보는 정원의 속성은 표 3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3)

표 3. 정영선 정원론의 요약
구분 주요 내용 설계 방법
개인적 쉼터
  • - 외부 자연과의 경계지음

  • - 건물과 정원 사이의 경계지음

  • - 경계지음은 쉼을 위한 공간 마련과 관련됨

  • - 건물에 기거하는 사람과의 관계 설정에 의해 설계 요소 도출

  • - 경계 지어지는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 도입

자연 교류의 장
  • - 자연과의 감각적 교류

  • - 시각적 확장 및 계절적 감흥

  • - 정원 가꾸기 및 텃밭일의 장

  • - 의뢰인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차경, 계절 요소, 생산 공간 등 도입

사회문화적 공간
  • - 한국 정원의 사회적 의미 가미

  • - 전통과 문화로서의 조경 강조

  • - 용도에 따라 전통 요소 도입

  • - 정자의 적절한 활용

Download Excel Table

정영선의 정원은 그의 설계사고를 잘 반영한 실천의 사례이다. 특히 정원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현대 조경의 가능성은 여러 측면에서 논의의 시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기에서는 대규모 개발사업으로는 반영하기 어려웠던 그의 땅 읽기, 땅 다루기 과정뿐만 아니라 작가로서 그가 담고자 하는 사고와 철학의 측면이 잘 드러난다. 이것은 동양 정원과 서양 정원의 차이에 대한 비평적 지점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한마디로 보아 그가 정원을 통해 예술로서의 조경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국적 상황과 경관, 전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정영선은 조경 작업의 초기부터 조경가의 작가로서의 위상을 꾸준히 제기한 바 있다. 땅을 캔버스로 하는 작가이지만 마음대로 땅을 다룰 수 없다는 점에서 작가와는 다르다고 말하는 그의 작가론은 땅에서 시작하는 그의 사고를 그대로 반영하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한 사람의 작가가 모든 것을 다 다룰 수 없다는 겸손과 윤리의식으로까지 이어지며 그의 작가주의 조경을 독특한 경지로 이끈다.

이처럼 정영선은 조경을 작가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하고자 노력하였다. 한국조경의 초창기부터 견지한 그와 같은 태도는 그러나 개발 시대에는 충분히 펼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조경과 경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원 작업이 많아지면서 그의 작가주의적 정원론은 점차 빛을 발하게 된다.

정영선의 정원에 대한 관심과 실천은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높아진 정원에 대한 관심의 경향과 맥을 같이 한다. 그의 정원 작업 매진의 모습이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작가주의적 접근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정영선의 정원이 그만의 독자적 정원론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가 추구한 작가주의적 조경의 결과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한국적 상황에서 세계 다른 나라의 조경가들이 그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을 때 정영선은 그보다는 정원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독자적인 자연미를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경 유행의 흐름을 따르기보다는 그만의 독자성을 정원을 통해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3.3 전통 컴플렉스의 극복과 창의적 계승(전통조경론)
3.3.1 전통조경에 대한 입장

그가 출발하는 전통조경의 시작은 결국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에서이다. 한중일 국토 경관의 차이를 설명하며 그는 우리 국토경관이 가져다준 땅의 맥락이 전통조경을 형성한 것으로 이해한다. 외부 자연의 아름다움이 커다란 정원으로서 역할하므로 굳이 서양식의 정원을 별도로 구성하여 즐길 필요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땅은 다시 한번 그의 조경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러한 수려한 자연풍경에 하나의 이야기를 더함으로써 감흥의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전통조경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생각이다. 풍경이 한 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맥락에 따라 보고 보여짐이 조절됨으로써 감흥의 깊이를 달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 조경이 역사적 흐름에 따라 비록 전통과의 단절은 있었지만 세계사적 흐름에서는 그리 뒤처지지 않았다는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진다. 정영선은 이런 사례로 유길준, 이채연, 서재필, 윤치호, 남궁억 등의 인물을 언급하며 근대 초기 도시공원의 예를 든다. 18세기 말부터의 세계 조경이 그 이전의 정원에서 공원으로 큰 흐름의 변화를 보이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한국도 이러한 변화에서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 주권이 강탈 당하기 전까지 해외를 경험한 인물들에 의해 서구의 공원문화가 충실하게 전달되고 실험되었다는 것이다. 자주적으로 이를 승화하지 못하였다는 안타까움을 전하며 이후의 전쟁 등으로 1970년대까지도 이러한 흐름을 되살리지 못하였다는 것이다(정영선, 2002).

3.3.2 본래적 차경 기법의 실천과 원로론의 발굴

정영선은 “우리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내재된 조경관을 찾아내고 그를 형상화하고 새로운 조형언어로 만드는 일”이 남겨진 새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조경에는 “단편적인 기록들과 유적, 복원 혹은 재현된 것”이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작가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한국조경사는 온갖 단편들을 꿰어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이해한다. 창덕궁 후원만 보더라도 한국조경의 정수라 지적되지만 그에 대한 논리가 없다고 강조하며 “엄격히 이 작품이 어떤 작품성을 가지느냐 비교하고 분석하고 비평할 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전통구성 요소들에 대한 조합”만으로 한국적 조경관이 녹아든 것이 아닐 것이며, “우리 것의 원형 찾기는 그래서 아직 겉돌고 있다.”는 것이다(정영선, 1998e).

전통조경의 단절을 회복하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에서 시작된 그의 조경이 현대 한국 조경의 한 가지 중요한 방향으로 성장하였다는 점은 정영선 전통조경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할 지점이다. 그의 전통조경이 보여주는 대표적인 속성은 차경론(정영선, 2004a; 2004b), 원로론(정영선, 2011a; 2014a), 지사론(정영선, 1998e)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전통조경의 맥락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느냐에 있다고 하겠다. 이를 요약하여 보면 표 4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표 4. 정영선 전통조경론의 요약
구분 주요 내용 설계 방법
차경론
  • - 대상지 내외부의 경관을 연관시킴

  • - 대상지 내부의 구성에 외부 경관이 크게 영향을 미침

  • - 차경의 본래적 의미를 구현

  • - 외부 경관을 대상지 내부로 끌어들이고 외부 경관에 개입하기도 함

  • - 외부 경관과의 관계에 따라 내부 구성을 조정함

원로론
  • - 한국 전통조경에서 보이는 경관의 시퀀스를 해석하고 구현함

  • - 경관 경험을 기승전결과 같은 이야기 흐름으로 파악함

  • - 경관을 한 번에 펼쳐놓지 않고 경관 경험의 과정에 이야기의 흐름을 도입함

  • - 건축과 조형물을 경관적 흐름에 따라 재배치함

지사론
  • - 땅 읽기를 통해 지사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찰함

  • - 한국적 지형적 특성과 지사적 맥락을 중요하게 여김

  • - 식생의 맥락을 대상지에 연계시킴

  • - 땅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프로그램화하여 적극 활용함

Download Excel Table

이처럼 정영선 조경은 한국조경의 정체성 모색이라는 중요한 지점을 탐구하였으며, 단절된 전통조경의 재해석과 재소환을 위해 노력하였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전통조경의 요소 중심 이해를 설계 방법이자 설계 사고의 핵심적 구조와 내용으로 이해하고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지역주의적 전략을 실천하였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업들이 단순히 한국적 속성만을 고집하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것이냐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차경론, 원로론, 지사론은 정영선 전통조경이 가지는 독특함도 보여준다. 특히 한국 현대조경의 성장 과정에서 탄생했던 다양한 설계이론 중에서도 전통조경의 핵심을 방법론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4. 정영선의 조경설계론 고찰

4.1 정영선 조경의 고찰

조경가로서 정영선의 작업은 깊이 있는 조경 실천을 위해 매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조경이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이 꾸준히 실험되고 성장하는 조경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이러한 설계사고가 국제주의 건축의 통일되고 획일화된 조경 양식에 매몰되지 않고 유연하게 대지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조경관의 진정성도 확인할 수 있다.

4.1.1 지역주의적 사고와 접근: 지역주의 조경이론의 가능성

정영선의 전통조경이 보여주는 특징은 지사 또는 지사적 맥락에 관한 것이고, 땅에 대해 가지는 그의 집중은 그의 조경관을 형성하는 핵심 뼈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지사론은 한국 조경에서 보이는 특수한 상황이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획득한 것으로 이해된다. 지역주의와 비판적 지역주의는 대상지의 특성을 독립된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지역주의 조경을 그러한 흐름을 고려한 조경이라고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정영선의 조경은 대상지에 구현되는 새로운 풍경을 작가주의적 입장에서 그 독립된 오브제 구현에 집착하지 않고 대상지와 그 주변이 맺는 맥락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지역주의의 맥락과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대상지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의 진정성은 그만의 독특한 설계 철학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지사론은 대표적인 지역주의적 특성을 보이는 그만의 조경론이다. 여기에서 시작하여 차경론, 원로론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독특한 조경철학이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4.1.2 작가주의적 사고와 실천: 작가주의 조경이론의 가능성

정영선의 조경관이 고유의 영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한국적인 조경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현대 한국 조경의 전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조경설계의 세부 전략과 방법들은 작품 생산의 과정으로서 중요하게 살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그의 자연관은 한마디로 “전체적 자연”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것은 모더니즘 시대의 분석적 사고를 토대로 하면서도 전체를 하나로 종합하는 통합적 입장을 가지기도 한다. 특히 조경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실천 행위라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이 중요하면서도 조정자로서 조경가의 역할이 그래서 그에게는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이다. 그의 통합성은 대상지 자체의 시공간적 범위를 모두 다루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정자로서의 역할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의뢰인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터를 다듬는 핵심 가치를 발견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럼으로써 만들어질 조경공간이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아름다움만 담을 것이 아니라 그 감상과 유지관리까지도 이용자인 의뢰인의 일상과 맞물리게 하려는 것이다.

4.2 정영선 조경의 성과
4.2.1 정영선 조경의 성과와 의의: 지역주의 조경이라는 화두

지역주의 조경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정영선의 조경이 위상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현시대 조경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단서를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도 된다. 그것은 국제주의 조경과 지역주의 조경이라는 이분법적 컴플렉스를 뛰어넘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조경 분야에서의 그의 지역주의 또는 비판적 지역주의의 논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지사적 맥락을 어떻게 발견하고 설계에 활용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 땅의 흐름에 대한 고려는 단순히 물길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느냐를 뛰어넘는다. 특히 도심에서의 경우 다양한 문화적 맥락들이 교차하게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잘 읽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끄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사론은 땅을 읽고 다루는 중요한 전략이자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영선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특한 정원관을 형성하고 실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사를 반영한 그의 설계는 특히 ‘작동하는 경관’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이로써 지역 고유의 작동성에 바탕을 둔 조경이라는 측면을 부각시킨다. 이러한 관점에 따른 접근은 한국이라는 지역적 경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외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음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둘째 지속적인 유지관리를 고려한 설계적 접근이 중요하다. 조경이 식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고려 요소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조경의 경우 조경을 하나의 시설로 인식하면서 지속가능한 조경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계와 시공에 반영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역주의 조경의 특징으로서 지속성에 대한 고려는 결국 어떻게 만들어진 경관이 계속적으로 유지관리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이를 반영한 설계적 노력들이 지역주의 조경의 맥락에서 발견된다. 땅을 제대로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이러한 과정은 의뢰인의 개입 방식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설계로 이어지는데, 단지를 다루는 과정이나 작은 정원을 다루는 과정이나 거의 동일한 설계 사고를 통해 결과를 생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역주의 조경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경관이 주는 감흥을 내외부로 구분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파악하고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정원이든 공원이든 조경의 주요 대상들이 가지는 경관적 의미는 이미 단위 공간이라는 측면을 뛰어넘는다. 도시에서의 공원은 다양한 도시적 맥락이 교차하는 녹색의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도심의 정원이라고 하더라도 비록 공적인 향유는 제한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경관적으로는 주변 경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단순히 오브제의 조화로운 배치 또는 구성의 차원이 아니라 풍성한 감흥을 가진 경관의 연속적 구성은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부분이다. 조경은 그것을 실천하는 학문으로서 재발견되어야 하며, 단순히 공공영역에 기여한다는 측면을 뛰어넘는 경관의 통합적 형성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분야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정영선의 조경은 이러한 의미에서 관계와 접점이라는 현대조경의 중요한 전략들을 실천하고 있으며, 대상지 내외를 관통하는 경관적 연관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넷째 한국의 전통조경은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거의 단절되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문화와 관습은 여전하여 현대 도시에서처럼 최신의 물리적 구성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무언가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비판적 지역주의가 주창하는 주변 맥락과의 연관성 있는 오브제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맥락에서도 지역주의적 조경은 중요하게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영선의 조경은 이런 점에서 전통의 현대적 계승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특히 차경이나 원로의 본래적 의미를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살펴야 한다. 물리적인 구성뿐만 아니라 전통조경의 맥락을 현대에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나아가 이러한 모든 과정은 보편적 조경의 양상을 포용한 지역주의적 조경으로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4.2.2 한국 조경의 새로운 맥락: 조경이론의 새로운 가능성

희원과 선유도공원에서처럼 정영선은 한국 조경의 주요 지점마다 위치하면서 한국 조경의 방향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과정이 새롭게 보여주는 것은 한국 조경의 맥락이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조경의 세계적 권위를 가진 수상과 많은 한국 조경가들의 해외 진출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큰 흐름을 보여주는데 한국 조경설계의 성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한국 조경의 설계사고 측면을 몇 가지로 구분하고 정영선 방식과의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이론이나 해외의 경향을 참조하는 방식이 있다. 한국 조경의 초창기에 주로 이루어졌던 설계의 방식으로 건축과 같이 인접 분야의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해외 유명 조경가의 작품을 모사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모방하며 배우던 시기가 한국 조경 초기에 나타나는데 정영선은 설계사무소를 개소하면서 이미 독자적인 설계 철학을 보여주었다. 특히 초기의 설계도면은 다른 설계자나 시공사에서 베껴 사용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둘째로, 현장의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의뢰자의 요구를 그에 맞추어 배치하는 방식이다. 지형 자료나 항공사진 등 구축된 자료를 바탕으로 요구되는 사항을 적절하게 구성해내는 방식으로써 구체적인 설계사고가 필요하다고 하기 보다는 전략이 중요한 방식이 그것이다. 대상지의 특성을 잘 읽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영선은 이에 있어서도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리적 분석에만 의존하지 않고 그 변화와 흐름을 충분히 검토하고 반영한다는 점에서 물리적 분석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지사론은 그것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셋째로, 창의적 접근을 통해 설계가 개인의 표현에 따라 설계를 진행하는 경우이다. 작가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의뢰사항을 기본으로 작가의 창의적 요소가 충분히 발휘되는 경우이다. 현장의 상황보다는 개인의 표현 역량이 중요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정영선은 작가로서의 위치는 유지하면서 작가성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현장의 상황과 조경가로서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디자인적 독자성보다는 감흥과 유지관리에 더 중점을 두는 모습을 보인다.

4.3 정영선 조경과 한국 조경의 과제

한 사람의 조경가로서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 성과를 통한 한국 조경에의 영향도 여러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다. 정영선 조경이 한국 조경에 미친 영향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것이 지적될 수 있다.

첫째, 설계사고와 설계방법론의 확장으로 자생적 조경론을 확립하였다. 땅에 대한 자각은 땅을 다루는 우리식의 조경이 중요함을 인식하게 하였다. 이로써 한국 조경의 흐름을 하나 둘 개척하여 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현대 조경의 초창기에는 한국 조경의 기초적인 방법들을 모색하였고, 전통정원을 통해서는 전통조경문화의 계승을 이끌어내고 그와 관련한 이슈를 현대에 재등장하게 하였다. 선유도공원과 같은 사례를 통해서는 환경의 재생이라는 설계 테마의 유행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둘째, 이를 통해 수입된 조경이론의 체화와 확산으로 한국 조경의 수준 향상에 기여하였다. 세계적 수준의 조경가가 탄생하게 되는 것은 정영선 조경의 또다른 성과라 할 수 있다. 해외 작업을 통해 한국 조경의 위상을 알린 점도 중요하게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현대 조경의 방법론을 충분히 체화하여 한국적 조경의 양상으로 재편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한국조경의 지역주의적 조경 형성과 성장에 기여하였다. 조경은 건축과는 달리 지역주의적 속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은 오브제로서의 조경이 아니라 땅과 조화되고 어떤 면에서는 땅 그 자체인 대상지의 특성 때문이다. 정영선은 조경에 있어서도 이러한 오브제적 특성보다는 자연스러운 조경과 경관 연출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넷째, 새로운 설계 기법과 시공 재료의 개발 및 보급을 이끌었다. 현대 한국 조경의 성장 과정에서 설계와 시공은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여기에 정영선 조경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현대 조경의 초기에는 조경설계 도면의 초창기 틀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땅을 읽는데 다른 전문 분야와의 협업을 거치는 설계 과정의 실험도 이루어졌다. 조경 소재의 개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보였다. 특히 초화류와 관련하여 정영선이 보이는 전문성은 한국의 조경가가 쉽게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다.

다섯째, 관련 분야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한 조경분야 전문성을 확인하였다. 건축가와의 다양한 협업은 조경의 전문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러 분야의 혼합이 화두인 현대에 이러한 점은 통합적 환경설계라는 중요한 이슈를 던져주기도 하는데 이에 적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실천과 방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경가에 대한 전문성과 윤리의식의 강조는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섯째, 한국 조경에서 작가주의 조경을 실천하고 그 성과를 보여주었다. 한국 조경의 초창기부터 정영선은 조경을 예술의 하나로서 여겼으며, 그러한 관점을 꾸준히 유지하였다. 다양한 정원 작업을 통해서 이를 한껏 펼쳐 보였으며, 한국 조경의 수준을 한층 높이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일곱째, 단절되다시피 한 전통조경의 현대적 계승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희원은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정원 미학의 정수를 잘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그의 전통조경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그가 일종의 숙명이라고까지 여기는 한국 전통조경문화에 대한 실천으로 읽을 수 있다. 그의 실천이 평가받는 것도 그가 보인 성과와 그러한 그의 태도에서이다.

여덟째, 한국 현대조경의 도입과 성장에 있어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초창기 한국 조경의 현장에서부터 현재까지 한국 조경의 성장을 이끌었으며, 한국 조경의 세계적 위상을 확인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전통조경의 맥을 되살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지역주의 조경의 맥락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한국 조경의 큰 흐름 중 하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5. 결론

본 연구에서 다루지는 못하였지만 정영선은 2023년 제프리 젤리코 상을 수상하였다. 2024년에는 그의 정원론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방영되기도 하였고, 그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고 그간의 조경작품이 전시되는 등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이 성취한 한국적 자연주의 정원이 새롭게 주목받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안명준과 박은영, 2024). 이처럼 정영선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조경가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2014년까지의 정영선 조경설계론을 살펴본 본 연구는 그의 조경관이 결국 한국 조경의 성장과 무관치 않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앞서 살펴본 대로 한국 조경의 흐름과 변화를 정영선을 대입하여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수입된 조경과 조경학이 한국적 상황에 맞게 진화하여 왔다는 점은 분명하게 읽을 수 있어 보인다. 또한 이러한 접근은 결국 현대 조경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것은 땅의 특성을 고려한다는 방법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한 분야의 전문성을 재설정한다는 면에서도 의미 있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경관과 정원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진화가 모색되는 시점에서 정영선 조경이 보여준 실천은 변화되고 새롭게 요청되는 조경론의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례이자 근거가 된다. 추후 특정 조경가라는 렌즈를 통해 살펴보는 이와 같은 접근의 연구와 비평이 다방면으로 진행되어 한국 조경의 흐름과 진단이 보다 촘촘해지길 기대한다.

본 연구는 한 조경가의 설계사고를 탐구하여 조경설계론을 고찰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그러나 작가와 작품을 살펴본다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에 연구에도 다소의 한계가 있다. 우선 2014년까지의 제한된 자료와 정리된 작가의 사고 관련 문헌의 부족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생존하는 작가로서 현재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변화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그렇더라도 한국 조경을 통시적으로 경험한 한 조경가에 대한 탐구는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이를 통해 한국 조경의 변화와 현재 상황을 충분히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한국 조경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으며 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Notes

본 논문은 2014년까지의 관련 자료를 종합하여 당시까지의 정영선 조경론을 고찰한 것이다. 이후 그의 조경관을 살피는 작업은 이 연구를 기반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주요 자료로는 인터뷰 자료(인터뷰이A, 2014; 인터뷰이B, 2014; 인터뷰이C, 2014a; 2014b)와 정영선이 직접 집필한 원고(정영선, 1982; 1987; 1993; 1998a; 1998b; 1998c; 1998d; 1998e; 1999; 2001; 2002; 2003; 2004a; 2004b; 2007; 2010a), 그리고 정영선 특강과 인터뷰 녹취(정영선, 2010b; 2010c; 2011a; 2011b; 2011c; 2011d, 2014a; 2014b; 2014c) 등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것은 2010년과 2011년에 걸친 6차례의 서울대 특강 시리즈 녹취를 요약하고 정리한 것이다.(정영선, 2010b; 2010c; 2011a; 2011b; 2011c; 2011d)

References

1.

권정삼(2012) 이안 맥하그의 조경관.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

남기준(2008) 조경가 리뷰에 앞서 - 조경가 6인의 작품집과 저술에 대한 메모를 중심으로.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 도서출판 조경.

3.

박승진(2013) 조경설계(design service)를 둘러싼 현실. 조경헌장 세미나 한국조경의 리얼리티 자료집. 한국조경학회.

4.

방경란, 최기수(1998) 영국 풍경식 정원가 ‘Capability Brown’의 스타일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6(3): 267-277.

5.

배정한(2003) 박정희의 조경관. 한국조경학회지 31(4): 13-24.

6.

백정희(2012) 한국 현대조경 정착기와 이후 발전에 관한 연구: 조경가 오휘영의 활동을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7.

서영애, 최정민, 조경진(2007) 이교원 조경의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35(2): 13-24.

8.

승효상, 홍동원(2012) 모용공간. 글씨미디어.

9.

안명준, 박은영(2024) 근현대 자연주의 정원(Naturalistic Garden)의 전개와 한국적 자연주의 정원 고찰. 2024 한국조경학회 춘계학술대회 논문집.

10.

양호정(2000)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의 조경미학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1.

우대준(2012) 작품으로서의 조경: 싹 트는 작가정신, 장인으로서의 조경가. 한국조경학회 40주년 기념집. 한국조경학회.

12.

이교원(1999) 작가가 되는 길, 그 멀고도 험한 여정(2). 월간 환경과 조경 1999년 8월호.

13.

이종건(2013) 건축 없는 국가. SPACETIME.

14.

인터뷰이A(2014) 2014년 6월 3일 인터뷰.

15.

인터뷰이B(2014) 2014년 6월 4일 인터뷰.

16.

인터뷰이C(2014a) 2014년 4월 28일 1차 인터뷰.

17.

인터뷰이C(2014b) 2014년 6월 11일 2차 인터뷰.

18.

정영선(1979) 서양조경사. 명보문화사.

19.

정영선(1982) 인간/자연, 교섭과 융화의 장소, 정자. 월간 조경 1982년 창간호.

20.

정영선(1987) 빌딩조경의 현황과 문제점. 월간 환경과 조경 1987년 5-6월호.

21.

정영선(1993) 호텔신라 전정조경과 환경조각물. 환경과 조경 1993년 8월호.

22.

정영선(1998a) 조경과의 조우, 그리고 나를 있게 한 소중한 것들. 월간 환경과 조경 1998년 1월호.

23.

정영선(1998b) 가야 할 길과 가보지 못한 길(나의길 나의작품 연재 중). 월간 환경과조경 1998년 7월호.

24.

정영선(1998c) 넘지 못한 그러나 넘어야 할 장벽들(나의길 나의작품 연재 중). 월간 환경과조경 1998년 9월호.

25.

정영선(1998d)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나의길 나의작품 연재 중). 월간 환경과조경 1998년 10월호.

26.

정영선(1998e) 길 속의 길 속의(나의길 나의작품 연재 중). 월간 환경과조경 1998년 11월호.

27.

정영선(1999) 조각공원의 새로운 가능성에 거는 기대. 월간 환경과조경 1999년 9월호.

28.

정영선(2001) ‘들풀’에서 찾는 행복. 월간 환경과조경 2001년 7월호.

29.

정영선(2002) 되돌아 본 한국 조경의 30년. 한국의 조경 1972-2002: 한국조경학회 창립 30주년 기념집. 한국조경학회.

30.

정영선(2003) 알로에마임 비전빌리지 - 만드는 이와 쓰는 이의 기쁨이 함께 머무는 곳. 월간 환경과조경 2003년 6월호.

31.

정영선(2004a) 건축과 자연의 경계에서 관계 맺기. 월간 플러스 2004년 2월호.

32.

정영선(2004b) 우리 정원에 스며있는 미학. 밝고 환한 정원 희원. 삼성문화재단.

33.

정영선(2007) 동백리 정원. 주택정원. 월간 환경과조경 편집부 엮음(개정판). 도서출판 조경.

34.

정영선(2010a) 가슴 뛰게 하는 정원들을 꿈꾸며 - 선유도공원을 중심으로. 도시 정원을 꿈꾸다 국제심포지엄 자료집. 국립중앙박물관.

35.

정영선(2010b) 2010년 10월 1일 서울대 특강(1강) 녹취.

36.

정영선(2010c) 2010년 11월 25일 서울대 특강(2강) 녹취.

37.

정영선(2011a) 2011년 3월 25일 서울대 특강(3강) 녹취.

38.

정영선(2011b) 2011년 4월 22일 서울대 특강(4강) 녹취.

39.

정영선(2011c) 2011년 10월 7일 서울대 특강(5강) 녹취.

40.

정영선(2011d) 2011년 11월 25일 서울대 특강(6강) 녹취.

41.

정영선(2014a) 조경이란 무엇인가?. 2014 시민조경아카데미 강의 자료 2014년 5월 13일.

42.

정영선(2014b) 2014년 5월 8일 서울대 건축과 특강.

43.

정영선(2014c) 2014년 6월 5일 인터뷰.

44.

조경설계서안(2014) 회사소개 브로셔.(http://www.satla.co.kr)

45.

조경진(2003)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의 도시공원관에 대한 재해석. 한국조경학회지 30(6): 26-37.

46.

최정민(1993) 옴스테드 양식이 한국현대조경 작품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서울시립대학교 석사학위논문.

47.

한국조경학회 편(1992) 현대 한국조경 작품집 1963-1992. 도서출판 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