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국립민속박물관에 〈도형(圖形)〉이라는 명칭과 민속062088이라는 번호가 부여된 조선시대 도면 자료가 소장돼 있다(그림 1a 참조). 집의 평면 배치를 먹선으로 그려낸 간가도(間架圖) 형식의 자료다. 자료에는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전형적 배치를 따르는 88칸 규모의 주택과 함께 식물 40여 종이 식재된 4단의 디귿자 화계를 갖춘 독특한 정원이 그려져 있다. 박물관 웹사이트의 소장품 정보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집의 평면배치를 그린 간가도(間架圖). 사우(祠宇) 6칸, 내사(內舍) 32칸 반, 외사(外舍) 12칸 반, 강정(江亭) 15칸, 산정(山亭) 6칸, 연정(蓮亭) 1칸, 죽정(竹亭) 1칸, 모정(茅亭) 1칸, 행랑(行廊) 13칸, 정원 등이 표시됨. 각 건물의 공간 구성과 명칭 등이 묵서됨. 우측 상단에 집의 전체적인 규모를 알 수 있는 기록 있음. 글씨를 수정한 흔적 있음. 민속62086, 민속62087과 관련 있음(https://www.nfm.go.kr/).
소장품 정보에는 간가도라는 형식과 대략의 구성 요소, 다른 두 유물과 연관되었다는 점(그림 1b, c 참조)이 제시되었다. 또한 2011년 정명섭 학예연구관이 소장처 기관지의 소장유물 소개란에 자료 이미지를 제시하고 건축 구성과 화계의 식물을 언급하였다(정명섭, 2011). 그밖에 〈도형〉 자료에 관한 언급은 찾기 어렵다. 말하자면 이 자료는 조경역사학의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롭고 중요한 공간을 담고 있어 소장처에서 주목한 바 있으나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제작 배경이 밝혀져 있지 않으며1) 조경학 연구 대상으로서 아직 다루어지지 않았다.
본 논문은 〈도형〉 자료에 기록된 내용의 기초적 검토를 수행하고 대규모 화계로 이루어진 주택 정원의 현상과 특징을 분석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고증 연구과 설계 실천을 접목한 창의적 재현을 시도한다. 논문의 내용은 2024 제1회 대한민국 전통조경대전의 디지털 설계 부문 수상작 〈옥상별서, 화계산수(屋上別墅, 花階山水)〉의 성과를 정리한 것이다. 해당 공모전은 “유구한 한국 전통조경의 역사적,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여 재조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되었으며 “디지털로 만나는 선비의 이상향, 별서정원”을 주제로 제시했다(https://www.laheritage.kr/)2). 본 논문은 자료에 담긴 전통 조경의 원리 해석과 전통-현대의 접목을 주시한 전통조경대전의 기획을 따라 대상 자료의 검토와 기입된 정보의 준수를 전제하는 한편, 과거상의 구현에 방점을 두는 ‘복원적 재현’을 시도하기보다 현대 조경에서의 응용 가능성을 고려하였음을 명시하고자 ‘창의적 재현’으로 작업의 성격을 규정하였다. 관련 내용은 4장 1절의 ‘재현의 목표와 방향’ 항목에 서술하였다.
설계 작품의 내용과 작업 과정을 전제로 한 논문은 많은 경우 실재 대상지를 전제한 뒤 주변 맥락과 사회 현안 분석에 근거해 논리를 전개한다. 본 논문에서는 대상지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제작 배경이 전하지 않는 〈도형〉 자료의 특성에 따라 대상지 분석 대신 자료의 분석에서 출발해 논리를 전개한다. 논문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2장에서는 〈도형〉 자료의 전모를 검토한다. 간가도라는 형식을 통해 대략의 제작 시기를 설정하고 수록된 정보의 성격을 살피며, 두 가지 〈도형〉을 비교함으로써 제작 의도를 추정하고 내용 전반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자료에 기록된 공간을 분석한다. 입지와 규모, 건축물, 화계로 나누어 구성 요소별로 분석하며 이를 통해 자료에 기록된 주택 정원의 특징을 제시한다. 4장에서는 앞에서의 성과에 기반해 창의적 재현을 시도한다. 재현의 목표를 세우고 전제 조건을 설정한 뒤 공간 영역에 따른 재현의 결과를 제시한다. 끝으로 5장에서는 재현의 성과와 시사점을 정리한다. 고증 연구과 설계 실천을 접목한다는, 달리 말하면 설계를 통해 연구하고 연구를 통해 설계한다는 본 작업의 취지가 이루어진 바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2.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형〉 자료의 이해
간가도(間架圖)는 건물의 정면(架)과 측면(間) 칸 구성을 그려낸 것으로 한국 전통건축에서 평면도에 해당한다(김왕직, 2007: 87-88). 바탕면을 일정한 간격으로 구획해 붉거나 검은 선으로 가로세로 직교하는 선을 그어 방안(方眼)을 짠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대상을 그리는데, 이는 지도 제작의 오랜 전통에서 나온 도법으로 여겨진다(이강근, 2006: 114). 간가도 형식의 도면 중 시기가 올라가는 것은 18세기 초에 제작되었으며 다수는 18세기 말-20세기 초에 제작되었다(이혜원, 2014: 22). 정정남(2013)에 따르면 간가도의 제작 배경은 건물이 들어설 터를 정하는 과정에서 후보지가 되는 곳의 정보를 얻기 위해 사전에 제작된 것과 현황을 기록해 보존하기 위해 제작된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3). 간략히 말하면 간가도의 용도는 사전 계획과 사후 기록 두 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방안의 간격은 궁궐처럼 넓은 영역을 그린 경우 1.1cm 정도로 작고, 소규모 가옥을 그린 경우 3.9cm 정도로 크다(이혜원, 2014: 22). 먹선은 칸 구성을 그려내는 것 외에 담장이나 석축단을 그리는 데도 쓰였으며 때로는 굵은 선이나 겹선, 장대석을 표현한 패턴이 활용되기도 했다. 먹선 외에는 곳곳에 글자가 쓰였는데 주로 건축물과 관련이 있다. 건물 명칭이나 칸의 성격, 예컨대 廳(청), 房(방), 退(퇴), 고(庫), 廚(주), 門(문)과 같은 글자가 해당 칸 안에 적혔다. 각각의 글자는 해당 건물의 정면 방향에 맞도록 쓰였는데, 이는 입면이 펼쳐진 형식의 배치도와 같은 개념을 보여준다(이혜원, 2014: 22).
간가도는 궁궐이나 왕실 가족의 집인 궁가(宮家)를 그린 경우가 많고 양반 가옥을 그린 경우도 있다. 가령 그림 2a에 제시한 〈이문내구윤옥가도형(里門內具允鈺家圖形)〉은 왕실과 친족 관계에 있었던 능성 구씨 구윤옥(具允鈺, 1720-1792)의 가옥을 그린 것으로 대략 18세기 후반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으며(정정남, 2008), 그림 2b에 제시한 〈동궐도형(東闕圖形)〉은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한 동궐 전체 영역을 그린 것으로 1907년경 제작됐다.

본 논문에서 특별히 두 간가도를 예시로 든 까닭은 화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림 2a의 화면 위쪽과 오른쪽을 보면 굵은 선으로 표현된 담장에 접해 2단의 화계가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화계는 ‘花階’라고 두 자로 쓰이기도 했고 간단히 ‘階’라고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표현이 얼만큼 실상을 반영했는지는 알기 어려우나 ‘松’이라고 쓴 부분도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소나무처럼 눈에 띄는 교목의 경우에는 따로 표기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그림 2b로 제시한 〈동궐도형〉을 보면 경훈각 뒤로 3단의 화계가 확인된다. 〈동궐도형〉의 화계에는 제시한 부분을 비롯해 어디에도 식재가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그림 2c에 제시한 〈동궐도〉를 보면 해당 부분에 약간의 식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자료 사이에 시차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전반적 표현 양상을 볼 때 간가도인 〈동궐도형〉에서 식재는 기록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난다.
위에서 제시한 두 사례 외에도 지금까지 보고된 간가도류 자료에서 식재는 기록의 대상으로서 건축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간과된 경향이 있다. 〈동궐도형〉에서 엿보이듯 존재했음에도 기록되지 않았거나, 〈이문내구윤옥가도형〉과 같이 ‘화계’라는 말로 뭉뚱그려진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논문이 다루는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형〉 자료는 지금까지 보고된 간가도류 자료 중에서 화계의 형식 뿐만 아니라 기록의 수준에 있어서도 특별히 주목할 만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형〉의 유물 크기는 가로 51cm 세로 36cm이며 바탕에 흑색의 방안이 그려진 흔적이 옅게 확인된다. 방안 한 칸의 길이는 대략 1.1cm 정도로 간가도 중에서는 방안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먹선의 굵기는 모두 동일하며, 글자를 고쳐 써서 겹쳐 보이거나 종이를 덧바른 부분이 확인된다.
〈도형〉에는 표제가 쓰여 있지 않고 방위 표시도 없다. 또한 여느 간가도처럼 공간의 좌향에 글자의 방향을 맞춰 쓰는 방식이 적용돼 있다. 따라서 자료의 정방향을 특정하기 어렵다. 본 논문에서는 재현을 위해 공간의 방위를 임의로 설정하는 4장 이전까지, 소장처에서 제공하는 그림 1a의 이미지 방향을 그대로 따라 서술을 전개한다.
〈도형〉의 틀은 두 개의 직사각형에 의해 잡혀 있다. 최외곽의 직사각형은 특정한 공간 요소를 지시하지 않는 것으로서 지면을 한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 내부에는 화면 좌측 상단으로 치우친 위치에 하나의 직사각형이 더 자리해 있다. 이 직사각형은 주택의 대지 경계, 달리 말하면 외곽 담장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전제한다면 작은 직사각형과 큰 직사각형의 사이는 대지 바깥의 주변 상황에 해당한다. 작은 직사각형의 왼쪽에는 ‘대강(大江)’과 ‘유수(柳藪)’, 즉 큰 강과 버드나무 숲이 있다. ‘유수(柳藪)’에서 ‘임(林)’자가 아닌 ‘수(藪)’자가 쓰인 것이 주목된다. 조선의 임수에 따르면 ‘임(林)’은 물을 동반하지 않는 경사지를 가리키며 ‘수(藪)’는 물이 없는 못, 즉 초목이 울창하되 지세가 낮고 평탄해 천택(川澤) 부근의 수림에 해당한다(생명의숲국민운동, 2006: 134-135). 즉 유수는 대강 인근의 버드나무 저지대 숲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은 직사각형의 위쪽과 아래쪽은 비워져 있되, 화계와 행랑의 외곽선이 위쪽에서는 직사각형과 일치하고 아래쪽에서는 넘어서 있다는 점이 다르다. 작은 직사각형의 오른쪽은 상단과 하단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상단에는 건축물의 총괄 내역이 아홉 줄로 쓰여 있다. 하단에는 갖가지 식재와 정자, 연못 등 경관 요소가 산재해 있다. 자세한 내용은 3장에서 제시하기로 한다.
〈도형〉에 기록된 내용 자체는 이 간가도가 무엇을 왜 그린 것인지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소장처의 유물정보에 제시된 두 건의 관련 유물, 그중에서도 본 논문에서 다루는 〈도형〉과 동일한 명칭으로 등록된 민속062087 유물은 자료의 제작 의도를 추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4).
민속062088과 민속062087은 한눈에 보기에도 같은 공간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뜰집이라 부르기도 하는 미음자 형태의 건축물이 중심을 차지하고 왼쪽에 독립된 정자와 디귿자 화계가, 반대쪽에 별도의 담장을 갖춘 장방형 건축물이 자리한 배치가 대략 유사하다. 게다가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한 구성의 화계가 공통적으로 그려져 있으므로 두 자료가 서로 다른 공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 배치의 구성과 표현의 수준을 자세히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림 3은 두 가지 〈도형〉 자료를 중첩해서 그 차이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평하자면, 본 논문에서 주로 다루는 민속062088(황색)은 민속062087(청색)에 비해 건축물 사이의 유기적 관계가 더욱 강화되어 있다. ‘사랑(舍廊)’이라는 글자가 돋보이는 미음자 뜰집의 왼쪽 아래 부분을 중심으로 화계를 감상하는 정자 별채와 대문이 있는 외행랑이 훨씬 가깝게 배치되어 있다. 시점을 화계 인근의 정자로 옮겨보면 차이가 더욱 분명해진다. 민속062087(청색)은 정자의 위치가 화계와 더 가까울 뿐 아니라 뜰집과의 사이 마당을 취병이 가로지르고 있다. 또한 정자 주변으로 여러 식물과 화분, 돌 따위가 흩어져 있다. 반면 민속062088(황색)은 정자가 화계보다 뜰집과 더 가까이 배치되었으며 사이를 가로지르는 취병이 없다. 식재가 정자 사방에 흩어져 있지 않고 화계 쪽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다르다.

표현의 수준 측면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화면 아래쪽의 외행랑 부분을 비교해 보면 확실히 민속062087(청색)의 선이 고르지 못하며, 화계의 식재를 비교해 보면 민속062088(황색)에 기입된 내용들이 보다 상세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4단 중앙의 경우 민속062088(황색)에는 “紅桃(홍도), 碧桃(벽도), 蓮桃(연도), 三色桃(삼색도), 花桃(화도), 紅三色桃(홍삼색도)”라 적혀 있지만 민속062087(청색)에는 “各色雜桃(각색잡도)”라 쓰였을 뿐이다. 화면 오른쪽에 쓰인 총괄 내역과 그 아래쪽의 경계 밖 정자들도 민속062088(황색)에서만 보인다.
이상으로 살핀 공간의 내용과 표현의 수준 차이는 민속062087(청색)과 민속062088(황색)를 연습본과 최종본의 관계로 추정하게 한다. 거시적 관점에서의 공간 구성은 처음의 기획을 견지하되, 연습본으로부터 구체적 배치를 보완하여 더 나은 필치로 도면을 완성했던 것이다.
두 〈도형〉이 하나의 기획 아래 제작된 연습본과 최종본이라면, 그런데 필치만이 아니라 둘 사이에 공간 구성상 차이가 있다면 기록의 대상 공간은 간가도 제작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실존하는 공간을 기록하려는 의도로 두 간가도가 제작되었다면 위와 같은 공간 구성상의 차이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개축의 관점으로 두 〈도형〉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두 〈도형〉상 배치 차이가 너무 크다. 간가도가 방안을 통해 축척의 관념을 내포한 형식임을 감안할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라 할 수 있다. 민속062087의 공간을 민속062088의 공간으로 공사를 했든 그 반대이든 간에 이 정도 차이를 반영하는 공사라면 구성 요소를 조정하거나 추가하는 정도를 넘어서 기초 공사를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위에서 전개한 논의에 따라, 본 논문은 〈도형〉을 제작할 당시 부재했던 가상 공간을 그린 간가도로 추정한다. 민속062087(청색)을 먼저 그린 후 내용과 형식을 보완해 민속062088(황색)을 그린 것으로 본다. 구체적 제작 의도는 추가 고증을 요하는 문제다. 다만 양반 살림집으로서 완정한 건축 구성을 갖춘 동시에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조경 구성을 갖추었으므로 제작자가 스스로의 이상적 주거 공간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3. 〈도형〉 자료에 기록된 주택 정원의 분석
〈도형〉에 기록된 공간의 입지의 성격은 지형과 좌향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먼저 지형을 살펴보겠다. 〈도형〉 자료에서 지형을 추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요소는 ‘대강(大江)’과 ‘유수(柳藪)’다. 화면 왼쪽, 대지 경계 바깥에 기입된 두 요소는 거시적으로 화면 왼쪽 공간이 오른쪽 공간보다 낮은 지대일 가능성을 제기하게 한다. 강과 함께 버드나무 숲이 있고, 그로부터 가까이 그려진 정자가 ‘강정(江亭)’으로 지시되며, 건물 일부에 버드나무 소리를 듣는다는 뜻의 ‘문류정(聞柳亭)’이라는 이름이 부여된 것으로 볼 때, 주택의 대지는 강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으로 설정되었다고 추정된다. 관건은 4단 규모의 화계가 자리한 지형의 성격이다. 강정과 화계 너머가 거시적으로 저지대에 해당할지라도 화계 자리에 얕은 언덕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반대로 완전한 평지나 하강하는 지형 위에 4단에 이르는 화계를 순수한 인공지형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이 부분의 지형에 대한 섣부른 추정을 지양하되, 화계가 능선에 기대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어느 정도의 지형 조작이 가미되었으리라 판단한다. 그 외에 대지 경계 내부의 지형은 별다른 근거가 없으므로 평지에 가까운 지형으로 상정한다.
다음은 좌향을 살펴보겠다. 건축물 배치만 보면 화면 오른쪽을 북쪽으로 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다면 전반적 지형을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안채 대청과 사당이 남향으로 놓이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화계다. 뒤에서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화계의 식재 구성을 보면 단이 상승할수록 식물 규격이 커지고 하단에 양지를 좋아하는 소철과 종려 같은 남부 수종이 있다. 만약 이런 식재 구조에서 화계가 북쪽으로 열려 있다면 하단에는 그림자가 심하게 드리울 것이다. 요컨대 건축물 위주로 보면 화면 오른쪽이 북쪽, 화계 위주로 보면 왼쪽이 북쪽인 것이 합리적이다. 본 논문에서는 후자를 잠정적 결론으로 내린다. 화면 왼쪽이 북쪽이더라도 안채 대청 등에서 빛을 들이는 데 문제가 없고, 사당이 남쪽에 북향으로 놓이더라도 의례 공간의 배치가 절대 방위보다 상대 방위와 공간 체계로써 결정된다는 점에서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홍승재, 1992). 또한 〈도형〉의 강정 중 화면상 위쪽에 향일헌(向日軒)과 선월정(先月亭)이 있다. 이는 화면 위쪽이 해와 달이 뜨는 동쪽일 가능성, 즉 화면 왼쪽이 북쪽일 가능성에 힘을 실어준다. 무엇보다도 간가도의 제작자가 화계의 구성과 표현에 특별한 공을 들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화계를 남향으로 두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입지에 이어 대지 규모를 검토할 차례다. 대지 경계라 할 수 있는 작은 직사각형의 크기를 간가도 방안 기준으로 보면 긴 변 30.5칸, 짧은 변 18.5칸이다. 간가도에서 한 칸은 영조척 8척(尺)에 해당하며 이는 약 2.4m이다(이강민, 2018: 107). 이 수치를 대입해보면 〈도형〉의 대지 경계는 긴 변 약 73.2m, 짧은 변 약 44.4m이다. 면적을 계산하면 약 3,250㎡로 983평 가량이 된다. 건축물 88칸에 대지 면적 983평은 양반 가옥 중에서 최상급이다. 남아 있는 전통마을의 종택 대부분을 상회하고 창덕궁 연경당이나 낙선재보다는 작은 수준이다.
〈도형〉의 우측 상단에 적힌 건축물 총괄 내역을 순서대로 옮기면 사우(祠宇) 6칸, 내사(內舍) 32.5칸, 외사(外舍) 14.5칸, 강정(江亭) 14칸, 산정(山亭) 6칸, 연정(蓮亭) 1칸, 죽정(竹亭) 1칸, 초정(草亭) 1칸, 행랑(行廊) 13칸, 전체 합계 88칸이다(표 1 참조). 사우는 사당, 내사는 안채, 외사는 사랑채로 더 많이 알려져 있어 지금부터는 독해의 편의를 위해 바꾸어 쓰겠다. 이 내역은 화면 위쪽의 부출입구 외행랑, 담장의 협문(門), 곳곳의 측간(厠), 장독대(醬間)와 디딜방아(碓間)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며 표기된 칸 수를 모두 더하면 88칸이 아닌 89칸이 되는 등 일부 오류가 있다5). 내역에서 주목할 부분은 나열의 순서다. 사당-안채-사랑채-정자-행랑의 순서는 당시 제작자가 인식했던 공간의 위계를 드러낸다. 또한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물리적 배치와도 일치한다.
* ‘건축물’과 ‘칸 수’는 〈도형〉의 총괄 내역을 그대로 따랐으며, ‘구성’에서 괄호 안 내용은 〈도형〉에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연구자가 기입함
〈도형〉에 기록된 주택 정원의 방문객은 외행랑의 대문을 통해 주택으로 들어선다. 중문을 마저 통과해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강정,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보인다. 강정은 사면에 퇴를 두르고 가운데 방, 좌우에 마루와 누마루를 두고 있다. 강정에 오르면 디귿자로 꺾인 배치의 4단 화계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뒤로 돌아 사랑채로 향한다. 강정과 사랑채는 두 칸, 즉 4.8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가깝다. 강정과 사랑채가 마주한 부분은 양쪽 모두 퇴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리에 당호와 각종 문구를 적은 현판이 다수 걸려 있다. 사랑채로 시선을 모아보자. 사랑채의 중심은 뜰집 모서리에 놓인 3칸 크기의 마루다. 흥미로운 점은 마루를 중심으로 두 개의 사랑(舍廊)이 유사한 구성을 갖춘 채 서로 직교하는 방향으로 놓여 있다는 점이다. 두 개의 사랑방은 하나의 마루를 공유하며 각각 퇴와 동방(洞房), 누(樓)를 갖추고 있다.
이상으로 외행랑에서 강정과 사랑채까지 살폈다. 다음은 안채와 사당을 살필 차례다. 안채의 평면은 사랑채와 결합하여 하나의 뜰집을 이루되 담장을 통해 그 영역이 구분돼 있다. 안채의 중심은 6칸 대청이다. 대청 옆으로는 안방(內房), 건넌방(越房), 헌방(軒房) 등 여러 방과 누가 배치돼 있고, 방과 누 옆으로는 창고가 마련돼 있다. 대청의 한쪽은 중정을 향해 열려 있고, 반대쪽은 사당을 향해 열려 있다. 안채가 생활 공간의 중심이자 의례 공간의 중심임을 잘 드러내는 배치다.
끝으로 ‘입지와 규모’ 항목에서 대지 경계로 본 작은 직사각형 바깥의 정자 네 채를 살필 차례다. 화면 오른쪽 아래 부분을 보면 위에서부터 죽정(竹亭), 연정(蓮亭), 초정(草亭), 산정(山亭)이 있다. 죽정은 팔각형 평면으로 그려져 있고 바깥에 ‘죽정(竹亭)’이라 표기돼 있으며 주변은 ‘죽림(竹林)’이 둘러싸고 있다. 평면 내부에는 ‘의육관(宜六館)’이라 쓰여 있는데, 곁에 의우(宜雨), 의설(宜雪), 의시(宜詩), 의금(宜琴), 의기(宜棋), 의호(宜壺)라 적힌 것으로 볼 때 ‘비, 눈, 시, 거문고, 바둑, 투호 여섯 가지를 즐기기에 좋은 집’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연정은 타원형에 가깝게 그려져 있으며 바깥에 ‘모정(茅亭)’이라 표기돼 있다. 주변은 연지(蓮池)로 둘러싸여 있는데 한쪽에 물고기를 기르는 못이라는 뜻의 ‘양어지(養魚池)’라 적혀 있어 주목된다. 평면 내부에는 연꽃 같은 배의 뜻을 지닌 ‘우방창(藕舫窓)’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다. 산정은 6칸 규모로 경계 바깥의 정자 중 가장 크다. 가운데 방이 있고 삼면에 퇴가 둘러져 있으며 나머지 면에는 누헌(樓軒)이 자리해 있다. 각각의 면에 별도의 당호가 부여돼 있으며 주변에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 등 교관목이 둘러져 있다. 초정은 한 칸 규모의 직사각형으로 그려져 있고 바깥에 ‘초정(草亭)’이라 표기돼 있으며 내부에 ‘읍청각(挹淸閣)’이라 쓰여 있다.
화계의 평면은 디귿자로 강정 앞마당을 감싸 안는 모습으로 이루어졌다. 단은 총 네 개이며, 상대적으로 두꺼운 너비의 단이 1-3단의 양쪽 끝을 닫아내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 부분을 ‘좌우 축대’라 부르기로 한다. 좌우 축대와 4단의 마구리는 위아래 두 외행랑과 가깝고 담장으로 이어져 있으며 사이에 작은 측간이 삽입돼 있다.
화계의 단 구성에서 관건은 높이다. 그중에서도 요점은 상하 관계다. 마당으로부터 강으로 다가갈수록 화계의 높이를 내려가게 할 것인가 올라가게 할 것인가? 전자의 경우 강쪽으로 낮아지는 지형 전반과 어울리고 ‘강정’으로서 어울리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정원 이졸라 벨라(Isola Bella)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후자의 경우 강정에서 강을 바라보는 시야는 가려지는 대신 화계의 전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창덕궁 대조전 일대나 창경궁 통명전 뒤 화계가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전자보다는 후자, 즉 강으로의 전망보다는 화계 중심의 단 구성이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 까닭은 건축물이 화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 경우와의 차이를 두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화계 상단이 건축물의 기단을 겸하는 구조이거나, 하단부에서 화계와 건축물을 함께 바라보는 시각적 전면성이 강하거나, 건축물 내부로부터 조망이 유지되어야 하는 경관에 해당한다(문화재청, 2022: 228). 그런데 〈도형〉의 화계는 강정의 기단으로 보기에 거리가 너무 멀고, 화계 외곽이 대지 경계이므로 시각적 전면성이 없으며, 조망의 목적을 전제하기에는 교목을 비롯한 식재가 과도하고 디귿자 형태의 디자인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강으로 다가갈수록 높아지는 단 구성이라면 식물의 배치와 마당을 위요하는 디귿자 형태가 모두 자연스럽다(그림 4 참조).




















이상의 상하 관계를 바탕으로 식재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6). 식재는 높이와 위치, 즉 지면에서 1-4단에 이르는 상하 단차와 중앙/측면의 좌우 배치를 고려해 이루어졌다. 위로 올라갈수록 식물의 규격이 커지며, 좌우 대칭의 균형을 맞추는 동시에 다양성을 주었다(표 2 참조). 지면에는 두 켜로 식재가 배치되었다. 화계와 살짝 거리를 두고 앞으로 진출한 곳에는 대나무․석류․포도․매화 화분이 늘어서고 한쪽에 귀한 수종인 소철과 종려가 놓였다. 화계와 인접한 곳에는 정면에 국화, 월계화, 사계화와 같이 작은 초화류가 놓이고 좌우에는 대나무를 배경으로 좌측에 난초, 우측에 파초가 배치됐다. 1단은 중앙에 모란, 측면에 작약이 배치되었으며 색과 홑꽃 겹꽃 여부를 통해 다양성을 주었다. 2단은 중앙에 왜철쭉, 영산홍, 산매화, 측면에 해당화와 장미가 놓였는데 모서리에 괴석이 배치된 점이 흥미롭다. 3단은 중앙에 진달래와 영산백이 놓이고 측면에 철쭉과 진달래가 놓여 2단과 연속성이 있는데, 모서리에 수피가 푸른 교목인 벽오동이 배치되었다. 2단과 3단 모서리의 괴석과 벽오동은 수직성이 강조되는 시각 요소로서 자칫 번잡해질 수 있는 화계의 시각적 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최상단인 4단에는 중앙에 각종 복숭아나무, 측면에 각종 매화나무가 배치되었다. 교목이 최상단에 놓임으로써 작은 크기의 초화류와 관목을 가리지 않는 동시에 최후방에 놓임으로써 그림자를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좌우축대에는 철쭉과 영산홍 등 2-3단에서 확인되는 식물와 유사한 크기의 관목이 확인되며, 4단 외곽선의 바깥에는 취병이 둘러져 있다. 취병은 목련꽃(幸夷花), 소나무(老松), 사철나무(杜冲) 세 가지가 확인되며 작은 글씨로 살구꽃(杏花)이 기입된 부분이 있어 취병에 초화류가 부가된 것으로 보인다7).
영역 구분 |
색상 범례 (그림 4) |
구성 요소의 원문(풀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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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 위치 | ||
지면 | 이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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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鐵(소철), 棕櫚(종려), 竹盆(대나무화분), 榴盆(석류화분), 葡盆(포도화분), 梅盆(매화화분) |
인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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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대나무), 甘菊(감국), 盆菊(국화화분), 月桂(월계), 四桂(사계), 蕉(파초), 蘭(난초) | |
1단 | 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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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單葉紅白牧丹各花(붉고 흰 홑겹꽃각종 모란) |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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芍藥白紅單葉(희고 붉은 홑꽃 작약), 芍藥紅白千葉(희고 붉은 겹꽃 작약) | |
2단 | 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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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紅(왜철쭉), 映山◎(영산홍 추정), 山梅花(산매화), 怪石(괴석), 왜석(倭石) |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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睡雜海棠(해당화), 紅黃薔薇(홍황장미) | |
3단 | 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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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杜鵑花(붉은 진달래), 映山白(영산백), 碧梧(벽오동) |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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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白蹲躅花(붉고 흰 철쭉), 白紅杜鵑花(희고 붉은 진달래) | |
4단 | 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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紅桃(홍도), 碧桃(벽도), 蓮桃(연도), 三色桃(삼색도), 花桃(화도), 紅三色桃(홍삼색도) |
측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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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梅(옥매), 紅梅花(홍매화), 春梅花(춘매화), 紅梅花(홍매화), 黃梅(황매) | |
좌우 축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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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紅(왜철쭉), 映山(영산홍), 百日紅(백일홍), 山丹(개나리) | |
외곽 취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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幸夷花翠屛(목련꽃취병), 杏花(살구꽃), 老松翠屛(소나무취병), 杜冲翠屛(사철나무취병) |
입지, 건축물, 화계로 나눠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도형〉에 기록된 주택 정원의 특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도형〉의 화계는 건물 앞에 대규모로 조성한 것으로서 건물 뒤에 자연지형을 활용해 조성한 화계와 차별화된 독특한 사례다. 조선시대 정원에서 화계는 대개 건물 배후의 언덕에서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옹벽이 식물의 감상 공간을 겸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형〉의 화계 너머로 버드나무 숲(柳藪)과 큰 강(大江)이 있고, 그에 가까운 정자가 ‘강정(江亭)’과 ‘문류정(聞柳亭)’으로 지시되며, 입지 환경의 보편 논리인 배산임수의 구도를 떠올려 볼 때, 화계 너머의 지형은 고지대보다는 저지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형〉에 기록된 형태의 화계를 조성하려면 일정 정도의 지형 조작이 동반되어야 할 것으로 짐작된다. 〈도형〉의 화계는 옹벽의 기능보다는 식물의 감상에 초점을 맞춰 충분한 규모로 마련한 ‘전경화된 화계’의 사례로 볼 여지가 있다(그림 5a, 5b 참조). 물론 현재 남아 있는 화계 유적 중에서 이와 유사한 조건과 형식을 갖춘 사례는 찾기 어렵다. 〈도형〉의 화계를 ‘전경화된 화계’로 보는 본고의 해석은 그 타당성 여부를 보다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후속 연구를 통해 본고의 해석이 인정될 만한 근거가 더욱 견고하게 마련된다면, 〈도형〉이 화계에 관한 기존의 인식과 규범을 확장시킬 수 있는 사례라 되리라 기대한다.




둘째, 〈도형〉에서 건축물의 구성은 경관과 기능을 고려해 실내공간과 실외공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짜여 있다. 이러한 특징은 진입 동선과 담장 구획, 누의 설정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행랑채와 담장의 형태는 꺾어 들어가는 식의 진입 동선을 발생시켜 시야를 가리고 펼쳐내는 경관의 시퀀스를 자아낸다. 사랑채와 안채와 결합돼 있는 미음자형 뜰집에서 뻗어 나오는 담장은 실내공간의 기능에 따라 마당을 분절하는데, 누의 위치가 분절된 마당과 조응하여 곳곳에 자리해 있다. 담장-마당-누의 연계는 입면의 개방과 시선의 왕래를 통해 실내공간과 실외공간이 긴밀하게 연동하는 전통건축의 외향성을 잘 드러낸다(그림 5c 참조).
셋째, 식물 40여 종이 식재된 4단 화계는 조선 후기 원예 취미가 조경 공간으로 발현된 흥미로운 사례다. 식물의 목록을 보면 정원의 주인이 화훼에 관심이 많은 애호가임이 잘 드러난다. 같은 종의 꽃나무 중에서도 색상, 개화 시기, 홑/겹꽃 여부에 따라 다양성을 주었고 소철, 종려, 파초, 난초 등 구하기도 기르기도 어려운 식물을 여럿 갖추었다. 미적 감상과 생육 환경을 고려한 식재도 돋보인다. 단이 올라갈수록 식물의 규격이 커지는데, 이는 정자와 뜰에서 바라보이는 장면과 그림자가 생육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이다. 식물 종류나 식재 구성으로 볼 때 〈도형〉에 기록된 화계는 18세기 이후 조선에 유행했던 원예 취미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정민(2005)에 따르면 18-19세기에는 문인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꽃의 재배와 정원 조성이 유행하고 화훼 유통과 분재를 생업으로 삼는 전문 직업인이 출현했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이수미, 20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는 당시 유행했던 화훼 취미와 유통 현상을 잘 보여준다(그림 5d 참조). 이 시기는 〈도형〉의 자료 형식인 간가도가 제작되었던 때와도 맞아떨어진다. 〈도형〉의 화계는 원예 취미가 유행하던 시절, 다양한 표본을 보유하고 한눈에 감상하며 관리가 용이하도록 꾸민 애호가의 시설로서 의미가 있다.
4. 〈도형〉 자료에 기록된 주택 정원의 창의적 재현
본 논문은 자료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해 현대 조경 설계로 귀결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는 “전통 조경의 원리를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https://www.laheritage.kr/)”하는 것으로 명시된 공모전의 취지를 따르는 동시에, 서론에 썼듯 고증 연구와 설계 실천 사이의 관계를 적극 모색해보려는 연구자의 뜻에 기인한다. 관점을 더 확장해보건대, 과거에 대한 연구와 현재의 실천 사이 긴밀한 연동은 역사와 설계 모두의 궁극적 본령이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하나의 작업에서 이를 압축적으로 구현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 논문의 시도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려면 일차적으로 〈도형〉 자료에 담긴 전통 조경의 요소와 원리를 충실하게 구현해야 한다. 〈도형〉에는 식물의 종류를 비롯해 화계, 취병, 화분, 괴석, 담장 등 당시에 주택 정원을 이루는 데 쓰였던 구성 요소들이 기록돼 있다. 본 논문은 간략한 선이나 글자로 기록된 각각의 요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검토했으며, 전통 공간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요소의 확인에 그치지 않고 구성의 원리와 특징에 대해 고찰했다. 이를 위해 관련 연구와 현존 유적을 참조하여 요소별 형식과 기법을 파악하고, 〈도형〉 자료에 담긴 주택 정원 고유의 미적 원리를 제시하여 재현의 근거와 원천으로 삼았다.
이 작업의 목표는 자료 제작자의 관점에서 주택 정원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현대 조경 설계의 관점에서 자료에 기입된 공간을 새롭게 재현함으로써 그 덕목을 찾아내고 적용의 연결고리를 가시화하는 데 있다. 전통 조경의 요소와 원리에 충실하되 현대 조경의 관점을 투사하는 데는 난관이 존재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다. 〈도형〉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재료와 기법에서 참조 사례를 얼마만큼 수용할 것인가? 〈도형〉에 기록된 부분 중 어느 범위를 어떤 기준으로 준수하고 재해석할 것인가?
본 논문이 궁극적으로 설계로 귀결되는 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현대 조경 설계의 측면에서 갖는 의미에 방점을 두었다. 달리 말하면 이 작업은 과거 유산의 복원적 재현보다는 동시대 공간의 창의적 재현을 추구했다. 주택 정원의 구성과 화계의 형식이 동시대 조경 실천과 접목되도록 〈도형〉에 기록된 정보들 사이의 여백을 채우고 때로는 재구성하며 디테일을 부여했다. 공간의 사용자로 자료의 원제작자를 떠올리기보다는 자료를 오래된 청사진으로 두고 지금의 시점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모종의 의뢰인을 설정했다.
작업의 수위는 기본계획(schematic design) 단계로 설정했다. 설계의 방향성과 전제, 주안점을 설정하고 전체 영역을 다루는 평면배치도를 작성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요 공간별 렌더링 이미지를 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료의 고증 연구와 사례 참조를 통해 피드백을 거쳤다. 가령 〈도형〉을 두고 때로는 자료의 작성자와, 때로는 가상의 클라이언트와 대화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고 돌을 옮기고 뜰을 꾸미며 장면을 만들고 교정해 나갔다. 전체 대지와 건축 모델링은 라이노세로스를 썼으며 루미온으로 렌더링했다. 렌더링 과정에서 재질을 입히고 식재를 배치했다.
직사각형의 대지 경계, 고저차가 뚜렷하지 않은 전반적 지세, 강으로의 조망과 지형을 조작해 조성한 화계의 존재를 수용하면서 현대 조경의 관점에서 시사점을 던질 만한 대지로 고층건물의 옥상을 설정하였다. 그 과정에서 배치 관계가 불분명한 네 채의 정자는 재현의 범위에서 제외하였다. 좌향은 3장 1절에서 썼듯 화계가 위치한 방향을 북쪽으로 두어 화계가 남향으로 열리도록 했다(그림 6a 참조).
현대 도시의 조경 설계에서 식재 기반은 인공지반인 경우가 많다. 자연지형에서 화계는 식물 규격과 관련해 토심이 관건이 되지 않지만, 토심 확보가 관건인 인공지반에서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다단 형식은 뚜렷한 이점이 있다(그림 6b, 6c 참조). 〈도형〉의 식재처럼 낮은 단에는 낮은 식물을, 높은 단에는 높은 식물을 심으면 필요한 토심을 적절히 가져갈 수 있으며 이는 인공지반에서 식재로 연출하는 경관을 풍부하게 하는 기법으로 효과적이다. 〈도형〉에서 화계와 인접한 지면에 다수 놓인 화분의 경우도 인공지반에서 용이한 식재 형식이므로 적극 활용하였다.
간가도 형식에 따른 평면 배치와 규격은 〈도형〉에 담긴 핵심 정보이므로 그대로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3장 1절에서 언급했듯 간가도의 방안의 규격은 통상적으로 한 칸당 8자(尺), 대략 2.4m에 해당하므로 이 수치를 전체 영역에 적용했다(그림 7a 참조). 〈도형〉에 기록된 칸의 모듈 시스템을 대상지 전체에 적용하면 선의 정렬과 규격의 일관성 측면에서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의 정돈과 연계를 꾀하기 유리하다. 〈도형〉의 주택 배치는 진입 동선과 담장 구획, 누의 설정 측면에서 실내-실외공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도록 짜여 있다. 이를 준용함으로써 건축과 조경이 조화를 이루고 전통과 현대가 접목된 정취의 옥상정원의 형태를 구현하고자 했다.
주택 정원을 이루는 세부 영역은 현대의 옥상정원에 걸맞은 용도와 형태로 바꾸되 본래의 특성을 고려했다. 출입공간인 행랑채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코어로, 영적 공간인 사당은 명상을 위한 숲으로, 누마루 곁의 장독대는 채원을 갖춘 소규모 정자로 번안하였다(그림 7b 참조). 그 과정에서 〈도형〉에는 표현되지 않은 포장과 식재를 부여하고 담장 일부를 덜어냈으며 독립된 화장실이나 협문은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생략했다. 또한 단순한 기능 지시의 수준을 넘어 영역별 특색을 정체화할 수 있는 이름을 붙였다. 이로써 과거 양반 가옥에서 발휘되었던 기능과 연속성을 갖되 현대 조경 공간에서 뚜렷한 역할과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공간들을 이루고자 했다.
행랑채에 해당하는 동서측 코어를 통해 옥상으로 진입하면 건물과 담장을 지나 화계 앞 정자인 견일정(見一亭)과 사랑채에 해당하는 외사(外舍) 사이에 닿는다. 대지 북측에 위치한 견일정은 디귿자 화계를 마주하고 있으며, 화계 앞뜰로 나아가면 초화류와 관목, 교목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정원에 들어선다. 견일정 남측 가까이 위치한 주요 건물은 견일정을 향해 돌출된 외사와 중정을 감싸는 내사(內舍)로 나뉜다. 전통적 공간 위계보다는 내-외의 구성을 강조하고자, 재현된 공간에서는 사랑채와 안채가 아닌 외사와 내사라는 용어를 쓴다. 외사는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응접 중심의 공간이다. 차담과 숙식을 위한 방 주변으로 (툇)마루가 길게 이어져 있고 견일정과 가까워 옥상정원 전체의 중심을 잡아준다. 내사는 안채와 마찬가지로 정주의 공간이다. 역시 숙식의 공간이 서측에 있으며 동측에는 주방이 마련돼 있다. 〈도형〉에서 대청에 해당하는 남측 칸은 너비가 충분한 반 실외 공간이며 가까이 다이닝 공간을 두고 있다. 내사와 외사는 함께 미음자형 건축물을 이루는데, 중정을 통해서는 연못을 매개로 통합되는 한편 바깥에서는 담장을 경계로 구분된다. 외사의 외부 공간은 옥상정원의 진입공간과 견일정-화계로 대변되는 반면 내사의 외부 공간은 맞닿는 건물 구역의 성격과 맞물려 3개의 소규모 정원으로 이루어진다. 동측의 주방 근처에는 작물을 재배하고 먹는 공간인 유정(酉亭)과 채원(菜園)이, 남측의 대청 근처에는 명상을 위한 숲인 죽림(竹林)이, 숙식을 위한 방 근처에는 장작을 때는 파이어핏에 해당하는 휘암(輝巖)이 자리한다(그림 8, 9 참조).

견일정(見一亭)이라는 명칭은 〈도형〉에서 강정의 마루 부분에 쓰인 당호다. 외행랑으로 들어와 강정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보였을 현판으로 판단되어 대표성 있는 당호로 설정했다. 전거로서 ‘견일(見一)’은 ‘초야에서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봤는가[林下何曾見一人]’라는 당나라 시구에서 따온 것으로, 영화로운 관직 생활 후 자연에 은거하는 선비를 뜻한다8). 글자에 충실하게 ‘견일’을 풀면 ‘하나를 보아 모든 것을 안다’라는 의미에 닿는다9). 종합하면 견일정은 은퇴한 사대부의 전원생활, 또는 생각의 집중과 통달을 뜻하는 당호라고 할 수 있다. 〈도형〉의 견일정은 서측 마루, 가운데 방, 동측 누마루 셋으로 이루어져 이를 토대로 건축물을 구성하였다(그림 10a 참조).
견일정의 서측 마루는 주출입구인 서측 행랑채와 가까운 곳으로 견일정을 구성하는 세 공간 중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다. 들어오고 나가기 쉽고 풍경을 시원하게 누릴 수 있도록 입면을 활짝 열고, 툇마루에는 기단과 마루 사이에 단차를 하나 더 내어 걸터앉을 공간을 길게 마련하였다(그림 10b 참조).
가운데 방에서는 창호를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게 하였다. 통상 누정의 방에서 개방감을 강조한다면 짝수의 문을 겹쳐 여는 분합문을 들어열개로 설치해 가변성을 주게 마련인데,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실내 환경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얇은 프레임의 유리 통창으로 시야를 한껏 열었다. 이곳에서는 화계의 정갈한 정면을 감상할 수 있다. 지면부터 단이 올라가며 석재의 가지런한 수평선과 함께 겹겹이 쌓여가 취병의 외곽선에 이르러 정돈되는 화계 식재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그림 10c 참조).
동측 누마루는 서측 마루와 방보다 바닥이 한턱 높고 가장자리에 난간이 있다. 외부 공간으로 접근하는 듯한 분위기를 최소한의 형식으로 자아내는 누마루 특유의 미감이 이곳에서 발휘된다. 동측 누마루 가까이에는 지면에 대나무와 파초 화분을 놓고 축대 위에는 배롱나무를 심어 정면 풍경과 다르게 보다 풍성하고 화려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그림 10d 참조)10).
화계의 재현에서 중요한 선결 과제는 단 높이의 설정이다. 〈도형〉에서 총괄 내역상의 지시어 ‘강정(江亭)’과 화계 부근의 당호 ‘문류정(聞柳亭)’은 정자에서 화계 너머를 내다볼 가능성을 제기하게 한다. 그런데 시뮬레이션 결과 정자에서 화계 너머를 직접 조망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견일정의 기단+마루 높이를 1m로, 사람 눈높이를 1.5m로 가정하면 견일정에 올랐을 때의 눈높이는 지면으로부터 2.5m 정도가 된다. 화계는 4단이며 최외곽에 취병이 있다. 화계+취병 높이를 2.5m에 맞춰보면 단별 35cm에 취병 1.1m 정도가 된다. 궁궐 화계에서 대개 두 겹 이상 올려 쓰는 장대석 한 개의 높이가 30-40cm이며 창덕궁 주합루에 재현된 취병 높이가 1.5m이다. 말하자면 정자 위에 선 사람의 눈높이와 같게 화계와 취병의 높이를 맞추면 규격이 지나치게 작아진다. 그렇게 맞춘다 하더라도 수평 이하의 시야각을 낼 수 없으니 저지대를 조망한다는 목적은 달성할 수 없고, 시야각을 확보하려면 정자의 기단을 끌어올리거나 화계와 취병 높이를 더 낮출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더라도 공간의 형태는 더욱 어색해진다.
연구진은 정자에서 화계 너머를 직접 조망한다는 전제를 버리고 정자에서 바라보이는 화계의 시각성에 집중했다. 궁궐 화계의 규격은 석축의 한 단 높이가 50-100cm, 단면에서 폭과 높이의 비례가 1:1-7:1 정도로 다양했다. 이를 참조해 본 재현에서 단의 높이는 50cm로 맞추었다. 이렇게 되면 4단의 높이는 2m가 되어 인공지반에 교목을 심기에도 적절한 토심이 확보된다. 화계의 한 단 너비는 간가도상의 한 칸, 즉 2.4m이므로 폭과 높이의 비례는 4.8:1로 정해졌다. 취병의 높이는 1m로 설정해 화계 두 단의 높이와 같게 했다. 이로써 화계와 취병의 입면이 조형적으로 드러나면서도, 지나치게 높은 나머지 바라보는 사람에게 장막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의도했다. 화계의 최상단 중앙에는 한두 사람이 올라설 크기의 평평한 돌을 놓았다. 〈도형〉에는 없는 요소다. 이름은 ‘물결을 바라보는 돌’이라는 뜻의 관란석(觀瀾石)으로 지었다. 이로써 정자에서는 화계 너머의 강을 가늠하고 소리를 듣는 한편, 화계에 올라 강을 직접 내다볼 수 있게 함으로써 ‘강정’의 정체성이 화계를 통해 발현되도록 했다(그림 11a 참조).
좌우 축대의 높이는 4단, 즉 2m에 맞추어 진입공간의 담장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화계 정면에서는 단이 올라갈 때마다 입면이 분절되므로 측면에서는 여러 단 높이에 해당하는 큼직한 입면을 연출하는 게 효과적이리라 판단했다(그림 10d, 12a 참조). 또한 〈도형〉에는 없는 계단을 추가했다. 창덕궁 낙선재 일대에서 꺾이는 부위나 가장자리에 놓인 계단을 참조해(그림 12b, 12c 참조) 좌우 축대 안쪽으로 계단을 삽입했다.
식재는 〈도형〉에 글자로만 쓰여 있어 설계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궁궐 화계를 사례로 교목, 관목, 초화류의 성상과 식재 밀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관을 검토하였다(그림 12d, 12e, 12f 참조). 이를 통해 화계의 미감에는 석축과 식재의 조화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하고, 인접한 건축물의 기능이나 감상․관리의 접근성에 따라 식재 구성이 달라짐을 확인하였다. 〈도형〉의 화계는 정자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감상 대상인 동시에 식물의 관찰과 재배에 관심이 많은 원예 애호가의 활동 공간이라 보았다. 이를 반영하고자 화계 석축의 조형적 수평선을 드러내 전체적 윤곽을 잡는 동시에, 여러 종의 식물을 쓰되 서로 다른 종류의 식물을 뭉치거나 섞기보다 각각의 고유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식재 위치를 조정하였다(그림 11b 참조). 또한 주인과 방문객이 몸소 화계에 올라 식물을 가꾸고 감상하기 용이하도록 식재 밀도를 조절하였다. 2단 모서리의 괴석은 정확히 모서리에 배치할 경우 뒤로 물러나 보이는 경향이 있어 위치를 약간 조정하여 오브제로서 더 잘 드러나도록 했다.
화계 앞 지면에는 식물 못지않게 화분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어 다양한 형식의 화분을 도입하였다. 〈도형〉에는 일부에만 ‘盆(분)’자가 적혀 있지만, 화계의 조형과 바닥 포장의 균질함을 고려해 모두 화분으로 구성하였다(그림 11c 참조).
〈도형〉에서 외사(外舍)와 내사(內舍)가 이루는 직사각형 중정에는 연못을 도입하였다. 미음자로 닫힌 평면을 갖춘 뜰집의 가운데 마당은 대개 비워져 있다. 〈도형〉의 뜰집도 마찬가지다. 내부에 아무 정보가 기입되어 있지 않고 가장자리에 쪽마루로 보이는 먹선이 일부 그어져 있을 뿐이다. 이 정도 규모의 살림집에서 중정은 마사토로 포장되고 수목이나 시설물 없이 다양한 쓰임에 대응하는 가용 공간에 해당한다. 그런데 본 프로젝트에서 재현된 공간은 상시 거주를 위한 살림집이라기보다 여가를 위한 파빌리온에 가깝다. 이러한 전제를 적극 반영하여 중정에 수공간을 도입했다(그림 13a 참조). 못 속에는 플랜터를 두어 연꽃을 심고 위에는 내사와 외사를 오가는 징검다리를 두었다. 하늘과 가까운 옥상에서 하늘을 비추는 못이므로 이름은 천정(天庭)이라 붙였다. 연꽃은 흔들림 없는 벗, 못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상징으로서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선호했던 조경 요소로 의미가 있다(윤호진, 2010).
〈도형〉에서 내사의 남동쪽 모서리는 바깥을 향해 누마루가 열려 있고 옆으로 창고가 늘어서 있으며 바깥 맞은편에는 장간(醬間), 즉 장독대가 놓여 있다. 해당 영역은 내사 중에서도 식재료를 보관하고 가공하는 등 식생활과 밀접한 곳으로 판단된다. 이에 착안해 내사의 창고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주방을 두고 바깥의 장독대 자리에는 작은 정자를 마련해 주방과 정자가 연계하도록 했다. 정자의 이름은 ‘장(醬)’자에서 술을 뜻하는 부분인 ‘유(酉)’자를 떼어 내어 유정(酉亭)이라 지었다. 식재료를 보관하고 가공하는 공간으로서 장독대와 소비하는 공간으로서 정자는 기능 면에서 다르지만 먹는다는 행위와 발효라는 작용으로 연결됨으로써 특유의 정체성을 이루도록 했다.
〈도형〉에서 장독대 주변은 별다른 표기 없이 비어 있다. 사당 영역과 구분되도록 담장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텃밭에 해당하는 채원(菜園)을 두어 작물을 기르는 생산 공간이자 유정에서 바라보는 식재 경관으로 설정하였다(그림 13b 참조). 이를 위해 담장의 높이를 최소화해 영역성을 가시화하는 정도만 남겨두는 한편, 뜰집과 가까운 일부는 아예 덜어내 동선을 확보하였다.
〈도형〉에서 사당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건물을 짓지 않고 대나무를 빼곡히 심어 작은 숲을 조성하고 간략히 죽림(竹林)으로 이름 지었다. 사당은 선조의 제례를 지내는 영적 공간이다. 제례 행위가 간소화되고 전용 공간을 주택에 들이지 않는 동시대 한국의 공간 문화를 반영하되 영적 공간으로서의 분위기를 활용하고자 숲을 도입했다. 대나무는 수직성이 강하고 밀식되는 편이어서 둘러싸인 사람에게 위요감을 준다. 동시에 줄기가 교목에 비해 얇고 흔들림이 있어 바람과 빛의 존재감을 잘 드러낸다. 죽림 속에는 구부러지는 오솔길을 두어 느린 걸음의 산책을 유도하고 가운데 벤치를 두어 바람 소리와 빛의 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그림 14a 참조).
〈도형〉에서 사당의 서쪽이자 건넌방(越房) 주변에 해당하는 영역에는 채원 자리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표기가 없다. 이 부분은 외사와 가깝지만 담장으로 구분돼 있어 사당과의 연관성이 더 강한 공간이다. 건넌방 위치에는 내사의 숙식 공간을 배치하고 그와 맞닿은 외부 공간에는 야트막한 방형 석단을 두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을 수 있는 나지막한 정원을 구상했다(그림 14b 참조). 이름은 모닥불을 피우는 바위라는 뜻의 휘암(輝巖)으로 지었다. 〈도형〉에서 죽림과 휘암의 자리는 제사와 관련된 부분이지만 옥상의 파빌리온에서는 소규모 인원이 조용하고 정적인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공간으로 전환했다. 이로써 유정과 채원, 죽림과 휘암은 내사의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고 확장하는 외부 공간으로서 각각 특색을 갖는 한편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도록 구성하였다.
5. 재현의 성과와 시사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형〉은 조경역사학의 측면에서 중요한 공간 정보를 담고 있다. 그런데 자료의 제작 배경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다는 점은 자료의 접근과 활용에 난관으로 작용한다. 이는 추후 연구를 통해 진전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자료 자체만으로도 이미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은 타 문헌 자료를 경유하지 않은 연구와 해석의 가능성을 제기하게 한다.
본 논문에서는 자료에 대한 기초적 검토를 수행하는 동시에 ‘설계’를 연구 방법론으로 삼아 자료의 해석을 진전시키고자 하였다. 자료에 착목한 고증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자료에 드러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추론을 지양한다. 사실관계에 대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점을 ‘자료’보다 그에 기록된 ‘공간’에 맞춘다면 접근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가령 〈도형〉과 같은 간가도에서 먹선과 글자는 공간에 대해 매우 한정적인 정보만을 드러낸다. 한정적 정보를 바탕으로 설계를 통한 재현을 시도한다면 자료에 명시되지 않은 행간의 추론을 수행하게 된다. 화계의 단 구성과 높이, 식재의 밀도와 배치 등을 구상하며 현존 사례를 참조하는 한편 주택 전체의 공간 구성과 제작자의 취향 등을 잣대로 일종의 ‘두껍게 읽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행간을 읽을 때 설계의 태도가 갖는 장점 중 하나는 재현하고자 하는 공간을 발 디딘 사람의 시점에서, 그리고 조성과 관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도형〉에서 지붕이 맞닿을 듯한 견일정과 사랑채의 거리감, 화계의 디귿자 형태가 갖는 효과, 화계에 올라갔을 때의 느낌, 마당을 잘게 분절하는 담장과 수많은 문과 측간의 기능에 대해서 설계의 관점을 가졌을 때 해석하는 시각은 편평한 자료를 내려다볼 때와 다르다.
연구라는 행위의 궁극적 목표가 드러난 현상의 확인을 넘어 드러나 있지 않은 이면의 규명에 있다고 본다면, 자료 속 공간을 재현하는 설계의 방식은 문헌의 교차 검토를 통한 고증 못지않게 연구를 심화하는 방법론으로서 의미가 있다. 재현에 있어 복원과 창조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한양대학교 박물관, 2012) 현실의 의사결정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조건이라면, 본 논문에서 시도한 ‘창의적 재현’이 고증 연구를, 나아가 전통의 발명을 진전시키는 방식으로 쓰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무 현장에서 전통의 구현은 차용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에 대한 감각이 현존하는 유적에 밀착되어 있고 그러한 감각을 구현하려면 재료나 형식을 적절히 끌어오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복제를 넘어 원리의 구현과 창발적 변용의 시도도 있지만(임한솔, 2022) 모방을 꾀하든 응용과 변주를 꾀하든 기본적으로는 차용의 구심력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과 결부된 설계가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설계 언어를 더욱 풍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설계 언어를 풍부하게 한다는 것을 구체화해 설명하면, 그 첫째는 설계 어휘를 늘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존에 검토되어 쓰이고 있는 요소를 추가하거나 다변화하는 것이다. 도입할 수 있는 요소와 기법이 많으면 많을수록 설계의 선택지는 많아질 수 있다. 다음으로는 설계 어휘의 새로운 쓰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기존에 쓰이던 형식을 새로운 재료로 구현하거나, 기존에 쓰이던 재료를 새로운 형식으로 응용하는 등 어휘 간의 관계를 재설정하거나 전통 바깥의 어휘와 결합시키는 시도가 이에 해당한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도형〉에 대한 분석과 재현을 통해 전통과 관련된 설계 어휘를 조명하고 그 활용 사례를 제시하고자 했다. 가령 화계에서 생육 환경과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식물과 화분, 괴석, 취병의 배치법을 확인해 적용한다든지, 석축의 정형성과 식재의 비정형성 간의 조화라는 미적 원리를 반영한다든지, 전경화된 화계라는 개념을 창안해 강조한 것이 전자에 해당한다. 화계의 정형성과 수평성을 강조하고자 입면을 구성하는 재료로 가로 패턴이 있는 밝은 색상의 철재를 쓴다든지, 재질의 연계와 일상 관리를 고려해 마사토 대신 건식 타일을 바닥 포장으로 설정한 것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도는 물론 전통 관련 설계 프로젝트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전통의 개념 자체가 과거를 원천으로 삼고 있는 까닭에 그 응용에 있어 보수적 경향이 뒤따르게 마련이며, 그로 인해 새로운 어휘나 조합을 시도하는 데는 난관이 따르곤 한다. 그런 면에서 본 프로젝트는 과거의 자료에 기반하되 유사한 실례를 찾기 어렵고, 시공을 전제하지 않는 페이퍼 워크이므로 그러한 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펼칠 여지가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본 설계 프로젝트는 자료에 기반한 연구인 동시에 실무에서 쓰일 전통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려는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
6. 결론
본 논문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형〉 자료에 기록된 주택 정원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현대 조경의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재현한 설계 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를 제시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형〉 자료는 18세기 말-19세기에 제작된 간가도 형식의 문서 자료다. 〈도형〉 자료에는 전체 88칸에 이르는 주택의 평면 구성과 식물 40여 종이 식재된 4단 화계가 그려져 있다. 자료에 기록된 주택 정원은 건축물과 외부 공간이 긴밀하게 접목돼 있고, 화계가 건물의 배후가 아닌 전면에, 자연지형이라기보다 조작을 가한 지형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후기의 원예 취미가 식재에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옥상별서, 화계산수〉로 이름 지은 설계 프로젝트는 〈도형〉 자료에 기록된 주택 정원을 재현하되, 전통의 구현과 현대적 설계의 접목을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간가도에 기록된 평면 배치를 준용하고 식물 종을 추적해 반영하는 동시에 입지와 건물 구성, 프로그램 적용, 세부 식재 등에서 자료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창안하고 동시대 조경 문화를 반영해 재해석을 가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도형〉의 화계에 대한 과감한 해석을 바탕으로 옥상의 인공지반 위에 4단의 화계를 구성하였다. 이러한 해석과 재현은 〈도형〉을 고증 연구의 대상으로서만 다루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유사한 형식으로 볼 만한 유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도형〉을 근거로 창안한 ‘전경화된 화계’라는 개념은 말하자면 실물로서 증명된 바 없고 심화된 후속 연구를 요하는 문제다. 과감한 해석과 재현이 기성의 인식에 대해 균열을 내고, 자료에 대해 오해의 여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고는 실물 유적 사례가 추가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새로운 가설의 제출과 가능성의 가시화가 학계에 유의미한 화두를 던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전통조경을 주제로 한 설계공모를 기회 삼아 주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였으며, 이러한 시도는 고증 연구와 설계 실천이 서로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고증과 설계라는 측면으로 나누어 본 연구의 한계와 과제는 다음과 같다. 먼저 고증의 측면이다. 본 논문은 〈도형〉 자료에 기록된 내용의 내적 분석에 집중해 논의를 전개했다. 추후에는 자료에 쓰인 당호나 문구를 타 문헌을 통해 추적하거나 입지 환경, 건축물 구성, 식재 등을 다른 사례와 비교하는 등 외적 분석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다. 다음으로 설계의 측면이다. 서론에서 밝혔듯 본 논문에서는 ‘복원적 재현’과의 구분을 명시하고자 ‘창의적 재현’이라는 용어를 썼다. 성과를 재고하건대, 자료를 매개로 창의와 재현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문제의식이나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본 논문에서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달리 말하면 본 연구는 고증과 설계 모두에서 〈도형〉 자료의 연구 가치와 활용 방안, 향후 과제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본 논문을 통해 〈도형〉을 비롯한 간가도를 다루는 조경역사학 연구가 확산되고 전통 조경과 관련된 설계 프로젝트에 새로운 시도가 촉발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