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도시 경관을 매개로 삼는 공공미술 실천에 대한 평가와 담론의 필요성은 공공미술이 도시재생의 기법으로 등장한 19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이후 다양한 공공미술 사업이 도시의 환경정비와 공동체 형성, 주민 참여의 차원에서 도시재생의 한 유형으로 진행되었으며, 2010년 중반을 기점으로 많은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은 공공미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러 공공미술 사업의 기반이 되었던 도시재생 및 지역 활성화 사업이 잇따라 종료됨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 및 연구가 경제적 자립도, 지역 공동체 활성화, 환경정비 및 거리 미관 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도시재생 혹은 재활성화를 통해 형성된 도시 경관이 관광목적물로 기능하여 관광 산업을 이끌며 파생되는 젠트리피케이션 혹은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을 다루는 비판적 연구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도시재생 사업의 경제적, 사회적, 행정적 측면에 대한 평가와 연구가 이어지는 한편 공공미술 현장에서 일어나는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논의 및 실천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현황이다. 특히 2016년 이화동 벽화마을의 벽화 훼손 사건 이후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 중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의 전개와 그 결과로써 형성된 도시 경관을 직간접적으로 논의하는 방식은 2010년대부터 진행된 도시재생 사업의 평가와 연구를 진행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하는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ephemeral mural project) 사례는 시공간적 제한을 기반으로 한 서울과 부산의 공공미술로, 기존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벽화마을을 직간접적으로 참조했다. 이 사례들은 마찬가지로 벽화라는 예술의 형태를 취하되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기획 단계부터 내포하고 있으며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기획 및 실천 방식을 통해 대안을 실험했다는 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국내에서 진행된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의 과정 및 결과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다루는 최근 공공미술 사례의 분석 및 고찰을 통해 국내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의 의미를 다각도에서 짚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참고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주목하는 사례는 한시성(ephemerality)을 주요한 기획 전략으로 삼은 벽화 프로젝트이다. 벽화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예술적 표현 수단이되 오늘날 도시 정책으로써 진행되는 공공미술의 형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정책적으로 조성된 벽화를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 등에서 문화·예술과 도시 재활성화 정책이 맞닿아 구현된 공공미술의 한 기법으로 본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벽화마을’ 혹은 ‘마을벽화’란 문화적 도시개발 혹은 재생의 과정에서 실천된 문화 행위이자 ‘주거환경 개선’, ‘공동체 구축’,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으며, 도시에 가시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낳는 경우가 잦다.
도시 경관에서 한시성이 지속가능성의 반의어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는 점은 해당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염두에 둘 사항이다. 예를 들어, 문화적 도시재생의 차원에서 진행된 정원박람회와 팝업공원 사례를 연구한 Madanipour(2017)는 주기적으로 열리는 임시 행사가 경관의 맥락을 사실상 대체한다고 지적하며 주기적으로 도시 경관에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사업이 새로운 경제·사회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전락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즉, 도시 경관에 한시성을 적용할 때 그 관점과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사례 연구의 대상이 되는 벽화 프로젝트에서 한시성은 장기간에 걸쳐 환경 일부로 환원되는 환경미술부터 행위성을 기반한 개념미술에까지 모두 적용되는 개념으로써, 20세기 예술의 발전 저변에서 지속해서 작동하며 영구성을 부정하고 기획 의도 차원에서 시간적 한계와 장소적 한계를 모두 의도하는 기제이다(Shimbo, 2015). 즉, 작품의 영구성을 부인함으로써 예술의 주요 기능으로 이해되었던 기념비성(monumentality)을 탈피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 구체적인 방법은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 한시성이란 특징을 부여함으로써 생겨난다. Kromholz(2020)는 이에 더해 외부 환경에 놓인 한시적 미술작품이 주어진 조건과 상호 대응하며 일어나는 예견된 부재(impending absence) 혹은 의도된 해체(unmaking)를 통해 완성된다고 설명한다. 그 해체의 과정은 작품의 상황을 부각하고 덧없음(transience)을 강조함으로써 작품을 관객과 환경이 마주하는 매개로 삼는 “상실을 통한 퍼포먼스(performance of loss)”가 된다(Kromholz, 2020: 197).
덧없음 혹은 예견된 상실의 가시적 표현을 통해 ‘드러나는 것’과 ‘부재한 것’의 간극을 드러냄으로써 작품이 배경으로 삼은 환경의 상황에 관한 재고의 여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한시성을 지닌 예술이란 시간적 한계와 장소적 한계를 모두 의도한 예술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즉, 이 연구에서 한시적 공공미술이란 도시의 영구적인 변화를 꾀하는 기존의 접근방식에 비판적으로 대응하는 작동을 의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크게 이론적 배경과 사례 연구로 구분된다(그림 1 참조). 먼저 2장에서는 문헌 연구를 통해 국내 문화적 도시재생 과정에서 공공미술의 활용을 살펴보고 사례로써 벽화마을의 도입과 확산을 설명한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기존 공공미술의 활용에 관한 비판적 논의를 펼치는 사례를 살펴보며, 특히 대안적 전략으로서 한시성을 의도한 벽화 프로젝트의 도입과 전개, 의미를 다룬다. 이 연구의 주요 분석 대상인 <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와 <2021 프로젝트 영도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는 벽화마을과 같은 국내 문화적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직간접적으로 참고하고 대응하는 공공미술 사례에 해당한다. 연구 방법으로는 선행연구, 사업 보고서, 신문기사 등을 중심으로 문헌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직접 관찰을 통해 현황을 파악했다. 이후 각 프로젝트의 기획자 및 행정 담당자와 대면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보충하였다. 인터뷰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각 프로젝트의 기획자와 담당자를 대상으로 총 4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3장에서는 프로젝트별 문헌 연구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여 담고 각 프로젝트에서 한시성의 활용 방법을 분석한다. 4장에서는 앞서 살펴본 두 사례를 중심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한시성의 함의를 탐구한 후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진행하는 데 있는 두 사례가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본다.
2.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에서 공공미술의 활용
20세기 후반 기존 도시의 재활성화가 범국가적 의제로 떠오르며 공공미술은 도시재생 정책과 맞물려 발전해 왔다. 문화적 도시재생과 공공미술은 연관어이자 주요 수단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 개념과 같이 장소의 의미와 가치가 주목받는 상황과 맞물리며 참여예술(participatory art)과 같이 공동체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의 확산과도 연관된다(Miles, 1997). 특히 공공미술의 여러 유형 중에서도 벽화는 지역 사회의 참여를 독려하고 도시 경관의 일부가 되어 공동체를 강화함으로써 지역 정체성을 형성에 기여한다는 점에 기반하여 많은 도시재생 및 재활성화 사업의 기법으로 활용한 바 있다(Wansborough and Mageean, 2000; McCarthy, 2006).
국내 공공미술 정책 역시 1972년「문화예술진흥법」제정 이후 꾸준히 발전해 왔으며, 도시개발 및 재생과 꾸준한 상호 작용을 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건축 비용의 일정 비율을 미술작품 설치에 활용하는 방식은 1980~90년대 국내 도시의 주요 가로 경관에 변화를 일으켰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공원에 조각품을 삽입하여 도시의 새로운 브랜딩을 추구하는 방식이 활용되기도 했다(양현미, 2004; 신명진 등, 2020). 이어서 200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상암 DMC나 홍대 앞 거리와 같이 문화·예술적 실천과 건조 환경의 조성이 통합적으로 일어나며 새로운 도시 경관을 창출하는 사례도 등장했다(김수아, 2013; Song, 2016).
국내에서 공공미술을 활용한 문화·예술적 도시재생 및 재활성화 방식이 본격적으로 실천되기 시작한 것 역시 2000년대 중반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했던 ‘아트인시티(Art in City)(2006~2007)’와 ‘마을미술프로젝트’(2009~) 등에서 도입되었던 ‘공공미술을 활용한 도시 재활성화’ 개념은 2013년「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시재생법)을 통해 빠르게 확장되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20년까지 전국 단위로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었으며, 주거지 환경 개선과 그를 통한 범죄예방효과(CPTED)에 대한 기대, 주민 참여를 통한 지역 정체성 확보, 문화·예술 교육과 복지 등을 근거로 문화적 도시재생의 구체적인 기법으로서 벽화가 도입되었다(이선미와 장영호, 2016; 이상호와 이정민, 2016; 김보미 등, 2019).
이 밖에도 장소 특정적 미술이 예술적 실천을 통해 커뮤니티 정체성을 시각화함으로써 도시재생에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거나 ‘문래동 철공_예술 창작촌’ 등 지역 기반 문화·예술 도시재생 사업이 성공적인 사례로 부각됨에 따라 경제성과 지역성이 결합한 플랫폼으로서 공공미술의 가능성이 주목받기 시작했으며(이영범과 최순복, 2012), 커뮤니티 벽화 작업, 탈산업 폐허의 적용 등 예술적 실천에서 발생한 새로운 미적 감각은 국내 도시 경관 전반에 걸쳐 적용되기도 했다(Lee, 2019).
문화적 도시재생 및 재활성화의 일환에서 조성된 벽화마을, 또는 마을 단위의 벽화 사업은 이 연구에서 주목하는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가 직간접적으로 참고하는 공공미술의 형태이다. 공공미술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보기 어려우나,1) 지역 관광 산업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문화적 도시재생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벽화마을로는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흰여울문화마을,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과 강풀만화거리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벽화마을은 해당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어우러지며 독특한 경관을 조성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의 흰여울문화마을은 산복도로를 따라 위치한 경사진 마을의 지형적 특징을 살려 시내에서 바라보았을 때 벽화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이화동 벽화마을의 경우 낙산과 맞댄 경사진 골목길이 대학로의 번화한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이화동 벽화마을은 2006년 ‘아트인시티’ 사업 공모를 통해 선정된 <낙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종로구 공공미술추진위원회가 기획하여 주민과 대학생을 포함한 300여 명이 각종 작품 제작에 참여해 70여 개의 벽화, 조각품, 설치작품, 편의시설, 안내판, 간행물 등의 다양한 결과를 냈으며 그중 대중 및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벽화라고 볼 수 있다. 시내와의 근접성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화동 벽화마을은 빠르게 관광지화되었던 반면, 벽화 유지관리 및 보수, 주민 간 경제적 이해관계,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가 연달아 일어나 지속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한국경제, 2010.10.05.). 그 와중 2016년 3월 주민 다섯 명이 계단에 그려진 벽화 두 점을 회색 페인트로 훼손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행정, 문화 기획, 설계 등 관련 분야에서 벽화마을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과 공공미술 사업 전반에 대한 재점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계기가 되었다(정윤정과 김진아, 2016; 내 손안의 서울, 2016.05.03.).
부산 영도구의 흰여울문화마을은 2011년 세 곳의 빈집을 활용한 예술창작공간 조성 사업을 시작으로 문화적 도시재생을 시작했다. 이후 2015년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화 증진지역 개발사업’으로 선정되어 테마형 담장 및 친환경 골목길 조성 사업을 거치며 현재와 같은 경관을 가지게 되었다(영도구청, 2018). 조성 이후 각종 미디어와 언론에 흰여울문화마을이 배경으로 활용됨에 따라 해당 지역의 방문객이 2016년 275,000명에서 2019년 828,000명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등 관광지로도 주목받게 되었다(영도구청 문화관광과, 2020). 관광지화로 인해 주민의 불만이 불거졌음에도 2020년과 2021년에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아트로드’ 사업이 진행되는 등 벽화 및 가로 조형물 조성이 계속되며 벽화마을로의 특징을 강화해 왔다(그림 2 참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공미술이 문화적 도시 재활성화와 연계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문화·예술을 참여적 일상으로 가져옴으로써 경관과 문화적 차원 모두에서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논리가 있었다(Conrad, 1995). 그러나 국내외 공공미술 사업이 도시재생 지역의 경관과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관광을 주축으로 경제적 진흥에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들인다는 긍정적인 측면은 한편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국내 벽화마을 관련 연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조성된 벽화마을의 정체성에 대해 주민과 외부인이 유의미한 수준의 차이를 보인다는 점은 벽화마을의 관광지화가 지역 주민의 일상으로부터 괴리되고 있음을 드러낸다(김예림과 손용훈, 2017; 우은주와 김영국, 2018).
또한 관광지화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을 의미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도 언급되고 있음이 확인되는데, Ley(1994)는 일찍이 이를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의 한계로 보고 문화적 자본이 관광객의 유입으로 이어지며 지역의 관광지화를 이끌 때 젠트리피케이션이 수반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내 벽화마을의 관광지화에 따른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사례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앞서 서술한 이화동 벽화마을과 흰여울문화마을은 관광지화 이후 투어리스티피케이션으로 인한 주거환경 훼손, 편의시설의 부족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정윤정과 김진아, 2016; 우은주 등, 2017; 우은주와 김영국, 2018) 이와 같은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향후 벽화마을 조성 시 계획 초기 단계부터 해당 지역이 관광지화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 바 있다(김보미 등, 2019). 또한 최근 박지원과 김선영(2024)은 문화적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을지로에서 공공의 개입이 지역정체성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최근 낙후된 마을에 벽화를 조성함으로써 CPTED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흰여울문화마을의 경우 외부인 대량 유입과 기존 인구의 유출로 예방효과가 발휘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벽화마을의 활용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박철현 등, 2020).
이처럼 국내 벽화마을이 문화적 도시재생의 한 유형으로 자리 잡으며 공공미술의 도입 목적 중 하나인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경관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도 확인된다. 감천문화마을, 이화동 벽화마을 등 대표적인 벽화마을이 벤치마킹되며 이후 조성된 벽화마을이 흡사하거나 동일한 주제, 유형, 작업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고유한 개성을 상실하는 역효과를 낸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정윤정과 김진아, 2016). 이와 같은 태도는 벽화마을 홍보 문구에서 보이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난다”(내일신문, 2006.08.03.)나 “지역의 문화예술 중심지로 거듭나길”(정책브리핑, 2016.06.02.)과 같은 표현에서도 드러난다. 이와 관련, 경관의 차원에서 벽화마을의 관광지화 문제를 지적한 정윤수(2020)는 국내 대다수 마을벽화 사업이 미관 정비를 목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발생 조건과 효과성에 의하여” 키치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 결과 획일적인 경관을 조성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정윤수, 2020: 101). 즉, “관광인프라 구축을 위해 지역에 인위적인 명소를” 조성하는 “도시재생=경제적 부흥”의 등식을 따르는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이 획일적인 경관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은 결국 해당 벽화마을이 하나의 스펙터클이자 기념비적 관광목적지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이희숙과 임영상, 2017: 192).
3. 대안적 공공미술로서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 사례 연구
한편, 위의 논의를 공유하며 기존 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한시성을 의도한 비판적 실천을 시도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 이후 진행되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하는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 <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2017~2022)와 <2021 프로젝트 영도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시성을 전략으로 삼아 기존의 벽화 사업에 대한 대안적 방향성을 제시한다. 전자의 경우 서울시 중구 을지로 4가 일대의 야간 골목 경관에 가시적이고 맥락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데 일조했으며, 후자의 경우 부산시 영도구의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에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담론화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기획된 경우이다. 그 형태와 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아카이브와 출판 등 한시성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록의 방법과 공개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각 프로젝트의 사례 연구는 우선 프로젝트별 아카이브, 지자체나 기관 보고서, 언론 매체 기사 등의 문헌 연구와 현장의 직접 관찰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에 더해 각 프로젝트의 기획자 및 관련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젝트별 기획 의도와 상황을 파악하고자 했다. 인터뷰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 기획자(SP1)와 행정 관계자(SP2), 2021 프로젝트 영도의 기획자(YP1)와 행정 관계자(YP2)와 4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후 문헌 연구 및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프로젝트 기획 및 전개 과정을 서술한 후 프로젝트별 한시성을 활용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이하 셔터아트 프로젝트)는 을지로 4가 일대 산림동을 배경으로 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을지로 4가 일대 산림동 지역은 소규모 제조업이 1층 점포 공간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상공업 지구로, 상가의 빈 점포를 청년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으로 임대하는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2016) 사업을 통해 예술창작 지구로 부상했다. 2017년에 산림동 창경궁로5길을 따라 총 13개의 벽화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2019년에는 7개, 2020년에 10개, 2022년에 11개가 추가되었다. 이 중 약 10개 점포가 반복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확인되며, 따라서 총 28개 점포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표 1 참조). 2022년까지 총 41개의 벽화가 만들어졌으며, 그 밖에도 15개의 외부 설치작품과 3회의 교육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또한 온라인 아카이브를 통해 각 작품의 위치를 포함한 연도별 프로젝트의 주요 사항을 기록하고 공개해 오고 있다(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 https://fillupseoul.com/).
연도 | 연차별 주제 및 모티프 | 참여 점포 수 | 작품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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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 눈꺼풀, 카메라 셔터 | 13 | 13 |
2019 | 아저씨 집에 돌아가는 길 | 8 | 7 |
2020 | 도시와 관계, 을지로 | 11 | 10 |
2022 | 숨은 동심 찾기 | 13 | 11 |
자료: 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 아카이브 (https://fillupseoul.com)/
셔터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 프로젝트의 주요 소재는 을지로 4가 일대 점포의 철제 셔터이다. 프로젝트의 주요 대상지인 창경궁로5길은 을지로와 세운상가 변의 뒤편 골목길이자 산림동을 가로와 세로로 직각을 이루며 가로지르는 보행 차로로, 4~5m의 폭을 가지고 있다. 주간에는 소규모 산업체 등 점포 내부가 보이는 역동적인 공업 지구이지만, 각 점포가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면 셔터아트 프로젝트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낮의 역동적인 분위기와 대조되는 조용하고 어두운 거리는 선형의 가로형 갤러리로 변모하며 을지로 야간 가로 경관의 형성에 기여한다(그림 3 참조).
셔터아트 프로젝트의 기반이 된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는 중구청 지역경제과가 주도했으며 재개발 지구로 지정된 후 낙후된 을지로 지역에 경제적 활성화의 계기 마련을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2015년 청년 예술가 첫 모집 단계부터 을지로의 산업 소재를 활용한 전시와 거리 활성화가 요구되었다(중구청, 2015). 이에 따라 셔터아트 프로젝트는 2017년 첫 프로젝트부터 소규모 산업체가 모여 있는 골목길인 창경궁로5길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그림 4, 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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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에서 한 예술 거점 활성화 지원 사업에 대해 중구는 시각 예술가들이 많은 을지로 쪽을 중심으로 지원한다가 큰 골자였고”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가 어떤 부분에서는 성공하고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겠지만 제일 중요한 요인은 공간을 주고 저렴한 임대료를 준다는 것이었어요.”(SP2)





2016년 이화동 벽화마을의 벽화 훼손 사건 이후 벽화를 비롯한 기존 공공미술에 관한 문제의식이 셔터아트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에서 강력한 의제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기획자는 기존 벽화마을 관광지화로 인한 문제가 일차적으로 공간의 소유권에 관한 문제라고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벽화의 소재를 ‘셔터’로 한정 지어 건물주와의 마찰을 피하고자 했다. 또한 벽화를 반공개 상태로 유지함으로써 시공간적 분리 효과가 일어났다.
셔터아트 프로젝트는 기획자가 주제 및 모티프를 선정한 후 행정을 거쳐 예산 승인을 획득한 후, 국내에서 활동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그래픽 디자이너를 연차별 주제에 맞게 섭외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한편으로는 셔터의 실소유주인 점포와의 협의 및 연계가 중요하게 적용되었다.
2020년부터 지자체 차원에서 을지로 셔터아트를 활용하려는 시도가 추진되었는데, 이는 사라질 것을 전제로 조성된 셔터아트 프로젝트가 기획 의도를 벗어나기 시작한 지점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 이후 문화·예술 관련 집단이 모여들며 지역색이 바뀌었다는 의견도 공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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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없어지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데크도 공사하고 있었고. 이 셔터들까지 같이 없어지면 그게 차라리 아주 좋은 그림이야 이런 느낌이었거든요.” “2019년 지나고 나서 이게 우리 동에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되었나 봐요. [그] 이후로는 사실 합의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까 제가 원했던 대로 되지 않았어요.”(S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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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을지로에는] 자신을 만들어내고 자기만의 색으로 채워나가고 이런 것들이 능숙한 사람들이 집약돼 있고 그들이 만드는 색깔과 이 지역의 톤이 너무 달라서 그들이 내는 색이 되게 더 밝아 보이게끔 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SP2)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 바와 같이, 셔터아트 프로젝트는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으로 진행된 벽화와 같은 고정형 공공미술 사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기획되었으나 2020년부터 지자체 정책과 맞물리게 되며 당초 기획 의도를 벗어나게 되었다. 셔터아트 벽화 역시 을지로의 도시미관 사업으로 진행됨에 따라 지역 관광지화에 일조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그럼에도 해당 프로젝트의 기획 및 진행 과정에서 ‘한시성’을 통해 기존 벽화 사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을 우선 살펴보았다.
셔터아트 프로젝트에서 한시성이 적용된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산림동 일대가 2006년 지정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일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2017년 시점까지 10여 년간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기획 단계에서 고려되었다. 해당 지역이 재개발된다는 가정 아래 셔터아트 프로젝트 작품 대다수가 수년 후 사라질 것이라는 전제가 존재했으며, 따라서 온라인 아카이브를 통해 프로젝트의 기획, 운영 과정, 결과를 기록하고 계속해서 공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두 번째 방식은 해당 지역이 산업 지구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셔터아트 프로젝트의 관람 시간이 야간 또는 주말이라는 시간적 한계를 지니도록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해당 지역의 시간적 특성을 구분하여 기존의 경관을 새로운 경관으로 덧입히지 않으면서 공존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또한 이 결정은 점포주에게 작품의 전시 여부를 선택할 권리와 역할을 부여한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기존 벽화마을이 상시 전시되어 있어 지역 주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을 때, 셔터아트 프로젝트는 그 전시 여부를 점포주의 선택으로 넘긴다는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즉,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에서 공공미술 사업의 결과로써 대상지의 관광지화가 기존 지역민의 소외와 연관되어 있다면 셔터아트 프로젝트는 한시성을 전략으로 삼아 이를 예방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2021 프로젝트 영도 ‘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이하 2021 프로젝트 영도)는 앞서 살펴본 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에 비해 직접적으로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에 관한 문제의식을 공공미술 사업의 모티프로 끌어올린 경우이다. 영도문화도시센터(2019~2024)의 주관으로 총 3년에 걸쳐 진행된 리서치형 공공미술 프로젝트 ‘프로젝트 영도’의 2년 차 사업으로서 진행되었으며, 이 연구에서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현수막 프로젝트 외에도 선언문 출판, 시민살롱 등 7종의 세부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영도에서 진행되는 공공미술의 전개에 의문을 던지고 제동을 걸어 담론화의 발현을 꾀했다(표 2 참조).
자료 출처: 영도문화도시(https://ydct.works/)
부산시 영도구는 흰여울문화마을, 깡깡이예술마을(대평동), 봉래동 창고군 재활성화 등 여러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의 배경이 되어왔다. 이에 더해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제1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며 약 160억원의 재원을 투입해 영도문화도시센터를 거점으로 이 지역의 문화적 잠재력을 발굴하고 도시의 재활성화를 꾀한 바 있다(문화체육관광부, 2018). 영도문화도시센터는 주민 대상 구술 아카이브, 디자인 문화·예술 프로젝트, 문화기획자 양성, 해양문화지표 개발 등 주민 주도적 방식을 탐구하며 2024년 사업이 종료되기 전까지 낙후 지역의 문화도시 선정과 운영에 관한 사례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지자체가 아닌 민간 주도로 자체 운영되어 민관협력 사업의 선례를 남겼다는 평가도 받은 바 있다(부산일보, 2024.10.05.).
2021년 프로젝트 영도의 기획 및 진행 과정 검토에 앞서 전년도를 포함한 ‘프로젝트 영도’ 전반의 사업 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년도에 진행된 2020년 프로젝트는 영도가 지닌 “지역적 특수성과 역사적 상황으로 빚어진 이미지와 이야기를 수집하고, 탐색자의 시각으로 지역을 재해석”하는 영도 리서치와 “잊혀진 혹은 주목받지 못한 공간의 임의적 활용을 통한 새로운 장소 발굴, 알려진 혹은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예술적 발현을 통한 새로운 장소 해석”을 꾀한 플레이스랩으로 구성되어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 영도에서 공공미술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영도문화도시, https://ydct.works/).
기획자와 영도문화도시센터는 2020년 리서치 프로젝트 결과를 바탕으로 2021년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아무것도 만들지 않겠다”로 정했으며, 특히 벽화나 조형물과 같은 공공미술의 전형적 결과나 장소를 반영구적으로 점유하는 형태의 작품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었다(권은비 등, 2022). 그럼에도 가시적으로 영도의 공공미술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 대상지 인근 지역을 선정하여 일정 기간 설치된 현수막 퍼포먼스였다(그림 6 참조).

현수막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건물의 옆면을 가릴 수 있는 크기의 대형 현수막과 공공 현수막 지정 게시대에 맞춘 가로형 현수막이 제작되었으며,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과 공공미술 사업이 일어난 지역 경관의 한켠을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게시되었다. 현수막의 내용은 ‘공공미술 선언문’과 ‘공공미술 관념 사전’의 내용에서 일부를 가져왔으며, 지나가는 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을 취했다. 한편 깡깡이예술마을의 대형 현수막과 가로형 현수막이 일부 주민의 민원을 받았는데, 현수막에 게시된 질문이(“이 벽화를 지워도 되겠습니까?”) 실제 벽화를 지운다는 것으로 오해를 사거나 기존 벽화 작업에 참여한 작가와 협의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부산일보, 2022.02.20). 이 현수막은 곧 철거되었으며 이후 ‘북토크’와 ‘공론장’ 행사가 진행되며 현수막 퍼포먼스를 비롯해 영도의 공공미술 현황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 대한 찬반 논의가 진행되었다(영도문화도시, https://ydct.works/)(그림 7 참조). 한편으로는 영도를 넘어 지역 재생 과정에서 공공미술의 활용 전반에 관한 담론을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견도 있었다(문화정책리뷰, 202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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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론장이 코로나19로 미루게 되고 출판이 우선되면서 일이 커졌죠.” “스터디 직후에는 벽화를 가리는 것부터 시작하자라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논의 결과 비점유 공공미술의 방법으로 현수막이 나왔어요.”(Y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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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과정에서] 공공미술에 관한 질문이 벽화[그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되었다.”(YP2)

2022년 프로젝트가 영도의 공공미술 전수조사를 하는 것으로 방향이 수정 진행되며 3년차 사업이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2022년 프로젝트 영도의 3년차 사업으로 진행된 ‘영도 공공미술 전수조사 연구’는 도시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공공미술’ 작품을 재조명함으로써 도시 경관에서 공공미술의 기능적 역할과 의미의 부재에 관한 경각심을 주고자 했다. 이 사업은 일상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음에도 시선에서 빗겨나가 존재하는 공공미술의 현황을 살펴 도시 공간에서 공공미술의 위치와 역할을 제고하기 위함이었다(영도문화도시, https://ydct.works/).
앞서 살펴본 인터뷰 및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드러난 바와 같이 2021 프로젝트 영도의 현수막 퍼포먼스는 단독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 보기 어려우나, 벽화의 표현 방식을 가져와 기존 공공미술 벽화 사업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연구에서 다루는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2021 프로젝트 영도의 경우 공공성을 분명한 주제로 삼고 있었다고 보이며, 그 과정에서 문화적 도시재생과 공공성이 가진 관게에 대한 환기를 불러오고자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할 수 있다.
2021 프로젝트 영도가 기획 단계에서 적용한 한시성은 두 가지 맥락에서 드러난다. 먼저 3년간 진행된 프로젝트의 다층적 아카이브가 보여주는 시공간적 한계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일련의 프로젝트는 영도에서 문화적 도시재생이 진행된 배경과 그 결과로써 형성된 도시 경관, 그리고 경관의 일부로 존재하나 인식되지 않는 여러 차원의 공공미술에 관한 비판적 담론화를 지향하고 있고, 반영구적 공공미술 실천을 지양한다는 관점으로 인해 그 한계 또한 명확하다. 연도별로 주제 의식과 논의 과정을 담은 아카이브를 온라인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결과는 주로 텍스트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즉, 실제로 구현되는 공공미술 작업이 아니기에 결과적으로 이 일련의 프로젝트는 담론화를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두 번째 맥락은 현수막 퍼포먼스를 통한 기존 공공미술 사업의 방식에 대한 직접적인 질의이다. 현수막이라는 소재가 지닌 성질은 한시적으로 게시되고 일정 기간 이후 철거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어 기존 도시재생 사업에서 공공미술의 활용에 대한 문제 제기의 수단으로 삼아졌다. 퍼포먼스와 같은 한시적 예술의 형태는 그 자체로도 기존의 기념비적 예술 형태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더해 현수막이 벽화가 지닌 반영구적 성질에 대응하는 비점유적 소재로 활용됨으로써, 이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 언급된 공공미술에 관한 담론화를 위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4. 공공미술로서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의 함의와 한계
이 연구에서 살펴본 두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는 기존 공공미술 방식의 문제점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분석했으며, 한시성을 적용해 비판적 실천의 전략으로 삼았다. 달리 말하자면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과 공공미술 사업의 현황을 참고한 대안적 공공미술의 형태로 기획되었으며 나아가 기존의 방식에 물음을 던지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으로 한시성을 적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각각의 방식으로 Kromholz(2020)가 주장한 ‘상실을 통한 퍼포먼스’를 일으킴으로써 한시성을 활용한다.
을지로 셔터아트의 경우 벽화마을의 관광지화 및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의 문제 중 하나로 벽화로 전환된 공간을 원래부터 소유하고 점유하는 자와 그 공간을 새롭게 향유하려는 자 간의 갈등을 꼽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셔터아트 프로젝트가 ‘벽’의 대안으로 삼은 ‘셔터’는 오히려 작품의 공공성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한편 작품의 한시적 전시를 해당 지역의 일상과 연계시키는 전략을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한시성이라는 전략을 발판 삼아 공간의 점유자인 점포주에게 셔터아트 프로젝트의 전시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주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을지로 일대가 기존 벽화마을과 달리 주거지가 아닌 산업 지구이며, 따라서 낮과 밤을 구분하여 작품의 전시에 한시성을 부여하는 전략이 가능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반면 2021 프로젝트 영도는 한시성을 다층적으로 적용하여 현수막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공론장을 통해 논의를 개진하는 전략을 취하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공공미술 사업에서 공공성이 발휘되는 방식과 그 한계를 짚어보고자 했으며, 공공미술 사업의 현황 조사를 바탕으로 문화적 도시재생에서 공공미술의 적용 방식이 지닌 장단점을 담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벽화와 같은 공공미술의 반영구성에 반하는 상실의 가능성과 한시성을 담은 현수막 게시를 통해 기존 벽화마을과 같은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가시화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게시 이후 지역 주민의 민원과 공론장에서 프로젝트의 도발적인 형태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며 논의가 불거진 점은 오히려 2021 프로젝트 영도가 전달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이 유의미하게 발휘되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한시적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에서 진행된 공공미술 사업의 의미를 확장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지역 사회의 참여를 이끌고 정체성을 수립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목표이자 이상향이라면 이처럼 논의를 불러들이고 기존의 틀에 충격을 일으켜 해체를 시도하는 행위는 그 과정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한시적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기존의 공공미술 작업을 보완하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가 한시성을 통해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에서 공공미술 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고 대안적 창구를 만들고자 했음에도 그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 또한 중요한 측면이다. 우선 을지로 셔터아트의 경우 산림동의 재개발을 염두에 두어 한시적으로 존재할 것이라 기획되었음에도 진행 과정에서 지역의 관광지화에 기여하며 당초 기획에서 비판하고자 했던 방식을 답습했음은 해당 프로젝트의 비판적 지점에 해당한다. 이는 결국 해당 프로젝트가 상기 살펴본 문화·예술의 통한 도시재생 사업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대안적 실험에 그쳤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한계점은 한시성이 지닌 본질에 관련되는 것으로,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 혹은 한시성을 적용한 공공미술이 ‘사라짐’을 예견하는 한편 다른 방식으로 기록이 병행된다는 점이다. 사례 연구를 통해 살펴본 두 프로젝트 역시 아카이브의 형식을 통해 한시성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카이브가 예술의 한 장르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두 사례의 경우 한시성이 지닌 ‘사라짐’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이를 공공미술 작업의 일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두 프로젝트가 실행하고자 했던 비판적 실천이 아카이브로만 남는다는 점은 결국 한시성의 한계인 것이다. 특히 공공미술에 관한 논의를 확산하고자 했던 2021 프로젝트 영도는 그 확산에 한계가 있다고 보이며, 이는 추후 한시성을 적용하고자 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기획과 실천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요소이다.
5. 결론
이 연구는 한시적 벽화 프로젝트로서 <을지로 셔터아트 프로젝트>와 <2021 프로젝트 영도>의 사례 연구를 통해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의 공공미술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한시성의 함의와 한계를 살펴보았다. 두 사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시성을 적용하여 기존 문화적 도시재생의 방식과 결과에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을 구체화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문화적 도시재생의 평가와 연구에 있어 공공미술의 비판적 실천 사례를 보다 면밀히 살펴봐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연구에서 다룬 두 사례 역시 문제의식을 구체화하여 논의의 초석을 수립하는 데 그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셔터아트 프로젝트의 경우 관광목적물로서 을지로 야간 경관이 정착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여지가 있으며, 2021 프로젝트 영도는 영도 지역민, 지역 문화 기획자, 공공미술 종사자 외 도시재생 경관의 주요 학제인 도시와 조경 분야까지 아우를 가능성을 지닌 공론적 틀을 시도하는 데 그쳤다. 이는 한시성을 적용한 공공미술의 한계이기도 하며, 추후 문화적 도시재생 추진에 있어 복합적인 고려가 필요한 측면이다.
다만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등 뚜렷한 타개책이 없이 난관에 봉착한 국내 지자체에서 지역 활성화의 전략으로서 문화관광산업의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공미술 적용되어 경관을 관광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한시성과 같은 대안적 관점을 통해 기존 방식에 의문을 던지고 논의를 확장하는 일은 공공미술, 도시재생, 관광 활성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조성되는 앞으로의 도시 경관을 해석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지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