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대한민국 강원도 태백시는 일제강점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서 국가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태백 지역에서는 광산시설과 탄광촌이 집중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와 함께 광부와 지역 주민들의 삶과 문화가 독특하게 발달하였다. 이러한 산업 활동은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깊은 영향을 미쳐, 태백 탄광유산이라는 복합적인 문화경관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89년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 이후 석탄 산업의 쇠퇴와 함께 다수의 탄광이 폐광되면서 태백 지역은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광산 기반의 물리적 환경 역시 큰 변형을 맞았다. 폐광으로 인한 산업 시설의 폐허화, 자연 지형의 변화, 환경 훼손 등은 지역 경관과 정체성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태백은 위령제와 같은 무형의 종교적, 문화적 실천이 현존하는 공간으로, 탄광유산의 물리적 요소와 함께 지역 공동체의 집단기억과 정체성이 중첩된 복합적 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탄광유산은 단순히 과거 산업 활동의 흔적을 넘어, 자연 지형의 변형과 광산 구조물의 도입, 산업 기반 시설 및 도시 공간 형성, 광업 활동에 따른 환경 변화,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형성이라는 다층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이에 따라 태백 탄광유산은 산업유산 측면 뿐만 아니라 문화경관 연구에서도 중요한 대상이 된다.
본 연구는 태백 탄광유산을 대상으로 하여 그 문화경관적 특성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선행연구인 김보람 등(2025)에서 제시한 광산유산의 문화경관 분석틀을 국내 도시를 통해 입증하는 사례 연구를 진행한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자연 지형의 변형과 이에 따른 광산 구조물의 도입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태백 지역의 물리적 경관 변화 양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둘째, 산업 기반 시설과 탄광촌 및 도시 공간 형성을 고찰하여,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공간적·사회적 변화를 조명한다. 셋째, 광업 활동에 의해 발생한 환경적 변화를 검토하고, 이로 인해 지역 경관과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평가한다. 넷째, 태백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형성과 이를 매개하는 무형문화 요소 등 집단기억과 문화적 실천을 탐구한다.
이와 같은 네 가지 핵심 요소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통해, 태백 탄광유산이 갖는 복합적 의미와 가치를 학술적으로 재조명하고, 향후 탄광유산 보존 및 지속 가능한 문화경관 관리, 그리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 연구는 강원도 태백시 전역을 대상으로 하여, 탄광유산의 문화경관적 특성을 다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분석 범위는 특정 광업소에 한정하지 않고, 장성광업소와 강원탄광을 포함한 다수의 공영, 사영 탄광시설, 관련 기반 인프라, 광산촌과 도시 공간, 버력더미 및 침출수 유출지 등의 환경 요소, 그리고 위령제, 산신제와 같은 공동체의 무형 실천 전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설정하였다. 특히 폐광 이후 변화한 도시 공간과 경관의 전개 과정, 그리고 현재까지도 유효한 집단기억의 장소를 중심으로 현장 기반성을 확보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정성적 해석을 중심에 두되, 시계열 공간자료 해석과 물리적 구조물의 분포 분석 등 정량적 요소를 보완적으로 포함하는 질적 중심 혼합 방법론(qualitatively-driven mixed methods)을 적용하였다. 질적 중심 혼합 방법론은 정성적 탐구를 중심으로 하되, 정량적 요소를 보완적으로 활용하여 복합적 경관 현상을 다층적으로 해석하는 접근 방식이다(Denscombe, 2008). 먼저 문헌 분석을 통해 국내외 탄광유산 및 문화경관 관련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태백시와 광산 관련 행정자료, 지역 보고서, 공간정보, 역사기록 등을 수집하여 탄광산업의 형성과 변천, 그리고 유산화의 흐름을 개괄하였다. 다음으로 태백 전역에 분포한 광산 관련 공간에 대해 현장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 과정에서는 채굴 구조물의 잔존 상태, 자연지형의 인위적 절개와 매립, 산업 기반시설의 유형과 입지, 사택지와 도시 구조의 구성, 버력더미 및 침출수 유출 지점 등의 요소를 직접 관찰하고 지도 및 지형도 분석을 병행하였다. 특히 191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지형도 비교를 통해 태백의 공간 변화 과정을 시계열적으로 해석하였으며, 이러한 시각자료 해석은 정성적 분석을 보완하는 정량적 자료로 활용되었다.
또한 지역 주민 및 관련 종사자들과의 심층 인터뷰, 구술사적 접근을 통해 탄광 관련 의례, 종교 실천, 공동체 조직문화와 기억의 방식 등 무형문화적 요소를 심층적으로 탐색하였다. 이러한 분석은 선행 연구에서 제시한 광산유산의 문화경관 요소를 기반으로 수행되었으며, 구체적으로는 자연 지형의 변형과 구조물의 도입, 산업 기반 시설과 도시의 형성, 광업 활동에 의한 환경적 변화, 지역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형성이라는 네 가지 핵심 항목을 중심으로 자료를 구조화하고, 상호작용적 관점에서 문화경관의 복합성과 축적된 의미를 해석하였다. 이와 같이 유형유산, 무형유산, 환경 변화, 사회기억이 중첩된 문화경관으로서 태백의 탄광유산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 사용되는 ‘탄광유산(coal-mining heritage)’은 석탄 채굴과 관련된 유형적 및 무형적 자산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 개념이다. 이는 산업시설과 기반 인프라뿐 아니라, 석탄 산업으로 인해 변화한 자연환경,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과 집단기억까지 포괄하는 문화경관적 총체로 이해한다. 이처럼 탄광유산은 산업화와 탈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물리적 경관뿐 아니라 무형문화적 층위에서도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한편, ‘광산유산(mining heritage)’은 금속, 비금속, 석탄 등 다양한 광물 자원의 채굴과 관련된 산업유산 전반을 포괄하는 탄광유산의 상위 개념으로, 본 연구에서는 이론적 배경과 선행연구 검토에서 참고되는 개념이다. 광산유산은 국제적으로 정립된 단일한 정의보다는 산업유산(industrial heritage)의 하위 범주로 이해되며, 관련 논의는 주로 세계유산 등재 사례나 연구자 주도의 개념 정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노르파드칼레 광산지대(Nord-Pas de Calais Mining Basin)’와 일본의 ‘이와미 은광과 그 문화경관(Iwami Ginzan Silver Mine and its Cultural Landscape)’과 같은 세계유산 등재 사례에서는, 채굴 및 가공 시설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정착지, 경관,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실천까지를 통합적으로 포함하는 방식으로 광산유산을 정의하고 있다(UNESCO, 2007; 2012; 김보람 등, 2025).
따라서 본 연구는 이러한 해석에 기반하여, 광산유산을 광물 자원의 채굴 및 가공과 관련된 유형의 물리적 시설뿐 아니라, 광산 활동을 둘러싼 공동체의 기억과 일상적 실천, 상징성 등을 포함하는 복합적 문화경관으로 이해한다. 이 중에서도 석탄 산업에 특화된 탄광유산을 본 논문의 주요 대상 범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고유한 문화경관적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연구의 대상은 특정 광업소에 국한하지 않고, 태백시 내에 위치한 다수의 광업소와 관련 탄광시설, 탄광촌, 산업 기반 인프라, 주변 자연환경,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실천 전반을 포괄한다. 태백시는 20세기 중후반 석탄 산업의 중심지로서 공영 및 민영 광업소가 다수 분포하였으며, 이들 광업소는 산업시설뿐 아니라 사택지, 위령공간, 종교, 의례 시설, 생활 인프라 등과 함께 탄광경관을 구성해 왔다. 각 광업소는 운영 주체와 규모, 입지에 따라 서로 다른 산업 구조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였으며, 그 결과 형성된 경관 또한 상이한 특성과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연구 대상의 설정은 태백 탄광유산이 지닌 역사적, 산업적, 문화경관적 특수성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하며, 지역 내 다양한 광업소와 탄광경관을 아우르는 종합적 해석에 기여할 것이다(표 1 참조).
자료: TICCIH, 2003; 저자 작성
2. 선행연구 및 이론적 배경
탄광을 단순한 산업시설이 아닌 유산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국내외에서 점차 확장되어 왔다. 특히 국내에서는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산업유산의 도시재생 활용을 넘어서 기억, 정체성, 문화경관 등 비가시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탄광유산에 대한 연구의 외연이 넓어졌다. 다음은 이러한 연구 흐름을 시계열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가장 이른 시기의 연구인 Dicks(2008)는 영국 탄광박물관에서 전직 광부들이 자신의 삶을 해설하는 과정에서 계급성과 자율성, 억압의 긴장이 어떻게 공연되고 재현되는지를 분석하였다. Scott(2009)는 영국 더럼의 전 탄광촌에서 기념물 설치, 배너 복원, 회고적 출판 등을 통해 지역 공동체가 자율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진종헌(2012)은 국내에서 산업유산과 유산관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태백 철암지역의 유산 보존과 활용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시각 차이를 통해 산업유산 보존이 지역 발전 전략에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점검하였다.
홍종열과 박치완(2014)은 독일 루르지역의 에센을 사례로, 유럽문화수도 지정과 산업유산을 활용한 도시재생의 과정을 분석하였다. Costa(2016)는 브라질 탄광마을의 환경갈등이 종교 축제와 연결되며 공동체 기억으로 전환되는 사례를 통해, 유산을 물리적 실체가 아닌 기억의 장으로 해석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Vall(2018)은 1960~80년대 영국 박물관에서의 산업유산 전시가 정치권력과 대중 기억 사이의 긴장 속에서 구성되었음을 보여주며, 산업유산 전시의 정치성을 분석하였다.
박준식과 박성원(2019)은 강원도 탄광지역과 일본 사례를 비교 분석하며, 산업 전환기 유산화 전략의 필요성과 공동체 기반의 유산 활용을 강조하였다. 최윤서와 최민욱(2019)은 일본 쿠시로 산탄지역의 재생 사례를 통해 제도 기반의 복합 거버넌스 구조가 유산 보존과 정체성 유지에 기여하는 방식을 조명하였다. 김도현(2019)은 태백 지역을 중심으로 탄광 개발, 교통망, 종교공간, 위령시설 등을 포괄하는 탄광유산의 공간 구조를 실증적으로 제시하였다. 같은 해 Matsuura(2019)는 일본 미이케 탄광의 공식 서사와 전직 광부들의 ‘부의 유산(負の遺産)’ 간의 충돌을 통해 유산의 공공성은 다층적 기억의 개방에 기반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영진(2022)도 미이케 탄광의 세계유산화 과정에서 강제노동과 노동쟁의 같은 어둠의 기억이 배제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공식 유산 서사의 정치성을 문제삼았다.
Syafrini et al.(2020)는 인도네시아 사왈룬토의 세 개의 박물관이 광산의 기억을 공동체 정체성의 실천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분석하며, 유산 공간의 교육적, 사회적 기능을 부각시켰다. 또한, 이어진 연구에서 사왈룬토가 유령도시 전락 위기를 극복하고 유산 관광도시로 재편된 과정을 통해, 지역 주체성과 유산 자원의 창의적 해석을 강조하기도 하였다(Syafrini et al., 2022). Kretschmann(2020)은 독일 석탄산업의 종결 과정을 지속가능발전 관점에서 조망하며, 탈석탄 지역이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을 논의하였으며, 이용규(2021)는 졸페라인 탄광의 유휴부지 전환과 도시재생 사례를 소개하며, 국내 폐광지역에 적용 가능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영남(2022)은 독일 루르지역의 산업문화경관을 문학·정신사적 기반에서 해석하며, 탈산업화 이후에도 이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억의 토대를 조명하였다. 손승호(2023)는 문경 은성광업소의 테마파크화가 유산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유산 보존과 활용 간의 균형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Gillette and Boyd(2024)는 중국의 폐광공원이 어떻게 관광객의 해석을 통해 유산 의미를 재구성하며, 국가 유산 정책과 긴장을 형성하는지를 디지털 민속지를 통해 분석하였다.
정여진(2024)은 폐광 직후의 화순탄광 사례를 분석하여, 선탄시설, 욕장 등 주요 시설물의 보존 가치를 도출하고 기념관 및 복합문화공간 조성을 제안하였다. Liu et al.(2024)는 경관특성평가(LCA)가 역사적 탄광경관의 보존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제시하였다. 이 연구는 정량적 경관분석과 이해관계자 참여의 결합이라는 실천 기반 보존 전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김보람 등(2025)은 광산유산을 문화경관적 접근을 위해서 자연 지형의 변형과 구조물의 도입, 산업 기반시설과 도시의 형성, 광업 활동에 의한 환경적 변화, 지역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형성이라는 특징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또한, 김보람과 성종상(2025)은 탄광에서 재해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태백의 추모 공간을 정리한 바 있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시기와 지역, 방법론의 차이를 지니고 있으나, 탄광유산을 산업시설로서만이 아니라 기억, 정체성, 공간, 경관 등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하려는 공통된 경향을 보여준다. 기존 연구들은 자연 지형의 변형과 구조물의 도입, 산업 기반시설과 도시의 형성, 광업 활동에 의한 환경적 변화, 지역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형성이라는 네 가지 범주로 명확히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논의 속에서 이들 요소가 공통적으로 드러나며 탄광유산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이러한 요소들을 체계적인 분석의 틀로 삼아, 탄광이라는 구체적 산업유산을 문화경관적 관점에서 심층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들과 차별화된다. 이는 유형적 자산과 무형적 기억, 공간 구조와 사회적 실천을 통합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탄광유산의 다층적 가치를 드러내는 데 학술적 의의가 있다.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이란 특정 지역에서 인간과 자연이 오랜 시간 상호작용하여 형성한 경관으로서, 자연 환경과 인문 환경이 결합된 총체적 공간을 의미한다(https://whc.unesco.org/en/culturallandscape). 이는 초기 지리학자 Sauer(1925)가 문화는 동인(agent), 자연적 영역은 매개체(medium), 그리고 그 결과(result)가 문화경관이라고 정의한 바와 같이, 원생 경관(natural landscape)에서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으로의 ‘천이(transformation)’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문화경관 연구는 단순한 물리적 경관의 분석을 넘어서, 역사적 기억, 사회·문화적 정체성, 집단 기억,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삶의 방식 등 다양한 무형적 요소들을 포괄한다.
탄광유산은 이러한 문화경관의 정의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산업시설과 구조물 등 유형 자산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자연환경, 사회적 관계, 문화적 실천이 결합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즉,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역사적, 공간적 산물로서,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낸 하나의 문화경관 유형이라 할 수 있다.
탄광경관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 개입에서 출발한다. 채굴을 위해 산림이 벌채되고 산지의 형태는 절단되거나 굴착되었으며, 그 위에 갱도, 선탄장, 석탄 하역장 벙커, 폐석장, 송풍구 등 다양한 산업 시설들이 도입되며 공간의 물리적 기반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자연 지형의 변형과 구조물의 도입은 탄광경관의 시원(始原)을 구성하는 동시에, 경관의 장소성과 기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구조물들은 단순한 생산 기능을 넘어서, 공간에 의미를 고정시키는 표지로 기능하며 이후 공간 전개의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변형 위에 구축된 공간은 점차 생활과 생산이 중첩된 정주 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철도와 도로망, 주택지, 행정시설, 병원, 학교, 상점 등 다양한 산업 기반 시설이 집적되며, 도시적 경관이 형성된다. 이처럼 산업 기반시설과 도시의 형성은 산업 기능과 일상생활이 맞물리는 복합적 공간 구조를 낳았으며, 이는 노동자의 삶과 문화가 응축되는 공간적 기반이자, 탄광도시 특유의 경관성을 이루는 구성 요소이다. 산업이 쇠퇴한 이후에도 이러한 공간 구조는 지역 공동체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탱하는 배경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편, 광업 활동은 환경적 변화를 수반하며 경관에 지속적인 영향을 남긴다. 폐석더미, 침출수, 지반 침하, 수질과 토양 오염 등은 단순한 부작용을 넘어 경관의 상흔으로 작용하며, 탈산업화 이후의 복원 및 전환 논의의 핵심 의제가 된다. 이러한 광업 활동에 의한 환경적 변화는 문화경관 내부의 시간성과 긴장을 드러내며, 자연과 산업, 그리고 재생이라는 시계열적 경로 속에서 재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무엇보다도 탄광유산의 문화경관 형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지역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정체성이다. 공동체는 위험한 작업 환경과 열악한 주거 조건 속에서도 생존을 도모하며, 종교의례, 위령행사, 구술사, 축제, 박물관 조성 등의 방식으로 공간을 해석하고 의미를 재생산해왔다. 이처럼 지역 공동체의 실천은 구조물과 환경을 단순한 물리적 자산을 넘어 의미 있는 장소로 전환시키는 행위이며, 유형과 무형이 맞물리는 문화경관의 동적인 실체를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탄광유산의 문화경관은 구조물, 도시, 환경,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얽혀 구성된 복합적 총체이다. 본 연구는 이 네 가지 요소를 단순한 유형 분류가 아닌, 시간성과 층위성, 주체적 실천이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문화경관의 구성 원리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태백의 탄광유산이 지닌 다층적 문화경관적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기존에 물리적인 현상을 중심으로한 산업유산적 측면의 탄광유산 해석을 넘어서서,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무형적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는 문화경관으로서의 유산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3. 태백 탄광유산의 문화경관적 특성
태백 지역의 탄광경관은 본래의 산악 지형 위에 산업 기능을 수용하기 위한 구조물의 도입과 지형 개조가 중첩되며 형성된 전환적 공간이다. 이는 단순한 자연 지형의 훼손이 아니라, 특정 자원의 추출을 위한 입지 선택과 기술적 적응의 과정을 통해 자연경관이 산업경관으로 이행한 결과이며, 문화경관의 형성과정에서 초기 조건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이해할 수 있다.
태백은 함백산, 연화산, 매봉산 등 해발 800m 이상의 고지를 중심으로 한 급경사 산악지형과 좁은 계곡, 분지가 복합적으로 분포하는 지역으로, 일반적인 도시개발이나 대규모 산업입지에는 적합하지 않은 지형적 조건을 지닌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질학적으로 석탄층이 지표 가까이에 분포하는 함탄지대로, 채굴의 효율성과 경제성이 확보되는 지대였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부터 석탄 광맥의 노출 여부, 진입로 확보 가능성, 지반 안정성 등 지형적 요건을 바탕으로 한 입지 선정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산업 입지를 결정짓는 첫 번째 경관 형성 조건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석탄산업이 국가 주도의 에너지 정책 중심에 위치하면서 태백 일대에는 광범위한 산업 구조물이 집중적으로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산허리를 따라 수평갱이 개설되었으며, 이후에는 진입도로, 송풍구, 리프트, 벨트컨베이어, 선탄장, 저탄장 등 다양한 보조 설비가 갱도 주변에 구축되었다. 특히 1985년 미국 차관으로 건립된 장성광업소의 제2수갱은 63m의 수직갱 구조물로, 수직채탄 방식 도입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이자 태백 시가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경관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은 수직 구조물은 지형의 기울기를 극복하며 공간을 수직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기능적 효율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경관적 인지 가능성을 높였다.
광산 구조물의 입지는 대부분 산지의 기울기를 따라 절개하거나 매립하는 방식으로 설치되었으며, 기존의 지형적 맥락은 산업 기능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재편되었다. 예컨대 선탄장과 저탄장이 위치한 철암역 일대는 인근 여러 광업소에서 채굴된 석탄을 집결, 선별하여 철도망을 통해 전국으로 운송하던 공간으로, 철도 인프라와 결합된 전형적인 산업 복합지대를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구조물의 집적은 단일 기능 수행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 내 생산, 이동, 분류, 운송 등 산업 활동의 연속성을 공간적으로 조직하며 산업경관의 성격을 강화하였다.
태백의 탄광경관 형성은 시기별로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였다. 첫째, 일제강점기에는 지질 조사와 함께 철암역두(鐵岩驛頭) 선탄시설 등의 초기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둘째, 1950~70년대는 광산 개발이 본격화된 시기로, 장성광업소 및 주요 철도·도로망이 집중적으로 확장되며, 광산과 도시의 경계가 점차 약화되었다. 셋째, 1980년대는 자동화 설비와 수직갱의 도입을 통해 채굴 효율성과 산업시설의 규모가 확대되던 시기로, 구조물의 시각적 위상이 더욱 강화되었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 이후 산업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다수의 구조물이 폐기, 철거 또는 방치되었고, 산업경관은 기능을 상실한 채 지형과 결합된 잔존경관으로 전환되었다(그림 1 참조).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구조물은 단순한 생산 인프라를 넘어 지형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관 구성의 주체로 기능하였다. 자연 지형은 절개, 굴착, 매립 등을 통해 산업 목적에 맞게 재편되었으며, 구조물은 공간 내 위계와 기능을 고정하는 요소로 작용하였다. 특히 광산 구조물의 배치는 이후 도시공간의 형성과 생활공간의 조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곧 산업과 일상이 중첩되는 공간 구조로 이어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태백의 자연경관은 산업 입지의 전략적 선택과 구조물 도입을 통해 재구성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은 물리적 전환뿐 아니라 문화경관 형성의 기초 토대를 이루게 된다.
태백시는 석탄산업의 전개와 더불어 도시로 성장한 대표적인 탄광도시로, 그 도시공간의 형성과 구조는 산업 기반시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었다. 특히 철도와 도로를 중심으로 구축된 수송 기반시설, 탄광을 중심으로 조직된 주거지 및 생활 인프라, 그리고 기능에 따른 공간 분화는 태백의 도시적 경관이 갖는 특수성을 드러낸다.
태백 지역은 20세기 중반까지 강원도 삼척군의 장성읍과 황지읍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며, 산악지형으로 인해 대규모 도시 정주지가 형성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그러나 1960~70년대에 이르러 석탄 수요의 증가와 국가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광산 개발이 집중되면서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고(그림 2 참조), 이에 따라 도시 기반시설과 행정체계가 빠르게 정비되었다. 1981년에는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되어 태백시로 승격되었으며, 이는 석탄산업에 기반한 도시의 형성을 제도적으로 확정한 전환점이 되었다.
산업 기반시설 중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철도망이었다. 1939년 일제에 의해 도계-묵호항 구간의 철도가 개통되면서, 삼척탄광에서 채굴된 석탄이 일본으로 수송되기 시작하였고, 해방 이후에도 철도는 국가 주도의 에너지 수송 체계로 기능하였다. 특히 1955년 전 구간이 완공된 영암선(영주-철암) 개통은 광산과 내륙을 연결하는 주요 노선이었으며(심승희 외, 2016), 이후 1963년 영암선, 철암선, 황지본선, 동해북부선을 통합한 영동선이 조성되었다. 1973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함백선이 태백까지 연장되어, 태백선이 완공되었고, 이는 산업 철도의 전국망 내 통합을 의미하는 결정적인 조치였다. 철암-통리 구간의 스위치백(Switchback) 구조나 루프선로는지형 극복을 위한 기술적 대응으로서, 산업기술과 자연지형의 절충이 만들어낸 독특한 철도경관을 형성하였다(그림 4 참조).
도로망 역시 태백 도시 형성에 핵심적인 기반을 제공하였다. 국도 제38호선과 제35호선이 태백을 중심으로 삼척, 정선, 영월 등 인근 지역과 연결되었고, 산악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터널과 고갯길이 다수 조성되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트럭 기반의 석탄 수송이 확대되면서, 산업도로가 광산과 선탄장, 마을 간을 잇는 실질적인 생활 통로로 기능하였다. 예컨대 장성광업소에서 철암역까지는 석탄을 지하갱도로 이송함으로써 장성동은 비교적 청정한 생활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철암동은 선탄 및 저탄시설이 집중되면서 탄가루에 노출되는 불리한 환경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산업 기반 위에 도시 공간은 기능별로 구획되었다. 갱도 주변에는 사택지와 병원, 목욕탕, 상점 등이 집중되었고, 철암동은 선별과 운송의 중심지, 장성동은 채탄과 주거의 중심지로 기능 분화가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이중 중심적 도시 구조는 광산업의 기능에 따라 결정된 공간 위계로서, 도시계획이 아닌 산업 기능에 의해 도시 공간이 형성된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사택 주변에는 광부 자녀를 위한 학교, 근로자 복지를 위한 목욕탕과 병원 등이 배치되었고, 이는 도시의 기능이 단순 생산을 넘어 자급적 생활권으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도시 공간의 이러한 구성은 탄광 산업의 쇠퇴기에도 일정 부분 지속되었다. 1990년대 이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과 폐광 조치에 따라 많은 광산이 문을 닫았으나, 기존의 기반시설과 공간구조는 곧바로 해체되지 않고 물리적, 사회적 잔존경관으로 남게 되었다. 예를 들어, 돌꾸지 마을은 전형적인 사택지였으며, 강원탄광이 형성되면서 탄광 노동자들과 가족의 중요한 정주지로 기능하였으나, 산업 쇠퇴 이후에는 상부 마을이 소멸하고 하부 마을만 남아 과거
공간 구조의 단편을 유지하고 있다(그림 3 참조). 돌꾸지 마을뿐만 아니라, 현재 대부분의 사택들은 태백시의 인구 소멸로 인해 구조물만 남아 폐가로 방치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태백의 도시공간은 산업 기반시설과 생활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중첩된 복합구조를 형성하였으며, 이는 기능 중심의 계획도시가 아닌, 산업 활동에 따라 형성, 응축, 변형된 문화경관의 일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구조는 산업의 쇠퇴 이후에도 공동체의 정체성과 기억을 지탱하는 물리적 틀로 잔존하게 된다.
태백 지역에서 오랜 기간 지속된 석탄 채굴과 가공 활동은 도시의 성장과 산업 경관 형성을 견인하였으나, 동시에 지역 환경에 복합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야기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채광 및 선탄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훼손, 오염 물질의 배출, 생태계의 변형 등 다양한 차원에서 나타나며, 이는 단순한 환경 피해를 넘어 탈산업화 이후에도 잔존하는 경관의 상흔이자 문화경관의 시간성과 긴장을 반영하는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가장 가시적인 환경 변화는 채광 과정에서 발생한 버력(waste rock)의 축적이다. 석탄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제외된 무가치한 암석 덩어리나 미세 입자는 폐석더미로 분류되어 광산 인근의 산비탈이나 계곡에 적층되거나 무분별하게 방치되었다. 이러한 폐석더미는 산지 지형의 연속성을 단절시키고, 강우 시에는 침식과 토사 유출을 유발하여 인근 하천과 토양에 2차 오염을 야기한다. 실제로 철암동 일대에서는 지금도 대규모의 버력더미가 산지를 따라 적층되어 있으며, 이는 태백 경관에서 산업성과 훼손성이 동시에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로 기능한다.
이러한 폐석더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지역에서 아까시나무(Robinia pseudoacacia) 등 조기 천이 식생의 자생처가 되기도 하였다. 민재기 등(2004)의 연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현재 태백에서는 많은 아까시나무를 볼 수 있다. 이는 오염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수종의 생태적 적응이 반영된 결과로, 특정 식생을 통해 오염된 산업 경관이 생태적 회복으로 전환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 복원이 자발적이며 불균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광산폐석지가 여전히 불안정한 환경조건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중요한 환경 문제는 갱도 내부에 고인 지하수와 탄광 구조물의 잔존물로 인해 발생하는 침출수(acid mine drainage)이다. 갱내의 지하수가 석탄층 및 잔류 금속 구조물과 반응하면서 철, 망간, 아연, 기타 중금속이 용출된 오염수가 형성되며, 이는 지표로 배출되어 하천, 토양, 인근 농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과거 갱내에설치되었던 금속 지지 구조물인 I빔이나 동발목이 부식되면서, 침출수 내 용존 금속 농도가 높아지고 산성화가 심화된다. 동발은 동바리의 준말로 구덩이 양족에 세우는 기둥지주를 말하는데, 원래는 목동발이 많이 쓰였으나 기계화 채탄작업이 시작되면서 쇠동발(I빔)을 쓰게 되었다(오죽헌·시립박물관, 2023). 일부 갱도 입구에서는 붉거나 녹색을 띤 침출수가 시각적으로 확인되며, 이는 지역 주민들에게 오염의 상징적 징표로 인식되고 있다(그림 5 참조).
이와 같은 수질 오염은 단지 자연 생태계에 국한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과거 탄광 인근의 마을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폐석더미에서 유출된 흙탕물로 인해 골목과 도로가 진흙탕으로 변했으며, 주민들은 장화를 신고 생활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정연수, 2010). 탄가루와 침출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환경은 특히 노약자와 아동에게 만성적인 호흡기 및 피부 질환을 유발하기도 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농업용수 및 식수의 오염 사례가 보고되기도 하였다(https://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964774).
중요한 점은 이러한 환경 문제들이 광산 폐광 이후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버력더미는 복토되거나 식생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으며, 폐광된 갱도의 상당수는 물리적으로 폐쇄되었을 뿐, 내부의 정화 시설이나 안정화 조치는 미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갱내 침수에 따른 수압 증가로 인해 붕괴 위험이나 지반 침하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는 환경적 위험이 아직 종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탄광업 활동에 의해 형성된 환경 변화는 물리적 차원의 오염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과 기억에 내재된 감정적 경관 인식과도 연결된다. 오염된 하천, 붕괴된 갱도, 방치된 폐석더미는 단순한 문제의 장소가 아니라, 광산도시의 쇠퇴와 위험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장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문화경관의 구성 요소로서 시간성과 경험, 그리고 기억의 층위를 반영하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태백은 단일 산업에 종속된 도시 구조 속에서 형성된 광산도시 공동체로, 그 사회·문화적 정체성은 탄광이라는 노동 공간과 긴밀히 연결되어 형성되었다. 이러한 정체성은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종교적 실천, 공동체 조직, 의례와 추모, 집단적 기억 등을 통해 구성되고 재생산되었다.
광산 노동은 본질적으로 고위험 작업으로, 광부들은 늘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태백 지역에서는 종교가 공동체의 안정을 지탱하는 주요 문화적 기제로 기능하였다. 대표적으로 대한석탄공사의 위패가 모셔진 장명사, 함태광업소의 위패를 안치했던 청원사와 강원산업 탄광 관련 순직자를 위패로 봉안한 흥복사 등의 불교 사찰은 단순한 신앙의 공간을 넘어, 위령과 집단기억의 장소로 작동하였다. 매년 봉행되는 위령재는 단순한 종교의례가 아니라, 산업재해의 기억을 집단적으로 환기하고 공동체적 연대를 강화하는 상징적 실천이었다. 기독교 역시 광산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지역 교회들에서는 예배와 기도 속에 광부들의 안전을 주요 기도제목으로 삼으며, 신앙과 노동이 긴밀하게 연결된 생활양식을 형성하였다(김보람과 성종상, 2025).
공동체 내부에는 순직자를 추모하기 위한 상징 조형물도 여럿 존재하였다. 태백시 황지동에 위치한 순직산업전사위령탑은 장성광업소를 포함한 태백 전역의 광산업 종사자들을 기리는 통합적 위령 공간으로,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의 기억을 집단적으로 수용하고 기념하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강원산업 탄광이 있었던 동점 지역의 강원탄광 순직자 위령비는 민간 기업 수준에서 마련된 추모비로, 지역 단위에서의 기억 실천이 어떻게 구체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위령 공간들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산업 도시로서의 태백이 지닌 역사적 서사를 장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광산지역의 공동체 의례는 정규 종교의 틀을 넘어 민속적 제의에서도 드러났다. 예컨대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 새벽, 정선 동원탄좌에서는 산신각에서 광산 안전을 기원하는 산신제가 진행되었고, 당시에는 사장(사주)도 직접 참석하였으며 흙돼지를 제물로 바치는 전통적 형태의 제의가 유지되었다(이진수, 2025). 이는 태백 지역의 사례는 아니지만, 다른 탄광도 유사하게 정월 대보름과 단오날에 산신제와 위령제가 진행됨이 확인된다. 이와 같은 의례는 산업과 생명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광부 공동체가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응하는 방식이자, 산업공간에서 형성된 민속적 보호 체계로 해석될 수 있다(그림 6 참조).
공동체 조직문화도 광산업이라는 동일한 직종을 기반으로 강하게 결속되었다. 탄광지역은 기업 내에 예비군 조직이 구축되어 있었으며, 규모에 따라 연대급 또는 대대급 단위의 조직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조직 구조는 국가, 지역, 산업이 연결되는 방식 속에서 광산노동자들이 행정적, 군사적으로 조직화된 집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장성광업소에서는 연례 체육대회가 개최되었으며, 장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이 행사는 태백 전체 마을이 참여하는 지역 축제의 성격을 지녔다(김기석, 2025). 당시 체육대회는 장성과 도계는 5월, 화순은 10월에 각각 거행되었다. 대회 기간 동안은 생산이 중단되고 가족 단위의 참여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노동 공동체가 일상과 축제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삶을 구성했음을 보여준다(그림 7 참조).
한편, 이러한 공동체의 결속은 때로는 집단적 저항으로도 표출되었다. 인근 정선 지역에서 발생한 사북항쟁(1980)은 강원지역 광산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정치적 억압, 생활고 등이 폭발한 사건으로, 태백 지역 광산노동자들의 집단의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당시 태백에서는 직접적 시위가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사북항쟁은 광산 공동체 내부에 내재되어 있던 불만과 구조적 긴장을 상징적으로 대변하였으며, 이후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지역 광산 공동체의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은 종교, 의례, 조직, 추모, 저항의 실천들은 산업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특정 장소를 공동체 정체성의 상징으로 전환하는 일련의 수행적 장소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폐광 이후에도 사찰, 위령탑, 기념비 등의 공간은 공동체 기억의 매개이자 산업도시로서 태백의 역사적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는 유형 구조물과 무형 실천이 결합된 문화경관의 동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태백은 고위험, 고밀도 산업 환경 속에서 형성된 특수한 정체성 구조를 지니며, 이를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통해 구체화하였다. 이러한 정체성은 과거의 경관으로 인식되는 유형적 시설물과 결합하여, 과거의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오늘날 산업유산으로 남은 탄광경관의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기반이 된다.
4. 종합 고찰 및 정책 제언
태백 탄광유산은 단일 산업의 역사적 흔적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 산업과 공동체, 물리성과 비가시성이 중첩된 복합적 문화경관의 전형을 보여준다. 석탄이 풍부한 산지 지형과 수계, 교통망 등 지리적 기반 위에서 채굴, 가공, 수송 과정이 전개되며, 지형 변형과 광산 구조물의 도입을 거쳐 산업 기반시설과 도시공간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버력지 확산, 침출수 유출, 생태 훼손과 같은 환경적 변화가 장기적으로 잔존하였고, 동시에 정주 체계, 종교 의례, 추모, 재해의 기억화 등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실천이 축적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영향이 연속적으로 맞물리면서 형성된 태백의 탄광유산은 단순한 산업유산의 범주로 환원하기 어려운 복합적 가치 체계를 지니며, 지리, 환경, 사회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총체적 문화경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태백은 자연환경과 산업기술의 결합을 통해 형성된 경관적 독자성을 지닌다. 함백산, 연화산 등 급경사의 지형은 채굴을 위해 절개되고 변형되었으며, 여기에 갱도, 제2수갱, 벨트컨베이어, 선탄시설 등 대규모 구조물이 중첩되며 입체적인 산업 경관을 형성하였다. 이는 전통적 자연경관이 산업기능에 맞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인위적 환경 조성이 자연지형과 결합하여 산업의 지형화가 이루어진 공간이다.
다음으로 태백은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 과정이 집약된 공간으로, 산업기반시설과 생활공간이 밀착된 산업도시의 경관 유형을 보여준다. 철도와 도로망의 구축은 석탄 수송과 물류 기능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도시공간의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축이 되었다. 특히 철암, 장성 등은 생산과 가공, 수송과 거주, 기억과 실천이 중첩된 공간 단위로 기능하며, 이는 도시와 산업, 공동체가 상호작용하는 경관 구조를 형성하였다.
또한, 태백 탄광유산은 광업 활동으로 인한 환경 훼손과 그 기억이 중첩된 상흔의 경관이기도 하다. 버력더미와 침출수 유출, 생태계 훼손과 오염의 시각적, 생태적 흔적은 산업의 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물리적 요소일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삶과 정체성에 각인된 기억의 매개이기도 하다. 이처럼 산업 경관은 경관적 미학이나 기능성에 국한되지 않고, 고통과 회상의 장소로서의 의미 또한 내포한다.
마지막으로 태백의 탄광경관은 지역 공동체의 무형문화와 기억을 내재한 생활경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위령제, 산신제, 체육대회, 교회 및 사찰 중심의 기도와 추모 등은 노동과 생존의 불확실성을 제어하기 위한 집단적 실천이었다. 이러한 실천은 장소를 상징화하고, 광산노동자들의 희생과 연대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특히 순직산업전사위령탑과 지역별 위령비는 지역 정체성의 심층 구조를 형성하며, 공동체 내부의 역사 서사를 가시화하는 장소로 기능하고 있다.
결국 태백 탄광유산은 유형의 물리적 경관과 무형의 사회·문화적 요소가 결합된 문화경관의 복합체로서, 단순한 보존 대상이 아니라 해석과 실천을 요구하는 다층적 유산으로 자리매김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태백의 탄광경관은 산업유산, 생태경관, 생활경관, 기억경관의 특성이 중첩된 경관적 전이 공간(landscape of transition)으로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보존과 활용을 위한 전략은 기능적 복원에 그치지 않고, 이와 같은 경관의 의미 구조를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통합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표 2, 그림 8 참조).
태백시는 석탄 산업의 쇠퇴 이후 급격한 인구 감소와 경제 기반 약화로 인해 지역소멸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탄광유산의 보존과 활용 전략이 단순한 물리적 정비나 대규모 공간 재생 수준에 머물 수 없음을 시사한다. 본 절에서는 문화경관적 관점을 바탕으로, 태백의 현재 조건을 고려한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보존, 활용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문화경관 보존에 대한 인식 확산과 소규모 실천의 축적이 필요하다. 현재 태백에서는 광산시설 일부가 방치된 채 경관 훼손 상태로 남아있으며, 이에 대한 대규모 복원보다는 우선적으로 지역주민과 방문객이 해당 장소의 역사성과 의미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경관 해석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예컨대 안내판, 생활사 아카이브 등 소규모 매체를 통해 기억을 활성화하고, 기존의 공간을 크게 변형하지 않으면서도 문화경관으로 읽히게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둘째, 지역기반의 무형문화 기록과 공동체 활동을 중심으로 한 실천적 보존이 중요하다. 태백에는 산신제, 위령제 등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이어온 의례와 실천이 존재하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 산업의 쇠퇴로 단절 위기에 있다. 이를 단기적으로 문화유산 지정이나 관광자원화보다는, 지역 주민 주도의 구술채록, 디지털 아카이빙, 지역 대학과 연계한 실습 프로젝트 등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셋째, 활용 전략은 지역 공동체의 역량과 자율성에 기반해야 한다. 외부 투자나 일회성 사업 중심의 활용 모델은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탄광 관련 생애사 전시, 퇴직 광부 및 관계자 해설사 프로그램, 학교 교육과 연계된 문화경관 탐방 활동 등 주민이 주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행정적,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경관의 생태적 복원은 현실 가능한 범위에서 전환적 용도를 모색해야 한다. 대규모 복원 사업보다는, 폐석장 일부를 조망 공간이나 교육장으로 바꾸고, 침수지대를 식생 모니터링 공간으로 운영하는 등 소규모지만 교육적, 생태적 의미가 있는 공간 전환이 보다 현실적이다.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과거의 흔적을 현재의 가치로 연결하는 실천이 된다.
마지막으로, 지역 내 협력 기반의 자율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행정 주도의 하향식 보존 전략보다는, 지역 단체, 퇴직 광부, 주민, 청년 등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하고, 그 운영을 돕는 중간지원조직(시민재단, 지역유산센터 등)의 제도화가 시급하다. 이를 통해 지역의 주체들이 유산 보존과 활용에 실질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구조를 마련하기에 앞서 태백이 축소도시(shrinking city)로서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외부의 인력 지원 또한 고려해야 한다(표 3 참조).
5. 결론
태백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최전선에서 형성된 대표적 탄광도시로, 급격한 자원 개발, 도시화, 그리고 폐광 이후의 쇠퇴를 모두 경험한 복합적 공간이다. 본 연구는 태백의 탄광유산을 단지 산업시설의 잔존물로 보지 않고, 그것이 축적해온 자연, 산업, 환경, 공동체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문화경관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분석의 틀로 차용한 네 가지 요소인 자연 지형의 변형과 구조물의 도입, 산업 기반 시설과 도시의 형성, 광업 활동에 의한 환경적 변화, 지역 공동체의 사회·문화적 정체성 형성은 서로 연결되어 태백 탄광유산의 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축적되고, 공간적으로 중첩되며, 사회적 의미로 해석되는 유기적 관계를 이루었다.
먼저, 태백의 탄광경관은 급경사지형 위에 수직갱, 벨트컨베이어 등 산업 구조물이 도입되며 시작되었으며, 이는 지형 개조를 통한 산업 입지의 정착과 장소성의 형성을 이끈 물리적 전환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산업 기반 시설과 도시가 확장되면서 생산과 생활이 중첩된 도시 공간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구조는 곧 공동체의 삶과 기억이 조직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광업 활동은 동시에 심각한 환경 훼손을 수반했으며, 이는 버력더미와 침출수 등 물리적 상흔으로 남아 경관의 시간성과 위험을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공간 변형과 경관 변화 위에 공동체가 남긴 의례, 추모, 신앙, 조직 문화 등의 무형 실천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광산 경관을 단순한 물리적 잔존물이 아닌, 기억과 해석, 정체성과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실천적 장소로 전환시키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한다. 결국 태백의 탄광유산은 이 네 요소가 선형적으로 분절되어 축적된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중첩되어 다층적 문화경관을 형성해 온 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태백의 사례는 산업유산을 단순히 기능적 혹은 미학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넘어, 지형, 구조물, 환경, 공동체 실천이 어우러진 경관의 총체적 가치를 해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산업유산의 보존과 활용이 물리적 관리 차원을 넘어, 문화적 실천과 공동체적 의미가 반영되는 새로운 경관 관리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향후 탄광유산에 대한 정책과 담론은 기능적 복원이나 외형적 개발보다는, 이와 같은 문화경관적 구성 원리를 고려한 통합적 관리 전략으로 나아가야 하며, 태백은 그 실천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