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농촌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해 온 공간이다. 이곳에는 나무, 숲, 풀, 곤충, 사람, 논과 밭, 그리고 문화적 요소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가득한 도시와는 달리, 농촌은 생명이 숨 쉬는 공간이다(https://www.nongmin.com/). 이러한 농촌의 생태적·문화적 가치에 주목하여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전통마을과 같은 농촌 자원을 '촌락자본(countryside capital)'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전원관광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농촌지역의 문화적·경제적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Garrod, et al, 2006; 신상섭, 2011에서 재인용). 반면, 우리나라 농촌에 위치한 마을들은 현대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문화적·환경적·경관적 생명력의 상실 위기에 처해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보호받는 민속 마을들조차 소득증대사업 과정에서 무분별한 토지이용, 관광지화, 경관의 훼손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신상섭, 2011).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문화경관 관점에 기반하여 농경문화 기반 전통마을이 지닌 가치와 특성을 탐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경관은 단순한 지역적 가치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가 공유할 만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지닌 사례로 평가되며, 이러한 관점에서 농경문화 기반 전통마을의 의미를 규명하는 작업은 국제적 맥락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은 자연환경과 인간 활동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가치를 지닌 산물(combined works of nature and of man)(UNESCO, 2023)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992년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 문화유산의 중요한 범주로 자리 잡았다. 문화경관은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는 통합적 관점을 제시(이제이와 성종상, 2024; 전종한, 2024)하며, 인류의 지속가능한 환경 적응과 문화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로 평가받고 있다(Rössler, 2006; Taylor and Lennon, 2011).
현재(2025년 4월 기준) 세계유산은 168개국에서 총 1,223개가 등재1)되어 있으며, 이 중 '문화유산' 952개와 '복합유산' 40개 중에서 '문화경관'으로 분류되는 유산은 여러 국가에 걸쳐 있어 중복으로 계상되는 7개2)를 제외하면 129개3)이다. 이들 문화경관 중 상당수가 외부 물질문명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으면서 선조들의 생활방식과 농경문화를 오늘날까지 전승(임근욱 등, 2012)하는 마을들이며, 이들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토지 이용과 자원 관리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이제이와 성종상, 2024). 이러한 마을들은 지역 고유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발전시켜 온 전통적 지식체계와 공동체 문화를 담고 있어(정주연과 이혜은, 2016) 단순한 물리적 경관을 넘어 무형적 가치와 생활양식을 포함하는 복합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경관 중 전통 정주지, 특히 농경마을4)의 문화적 다양성과 중요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특성과 가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경관 중 전통 정주지와 농경문화의 특성이 두드러진 사례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그 구성요소와 가치를 고찰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연구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세계유산 문화경관 중 전통 정주지, 그중에서도 농경마을의 사례들을 선별하고 유형화한다. 둘째, 선정된 사례들의 유형·무형 구성요소를 분석하여 농업을 기반으로 한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의 보편적 특성을 도출한다. 셋째, 도출된 특성을 바탕으로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의 가치와 함의를 탐색한다. 본 연구는 세계유산 문화경관의 한 유형으로서 전통 정주지가 지니는 보편적 가치를 체계화하고, 이를 통해 문화경관 연구의 이론적 심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러한 연구 결과는 향후 유사한 특성을 지닌 문화경관의 발굴과 보전, 관리에 있어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세계유산 문화경관 중 전통 정주지, 특히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마을의 특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대상과 방법을 설정하였다.
연구의 대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129개의 문화경관 중에서 전통마을과 농경문화의 특성이 두드러진 사례들로 한정하였다. 사례 선별을 위해 문화경관의 등재기준과 특성을 검토하여 농업활동, 전통적 정주형태, 지속가능한 토지이용 방식 등이 핵심 가치로 인정된 문화경관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선별 과정에서는 지리적 분포의 균형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대륙과 문화권의 사례가 포함되도록 하였으며, 논농사, 밭농사, 테라스 농업, 혼합농업 등 농경문화의 다양한 형태를 반영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들을 선정하였다.
연구 방법으로는 문헌연구를 기반으로 한 사례 분석과 비교 연구 방법을 채택하였다. 사례들의 등재기준, 유형 구성요소(지형, 수자원, 건축물 등), 무형 구성요소(농경 관련 지식체계, 의례, 공동체 조직 등)를 분석하였다. 분석 자료로는 유네스코 공식 웹사이트에 공개된 세계유산 등재신청서(nomination file)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자문기관 평가서(advisory bodies evaluations)를 주요 1차 자료로 활용하였다. 이들 자료는 각 문화경관의 역사적 배경, 물리적 특성, 문화적 가치, 보존 상태 등에 관한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체계적인 비교 분석의 기초 자료로 적합하다. 또한 각 사례에 관한 학술논문, 보고서, 관리계획서 등의 2차 자료를 보완적으로 활용하여 분석의 깊이를 더하였다.
본 연구는 세계유산 문화경관이라는 특정 범주 내에서 농경문화 기반 전통 정주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문화경관 연구의 이론적 심화와 함께 유사한 특성을 지닌 잠재적 문화경관의 발굴 및 관리에 기여하고자 한다.
2. 이론적 배경
문화경관 개념은 약 200년에 걸친 지리학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발전해왔다(전종한, 2024). 문화경관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초 독일 지리학자 카를 리터(Karl Ritter)가 처음으로 ‘Kulturlandschaft’를 사용하면서 등장했다. 이후 카를 포겔(Carl Vogel), 요셉 빔머(Joseph Wimmer),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 등이 개념을 확장시켰으며, 라첼은 인간의 역할을 문화경관 연구에 포함시켜 자연과 인간 활동 간 상호작용을 강조하였다(Wardenga, 2005; Potthoff, 2013). 이러한 초기 논의를 바탕으로 20세기 초 미국의 칼 사우어(Carl Sauer)와 버클리 학파는 문화경관 개념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Sauer(1925)는 문화경관을 “자연경관이 문화에 의해 변형된 결과”로 정의5)하며, 인간의 문화적 행위가 자연환경을 변형시키는 능동적 주체로서 작용함을 강조하고, 문화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해석하는 데 주목하였다(윤홍기, 2009; 정해준, 2022).
1990년대에는 문화경관이 유산 보전 영역에서 전문적인 연구 대상으로 다뤄지기 시작했다(Fowler, 2003). 문화경관이 세계유산의 범주로 공식 도입된 것은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에 의해서이다. 이는 기존의 기념물(monument) 중심의 유산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복합적 가치를 인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문화경관이 세계유산으로 인정된 것은 자연을 열등하게 보던 서구적 인식을 반성하고, 인간·사회·자연의 상호작용을 존중하려는 관점이 반영된 결과이다. 이로써 세계유산의 범위가 기념물 중심에서 다양한 문화로 확장되었다(성종상, 2020).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에서는 문화경관을 “자연환경의 물리적 제약이나 가능성과 연속적인 내외부 사회·경제‧문화적 힘의 영향 아래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 사회와 정주지의 진화를 보여주는 복합유산”으로 정의하고 있다(UNESCO, 2023).
세계유산목록에서 문화경관의 비중은 유네스코가 이 개념을 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그림 1 참조). 1992년 문화경관 범주 도입 이후 등재 사례는 처음에는 완만하게 증가하다가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성장했다6). 특히 2004년에는 신규 등재된 세계유산 중 문화경관이 38.2%를 차지하며 정점을 이루었다. 이는 문화경관이 세계유산 체계 내에서 중요한 유산 유형으로 확립되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이다. 2020년대에도 문화경관은 매년 새로운 등재가 계속되며 세계유산목록 내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적 경향은 문화경관이 부차적인 유산 범주가 아닌 세계유산 체계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이제이, 2025). 이는 유네스코가 오랜 시간에 걸친 인간과 자연 간의 지속가능한 상호작용과 그 관계에서 형성된 경관을 중요한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제이와 성종상, 2024)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은 문화경관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째,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설계되고 창조된 경관(designed landscape)으로 정원, 공원 등이 포함된다. 둘째, 유기적으로 진화한 경관(organically evolved landscape)으로 사회, 경제, 행정, 종교적 필요에 대응하여 자연환경과의 연관성 속에서 발전해온 경관이다. 이는 다시 화석화된 경관(relict landscape)과 지속되는 경관(continuing landscape)으로 세분된다. 셋째, 연상적 문화경관(associative cultural landscape)으로 강력한 종교적, 예술적, 문화적 연상이 자연요소와 결합된 경관이다(UNESCO, 2023). 본 연구에서 다루는 농경문화 기반의 전통마을은 인간과 자연환경의 장기적 상호작용이 잘 드러나는 사례들로 주로 유기적으로 진화한 경관에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현재까지 전통적 생활방식과 함께 농업 활동이 이어지는 유산들의 경우 ‘지속되는 경관’에 해당되어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경관 가운데 전통 농업 및 목축 활동이 지속되고 있는 정주지 유산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전통 정주지가 장기간에 걸친 인간의 지속가능한 토지 이용과 문화적 실천이 경관에 축적되어 온 총체적이며 유기적인 진화의 과정을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이제이와 성종상, 2024). 이러한 정주지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자연환경에 대한 인류의 지속가능한 적응과 문화적 진화의 산물로서 다층적인 문화경관적 가치를 지닌다.
첫째, 농경문화 기반의 정주지는 인류의 생태적 지식과 환경 적응력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다. 특히 지형, 수문, 기후 등 다양한 환경 조건에 적응하여 발전시킨 농경 시스템과 토지 이용 방식은 지역 특수성과 문화적 보편성이 결합된 귀중한 사례들이다(Plieninger and Bieling, 2012). 계단식 농경지, 수리 시스템, 혼합 농업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농업 경관은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식량안보, 기후변화 대응, 생물다양성 보전 등의 과제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김성연, 2022). 이러한 농경마을은 자연-농경-인간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해 지역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왔으며,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생태적 지혜를 담고 있는 귀중한 환경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전통 정주지는 농경 활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문화적 체계이자 공동체적 가치의 표현이다. 세계 각지의 전통 농경마을들은 식량 생산, 생태 보존, 도시화 완화, 농업 경관 제공 등 복합적 역할을 수행해왔다(안윤수 등, 2005; 임현오와 류제헌, 2017). 이러한 마을은 문화적 연속성과 지역 정체성의 매개체로 기능하며(Agnoletti, 2014), 세대를 거쳐 전승된 유·무형의 문화유산과 전통지식이 축적되어 있다. 특히 지역 특유의 농경 방식, 의례, 음식문화 등은 해당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유대와 소속감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현대화 과정에서 점차 희석되는 지역적 특수성을 보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정희종, 2009; 서해숙, 2010). 이처럼 농경마을은 물질문화와 비물질문화의 통합체로서 사회문화적 가치를 지니며,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성, 문화성이 응축된 최소 단위의 공간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농경문화 기반의 전통 정주지는 생태적 지식체계와 사회문화적 가치가 복합적으로 융합된 문화경관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 정주지는 인류가 자연과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어온 역사적 과정을 경관 속에 생생히 담아내고 있으며, 단순한 농업 생산 공간을 넘어 인류의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이 발현된 살아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다층적 가치를 지닌 농경 기반 정주지의 문화경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학술적 차원을 넘어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를 내포한다. 특히 이는 환경 위기와 문화 동질화가 심화되는 오늘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환경-문화 관계 정립에 깊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농경문화 기반 마을을 중심으로 문화경관적 특성과 가치를 분석함으로써 농경마을의 보전과 활용에 기여하고자 한다.
3. 연구대상 선정 및 분석틀
본 연구의 사례 선정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 현재까지 전통적 농업 방식이 이어지고 있는 문화경관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이러한 사례는 농업 활동이 지역의 경제·사회 구조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농업 기술과 관습의 지속성을 분석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된다.
두 번째 기준은 정주 및 공동체 문화가 반영된 전통마을 문화경관이다. 이 기준을 통해 농경 활동 자체는 현재 약화되었으나, 오랜 기간의 정주와 공동체 문화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 사례를 포함할 수 있게 된다. 이들 문화경관은 세대를 거쳐 형성된 공동체 문화와 생활 양식이 경관에 반영되어 있어 전통의 지속성과 지역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위와 같은 선정 기준을 통해 선정된 사례들은 문화경관 유산의 성격을 이해하고, 농경마을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이들 사례의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분석함으로써 전통마을과 관련된 문화경관 유산의 가치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국제적 기준을 이해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서 위에 제시된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전통마을 특성을 지닌 사례들을 선정하는 과정을 수행하였다. 129개의 문화경관에 대한 기초 자료를 검토하여 각 기준에 부합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군에 대해 학술논문, 유네스코 등재 서류, 현장조사 보고서 등 2차 자료를 활용하여 1차 선정하였다. 각 기준별로 선정된 문화경관들을 교차 검증하여 둘 이상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사례들을 최종 선정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지리적 다양성과 문화적 대표성을 고려하였다(표 1 참조).
이 과정을 거쳐 본 연구에서는 총 129개의 사례 중에서 농경문화가 유지되고 있는 문화경관과 공동체 문화가 반영된 전통마을 문화경관 등 총 29개의 사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선정된 유산들의 목록은 표 2와 같다.
선정된 사례들은 전통적 농업 활동과 정주 문화가 경관 형성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는 각 사례별로 구성요소를 추출하고, 이를 유형 요소와 무형 요소로 구분7)하였다. 이러한 구성요소 도출 과정은 경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경관은 물리적, 상징적, 관념적 차원의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 하나의 총체(전종한, 2017a)이기 때문이다. 각 구성요소를 식별하고 분석함으로써 문화경관의 복합적인 성격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가치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문화경관은 자연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복합적인 특성을 가지며, 그 특성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각 요소를 보다 세분화하여 범주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범주화는 경관을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을 규명하고, 다양한 사례 간의 비교 연구를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론적 기반이 된다.
구성요소를 도출하기 위한 분석 틀은 Fowler(2003)의 문화경관 특성 분류 체계를 참고하되, 농경 정주지 문화경관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재구성하였다. Fowler가 제시한 속성(attribute) 중 일부는 본 연구의 범주와 중첩되지만, 본 연구는 29개 사례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요소들을 종합하여 농경문화 기반 정주지에 적합한 범주를 새롭게 체계화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제시하는 범주는 Fowler의 분류를 단순 적용한 것이 아니라, 선행연구의 틀을 보완하고 본 연구 맥락에 맞게 재분류한 결과물이다.
범주화 과정은 세계유산센터 및 ICOMOS 평가서 등 1차 자료에서 사례별 특성을 추출하고, 출현 빈도가 높고 공통성이 뚜렷한 요소를 중심으로 범주를 설정한 뒤, 농경문화경관의 정체성을 직접 규정하는 핵심 요소와 사농경활동을 둘러싼 사회·문화·정주적 배경 요소가 되는 맥락 요소로 구분하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무형 요소의 경우 전통 지식, 공동체 규범, 의례, 예술 등에서 경계가 다소 모호하거나 중첩되는 사례가 있었으나, 이는 본래 문화경관이 복합적 요소들이 상호 연계하여 형성되는 속성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유형 요소는 농경지(Ag), 고고학적 유적(Ar), 건축물·구조물(B), 성곽·방어 구조물(Ft), 자연경관과 지형(N), 도시와 마을(T), 수계 시스템(W)으로, 무형 요소는 전통 지식과 기술(KS), 마을 운영 체계(M), 지역 정체성(L), 관습과 전통(CT), 종교와 영성(RS), 사회 조직과 규범(SON), 전통 예술과 표현(TAE)으로 분류하였다(표 3 참조).
자료: Fowler(2003)를 바탕으로 연구진 재구성
이러한 분석틀은 문화경관의 복합적 성격을 보다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며, 특히 농경문화 기반 정주지의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기초 자료가 된다.
4. 구성요소 분석결과
문화경관을 구성하는 유형·무형 요소의 분포는 농경 기반 전통마을의 본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앞서 도출한 구성요소 항목을 바탕으로, 29개 사례 각각에 대해 해당하는 범주를 적용하여 분류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농경문화 기반 전통마을 유산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출현 빈도와 상대적 중요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문화경관 유산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요소들과 그 조합을 식별할 수 있으며, 이는 문화경관의 핵심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29개 사례에서 도출된 유형 요소 중에서 건축물·구조물(B)과 농경지(Ag)는 모든 사례에서 나타나 핵심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도시·마을(T)과 자연환경(N) 역시 각각 93.1%와 72.4%의 높은 비율로 분포했다. 이는 농경 활동과 정주 공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농경문화 기반 마을 경관의 기본 골격을 형성함을 시사한다. 무형 요소 측면에서는 전통 지식과 기술(KS)이 96.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관습과 전통(CT) 79.3%, 마을 운영 체계(M) 및 전통 예술과 문화적 표현(TAE)이 69.0%, 65.5%로 뒤를 이었다. 이는 농경 활동을 둘러싼 지식 체계와 문화적 관습이 물리적 경관 형성의 근간이 되어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유형·무형 요소의 분포 양상은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이 자연과 인간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복합적 산물임을 명확히 한다.
건축물·구조물(B)은 분석된 29개 사례에서 모두 확인되었는데, 이는 연구 대상이 정주지로 한정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문화경관이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결과는 인간의 거주와 활동의 흔적이 문화경관의 핵심적 요소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출현 빈도가 높다는 사실보다는 건축물·구조물이 문화경관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지역적 특수성을 드러내고 차별화된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의 사례에서 나타난 건축물·구조물은 크게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전통 주거 건축물로, 메이만드의 문화경관, 하우라만/우라마나트 문화경관, 바사리 지역: 바사리, 풀라, 베디크 문화경관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 지역의 주거 건축물은 지역의 기후 조건, 가용 자원, 생활 방식에 적응하여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다. 예를 들어, 이란의 메이만드 마을은 동굴 주거 형태를 발전시켜 극단적인 기후 조건에 적응했으며, 하우라만 지역은 산악 지형에 계단식으로 배치된 독특한 석조 주택을 발전시켰다. 둘째, 농업 관련 시설로, 알투 도루 와인 산지, 토커이 와인 역사 문화 경관,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등에서 확인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작물의 재배, 수확, 가공, 저장과 관련된 특수 건축물이 발달했다. 토커이 지역의 와인 저장고나 용설란 재배지의 테킬라 생산 시설은 특정 작물의 생산 과정과 밀접하게 연관된 건축물의 예이다. 코르딜레라스 계단식 논의 곡물 저장고(Alang)는 농업 공동체의 식량 보관과 분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셋째, 농업 활동과 관련된 종교·의례 관련 건축물로, 발리의 문화경관, 수쿠르 문화경관 등에서 발견된다. 발리의 수박(Subak) 사원이나 수쿠르 문화경관의 히디(Hidi) 궁전은 농업 주기와 결합된 집단 의례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공동체 정체성과 영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그림 2 참조).
이처럼 건축물·구조물(B)은 모든 사례에서 나타나지만, 그 의미는 단순히 ‘존재한다’는 데 있지 않고, 각 지역이 처한 환경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독창적으로 발달하고 문화경관의 정체성을 형성했는지에 있다.
농경문화 기반 마을 문화경관에서 나타나는 농경지(Ag)는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테라스식 경작지로,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라보의 포도원 테라스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 지역은 경사진 지형에 적응하기 위해 테라스를 조성하여 경작 가능한 면적을 확보했다. 필리핀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은 가파른 산지에 2,000년 이상 유지되어 온 놀라운 인간의 적응 능력을 보여준다. 둘째, 혼합 농경지로, 욀란드 남부 농업 경관, 발 도르차, 팔레스타인: 올리브와 포도나무의 땅 등에서 두드러진다. 이들 지역에서는 다양한 작물의 혼합 재배를 통해 지역의 생태적, 경제적 다양성을 확보했다. 발 도르차 지역의 올리브, 포도, 곡물 혼합 재배 방식은 지중해 지역의 전통적 농업 체계를 잘 보여준다. 셋째, 특수작물 경관으로는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 용설란 재배지 경관, 발리의 문화경관 등이 해당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특정 작물의 대규모 재배가 주요 경관 요소로 자리 잡았다.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은 지형과 기후 조건에 따라 다양한 재배 방식(동부 지역:전일조[full-sun]) 방식, 중부 및 서부 지역-그늘 또는 반그늘(shade/semi-shade) 방식)을 발달시켰으며, 이러한 방식은 독특한 농업 경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쿠바 남동부 최초 커피 재배지 고고학적 경관의 경우 산악지형을 따라 분산 배치된 플랜테이션 복합체—주거지, 건조장, 수로 시설 등이 통합된 농업 단위—가 커피 농업 경관을 형성한다(그림 3 참조).
도시·마을(T) 요소는 정주 공간으로서의 마을 구조가 농경문화 기반 문화경관의 중요한 특성임을 시사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농촌 정착지 입지 특성에 따라 크게 집약형(nucleated)과 분산형(dispersed)으로 구분해 왔으며(Trewartha, 1946), 국내에서는 연구자들에 따라 집촌(集村)과 산촌(散村), 집촌을 또 다시 괴촌(塊村), 열촌(列村), 노촌(路村) 등으로 분류하거나 혹은 폐쇄적 종결형, 반개방적 종결형, 개방적 순환형 등으로 분류하는 등 다양한 하위 유형이 제시되기도 했다(김묘정 등, 2007; 최원회, 2013). 본 연구는 이러한 논의를 참고하여 세계유산 문화경관 사례 29건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집촌, 산촌의 기존 구분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특정 지형·기후 조건에 적응하여 발달한 ‘적응형’ 마을 구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첫째, 집약형 마을 구조는 전통적인 집촌에 해당하며, 콘소 문화경관, 메이만드의 문화경관, 하우라만/우라마나트 문화경관 등에서 확인된다. 이들 사례에서는 제한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거 건물들이 밀집 배치되었으며, 공동체 생활 및 방어적 기능과도 연계된다. 콘소 지역의 지형을 따라 조성된 테라스식 마을은 공동체 생활과 외부 위협에 대한 방어적 기능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이다. 둘째, 분산형 마을 구조는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비날레스 계곡,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 등에서 나타난다. 개별 가구가 농경지 주변에 분산 배치되는 형태로,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의 소규모 가족 농장 ‘핀카(finca)’가 대표적이다. 셋째, 적응형 마을 구조는 특정 지형·기후 조건에 맞추어 독자적으로 발달한 유형이다. 트라문타나 산맥의 문화경관, 포르토베네레, 친퀘 테레와 섬들 등의 지역에서는 지형, 기후 등 자연 조건에 적응하며 발전한 독특한 마을 구조가 나타난다. 트라문타나 산맥 지역의 경사지 적응형 마을 구조나 친퀘 테레의 해안가 마을 배치는 자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순응 방식을 반영한다(그림 4 참조).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농경 정주지들에서도 기존 문헌에서 제시된 집약형과 분산형의 패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사례 분석 과정에서 특정 지형·기후 조건에 맞추어 발달한 적응형 마을 구조가 확인되었으며, 이는 기존 분류를 보완하는 유형으로 농경문화 기반 세계유산 정주지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자연경관과 지형(N) 요소는 25개 사례에서 네 가지 유형으로 확인된다. 이는 농경문화 기반 마을이 주변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음을 드러낸다. 첫째, 산악 지형으로,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트라문타나 산맥의 문화경관, 쿠바 남동부 커피 재배지 등에서 나타난다. 이들 지역에서는 가파른 경사지에 적응하며 발전한 농업 방식과 정주 패턴이 발견된다. 산악 환경은 제약 요소이기도 했지만, 독특한 문화경관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 둘째, 연안 지형으로, 포르토베네레, 친퀘 테레와 섬들, 피쿠 섬의 포도밭 문화 경관 등에서 두드러진다. 이들 지역에서는 해안가의 제한된 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발달했다. 친퀘 테레 지역의 가파른 해안 절벽에 조성된 테라스식 농경지는 자연 환경에 대한 적응의 탁월한 예이다. 셋째, 구릉 지형으로, 피에몬테의 포도밭 경관, 알투 도루 와인 산지, 생테밀리옹 특별지구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완만한 구릉지를 활용한 농업 방식과 마을 배치가 발달했다. 특히 포도 재배에 적합한 구릉지형은 와인 생산 문화경관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생테밀리옹의 지하 저장고는 석회암 기반의 지형 조건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자연적으로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석회암층을 파내어 와인 저장 공간으로 전용하였다. 넷째, 특수 지형으로, 알 아사 오아시스, 수쿠르 문화경관 등이 해당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사막, 강 계곡, 카르스트 지형 등 특수한 지형적 조건에 적응한 독특한 문화경관이 발달했다. 알 아사 오아시스의 경우, 사막 환경 속에서 지하수를 활용한 농업 체계를 발전시켰으며, 수쿠르 지역은 인더스강 유역의 지형적 조건을 활용해 도시-농촌 복합 경관을 형성했다(그림 5 참조).
수계 시스템(W)은 29개 사례 중 14개(48.3%)에서 나타났으며, 농업 활동에 필수적인 물 관리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이는 테라스 관개 시스템(코르딜레라스,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등), 공동체 기반 관개 시스템(발리의 ‘수박’ 등), 건조지역 특수 관개 시스템(알 아사 오아시스의 ‘노천 수로 운하망’ 등)으로 구분된다. 필리핀 코르딜레라스 지역은 산에서 발원한 물을 계단식으로 분배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2,000년 이상 유지해왔다.
고고학적 유적(Ar)은 14개 사례(48.3%)에서 확인되어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역사적 깊이를 보여준다. 이는 선사시대 유적(욀란드 남부 농업 경관 등), 중세 및 근대 유적(샹파뉴 언덕, 샴페인 하우스와 저장고, 쿠바 남동부 최초 커피 재배지 고고학적 경관 등)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유적들은 현재의 문화경관이 오랜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성곽·방어 구조물(Ft)은 10개 사례(34.5%)에서 발견되었으며, 마을 방어 시스템(욀란드 남부 농업 경관, 메이만드 문화경관 등) 등을 가진 일부 마을들이 농업 활동과 함께 방어적 기능도 수행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다양한 유형 요소들은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이 단순한 농업 활동의 공간이 아니라, 자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혜로운 순응, 사회적 조직과 기술적 발전, 역사적 연속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된 총체적 산물임을 보여준다. 각 지역의 환경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 유형 요소들은 인간과 자연 환경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물로서 문화경관의 핵심적 가치를 구성한다(그림 6 참조).
무형 요소 중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전통 지식과 기술(KS) 요소는 농경문화 기반 마을에서 전통적인 농업 지식과 기술이 문화경관 형성의 핵심 요소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전통 지식과 기술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전통 농업 기술로,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라보의 포도원 테라스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 지역은 경사진 지형에 테라스를 조성하여 농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고도의 기술을 발전시켰다. 둘째, 발리의 문화경관, 트라문타나 산맥의 문화경관, 알 아사 오아시스 등에서 두드러지는 수자원 관리 기술이다. 이들 지역은 제한된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발리의 ‘수박’ 시스템은 물 관리를 위한 협동적 관개 체계로 단순한 기술을 넘어 종교적, 사회적 요소와 통합된 복합적 지식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셋째, 작물 재배 및 가공 기술로, 코넬리아노와 발도비아데네의 프로세코 언덕, 용설란 재배지 경관 등이 해당된다. 이들 유산에서는 특정 작물의 재배와 가공에 관한 고유한 지식 체계를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토커이 지역은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 곰팡이를 활용한 아슈(Aszú) 와인 생산 방식을 수백 년간 유지해왔으며, 코넬리아노와 발도비아데네의 프로세코 언덕에서는 19세기에 벨루세라(bellussera) 시스템을 도입하여, 포도나무의 수형과 생육 환경을 과학적으로 조절하고 병해를 예방하는 등 재배 효율성과 품질 향상을 동시에 도모하는 특유의 포도 재배 기술을 정립하였다. 넷째, 생태 지식 체계로 욀란드 남부 농업 경관, 팔레스타인의 올리브와 포도나무의 땅, 하우라만/우라마나트 문화경관, 트라문타나 산맥의 문화경관 등이 해당된다. 이들 지역은 지역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욀란드 남부 지역의 경우, 척박한 토양 조건에 적응하며 발전시킨 농업 기술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하우라만 지역에서는 비옥한 토지가 거의 없는 자그로스 고산 지대에서 정교한 농업 기술과 통찰력 있는 생태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반유목적 농목 복합 생활 방식을 발전시켜왔다. 트라문타나 지역에서는 농업과 목축에 관한 과정과 기술, 자연 자원의 활용 방법, 식물의 약리적 효능 등이 포함된다.
관습과 전통(CT) 요소의 높은 빈도는 농경 활동과 관련된 의례, 축제, 전통 생활방식 등이 문화경관의 중요한 구성요소임을 시사한다. 관습과 전통은 주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농업 주기와 연계된 의례로, 발리의 문화경관,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들 지역에서는 농업 활동과 관련된 의례가 수행되며, 이는 농업 생산성을 보장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특히 발리의 문화경관에서 물의 신전에 대한 의례는 인간이 자연의 생명유지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공동체적 참여를 기반으로 인간과 환경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촉진한다. 둘째, 작물과 관련된 축제로 피쿠 섬의 포도밭 문화경관의 포도 수확축제(Festa das Vindimas), 피에몬테 포도밭 경관의 수확 축제(stocks of San Martino),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의 커피축제(the National Coffee Festivals, the Fiestas de La Cosecha 등) 등이 해당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포도 수확과 와인 생산, 커피 재배 과정이 지역 공동체의 중요한 문화적 행사로 자리 잡고 있으며, 관련 축제와 의례가 지역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피에몬테 지역의 일부 마을들은 1930년대부터 조직된 수확 축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 유산에서는 사람들과 커피 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가 축제, 카니발 등 다양한 유형의 행사를 통해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셋째, 전통적인 생활 방식 및 관습으로 하우라만/우라마나트 문화경관, 메이만드 문화경관 등에서 발견된다. 하우라만 지역에서는 고산 지형에 적응한 반유목 농목 복합 생활 방식이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계절에 따라 고지대와 저지대를 오가는 정주 체계가 사회적 규범과 공동체 운영 원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메이만드 지역 또한 계절에 따라 전통 주거지(키체스[Kiches] 동굴 주거지, 마르카네[Markhāneh] 반지하 원형 주택 등)를 이동해가며 반유목적인 생활을 유지해왔으며, 이는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에 기반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농경 활동과 관련된 문화적 표현이 문화경관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통 예술과 문화적 표현(TAE) 요소들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트라문타나 산맥의 문화경관, 바사리 지역: 바사리, 풀라, 베디크 문화경관 등에서는 농경활동과 관련된 지식, 경험, 지명, 전설 등이 구전 전통으로 전승된다. 이러한 구전 전승은 이야기, 노래, 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세대 간 지식 전달의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한다. 둘째, 건축과 수공예를 포함한 시각 예술은 메이만드의 문화경관, 비날레스 계곡 등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전통 예술과 문화적 표현 요소가 발달한 유산에서는 농경지와 건축물에 장식적 요소를 더하는 미학적 전통이 발달했을 뿐 아니라, 지역의 자연 자원과 일상 농업 활동에서 비롯된 수공예품 제작 기술도 지속되어 왔다. 메이만드 문화경관에서는 카펫·직물 짜기와 같은 전통 수공예가 중요한 경제 자원으로, 이는 자연 자원의 재활용과 효율적 활용을 중시하는 생활방식과 맞닿아 있다. 한편 비날레스 계곡에서는 도밍고 라모스(Domingo Ramos)와 티부르시오 로렌조(Tiburcio Lorenzo) 등의 예술가들이 독특한 농업 경관을 회화로 형상화하여 지역의 정체성과 문화경관의 미적·상징적 가치를 부각시켰다. 셋째, 음악과 춤, 문학과 영화 등 예술적 표현은 콜롬비아 커피 문화경관, 비날레스 계곡, 발리의 문화경관, 용설란 재배지 경관 등에서 나타난다. 콜롬비아 커피 지역의 '방브코(Bambuco)'와 같은 전통 음악은 커피 재배 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비날레스 계곡에서는 담배 재배 농부(veguero)의 음악 전통이 지역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이는 세대 간 구전과 공동체적 축제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발리의 문화경관에서는 인간 공동체와 자연 환경 간의 긴밀한 관계를 다양한 형태의 오케스트라 음악, 토펭(topeng), 와양(wayang) 등의 연극 공연, 그리고 산스크리트어, 발리어 등 네 가지 언어로 낭송되는 시를 통해 표현한다. 멕시코의 용설란 재배지 경관은 테킬라를 매개로 문학, 영화, 음악, 춤을 활발히 산출하며,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소설가 맬컴 로우리(Malcolm Lowry), 대중 음악 작곡가 호세 알프레도 히메네스(José Alfredo Jiménez) 등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 멕시코 문화의 핵심 상징으로 형상화되었다.
마을 운영 체계(M)는 공동체 기반의 자치 시스템이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지속가능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을 운영 체계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수자원 공동 관리 체계로, 발리의 문화경관,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바하우 문화경관 등이 해당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제한된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관리하기 위한 공동체 기반 의사결정 체계가 발달했다. 둘째, 토지 이용 규제 시스템으로, 알투 도루 와인 산지, 클리마, 부르고뉴의 테루아, 콘소 문화경관 등에서 나타난다. 이들 지역에서는 토지의 효율적 이용과 보존을 위한 전통적 규제 체계가 발달했다. 부르고뉴 지역의 '클리마(Climat)' 시스템은 토지의 특성에 따라 포도 재배 방식을 세밀하게 규제하는 전통적 체계이다. 셋째, 공동 노동 조직 시스템으로,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 토커이 와인 역사 문화 경관 등에서 확인된다. 이들 지역에서는 노동집약적 농업 활동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공동 노동 조직이 발달했다. 코르딜레라스 지역의 '이마요스(Imayos)' 시스템은 테라스 유지 관리를 위한 공동 노동 조직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무형 요소의 세부 특성 분석을 통해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이 단순한 유형 요소들의 집합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지식 체계, 관습, 예술 표현, 운영 체계, 지역 정체성 등 다양한 무형 요소들의 복합적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이러한 문화경관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서는 유형적 환경의 보호뿐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무형 요소들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유형 요소와 무형 요소 간의 상관관계 분석 결과, 몇 가지 핵심적인 연계 축이 도출되었다. 가장 높은 상관성은 농경지(Ag)와 전통 지식·기술(KS)로, 이는 농업 활동이 단순한 물리적 경관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축적된 지식체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테라스 농법(코르딜레라스, 훙허하니족 다랑논, 라보 등)은 이러한 적응적 지식의 대표적 사례다.
다음으로 농경지(Ag)-관습과 전통(CT), 농경지(Ag)-마을 운영 체계(M)는 농업이 단순한 생산의 장을 넘어 계절 주기 의례와 공동체 운영 체계와 긴밀히 결합했음을 시사한다. 발리와 콘소 지역의 사례에서처럼 농업 활동은 마을 조직, 분배 규범, 축제와 의례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농경지(Ag)-전통 예술과 문화적 표현(TAE), 농경지(Ag)-지역 정체성 반영 경관(L)의 동반 출현은 농업이 전통 예술·문화적 표현과 지역 정체성 형성으로 확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포도 재배 지역에서 나타나는 와인 축제, 노래와 춤, 전통 장식은 생산 활동이 지역 문화와 상징 체계로 전환된 구체적 사례다.
수계 시스템(W)과 마을 운영 체계(M)도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는데, 이는 물 관리가 필요한 지역에서 공동체적 운영 시스템이 발달했음을 나타낸다. 제한된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공동체는 집단적 분배 규범과 분쟁 조정 메커니즘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적 규범과 신앙적 질서를 포함하는 종합적 관리 체계로 기능한 것이다. 발리의 문화경관,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문화경관 등에서는 수자원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전통적 공동체 운영 체계가 문화경관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시·마을(T)과 관습과 전통(CT) 간의 상관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마을의 공간적 구조가 농경 활동과 관련된 의례와 축제를 수행하는 데 적합한 형태로 발전해 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포도재배 지역(알투 도루, 토커이, 피쿠 섬, 라보, 피에몬테 등)에서는 와인 생산과 관련된 전통과 의례가 마을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확 주기와 연계된 축제가 마을 공간을 무대 삼아 열리며, 이를 통해 사회적 응집과 정체성이 강화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물리적 공간은 단순한 생활·생산의 장이 아니라, 의례와 축제가 반복적으로 각인되는 상징적 무대로서 기능하며, 이를 통해 문화경관의 시간성, 상징성이 동시에 구현된 것이다(표 4, 그림 7 참조).
이러한 분석 결과는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이 유형 요소와 무형 요소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이들 요소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경관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서는 유형적 경관 요소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무형 요소들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5. 농경문화 기반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의 가치와 특성
본 연구는 세계유산 문화경관 유형으로 등재된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구성요소를 유형·무형 요소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은 단순한 물리적 환경이 아닌 인간의 지식체계, 기술, 문화적 관습, 사회적 조직 등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한 결과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의 핵심적 가치와 특성을 다음과 같이 도출하였다.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자연환경과 인간 활동의 조화로, 이는 문화경관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논의되는 주제다. 그러나 전통 정주지에서는 환경적 제약과 사회·문화적 대응이 상호작용하며 경관을 진화시킨다는 점에서 단순한 조화의 차원을 넘어 상호의존적 적응 과정으로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분석된 사례들은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잘 보여준다. 경사지에서 발전한 테라스 농법(코르딜레라스, 훙허하니족 다랑논 등), 건조지에서 구축된 관개 시스템(알 아사 오아시스 등), 해안 절벽지대의 경작 방식(포르토베네레, 친퀘 테레와 섬들 등) 등은 자연조건의 단순한 제약이 아니라, 환경적 한계를 사회적 협력과 전통 지식의 축적을 통해 능동적으로 전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전통 지식과 기술(KS)의 높은 출현 빈도(96.6%)는 이러한 적응이 세대를 거쳐 전승된 지식체계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은 환경결정론적 설명을 넘어, 자연-인간 관계가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하며 지속가능성을 모색해 온 과정의 증거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기후 및 환경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토지 이용과 생태적 복원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실천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특성은 세계유산 등재기준 (ⅳ)와 (ⅴ)에 밀접히 부합한다. 예컨대, 계단식 논이나 관개 체계는 ‘사람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토지 이용의 탁월한 예’로 등재 사유가 되었으며, 이는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이 단순한 생존 전략을 넘어 보편적 교훈을 제공하는 지속가능성 모델임을 뒷받침한다.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의 두 번째 특성은 생산 활동, 일상생활, 신앙체계가 공간, 시간, 의례 차원에서 통합된 경관이라는 점이다. 유형 요소 분석에서 Ag-B-T(농경지-건축·구조물-도시·마을)의 높은 동시 출현은 생산과 생활 공간의 긴밀한 연계성을 보여준다.
이 물리적 기반은 관습과 전통(CT, 79.3%), 종교와 영성(RS, 34.5%) 등 무형 요소와 밀접히 결합한다. 발리의 수박 시스템은 관개 기술, 마을 조직, 사원 배치, 종교 의례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대표 사례이며, 포도 재배 지역(알투 도루, 토커이, 피에몬테)은 생산 기술-저장고 건축-생산자 마을-수확 축제가 하나의 문화경관 체계로 작동한다.
생테밀리옹 특별지구의 사례는 지형을 활용한 농경지가 생산 및 종교 활동 공간으로 확장된 예라 할 수 있다. 석회암 기반의 지형을 활용하여 조성된 지하 저장고와 수도자들의 암굴 수도원(monolithic church)이 하나의 공간 체계로 연결되어 있어 생산 공간과 종교 공간의 복합성이 드러나며, 이는 문화경관 내에서 생산-생활-신앙이 융합된 전통 지식 체계의 심화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처럼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은 생산 활동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그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적, 종교적 체계까지 포괄하는 복합적 구조를 가진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경관은 기능적 측면과 상징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해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현대 경관 계획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통합성은 세계유산 등재기준 (ⅲ) 및 (ⅵ)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생산 활동이 단순히 경제적 기능을 넘어 공동체의 생활양식과 종교적·상징적 체계와 결합된 점은 “살아 있는 전통”과 “정신적·예술적 성취”로서의 가치를 입증하며, 이는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의 독창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세 번째 특성은 강한 공동체 기반 문화와 그 지속적 전승이다. 분석 결과, 마을 운영 체계(M, 69.0%), 사회 조직과 규범(SON, 48.3%), 전통 예술과 문화적 표현(TAE, 65.5%)의 높은 출현 빈도는 이러한 공동체 문화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농경 활동의 노동집약적 특성과 자원의 한계는 효율적인 협업 체계와 공정한 분배 시스템을 요구했다. 코르딜레라스의 '이마요스' 공동 노동 조직, 발리의 '수박' 수자원 관리 체계, 콘소 지역의 세대 기반 의사결정 구조 등은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여 발전한 공동체 운영 시스템의 사례들이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공동체 체계가 단순한 관리 메커니즘을 넘어 지역 정체성(L, 63.6%)의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공동 의례와 축제, 구전 전통, 공동 작업 과정은 구성원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집단적 기억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처럼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은 물리적 경관의 형성과 유지를 가능케 한 사회문화적 기반을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경관의 보전과 관리는 물리적 형태의 보전뿐만 아니라, 공동체 문화의 지속적 전승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공동체 해체와 문화적 동질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적 운영체계와 집단적 기억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게 한다.
이 특성은 세계유산 등재기준 (ⅲ)과 (ⅴ)와 맞닿아 있다. 공동체의 협력적 운영 체계와 사회적 규범은 특정 지역 문화의 독창적 전통을 보여주고(ⅲ) 전통적 정주 형태와 토지 이용을 가능케 한 탁월한 사례(ⅴ)로 평가되며, 동시에 특정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6. 결론 및 시사점
본 연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29개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을 유형·무형 요소로 세분화하여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농경문화 기반 정주지 문화경관의 본질과 가치를 도출하고, 이들이 지닌 문화경관적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과 시사점을 제시한다.
연구 결과,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은 단순한 물리적 환경이 아닌 인간과 자연의 장기적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복합적 가치 체계임을 확인하였다. 유형 요소 중 건축물·구조물(B)과 농경지(Ag)는 100%의 사례에서 발견되었고, 무형 요소 중에서는 전통 지식과 기술(KS)이 96.6%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였다. 이는 이들 문화경관이 인류의 농경 활동과 정주 방식이 자연환경과 조화롭게 결합된 산물이며, 세대를 거쳐 축적된 지식체계가 그 근간임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 요소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연계되어 복합적 체계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농경지(Ag)는 지형 적응형 농업 기술(KS)과 수계 시스템(W)을 통해 실현되었으며, 이는 공동체 기반 운영 체계(M)로 유지되고 종교와 영성(RS)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상호연계성은 생산-생활-신앙의 통합적·총체적 경관을 나타내며 문화경관 보전에 있어 통합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복합적 체계 유지에 있어 사회조직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된 사례에서 마을 운영 체계(M, 69.0%)와 사회 조직 및 규범(SON, 48.3%)이 차지한 비율은 공동체 기반 관리체계가 문화경관 유지의 핵심 요소임을 시사한다. 이는 문화경관의 지속가능한 보전을 위해서는 유형적 경관 요소의 보전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지해온 공동체의 참여와 전통적 관리체계의 존중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법률, 제도, 국가 정책 등의 보전 체계와 지역 공동체 참여의 균형적 접근이 필요하며, 국제협약, 국가유산 보호법, 지역 조례 등의 제도적 틀과 더불어 지역 공동체의 생활문화와 경제활동을 고려한 통합적 관리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은 자연-인간 관계의 조화, 생산-생활-신앙의 통합적·총체적 경관, 강한 공동체 문화라는 특성을 공유하며, 이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정주 방식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한다. 농경문화 기반 마을의 문화경관은 인류의 환경 적응과 지속가능한 생활양식의 귀중한 증거로서 그 가치와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합적 보전 접근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화경관에 대한 이해와 보전은 과거의 유산을 지키는 소극적 행위를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생태적 지혜와 문화적 다양성을 전승하는 적극적 의미를 지닌다. 아울러, 농경문화 기반 전통 정주지 문화경관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보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축적된 생태적 지식과 공동체 운영 경험, 문화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기후위기 대응, 공동체 회복력 강화, 문화 다양성 보존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과제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는 농경마을 및 문화경관 보전 정책에 다음과 같은 함의를 제공한다. 첫째, 유형·무형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건축물이나 경관의 형태적 보전뿐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전통 지식, 공동체 관습, 사회적 조직의 지속가능한 전승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지역별 특수성을 반영한 맞춤형 보전 전략이 요구된다. 동일한 농경문화 기반 마을이라도 지역의 환경적,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으므로, 일률적 기준보다는 각 지역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셋째, 문화경관의 진화적 특성을 인정하는 동태적 관점이 필요하다. 문화경관은 과거에 형성되어 현재까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지속적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적 존재이다. 따라서 경관의 본질적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요구에 적응할 수 있는 탄력적 보전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본 연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은 수많은 전통마을 문화경관이 존재하며 이들에 대한 포괄적 연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문헌 자료 중심의 분석으로 인해 현장에서의 실제적 작동 방식과 공동체 인식에 대한 심층적 이해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후속 연구에서는 비등재 사례를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비교 연구, 현지조사를 통한 심층적 사례 연구, 문화경관의 변화 과정과 적응 메커니즘에 관한 통시적 연구 등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