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도시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을 공원에 전시하는 보존형 역사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보존형 역사공원은 역사성과 현재의 공공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길지혜와 박희성, 2020). 역사공원이 조성되는 방식은 유적 전시가 포함된 일반적인 공원 조성의 양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유적의 의미 또한 이용자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으며 문화유산의 보존과 조경 설계가의 통합적인 설계 프레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김기욱과 소현수. 2019). 역사적 의미를 공간 경험으로 전달하는 설계 전략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본 연구는 잠실 진주아파트 주택재건축 과정에서 발굴된 유구1)를 공원으로 이전하여 복원2)하고 재현하는 역사공원 설계3) 내용을 서술한다. 연구의 목적은 유구가 가진 역사성을 드러내고 도시공원의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역사공원의 설계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백제 한성기의 유구를 온전한 상태로 이전복원, 전시하고 일상적으로 역사교육과 체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설계적 해법을 도출한다. 본 연구에서 역사공원4)이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용어이며, 선행 연구나 사례분석에서는 외부공간(광장, 문화공원 등)에 유적이 전시 혹은 재현된 사례로 범위를 설정하였다.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2장은 유적을 현장에 보존하거나 복원 전시하는 역사공원에 관한 선행 연구와 조성사례를 분석한다. 3장은 백제 한성기의 주거 및 생활사의 고찰을 통해 본 대상지가 가진 역사적 장소성을 탐색한다. 4장은 이를 토대로 역사공원의 계획과 설계 내용을 서술한다. 5장에서는 본 설계를 통한 시사점과 차별점을 도출한다.
설계 대상지는 송파구 신천동 20-4번지 일원에 있는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정비사업부지 내 역사공원으로 면적은 3,370제곱미터이다(그림 1 참조).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정비사업에 따른 기부채납 공원으로 사업의 주체는 재건축 정비사업 조합이며 국가유산청 심의5)와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 심의를 거쳐서 설계가 완료되었다. 준공 후 관리는 송파구가 담당한다. 2005년 잠실아파트 지구 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어린이공원이 결정되었고 2017년에 어린이공원 조성계획이 결정되었다. 재건축 정비사업 공사 동안 백제 한성기의 대형 주거지가 발굴되면서 2022년 1월부터 매장유산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다. 발굴된 주거지 21호와 22호는 잔존상태가 가장 양호하였다. 21호 주거지는 장축이 23미터의 초대형 유구로 확인되었으며, 22호에서는 매우 온전한 상태의 부뚜막이 발굴되었다. 조사 완료 후 2022년 5월에 매장문화재 분과위원회(현 매장유산 분과위원회)는 유구를 공원으로 이전복원하면서 어린이공원을 역사공원으로 변경하는 방안으로 조건부 가결 결정하였다. 아파트 현장의 남측에서 발굴된 21호, 22호 주거지를 아파트 북서측에 위치한 역사공원으로 이전하도록 하였다. 21호 주거지는 공원시설 활용이 가능한 재현 방식으로, 22호 주거지는 부뚜막 실물을 이전 복원하는 방식으로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유산 전문가의 의견을 받도록 하였다(도원문화재연구원 2022a). 공원 설계는 2022년에 착수해서 2023년 문화유산위원 자문, 도시공원위원회 심의, BF예비인증 등의 절차를 거쳐 2024년 실시설계를 완료하였다. 2025년 공사를 시작하여 2026년 초 완공되었고 문화유산위원의 현장실사를 거쳤다.
2. 매장유산 현장 보존에 관한 선행 연구와 사례분석
기존의 연구 성과로 볼 때 매장유산을 포함한 역사공원은 단순한 관람 중심에서 벗어나 역사적 가치와 교육성, 일상적 이용이 결합한 공간으로 조성해야 하며, 설계 단계 이후에 운영, 체험, 거버넌스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영필(2006)은 역사공원이 역사 콘텐츠 강화, 해설·체험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역사성과 공원 기능을 동시에 높여야 한다고 했다. 고영권과 소현수(2016)는 서울시 역사공원의 사례 분석을 통해, 유산 중심 역사공원이 근린공원과 차별화되지 못하고 있으며 역사성과 교육성이 핵심 가치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했다. 신현수(2018)는 발굴 유적지를 포함한 공간에 대해 경관계획과 조경 시공 차원의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며 역사공원은 설계와 시공 전 과정에서 일반 공원과 구별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기욱과 소현수(2019)는 매장유산을 현지 보존한 역사공원인 능곡선사유적공원, 안산신길역사공원, 용죽역사공원의 사례를 통해 주민의 일상적 이용의 고려, 유구 보존 공간의 연계성 확보, 유구 보존 방식의 유연성 제고, 보호시설의 디자인 조형성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 바 있다. 보존 중심의 관람형 공원에서 벗어나 일상적 이용, 체험, 해석이 결합한 공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준호(2023)는 개발사업과 연계된 유산 보존 조치가 공정 지연 등 현실적 문제를 초래함을 지적했다. 길지혜와 박희성(2020)의 연구에서 영국, 미국, 일본의 역사적 도시공원은 각기 다른 방식의 보존 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나 여전히 물리적 요소 중심의 접근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하면서, 변화하는 유산 개념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포괄하는 통합적 보존 접근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국외 연구로 Fouseki and Sandes(2009)는 런던과 아테네 등 도심 내 현장 유구 보존이 기술 문제가 아니라 도시개발, 운영 주체, 관람 경험, 유지관리 등이 얽힌 거버넌스의 문제이며, 공공적 지속가능성은 사회적 타협의 결과라고 보았다. Sposito and Scalisi(2018)는 보호각을 단순한 보호 구조물이 아닌 무엇을 왜 보존하는가에 대한 가치 판단이 공간적으로 구현된 장치로 규정하며 설계의 적절성은 보존 목적과 해석 의도에 부합하는지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8년 송파구 풍납동 미래마을 부지에 풍납백제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풍납토성 중앙부 서편에 위치한 미래마을 부지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백제문화층이 발견되어 발굴 조사한 결과 백제 한성기의 건물터, 도로 등의 유구와 다량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풍납백제문화공원 내 복제한 백제살림집의 내부에는 부뚜막과 그릇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발굴된 자료를 토대로 주거지 흔적과 안내판이 조성되어 있다(그림 2 참조).
2022년에 조성된 광화문역사 광장의 전시 공간은 육조거리의 사헌부 문터가 발굴된 유적을 이전 보존한 사례다. 현장 전시장의 보호각은 가로세로 20미터의 규모로 본 연구의 대상지에 설치해야 할 보호각 규모와 유사하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배수로와 우물, 사헌부 청사의 담장과 출입문 터, 행랑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https://gwanghwamun.seoul.go.kr/). 전시 공간은 지상에서 약 1미터 아래 공간에 보존 조치하였고 보호각은 한국 전통 가옥의 처마 곡선을 살리고 기둥은 인근 나무와 비슷한 두께와 높이로 조성하였다(그림 3 참조).
대표적인 현지보존 방식으로는 남산에 있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들 수 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적을 전시하고 있다. 한양도성 유적, 조선신궁 배전터, 남산 분수대 등을 포괄하는 전시관 권역에서는 조선시대 축성의 역사, 일제강점기의 흔적, 해방 이후의 도시화, 발굴 및 정비 과정을 볼 수 있다. 이곳은 2017년 ‘남산 화현 자락 한양도성 현장 유적박물관 설계 공모’(https://project.seoul.go.kr)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공모 당선작은 ‘임시적 층위, 엄격한 잠정성’(협동원건축사사무소 + 감이디자인랩)으로 한양도성의 보호각이 드러나기보다는 기존의 경관에 스며드는 최소한의 개입방법을 택했다. 보호각은 기둥과 지붕으로만 이루어진 가벼운 구조물로 한양도성 성곽 유구와 남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설계했다(이민아 인터뷰, 2019). 보호각은 잠자리 날개와 같이 남산의 능선과 한양도성의 성곽과 조응하며 상승하는 이미지로 설계했다는 점에서 유산의 현지보존 과정에서 주변 경관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그림 4 참조).
대표적인 해외 사례로 Molinete Archaeological Site Shelter를 들 수 있다. 이는 스페인 카르타헤나 도심에 있는 로마 시대 유적군을 보호하기 위해 2004–2011년 사이 조성되었다. 본 유적은 포럼, 공중목욕장, 주거 유구 등 복합적 고고학 층위를 포함하고 있으며 장기간 노출로 인한 일사·강우 피해가 지속적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유적의 보존과 공공적 활용을 병행하기 위한 지붕형 보호각이 계획되었다. 보호각은 Amann–Cánovas–Maruri가 설계하였으며, 설계자는 보호각을 독립된 덮개가 아닌 도시공원과 유적을 연결하는 연속적 지붕 구조로 해석하였다. 금속 구조의 대스팬 지붕은 유적 전면을 포괄하며 기둥을 유적 외곽에 집중 배치함으로써 고고학적 층위에 대한 물리적 간섭을 최소화한다.
다른 사례로는 Zhoukoudian Peking Man Cave Protective Shelter를 들 수 있다. Zhoukoudian 유적은 베이징 인근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베이징 원인 화석이 발견된 동굴 유적이다. 기존 임시 보호 구조는 강우와 동결, 융해 작용에 취약하였으며 장기적 보존을 위한 구조적 대안이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2018년 칭화대학교 건축설계연구원(THAD)이 설계한 새로운 보호각이 완공되었다. 보호각은 대공간을 덮는 쉘형 지붕 구조로, 지형을 따라 형성된 지붕 형상이 특징적이다. 구조는 최소 접지점으로 지지 되며, 프리패브 시스템을 적용해 향후 해체가 가능한 가역성 원칙을 반영하였다. 프로젝트를 총괄한 THAD 소속 건축가 Zhang(2018)은 이 보호각을 “유적 위에 놓인 건물이 아니라,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된 하나의 구조적 풍경”이라고 설명하며 보존 원칙이 형태 생성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강조하였다(그림 5 참조).
국내외 연구 및 조성사례를 통해서 볼 때 본 연구에 반영할 수 있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존 중심의 관람형 공간을 넘어 일상 이용과 해석이 결합한 공공공간으로 계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역사공원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보존 방식, 해석 전략과 표현 방법, 유리 관리적인 측면 등 통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다. 셋째, 보호각은 단순한 보호시설이 아니라 유적의 가치와 해석을 공간으로 구현하는 핵심 설계 요소라는 점이다. 역사 유적에 설치되는 구조물은 과거를 단순히 모방하거나 추측을 기반으로 복원하는 것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기술과 디자인이어야 한다.
3. 대상지의 역사적 가치와 특성의 이해
백제(기원전 18–서기 660년)는 온조를 위시한 부여 계통 이주민들이 고구려에서 갈라져 내려와 한강 유역에 나라를 세워 700여 년간 이어진 고대국가이다. 백제 한성기는 웅진 천도 전까지 한성에 도읍을 정하고 475년까지 한강 유역에 터를 잡았던 백제의 최전성기였다(https://buyeo.museum.go.kr/baekjeplatform). 본 설계의 대상지에 이전 보존하게 될 유구가 발견된 곳은 몽촌토성의 서벽으로부터 약 30미터, 풍납동 토성 남벽으로부터 약 90미터 떨어진 위치며 한강과의 직선거리는 1킬로미터이다(한성백제박물관, 2022). 유구의 위치나 규모로 볼 때 발굴 지역은 백제 한성기 대규모 취락으로 확인되며, 특히 21호, 22호 주거지를 중심으로 고고학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된다(도원문화재연구원, 2022b). 백제의 첫 도읍은 한강 남쪽의 위례성이었으며 나중에 도읍을 확장하고 한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옆에 흐르는 한강은 1970년대 잠실섬 일대를 개발하면서 남쪽 물줄기를 메우게 되었다(한성백제박물관, 2015). 1974년도 항공사진에 현재의 지도를 겹쳐서 대상지 위치를 파악한 후, 백제 한성기를 묘사한 지도 위에 대상지 위치를 추정해보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과 함께 대상지가 가지는 위치적인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그림 6 참조).
진주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의 발굴조사 결과 주거지, 수혈 요구, 구상유구, 소성 유구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조사 지역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는 도로 유구가 확인되었다. 발굴된 주거지 중 21호와 22호는 조사 지역 내 주거지 중 가장 잔존상태가 양호하며 21호 주거지의 경우 장축이 23미터에 이를 정도의 초대형 주거지이고 주거지 22호는 바닥 면 다짐과 부뚜막이 매우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21호와 22호의 평면 형태는 육각형이며 공통으로 내부 시설에 부뚜막과 주공의 흔적이 남아 있다. 두 주거지의 주요 출토 유물은 삼발형토기, 개, 어망추, 절구 등이다. 문화유산 심의 결과에 따라 21호 주거지를 재현해 공원시설로 활용하고, 22호는 온전한 상태의 부뚜막을 이전복원하게 되었다. 그 외 출토된 유물은 박물관으로 이전 전시 예정이다(도원문화재연구원, 2022a; 그림 7, 표 1 참조).
| 유구 번호 | 평면 형태 | 규모(cm) | 내부 시설 | 주요 출토 유물 |
|---|---|---|---|---|
| 21호 | 육각형 | 2,308 × 976 × 48 | 부뚜막, 주공 | 삼발형토기, 개, 주구완, 어망추, 전 |
| 22호 | 육각형 | 1,855 × 1,102 × 56 | 부뚜막, 벽구, 주공 | 개, 장란형토기, 삼발형토기, 겁형토기, 세완, 암키와, 아궁이테, 절구, 지석 등 |
자료: 도원문화재연구원, 2022a
발굴조사 결과 본 대상지는 4, 5세기경 왕궁을 능가하는 초대형 주거지였으며 규모 면에서도 풍납토성 미래 마을에서 발견된 초대형 주거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진주아파트 부지는 당시 고급 집터의 명망을 가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문화유산 전문가의 자문으로 주거지 21호, 22호의 배치 방향과 크기를 기존에 발굴된 현황을 지킬 것과 각 주거지의 가치를 교육용으로 잘 알릴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백제 왕궁과 주거지의 위치적 맥락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파악하고 전달해야 한다고 했다(권오영, 2023).
이전복원과 재현을 위해서는 역사적 특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발굴된 수혈주거지는 땅을 파서 반지하식으로 주거지를 마련한 방식이다. 한성 백제기의 수혈주거지는 주 출입구가 대체로 돌출되어 지상에서 접근하게 되어있으며 형태는 방형에서 점차 육각형으로 변화했다. 잠실 진주아파트에서 발굴된 유구도 대부분 육각형이다. 수혈주거지의 공간은 출입구 외에 크게 조리공간, 취침공간, 작업공간으로 구분된다. 동북 방향에 부뚜막 등의 조리 공간이 위치하며 부뚜막의 크기로 가족의 수나 경제적 형편을 유추할 수 있다. 대상지와 근접거리인 풍납동에서 발굴된 주거지에 대한 축조 모형으로 볼 때 부뚜막의 위치, 진입부의 경사, 기둥, 벽체, 육각형의 지붕 형태까지 살펴볼 수 있다(국립문화재연구소, 2014; 그림 8 참조).
백제인의 의식주와 여가생활을 살펴보면, 풍납토성 근처에서 나무로 짠 우물의 틀이 발견되었고 우물 정자 모양으로 새끼줄로 연결된 항아리도 발견되었다. 주식으로 쌀 외에 콩, 보리, 조, 밀 등의 곡식을 먹었다. 굽거나 볶기도 하고 주로 끓여서 먹었다. 부뚜막의 크기와 발견된 쇠솥으로 보아 4세기경부터 밥을 지어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후반부터는 세발토기와 같은 반찬 그릇을 만들어서 썼다. 발굴된 주거지 주변에는 숟가락, 밥그릇, 절구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백제인들은 주로 투호, 바둑, 장기, 저포(樗蒲, 윷놀이)6), 농주(弄珠, 공놀이)7) 등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에서 일본 천황에서 선물했다고 전해지는 바둑판은 일본에 소장되어 있으며 예술품으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한성백제박물관, 2022; 그림 9 참조).
4. 역사공원 계획 및 설계
설계에서 주안점을 둔 것은 방문객을 위한 백제 한성기의 역사성과 주거지의 일상적 활용을 고려한 공공성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한 점이다. 백제 한성기의 역사적 가치를 이전복원과 재현의 방식으로 구현하고 그와 동시에 아파트 내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친근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공적 도시공원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설계의 목표이다. 기본 방향으로 첫째, 매장유산의 가치를 체험하고 배우는 역사적 장으로서의 역사공원 조성이다. 둘째로는 주민이 일상적인 휴식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녹색 쉼터로서의 공공공원 조성이다. 셋째로는 고대의 주거지가 현대의 주거지 한가운데로 이전복원하게 되는 드문 사례가 되기에 새로운 장소정체성을 갖도록 고려하는 점이다. 공간적인 분리보다는 배우면서 놀고, 체험하면서 쉴 수 있는, 역사성과 일상성이 통합된 공간의 설계가 이루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보호각의 디자인이 과거의 전통을 답습하는 방식이 아닌 현대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주변 경관과 조화됨과 동시에 유구의 역사성을 드러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체험의 공간설계에 주력하였다.
공원의 골격은 몽촌토성의 지형을 최대한 재현하고자 했다. 남서 측의 언덕을 중심으로 대지 전체를 감싸는 형태로 구성하였다. 광장형 휴게 쉼터는 가로변에 있는 열린 공간으로, 인접한 근린생활시설과 연계되어 일상적인 휴게나 방문이 가능하도록 하였고 교육 체험 목적의 방문객에게 만남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원상태의 부뚜막과 주거지 복원8)을 위해 22호 주거지는 보호각을 계획하였고, 21호 주거지는 어린이 놀이 체험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였다. 두 주거지 모두 기존에 발견된 방향과 크기를 동일하게 계획하여 실제로 규모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그림 10 참조).
어린이 놀이공간인 21호 주거지는 백제 한성기의 주거 방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재현하였다. 수혈주거지의 특성을 반영하여 공원 레벨의 60센티미터 선큰 방식으로 계획하였다. 백제인의 방식대로 부뚜막이 있던 북측 방향에는 모래 놀이터를 계획하고 석재 절구 모형을 설치하여 취사 공간을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백제 한성기 주거지에서 돗자리를 깔고 취침 및 메인 공간으로 활용한 점을 고려하여 잔디마당으로 조성하였다. 고강도 콘크리트 소재의 바둑돌 모형, 어망추와 삼발형 토기 모형을 설치하여 유산을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그림 11 참조).
안내시설9)로는 입구의 종합안내판, 바닥안내판, 개별안내판, 그림안내판으로 구성하여 백제 한성기의 역사적 가치를 알릴 수 있도록 동선과 이용을 고려하여 배치하였다. 입구에 있는 바닥안내판은 대상지와 몽촌토성과 풍납토성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그림 12 참조). 개별안내판도 각각 발굴된 21호, 22호의 유물을 소개하고 규모 등의 관련 내용을 담았다. 21호 주거지 주변에는 그림안내판을 계획하였다. 다양한 백제의 생활상을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일러스트를 의뢰하여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계획하였다(그림 13 참조).
휴게시설로는 파고라와 등의자를 배치하였고 광장형 휴게공간에는 대형 느티나무를 열식하였다. 주요 식재 수종의 선정은 선행 연구(송석호와 김민경, 2020)를 토대로 삼국시대 고문헌에 출현 기록이 있는 수종10) 중에 소나무, 단풍나무, 산수유, 살구나무, 꽃복숭아, 자엽자두나무 등을 식재했다.
22호 주거지를 위한 보호각은 땅에 새겨진 주거지 유구를 눈, 비, 바람 등의 자연재해 및 반달리즘으로부터의 보호를 기본 목적으로 하였다. 역사공원의 랜드마크가 되는 주거지를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개방형 전시관의 역할을 해야 했다. 이를 위해 의도적인 조형성을 가진 인공적 캐노피이기보다 땅이 가진 역사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는 자연스러운 모습, 현대적 기술로 만드는 조형적 랜드마크이면서도 그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 유적을 위한 조연으로써의 보호각을 계획하였다. 이러한 설계 의도에 맞추어 ‘Floating Ground’라는 개념을 설정하였다. ‘Floating Ground’는 마치 집터가 떠 있는 듯 땅의 흔적이 투영되는 보이지 않는 랜드마크 개념이다. 주거지 유구 형태에서 추출된 육각형의 흔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하학적 형태로 계획되었다. 주거지라는 땅 자체가 유산이고 주인공인 본 역사공원에서, 보호각은 하부의 유구를 반사 투영하여 땅의 흔적이 구름처럼 떠 있는 모습이 되고자 하였다(그림 14, 그림 15 참조).
역사공원 주변 가로변에서, 공원 내부 주요 지점에서, 유구로 다가가는 접근로에서, 보호각은 공원의 랜드마크로 시선을 끌며 땅에 새겨진 주거지 유구를 하부의 슈퍼미러 반사면을 통해 멀리서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도록 계획하였다. 설계안을 실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뷰 포인트, 보호각으로부터의 거리, 반사면의 각도 및 높이 등을 종합적으로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설계안을 도출하였다. 보호각의 내부는 확산판을 통해 자연빛을 끌어들여 주거지 내부를 밝혀주고, 밤에는 조명을 통해 하부의 유구를 은은하게 밝히며 주변까지 그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계획하였다.
보호각의 형태는 기울어진 면을 통한 유구 전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형태 자체가 구조체가 되도록 설계되었다. 구조기술사와 협업을 통해 구조적 형태를 설계하였고 내부의 트러스 구조를 통해 얇은 기둥과 경량 철골만으로 길이 20미터, 폭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유구를 덮는 장스팬 구조가 가능하도록 설계하였다. 이를 통해 원거리에서는 마치 땅이 떠 있는 듯 보여지기를 의도하였고, 근거리에서는 최소한의 얇은 기둥으로 땅 새겨진 유구를 존중하고자 계획하였다(그림 16 참조).
BF 심의과정에서 입구 경사로 및 폭 조정, 휠체어 대기 공간 반영, 21호 주거지 레벨 변경 등의 설계 변경이 이루어졌다. 몽촌토성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잔디 언덕의 레벨이 2.5미터에서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 경사로 설치로 1.5미터로 변경하게 되면서 전망데크 설치가 삭제되고 순환로도 축소되었다. 공사 과정에서도 근린생활시설의 입주자로부터 강력한 요청에 따라 근린생활시설의 진입로 개설, 일부 대형목 삭제 등의 변경이 불가피하게 이루어졌다. 어린이 놀이시설의 위험성이 우려되어 어망추 등의 모형은 실현되지 못했으며 관리적인 측면에서 모래놀이터도 삭제되었다(그림 17, 그림 18 참조). 백제 한성기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한 세부적인 시설이나 레벨 등의 설정이 일부 실현되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심의과정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하고 유지관리 측면에서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여 설계 단계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호각 시공에 있어서 가장 큰 이슈는 마감 패널의 완성도였다. 기울어진 천장면이 유구를 잘 반사하여 보여주기 위해 스테인리스 슈퍼미러 패널의 평활도가 중요했고 이를 위해 적절한 제작 모듈과 완성도 높은 제작 기술이 요구되었다. 여러 번의 목업 제작과 목업 품평을 거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었으나 최대한의 완성도로 시공되었다. 보호각의 기둥은 흰색으로 설계하였으나 주변 아파트 저층 입면부의 어두운 톤과 조화를 위해 유사한 톤으로 변경하였다. 보호각은 설계 의도가 대부분 구현되었으나 심의와 시공과정에서 일부 디테일 및 색상 등 설계 당시에 예상치 못했던 변경이 발생하였다(그림 19 참조).
부뚜막을 포함한 22호 주거지의 유지관리와 문화해설은 송파구 문화예술과와 문화유산과에서, 공원시설의 전반적인 관리는 송파구 공원녹지과에서 담당할 계획이다. 문화해설사 프로그램도 풍납토성과 몽촌토성과 연계하여 이루어질 예정이다.
5. 결론
본 연구는 선행 연구, 사례분석, 백제 한성기 주거 생활사에 대한 고찰 등을 통해 역사성, 공공성, 장소정체성을 구현하기 위한 보존형 역사공원의 설계 전략과 실현 방법을 모색하였다. 주요 설계전략과 방법으로는 첫째, 지역적 특성을 분석하고, 백제 한성기의 유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일상적인 공원 활용과 역사 체험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통합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대상지는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인접한 최상류층의 주거지로 평가받고 있으며 백제 한성기의 주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이 발견되었다. 몽촌토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마운딩을 포함하여 발굴된 유구의 크기와 방향을 준수한 배치계획, 휴게공간 및 산책로 등을 계획하여 역사교육과 일상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 점 등 역사성과 공공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통합적인 공원계획을 수립했다. 둘째, 현대적 조형성의 보호각 설치로 장소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기존의 역사공원 보호각은 대체로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엄숙한 전통 분위기를 고수하였다. 본 설계에서 보호각은 현대적 기술의 조형적 랜드마크이자 그 자체가 주인공이 아니라 땅의 흔적이 투영되는 보이지 않는 랜드마크 개념으로 출발하였다. 주거지 유구의 형태에서 추출된 육각형의 흔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하학적 형태로 계획하고 슈퍼미러를 통해 하부의 유구를 반사 투영하여 땅의 역사와 관람객의 모습까지 함께 투영됨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를 한 프레임에 담고자 하였다. 셋째, 공원 체험을 통해 백제 한성기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놀이공간과 다양한 방식의 안내시설을 계획하였다. 입구 광장의 바닥안내판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과의 관계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고, 놀이 체험시설로 재현한 21호 주거지에는 백제인의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그림안내판을 계획하여 캐릭터 일러스트를 통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역사공원의 조성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진주아파트 공사 중에 발견된 두 개의 주거지가 이전하게 된 내용도 상세하게 안내시설에 담았다.
본 연구는 도시개발 사업 과정에서 발견된 백제 한성기의 유구를 보존형 역사공원에 이전, 재현하는 설계과정과 내용을 상세히 다루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점을 가진다. 특히 어린이공원으로 예정된 부지가 역사공원이 된 사례로, 쉬면서 놀고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일상 속 역사공원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시사점을 가진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발견되는 유적으로 인한 사업 시행자, 중앙정부, 지자체, 그리고 입주민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한 갈등 양상과 대안 도출, 역사공원과 거버넌스의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후속 연구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