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Article

근대 도시 문화로서 창경원 야앵 - 벤야민의 ‘판타스마고리아’를 중심으로 -

권영란*, 배정한**
Young-Ran Kwon*, Jeong-Hann Pae**
*서울대학교 대학원 생태조경학과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Rural Systems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Jeong-Hann Pae,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Rural Systems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Tel.: +82-2-880-4877, E-mail: jhannp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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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Nov 13, 2017 ; Revised: Jan 11, 2018 ; Accepted: Jan 11, 2018

Published Online: Feb 28, 2018

국문초록

이 연구는 창경원 야앵이 근대 도시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하여 도시사회적 관점에서 야앵을 해석하고자 했다. 야앵이 시작된 1920년대 경성의 사회적인 모습은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과도기였으며, 경성의 사회적 근대화 과정은 도시 문화로서 야앵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연구는 당시 경성 사회와 야앵에 만연했던 ‘판타스마고리아’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사점을 찾았다. 첫째, 경성의 판타스마고리아는 군중, 스펙터클, 체험의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야앵에서도 같은 모습이었다. 이는 자본주의에 의해 통제되는 근대 사회와 야앵이 동일한 매커니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앵은 축소된 경성이자 근대적 상품 세계 그 자체가 된다. 둘째, 판타스마고리아가 야앵의 경관을 구성한다는 점은 야앵에 특별한 보는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적 주체들에게 야앵의 판타스마고리아는 근대 도시 경성과 이전부터 살아오던 삶의 공간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게 해 준, 근대적 보는 방식에 대한 학습 기제의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야앵의 판타스마고리아는 야앵의 지속적 소비를 부추기는 환상인 동시에, 일제의 영향이 지배적인 자본주의에 의해 작동되는 도시 문화를 망각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이 연구는 야앵을 창경원 내부의 이벤트에서 근대 도시 사회를 투사하는 도시 문화로 확장해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전통적인 상춘의 방식과 비교하여 퇴폐적이고 질 낮은 상춘 문화로 치부되었던 야앵에 도시사회적 맥락에서 새로운 시각을 투사했다는 점도 또 다른 연구의 의의라 할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sought to interpret the Ya-Aeng (夜櫻) from the viewpoint of urban society, focusing on the occurrence of the Ya-Aeng at Changgyeongwon (昌慶苑) in the modern city of Kyungsung. When the Ya-Aeng started in the 1920s, the social aspects of Kyungsung were in a transitional period from the traditional to the modern. The social modernization of Kyungsung has had a dramatic impact on the Ya-Aeng as a part of the city culture. Using the concept of ‘phantasmagoria’, which was widespread in Kyungsung society and the Ya-Aeng, this study has established three implications of the Ya-Aeng. First, Kyungsung's phantasmagoria appeared in the form of crowds, spectacles, and experiences. This study suggests that such interpretation also applies to the Ya-Aeng. This means that the capitalism-controlled modern society on one hand and the Ya-Aeng on the other had the same mechanism. Therefore, the Ya-Aeng, as modern city culture, becomes a miniature version of Kyungsung and a modern commodity world in itself. Second, the fact that phantasmagoria is a major element of the landscape of the Ya-Aeng means that there is a special way of seeing. For modern subjects, the phantasmagoria of the Ya-Aeng has acted as a learning mechanism for a modern way of seeing. Third and finally, the phantasmagoria of the Ya-Aeng was an illusion to encourage the continued consumption of this culture and at the same time, forget about the capitalism-controlled urban culture. At this time, capitalism was dominated by the influence of Japanese imperialism. The significance of this study lies in that it expands the idea of the Ya-Aeng from the events inside Changgyeongwon into the urban culture, which is a projection of modern urban society. In addition, where the Ya-Aeng in the past had been regarded as a decadent and poor-quality spring celebration in comparison to the traditional spring celebration, this study proposes a new point of view for the Ya-Aeng in an urban social context.

Keywords: 근대 일상; 발터 벤야민; 군중, 스펙터클; 근대적 시선
Keywords: Modern Everyday; Walter Benjamin; Crowd; Spectacles; Modern Gaze

I. 서론

창경원(昌慶苑) 밤 벚꽃놀이, 야앵(夜櫻)은 경성의 대표적 야간 경관이자 상춘 문화다. 창경원의 벚나무는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식수되었다. 1908~9년경 창경원에 심긴 300그루의 벚나무가 벚꽃을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게 된 것은 1912년이 되어서다(Kim, 2014: 94-100). 경성 부민들은 이전엔 보지 못했던 벚꽃의 화려함에 매료되었고, 창경원은 벚꽃 명소로 빠르게 인식되었다. 일찍이 관앵(觀櫻)이 경성의 상춘 문화로 자리 잡은 데 비해, 야앵은 본래 공식적 행사가 아니었다. 야앵은 일부 일본인 특권층이 비공식적으로 창경원 벚나무 아래에서 밤새 술자리를 벌인 것이 그 시초인데, 이 사실이 대중에 알려지게 되고, 창경원을 밤에도 개방하라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야앵이 시작된 것이다(Kim, 2008: 147).

1924년 4월 20일 공식적으로 시작된 야앵은 문화 통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일제강점기 제2기(1919~1931)에 등장했다. 때문에 야앵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대부분의 경관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운영된 측면이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이와 같은 관점은 김백영의 연구가 가장 대표적이다. 김백영은 당시의 문화 행사가 총독부의 허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정치적 측면에서 야앵이 대중을 탈정치화시키고 평화적 일상을 연출하기 위해 일제가 이용한 장치라고 해석한다(Kim, 2009: 479-485). 김현숙 또한 야앵을 현란한 볼거리로 대중을 현혹하여 탈정치적으로 훈육하는 식민문화정책으로 해석하며, 야앵에서 일어나는 민족적 구별 짓기에 집중한다(Kim, 2008).

하지만 야앵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당시 사람들의 이용과 인식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김해경의 연구는 벚꽃에 대해 일제강점기를 투영하는 감정적 시선을 지양하고, 벚나무로 인해서 변하게 된 행락 문화의 양태에 대해 논의한다(Kim, 2011). 그는 야앵을 전통적 행락 문화를 무질서하고 소비적이며 향락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킨 계기로 해석한다. 벚꽃의 집객력에 주목하는 김정은도 야앵을 일본인들에게조차 외면받을 만큼 무질서하고 맹종적인 문화로 설명한다(Kim, 2014).

이처럼 선행 연구에서 야앵은 대중을 탈정치화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퇴폐적이고 무질서한 관람 양태라는 부정적 시선으로 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야앵 문화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기 위한 시도로, 야앵이 전통적 상춘 문화와 공간적으로 구별되는 ‘근대 도시’에서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통적 상춘의 공간은 정주 환경과 자연의 경계에 위치했는데, 이는 도성의 상징적 의미와 유교적 맥락에서 풍류와 놀이 공간을 도성 내부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Kim, 2011: 127). 하지만 야앵은 경성 내부에서 일어난 도시 문화이자 상춘 문화다. 이 때문에 야앵의 새로운 역할 또는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야앵을 당시 도시와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시도가 중요하다.

개항 이후 근대화의 물결이 도시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경성에서는 전통 도시에서 근대 도시로 공간의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도와 차도가 분리된 넓은 포장 도로가 조성되고, 거리에는 자동차와 전차 같은 교통 수단이 운행되면서 경성은 근대 도시의 외관을 갖추어갔다. 근대화를 향한 도시의 변화는 물리적 차원뿐 아니라, 도시의 작동 방식이나 도시민의 생활양식과 같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특히 야앵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도시문화라는 점에서 사회적 차원의 근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경성의 사회적 분위기는 야앵이 시작된 시기와 맞닿아있는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특히 경성의 사회적 변화를 지배한 것은 공업화와 소비 대자본의 출현이다(Kim, 2007: 80-82).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하면서 경성은 감각적이면서 환상적인 상품의 유혹과 근대적 소비 욕망이 들끓는 도시로 성장한다. 이처럼 자본주의에 따라 지배되는 상품 세계는 근대인을 사로잡기 위해 스펙터클과 같은 환상의 형태로 도시에 전시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환상을 벤야민(Walter Benjamin)은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로 정의한다(Benjamin, 1983). 그렇다면 경성의 사회적 근대화가 근대 도시 문화인 야앵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때, 경성의 상품 세계와 소비문화를 지배했던 판타스마고리아 현상 또한 야앵에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판타스마고리아를 통해 본 야앵은 도시사회적 맥락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시작으로 이 연구는 발터 벤야민이 정의하는 판타스마고리아를 통해 경성과 창경원 야앵을 살펴보며, 이를 바탕으로 근대 도시 경성과 야앵의 관계를 파악하고, 나아가 경성에서 야앵의 역할을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시도는 창경원 야앵이 전통적 상춘 방식과 비교하여 향락적이고 퇴폐적이었다는 평가나 일제가 대중을 탈정치화시키는 수단이었다는 견해를 넘어서서 도시사회적 맥락에서 야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야앵을 창경원 내부의 이벤트에서 근대 도시의 사회상을 투사하는 문화로 확장하여 야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폭넓은 시선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II. 근대 도시 경성의 판타스마고리아

발터 벤야민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1983)는 19세기 대도시 파리를 통해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근대성을 성찰하고자 한 시도다. 파사젠베르크의 무대가 되는 19세기 파리는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자본주의가 영향을 미친 시기였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은 단순한 물리적 대상을 넘어선 감각적이면서 환상적인 상품 세계가 출현함으로써 가시화되는데, 상품은 단일 제품보다는 아케이드나 백화점에 진열될 때 군중을 더욱 환상적으로 매료시킨다(Na, 2016: 37). 이때 상품이 자신의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관계를 숨긴 채 근대 도시인을 사로잡는 환상으로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를 등장시킨다.

원래 판타스마고리아는 18세기 말 발명된 연극 장치로, 벽 또는 스크린에 빛을 투사하여 환영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영상 매체다. 판타스마고리아는 실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 또는 환영의 형태인 것이다. 판타스마고리아와 관계해서 자본주의적 상품 세계를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마르크스(Karl Marx)다. 마르크스는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상품들 사이의 관계가 인간에게 불투명하며 신비스러운 특성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Han, 2016: 111). 따라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의 구체적 과정이 망각되어 노동력과 무관하게 상품의 가치를 교환하게 되는 현상을 상품의 판타스마고리아로 정의한다.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의 의미 범위를 마르크스적 개념으로부터 확장한다. 마르크스가 노동 과정의 소외를 중심으로 상품의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가 전도되는 과정에서 상품의 판타스마고리아적 성격이 드러나는 것으로 보았다면, 벤야민은 상품뿐 아니라, 상품의 진열 방식, 광고 그리고 소비의 방식과 상품을 소비해야 하는 소비자의 모든 측면에서 판타스마고리아를 찾아낸다(Shim, 2010: 215-217).

정리하자면, 판타스마고리아는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적 구조를 은폐하는 환상이다. 특히 이 환상의 이미지는 벤야민에 의해 상품뿐 아니라, 대도시적 인간 유형,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이들이 지각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에서 관찰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도시의 물리적 측면이 아닌 사회적 측면에서 판타스마고리아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판타스마고리아 현상이 19세기 파리에만 한정될 수 없으며, 자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근대 도시 모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점에서 판타스마고리아는 20세기 경성의 사회적 경관을 재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 된다. 따라서 이 연구는 다양한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경성의 판타스마고리아 중에서도 군중(주체), 스펙터클(매개), 체험(방식)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1. 군중의 탄생

군중은 다양하고 모호한 사람들의 무리이다. 벤야민은 거대한 사람들의 무리가 도시에 등장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군중이 도시 경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 군중은 다양한 계급, 신분, 성별,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 있지만, 개인적 차원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처럼 군중의 탈인격적 양상을 벤야민은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글을 빌려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엥겔스에 따르면, “거리마다 온갖 계급과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재촉해가며 걷고 있는데, 그들 사이에는 보도의 우측으로만 빠르게 걸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양쪽 군중의 흐름을 멈추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만 존재할 뿐이며, 서로 관련이 없는 것처럼 각자의 걸음을 걷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똑같은 수단과 방법으로 똑같은 행복을 얻으려 할 뿐이다(Benjamin, 1983b: 986-987)”. 이처럼 군중은 멈추지 않는 거대한 흐름으로만 인식될 뿐, 이 흐름을 구성하는 개인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문제는 철저하게 제외된다. 개인의 문제를 지워버리고 같은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환상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 핵심이 바로 대도시의 군중 체험이다(Kwon, 2011: 54).

군중이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하게 된 것은 경성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Figure 1 참조). 특히 1930년대에 도시 산책이 경성 부민의 일상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혼부라(本ぶら)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같은 시기다. 혼부라는 1920~30년대 일본 긴자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이리저리 구경을 다니는 사람을 가리키던 말인 긴부라(銀ぶら)라는 단어 대신 혼마치(本町), 즉 본정 거리를 구경 다니는 군중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얼빠진 얼굴을 하고 물고기 떼와 같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며, 경성의 좁은 거리를 산책했다(The Chosun Ilbo, 1930. 11. 11.). 군중은 상점 간판에 글씨를 쓰는 일에도 무더기로 몰려들어 입을 벌리고 구경하는가 하면(The Chosun Ilbo, 1929. 8. 25.), 박람회와 같은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는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무더기 몰려들어 서로가 뒤범벅이 된다(The Chosun Ilbo, 192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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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The crowd of Kyungsung

Source: a: The Chosun Ilbo, 1929. 8. 25. b: The Chosun Ilbo, 1930. 4. 1. c: Maeil Shinbo, 191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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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市에서 (중략) 사람들은 부주의하는 동안에 서로 부딪혀서 물끄러미 시선을 마주치고 그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아니한 듯이 지나가고는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부딪힌다. 아무 목적 없이 특별한 방향도 없이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거리거리마다 길바닥에 반향 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중략) 젊은이, 늙은이, 있는 놈, 없는 놈 할 것 없이 시민의 모든 계급과 종류가 거리에 넘쳐흐른다. 거기에는 아무 도덕관념도 우리들 공통의 어떠한 문제도 생각되고 있지 않다. 다만 흥분이, 신경의 전율이 그들의 의식과 육체의 모든 부분을 액체와 같이 적시고 있다1).

특히 소설가 김기림이 포착한 군중의 모습은 벤야민의 관찰과 맥을 함께 한다. 김기림에게 있어 군중은 아무 목적 없이 거리를 걷는 각종 계급과 종류의 사람들이다. 각각의 사람은 군중의 흐름에 섞여 개인 차원의 문제를 지워내고, 탈인격적이고 몰개성적인 집단에 소속된다. 이들에게 공통점이란 오로지 도시의 환상에 현혹된 상태라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군중은 자신을 들여다 볼 줄 모르는 맹목의 존재, 다시 말해 상품의 휘광에 눈멀고 욕망의 심연에 발 빠진 안타까운 무반성적 무리인 것이다(Lee, 2004: 253).

이처럼 다양한 상품들이 도시에 진열되면서 이를 구경하기 위해 군중이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은 당시 일반적인 경성 사회의 풍경이었다. 이때 산책은 군중의 눈을 사로잡을 스펙터클이 도시에 펼쳐져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군중이 거리의 시각 주체인 동시에, 군중 스스로가 근대 도시의 중요한 스펙터클의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Buck-Morss, 2004: 115). 특정한 목적 없이 거리에 몰려다니는 군중의 거대한 흐름은 또 다른 군중에게 대도시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다.

2. 현란한 스펙터클

벤야민이 주목한 19세기 파리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일찍이 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형태의 산업과 관련된 산업 제품, 건축물, 심지어 예술 작품과 같은 스펙터클이 도시에 진열되었다. 스펙터클이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는 군중에게 사치스러운 소비문화와 유행을 부추겼는데, 이는 파사주(passage)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파사주는 상품 자본주의의 신전으로 불릴 만큼 사치스러운 상품 세계의 중심지다. 파사주에 늘어선 신유행품점들은 당시의 유행과 패션을 선도했다. 신유행품점은 점원만 2만여 명에 이를만큼 사치품의 유통과 소비가 활발했다. 도시에 파사주와 신유행품점이 들어서기 이전에도 부티크(boutique) 혹은 상점을 중심으로 여성의 옷이 전시되고 소비되고 유행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Kwon, 2009: 137). 하지만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가난한 노동자 남편들도 하루치 일당으로 아내에게 꽃무늬 옷을 사 줄 수 있게 되는데(Benjamin, 1983a: 175),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현란한 옷차림의 여성들은 마침내 복장만으로는 여염집 여인과 고급 매춘부를 구분하기 곤란해지는 정도에 이른다(Benjamin, 1983a: 266-267).

상품의 스펙터클이 만들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는 경성 부민들에게도 사치와 소비 욕망을 부추겼다. 특히 유행의 확산은 1930년대에 접어들어 보다 빠른 속도로 경성의 거리를 획일적인 풍경으로 바꿔 놓았다(Shin, 2003: 135). 같은 시기 경성에 나타나기 시작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은 패션을 통해 전근대적 가치를 끊어낼 만큼 유행과 소비에 집착하는 대도시 인간 유형이다. 전차 좌석이 비어 있는데도 앉지 않고 손잡이를 잡고 있는 여학생들의 손목에 황금 시계와 보석 반지가 반짝이고 있는 모습(The Chosun Ilbo, 1928. 2. 5.), 겨울이 되면 값비싼 여우 목도리를 고집하는 모던 걸의 모습(The Chosun Ilbo, 1931. 11. 24.), 영화 <빠렌티노>의 귀밑머리와 미국 서부영화 <카우보이>의 나팔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던 보이의 모습(The Chosun Ilbo, 1928. 2. 7.)에서 유행의 판타스마고리아가 만들어내는 획일화된 소비 패턴과 개성을 엿볼 수 있다(Figure 2 참조). 또한 잡지 별건곤(1930. 6.)의 <도시생활 5계명>에 따르면, 1930년대의 경성을 살아가는 필자는 아무리 돈이 없더라도 모든 문화 시설을 마음껏 이용하면서 봄철이 되면 실크 춘추복을 겨울이면 낙타털 외투를 껴입고 간간이 택시를 타고 카페 출입을 하는 것이야말로 도회 생활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상품의 스펙터클이 만들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는 패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유행의 형태로 획일화된 도시인의 모습을 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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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The fashion and uniformity in Kyungsung

Source: a: The Chosun Ilbo, 1928. 2. 5. b: The Chosun Ilbo, 1928. 2. 7. c: The Chosun Ilbo, 193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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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경험에서 체험으로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근대 도시로 전환되면서 사람들은 판타스마고리아적 공간을 지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터득해야 했다. 이 점에서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적 도시 공간을 규명하면서 이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 또한 강조했다. 벤야민에 의하면 근대 도시의 삶에서는 경험(Erfahrung)이 서서히 소멸하고, 체험(Erlebnis)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Benjamin, 1983b: 1804). 경험은 언어로 전승되는 인류의 집단적 지혜로 전통 또는 전통과 관계한다(Shim, 2010: 223). 일반적으로 전통과 전승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것이며, 또 반복된 내용들이 어느 정도 체화된 관계에서 나타나지만, 체험은 개인적이고, 일회적이며, 우연적이고, 찰나적이다(Shim, 2010: 224). 판타스마고리아에 의해 지배되는 도시는 총체적 경험을 통해서는 감각할 수 없는 속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파편화된 감각의 영역인 체험의 방식으로 지각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신유행품점의 진열장이 연속해서 이어지는 파사주에서 산책하는 군중의 시선은 마치 열차를 탄 승객처럼 파노라마적인 시선으로 스펙터클을 체험한다(Lee, 2004: 265). 다시 말해 거리를 걷는 군중이 쇼윈도를 통해 내부 풍경을 보는 것과 기차의 창밖을 통해 지나가는 외부의 풍경을 보는 방식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1930년대의 경성에도 경험의 방식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화려한 자극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Figure 3 참조). 근대 도시의 삶은 이제까지의 삶과는 다른 가치관과 행동 양식을 요구했다. 도시가 형성되자 도시인이 등장했고, 그들은 도시적 생활양식을 습득해야만 한 것이다(Kim, 1999a: 275). 파사주가 19세기 파리의 근대적 시선-또는 근대적 보는 방식-의 훈육 기제였다면 경성에서는 백화점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백화점은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가장 근대적 형태의 건축물이다. 건물 밖에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백화점의 쇼윈도는 군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 상품을 바깥으로 내보인다. 백화점 숍걸(shop girl)의 미모 또한 상품 못지않은 쇼윈도의 중요한 구경거리가 된다(The Chosun Ilbo, 1934. 5. 14.). 군중은 백화점 쇼윈도 앞을 오가면서 유행균의 무서운 유혹의 황홀경에 도취되는데(Yeosung, 1937. 11.), 이때 백화점에 전시된 상품의 판타스마고리아를 통해 근대 특유의 보는 방식의 전형이 구현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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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The modern gaze

Source: a: The Dong-A Ilbo, 1933. 12. 22. b: The Chosun Ilbo, 1929. 8. 25. c: The Chosun Ilbo, 1934.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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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창경원 야앵과 판타스마고리아 체험

1. 야앵의 시작과 군중의 판타스마고리아

창경원 밤 벚꽃놀이, 야앵은 1924년 4월 20일 처음 시작되었다2). 창경원에 벚나무가 식수된 것은 1909년경이었지만3), 이전부터 벚꽃 명소로 명성을 누리던 왜성대(倭城臺)의 벚나무가 고사하고 나서야 창경원이 벚꽃놀이를 위한 장소로 주목받았다. 19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창경원 관앵(觀櫻)은 경성의 큰 유행이었지만, 야앵이 시작되면서 관앵은 야앵의 인기를 따라오지 못했다. 야앵이 처음 시작된 1924년에는 상춘객의 수가 주간 69,927명, 야간 61,941명으로 주간 상춘객의 수가 약 8,000명 더 많았으나, 다음 해부터 야앵 상춘객이 점차 증가하여 1925년에는 약 1만 3천 명, 1934년에는 5만 5천 명이 관앵의 상춘객 수보다 더 많았다(Oh, 1993: 53). 이처럼 관앵보다 야앵을 찾는 상춘객의 수가 많았다는 점에서 야앵은 관앵보다 더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뒤섞이는 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별건곤에 따르면 야앵에는 “형형색색의 가지각색 옷을 입은 남자, 여자, 늙은이, 젊은이, 어린아이와 중국 사람, 서양 사람, 조선 사람, 기생, 여학생, 갈보, 월급쟁이, 집 주름, 신사, 순사4)”와 같은 다양한 성별, 나이, 국적, 직업을 가진 사람이 섞인 ‘군중’이 등장했다(Figure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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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The crowd in the Changgyeongwon

Source: a: The Dong-A Ilbo, 1928. 4. 23. b: The Dong-A Ilbo, 1933.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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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 벚꽃 철의 야간 개원은 지난 24일에 비롯하여 5월1일까지 8일간이었는데 그동안 비도 아니와서 최후에는 낙화구경에 까지 방화객의 흥을 돋았다. 9일간 입원자 총계는 주간 114,260인 야간 145,953인으로 도합 260,213인이오, 그 입장요금이 5전, 10전이 23,801원에 달하여 창경원 돈벌이가 제일 좋은 때였다. (중략) 꽃 진 뒤의 창경원 안 신록이 좋다하지만은 꽃 때에 비교하여 한산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창포, 작약이 앞으로 창경원을 단장하겠지만 때가 더운 때라 호랑이도 하품을 하게 될 이라고 한다5).

당시 매체는 매년 야앵의 방문객 수를 보도했다. 이처럼 상춘객의 수를 기사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은 벚꽃놀이 그 자체보다 야앵을 통해 체험할 수 있는 군중의 판타스마고리아를 선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야앵과 달리 당시 다른 도시 문화는 관람객의 민족적・계층적 유형에 따라 차별이 존재했다. 예컨대 운동회의 경우, 계급과 성별에 따라서 관람석 배정이 달랐으며, 영화관도 남촌과 북촌의 위치에 따라 관람객의 민족적, 계층적 차이가 존재할 뿐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좌석이 구분되었다(Kim, 2008: 151-152). 하지만 야앵은 운동회나 영화관과 같이 국적이나 계급, 성별에 따라 공간적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야앵이 시작되면 매년 수만 명 이상의 상춘객이 창경원으로 모여들게 되면서 군중의 판타스마고리아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때 군중은 야앵이라는 동일한 소비 욕망을 지닌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환상을 가지게 한다. 이 점에서 야앵의 군중 체험은 다른 소비형 도시 문화로부터 차별을 받아온 경성 부민들에게 야앵을 지속적으로 소비하게 하는 매력적 요소가 된 것이다.

또한 위의 기사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야앵의 ‘입장료’다. 입장료는 야앵이 군중의 판타스마고리아 체험을 가속하는 촉매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창경원의 입장료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책정되었다는 점이다. 다양한 유형의 상춘객은 모두에게 동일한 요금을 지불하고 창경원을 들어서는 순간 국적, 지역, 나이, 빈부, 계급, 성별과 같은 개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익명의 군중이 되는 것이다. 경성 부민은 야앵의 ‘값싼 입장권’만 있으면 군중들의 무리에 동화되어 화려한 스펙터클을 즐길 수 있었다6). 그 때문에 경성의 빈민층에게 야앵은 근대 도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자 일상의 박탈과 결핍을 망각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야앵에서 군중 체험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분은 당시 사람들에게 군중의 무리가 벚꽃만큼이나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는 점이다(Figure 5 참조). 여기서 군중은 단순히 야앵을 즐기는 관람객의 차원을 넘어서서 야앵의 경관을 구성하는 또 다른 스펙터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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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The crowd becoming spectacles during the Changgyeoungwon Ya-Aeng

Source: a. The Chosun Ilbo, 1930. 4. 12. b. The Chosun Ilbo, 1934.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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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펙터클의 전시와 유행의 판타스마고리아

야앵의 경관은 상춘객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해가 갈수록 화려해진다. 매일신보에 따르면 창경원은 작년보다 더 많은 상춘객이 방문할 것을 예상해 “길을 넓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조성하는 준비”를 하는가 하면 “만 명 이상의 상춘객을 수용하기 위해 동물원 일부를 옮기고 큰 마당을 만들 계획7)”이었다. 또한, 같은 기사에는 야앵 경관을 작년보다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해마다 200주씩 보식하던 벚나무를 400주로 늘려 심었으며, 나무 위에는 강촉전등(絳燭電燈)을 달아 작년보다 한층 불야성(不夜城)을 만들고자 계획을 세운다(Figure 6 참조). 야앵의 현란한 전등 장식은 관앵에서는 볼 수 없는 창경원의 또 다른 경관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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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The illumination of the Changgyeongwon Ya-Aeng

Source: a: The Chosun Ilbo, 1934. 4. 19. b: The Dong-A Ilbo, 1936. 4. 29. c: The Dong-A Ilbo, 193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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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시민의 봄놀이터 창경원에는 봄을 지극히 아름답게 장식하는 “사쿠라” 꽃이 가지마다 매여 달려 꽃의 나라가 되었다. 오늘 밤부터의 창경원은 꽃을 탐하는 띄끝에 시들린 시민의 눈을 끌고자 꽃구름 사이로 전등 빛이 반짝거리고 (중략) 곳곳마다 “일미네순”이 있어 창경원의 야경은 지극히 아름답게 되었다. 창경원의 야간공개는 금일부터 매일 열릴터인데 입장료는 작년과 같이 십전씩이라 한다8).

여러 매체는 매년 창경원의 확충된 각종 설비 시설을 광고하여 야앵 경관의 화려함을 강조하는데, 그중에서도 ‘조명’의 설치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전등 빛, 전기 장식, 일미네순(illumination), 네온사인, 불야성 등의 표현으로 설명되는 야앵의 조명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창경원을 장식하고 상춘객의 흥취를 돋우기 위해 창경원에 전시된 스펙터클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 말 경성이 외국인의 눈에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저녁이 되면 완전한 정적을 이루었던 도시였음을 미루어 보았을 때(Kim, 1999b: 145), 화려한 조명 장식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밤의 경관은 상춘객의 발걸음을 창경원으로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야앵의 핵심 경관 요소인 ‘벚꽃’ 또한 야앵을 계속해서 소비하게 만드는 스펙터클이자 판타스마고리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벚꽃은 일본혼(日本魂) 그 자체였으며(Kim, 2014: 103-104), 조선 사람들에게도 벚꽃은 일제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9). 하지만 야앵의 인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이는 벚꽃이 야앵을 장식하는 스펙터클들과 동일선상에 자리하게 되고, 이에 따라 상춘객들에게 벚꽃은 제국의 상징이 아닌 단순한 구경거리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당시 매체에서 야앵의 벚꽃은 “넉넉한 밤의 구경거리(The Dong-A Ilbo, 1924. 7. 9.)”이자, “춘정(春情)을 물결치게 하는 봄의 여신(The Dong-A Ilbo, 1940. 4. 22.)” 또는 “고운 얼굴에 한 층 더 화장한 얼굴(Byeolgungon, 1933. 4. 1.)”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야앵에서 벚꽃이 지니는 일제의 상징성이 옅어졌다는 점은 그 명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벚나무는 일제가 수입하여 조선에 보급했기 때문에 벚꽃을 사쿠라(さくら)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Byeolgungon, 1929. 4. 1.). 하지만 야앵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밤 벚꽃놀이를 의미하는 요자쿠라(よざくら)가 아닌 야앵으로 불렸다(Kim, 2008: 158). 이는 야앵 문화가 일본 전통의 밤 벚꽃놀이와 분리된 문화로 해석할 수 있으며10), 야앵의 벚꽃 또한 상춘객에게 일본혼 또는 일제의 상징이 아니라 창경원을 장식하는 환상의 형태로 인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창경원 벚꽃이 서울의 명소요 조선의 명소가 된지는 오래다. 그러나 해마다 돌아오는 양춘의 봄을 맞이할 때마다 서울의 창경원 벚꽃은 서울 사람들의 사슴을 조리게 한다. 꽃구름 같은 왕가의 장중한 옛 추녀를 감사고 도는 꽃구름의 희롱은 화창한 봄의 한 업는 기쁨과 끝없는 계절의 느낌을 주는 경색이다. 꿈같은 눈물의 환상이기도 하다. 이 가튼 느낌이야 비단 서울사람뿐이 가질 수 있는 특권만은 아니겠지. 서울의 고즈넉하고도 이지적인 감촉을 아는 사람이라면 멀리 서울을 떠나서 오히려 더 기억을 새롭게 할 추억의 꽃이 될 것이다. 봄! 서울! 창경원 벚꽃! 이것은 확실히 서울이 가지는 새로운 계절적 감격의 하나이다11).

이처럼 야앵이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각종 매체의 적극적 선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는 도시민의 생활에서 일과 여가가 분리되면서 휴일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시기로, 매체에 의해 탐승(探勝), 관앵, 관화, 각종 전시회와 공연과 같은 여가를 즐기는 방법이 정형화되었다(Gwon, 2008: 227). 마찬가지로 야앵은 봄을 맞이할 때마다 사람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서울의 새로운 계절적 감격으로 대중에게 선전되는가 하면(Byeolgungon, 1934.), 소설가 염상섭은 우이동과 창경원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도회인이라 소개하면서(Dongkwang, 1927. 8. 5.) 봄이 오면 창경원에서 벚꽃을 즐기는 것이 도시민의 당연한 여가인 것처럼 욕망을 주입하기도 했다.

3. 판타스마고리아의 소비적 관람 방식

야앵의 또 다른 스펙터클은 여러 가지 일시적 이벤트들이다. 이는 야앵을 계기로 본격적인 유흥과 볼거리를 창경원에 만들어가는 것이다(Kim, 2015: 172). 화려한 스펙터클과 이를 좇아 무리지어 흐르는 군중의 판타스마고리아는 창경원의 경관을 불야성의 환락장으로 만들어낸다.

30만 경성시민이 손꼽아 기다리는 밤의 환락장 창경원의 금년 야행대회는 (중략) 창경원에는 경전에서 여러 가지로 휘황찬란한 전등 조명 장치를 한 이외에 박물관 앞 광장에는 음악당을 설치하야 여흥으로 이왕가의 조선아악과 양악을 연주할 터이며, 또 동물원 앞 광장에는 여러 가지 활동사진을 영사도 하고, 휴식소에는 라디오의 설비까지 하는데, 금년에도 역시 밤마다 만경 인파로 대혼잡을 이룰 것이 지금부터 예상된다12).

기사에 따르면 휘황찬란한 전등 장식 이외에도, 박물관 앞 광장에 설치된 음악당에서는 조선 아악과 양악 연주로 상춘객의 흥을 돋우고, 또 다른 광장에서는 활동사진이 상영되기도 했다. 그중에서 군중에게 특히 인기 있는 이벤트는 레뷰(revue)13) 공연이었다(Figure 7 참조). 조선에서 레뷰는 전통 무용, 가부키 같은 일본의 전통 연행, 서양 음악과 춤, 마술과 곡예 등 서로 이질적인 내용의 연행이 이어지는 방식을 의미한다(The Dong-A Ilbo, 1935. 4. 12.). 이처럼 레뷰 무대의 비인과적인 성격은 공연을 관람하는 관중의 관람 양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관중은 레뷰의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현란한 자극과 속도감을 지각하기 위해 체험의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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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The stage show of the Changgyeongwon Ya-Aeng and The modern gaze

Source: a: The Chosun Ilbo, 1932. 4. 23. b: The Chosun Ilbo, 1930. 4. 15. c: The Chosun Ilbo, 1934.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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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원의 “밤벚꽃”은 경성시민에게 해마다 나리는 동원령이다. (중략) 정문을 들어서면서 막바로 보이는 잔디밭 광장은 주위를 삑둘른 벚꽃의 하얀 울타리에 더 한층 흥을 돋아주나 이 안에 머물은 자는 별로 볼 수 없다. (중략) 춘당지의 한편 가에 슨 청홍녹황(靑紅綠黃)의 찬란한 십칠메돌의 유리탑은 검고 푸른 물에 광파를 던지고 인적에 참을 깨친 금붕어들은 물위로 솟구치며 일조의 야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 앞으로 지나는 사람들 옆 눈으로 보는 둥 마는 둥 연예장으로 걸음을 빨리한다. 이는 “밤벚꽃”이지 기실은 연예의 구경인 모양. 소녀 하나가 무대에 나타나서 “촬스딴스”를 자유자재로 뽐내여 보이자 관중은 숨을 죽이고 있는데 삽시간에 암흑세계로 되었다14).

위 기사에 따르면, 군중들은 벚꽃과 색색의 조명으로 장식 된 유리 탑이 만들어낸 화려한 야경에도 보는 둥 마는 둥 곁눈질하며 빠르게 지나치며, 총체적 경험보다는 파편화된 체험의 방식을 선택한다. 이처럼 진중한 몰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람성, 동일시의 단일한 축에 결박되지 않고 분절된 장면 사이를 유랑하는 것은 비단 레뷰화된 특별 프로그램 공연만이 아니라, 창경원 벚꽃놀이 전체의 관람성이기도 하였다(Kim, 2008: 153). 야앵의 화려한 장식과 만개한 벚꽃, 일회적인 이벤트들, 무작위로 펼쳐지는 공연들의 화려한 시각적 자극은 군중에게 야앵을 표피적이고 찰나적으로 감각하게 만들었다.

IV. 결론

전통적인 상춘 문화가 정주 환경과 자연의 경계인 도성 밖에서 이루어졌다면, 야앵은 근대성을 공간의 논리로 하는 경성의 내부에서 나타났다. 따라서 야앵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 도시 경성의 양상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야앵이 시작된 1920년대 경성은 일제의 공업화 정책과 소비 대자본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측면에 상당한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연구는 이러한 경성의 도시사회적인 근대화가 창경원 야앵에 영향을 미쳤다는 전제 하에 판타즈마고리아적 양상을 통해 야앵을 살펴보고자 했다.

판타스마고리아는 도시인에게 상품의 이면에 존재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은폐하는 환상이다.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에 대해 상품 소비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근대 도시의 일상적인 모든 것에 등장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경성의 상품 세계와 소비문화에 만연해 있던 판타스마고리아는 도시 문화로서 야앵에서도 군중, 스펙터클, 체험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판타스마고리아가 야앵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야앵 문화가 경성 소비사회의 구조와 작동 방식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야앵을 근대 도시 문화로 정의함에 있어서 도성 밖에서 도시의 중심으로 상춘 공간의 이동이라는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야앵 문화의 메커니즘 또한 근대적으로 전복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처럼 판타스마고리아 현상을 통해 야앵을 창경원 내부의 이벤트가 아니라, 하나의 축소된 경성이자, 근대 도시 문화로 보는 시각은 야앵의 새로운 의미를 제시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판타스마고리아는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 지배받는 사회적 관계를 숨기고 근대 도시인들로 하여금 야앵의 지속적인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환상인데, 이는 오롯이 상춘객의 시각에만 의존한다. 특히 만개한 벚꽃과 조명 장식, 광고, 연예장의 무대와 같이 화려한 야앵의 스펙터클은 군중의 환상을 가속하는 마법적 장치로 엄청난 시각의 홍수를 일으킨다. 이때 군중은 판타스마고리아에 의한 시각적 자극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파편적이고 순간적으로 인지하는 체험의 방식을 택하게 된다. 야앵이 시작된 1920년대 경성 사회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근대 도시를 살아가는 주체는 야앵을 통해 근대적 지각 방식을 학습할 수 있었다. 즉, 특정하게 보는 방식이 야앵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야앵은 근대적 시선 혹은 근대적 보는 방식의 훈육 기제로 역할을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성의 근대적 소비문화와 자본주의가 일제에 의한 공업화와 소비 자본의 출현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때문에 야앵의 판타스마고리아는 야앵의 지속적 소비를 부추기는 환상인 동시에, 일제 영향의 자본주의에 의해 작동되는 도시 문화를 망각하게 하는 환상으로 작용했다. 당시 소비형 여가 문화로부터 소외되어 온 가난한 조선 사람은 일상의 박탈감과 상실감을 망각한 채 군중의 모습으로 야앵을 소비한다. 군중뿐만 아니라, 스펙터클로 장식된 경관이 주는 시각적 자극과 이를 표피적이고 파편화된 경험으로 지각하게 하는 체험의 방식은 야앵의 소비를 재촉하는 판타스마고리아다. 특히 벚꽃이 제국의 상징이 아닌 창경원을 장식하는 구경거리로 존재하는 것은 조선 사람들이 야앵을 계속해서 소비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요소가 된다.

Notes

김기림, ‘바다의 誘惑’, The Dong-A Ilbo, 1931. 8. 28.

창경원 야앵은 약 10일 정도의 벚꽃이 만개하는 기간 동안 저녁 7시부터 밤 10시 30분까지 특별 개장하여 진행된 대규모 문화 행사다. 당시 창경원은 이왕직(李王職) 직영체제였으며, 이왕직은 일본의 궁내성 소속이었다. 야앵은 1926년을 제외하고, 1924년 개최된 이후 1945년까지 매년 빠지지 않고 실시되었다. 1926년에는 4월 24일 야앵이 개최된 하루 만에 순종이 승하하여 창경원을 폐원하였다가 6월 25일에 개원하였다.

창경원에 벚나무를 심게 된 계기는 1909년 개원식에 참관한 일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일본식 정원으로 꾸밀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신사를 비롯하여 명승지나 공원에 벚나무 식수가 이루어지고 있던 상황이어서 창경원 내의 벚꽃 식수는 시간문제였을 뿐 정해진 수순이었다고 여겨진다(Kim, 2008: 146).

“본사 여기자의 불량신사 검거록”, Byeolgungon, 1931. 5. 1.

“창경원 꽃 구경꾼 八日간 二十六萬名”, The Dong-A Ilbo, 1933. 5. 3.

20세기 초 일제시기 여가 문화의 향유층은 경성부(京城府)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10%에 국한된 유한층과 재조선 일본인들이었다. 시 외곽에 거주하는 최하층 서민들 90%는 소비형 여가 문화로부터 소외되어 근대에 대한 욕망과 좌절을 거듭하였다. 따라서 무료 혹은 값싼 입장료로 제공된 공진회나 박람회, 운동회, 전람회등 대형 관제 문화 행사는 이들 도시 빈민층과 지방민들에게 근대를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1920년대 중후반의 영화 관람료는 1926년대인 1~2원이었는데, 창경원 벚꽃놀이 입장료는 1924년 개장 시 대인 입장료가 10전(소인 5전)이어서 영화관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임을 알 수 있다(Kim, 2008: 142-152).

“화신을 고대하고 있는 창경원의 불야성, 금년에는 모든 것을 확장하여 작년보다 일층 화려하게 한다”, Maeil Shinbo, 1925. 2. 18.

“봄마즌 창경원, 금일(今日)부터 불야성(不夜城)”, The Dong-A Ilbo, 1925. 4. 25.

1911년 조선에 건너와 15년을 살았던 일본인 관리가 엮은 글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이 벚꽃을 심으면 꺾거나 뽑아갔다. 부역 증발에 고통 받던 조선 사람들의 증오와 한이 벚꽃에게로 쏟아진 것인데, 결국에는 벚나무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세워가면서 식수를 완성했다. 이는 조선 사람들이 일본의 상징으로서 벚꽃을 이해하고,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갈등을 보여주는 사례다(Kim, 2014: 94-97).

실제로 야앵에서 벚꽃을 대하는 태도에는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의 현저한 차이가 존재했다. 김현숙에 따르면, 일본인의 사쿠라관이 생명의 무상함에 대한 애상, ‘사쿠라의 국토로서의 일본’에 집중되었다면, 한국인에게 벚꽃은 ‘활짝 핀 화사한 봄꽃’이라는 계절적 감흥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야앵의 관람 양태 또한 꽃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고 오랜 시간 동안 가무와 음주를 즐기는 일본인들과 달리 한국인은 대체로 사쿠라 꽃을 빠르게 스쳐 지나서 사람과 사건을 찾아 처음부터 끝까지 휘돌아 다니기만 하였다(Kim, 2008: 157).

“꿈가튼 눈물의 환상, 옛 宮闕 昌慶 苑의 벗꼿”, Byeolgungon, 1934.

“花城日을 창경 夜櫻. 來 20일에 열게 된다고”, The Chosun Ilbo, 1929. 4. 15.

레뷰는 불란서에서 시작된 것으로 처음에는 서사적 문제를 풍자한 독립적인 흥행물이었다. 미국에서는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스테이지 쇼 스타일로 빠르게 진행되는 스피드의 레뷰를 선보여 흥행에 성공하였고, 이것이 일본을 거쳐 조선에 들어왔다(“레뷰―의 근대성”, Byeolgungon, 1929).

“춘당지에 오색홍탑 화광(花光)에 월색(月色)도 무위(無爲) 야앵의 제1야”, The Dong-A Ilbo, 1935.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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