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Article

88올림픽공원 조각공원의 조성 과정 및 전후 담론의 해석

신명진*, 성종상**, 배정한***
Myungjin Shin*, Jong-Sang Sung**, Jeong-Hann Pae***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박사과정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Ph.D. Candidate, Interdisciplinary Program in Landscape Architectur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Professor, Graduate School of Environmental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Professor,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Rural Systems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Jeong-Hann Pae, Professor,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Rural Systems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Tel.: +82-2-880-4877, Fax: +82-2-873-5113, E-mail: jhannpae@snu.ac.kr

이 논문은 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o. NRF-2019R1F1A1060431).

© Copyright 2018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Feb 14, 2020; Revised: Mar 02, 2020; Accepted: Mar 02, 2020

Published Online: Feb 29, 2020

국문초록

88올림픽공원은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전환점인 88서울올림픽대회를 기념하는 공간으로서 체육공원, 사적공원, 조각공원 등 다양한 기능의 수행을 목적으로 한 도시 공원이다. 문화올림픽이라는 슬로건 아래 88서울올림픽은 국가 홍보의 장으로 적극 활용되었으며, 이와 같은 차원에서 1986년 기 준공되었던 공원은 1, 2차 세계야외조각 심포지엄 및 국제조각초대전을 거치며 190여 점의 작품이 설치되면서 조각공원으로 재조성되었다. 본 연구는 조각공원으로서 88올림픽공원의 조성 과정 및 전후 담론을 살펴봄으로써 88올림픽공원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재고하고자 한다. 조성 과정 및 그 전후, 88올림픽공원을 둘러싼 여러 담론이 나타났다. 먼저, 추상 양식 조각품의 비율이 높아 한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데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번졌다. 둘째, 조성 과정에서 몽촌토성 훼손 등 사적지 보존 문제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셋째, 공원의 정체성에 관한 공방이 있었다. 이에 더해 조각공원 프로그램의 후속 도입으로 인해 공간과 작품의 간극이 해소되지 못했기에 통합된 도시 공원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는 의견도 제기되었다. 조각공원으로서 88올림픽공원은 세계화, 민족성, 공공성, 예술성 등에 대한 논의가 대형 공원 조성과 맞물려 공론화된 초창기 사례로, 추후 도시 경관의 문화·예술적 실천에 대한 탐구에 있어 유의미한 역사적 맥락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정치·문화·예술·조경을 아우르는 88올림픽공원의 조성 전후 담론을 살펴봄으로써 1980년대 문화예술과 도시 공간에 대한 논의가 벌어진 지점을 포착하고 해석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ABSTRACT

The 88 Olympic Park is a monumental urban park in Seoul, developed to commemorate South Korea’s hosting of the 1988 Seoul Olympic Games. Initially conceived to emphasize the event slogan, ‘Cultural Olympics,’ which was driven by the Korean government, the park, already designed and constructed by 1986, was reconfigured into a sculpture park following two international outdoor sculpture Olympiads and an invitational sculpture exhibition. This study takes a look at the process of redesigning the park into sculpture park and the socio-political discussions surrounding such a process, in order to reconsider the significance of the 88 Seoul Olympic Park with regards to Korean landscape architectural history. Several discussions within Korean society arose during the redesign process. First, there were critiques on the artwork selection during the early phase of the project. Second, issues regarding the conservation of the national heritage site, Mongchon-tosung, located within the park, gave rise to a larger discourse on heritage preservation in Seoul. Third, discussions regarding the formation of the park identity, or lack thereof, prevalent. Through this study, the 88 Seoul Olympic Park presents itself as an example where large park construction in Seoul caused discussions regarding globalization, nationalism, publicness and art to be brought forth. This paper concludes that the 88 Seoul Olympic Park is a cultural landscape that requires further examination and exploration as it provides rich historical context for understanding the history of cultural and artistic practices in Korean urban landscapes.

Keywords: 1980년대; 도시조경사; 88서울올림픽; 문화경관; 공공예술
Keywords: 1980s; Urban Landscape History; 88 Seoul Olympics; Cultural Landscape; Public Art

Ⅰ. 서론

1. 연구 배경과 목적

최근 평창올림픽 개최 및 서울올림픽 30주년을 맞아 88서울올림픽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다양한 문화 기획 및 학술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1988년 올림픽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 제고를 목적으로 진행되어 한국 근현대사 전반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특히 이를 계기로 환경 정비 및 교통 인프라스트럭처를 비롯한 대규모 도시 개발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88서울올림픽은 국내 도시 경관 발전사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잠실 방이동에 위치한 88올림픽공원은 올림픽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으로 기획되어 조경 분야가 기본계획을 진행했다는 점에서 조경사적으로 유의미하다.

한국의 1980년대는 전국에 걸쳐 현대 조각공원이 동시다발적으로 조성된 시기였다. 국가 단위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수립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 최초의 공공 조각공원인 목포 유달산 조각공원이 1982년 개원했으며, 이후 제주조각공원, 제주 신천지조각공원 등이 연달아 조성되었다(Yoon, 2002). 즉, 조각공원은 1980년대 국내 문화예술 경관의 주요 형태 중 하나였으며, 이와 같은 차원에서 88올림픽공원은 한국 문화예술 경관의 초창기 모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성 초기부터 88올림픽공원은 기념비적일 뿐 아니라, 몽촌토성을 품은 사적공원, 체육시설을 갖춘 체육공원, 200여 점의 작품이 소재한 조각공원, 행사 종료 이후 대규모 거주지를 위한 근린공원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계획되었다. 특히 조성 당시 문화예술적 성격이 강했는데, 경관 요소로 사적과 조각 작품이 내세워졌으며, 각종 관련 문화 행사를 유치하는 등 국제 대회 진행 과정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도시 경관의 변화이기도 했다. 한편, 88올림픽공원의 조각공원 조성에 대한 여러 비판 여론이 형성되며, 공원, 공공미술, 국제적 위상, 문화 발전, 민족 예술 등 도시 공간, 조경, 공공성과 문화재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을 낳았다. 이후 문화예술적 경관으로서 88올림픽공원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88올림픽공원은 기념비적 공간이자 근린공원으로 인식되고 있고, 88올림픽공원 조각공원의 조성 과정을 조경의 관점에서 바라본 연구는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공공미술 패러다임 전환으로 인해 작품의 공익성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조각 중심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점 역시 88올림픽공원 조각공원 조성 역사에 대한 관심을 축소시켰다. 88올림픽공원에 소재한 조각품을 비롯한 조각공원 연구가 미술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준공 이후 조각공원으로 재조성되었던 88올림픽공원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해석을 위해 조경사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현존하는 1980년대 조각공원 중 가장 큰 규모를 지닌 88올림픽공원의 조성 과정을 조경사적 차원에서 재구성하고, 조성 전후 공원에 대한 다양한 비판 및 의견을 종합하여 예술의 정치화, 문화재 보존, 도시 공원과 문화예술 등 세 가지 담론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나아가 그 담론의 이면을 해석함으로써 1980년대 대표적인 조경 공간이자 문화·예술 경관인 88올림픽공원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상황을 이해하고, 추후 도시 경관의 문화·예술적 연구를 위한 맥락을 제시할 것이다.

2. 연구의 구성

이 연구는 선행 연구와 신문, 정부 보고서 등 각종 기록 자료를 기반으로 한 문헌 연구이다. Ⅱ장은 조각공원의 개념 및 유형 분류에 대한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Ⅲ장은 국가기록원 기록 및 시청각 자료, 소마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공원 관련 자료와 옛 신문 자료 및 ‘미술세계’ 등 미술 전문지를 중심으로 조각공원의 전개 과정을 정리하여 서술한다.1) 특히 도표, 도상 등 발굴된 자료의 시각화를 통해 88올림픽공원 조성 당시의 상황을 드러낸다. 88올림픽공원이 초창기 조경 형태를 비교적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데 반해, 소장 조각 작품의 잦은 이동 및 설치 방식의 변화가 일어났으므로 기존 조각공원으로서 88올림픽공원과 연관성이 적다고 판단하여 부지 현황에 대한 분석은 제외하였다. Ⅳ장에서는 조성 전후의 여러 담론을 신문자료 및 비평을2) 바탕으로 해석한 후 조경사적 가치를 탐색하고 시사점을 도출한다.

3. 선행 연구

먼저 조각공원 일반에 대한 연구로 조경·건축사학자 마크 트라이브와 조경가 정영선의 연구를 들 수 있다. 전자는 서양 전통에서 조각정원 양식의 기원을 쫒은 후 조각정원의 유형 분류를 통해 조각정원과 1990년대 당시 예술의 접점을 탐구했으며(Treib, 1988), 후자는 국내외 조각공원의 현황 조사를 진행하여 조각 작품과 부지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분한 조각공원의 네 가지 유형을 제시한 바 있다(Jung, 1990).

88올림픽공원에 관한 연구는 조성 당시 이루어진 연구와 추후 이루어진 고찰 및 함의 분석 등을 들 수 있다. 김세천은 올림픽공원의 계획·설계과정 및 조경시공 등 현황을 소개하며 조성된 도시 시설물로서 공원의 관리 방안을 분석했다(Kim, 1989b). 이어서 정현도는 조각공원의 역할과 기능을 조망하기도 했다(Chung, 1990). 최근 88올림픽공원을 미술사적 시각에서 분석하여 조성 및 조각품의 설치 과정, 그리고 1988년 서울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88올림픽공원의 함의를 고찰한 연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한편(Yang, 2007; Yang, 2008; Kim, 2012; Cho, 2018), 많은 88올림픽공원 관련 연구는 전체 공원 부지 등 조경의 관점이 누락되어 있으므로 본 연구를 통해 해당 공간에 대한 보다 풍부한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조각, 조경, 공공성, 사회구조의 연계에 대한 탐구는 1970년부터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다(Ahn, 2018; Harper and Moyer, 2008; Krauss, 1979). 국내의 경우, 미술사학자 양현미, 조선령, 주미옥의 연구를 통해 올림픽 조각공원을 비롯한 공공예술의 발전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Yang, 2007; Cho, 2007; Ju, 2015). 양현미는 제도적 장치를 통한 조각의 대규모 설치가 오늘날 한국 도시 경관의 예술성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지적했으며(Yang, 2007), 주미옥은 시대에 따른 사회문화적 전환으로 인해 공공미술의 가치가 오브제(object)와 기념비(monument)에서 공동체(community) 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로 확장되고 있다고 제시했다(Ju, 2015). 이 지점에서 88올림픽공원을 국내 초창기 공공예술의 한 장면으로 바라봄으로써 해당 공간의 문화·예술적 성격의 특징과 한계를 탐구할 수 있다. 이처럼 88올림픽공원은 조경과 문화예술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국내 공공예술 담론의 도시 공간적 차원을 살펴보는데 유용한 사례이다.

Ⅱ. 조각공원의 개념과 유형

조각공원(sculpture park)은 조각정원(sculpture garden)으로부터 파생된 단어이다. 조각정원의 기원은 넓게는 고대 신전이나 무덤을 장식했던 조각상부터 좁게는 서양 르네상스 시기의 정원에서 찾을 수 있으며, 보다 공공적인 성격을 지닌 조각공원의 시작은 18세기 서구에서 공원 내에 시민 가치를 표방한 조각 작품을 설치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Eyres and Russell, 2014). 조각공원을 경험의 측면에서 연구한 데브라 레헨은 20세기 예술 패러다임의 전환과 맞물려 근현대 조각공원의 범주가 한없이 팽창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전시하는 작품만큼이나 조각공원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Lehane, 2008).

국내 조각공원에 대한 별도의 정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송상택은 1980년대 후반 국내 조각공원 현황을 비판하며, 국내 조각공원이란 “‘공원+조각=조각공원’이라는 등식보다 ‘조각+공원 기능’을 가미한 것”이라고 정리하며, “야외에 설치한 조각전시장에 공원적 성격을 부여한 것이 [국내] 조각공원에 가깝다”고 주장한 바 있다(Song, 1990). 이는 국내 첫 조각공원인 목포 유달산 조각공원이나 마로니에 공원의 조각공원이 당시 서양에 조성되고 있던 조각공원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Figure 1 참조). 포괄적으로 정리하자면, 조각공원이란 정원 예술 외 다른 예술적 기제가 정원 또는 공원 안에서 구분 가능한 조형적 형태로 발휘되는 것이라고 광의적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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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View of Yudalsan Mountain Sculpture Park, 1990 Source: National Archive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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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조각공원의 유형은 규모, 작품의 성격, 공간의 형태, 관리 주체, 대중의 접근성 등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조각공원에서 작품과 조경 공간의 관계를 기준으로 Table 1과 같이 분류했다. 트라이브, 정영선, 김지은은 각각 ‘조각과 정원의 관계,’ ‘조각과 부지의 관계,’ ‘공공미술과 장소의 관계’를 중심으로 조각공원 또는 예술 경관을 분류하고 있다(Treib, 1988; Jung, 1990; Kim, 2012). 눈여겨볼 점은 세 분류 방법 모두 조각과 부지의 조성 및 설치에 있어 전후 관계를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다는 점이다.

Table 1. Types of sculpture parks
Author Criteria Types of sculpture parks
Treib (1988) Relationship between the sculpture and the park 1) Garden for sculpture
2) Sculpture for the garden
3) Garden as a sculpture / sculpture as a garden
Jung (1990) Relationship between the sculptures and the site 1) Sculpture installed after the site is constructed
2) Installation location is modified by the site
3) Sculpture is site-specifically created
4) Sculpture is determined and modified according to the site
Kim (2012) Relationship between public art and the site 1) Commemorative and traditional artwork
2) Art in public place
3) Art in urban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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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각과 부지의 밀접한 관계는 각 유형이 복합적으로 나타남을 암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당시 국내 조각공원 현황을 반영한 정영선의 유형 분류에 따르면, 조각공원으로서 88올림픽공원은 부지가 우선 준공되었다는 점에서 3)을 제외한 1), 2), 4) 유형이 모두 나타난다. 4)의 경우, 반영구적 설치를 위해 조각의 재질과 크기가 모두 제시된 규격 내에서 제작되었다. 그에 반해 3) 유형은 공원보다 조각의 장소특정적 성격에 대한 내용으로,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준공된 초대형 조각·건축물인 김중업의 ‘평화의 문’과 그 좌우로 놓인 이승택의 ‘열주탈’ 30여 점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Figure 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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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World Peace Gate and Yeolju Masks, 1988 Source: National Archive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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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88올림픽 조각공원 조성 과정

1. 88올림픽공원에 반영된 문화올림픽
1) 문화정책으로서 88서울올림픽

88서울올림픽은 제5공화국의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오양열에 따르면, 제5공화국의 문화정책은 대중의 문화 향유 기반 구축을 표방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수정계획 및 6차 5개년계획에 문화정책이 국가 전략의 하나로 포함되었다(Oh, 1995). 여기서 고려할 것은 그 본질에 당시 정부의 정당성에 관한 비판으로부터 회피하고자 문화 및 스포츠로 국민의 시선을 돌리고자 했던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1981년 개최지 확정 이전의 88서울올림픽 유치 활동은 제5공화국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전개된 것으로 확인된다. 올림픽 서울 유치 활동의 시발점이 제3공화국 후반이었고, 제4공화국 시기에는 큰 진전이 없었던 것에 비해, 제5공화국의 경우 국제 교류를 통한 한국의 세계적 위상 정립이 문화정책의 주요 골자였던 만큼 88서울올림픽 유치가 중요하게 여겨진 것으로 나타난다(Son, 2003). 또한 국가 단위의 문화 행사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제고한다는 목적 아래 세계현대미술제, 한국미술전, 문화소개전 등 20여 개의 전시 행사가 ‘문화예술축전’의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2) 88올림픽 조각공원 조성 계획 및 전개

88올림픽공원이 조성된 방이동 일대는 ‘국립종합경기장 후보지’로 등록되었던 지역으로, 1968년 주택개발 제한을 위해 서울시 도시계획과가 잠정적으로 결정했던 것이 이후 실제 올림픽 예정지가 된 경우이다(Son, 2003). 올림픽 행사 부지 결정 과정에서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과 1964년 일본 동경올림픽이 비교 대상으로 대두되었는데, 두 사례 모두 경기장 주변에 공원 또는 녹지가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b). 이에 아파트로 둘러싸인 잠실 주경기장이 서울의 자연녹지를 보여주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방이동에 경기장과 더불어 대규모 공원이 계획되었다.

1986년 공원 조성 과정에서 조경사적 차원에서 주목할 것은 1982년 사적 제297호로 지정되어 88올림픽공원 준공 과정에서 발굴 작업이 진행된 몽촌토성의 지형과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해자가 공원의 설계 요소로 활용되며 공원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여론 역시 “해자 주변에... 휴식공간 및 공연시설들이 조성되어 있고” 해자를 재해석하여 설계한 인공호수 가운데 위치한 “대형수중분수가 오색의 분무를 선보인다”(Kyunghyang Shinmun, 1986. 05. 30)며 관심을 보인 것이 확인된다.

준공 후 2년만에 조각공원으로서 88올림픽공원이 재조성된 상황은 현대화되고 세계화된 서울에서 유치하는 문화올림픽으로서 88서울올림픽의 가치를 더욱 강조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운영보고서에 따르면, 비록 명분을 위한 표면적 이유이더라도, 올림픽공원의 조각공원화 과정이 “문화유산으로서 후대에 길이 전승”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다고 적고 있다(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a). 이에 더해 1991년 발간된 올림픽조각공원 보존관리현황 보고서 역시 “올림픽공원은 몽촌토성을 제외한 약 23만평 대지 위에 193점의 조각 작품이 설치된 것을 조각공원의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당시 공원 전역에 “조각작품이 분산 설치”되었다고 설명한다(Lee, 1991).

조각심포지엄을 통해 88올림픽공원에 조각 작품의 영구 배치를 의도한 조직위원회의 계획은 냉전 시기 예술가 간 교류를 위해 진행되고 있었던 서구의 국제 야외조각 심포지엄에서 영감을 받았다. 88서울올림픽 세계야외조각공원 조성계획에 따르면 이와 같은 대규모 행사에 의한 야외 조각 작품 설치는 일종의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서, 1958년 오스트리아의 상트 마가레텐의 채석장에서 최초로 일어났다(Figure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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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View of the Sankt Margarethen im Burgenland Source: Osterreich Werbung, Arch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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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냉전시대 조각가 간 교류의 장으로서 미국 캘리포니아, 멕시코 올림픽, 일본 오사카 박람회 등에서 연달아 개최되며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b). 88서울올림픽이 동서양의 화합이 분단국가에서 벌어진다는 이념적 장소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와 같은 국제 문화 교류 프로그램은 문화올림픽의 의미 제고에 유용한 도구로 여겨졌을 것이다.

2. 조각 작품의 배치 및 주변 환경과의 관계

1, 2차 심포지엄 및 초대전은 문화축전의 메인 행사였다. 축전 예산 총 280억 원 중 약 80억 원이 작품 구입을 비롯한 조각공원 조성에 소요되었다(Kim, 2012). 작품 소재를 기준으로 1차, 2차 세계야외조각 심포지엄이 구분되어 진행되었으며, 돌과 콘크리트 위주의 1차에서는 유럽 작가가, 금속 위주의 2차에서는 북미 작가의 수가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Table 2 참조).

Table 2. 1988 Summary of the sculpture-related events
Event Dates Types of sculptures by material Number of sculptures
1st International Outdoor Sculpture Symposium 1987. 07.03~08. 20 Rocks, concrete, objects 17
2nd International Outdoor Sculpture Symposium 1988. 03. 11 ~04. 29 Metal, cast iron, resin, wood 19
Invitational International Outdoor Sculptures Exhibition 1988. 08. 15~10. 05 Rock, metal, resin, wood, ceramic, glass, etc.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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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행 과정에서 1, 2차 심포지엄의 작가 선정이 대다수 외국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결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인 작가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행사 준비 단계부터 한국 미술을 과소 평가하는 사대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Kim, 1988b). 이에 따라 문화예술축전의 타 행사가 국제전과 국내전으로 분리 운영하기도 했으며, 조각 전시 차원에서는 국제야외조각초대전을 통해 국내 조각가의 참여율을 높이고자 했다(Misulsegae Editorial Dept, 1987).

1차 심포지엄의 경우, 작품의 배치는 작가의 요구를 최대한 준수하되 세계현대미술제 운영위원회 심의 후 영구 설치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나, 이후 제작 단계에서 몽촌토성 훼손 가능성이 드러나면서 작품 위치를 사적보호구역 밖으로 이동하게 되었다(Figure 4 참조). 그에 반해 2차 심포지엄 및 초대전의 경우 올림픽 문화제전 시기에 맞추어 공원 조성을 완성하기 위해 올림픽위원회 측이 제시하는 조각 배치에 작가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초대전에는 총 155점의 조각품이 포함되었으며, 대륙별로는 서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의 비중이 높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국제조각초대전은 작품만을 국내로 반입하였으므로 작품의 설치에 대해 작가의 개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세계미술제운영단은 초대전 조각품 설치를 위한 배치계획 및 환경요구조건을 구성하여 기존 공원의 조건 내에서 조각의 미적 감상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관람의 편의를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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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Sculpture installation site and modified sites Source: Kim, 198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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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차 심포지엄 및 초대전 작품 설치 기준의 수립

연달아 진행된 2차 심포지엄 및 초대전은 기 준공된 공원과 설치가 완료된 1차 심포지엄 조각물, 문화재 보호구역 및 경기 운영 동선 등 많은 제약조건을 지닌 상태에서 총 174점의 작품을 추가로 설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서 조각품 배치 구상은 전문위원회의에서 결정된 기본 원칙을 수용하였는데, 추가 작품 설치를 비롯한 조각공원 설계는 운영위원회 작품전시 소분과위원회의 감수 아래 국내 조경회사가 맡았으며, 그 결과 88올림픽공원의 작품 설치 계획은 조경 설계의 관점에서 수립되었다(Figure 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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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Map of installed sculptures after the 1st, 2nd symposiums and the invitational exhibition Legend: jkila-48-1-46-inline1 1st symposium jkila-48-1-46-inline2 2nd symposium jkila-48-1-46-inline3 Works created on-site during the 2nd symposium jkila-48-1-46-inline4 Area designated for invitational exhibition jkila-48-1-46-inline5 Pedestrian circulation Source: Art Museum of National Sports Promotion Board in Commemoration of Seoul Olympics, 1991, Recreated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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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서울올림픽 개막 직전인 9월 15일 조경회사 서인환경이 제출한 ‘88서울올림픽 세계야외조각공원 조성계획 및 설계 용역 보고서’는 작품의 크기와 성격을 중심으로 수립한 조각품의 구체적인 ‘배치 기준’ 및 ‘배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b). 여기서 ‘배치 기준’은 개별 작품을 기준으로, ‘배치 유형은 타 작품 및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리되었다(Table 3 참조).

Table 3. Criteria for installing the sculptures during the invitational international outdoor sculpture exhibition
Installation criteria Considerations
Installation criteria by object Visibility Location and distance
Recognizable element by visible distance
Lightsource
Necessary area determined by scale Sculpture height × length
Space required for recognization depending on the installation type (independent, serial, cluster)
Installation criteria by environment Audience density Dotted/independent installation
Linear distribution
Area distribution
Site-specificity Natural environment
Symbolic/commemorative meaning
Utilitarian fun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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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제시된 작품 배치 기준을 살펴보면, 배치 기준은 개략적인 작품의 특징을 중심으로 ‘시각화 요소 기준’을 정한데 비해 ‘크기별 소요 면적 기준’은 구체적인 산술을 통해 얻어진 값이다. 배치 형식별 소요 면적 계산식은 같은 단독 혹은 같은 높이를 지닌 작품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반면, 각기 다른 형태와 크기의 작품을 집합적으로 설치하는 경우에 대한 산술식이 누락되어 있다(Figure 6 참조). 초대전 조각품 155점이 몽촌토성과 교육시설 부지를 제외한 공원 전 구간에 분산 배치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대다수의 경우 집합적 설치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짐작되기에 실제 조각품 설치 과정 및 기준에 대한 궁금증을 낳는다. 물론 본 용역 보고서에 제시된 배치 계획은 기본 계획 차원의 기준으로, 현장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으리라 예상되는 실제 조각품 배치 과정에서 적용되었던 기준과는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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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Calculations for determining the area required by the sculpture Source: 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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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품 설치 기준의 특징

88올림픽공원 조각공원 조성계획 및 설계를 담당했던 서인환경이 수립한 구체적인 배치 계획을 살펴보면, 앞서 설명한 산술적 배치 방식뿐 아니라, 조각과 환경과의 관계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며 서구식 현대 조각 작품 설치 기준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음이 확인된다(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b). 주목할 점은 조각품과 주변 환경의 관계로, 88올림픽공원 조각품이 근경이 아닌 원경에서 기존 조경과 어우어질 수 있도록 위치되었다는 점이다. 이 용역 보고서에 실린 국외 사례 역시 전원식 공원 풍경을 담고 있는데, 이는 조각공원으로서 88올림픽공원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Figure 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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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View of Parc Floral, Paris Source: 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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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야외 조경 공간에 현대 조각품을 설치한 사례로 잘 알려진 파리의 파크 플로랄(Parc Floral), 오픈 에어 조각공원(Open Air Sculpture Park), 삿포로 조각정원을 소개하며 조각 작품의 설치에 있어 작품이 환경적 맥락과 유의미한 관계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반면, 실제 설치 과정에서는 작가의 부재와 공간적 한계라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조각 작품의 규모와 크기를 중심으로 배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조각 작품은 각가의 작품성을 우선으로 하는 설치예술(installation) 방식이 아닌 조경 시설물 또는 영국식 정원의 폴리(folly)나 아이캐처(eyecatcher)로서 배치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념비적 성격의 돌 조각품이 다수 설치된 88마당의 경우, 조각 작품이 넓은 잔디밭에 방문자의 시야를 잡아놓을 수 있는 시각적 틀로서 작용하며, 오히려 오픈스페이스로서 공원의 성격을 강조하는 데 일조한다(Figure 8 참조). 즉, 송상택의 의견은 조각 작품이 88올림픽공원의 ‘볼 것’으로서, 또는 현대적 스펙타클로 활용되며 문화예술 경관으로서 조각공원의 정체성보다 스펙타클적 휴게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부여되었던 상황에 대한 비판적 평가로 해석할 수 있다(Song,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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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8. View of the 88 Plaza, 1988 Source: National Archives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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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88올림픽공원 조성 전후 담론들

88올림픽공원은 조성 과정 전반에 걸쳐 많은 비판과 논쟁을 낳았으며, 그 과정에서 정치·사회적 문제가 문화예술과 도시조경이라는 시각적 형태로 나타나면서 담론으로 확장되는 상황이 발견된다. 그 바탕에는 88올림픽공원이 결정적으로 정치적 도구이자 프로파간다 장치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88올림픽공원이 조각공원으로 재조성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논의는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1.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세계화의 방향성

88서울올림픽의 문화예술 행사는 정치적 목적에서 분리되어 문화·예술을 진정성 있게 드러내기 어려운 국제적 수준의 행사였다는 한계, 그리고 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세계현대미술제운영단 모두 문화계 내 존재하는 여러 입장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구성되어 성급한 행사 진행을 보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Yoo, 1988). 예를 들어, 김남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올림픽문화예술축제를 자축함과 동시에 “무려 2백40억원이 투입되는 이 문화축제가 선진국의 볼거리를 끌어 들이고 그들의 문화예술을 전시하고 선전하는 일에만 급급하고 민족주체성을 실추하고 한국미술의 위상을 잃어버린 무분별한 결과를 빚는다면···이는 우리가 기획했던 본래의 축제 목적과는 빗나간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Kim, 1988a)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용숙은 미술의 주관적 성질을 설명하며 조직위원회 구성 초창기부터 국내파 작가의 비율이 낮다는 점, 그리고 “조직위원회가 꾸몄던 미술제가 주로 현대 서구 미술 문화의 견본이라고 볼 수 있는 추상 양식의 재탕”(Park, 1988)이었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이에 더해 조직위원회가 추진한 조각 심포지엄이 한국적 상황이 아닌 국제적 문제의식을 수용한 기획이었다고 진단되었으며, 나아가 미술제 전반에서 소수정예의 엘리트 의식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조직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계속적으로 이견을 제기하고 여론을 통해 담론을 확장했던 ‘88서울올림픽 세계현대미술제 변칙운영 저지를 위한 범미술인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는 공개토론회 등 88올림픽공원을 포함한 미술제 내용 전반을 공론화할 것을 주문했다(Figure 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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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9. View of the international modern art festival pan-artist open debate Source: Kim, 198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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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미술계 내부의 갈등은 한국 미술의 정체성 수립과 세계화라는 두 목표가 하나의 행사 안에서 추진되었으나, 그 방향성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먼저 조직위원회는 조각공원에 있어 비교적 많은 경험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외국의 심사위원과 오랜 추상 조각 전통을 지닌 국가 출신의 작가를 초청함으로써 조각공원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국가적 위상의 제고가 가능하다고 보았다(Son, 2003). 즉,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수준의 미술 작품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함으로써 한국의 현대·세계화적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대책위의 경우 조각공원이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수용하는 데 적합한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점이 드러나며, 나아가 지역성과 세계화의 스펙트럼 속에서 현대 한국 미술의 위치를 고찰하고 있는 모습이 나타난다. 비록 조직위의 결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표현되었지만, 조직위의 ‘현대’에 대한 해석이 매우 협소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서양 예술이 아닌 한국 미술의 현대성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다(Kim, 1989a)는 의견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더해 미술대학생 대책위원회와 서울지역 총학생회 연합 등 관련 학생 단체는 미술제의 방향성과 한국 미술의 정체성 간의 해소되지 못한 부조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미술제는 정치적 도구로 활용될 뿐 아니라, 상당 부분 비공개로 진행된 ‘반민중적’ 문화정책의 표본이라는 점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조직위의 파행보다도 그 상위에 위치한 정치 집단이 문화·예술을 도구로 활용하는 점에 대한 반발의 표현이었다고 해석된다(Kim, 1989a).

이처럼 88올림픽공원에는 문화정책이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던 1980년대 문화·예술계와 정치·사회 분야의 갈등이 함축되어 있다. 조직위의 인사 선정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된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세계화의 방향성에 대한 문제는 제5공화국의 문화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공론화와 정보 공개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는 당시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미술계 내 갈등이 국제적인 행사를 계기로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 도시 공원과 문화재

도시 조경 공간으로서 88올림픽공원에 대한 논의는 몽촌토성과 관련하여 부상했으며, 특히 사적지의 보존과 활용에 대한 여러 이해관계자의 상반된 태도가 포착된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세계화 방향에 대한 토론이 미술계 내외부에서 일어났다면, 몽촌토성의 문제는 여론이 들끓는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몽촌토성은 88올림픽공원에 사적공원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문화적 요소였다. 반면, 조직위는 조각공원 프로그램 등 세계화된 현대의 개념을 88올림픽공원에 이식하는 데 집중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몽촌토성의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미술제 전반에 걸쳐 한국의 정체성이 배제되었다는 문제의식은 몽촌토성 훼손 문제를 둘러싼 우려 섞인 비판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조각공원 조성에 따른 몽촌토성의 훼손 위험에 대한 지적은 각종 성명문 및 기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책위원회는 1차 심포지엄이 진행되던 1987년 7월 여러 성명서를 통해 “몽촌토성의 유구가 묻힌 지반을 5-7미터씩 파내는 등 몽촌토성의 훼손은 물론 동 미술제의 무책임하고 방만한 기획” (Kim, 1989a)을 비판함으로써 미술계 내적 갈등을 넘어 조직위원회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며, 그 과정에서 몽촌토성 훼손 가능성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몽촌토성 훼손 가능성과 관련해 여론의 반대가 점차 거세짐에 따라 문화재위원회의 지적을 받은 작품의 공원 내 이전이 결정되었다(Dong-A Ilbo, 1987. 08. 09). 그 후에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사적지 훼손을 최소화하며, 작품을 유지하기 위한 이 결정은 후일 조각품의 작품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Kim, 1989a). 즉, 장소성을 기반으로 한 야외 조각 작품과 사적지 보존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차가 해소되지 못한 채 평행관계로 존재하고 있었다. 몽촌토성에 관한 문제가 일부 합의된 이후에도 대책위원회의 입장이 고수된 한편, 한국미술협회가 미술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 규모 확대와 협회 차원에서 제시한 조각공원에 대한 수정안이 대다수 수용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조직위원회를 옹호하는 성명문을 발행하는 등(Misulsegae Editorial Dept, 1987), 확고한 입장 차이가 확인된다.

역사문화적 경관이라는 차원에서 88올림픽공원을 재구성한다면, 조각공원보다 몽촌토성의 존재가 더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성 전후 몽촌토성의 처리에 대한 논쟁에서 드러나듯, 사적지에 대한 고민은 공원의 물리적 형태와 프로그램 조성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외면 받았다. 비록 몽촌토성의 해자가 공원 설계 언어로 응용되었지만,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사적지인 몽촌토성의 역사적 맥락을 드러내는 데는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1차 심포지엄의 경우,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작품을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몽촌토성의 맥락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88올림픽공원 조성 전후 몽촌토성을 비롯한 해당 부지의 사적지로서 가치가 배제되고 있었음이 나타난다.

몽촌토성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의 날선 토론은 도시 공간에서 현대성과 전통성 혹은 역사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표출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자연녹지의 표출, 몽촌토성의 역사적 가치, 서구 조각공원으로 대표되는 공원의 현대성, 사적지 훼손 문제, 이전에 따른 작품성 문제 등의 논의가 연달아 출현했는데, 88올림픽공원은 이 같은 현대성과 전통성의 스펙트럼에서 각 꼭지에 해당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으나, 요소 간 연결고리가 미흡하다.

도시 공원에서 문화재 또는 사적지의 처리 및 관리는 오늘까지도 이어지는 쟁점이다. 1980년 도시공원법은 제정 초창기부터 문화재 등 사적 보호 지역이 포함된 도시 공원 혹은 녹지 계획에 대해서는 문화재 담당 기관, 즉 문화공보부 등 이해관계 단체와 협의를 할 것을 명시해왔다(Act on Urban Parks, Green Belts, Etc. No. 3256). 반면, 88올림픽공원의 사례는 현대적인 문화·예술적 성격을 지닌 도시 공원과 문화재의 공존에 있어서 요구되는 협의가 부재한 결과로 보인다. 하나의 연결된 경관의 이해관계자 사이에 요구되는 협의란 보호 지역의 경계를 만들고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다층적 맥락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과정이다. 88올림픽공원의 구성 요소인 문화재·국가행사·예술을 담아내는 통합적 내러티브의 부재가 지속될 경우, 88올림픽공원의 풍부한 역사·문화적 층위는 파편으로 남게 되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의 장소적 맥락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현대 도시 조경사에서 현대성과 전통성에 대한 논의는 비단 새로운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최근 여러 도시재생 사례에서 나타나듯, 현대와 전통을 경관에 드러냄에 있어 이해관계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표현이 가능하다. 다만 88올림픽공원의 사례에서 주목할 것은 현대성과 전통성이 모두 경관의 문화적 프로그램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현대성은 조각공원을 위시한 서양 전통의 미술 작품과 분수 등 현대적 조경 조형물로, 전통성은 몽촌토성으로 대표되었다. 또한 구현된 조경 공간에서 조각 공원과 사적지 간, 나아가 조각공원을 담당한 조직위와 사적지의 보존을 우선시한 대책위 간 정보 공개 및 소통이 부재한 상태에서 30여 년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늘날 두 문화적 프로그램이 거시적 내러티브 없이 공간을 양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해석된다.

3. 공원과 역사·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관계

조각 작품이 설치된 88올림픽공원이 준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공간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비평을 제시한 미술평론가 성완경에 따르면, 88올림픽공원의 결정적 문제는 공원과 조각공원의 차이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징조형물이나 조각 작품의 설치 외에도 ··· 공익성보다는 개인적 사업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이 공원 부지 안에서 자리를 차지했으며, 결국 “극도로 혼란스럽고 지저분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Hankyoreh, 1988. 10. 13). 오늘날 88올림픽공원이 조각공원으로 인식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Cho, 2018), 조각품과 조경 공간의 간극이 처음부터 문제가 되었으리라 짐작이 가능하다.

또한 조각 작품이 조경된 도시 공원을 “녹색 배경”으로만 인식했을 뿐, 88올림픽공원의 장소특정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Kim, 1989). 조각가 문신 등 한국 작가의 작품이 오히려 장소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 선정에 대한 의문이 또다시 제기되었는데, 공원과 조각 작품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실패하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는 88올림픽공원이 조각공원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앞서 언급한 정영선의 설명과 같이, 조각공원에서 조각 작품과 부지의 관계는 결정적이다. 1980년대 조성된 초창기 문화·예술 경관의 초기 모델이라는 점, 국제조각심포지엄을 계기로 장소특정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88올림픽공원이 지닌 조경사적 의미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조각공원과 조경 공간의 간극은 88올림픽공원의 조각공원으로서 기능에 한계를 남겼다. 실제로 조각공원 프로그램의 도입 계기를 살펴보면, “당초에 각국 대표들이 가져온 돌로 상징적인 돌탑을 쌓자는 소박한 구상이 일약 국제조각공원으로 발전”(Hankyoreh, 1988.08.21.)하여 조각공원 설계로 급히 확장된 것이다. 즉, 88올림픽공원은 그 기획이 기념 공간 내 작품에서 도시의 대표적인 공공 공간인 공원과 문화·예술 실천의 장으로 규모가 확장된 것으로, 조성 이후 담론을 통해 정체성을 탐구하고 역할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기존 계획에 없었던 조각공원 프로그램의 삽입 등 88올림픽공원이 지닌 문화적 기능의 확장은 명확하지 않았던 공원의 문화적 정체성을 한층 더 분산시켰다. 조각공원 프로그램을 통한 한국의 세계화가 하나의 교점이라면, 정반대의 교점에는 몽촌토성과 민족·전통성이 놓여 있었다. 이 같은 문화적 차원이 기념비적 도시 공원으로 계획된 올림픽공원의 기존 조경 형태 위에 중첩되며, 88올림픽공원의 정체성은 비록 다양하고 다층적이되 통합적인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다고 해석된다. 공원 조성을 통해 한국의 세계적 수준을 보여주고자 했던 조각공원, 문화재를 통해 한국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몽촌토성 일대, 그리고 높은 녹지 접근성을 지닌 도시 공원으로서의 기능이 모두 다른 방향을 향해 진행되었다.

결국 88올림픽공원에서 조경 공간과 역사·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관계는 공원의 공적 가치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조직위를 비롯한 제5공화국은 국제적 행사를 통해 정치적 문제가 점철되었던 한국의 내적 상황을 해외에 드러내는 것이 아닌, 반대로 해외의 문물을 한국에 전시하고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공간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즉, 한국의 대외적 세계화를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대책위로 대표되는 88올림픽공원 조각공원에 대한 비판 및 지적은 국제적 문화 행사에서 한국 미술의 독자성이 상실되고, 역사·문화·예술이 정치적 도구로 환원되는 결과를 경계했으며, 한국의 고유한 문화에서 보다 큰 가치를 보았다. 기존 준공되었던 조경 공간은 기념비적 성격을 띤 도시 공원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대규모 거주 단지를 배후에 둔 공원의 근린적 성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도시 공원의 공공성이란 민주적 공론화를 통한 합의와 장소의 맥락을 반영한 설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된다. 88올림픽공원의 경우, 공론화 과정의 부재와 몇 차례에 걸쳐 변경된 공간의 성격 및 기능이 공원의 추후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쳤음이 확인된다. 200여 점의 세계적인 조각 작품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각 공원 프로그램의 인식이 어려운 것은(Visual Arts Institute, 2014), 88올림픽공원이 지닌 복잡한 장소적 맥락이 정치적 공방 속에서 가치 평가되는 한편,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장소성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추후 88올림픽공원과 같이 다층적 장소적 맥락을 지닌 근현대 조경 공간이 문화적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별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나 통합적 문화예술 경관으로서 누적된 장소적 맥락을 수용할 수 있는 공원의 가능성과 역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Ⅴ. 결론

이 연구는 그간 주로 미술사학계 내에서 논의되었던 조각공원으로서 88올림픽공원의 조성 과정을 재구성함으로써 88올림픽공원의 조경사적 의미를 재고하고자 했다. 또한 조성 전후의 비판 및 의견을 살펴봄으로써 1980년대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대형 도시 공원 조성을 계기로 세계화, 민족성, 도시와 공공성을 중심으로 나타난 담론을 정리하였다.

기존 연구들이 88올림픽공원에 담긴 정치적 의도 또는 조각공원 조성 과정의 공공성을 중심으로 진행된 데 비해, 이 연구는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조각 작품의 재설치를 통해 조각공원으로서 정체성을 획득한 88올림픽공원이 조경 사업을 통해 형성된 도시 공원이자 문화예술 경관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비록 88올림픽공원의 본질적인 문제가 예술과 공간의 정치적 도구화로 인한 것이었지만, 실제 도시 공간에 구현된 대규모 문화·예술 조경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이견이 조각공원과 사적지 등으로 번지며, 정치·역사·문화·예술·공공을 아우르는 다양한 의견이 나타날 수 있었다.

1980년대는 88서울올림픽을 통해 서울에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도시 공간에 조각 등 미술 작품의 설치가 의무화되고 확대되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88올림픽공원의 사례에서 드러난 여러 논의는 하나의 사례에 그치지 않고 이후 도시 광장과 공공예술 등 도시 조경과 문화예술적 실천의 여러 결절점에서 계속 나타났다. 즉, 추후 한국의 도시 경관에서 문화·예술적 실천을 논함에 있어 88올림픽공원의 사례는 여러 시사점을 제시한다.

88올림픽공원은 준공 후 30여 년에 걸쳐 부지 조경 및 조각품의 위치 등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부지 현황은 조각품 설치 당시 부지와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부지의 현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 이에 더해 공원의 변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문헌을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지하철 건설 등 주변 도시조직의 변화에 따라 임의 변경된 사안에 대해서는 문헌 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추후 관련 자료가 보완될 경우 조각공원의 부지 현황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연구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보다 치밀하게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88올림픽공원은 근린공원으로서, 또는 행사 공간으로서의 공원 기능이 주된 공원 활용 방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조각공원의 성격은 거의 사라졌다. 또한 최근 전철역 건설 등 점차 도시 인프라스트럭처로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88올림픽공원의 역사·문화·예술적 정체성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경과 공간디자인, 공공예술 등 도시 공간을 다루는 분야의 협업이 요구되는 오늘날, 88올림픽공원 조각공원의 조성 과정 및 관련 담론을 점검하는 것은 추후 공공 공간에서 문화·예술 행위를 실천하고 담아내는 데 유용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할 것이다.

Notes

이 연구는 조각공원에 대한 선행 연구 외, 각종 신문 자료 및 정부 보고서 등 문헌 기록 자료를 참고하였다. 먼저 국가기록원에서 88올림픽 조각공원 사진자료 및 퇴계학대회와 세계미술제운영단 결과보고서 등 정부 내부보고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a; International Art Festival Management Group, 1988). 조각공원 관련 정부 보고서의 경우,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의 협조를 구해 확인할 수 있었으며(Seoul Olympics Organizing Committee, 1988b; Art Museum of National Sports Promotion Board in Commemoration of Seoul Olympics, 1991), 2014년 조각공원 활성화 연구용역 보고서 역시 제공받았다(Visual Arts Institute, 2014).

올림픽 조각공원 조성과정에서 서울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및 한국미술협회의 방침에 반대를 했던 여러 미술인의 반응은 신문 및 잡기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 행사 내용 및 책자 등 아카이빙 되어 있지 않은 경우 당시 기록을 정리하여 편찬한 저서(Kim, 1989)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Acknowledgment

본 연구의 자료 수집에 도움을 주신 소마미술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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