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Article

도심 골목상권으로서 샤로수길 가로 경관의 미적 경험

임한솔*, 배정한**
Hansol Lim*, Jeong-Hann Pae**
*서울대학교 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전공 박사수료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Ph.D. Candidate, Interdisciplinary Program in Landscape Architectur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Professor,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Rural Systems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Jeong-Hann Pae, Professor,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and Rural Systems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Tel.: +82-2-880-4877, E-mail: jhannpae@snu.ac.kr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A2A01047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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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Sep 01, 2021; Revised: Oct 01, 2021; Accepted: Oct 01, 2021

Published Online: Oct 31, 2021

국문초록

도심에 위치한 좁고 오래된 골목길이 뜨는 상권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현상을 미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본 연구는 이면도로라는 입지와 소규모 점포의 집합을 조건 삼는 도심 골목상권 특유의 미적 경험을 논하고,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샤로수길을 사례로 하여 그 경관적 양상을 탐구하고자 한다.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은 공간적 측면에서 크고 정제된 대로변 도시 조직과의 대비를 통해, 시간적 측면에서 오래된 것/새로운 것의 조화와 알려진 것/덜 알려진 것의 길항을 통해 발생한다. 샤로수길의 물리적 현황을 살펴본 결과, 2000년대 지어진 고층건물을 지나 1970년대 후반 이후의 다양한 건축연한을 지닌 저층 건축군으로 들어서는 진입 과정과 노포, 신규 점포가 어우러지는 골목 내부의 가로 경관으로 볼 때 샤로수길은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을 발생시키는 환경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샤로수길의 도심 골목상권 부상과 연계하여 관악구청은 명칭, 간판, 포장을 중심으로 가로 정비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전술한 미적 경험에 비추어 그 영향을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샤로수길’ 명칭의 공식화는 대상지를 장소특정성으로부터 탈피하게 하고 대안성을 획득하게 하였다. 둘째, 노포의 간판 개선사업은 상업 주체의 측면에서 신/구 조화를 추구하지만 이미지의 측면에서는 시간성의 뒤섞임을 발생시킨다. 셋째, 보행자우선도로 조성 사업에서 노면의 포장은 골목 정체성을 강화하고 영역을 가시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도심 골목상권의 현실이 이용자의 방문, 즉 체험에 좌우된다는 점을 상기할 때, 감각과 미학의 관점에서 도심 골목상권의 경관을 해석한 본 연구의 시각은 관련 제도와 데이터 기반 연구에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How can we explain the phenomenon of small, old alleyways in the city becoming rising commercial places attracting people from an aesthetic perspective? This research discusses distinctive aesthetic experiences of urban commercial alleyways, which are located on inner roads and consist of small-scale stores and explore the specific aspects of Sharosu-gil, located in Gwanak-gu, Seoul. The aesthetic experience of urban commercial alleyways is generated by the contrast with the refined urban fabric along main roads in terms of space, the gap between the old and the new, and the antagonism between the known and the less known. The approach to Sharosu-gil consists of the high-rise buildings along the main road built in the 2000s, then encountering low-rise buildings on inside roads built from the late 1970s to the present. Therefore, it is judged that the site has sufficient conditions to generate the aesthetic experience as an urban commercial alleyway. As a result of analyzing the street improvement projects, first, the official announcement of the name 'Sharosu-gil' was interpreted as an escape from the place specificity and garnered the acquisition of the characteristics of an alternative. Secondly, the improvement project for old-established signboards was interpreted as harmony between the new and the old and the loss of temporality. Thirdly, in the pedestrian priority road project, the pavement was interpreted as a reinforcement of the identity as an alleyway and the visualization of the area. Since the reality of urban commercial alleyways depends on the user's visiting, it is necessary to interpret alleyway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enses and aesthetics, not just from social phenomena or capital logic perspective. The study will cast implications for relevant schemes and data-driven research.

Keywords: 도시재생; 일상미학; 보행자우선도로; 관악로14길
Keywords: Urban Regeneration; Everyday Aesthetics; Pedestrian Priority Road; Gwanak-ro 14-gil

Ⅰ. 서론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오래되고 좁고 가려져 있던 골목길이 동시대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상업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골목상권은 유동인구 수, 접근성, 가로변 필지의 건축 상황 등 상업공간의 일반적 고려 사항으로 볼 때 유리하다고 보기 어려운 조건을 지닌다. 그럼에도 2000년대 중반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골목상권은 2010년대에 들어 골목길 특유의 공간적 특성을 앞세워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다. 서촌, 익선동, 을지로, 성수동, 경리단길, 샤로수길 등 근래에 미디어와 SNS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대표적 골목상권들은 각기 다른 이력과 특색을 갖고 있지만, 오래된 골목길을 배경이자 원천으로 삼아 형성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연구에서는 그중 비교적 후발주자임에도 현재 서울의 대표 골목상권으로 부상한 샤로수길에서 관 주도의 가로 정비사업으로 인한 경관 변화가 뚜렷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중심으로 도심 골목상권의 미학적 면모를 탐색하고자 한다.

상업공간으로서 불리한 조건을 극복 혹은 특성화한 골목상권의 힘은 무엇일까. 골목상권의 형성과 변화를 다룬 기존의 논의들은 낮은 임대료, 문화자본을 갖춘 창조계급(creative class)의 유입, 온라인 상권의 발달로 인한 오프라인 상권의 역할 전환 등으로 그 동인과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사회경제적 동향에 바탕을 둔 이러한 접근법은 필연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문제적 현상으로 수렴한다. 그러한 논의 과정은 소비/생산, 임대/소유, 자율/제도를 첨예하게 대립시킴으로써 현실 문제의 타계를 의제로 상정하게 되는데, 그 결과 골목상권이라는 문화 현상을 가능하게 한 ‘골목+상권’의 미학적, 경관적 특성은 논의의 장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져 왔다.

그러나 골목상권을 미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매체로서 경관의 중요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미학자 유리코 사이토(Yuriko Saito)는 “미적인 것의 힘(the power of aesthetic)”을 역설하며, 미적 선호와 취향이 세계의 상태와 삶의 질을 결정짓는 데 놀랄 만큼 중요하고 실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한다(Saito, 2017). 폴 던컴(Paul Duncum)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미학은 부차적이고 장식적인 역할이 아닌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평한다(Duncum, 2007). 이러한 견해에 비추어 볼 때, 골목상권에서 가로경관의 위상은 상권의 외피에 그치지 않고 상권과 소비자를 매개하는 중심에 있다. 물론 골목상권의 경관은 일방적 계획의 산물이라기보다 상인 각자의 행위들이 총합된 결과임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분위기’라는 단어와 흔히 접목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정서적‧복합적 층위의 논의 대상이며 변수가 많은 탓에 정량화하거나 정책·제도화하기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은 탐구의 대상으로서 본 연구 주제의 중요성을 제기하게 한다. 오래된 골목길에 새로운 여러 상점이 모여들며 생성되는 분위기가 어떤 측면에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지, 골목길의 활기와 유명세가 어떤 미적 변화와 더불어 상승세와 하향세를 그리는지 알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더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다양한 감각적·제도적 시도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2. 샤로수길에 대한 기존 연구

샤로수길을 대상으로 한 연구로는 세 편의 학회발표논문과 한 편의 학위논문이 있다. 2017년에 발표된 추민식 등의 연구는 샤로수길을 키워드나 해시태그로 포함한 SNS 데이터와 관악로14길에 인접한 154개 건축물의 문서 정보를 분석하였다. SNS 분석 결과, 2014년에 본격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는 샤로수길의 상업화 이후, 건축 행위 비율에서 신축은 감소하고 증축과 대수선이 증가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주거공간 수요보다 상업화의 압력이 더 강하게 작용한 까닭으로 해석되었다(Chu et al., 2017).

다른 세 편의 연구는 모두 2019년에 발표되었다. 이후일 등은 2016~2018년에 시행된 간판개선사업의 행정지원 프로세스에 대한 연구에서 해당 사업이 ‘개선’보다 ‘재생’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행정기관의 일방적 집행이 아닌 주민 주도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간판개선사업과 다르다고 진단하였다(Lee et al., 2019). 임상백 등은 ‘명소화된 상업가로’라는 시각에서 경리단길, 망리단길과 함께 샤로수길을 배후상권, 인접시장, 대중교통, 용도지역, 상가배치, 도로특성, 가로길이라는 7가지 활성화 요인으로 분석하였다. 사례 간의 차이를 비교하거나 샤로수길의 고유성을 특기하지는 않았으나, 기존 상권과의 연계성과 대중교통 접근성, 낮은 건물 층수로 인한 시각적 개방감 등을 종합적 활성화 요인으로 언급하였다(Lim et al., 2019).

샤로수길을 다룬 종합적이고 가장 밀도 있는 연구 성과는 길은정의 논문이다. 이 연구는 1970년대 서울대학교의 관악 이전과 밀접한 샤로수길 일대의 지역 개발부터 시작하여 2010년대 샤로수길 활성화의 배경과 실제에 이르는 내력을 정리한 후 외식업 점포에 집중하여 그 변화 과정을 시기별, 구역별, 유형별로 상세히 살폈다. 연구에 따르면 샤로수길의 가장 돋보이는 특징은 외식업으로 부흥하기 시작해 외식업 점포가 동종 집적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Kil, 2019).

3. 연구의 시각과 구성

샤로수길에 대한 기존 연구는 관악구의 중심지인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지역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입지 조건에 주목하거나 활성화 이후의 변화상에 집중한 경향이 있다. 즉 샤로수길에 대한 관심은 ‘골목’보다는 ‘상권’에 기울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어디를 둘러봐도 사진 셔터를 누를만한 장소가 넘쳐나는 수많은 예쁜 길과는 조금 다르다”라며, 주거지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평(BCcard Bigdata Center, 2020)은 샤로수길에 상대적으로 특색 있는 경관이 부족하다는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성수동 카페거리는 적벽돌과 노출 콘크리트가 대변하는 오래된 공장과 창고의 미감으로(Shin and Pae, 2019), 익선동은 근대 도시한옥의 필지 계획과 건축 양식이 자아내는 특색 있는 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화 자원이 형성하는 분위기의 차원으로 보면 가로수길은 갤러리를 중심으로 한 도회적 문화가, 경리단길은 미군기지와의 인접성으로 인한 이국적 취향의 상점들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이에 비하면 샤로수길은 장소의 내력을 드러내는 경관이나 분위기가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편이라 할 수 있다.

활성화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지녔음에도 관악구청이 ‘샤로수길’ 명칭을 내세운 표지판을 세우고, 간판과 포장을 정비하는 등 적극적으로 가로 정비사업을 진행한 것은 전술하였듯 입지적 가능성과 경관적 한계가 병존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활성화 전까지 가능성만 가지고 있던 골목길이 2010년대 중반 골목상권 트렌드를 만나 부흥하기 시작하자, 지자체가 개입하여 이를 관악구의 대표 상권으로 명시하고 강조하기 위해 환경 개선사업을 일으킨 것이다. 본 연구는 이 지점에 착안하여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도심 골목상권으로서 샤로수길의 미적 경험은 어떠한 물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관악구청이 주도한 가로 정비사업이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본 연구는 이상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 단계로 논지를 전개한다. 먼저 논문의 Ⅱ장에서는 도심 골목상권의 일반적 물리 환경이 발생시키는 미적 경험에 대해 논한다. 공간의 측면으로 볼 때 정제된 대로변 도시 조직과의 대비를 통해, 시간의 측면으로 볼 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조화와 알려진 것과 덜 알려진 것 사이의 길항을 통해 도심 골목상권 고유의 미적 경험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Ⅲ장에서는 전 장에서 살핀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에 비추어 샤로수길의 전반적 상황을 검토한다. 입지와 건축 상황, 활성화가 동반한 가로 경관의 변화를 일별함으로써 도심 골목상권으로서 샤로수길이 어떠한 조건을 지녔는지 파악한다. 끝으로 Ⅳ장에서는 샤로수길에서 시행된 가로 정비사업을 명칭, 간판, 포장으로 나누어, 그 경관의 미적 경험을 분석한다. 여기서는 샤로수길에 내재해 있거나 부족한 도심 골목상권의 성질이 가로 정비사업과 맞물려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를 일으켰는지 살펴본다.

본론에 앞서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몇 가지 용어의 정의를 겸해 본 연구의 관점과 범위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는 ‘미학’이다. 본 연구에서 ‘미학’, ‘미(학)적’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연구의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 연구는 사람들이 어떤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현상의 진단보다는 감각이 성립하는 내적 원리의 탐구에 방점을 둔다. 따라서 연구 대상에서 포착되는 감각적 특징들을 발굴, 가시화하고, 그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함의를 해석해내는 작업이라는 관점에서 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덧붙여 본 연구는 미학 중에서도 ‘일상미학(everyday aesthetics)’의 이론적 태도와 결을 나란히 한다. 일상미학은 “미학의 대상을 환경의 모든 요소 및 환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과 사건으로 규정하는 확장된 영역의 미학”(Son and Pae, 2016)으로, 환경미학의 한 갈래로 발전해 1990년대에 자리잡은 영역이다(Carlson, 2014). 본 연구와 관련하여 예술 중심의 기성 미학과 대비되는 일상미학의 성격을 유리코 사이토의 서술을 통해 짚으면 다음과 같다. ⓐ 아름답고 쾌적한 것을 넘어서 우울함, 따분함, 더러움과 같은 다양한 경험을 포괄한다(Saito, 2007) ⓑ 관조 중심적이기보다 행동 중심적이다(Saito, 2007). ⓒ 미적 문해력(literacy)을 증진시킴으로써 일상에서의 미적 자극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경계하기를 꾀한다(Saito, 2017).

둘째는 ‘도심 골목상권’이다. 서울특별시의 우리 마을 가게 상권분석서비스는 골목을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 상권을 “상업상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로 정의한 후 이를 통합해 “대로변이 아닌 거주지 안의 좁은 도로를 따라 형성되는 상업 세력의 범위”로 골목상권을 정의한다(https://golmok.seoul.go.kr/). 덧붙여 골목상권의 개념에 대해서는 자본과 점포의 규모가 작다는 점이 강조되곤 한다(Jeong and Yoon, 2017). 본 연구는 미학적 해석을 중시하므로 골목상권을 ‘골목에 입지한 상권’보다는 ‘상권이 활성화된 골목’이라는 공간적 측면으로 보고자 하며, 여기에 ‘도심’이라는 단어를 더해 대로변과 이면도로의 미적 경험이 극명히 갈라지는 도시 한복판의 골목상권으로 그 영역을 한정하고자 한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본고에서 도심 골목상권이란 도심에서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상에 입지하며, 소규모 점포 위주로 상권이 활성화된 골목을 지칭한다.

셋째는 ‘가로 정비사업’이다. 2017년 초에 관악구청이 수립한 ‘샤로수길 상권 활성화 계획’은 2017년에 추진할 사업계획으로 9가지를 제시하였다.1) 길은정에 따르면 이중에서 ‘개성있는 간판설치’, ‘보행전용거리 지정’, ‘보행자 우선도로 조성’ 세 가지만 진행되었고, 진행 여부를 명확히 하기 어려운 ‘위원회 구성·운영’을 제외한 나머지는 진행되지 않았다(Kil, 2020). 진행되지 않은 사업 중에 ‘도로명 명칭 변경’이 있는데, 샤로수길이 현재 공식 도로명은 아니지만 일대의 지칭어로 널리 알려져 있고, 표지판까지 세워져 있으므로 다른 방식으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활성화 계획 중 실질적으로 명칭, 간판, 보행길 세 가지에 관한 사업이 직간접적으로 시행되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 세 가지 유형에 해당하는 일련의 사업을 샤로수길 일대를 바꾼 가시적 정비사업으로 보며, 이를 통칭하여 ‘가로 정비사업’이라 부르고 연구의 범위로 삼는다.

II.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

1. 도시 공간의 중지

앞서 도심 골목상권의 정의에서 제시한 ‘이면도로의 입지’와 ‘소규모 점포 위주’라는 조건은 물리적 경관의 측면에서 이러한 유형의 상권이 다른 상권과 차별되는 지점을 잘 드러낸다. 가령 유력한 상권의 대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 대로변 상권과 대형 복합 쇼핑몰의 최근 동향을 언급하며 논의를 시작해보자. 김영준에 따르면 온라인 상거래의 발달로 인해 대로를 오가는 유동인구의 매출과 광고 효과가 감소함에 따라 대로변 상권에서의 구매는 고가 상품이나 급히 구해야 하는 물건의 구매로 제한되었다. 대로변 상권의 가치 하락은 대형 복합 쇼핑몰의 성행과도 연관이 깊은데, 엔터식스와 메세나폴리스, 스타필드 등 근래에 건립된 대형 쇼핑몰의 내부 구조는 골목과 상당히 유사하다. 대형 쇼핑몰의 유사-골목 디자인은 소비자가 건물 내에서 보다 오래 머무르며 상품과의 접촉을 넓히도록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Kim, 2017).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대로변 상권, 대형 복합 쇼핑몰과 차별되는 골목상권의 공간적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골목상권의 위치는 대로가 아닌 이면도로이다. 둘째, 골목상권은 계획적 실내가 아닌 비계획적 실외로 구성된다. 이 두 가지 차이는 골목상권의 가로경관을 실질적으로 차별화해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먼저, 이면도로에서의 가로경관은 원경으로 대로변에 서 있는 고층건물의 모습을 포함한다. 멀리 선 고층건물은 골목 좌우에 늘어선 저층의, 상대적으로 오랜 건축 연한을 가진 건물들의 질감과 대비를 이룬다. 근래 을지로에서 일어나는 문화예술적 현상을 다루며, 김미경은 을지로의 풍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일대에서는 두 가지 풍경을 마주 할 수 있다. 을지로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에서 올려다보면 거대한 규모로 솟아오른 세운상가 건물들이 마치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의 영광을 여전히 잃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동시에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 을지로를 내려다보면 일대의 불규칙하고 낡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끊임없이 더 새롭고 더 발전된 것만을 추구하며 변화해 온 서울 한가운데에서, 을지로는 도심 속 고층 빌딩숲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여전히 오래된 것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섬처럼 잔존하고 있다(Kim, 2018: 41).

김미경은 을지로의 풍경을 골목에서 세운상가를 올려다본 것과 높은 곳에서 골목을 내려다본 것 두 가지로 제시한다. 전자는 “거대한 규모로 솟아오른”과 “잘 나가던 시절의 영광”으로 묘사되며, 후자는 “불규칙하고 낡은”으로 수식된다. 이어서 서울에 대한 “끊임없이 더 새롭고 더 발전된 것만을 추구”하였다는 언급과 을지로에 대한 추가 진술은 두 가지 풍경 사이의 시차를 명확히 한다. 즉, 위 인용문에서 세운상가로 대변되는 거대 도시조직은 새로운 것, 을지로로 대변되는 작고 불규칙한 도시조직은 오래된 것으로 대응하며, 서울이 추구한 변화는 이 두 가지 공간을 병존하게 하였다.

미학자 딜런 트리그(Dylan Trigg)는 앞서 말한 골목의 비계획적 실외라는 성질을 흥미롭게도 주체의 감상과 사색의 차원으로까지 끌어낸다. 다음 글을 보자.

골목길에서 도시 공간의 중지는 골목길이 골목길 외 공간의 양태와 대비 속에서 그 자신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뜻한다. 이 대비로 인해 시간성, 그리고 속도가 달라진다. 도시의 신중하게 배열되고 가꾸어지고 개발된 격자 속에서는 엄격함과 일관성이 중심이다. 골목길은 불확실성으로 일관성에 반격을 날린다. 따라서 시간은 지정된 위치로부터 실추되고 새로운 방식의 참여, 즉 사색적 참여를 정당화한다. 파편화되고 조각난 것들의 통합이라는 골목길의 미적 측면은 골목길을 둘러싼 건물과 사무실, 식당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확장된다. 노동자들에게 골목길은 활동적 존재로부터 제공되는 휴식이 있는 안식처가 된다. 종종 식당의 뒷문에 앉아 있으면 실용주의와 존재로부터의 탈출이 골목길의 광활함을 펼쳐지게 함으로써 철학적 의미를 얻을 수 있다(Trigg, 2006: 159).

트리그 역시 골목길이 그 외 공간과의 대비 속에서 정체화된다고 강조한다. 트리그는 대비의 포착에서 한 걸음 나아가 대비로 인한 시간성과 속도의 변화를 제시한다. 골목길은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도시의 격자와 달리 파편들이 모인 것이며, 그 형태적 속성은 안에 담긴 주체가 다른 방식의 시간성을 느끼고 사색과 휴식을 취하도록 유도한다.

트리그의 시각은 ‘질서/무질서’ 혹은 ‘단정함/지저분함’에 관한 미적 감상이 상보성에 기반하며 미술관의 흰 벽을 배경으로 하는 전형적 예술 감상과 다르게 맥락 의존적임을 지적한 유리코 사이토의 글과 연동한다. 사이토는 우리가 섬세하고 결점이 없는 질서를 바라는 동시에 그것이 모든 것을 통제할 때 비인간적이고 불쾌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질서나 단정함에 관한 미적 감상은 완벽한 제어도 온전한 자유도 아닌 적정한 균형에 있다(Saito, 2007). 이 지점에서 도심 골목상권의 경관이 그 외의 골목길과 차별화되는 특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도심 골목상권의 경관은 원경으로 고층건물로 대변되는 도시 풍경을, 근경으로 골목 양측의 오래된 소규모 건물 입면을 포괄한다. 이는 두 가지의 대비적 질서와 시간성의 병치를 연출한다. 대비-병치의 효과는 근경에서도 볼 수 있다. 골목길의 형상과 오래된 건물 입면이 세월의 지문이자 과거의 흔적으로 감상된다면, 새로 유입되는 상점들의 입면은 기존의 공간 언어와 때로는 연계하고 때로는 대조를 일으키며 트렌드의 전선에 선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2. 서사적 풍경과 유행의 감각

골목상권을 젠트리피케이션과 뗄 수 없는 까닭은 기존의 상권에 새로운 활기와 문화가 유입된다는 점과 상권이 트렌드를 이끄는 첨점에 위치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특별한 제어장치가 없는 이상 필연적으로 골목상권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끌고 만다. 이 두 가지는 2010년대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을 발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인이라는 점에서 복합적 차원의 고려를 요한다.

골목상권의 가로경관에 남아 있는 상권 이전의 또는 과거 상권의 가로경관은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질감과 이 공간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대변한다. 여기에서 일상은 해당 가로 고유의 장소성, 예컨대 익선동의 근대한옥이나 성수동의 공장처럼 직관할 수 있는 물리적 특징과도 밀접하다. 반면, 상권의 형성과 함께 만들어진 새로운 가로경관은 당대의 디자인 취향과 방문객들의 비일상을 대변한다. 세월과 당대, 일상과 비일상이 병치되는 이러한 가로경관은 양쪽 중 어느 하나만으로 일관된 가로경관과 달리 두 극단의 존재와 관계를 인식하게 한다. 오래된 것은 더 오래된 것으로, 새로운 것은 더 새롭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하나의 가로경관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연상과 상상 작용을 통해 공간에서의 경험을 풍부하게 한다. 가로경관을 통해 시간적 스펙트럼을 내면화함으로써 공간에 얽힌 서사를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며 길을 걷는 것이다.

골목상권이 트렌드와 직결된다는 사실은 가로경관을 끊임없는 미완의 상태에 놓이게 한다. 트렌드는 매 순간 변하며 단순히 취향의 이동 때문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변화상이나 행동심리학적 역학 관계에 의해 요동친다. 골목상권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곳을 지나가다 우연히 알고 찾아오기보다는 온라인을 통해 사전지식을 습득한 후 나름대로의 취향이나 합리적 이유에 근거하여 방문한다. 말하자면 한창 떠오르고 있거나 젠트리피케이션의 역풍을 맞아 가라앉는 공간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방문할 골목상권이 어느 정도의 이슈에 해당하는지를 미리 알고, 그에 따라 행선지를 정하는 것은 현재 20~30대가 골목상권을 방문하는 메커니즘으로 보편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 혹은 오늘날의 독특한 취향을 잘 드러내는 말이 ‘핫 플레이스(hot place)’와 ‘힙(hip)’이다. 핫 플레이스는 국내에서 대략 2000년대 후반부터 매스컴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힙은 201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두 낱말의 등장은 골목상권의 부상, 그리고 입지 확장과 시기를 공유한다. 핫 플레이스가 잘 드러내는 동시대의 취향은 ‘일시적 온도’라 할 수 있다. 핫 플레이스는 비영구적이다. 인지도와 명성, 매출의 측면에서 꾸준하게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핫 플레이스의 칭호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힙의 개념은 한층 더 복잡하고 문제적이다. 힙은 ‘최신’이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과 같은 덕목으로 통하기도 하지만 자기중심적이고 무비판적인 함의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있다. 에르난데스에 따르면 힙스터는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내용이 없는 허무한 형태’의 예술을 발현하며, 사회를 외면하는 냉소와 역설을 통해 소외를 발생시킨다(Hernandez, 2014). 김윤지는 ‘힙스터’ 문화를 경제학에서의 속물 효과(snob effect)와 연관시키고 논의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연결한 바 있다(Kim, 2016). 이러한 견해와 관련하여 김미경은 을지로의 문화예술 행위자들이 무책임한 젠트리파이어가 아니라는 뜻을 담아 “을지로에는 힙스터가 없다”(Kim, 2018)라고 일갈하기도 한다.

대중이 도심 골목상권에 기대하는 ‘핫’하고 ‘힙’한 감각은 재생의 측면으로 보면 변화의 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모종린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골목이 개성을 잃어버리는 복제(duplication) 현상을 피한다면 이를 원도심의 재생과 활성화를 도모하는 실용주의 철학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다(Mo, 2017). 여기에는 물론 재생과 활성화의 명분이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인지 투명하고 꼼꼼하게 따지는 비판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쉽지 않은 문제가 따른다.

서사적 풍경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간극을 통해 발현된다면, 유행의 감각은 알려진 것과 덜 알려진 것 사이의 동적 균형을 통해 발현된다. 게오르그 짐멜은 “유행은 사회적 균등화 경향(모방 심리)과 개인적 차별화 경향 사이에 타협을 이루려고 시도하는 삶의 형식”(Simmel, 1904)이라 한 바 있다. ‘핫’을 사회적 균등화 경향에 ‘힙’을 개인적 차별화 경향에 대입해본다면 현재 국내 골목상권 트렌드 역시 ‘핫’과 ‘힙’의 길항 속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새롭고 낯선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조화와 균형을 내재한 역동적 미감을 추구하는 소비자의 감각을 젠트리피케이션의 관점으로만 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Ⅲ. 도심 골목상권으로서 샤로수길의 경관

1. 대비의 경험을 일으키는 건축 현황

샤로수길은 서울대입구역 사거리의 동남쪽 블록에 위치한다. 보행자 우선도로 포장이 된 구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현재 샤로수길의 영역은 직선에 가깝게 뻗어 있는 관악로14길을 중심으로 하며, 이 길에서 인근 간선도로인 관악로, 남부순환로, 봉천로 방향으로 가지를 친 것으로 묘사할 수 있다(Figure 1 참조). 이 길은 간선도로가 아닌 이면도로에 해당하지만, 관악구에서도 유동인구수로 손꼽히는 전철역으로부터 상당히 가깝기 때문에 접근성 측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서울대입구역 사거리 주변에는 2000년대 이후에 지어진 고층건물이 다수 들어서 있다. 샤로수길이 있는 동남쪽 블록에도 대우슈페리움(2007년, 19층)과 BS타워(2010년, 15층)를 비롯한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줄지어 있고, 이 건물들의 저층부에는 각종 상업시설이 입주해 있다. 고층건물군 안쪽의 이면도로로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건물의 층고가 낮고 건축 연한이 올라가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구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들의 사용 승인 연대는 1970년대 후반까지 올라간다(Figure 2 참조). 1975년 이전하기 시작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공사와 연계하여 주변 일대의 길과 필지가 정비되기 시작하였고, 현재에도 이때 지어진 일부 건축물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격자 속에 동일한 규격의 유리창이 반복되는 고층건물의 파사드를 지나 한 켜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197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에 지어진 저층 건축군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Figure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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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Location of Sharosu-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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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Approval date of buildings around Sharosu-gil Source: Mapping the ages of buildings in Seoul. (https://www.mapzen.com/blog/mapping-seoul-buildings/), 2017. (recolored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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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3D image of the whole area of Sharosu-gil Source: S-Map(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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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골목상권의 활성화와 가로 경관의 변화

샤로수길 부상 전부터 이곳에는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울특별시의 우리 마을 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서 샤로수길 일대는 단일 상권이 아니라 4개 상권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발달상권과 전통시장 구간을 포함한다2). 발달상권과 전통시장이 별개로 존재하던 일대가 샤로수길이라는 상권으로 통합, 변모하기 시작한 출발점은 2010년 수제버거집 져니가 문을 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2013년에는 샤로수길 내 외식업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여 상권의 본격적 활성화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Kil, 2020), 2014년에는 샤로수길에 관한 첫 블로그 포스팅이 등장한다(Chu et al., 2017). 샤로수길이라는 조어가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은 2014년 말인데, 해당 기사에서 샤로수길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서울대 정문 로고인 ‘샤’를 합쳐 만든 용어”라고 설명되었으며, 고시 제도의 축소로 인한 고시촌 ‘녹두거리’의 쇠퇴가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제시되었다(Lee, 2014). 구글 트렌드에서 샤로수길을 키워드로 한 검색의 상대 수치 데이터를 보면 역시 2014년 하반기에 데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하여 2016년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검색이 활성화되는 양상을 볼 수 있다(Figure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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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Interest over time about Sharosu-gil Source: Google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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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으로서 샤로수길은 서울 골목상권 중에서 매출액 2위에 오르고(Mo, 2017), 세부 상권별 임대 및 투자여건 평가 순위에서 2018년 최상위(2013년 14위), 공실률 최하위를 기록하는(WFRI, 2019) 등 경제 지표에서도 상당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샤로수길의 성공 요인으로는 앞서 언급한 고시촌의 쇠퇴나 저렴한 임대료, 골목상권 문화의 부흥 등이 제시된 바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근 지역의 배후 수요가 결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샤로수길이 위치한 관악구는 전국 1위의 20~30대 인구비율(39%)과 서울시 1위의 1인 가구 비율(44.9%)을 기록하였다(Park, 2018). 이와 연계하여 원룸형 임대주택이 많을 뿐 아니라, 급속도로 늘고 있다(Park and Kang, 2018).3) 압도적 20~30대, 1인가구, 원룸주거라는 배경은 외식을 단순 소비가 아니라 문화 생활으로 여기는 세대로 하여금 샤로수길의 부상과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외식업 점포의 급증과 밀접한 샤로수길 골목상권의 활성화는 신규 점포들이 간판이나 입면 디자인, 공간 활용의 측면에서 기존 점포들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드러내게 함으로써 가로 경관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 성업을 이룬 점포가 필로티 주차장으로 사업장을 확장하기도 하였으며, 1층 중심의 사업장이 2층과 3층으로 확장되기도 하였다(Kil, 2020). 활성화 전에 비해 신축 대비 증축과 대수선의 비율이 높아진 현상(Chu et al., 2017)도 특기할만하다. 이상의 변화를 개인 사업자에 의한 자생적 변화라고 한다면, 관이 주도한 제도적 변화도 있었다. 관악구청은 서론에서 언급했듯 명칭, 간판, 포장을 중심으로 한 가로 정비사업을 전개함으로써 개별 대지가 아닌 가로 단위로 포착할 만한 일련의 변화를 주도하였다. 가령 Figure 5에 제시한 두 사진을 통해 활성화 전(2010년)과 활성화 후(2020년)의 변화를 살펴보자. 새로운 점포가 들어선 것 외에도 같은 점포가 새로운 간판을 설치한 점이 눈에 띈다. 활성화 전에 비해 활성화 후에 건축물의 입면이 보다 정돈된 상태로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사업장 수가 전반적으로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돌출 간판이 확연히 줄어든 까닭이다. 바닥에는 사선이 돋보이는 패턴 포장이 도입되었다. 간단히 짚어본 이상의 변화는 모두 관악구청 정비사업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변화의 구체적 양상을 검토하고 Ⅱ장에서 제시한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과 관련하여 샤로수길 경관에 대한 해석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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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An example of landscape change in Syarosu-gil Source: Kakaomap(https://map.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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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샤로수길 경관의 미적 경험: 명칭, 간판, 포장

1. 명칭: 장소특정성으로부터의 탈피와 대안성의 획득

대상지가 관악로 14길이라는 도로명이 아닌 특정 이름으로 불리게 되고, 그 이름이 가로수길을 연상시키는 ‘샤로수길’로 정해진 것은 장소성의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면도로에 위치한 소규모 점포 위주의 가로형 공간이라는 도심 골목상권의 물리적 상황은, 대로변에 위치하거나 대규모인 여타 상권에 비해 가시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다지 좋은 조건이라 볼 수 없다. 널리 알려진 특유의 경관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본 연구 대상처럼 뚜렷한 특징이 없는 경관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관악구청이 일대에 ‘샤로수길’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뉴스와 안내판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이를 확산한 행위는 골목상권의 전시 혹은 가시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샤로수길에 대한 첫 매스컴 기사가 검색되는 2014년 말과 가까운 시일에 작성된 기사들에서는 샤로수길이라는 조어를 표지판과 노면 페인팅으로 명시한 이미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Figure 6a, 7 참조). 해당 표지판의 문구는 “서울대학교 정문의 "샤"와 "가로수길"을 패러디하여 샤로수길로 불리우며, 개성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라 쓰였다. 이 표지판은 2016년 이후에 샤로수길과 무관한 내용의 ‘관악, 민주주의 길 투어민주화거리’ 안내판으로 교체되었다가 2020년 중순에 강감찬 장군 이미지를 포함한 형태로 4곳에 다시 세워졌다(Figure 6b 참조). 노면의 페인팅은 보행자 우선도로 조성 사업과 함께 지워져 현재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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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Signpost on entrance of Syarosu-gil Source: a. Kim(2016); b. Author Taken,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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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Past road marking on entrance of Syarosu-gil Source: Kim, B. G,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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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표지판 설치는 관악구청이 해당 조어를 가로경관의 이미지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관악로14라는 행정지명을 안내문에서 제외했을 뿐 아니라, 오랜 연원이 있는 ‘봉천’이라는 기존 지명과 무관한 신조어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과감한 결정이라 생각된다. 이 표지판의 설치는 상권의 실질적 변화도 발생시켰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대로변을 따라 올라오던 사람들이 표지판을 보고 이면도로로 진입하는 바람에 대로의 연장선상에 있던 상점의 손님이 줄었다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4)

조어를 이루는 ‘샤’와 ‘로수’의 성격과 조합의 효과에 대해 보다 면밀히 살펴보자. ‘샤’는 서울대학교 정문의 별칭이다. 실물과의 형태적 유사성에 착목한 학생들의 은어이므로 기존 지명의 축약어라 볼 수 없고, 때문에 관련 정보가 없으면 뜻을 추측하기 어렵다. 또한 ‘로수’는 본래 ‘가로+수’로 이루어진 원어의 의미구조 상 애매한 부분에서 글자를 떼어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온전한 의미가 없다. 조합의 측면에서 보면 둘 중 ‘(가)로수길’이 먼저 선택된 후, ‘가’를 대신해 발음상의 유사성과 지역성을 띤 말로 ‘샤’가 선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길의 이름을 새로 정하는 것은 골목상권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유사한 조어법으로 이름 지어진 망원동의 ‘망리단길’에서는 주민 1,000여명이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해 명칭을 거부하는 서명을 하기도 했다(Lee, 2017). 이상으로 살핀 조어법과 명칭의 유통 시점에 근거하면 샤로수길이라는 명칭에는 해당 길이 ‘서울대입구역의 가로수길’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 이 길의 명칭은 봉천동의 경리단길이란 뜻에서 ‘봉리단길’ 또는 ‘봉로수길’이란 비교적 덜 알려진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Yoon, 2015). 결과적으로 ‘샤/봉’의 경쟁과 ‘리단/로수’의 경쟁에서 ‘샤’와 ‘로수’가 앞선 셈이다. 이 지점에서 ‘샤’는 실제 지역을 뜻하는 부분으로, ‘로수’는 공간적 지향을 뜻하는 부분으로 해석 가능하다. 서울대 학생들이 서울대입구역 일대를 부르는 말이 ‘봉사리(봉천사거리)’에서 ‘입구역’으로, ‘입구역’에서 ‘설입’으로 변화해왔다는 점을 상기하면 지역의 지칭어로서 ‘샤’가 선택된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며, 강남과의 지리적 위치 관계와 강남의 주거 대안으로서 관악구의 성격을 떠올리면 ‘로수’가 선택된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샤’와 ‘로수’는 지리적 위치나 지향을 가리킬 뿐, 해당 위치의 고유한 장소성과는 연결성이 약하다는 것이다. 샤로수길 일대가 서울대학교 자체나 학생들과 맺어온 관계는 대학가라기보다 원룸촌에 가까웠으며, 전술하였듯 녹두거리의 대안이라는 배경에서 샤로수길이 성장했다는 점은 오히려 학생들과의 관계가 최근에야 가까워진 양상을 잘 드러낸다. ‘샤’라는 말이 문의 조형 이미지에서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가 샤로수길 내 교차로 포장 한군데 외에 적극적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 지점에서 망리단길, 송리단길, 황리단길, 객리단길 등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리단길’들의 존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샤로수길의 명칭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장소특정성보다는 골목상권의 트렌드를 받아들인 대안적 공간으로서의 기대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으며, 경리단길 이후 유사 명칭으로서 ‘-리단길’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2015년 대구 봉리단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Kim, 2019) 이러한 상업 가로 문화의 초기 사례로서도 의미가 있다.

2. 간판: 신/구 조화와 시간성의 뒤섞임

골목상권의 가로경관에서 오래된 요소는 과거에 정박한 채 특유의 분위기를 발산하다가 점차 새로운 요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존재로 상정되기 쉽다. 그러나 관악로14길이 활성화되기 전부터 자리를 지켜왔던 노포들은 기존의 상점을 유지하는 동시에 가로경관의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능동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관악구청은 2016년 ‘좋은간판 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13개소, 2017년 ‘샤로수길 개성 있는 간판 조성사업’을 통해 20개소의 기존 점포의 간판을 개선하였다. 2018년에는 전년도 사업의 진행 결과, “쾌적한 거리 환경 및 지역상권 활성화 등의 효과로 개선지역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아짐에 따라” 사업을 확대하고자 ‘2018년 샤로수길 간판개선사업’을 통해 점포 20개소의 간판을 추가적으로 개선하였다(Gwanak-gu Office Construction Management Divison, 2018a). 3년간 총 53개소의 간판을 새로 만들었다는 것은 2018년 당시 350개소로 집계된 샤로수길의 전체 점포 수에 비추어볼 때 결코 적지 않은 수라고 할 수 있다.

지원금을 통한 간판 교체의 대상 선정은 공모와 심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노후한 간판이 주 대상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노포들이 그 대상이었음은 쉽게 짐작된다. 많은 수의 노포가 사업에 참여하였고, 구청의 문건에 따르면 ‘자발적 사업추진 요구’가 있었음을 참작할 때 간판의 디자인 개선이 분위기 조성이나 점포의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할 수 있다. 자발적 참여를 장려하는 주민주도형 간판 개선사업은 일정 기간 안에 가시적 효과를 내야 하는 관주도형에 비해 디자인상으로 획일화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Lee et al., 2019).

새로운 간판의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크기를 줄여 건물 입면을 면적으로 가리지 않도록 한다거나, 업종을 상징하는 조형 요소를 포함하는 등의 경향을 드러낸다(Figure 8 참조). 그 결과, 간판을 개선하기 전에는 간판을 통해 오래된 점포와 새로운 점포가 분명하게 구분되었던 것에 반해 개선 이후에는 간판만으로 양자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때로는 간판뿐 아니라 상점의 입면까지 연계하여 개선하는 경우도 있어 외형만으로는 노포임을 알 수 없는 가게도 있다. 또한 개선 대상의 선정에서 돌출 여부를 중요한 사유로 고려함으로써 노면에 세워진 입간판이나 파사드에서 수직으로 튀어나온 간판을 지양하는 경향이 보인다(Gwanak-gu Office Construction Management Divison, 2018b). 이러한 양상은 샤로수길의 가로경관에서 노포들이 시간의 축적이나 업종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새롭게 입점한 점포들과 조화를 이루어 세련된 경관의 분위기를 이루고, 변화한 상권에 적응하고자 하는 능동적 지향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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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8. Example of sign renovation in Syarosu-gil Source: a. Kakaomap(https://map.kakao.com/). b. Gwanak-gu Office Construction Management Divison(201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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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병치를 통해 시간성을 느끼게 하는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 측면에서 오래된 간판이 교체되는 상황은 고유한 분위기가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개별 상점의 입장에서 오래된 간판은 동시대 소비자에게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세련된 디자인으로 교체하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가로경관의 측면에서 장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문화 자원으로 보전의 대상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의 상점들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차에 남아 있는 상점의 간판을 교체하는 것이 경관 측면에서 일으킬 효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뉴트로라는 신조어의 유행과 더불어 복고풍 간판을 새롭게 설치하는 양상이 샤로수길에서도 다수 확인된다(Figure 9 참조). 노포의 간판 개선에서는 조형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트렌디한 분위기를 부여하려는 반면, 비교적 최근에 들어선 상점에서는 오히려 조형을 제외하고 글자를 강조하는 고전적 형식의 간판을 설치하기도 하는 것이다. 간판 디자인을 두고 일어나는 정반대의 두 양상은 신/구의 병치라는 배경적 자원, 신/구의 조화라는 현실적 대응, 시간성이 뒤섞인다는 현재진행형의 과제로 요약할 수 있는 샤로수길 가로경관의 현황과 이슈를 잘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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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9. Examples of retro style signboard in Syarosu-gil Source: Author Taken, 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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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장: 골목 정체성의 강화와 영역의 가시화

골목상권으로 인해 Ⅱ장에서 언급한 ‘도시 공간의 중지’라는 미적 경험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해당 공간이 전형적 도시 공간과 쉽게 대비되는 골목길 고유의 형상을 갖추어야 한다. 골목길은 대개 폭이 좁고 길이 예상치 못하게 꺾이는 부분을 포함한다. 길 주변은 전반적으로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필지로 이루어졌으며, 건축물 역시 일관된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떨어지지만 다양한 경관을 자아낸다. 이러한 골목의 성질은 도시의 다양성과 연관되기도 하는데, 가령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 거리와 지구에서 풍부한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조건 중 하나로 “모퉁이를 돌 기회와 거리가 많아야”(Jacobs, 1961)한다고 쓰기도 하였다.

샤로수길은 보차분리가 없으며 최대 2차선으로 활용될 정도의 좁은 노폭을 지니고 있다. 5-6m 가량의 노폭은 골목상권 중에서도 비교적 좁은 편이다(Lim et al., 2019). 이러한 면은 보차분리가 되어 있거나 가로수가 심긴 다른 골목상권에 비해 비교적 골목길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한 면모라 할 수 있다. 반면, 직선에 가까운 샤로수길의 형태는 보행자가 길을 골목으로 느끼기에 다소 불리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돌출 간판과 길 위의 적치물을 정리하도록 한 관악구청의 정비 사업으로 인해 가로경관은 골목상권의 활성화 이전보다 단순해졌다. 이 지점에서 관악구청의 주도로 2017년과 2018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행된 샤로수길 보행자우선도로 조성 공사(Figure 10 참조)는 골목상권으로서의 가독성을 높이는 동시에, 골목길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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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0. Section of Syarosu-gil pedestrian priority road project Source: Gwanak-gu Office Traffic Administration Division, 2017. (redrawn by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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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우선도로는 “차량에 우선권을 빼앗긴 보행자들을 위해 이면도로의 노면 포장 디자인 개선 등을 통해 보행자 우선도로로 만들어가는 사업”(Kim, 2017)이다. 즉, 차는 어렵게, 보행자는 편안하게 다니도록 디자인 장치를 마련하는 관 주도 사업이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위해 2017년까지 61곳을 지정하고, 지자체에 사업비를 일부 지원해왔다.

보행자우선도로의 대표적 조성 방식은 색채와 패턴을 활용한 페인팅으로 노면에 문양을 입히거나 스탬프 포장을 통해 아스팔트 위에 보도블럭과 유사한 요철을 주는 것이다. 샤로수길의 중심도로에는 두 가지 색상의 연속적 사선이 지그재그로 교차되는 패턴이 적용되었으며(Figure 11 참조), 주변 도로에는 경계에 한 변을 맞댄 삼각형들이 좌우로 반복되는 패턴이 적용되었다(Figure 12 참조). 교차로에는 중심에 동심원이나 ‘샤’ 문양을 그리거나 노란 사선을 그물처럼 긋는 패턴을 다양하게 적용했다. 보도블럭처럼 요철을 주는 방식은 전체에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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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1. Main entrance of Syarosu-gil Source: Author Taken,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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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2. subsidiary road of Syarosu-gil Source: Author Taken,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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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선을 이용한 샤로수길의 포장 패턴은 차량의 서행을 의도한 것이지만,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효과를 낳는다. 첫째, 이 패턴은 곧게 뻗어 있는 샤로수길의 단조로운 가로경관에 변화와 다양성을 준다. 사선은 길 양쪽의 파사드를 번갈아 건드리며 지그재그로 전진한다. 행인의 시선이나 걸음걸이가 이 패턴을 직접 따라갈 가능성은 낮지만 패턴이 없을 때와 비교하여 보다 굴절된 시선의 움직임을 유도함은 분명하다. 사선과 삼각형들은 상점의 입면, 특히 입구나 웨이팅 공간과 특별한 규칙 없이 맞닿으며 의외의 공간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둘째, 반복되는 무늬와 요철의 패턴은 노면을 바라보는 시선을 분산시킨다. 골목이 도시 공간과 대비되는 이유 중 하나는 복잡하고 정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 연구가 제시한 사진 속 노면을 흑색 콘크리트의 단조로운 포장으로 상상해보면 패턴의 시선 분산 효과를 가늠할 수 있다. 셋째, 이 패턴은 샤로수길 전역에 연속성과 일관성을 부여한다. 지그재그로 그려진 패턴은 교차로를 제외하고는 끊어지지 않는다. 선 중심으로 그려진 중심도로의 패턴 외에도 삼각형 문양을 배치한 주변도로의 패턴 역시 문양 사이로 연속되는 지그재그의 형태를 연출한다. 다양하되 연속성을 잃지 않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일관된 분위기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시선의 굴절, 분산, 연속 효과가 길에 진입해 있는 이용자를 전제한 분석이라면, 길 안팎을 넘나드는 이용자의 시각에서도 패턴의 효과는 유의미하다. 패턴은 방문자에게 샤로수길의 영역을 명시함으로써 길의 정체성을 가시화하고 공간의 가독성을 높인다. 샤로수길의 포장은 서울대입구역 인근의 대로변에서 이면도로로 들어서는 초입부터 조성되어 있어 방문객을 샤로수길 중심으로 안내하는 역할에 충실하다. 또한 중심도로, 주변도로, 교차로의 공간 구조를 패턴 유형으로 나타냄으로서 방문객들이 공간 구조를 쉽게 인지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케빈 린치가 언급한 가독성(legibility)과 이미지성(imageability)의 측면에서 불안과 혼란을 줄이고, 안정성과 쾌적성을 높인 것이다(Lynch, 1960). 언급한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골목길의 형태가 때때로 방문객에게 공간에 대한 난독을 선사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샤로수길의 포장은 골목길의 정체성을 강조하면서도 가독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가로 경관의 정비가 발생시킬 수 있는 미적 효과를 잘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다.

V. 결론

본 연구는 이면도로라는 입지와 소규모 점포의 집합을 조건 삼는 도심 골목상권 특유의 미적 경험을 논하고,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샤로수길을 사례로 하여 그 경관적 양상을 탐구해보았다.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은 공간적 측면에서 크고 정제된 대로변 도시 조직과의 대비를 통해, 시간적 측면에서 오래된 것/새로운 것의 조화와 알려진 것/덜 알려진 것의 길항을 통해 발생한다. 샤로수길의 물리적 현황을 살펴본 결과, 2000년대 지어진 고층건물을 지나 1970년대 후반 이후의 다양한 건축연한을 지닌 저층 건축군으로 들어서는 진입 과정과 노포, 신규 점포가 어우러지는 골목 내부의 가로 경관으로 볼 때 샤로수길은 도심 골목상권의 미적 경험을 발생시키는 환경을 갖추었다고 판단된다. 샤로수길의 도심 골목상권 부상과 연계하여 관악구청은 명칭, 간판, 포장을 중심으로 한 가로 정비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전술한 미적 경험에 비추어 그 영향을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샤로수길’ 명칭의 공식화는 대상지를 장소특정성으로부터 탈피하게 하고 대안성을 획득하게 하였다. 둘째, 노포의 간판 개선사업은 상업 주체의 측면에서 신/구 조화를 추구하지만 이미지의 측면에서는 시간성의 뒤섞임을 발생시킨다. 셋째, 보행자우선도로 조성 사업에서 노면의 포장은 골목 정체성을 강화하고 영역을 가시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시공간척 차원에서 대비와 병치가 발생시키는 도심 골목상권의 감각적 특질, 그리고 명칭, 간판, 포장의 변화가 잘 드러내는 가로 정비사업의 영향은 샤로수길 외 다른 도심 골목상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도심 골목상권의 부흥과 침체는 2010년대 이후 국내의 도시재생 흐름과 직결되는 대표 양상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매스컴에서 많은 정보가 만들어지고 또 퍼지고 있다. 유사한 시각을 적용하여 살필 만한 사례들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은 본 연구와 같은 경관의 미적 경험 연구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경관 자원과 정비 방안이 패턴화된 채 골목 단위로 확산된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공간 유형을 소비하는 대중의 취향이 강력하게 자리 잡았음을 뜻한다. 그러나 Ⅱ장에서 살폈듯 도심 골목상권과 밀접한 대중의 취향은 시간성과 유명세, 변화에 민감하므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서론에서 언급한 사이토의 견해처럼 ‘골목상권화’에 대한 미적 문해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비판과 경계의 시각을 갖출 필요가 있다.

도심 골목상권의 미학이라는 큰 주제에 있어 본 연구는 이론적 측면과 사례의 측면 모두에서 출발점에 해당한다. 이론적 측면에서는 도시환경을 다룬 기존의 미학 이론들을 포섭하거나 레트로와 같은 동시대 문화 연구과 연계하는 등 다양한 심화의 갈래가 있을 것이다. 사례의 측면에서는 샤로수길과 다른 양상의 도심 골목상권 사례들의 개별성을 탐구할 여지가 많다. 또한 도심 골목상권을 다룬 연구에서 미학이나 미적 경험을 화두로 내세운 연구 논문은 드물지만, 각종 지표나 빅데이터, 사회 동향에 기반한 연구는 많은 수가 축적되고 있다. 추후 연구에서는 도심 골목상권을 미학의 대상으로 여기고 관련 논의를 심화하며 사례를 확장하는 한편, 사회과학 측면의 연구 방법론과 연계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Notes

‘샤로수길 상권 활성화계획’이 2017년 추진 사업계획으로 제시한 9가지 사업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위원회 구성·운영, 젠트리피케이션 예방대책, 개성 있는 간판 설치, 거리공연 개최, 도로명 명칭 변경, 점포디자인 컨설팅, 보행자우선도로 조성, 보행전용거리 지정, 식품접객업소 활성화.

교차로 부근은 서울대입구역 발달상권, 중간 부분은 관악로 14길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인 낙성대시장, 동쪽 부분은 남부순환로234길 골목상권에 해당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노후화된 관악구 주택은 신축 원룸이나 다세대주택으로 대체되는 추세에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소형 부동산 개발 사업이 서울 시내 다른 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활발하다.

해당 민원의 본문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몇년 전 서울대입구역 2번출구에서 올라오다보면 엔젤리너스 커피 앞쪽에 크게 샤로수길을 손가락으로 안내하며 맛있는 맛집들이 즐비하며 서울대 로고의 샤에서 샤로수길로 명한다고 구청에서 큰 표지판을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그보다 훨씬 위에 위치하고 게다가 3층에 위치하여 조금은 그 위를 막아서서 손가락으로 표시하며 먹으러 가는 길이면 여기서 옆으로 빠져서 드셔라는 간판이 얼마나 큰 여파가 있을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세월호도 거뜬히 이긴 저희는 올해 11년 가게입니다. 그런데 재작년 말부터 5시 이후 손님들이 완전 눈에 띄게 없어졌습니다. 작년은 정말 문을 닫아야 하나는 위기의 연속이었으며, 너무 저녁 손님이 없어 여러번 일찍 퇴근하면서 샤로수길로 가보니 완전 웨이팅을 서서 기다리는 집들도 많고 그야말로 활성화가 엄청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간 주요 잡지책 kbs, 케이블 방송에 샤로수길이 소개되면서 블로거들도 하나같이 샤로수길을 주거리로 소개를 올리면서 서울대입구 2번 출구를 올라 오면서 그 표지판을 보고 다들 거기로 다 빠져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https://www.gwanak.go.kr/site/mayor/ex/minwon/selChiefHopeInfo.do?abBoardId=7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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