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1990년대 지방자치제도의 본격적인 시행과 더불어 시민참여와 협력을 강조하는 거버넌스 모델이 확산되면서, 도시공원 계획 수립과 운영 과정에 시민의 의견과 참여를 반영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경우, 1997년 공원별 자원봉사 활동 프로그램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고하정, 2020a), 2005년에는 민관 공동운영 모델로 서울숲 공원을 개장하는 등 시민참여 기반의 공원 관리가 확대되었다. 2015년 수립된「2030 서울시 공원녹지기본계획」역시 공원 계획․설계, 조성, 운영 전 과정에서의 시민참여 기반 마련을 강조하고 있다(서울특별시, 2015). 이는 도시공원의 지속가능한 관리와 이용을 위해 이용자인 주민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 계획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주민은 지역 현안을 가장 잘 인지하며, 공간계획의 효과를 직접 경험하는 주체로서, 주민의 공동의사와 욕구가 반영된 지역사업 추진은 주민 반발과 소외감을 줄이고 협력을 이끌어낸다(김용근 등, 2002).
이러한 배경에서 참여예산제도(Participatory Budgeting)는 공원 분야에 대한 시민 의견 개진과 참여가 일어나는 새로운 경로로 주목된다. 참여예산제도는 시민이 예산편성 과정과 내용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재정운영의 투명성과 재원배분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로, 1989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시에서 처음 시작되어 세계 많은 도시로 확산되었다. 국내에서는 2011년「지방재정법(법률 제19591호)」시행령을 통해 전국의 모든 시와 구에 참여예산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시민들은 매년 광역 및 기초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예산의 일부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직접 제안하거나 심의․투표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목할 점은 서울시의 경우, 참여예산제도를 통해 발의된 사업 중 공원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고하정(2020b)은 2020년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을 통해 신청된 다양한 사업 중 공원녹지 관련 사업이 건수 기준 12.7%, 금액 기준 27.7%로 공원녹지에 대한 시민의 요구와 갈망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서울시 참여예산사업을 통해 공원 분야에만 한 해 평균 470건의 제안사업이 접수되었는데, 이는 복지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로, 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참여예산제도를 통해 공원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행위는 공원 조성․운영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에 비해서는 간접적이지만, 계획 초기 단계에서의 자발적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시민참여 방식과는 구별된다. 그러나 공원 분야 사업은 비용이 크거나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전체 제안의 40-50%가 걸러지는 분야이기도 하다(박민규와 김대진, 2022). 또한 참여예산제도에 대한 인식이 아직 미흡하고, 예산 편성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의 범위가 좁아 대표성과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예산 과정상의 절차적 제약으로 사업 제안 범위가 제한적이며, 지역 내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를 논의할 수 있는 지역위원회나 예산 집행에 대한 평가․환류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점도 제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이장욱과 서정섭, 2018; 박진영과 금재덕, 2022).
이처럼 참여예산제도는 기존의 시민참여 방식과 차별화되지만, 여전히 많은 제약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공원 분야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많은 사업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참여예산제도를 통해 공원 분야에 제안하는 사업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행정의 기준과 절차를 통해 어떻게 수용되고 있을까? 참여예산을 통해 제안된 사업내용은 시민들이 공원에 기대하는 경험과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시민의 제안 내용이나, 이에 대한 행정 검토 의견까지 모두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어, 시민 의견이 조정되고 수렴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 공원녹지계획이 시민참여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상황에서, 예산 편성에 대한 시민의 직접 참여를 가능케 하는 이 제도가 계획 단계의 시민참여를 어떻게 확장하고 활성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에 본 연구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간 서울특별시 참여예산 사이트에 게시된 공원 분야 광역형 제안사업 신청서와 행정 검토 의견을 텍스트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하여, 공원에 대한 시민 요구가 참여예산제도를 통해 계획에 반영되는 과정을 탐색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공원 계획․운영의 시민참여 경로로써 참여예산제도가 가진 기능과 한계를 고찰하고, 향후 제도 개선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2. 이론적 고찰
도시공원은「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법률 제23234호)」에 따라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된 공원과 도시자연공원구역을 말하며, “도시지역에서 도시자연경관을 보호하고 시민의 건강․휴양 및 정서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치 또는 지정된” 공간이다. 법적으로는 도시공원을 용도와 기능에 따라 세분화하지만, 도시민들은 법․제도에 근거해 조성된 공식적인 공원 외에도 거주지 주변의 소공원이나 학교캠퍼스와 같은 다양한 비공식적 공원녹지를 중요한 생활 자원으로 인식한다(손상락과 이성용, 2005; 박청인, 2010).
근린공원을 포함한 생활권 공원의 이용행태를 분석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시민들은 산책, 휴식, 운동, 나들이, 자연감상, 만남과 대화, 이웃과의 교류 등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다(김윤재와 유응교, 2006; 박청인, 2010; 김유일과 김정규, 2011; 김묘정, 2014). 이는 생활권 공원이 주민들에게 건강을 증진하는 장소, 자연을 경험하는 장소, 사회적 교류가 일어나는 장소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공원이 도시민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 의식과 욕구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김용근 등(2002)은 단순한 공원 이용을 넘어 시민들의 공원관리 참여의사를 조사한 결과, 고령층, 고소득층이거나 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을수록 참여의사를 강하게 표현했다고 하였다. 박율진(2010)은 시민들이 지역사회와 환경에 대한 애착심, 여가활동,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공원관리의 주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관리 및 참여 방법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실제 참여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처럼 공원을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계획․운영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는 존재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하혜경(2020)은 대도시 공원녹지계획에서 시민참여 정책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1990년대에 비해 2000년대에는 참여 주체, 참여 제도, 참여 단계 측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평가하였다. 과거에는 행정기관의 필요에 따른 동원적이고 수동적인 참여가 중심이었다면, 점차 시민 스스로의 필요와 요구에 따른 참여로 변화하고 있으며, 공청회 외에도 다양한 참여제도 및 의사소통 창구가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박영석과 배정한(2024)은 다수의 대도시 공원녹지기본계획에 시민참여 개념이 탑재되어 있음에도, 구체적인 법령과 제도상 한계로 계획 수립 초기 단계의 의견 수렴 부족, 정보 제공 미흡, 시민 의견 반영에 대한 환류 부족 등 실제 시민참여는 원론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한편, 참여예산제도는 계획단계에서 시민이 직접 사업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예산 조달까지 법․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시민참여 제도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일단 사업이 제안된 이후에는 행정 검토 등 여러 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시민의 참여는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본 연구는 공원 정책과 관련한 시민참여 경로로서 기존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참여예산제도 사례를 분석하여, 시민들의 구체적인 요구가 어떻게 정책에 반영되는지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참여예산제도는 기존 시민참여 제도의 범위를 넘어,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과정에 시민참여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지방재정활동의 민주성과 투명성, 그리고 효율성을 확보하려는 제도이다. 참여예산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브라질은 정치권력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는 후견주의(Clientalism) 정치문화가 팽배했다. 25년간의 군부독재를 마감하고 선거를 통해 선출된 노동자당(PT)은 상향식 의사결정구조로 시민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정부 지출의 우선순위를 바꾸기 위한 제도를 고안했고, 1989년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참여예산제도를 최초 도입하게 되었다(Abers, 1998).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도는 공무원이 지역 예산에 대한 기본 정보를 대중에게 공유하고, 주민이 1년에 한 번 주민 대표자를 선출하면, 대표자들이 지역별 총회와 대의원포럼, 예산평의회를 통해 예산 투입의 우선순위를 계획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김의영 등, 2017). 마을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경우, 주민대표자들이 서로의 마을을 방문해 의견을 조율했다(하승우, 2006). 또한 매년 주민총회에서는 예산 집행을 모니터링하고, 총회 토론 방식과 투표 규칙 역시 주민들이 직접 구성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민들은 자기 지역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도시 전체를 놓고 예산 배분을 논의하는 ‘확대된 사고(enlarged thinking)’를 하게 되었고(Abers, 1998: 529), 지역사회 정책 형성과정에 참여하는 ‘시민’으로 성숙할 수 있었다(진명구, 2014).
최근 정치적 지형 변화로 브라질 내에서는 참여예산제도가 중단되었지만, 전 세계 수많은 도시들이 참여예산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브라질을 비롯한 많은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급진적인 민주화 과정의 일환으로 제도를 도입했다면, 유럽과 북미는 거버넌스를 바탕으로 한 주민참여 강화 정책으로 제도를 도입했다(박민규와 김대진, 2022).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는 2000년대부터 2010년대에 걸쳐 지역 민주주의 참여 제도 발전과정의 일환으로 참여예산제도를 도입하였다(Touchton et al., 2023). 그동안 국내에서 이루어진 참여예산제도 관련 선행연구는 2000년대 초반 제도 도입 정당성을 논하는 문헌연구로 시작해, 2011년 참여예산제도가 의무화된 후, 성과 요인과 효과성을 평가하는 실증 연구가 이루어졌다. 제도 도입 10년이 넘은 최근에는 지역 사례 단위의 성과와 한계,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이장욱과 서정섭, 2018; 박진영과 금재덕, 2022).
이처럼 기존의 참여예산제도에 관한 연구는 주로 행정학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공원과 같은 공간계획 영역에서 이 제도가 기존의 시민참여 제도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다룬 조경학 분야의 논의는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본 연구는 공원 계획․운영의 새로운 시민참여 경로로서 참여예산제도의 작동방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은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의 한 분야로, 기계적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비정형의 텍스트 데이터를 모델링하고 구조화함으로써 유의미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방법이다(이주경과 손용훈, 2021 재인용). 그동안 텍스트마이닝을 활용해 공원 정책 및 이용과 관련된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는 블로그 등 SNS 데이터를 활용해 공원별 방문객 인식과 이용행태를 분석한 연구(김세령 등, 2019; 우경숙과 서주환, 2020; 이주경과 손용훈, 2021; 김신성, 2023), 행정기관의 공공기록물을 활용해 공원 관련 쟁점과 정책 변화를 분석한 연구(고하정, 2020a; 심지수와 이명준, 2021) 등이 있다. 최근에는 공원 및 오픈스페이스에 관련된 민원을 분석한 연구(성정한과 이경진, 2022; 유예슬 등, 2024)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증거 기반 정책이 수립되는 가운데, 민원 데이터 분석은 시민 수요와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전반적인 사회 현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한 정책수립을 가능하게 한다(김나영 등, 2023 재인용). 성정한과 이경진(2022)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도시공원 전자민원을 대상으로 키워드 빈도, 네트워크, 응집도를 분석하여, 공원 이용, 안전, 교통에 대한 시민 관심사를 파악하였다. 옥외공간에 나타난 반려견 관련 민원을 분석한 유예슬 등(2024)은 동시출현 단어와 토픽을 분석하였고, 토픽 분석만으로는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내용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원 문서를 해석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유예슬 등(2024)은 민원 자료란, 민원인이 실제 체감하는 이슈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점과 요구사항이 명확한 점이 특징이라고 했다. 본 연구가 다루는 텍스트는 민원 데이터와 성격이 유사하며, 시민 제안과 행정 검토 의견이 모두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어 텍스트마이닝으로 분석하기에 적합하다. 나아가 민원과 같은 문제 해결 요구에서 시민 스스로 원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기 때문에 개별 공원 및 공원 전반에 관한 시민들의 인식과 이용 행태를 살펴볼 수 있어, 시민 수요를 기반으로 한 공원정책 수립과 시민참여 제도 개선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3. 연구 방법
본 연구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간 서울특별시 참여예산 홈페이지(https://yesan.seoul.go.kr)에 올라온 공원 분야 광역형 제안사업 총 1,940건의 사업내용과 서울시 검토 의견을 분석하였다1). 서울시는 참여예산제도 도입 답보상태에 있다가 민선 5기 보궐선거로 새로운 시장이 취임하면서 제도 도입 준비가 시작되어, 전국에서 가장 늦은 2012년 5월「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를 제정하였다(한국행정연구원, 2015 재인용). 하지만 제도 도입 후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예산 규모로 제도를 운영하였으며, 참여예산 홈페이지를 통해 매해 등록되는 시민들의 제안 내용을 공개하고 있어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매년 공원 분야에 올라온 연도별 제안사업 수2)는 표 1에 정리하였다. 분석에 사용한 데이터는 연구자가 직접 서울시 참여예산 홈페이지에 올라온 제안사업의 신청연도, 제목, 사업위치, 사업내용, 사업효과 및 서울시 검토 의견(적격/부적격 의견)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수집하였고, 주요 작성 항목이 비어있거나 기업이 영리목적으로 제안한 사업 등 무의미한 게시물은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2016과 2022년은 환경․공원 분야 통합, 2023년은 주택․공원 분야 통합 합계임(출처 : 서울특별시 참여예산 홈페이지 https://yesan.seoul.go.kr)
참여예산은 주민이 지역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업을 일정한 양식의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안하면, 행정 내 관련 부서가 일차적인 적합성 여부를 검토한 뒤, 참여예산의 목적에 맞지 않는 사업을 보류하거나 비슷한 내용의 사업을 통폐합하여 시민참여예산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순서로 진행된다(표 2 참조). 위원회는「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제 13조에 따라 매년 500명 이내에서 성별과 연령대별 비율을 고려해 추첨을 통해 구성하며, 시의회 및 시장이 추천한 사람(시민, 전문가, 공무원 등)을 포함한다. 위원회는 사전교육을 받고 심의에 참여하며, 회의를 통해 사업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후 공개 시민투표를 거쳐 최종 선정된 사업을 시의회에서 심의・의결하는 절차로 예산이 편성된다(https://yesan.seoul.go.kr). 이 중 행정이 일차적인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직접 제안자의 의견을 청취하거나 현장을 확인하는 절차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은 본격적인 심의에 앞서 일차적으로 사업이 선별되는 과정이므로 본 연구는 참여예산신청서와 함께 서울시 검토 의견을 분석에 활용하였다.
참여예산 제안서 접수 | > | 담당 행정부서 사업 검토 및 분류 (서울시 검토 의견) | > |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사업심의 및 1차 선정 | > | 시민투표 및 총회 승인 | > | 예산안 편성 | > | 시의회 심의․의결 |
신청서 1,940건에 담긴 텍스트는 ‘사업내용’과 ‘사업효과’ 항목에 기입된 명사를 중심으로 추출하고, 서울시 검토 의견도 각각 적격 의견과 부적격 의견으로 구분하여 명사를 중심으로 추출하였다. 이후 추출한 키워드를 대상으로 빈도분석과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반복 수행하여 고유어․유사어․불용어 사전을 작성하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의 단어로 추출되어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의질’, ‘무장애’, ‘단년도사업’ 등 단어와 서울시내 주요 지명, 행정 부처, 위원회 등 조직명을 고유어로 지정하고, ‘교목’, ‘수목’, ‘나무’ 등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는 ‘나무’로, ‘쉼터’, ‘휴게 공간’, ‘휴식 공간’은 ‘휴식공간’으로 유사어를 지정하였다. 유사어는 다른 유사어를 포괄하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반영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였다. 모든 텍스트가 ‘서울’의 ‘공원’에 관한 ‘참여예산’ 신청이므로 세 단어를 제외하였고, ‘기타’, ‘천원’, ‘만원’, ‘관련’, ‘요즘’ 등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의미 해석에 불필요한 단어를 불용어 사전에 등록하였다. 데이터 정제 결과, 신청서 1,940건에서 7,928개 단어, 적격 의견 1,131건에서 2,310개 단어, 부적격 의견 792건에서 3,075개 단어가 추출되었다.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은 문서 내에서 함께 언급된 주제어를 동시에 추출하여, 전체 문서 집합에서 주제어의 동시 발생 빈도와 연결 관계를 분석하고자 하는 기법이다. 키워드 네트워크는 단어 간 관계에 따른 개별 단어들의 상대적 위치를 정량적으로 산출할 수 있고, 특정 단어가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지에 그치지 않고, 그 단어가 다른 단어와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이수상, 2014). 본 연구가 다루는 데이터와 유사한 민원 분석 선행연구(성정한과 이경진, 2022; 유예슬 등, 2024)도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통한 단어 동시출현 빈도를 활용하여 데이터의 전반적인 맥락을 파악하였다.
본 연구는 데이터 정제 후, Netminer v4.4의 워드 네트워크 플러그인을 활용해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수행하였다. NetMiner는 한글 사용에 최적화된 패키지 소프트웨어로 데이터 전처리가 용이하고, 키워드 네트워크, 토픽모델링 등 분석 기능과 함께, 결과를 손쉽게 시각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사용하였다. 키워드 네트워크는 문장 안에서 출현 순서를 고려해 나란히 등장하는 두 개의 단어 간에 1번 이상 링크가 생성되면 추출하도록 설정하고, 동시 출현 빈도가 가장 높은 100개 단어로 의미연결망을 시각화하였다. 네트워크 맵에서 각 노드(node)의 크기는 In-Degree 값, 링크(link)의 두께는 동시 출현 빈도로 설정하여 단어 간 연결성과 중심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도록 했다. 또한 참여예산신청서, 적격 의견, 부적격 의견을 각각 구분하여 분석함으로써 시민 제안과 행정 검토 의견의 주요 맥락을 검토하였다.
이어서 제안사업에 담긴 시민들의 기대와 요구가 어떤 내용인지 상세히 살펴보고자, 신청서를 중심으로 토픽 분석을 진행하였다. 토픽모델링은 대규모 문서 집합에 잠재된 주제를 찾아내기 위한 기법으로, 다양한 알고리즘 가운데 특히 LDA(Latent Dirichlet Allocation; 잠재 디리클레 할당) 알고리즘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Blei, 2012; 이대영과 이현숙, 2021). LDA는 사전 정의된 주제 범주 없이 대규모 텍스트 자료로부터 잠재적인 주제를 도출할 수 있는 확률 기반의 비지도 학습 기법으로, 연구자의 통찰이나 이론적 근거에 의해 가설을 검증하는 확인적 자료 분석보다 원 자료에 대한 이론적 근거나 정보가 미비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탐색적 자료 분석에 적합하다(임연수, 2023). 또한 근접 단어들을 토픽으로 묶어 주제 의미부여가 어려운 LSI(Latent Semantic Indexing)나,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확률적 추론 개념을 도입한 pLSI(probabilistic Latent Semantic Indexing)와 같은 분석 알고리즘에 비해 모듈성(modularity)과 확장성(extensibility) 및 연구결과의 재생가능성이 뛰어나다(Blei, 2012; 이대영과 이현숙, 2021; 박동준 등, 2021).
본 연구는 토픽 분석에 앞서, 적정 토픽 수 선정을 위해 전체 키워드를 대상으로 클러스터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최적 클러스터 개수(Best Cut)가 26개(15.376)로 도출되었고, 그 외에도 28개(14.82), 21개(8.699), 68개(6.878), 7개(3.023) 등 다양한 클러스터 개수가 도출되었다. 토픽 개수가 20개 이상인 경우 해석의 어려움이 발생한다고 판단하여, 의미 있는 주제 구분과 실용적 해석이 가능한 수준에서 토픽 수를 7개로 설정하였다. 이후 각 토픽별 상위 키워드 및 각 토픽에 속한 문서를 검토하여 토픽별 주제를 도출하였다.
토픽별 주제를 도출한 후에는 각 토픽별로 가장 높은 연관성을 가지는 원 문서를 채택하여, 참여예산 신청 내용이 어떤 행정 검토 의견을 받고 최종 편성에 반영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토픽모델링의 주요 결과인 토픽별 단어 집합은 실제 문서와 비교하여 정보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해당 토픽에 대한 심층 해석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양혜진 등, 2021). 때문에 토픽모델링을 수행한 연구 중에는 토픽별 주제 도출에서 멈추지 않고, 토픽별 대표 분서를 해석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하거나(유예슬 등, 2024), 주요 문서 집단을 추출하여 심층적인 질적 연구로 해석을 보완하는 사례도 있다(양혜진 등, 2021).
4. 분석 결과
참여예산신청서의 키워드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설치’, ‘조성’, ‘정비’, ‘이용’ 등 단어의 중심성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신청서에 자주 등장한 제안사업의 내용이 물리적 시설 설치 및 공간 조성․정비에 관한 것임을 보여준다(그림 1 참조). 그렇다면 무엇에 관한 ‘설치’, ‘조성’, ‘정비’, ‘이용’인지, 각 단어를 타겟으로 하여 동시 출현 상위 20개 단어를 추출해 살펴보았다(표 3 참조). 우선 ‘설치’는 조명, 펜스, 화장실, CCTV, 휴식공간, 안내판, 운동시설, 화분, 먼지털이, 벤치, WIFI, 그늘막, 편의시설, 놀이시설, 계단, 쿨링포그 등과 연결성이 나타났다. ‘조성’은 산책, 산책로, 둘레길 등 탐방로와 꽃길, 거리, 녹지, 화단, 정원, 놀이터 등 단어와 연결되었다. ‘정비’는 운동시설, 계단, 나무, 위험수목 등으로, ‘이용’은 산책로, 유휴지, 휴식공간 등 장소와 노약자, 누구나, 어린이 등 주체를 지칭하는 단어와 연결되었다. 시민의 편리한 이용과 안전을 위한 시설 설치, 공원․거리․녹지의 정원․화단․꽃길 조성, 오래된 시설과 환경 정비, 다양한 공간 및 주체의 이용에 관한 요구가 참여예산신청서의 주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림 1의 키워드 네트워크 맵에는 ‘환경-개선’, ‘미관-개선’, ‘안전사고-예방’, ‘건강-증진’, ‘삶의질-향상’, ‘불편-해소’, ‘문제-해소’, ‘도시-미관-개선’, ‘범죄-예방’, ‘지역-경제-활성화-기여’ 등의 단어가 연결되어 나타났다. 이는 시민들이 사업 신청을 통해 공원에서 얻고자 하는 목표와 기대효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시 적격 검토 의견의 키워드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조성’, ‘정비’, ‘이용’, ‘시설’, ‘필요’, ‘노후’, ‘산림’, ‘운영’ 등 단어의 중심성이 높게 나타났다(그림 2 참조). 이는 참여예산신청서의 주요 내용이 시설 설치 및 공간 조성․정비에 관한 것이므로 자연스러운 결과다. 구체적으로 ‘휴식공간’, ‘WIFI’, ‘화장실’, ‘마을마당’, ‘유아숲체험원’, ‘사계절-꽃길’, ‘그물망’ 조성과 ‘노후시설’, ‘가로수보호판’, ‘등산로’, ‘산책’, ‘조명’ 등의 정비가 ‘필요’라는 단어로 연결되어, 해당 시설의 조성 및 정비 필요성이 적격 의견에 가장 반복적으로 등장한 메시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시 출현 빈도 상위 20개 단어쌍을 살펴본 결과, ‘조정-필요’, ‘정비-필요’, ‘사업비-조정’, ‘이용-편리’, ‘환경-제공’, ‘녹지-확대’, ‘안전사고-예방’, ‘시민-이용’, ‘노후시설-정비’, ‘미관-향상’ 등이 가장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민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용과 녹지 확대, 미관 향상 등 도시환경 개선이라는 목적이 적격 판단에 있어 주요한
요소임을 보여준다(표 4 참조). 또한 ‘조정-필요’, ‘사업비-조정’ 등 단어는 규모나 예산의 조정에 관한 언급이 자주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림 2의 네트워크 맵을 살펴보면, ‘대상지-규모’, ‘대상지-중복’과 ‘사업비-조정-필요’, ‘시설-조성-최소화’ 등의 단어 간 연결성이 나타나 있다.
규모나 예산의 조정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원 문서가 담긴 Excel에서 ‘조정 필요’, ‘사업비 조정’이 포함된 항목을 필터링하였더니 총 88개 사업이 추출됐다. 이 중 38개 사업(43.2%)이 도로변 꽃길 조성에 관한 건이었고, 노후 등산로 정비, 유아숲체험원 조성 사업이 각각 14개 사업(15.9%)으로 나타났다. 도로변 꽃길 조성에 대한 검토 의견은 대부분 ‘대상지가 시유지로서 사업 추진이 가능하나, 기존 사업과 중복되어 사업비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노후 등산로 정비 및 유아숲체험원 조성에 관한 검토 의견은 ‘안전사고 예방 및 숲체험 기회 확대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으나. 시설물 설치 최소화 방향에 따라 사업규모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부적격 검토 의견의 키워드 네트워크에서도 ‘조성’, ‘이용’, ‘시설’, ‘유지관리’, ‘운영’, ‘정비’, ‘필요’ 등 단어의 중심성이 높게 나타났다(그림 3 참조). 구체적으로 조성과 관련해 언급된 단어는 ‘화장실’, ‘운동시설’, ‘텃밭’, ‘가로수’, ‘무장애-숲길’, ‘벤치’, ‘반려동물-놀이터’ 등이었다. 적격 의견과 마찬가지로 ‘시민-이용’, ‘정비-필요’ 등 사업 당위성에 대한 단어쌍도 일부 등장하였으나, ‘유지관리-인력-문제’, ‘장기-검토-필요’, ‘대상지-사유지’, ‘사전-절차-이행’, ‘공원조성계획-변경’, ‘단년도사업-추진-부적격’, ‘예산-중복-우려’, ‘민원-발생-우려’, ‘미관-저해’ 등 사업
추진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는 단어 네트워크가 다양하게 나타났다.
동시 출현 빈도 상위 20개 단어쌍 중에는 ‘절차-이행’, ‘사전-절차’, ‘공원조성계획-변경’, ‘조례-의거’, ‘기본-계획’ 등이 높은 빈도로 나타나, 상위 계획 및 조례에 어긋나는 사업에 대한 부적격 판단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산-편성’, ‘예산-중복’, ‘중복-우려’ 및 ‘민원-발생’ 등도 상위권에 등장하여, ‘절차’와 ‘예산’, ‘민원’이 부적격 판단 주요 메시지임을 알 수 있었다(표 4 참조).
참여예산신청서, 적격 의견, 부적격 의견의 키워드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들이 참여예산을 통해 가장 많이 제안하는 사업의 종류는 시설 및 공간의 조성과 정비로, 하드웨어적인 요소에 집중되어 있었다. 둘째, 사업제안의 주요 목적은 안전하고 편리한 이용, 도시 환경 및 미관 개선, 시민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 등으로 나타났다. 셋째, 노후시설 정비 및 휴식공간 조성을 통한 시민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용, 녹지 확대를 통한 도시 환경 개선은 적격 판단의 근거가 된 반면, 상위계획 및 조례 불일치로 절차적 문제가 있거나, 예산 중복, 민원 발생이 우려되는 사업은 부적격 판단의 근거가 되었다. 넷째, WIFI, 조명, 꽃길, 마을마당, 가로수 보호판, 그물망은 적격 의견에 주로 등장한 반면, 운동시설, 텃밭, 가로수(수종갱신), 무장애숲길, 반려동물 놀이터는 부적격 의견에 등장했다. 즉, WIFI, 조명, 꽃길 등은 시민 이용과 도시 환경 개선 목적에 부합하는 반면, 운동시설, 텃밭, 가로수 수종갱신, 반려동물 놀이터 등은 절차적 근거나 예산 중복, 민원 발생이 우려되는 사업으로 구분될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된다. 적격, 부적격 모두에 등장한 시설은 화장실과 유아숲체험원으로, 사업 필요성은 인정되나 예산 중복 등 세부 여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토픽 분석 결과, 가장 많은 문서를 포함한 토픽은 ‘Topic-2’로 전체문서의 1/4인 25.4%를 포함하였다(표 5 참조). 이 토픽의 상위 10개 키워드는 정비, 산림, 산책, 이용, 노후, 산책로, 둘레길, 계단, 조성, 등산으로 ‘산림 내 노후시설 정비 및 안전사고 예방’을 주제로 하였다. 과밀한 이용으로 훼손된 산림형 근린공원과 도시자연공원 내 산책로를 자연친화적으로 정비하거나, 계단, 펜스, 데크 등을 교체해달라는 내용, 주택가와 산림이 연접한 경사면의 산사태 예방을 위해 노후 안전시설을 정비해달라는 내용 등이 나타났다.
두 번째로 많은 문서를 포함한 ‘Topic-4’는 나무, 식재, 조성, 꽃, 효과, 개선, 미관, 녹지, 환경, 가로수를 상위 키워드로, ‘꽃․나무 식재를 통한 도시 환경 및 미관 개선(19.5%)’ 요구를 담고 있다. 도로변, 한강/하천변, 교통섬, 마을 내 유휴지, 화단 등 공간에 꽃과 나무를 식재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으며, 일부 가로수와 관련하여서는하층 식생 보식 및 보호판 정비로 가로 경관을 개선해달라는 내용과 기존 가로수를 꽃나무로 교체해달라는 내용이 나타났다. 이 토픽은 전체 문서의 약 1/5을 포함하는 토픽으로,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녹지 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산림형 공원 못지않게 많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어서 ‘Topic-6’은 ‘어린이 및 가족 단위 숲 체험․교육과 반려동물 놀이터 운영(12.8%)’에 대한 요구로 나타났다. 어린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다양한 놀이와 모험을 통해 정서를 함양하고 전인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달라는 내용, 근교 공원을 찾는 가족단위 방문객이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달라는 내용, 반려동물 동반 방문객을 위한 반려견 놀이터 및 배변봉투함을 설치해달라는 내용 등이 주를 이루었다. 이 중 반려동물 관련 내용은 반려인만 아니라 비반려인이 제안한 것으로, 공원 이용시 반려견 목줄 미착용, 배변 방치, 산책 중 공격 행동 등으로 인한 갈등이 있으며, 그 해결 방법으로 시민들은 산책로 분리 및 비품 비치, 펫티켓 교육 등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표 5, 그림 4 참조).
‘Topic-3’은 ‘공원 진출입로 및 가로수 관련 보행 환경 개선(11.5%)’에 대한 것으로, 주로 한강 진출입로 및 근린공원 산책로의 사고 예방을 위한 야간 조명이나 CCTV 설치, 은행나무 열매로 인한 보행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가로수를 교체하거나 열매수집망을 설치해달라는 내용이 나타났다. 특히 한강과 관련해서는 자전거와 보행자간 충돌 사고에 대한 우려가 다수 나타나, 실제로 많은 갈등 사항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Topic-7’은 ‘노약자․장애인의 건강 증진을 위한 시설 설치(11.3%)’에 대한 주제로 나타났다. 해당 토픽에 포함된 문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령화 사회 노약자의 건강증진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라는 견해를 바탕으로, 근린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무장애 운동시설을 설치해달라는 요구와 장애인․노약자․임산부가 공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장애 산책로를 조성해달라는 요구 등이 나왔다.
‘Topic-1’은 ‘도심 공원 및 유휴지 내 휴식공간 조성(10.7%)’에 관한 주제로 나타났다. 유휴지, 옥상, 보호수 주변, 버스정류장 등을 활용해 미세먼지 저감 및 여름철 더위 쉼터 기능을 하는 공간을 제공해달라는 내용과 공원 부족 지역의 학교와 공터를 활용한 녹지 조성, 공원 내 부족한 휴게시설 설치를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적은 문서를 포함한 ‘Topic-5’는 ‘지역 생태․문화․치유 프로그램 활성화(8.7%)’에 관한 주제로 나타났다. 생태․문화예술공원 조성, 도시농업학교․마을원예․어르신 나들이 프로그램 운영 등 공원을 생태, 문화, 치유의 공간으로 활용해 지역 공동체와 경제를 활성화 하자는 제안이었다.
앞서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에서는 물리적 시설에 관한 요구가 신청서의 주된 내용으로 분석되었지만, 토픽 분석을 통해 문서에 내재된 주제를 도출한 결과, 보다 다양한 유형의 공원에 대한 복잡한 요구가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일상에서 여러 유형의 공원과 비공식적 녹지를 자원으로 인식하며, 산책, 운동, 휴식, 체험, 교육, 놀이, 치유 등의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또한 공원에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과 결핍을 참여예산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는데, 다만, 이를 해소하는 방식이 물리적 시설과 공간 조성에 치중된 경향을 보였다.
시민의 사업제안이 행정의 절차와 기준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각 토픽에서 가장 설명력이 높은 문서를 추출해 주요 신청 내용 및 행정 검토 내용, 최종 예산 편성 여부를 정리하였다(표 6 참조). 토픽별 대표문서 중 적격 의견을 받은 것은 ‘Topic-2’의 노후 데크길 정비와 ‘Topic-1’의 노후시설 정비였고, ‘Topic-4’의 하천변 갈대 군락지 조성은 예산 중복, ‘Topic-6’의 초보 아빠 생태 육아 프로그램은 지원 근거 부재, ‘Topic-3’의 한강 자전거도로 속도 제한은 사고 발생 우려, ‘Topic-7’의 무장애 운동기구 설치는 단년도 내 실행 불가를 이유로 부적격 의견을 받았다. 주민참여 공원 문화 프로그램 운영을 제안한 ‘Topic-5’는 조례 위반과 민원 우려, 단년도 내 실행 불가를 근거로 부적격 의견을 받았다.
추가적으로 어떤 유형의 사업이 예산 편성에 주로 반영되는지를 알아보고자 토픽별로 제안사업, 적격사업, 편성사업 수를 비교해 표 7에 정리하였다. 문서 수가 가장 많았던 ‘Topic-2’는 토픽 내 전체 사업 중 75.5%가 적격 의견을 받고, 27.6%의 사업이 최종적으로 예산에 편성되었다.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문서를 포함한 ‘Topic-4’는 토픽 내 전체 사업 중 72.6%가 적격 의견을 받고, 19.3%가 예산으로 편성되었다. 공원 진출입로 및 보행환경과 관련된 ‘Topic-3’은 59.8%가 적격 의견을 받았다. 한편, 도심 유휴지 내 휴식공간 조성을 주제로 한 ‘Topic-1’의 경우, 44.7%의 사업이 적격 의견을 받았다. 가족 단위 숲체험과 관련된 ‘Topic-6’은 41.5%, 노약자 및 장애인 건강 증진과 관련된 ‘Topic-7’은 40.9%, 생태문화 치유 프로그램과 관련된 ‘Topic-5’는 37.9%의 사업이 적격 의견을 받았다. 이들 주제의 경우 절반이 안 되는 사업이 행정 검토를 통과한 것이다(표 7 참조).
앞선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에서 노후시설 정비, 녹지 확대, 휴식공간 조성을 통한 시민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용과 도시환경 개선이 적격 의견의 주요 메시지라고 해석하였다. 토픽별 편성사업 비율에서도 산림 내 노후시설 정비를 다룬 ‘Topic-2’와 꽃․나무 식재를 통한 도시 환경 개선을 다룬 ‘Topic-4’에 속한 사업이 높은 편성 비율을 보였다. 표 6에서 살펴본 토픽별 대표문서 중에서도 ‘Topic-2’와 ‘Topic-4’에 속한 사업만이 적격 의견을 받았으며, 나머지 사업들은 예산 중복, 조례 근거 부재, 단년도 내 실행 불가, 민원 및 사고발생 우려 등 사유로 부적격 의견을 받았다. 이러한 현황은 절차상 문제와 어려움을 최소화하여 모든 부적격 사유를 벗어날 수 있는 사업이 단순 시설 정비나 식재 사업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5. 결론
본 연구는 텍스트마이닝 분석을 활용하여 공원 분야 참여예산신청서와 행정 검토 의견 텍스트를 살펴봄으로써 공원에 대한 시민의 인식과 요구가 참여예산제도를 통해 어떻게 표현되고, 행정적으로 수용되는지를 탐색적으로 살펴보았다. 분석 결과, 시민들은 공원에 도시 내 다양한 유형의 공원을 인지하고 있으며, 공원에 존재하는 결핍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참여예산제도를 활용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신청한 사업은 산림형 공원 내 노후시설 정비나 도심 녹지 확대와 같은 물리적 시설이나 공간 조성에 관한 내용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시민 제안의 상당수는 상위계획과 불일치, 단년도 실행 불가, 예산 중복, 민원 우려 등 사유로 부적격 판단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예산이 실제로 편성된 사업들은 절차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소규모 시설 정비나 식재 중심의 사업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참여예산제도는 계획단계의 시민참여로서 기존의 다른 시민참여제도와 차별성이 있지만, 시민의 정보 부족 등으로 부적격 사업 제안이 많아, 다소 원론적인 수준의 시민참여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향후 참여예산제도를 통한 시민참여 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부적격 판단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에게 상위계획과 예산편성 기준 등에 대한 사전 정보를 보다 쉽게 제공하고, 제안서 작성 단계에서 이를 안내하는 교육․상담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참여예산 홈페이지를 재편하여 관련 분야 상위계획 명칭과 주요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거나, 정기적인 오프라인 설명회와 상담 창구를 운영하는 방안 등이 고려될 수 있다.
둘째, 단순 사업 제안을 넘어 예산편성 과정의 심의성을 높이는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는 한 번 사업을 제안하고 나면, 행정 검토와 참여예산위원회 심의가 진행되면서 제안자의 참여가 단절되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안자가 제안 이후에도 행정, 전문가 및 참여예산심의위원회와 만나 사업을 조율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협력적 논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사업내용이나 대상지가 유사한 사업을 그룹화하여 대표단을 구성해 행정, 전문가, 심의위원회와 정기적인 워크숍을 통해 사업을 논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다. 앞선 분석 결과에서 사업비 조정, 규모 축소, 대상지 변경 등 다양한 검토 의견이 반복 등장하였는데, 제안자가 후속 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제안의 완성도와 정책적 수용가능성이 모두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년도 사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제도적 보완이 요구된다. 소프트웨어적인 프로그램 운영 사업이나 구조 개선이 필요한 공원 사업 등은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지만, 지역민의 참여를 통해 질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이런 사업이 지속가능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예산 과정 내의 절차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참여예산제도 내 다년도 계획 사업을 위한 별도 카테고리를 신설하여 단년도 사업과 분리 심의하거나, 평가 및 환류시스템 도입을 통해 각 연도마다 사업성과에 따라 예산이 배정될 수 있는 단계적 예산 배정 체계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참여예산제도의 본래 취지를 고려할 때, 시민이 단순히 사업을 제안하는 것을 넘어, 기획, 조정, 실행, 평가 과정까지 연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를 구축해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단순 민원 수준을 넘는 성숙한 시민참여가 이루어지고, 공원이라는 일상 공간에 대한 정책 결정 과정이 시민 중심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공원 분야 참여예산 데이터를 통해 이러한 가능성과 과제를 탐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온라인에 공개된 서면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어, 향후 시민과 공무원의 실제 참여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를 통해 현황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