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최근 이미지 생성형 AI(Generative AI)의 등장과 확산은 조경과 건축을 비롯한 건조환경 및 모든 디자인 분야에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디자이너는 텍스트로 이루어지는 프롬프트(prompt) 입력만으로 이미지, 음악, 미술, 영상 등의 다양한 형태의 문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고, 이러한 기술은 디자인 방법뿐 아니라 디자인 사고(thinking)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2022년 이후 생성형 AI는 대규모 신경망 기반의 딥러닝 모델의 성능 향상과 텍스트와 이미지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멀티모달 AI의 발전을 통해 더욱 진화하였고, 디자인 산업계에서는 AI를 활용한 콘텐츠의 생성 속도와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면서 그것의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Kaplan, 2024; Zhou and Lee, 2024).
조경 설계 분야에서도 이미지 생성형 AI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특히 조경계는 AI를 활용하여 디자인 콘셉트를 도출하거나, 평면도와 투시도를 비롯한 조경 디자인 드로잉을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윤주영과 김유선, 2024; 장유리, 2024). 그런데, 조경의 역사에서 새로운 드로잉 매체(media)가 등장했을 때 그것의 장점뿐 아니라 비판적 담론도 형성되어 왔다(이명준, 2018). 대표적으로, 1990년대 이래로 포토샵(Photoshop) 등의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사실주의적 묘사 방식은 픽처레스크(picturesque)적 이미지를 양산하고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결여된 산물로 비판되기도 하였다(Kullmann, 2014; Lee and Pae, 2018; Herrington and Zielnicki, 2019). 조경 드로잉은 간단한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핵심적인 디자인 정보를 시각화한 다이어그램, 이외에도 평면도, 단면도, 투시도에 이르는 투사(projection) 드로잉 등의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이를 통해 디자이너는 단순한 형상의 묘사를 넘어 공간 구성의 논리, 생태적 기능성 그리고 독창적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그러나 이미지 생성형 AI는 기존의 드로잉 행위를 단순한 텍스트 형태의 프롬프트 입력으로 대체하면서, 조경 디자이너가 창작 행위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비판적으로 재고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에 대한 시론적 접근으로, 이 연구는 이미지 생성형 AI와 관련한 근래의 미학적 담론을 검토하고, AI 조경 드로잉의 과정과 결과물에 나타나는 미학적 특징과 내재된 쟁점을 비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근래에 개발되어 상용화되고 있는 이미지 생성형 AI에 관한 연구는 디자인 분야 전반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수행되고 있다. 첫째, 디자인 인문학과 관련하여 창의성과 관련한 철학적․미학적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김민규와 박재완, 2024; 조병철과 방준성, 2024; Paananen et al., 2024). 이러한 연구는 생성형 AI로 생성된 결과물의 창의성과 예술성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디자인 실무에서 생성형 AI 활용과 관련한 연구가 있다(Yan et al., 2022; 류준상 등, 2024). 패션과 브랜드 로고 디자인을 비롯한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생성형 AI를 실무에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가 발견된다.
건축과 조경 설계와 같은 건조 환경 분야에서도 AI와 관련한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건축 분야에서는 건축 설계 과정에서 생성형 AI의 활용성을 평가하거나, 스케치부터 렌더링 등 다양한 설계 과정에서 AI를 적용하고 있다(Jaruga-Rozdolska, 2022; 최수형 등, 2023; 허신재와 조택연, 2023; Rane et al., 2023; 신동윤, 2024; 이동원, 2024). 펀베르그와 체임벌린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조경 분야에서 AI에 관한 연구는 1978년에 자연 자원을 정량적으로 데이터화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2019년 이후 관련 기술의 발전과 함께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Frenberg and Chamberlain, 2023). 구체적으로, 데이터 기반 학습 기술인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언어 이해형 기술인 자연어 처리(NLP)는 조경 계획이나 조경 관리 분야와 관련하여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이미지 생성형 AI 기술은 조경 설계와 관련하여 빈번히 논의되고 있다(Xing and Gan, 2025). 생성형 AI의 핵심 기능인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텍스트 투 이미지(Text to Image)’,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변환하는 ‘이미지 투 이미지(Image to Image)’가 조경 설계 드로잉 작업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국내 조경 분야에서도 이미지 생성형 AI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윤주영과 김유선, 2024; 이채린, 2024; 성진욱과 이유미 2025). 조경 설계 과정에서 특정 작업을 AI로 대체하려는 연구로서, 손 스케치를 AI 기술을 활용해 도면화하거나 도면의 채색에 AI를 활용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국내 연구는 이미지 생성형 AI를 조경 설계에서 손쉽고 빠르게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적 역할에 한정하여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 연구는 이미지 생성형 AI를 조경 디자인의 도구로 다룬다는 점에서 선행 연구와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기존 연구가 도구적 효율성에 주목했다면, 이 연구는 이미지 생성형 AI와 관련한 전반적인 미학적 담론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경 설계에서의 AI 도구의 활용을 비판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지닌다. 나아가 이미지 생성형 AI의 도구적 효율성을 넘어 창의성과 관련한 미학적 쟁점을 중점적으로 탐구하면서 AI 조경 드로잉의 특성과 AI 시대 조경 디자이너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자 한다.
먼저, 관련 이론의 검토를 수행하여 이미지 생성형 AI를 둘러싼 미학적 담론을 개관하였다(2장). 근래 조경 설계에서 AI는 이미지 생성뿐 아니라 기후와 지형 등 데이터 분석에도 사용되고 있지만, 이 연구는 대중이 비교적 쉽게 접근 가능하여 조경 설계 분야에서도 빈번히 다뤄지고 있는 이미지 생성형 AI로 범위를 한정하여 관련 논의를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미술, 건축 등의 다양한 예술 분야와 관련한 미학을 탐구하고, 뉴 미디어와 소프트웨어 미학의 개척자로 여겨지는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의 대표 문헌을 중점으로 검토하였다. 구체적으로, 그의 초기 저서로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예술의 미학적 논저인 ┏The Language of New Media(2002)ᒧ, 디지털 웹서비스와 그래픽 소프트웨어 등에 관한 심층적 미학적 논의인 ⌜Software Takes Command(2013)ᒧ 그리고 미학자 엠마누엘레 아리엘리(Emanuele Arielli)와 함께한 온라인 연재 저술로, AI 미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근작 ⌜Artificial Aesthetics: Generative AI, Art and Visual Media(2024)ᒧ에서 조경 그래픽에 시사점을 주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이미지 생성형 AI를 활용한 조경 드로잉의 기본 원리를 검토하였다(3장). 먼저 AI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를 분석하였다. 인터페이스는 디자인 경험과 과정을 만들어내는 AI 소프트웨어의 장치로서 디지털 매체 미학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 두 가지를 선정하여 기존의 디지털 드로잉에서 활용한 소프트웨어인 포토샵과 비교하였다. 둘째, AI를 활용한 조경 설계 작업 과정을 검토하였다. 매체가 지닌 새로운 기능과 미학적 특징이 조경 설계 과정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분석하고, 기존의 AI를 활용하지 않는 설계 과정과 비교하여 AI 조경 드로잉의 특수성을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앞서 개진한 이론적 내용을 바탕으로 이미지 생성형 AI 조경 드로잉의 미학적 쟁점을 도출하고 비판적으로 논의하였다(4장). 첫째, 이미지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조경 투시도를 생성하고 이것의 과정과 결과물을 미학적으로 논의하였다. 둘째, 생성형 AI와 기존의 드로잉 소프트웨어인 포토샵의 투시도 제작 과정을 비교하면서 AI 소프트웨어로 생성된 결과물의 창의성과 관련한 미학적 논의를 개진하였다. 셋째, 생성형 AI 조경 드로잉이 지향하는 미학적 스타일, 그리고 생성된 이미지 결과물이 조경 드로잉으로서 지니는 한계를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의 조경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였다.
2. 이미지 생성형 AI의 이론적 고찰
이미지 생성형 AI 조경 드로잉의 미학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관련 매체 미학 이론을 개관할 필요가 있다. 레프 마노비치는 뉴 미디어 미학의 선구자이자 최근 AI 미학을 다루고 있는 주요 이론가라는 점에서 조경 설계의 이미지 생성형 AI 활용과 미학을 검토하는 데에도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는 ⌜The Language of New Media(2002)ᒧ에서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인터페이스, 웹 등의 뉴 미디어의 미학적 특성에 대해 검토하였고, 그러한 논의는 ⌜Software Takes Command(2013)ᒧ에서 드로잉 매체, 즉 소프트웨어를 보다 중점으로 다루었으며, 최근 미학자 엠마누엘레 아리엘리와 함께 저술한 ⌜Artificial Aesthetics: Generative AI, Art and Visual Media(2024)ᒧ에서 AI 미학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마노비치는 그의 저서 ⌜Software Takes Command(2013)ᒧ에서 디지털 드로잉 미디어의 도구를 분류하며 “새로운 미디어 효과(new media effect)” 이론을 주장하였다. 마노비치는 포토샵 소프트웨어의 도구를 ‘이전 미디어의 기능을 시뮬레이션하는 것’과 ‘이전에는 없던 새롭게 발견되는 기능’으로 나누었다. 전자의 예로, 브러쉬, 펜과 같은 도구는 이전 미디어인 물리적 회화 도구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기능하지만, 다양한 이미지 효과를 주는 필터(filter)의 대부분은 이전 미디어와 뚜렷이 대응하는 것이 없는 새로운 기능들로 구성된다. 마노비치는 새로운 미디어가 필터와 같은 도구를 통해 이전 미디어에서 구현할 수 없었던 기능을 제공하여 사용자(user)에게 새로운 지각과 표현의 가능성을 제공하며,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미디어 효과(new media effect)”로 명명했다(Manovich, 2013: 183).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창출하는 도구는 대체로 컴퓨터 알고리즘 계산에 따라 이미지를 변형시키면서 이전의 매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학적 특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Manovich, 2013: 177).
이미지 생성형 AI도 이전 미디어와 차별화되는 미디어 효과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미디어로 간주할 수 있다. 이미지 생성형 AI는 텍스트로 이루어진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드로잉 과정을 수행하고, AI의 내부 알고리즘을 통해 ‘그리는 행위’ 자체를 자동화한다. 이와 같은 자동화는 드로잉 과정에서 사용자의 직접적인 드로잉 행위는 생략시키고 대신 프롬프트라는 언어적 명령만으로 이미지 생성을 가능하게 하며, 이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새로운 디자인 경험을 제공한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21). 특히, 프롬프트의 설계에 따라 생성되는 이미지는 사용자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로 도출되기도 하면서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창출한다. 예를 들어, 전원적인 풍경의 정원을 얻고자 하는 사용자가 AI 프롬프트를 작성한다면, 그 프롬프트는 이전 미디어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기능을 자동화하여 이미지를 생성한다. 또한 사용자가 프롬프트 작성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거나 누락한 디자인 요소가 있더라도, AI는 이를 보완해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때 이미지의 색감과 분위기, 식재의 배치, 조형의 형태 등은 미디어가 계산한 결과에 따라 형성되며, 사용자는 의도치 않게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마노비치는 이미지 생성형 AI가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식을 ‘예측적(predictive)’이라고 설명하고 그에 따라 AI를 ‘예측적 미디어(predictive media)’라고 부른다(Manovich and Arielli, 2024: 80). 그에 따르면, 이미지 생성형 AI는 과거의 이미지 생성 방식이었던 재현(representation)의 방식과는 근본적인 미학적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이미지는 물감을 사용해 표면에 형상을 실재에 가깝게 재현하는 방식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러한 전통적 재현의 방식은 포토샵 소프트웨어의 합성 과정의 논리에서도 발견된다(Manovich, 2002: 190). 포토샵을 이용한 이미지 생성 과정에서, 합성되는 이미지 재료의 출처(source)는 각기 다르지만 레이어 팔레트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합성되면서 실재하는 대상을 재현한다. 물론, 생성형 AI도 여전히 재현적 이미지를 생성해낼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재현이 물리적인 실재나 사진, 기억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외부 대상을 참조해 이미지를 만든다면, 이미지 생성형 AI는 학습된 신경망 내부의 방대한 데이터 통계를 참조하여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점에서 예측하는 방식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29). 다시 말해, 예측적 미디어인 생성형 AI는 직접적으로 재현의 논리를 따르지는 않지만 재현의 효과를 가진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마노비치는 이미지 생성형 AI가 과거 데이터를 조합하여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합성해 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예측의 논리는 학습된 수많은 시각 데이터에서 그것의 통계적 규칙을 토대로 ‘가장 그럴듯한’ 결과물을 산출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에 따라 이미지 생성형 AI는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양식(style)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는 매우 능숙하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독특하거나 희소한 스타일의 시각 표현에 대해서는 종종 왜곡된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Manovich and Arielli, 2024: 86). 또한, 마노비치는 AI의 특징의 하나로 ‘조각(fragments)화’ 현상을 설명한다. 이러한 조각의 미학은 기존의 회화나 사진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부분들이 혼재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거대한 데이터세트 안에 축적된 시각 정보(visual knowledge)들은 서로 다른 시공간과 맥락에서 생산된 것이기 때문에 AI가 이를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부분들이 혼재되어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이다(그림 1 참조). 이러한 현상은 거대한 문화 데이터베이스 학습에 기반한 AI가 창의적 결과물을 생성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36).
아리엘리(Emanuele Arielli)는 두 가지 논리를 통해 이미지 생성형 AI의 위상을 단순한 기계 도구가 아닌 ‘디자이너’로 격상한다. 하나는, AI는 인간과 달리 감정이나 특정 사회 문화적 맥락을 전제하여 학습하지 않고, 거대한 데이터를 무작위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다(Manovich and Arielli, 2024: 95). 이러한 점은 미술 평론가이자 미학자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이 주장했던 “순수한 눈(The Innocent Eye)”에 부합하는 특징이다. 러스킨은 그의 저서 ⌜The Elements of Drawingᒧ에서 진정한 예술가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눈으로 즉, 감정이나 사회 문화적 맥락 없이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Ruskin, 1857). 편견 없이 데이터를 학습해 결과를 도출하는 AI는 인간이 다루기 힘든 새로운 미적 감각을 지닌 디자이너로 격상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AI는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미적 판단과 결정 과정을 수행하기 때문이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45). AI 미학의 범위는 단순한 결과물의 미학적 해석이 아닌 이미지 생성 과정 전체, 즉 학습 데이터, 알고리즘의 작용 방식, 프롬프트 그리고 사용자가 이미지 결과물을 고르고 다듬는 방식까지 포함한다. AI는 이미지를 생성 과정에서 내부에서 통계적 판단이나 우연적인 변형 등을 수행하고, 이러한 작업은 디자이너의 미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50).
한편, 이미지 생성형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디자이너로 인식되는 데에는 인간의 심리적 요인도 작용한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55). 인간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결과를 보면 그 배후에 알 수 없는 의도나 힘이 작용했다고 치부하는 심리적 습관이 있다. 이런 습관이 이미지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결과물에 대해서도 작용하여, 마치 AI가 인간처럼 자율적인 의지를 가지고 창의적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 생성형 AI의 우연적 결과물은 알고리즘에 의한 계산 결과이다. 즉, 모델은 통계적 규칙과 학습 데이터에 따라 계산적으로 작동할 뿐이며, 인간이 이해하는 자발적 창의성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결과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날 때, 인간은 이를 신비롭게 해석하며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디자이너로 격상시킨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56). 이러한 우연적 결과는 인간 디자이너가 미처 발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창의적 아이디어를 자극할 수 있다(Arielli, 2018; Manovich and Arielli, 2024).
3. 이미지 생성형 AI 조경 드로잉의 매커니즘
인터페이스(interface)는 이미지 생성형 AI가 기존 디지털 드로잉 매체인 포토샵과 구별되는 디자인 경험을 만들어내는 대표적 요인이다. AI의 인터페이스는 디자이너와 AI가 상호작용하는 환경으로, 디자이너는 이곳에서 AI에게 지시를 내리고 결과물을 수정한다. 이러한 인터페이스는 디자인 경험을 형성하고 창의적 사고가 구현되는 미디어 공간으로 기능한다(Manovich, 2013: 129). 대표적인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들과 기존의 포토샵 인터페이스를 비교하면 AI 드로잉의 특수성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OpenAI에서 2021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달리(DALL․E)의 인터페이스는 포토샵과 다르게 도구(tools)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콘이 없다. 대신 프롬프트 입력창과 이미지 생성 결과창만 존재한다(https://openai.com/index/dall-e-3). 디자이너는 프롬프트 입력창에 자신이 생성하고자 하는 대상, 표현 방식 및 이미지 효과를 텍스트로 입력한다. 다시 말해, 포토샵은 도구를 이용하여 마치 디자이너가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듯한 물리적 차원의 디자인 경험을 시뮬레이션하지만, 달리는 그러한 그림 그리기의 경험을 요구하기보다 포털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해 결과를 얻어내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유도한다. 처음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이후에는 마치 AI와 텍스트 문자를 주고받듯이 드로잉 과정이 진행된다. 또한, 달리는 추가적인 수정과 스타일을 스스로 제안하기도 하면서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조경 디자이너는 디자인 초기 단계에서 다양한 콘셉트 아이디어를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달리가 생성한 이미지는 여러 레이어를 하나로 병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생성된 결과 이미지를 세부적으로 수정하기 어렵고, 추후 편집을 위한 도구 자체가 미비하여 구체적인 디자인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둘째, 미드저니(Midjourney)에서 개발하여 2022년부터 서비스하기 시작한 미드저니의 인터페이스의 경우, 달리와 마찬가지로 별도의 그리기와 관련한 도구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미드저니는 채팅 기반의 플랫폼 디스코드(Discord)에 서버를 두고 시작되었기 때문에 온라인 채팅 형식과 같은 이미지 생성 결과창과 프롬프트 입력창으로 구성된다(https://www.midjourney.com/home). 이러한 점은 달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미드저니의 차별점은 프롬프트 끝에 추가적인 명령어를 입력할 수 있도록 하여 디자이너의 의도를 포함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s 숫자(값)’ 스타일라이즈(stylize) 명령어는 결과물의 현실성 정도를 조절하는 명령어로서 프롬프트 끝에 ‘--s’ 와 0~1,000 사이의 숫자를 입력하여 디자이너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다. 0~100 정도의 낮은 값은 사실적인 공원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적합하다(그림 2 참조). 또한, 렌더링 정밀도를 조절하는 ‘--q 숫자(값)’ 퀄리티(quality) 명령어를 사용하면 식재와 조형물과 같은 특정 대상의 렌더링 품질을 높일 수 있다. ‘--q 1’의 경우 기본적인 품질 정도이고 ‘--q 5’로 입력할 경우 매우 세밀한 렌더링의 품질을 보장한다. 또한, Discord라는 커뮤니티 기반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이용자의 프롬프트, 작업 과정, 결과물이 공유될 수 있어서 디자이너가 원하는 이미지를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한편으로, 다른 플랫폼에 비해 프롬프트에 따른 결과 이미지의 차이가 커서 프롬프트 작성 실력이 중요하다(Jaruga-Rozdolska, 2022: 97).
이미지 생성형 AI의 디자인 방식은 조경 설계 과정에서 기존의 설계 과정의 일부 작업을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김성민과 이유미, 2023: 43). 일반적으로 조경 설계 과정은 조사 및 분석, 기본 구상, 기본 설계 그리고 실시 설계로 진행되고, 이 중 설계가의 디자인 아이디어 구상과 발전이 집중되는 기본 구상과 기본 설계 단계에 AI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표 1 참조). 첫째, 기본 구상 단계에서는 달리나 미드저니의 ‘텍스트 투 이미지’ 기능이 활용될 수 있다(윤주영과 김유선, 2024: 98). 통상 기본 구상 단계는 대상지 분석 내용을 토대로 조경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디자인 콘셉트를 제시하여 디자인 방향성을 도출한다. 이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텍스트 투 이미지’ 기능을 이용해 특정 키워드를 포함하는 다양한 분위기의 콘셉트 이미지를 도출하여 참고할 수 있다. AI를 활용하면 수십 장에 이르는 다양한 이미지를 쉽게 얻어낼 수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다(이하나, 2025; Ye et al., 2025). ‘텍스트 투 이미지’는 디자이너가 손으로 빠르게 그리기 힘든 구체적 묘사나 추상적 표현을 즉각적으로 시각화하고 나아가 여러 콘셉트의 변용을 가능하게 하면서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스케치나 다이어그램을 통해 진행되던 아이디어 구상이 디자이너의 경험과 기억과 창의성에 기반해 이미지를 구현하는 재현적(representational) 논리로 만들어진다면, AI 도구를 활용한 아이디어 구상은 디자이너가 입력한 프롬프트에 따라 AI가 기존에 학습한 방대한 데이터를 참조하여 이미지를 예측하는(predictive) 방식으로 이미지가 생성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재현적인 속성을 지닐 수도 있지만, 때로는 기존의 재현적 경관 이미지에서는 보기 힘든 낯선 부분들이 혼재되는 조각(fragments)화 현상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미학적 확장을 가져온다.
| 작업 유형 | 플랫폼 | 기능 | 미학적 원리 | 미학적 효과 |
|---|---|---|---|---|
| 아이디어 구상 | 달리, 미드저니 | 텍스트 투 이미지 |
새로운 미디어 효과 예측적 미디어 효과 |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a |
| 평면도 | 스테이블 디퓨전 | 컨트롤넷 | 아이디어 대안 생성b | |
| 크레아 에이아이 | 레이아웃 투 이미지 | |||
| 투시도 | 크레아 에이아이 | 인헨서 | 대안적 시각화c | |
| 매그니픽 에이아이 | 업스케일러, 인헨서 |
둘째, 기본 설계 단계에서는 앞선 달리와 미드저니를 포함하여 보다 다양한 AI 플랫폼이 함께 사용될 수 있다(이채린, 2024: 79). 대개 기본 설계 단계에는 기능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는(zoning) 평면도, 공간의 이용과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투시도가 제작된다. 평면도 제작에는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의 확장 기능인 ‘컨트롤넷(ControlNet)’이나 크레아 에이아이(Krea AI)의 ‘레이아웃 투 이미지(Layout to Image)’ 기능을 적용할 수 있다. 평면도는 투사(projection) 드로잉의 일종으로, 공간 구조를 정밀하게 반영하기 위해 지속적인 수정이 요구된다. 이때, ‘컨트롤넷’ 기능은 평면도의 특정 선을 통제한 상태로 이미지를 변형할 수 있어, 디자이너는 통제된 선을 제외한 부분에 대해 이미지를 생성하고 이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Layout-to-Image’ 또한 유사한 기능을 하며 공간의 배치, 동선, 기능 구성과 관련한 디자인 대안을 얻을 수 있다. 투시도는 사실적인 묘사에 기반한 재현적 드로잉으로 조경 디자인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유리한 드로잉 유형이다. 투시도 제작은 앞서 설명한 스테이블 디퓨전 등을 이용한 프롬프트 입력으로 진행될 수도 있으며, 이외에도 기존의 대표적 렌더링 툴인 루미온(Lumion)을 기반으로 하되 크레아 에이아이와 매그니픽 에이아이(Magnific AI)를 보완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활용은 기존 루미온 렌더링에서 종종 나타나는 인위적 질감을 개선할 수 있다. 또한, 크레아 에이아이의 ‘인헨서(Enhancer)’ 기능은 해상도를 높이고 세부 묘사를 정교하게 다듬어 재질감을 자연스럽게 조정(https://www.krea.ai)하여 반복적 식재 표현을 보다 다양하고 사실적으로 변환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매그니픽 에이아이의 ‘업스케일러(Upscaler)’, ‘인헨서(Enhance)’ 기능 또한 이와 유사한 개선 효과를 제공한다(https://magnific.ai). 기존의 드로잉 툴인 캐드(AutoCAD),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활용한 기본 설계 방식에서는 결과물의 표현력과 완성도가 디자이너의 툴을 다루는 능력과 의도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다르게 AI를 활용한 설계 방식에서, AI의 매커니즘은 디자이너의 의도를 넘어서는 다양한 표현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사실적인 묘사를 보다 강화할 수 있고, 동시에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대안적 이미지를 생성할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다.
4. 이미지 생성형 AI 조경 드로잉의 쟁점
AI 조경 드로잉은 새로운 미학적 특징을 지닌 이미지 생성을 통해 대안적 경관 미학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조경 이론가들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로 생성되는 재현적 조경 드로잉이 목가적 풍경에 기반한 픽처레스크(picturesque) 미학을 천편일률적으로 따른다고 비판적 시선을 제기한 바 있다(Kullmann, 2014; Lee and Pae, 2018; Herrington and Zielnicki, 2019). AI 드로잉은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통해 그러한 목가적 풍경 이상을 탈피해 새로운 경관 미학을 실험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가능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목가적인 풍경에 기반한 AI 조경 투시도(그림 3a 참조)는 기존의 디지털 드로잉 도구인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루미온 등의 렌더링 도구를 AI로 대체했을 뿐 경관 미학적으로 변화는 확인하기 힘들다1). 즉, 이러한 이미지 생성 방식은 AI 도구를 효율성에 기반한 기계적 도구로 다루고 있다.
이와 달리, 새로운 미디어 미학 효과를 창출한 이미지(그림 3b–3d 참조)는 기존의 디지털 도구를 이용한 드로잉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경관 미학을 제공한다2). 예컨대, 그림 3b에서 기존의 목가적 풍경에 기반한 경관 이미지는 바로크 회화 스타일이 적용되면서 새로운 미학적 특징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과정은 이전 미디어에서 ‘바로크 회화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는 도구가 부재하고 디자이너의 예측 범위를 넘어선 결과가 생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AI의 새로운 미디어 효과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생성된 이미지에는 극적인 분위기와 명암 대비를 통한 서사적 감성이 더해지고, 이러한 시각적 효과는 디자이너에게 경관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여 창의적 디자인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이때 AI 도구는 단순한 기계적 도구를 넘어, 디자인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매개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한편으로, 그러한 새로운 미학을 실험하는 AI 조경 드로잉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현실 공간을 다루는 조경 디자인에서 과도한 분위기 왜곡은 조경 드로잉의 본연의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실험적 이미지는 디자인 콘셉트를 설명하거나 아이디어 구상 단계에서 디자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이미지 생성형 AI를 활용한 조경 드로잉은 매체의 전환에 따라 창의성의 주체가 변화하면서 창의성의 귀속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Gracia, 2024). 이미지 생성형 AI는 독자적인 학습과 생성 과정을 통해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발현하며, 기존 매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창의적 결과를 산출한다. 한편, 조경 디자이너가 이미지 생성형 AI를 이용해 드로잉을 제작할 때, 실제 드로잉 행위의 대부분은 AI가 수행하고 디자이너의 역할은 프롬프트 작성에 한정된다. 디자이너는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생성된 결과물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므로 작업 과정이 비약적으로 축약된다. 매체의 발전으로 많은 제작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디자이너의 의도는 창조 과정에서 점차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Manovich, 2002: 75).
기존에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드로잉 제작은 디자이너의 직접적인 개입과 행위가 반영된 창의적 과정으로 이해된다. 포토샵을 비롯한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기본적인 이미지 제작 및 편집 원리는 각각 분리된 이미지를 레이어 단위로 병합하여 한 장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분리 및 재조합의 논리에 기반한다(Manovich, 2013: 184). 디자이너는 먼저 그려낼 풍경을 상상하고, 그에 필요한 시각 요소들을 찾아 선택하고 배치하며, 자신의 디자인 의도에 따라 그리기 및 필터 효과를 부여하거나 이미지를 삭제 혹은 붙여 넣으면서 수정을 거듭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모든 선택과 그리기 도구, 효과 적용을 위한 클릭은 디자이너의 판단과 의도를 반영한다. 필터나 수치 값을 입력해 컴퓨터의 자동화 과정을 통해 그리기 효과를 구현하는 경우라도, 모든 과정은 디자이너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과정은 온전히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구체적 행위를 통해 이미지 구성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달리 등 이미지 생성형 AI를 이용한 조경 드로잉 과정은 디자이너의 창의적 개입이 최소화된 상태로 진행된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개별 요소의 이미지를 수집하거나 직접 배치할 필요가 없다. 단지 디자이너가 상상한 경관을 묘사하기 위해 텍스트로 된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AI는 그러한 디자이너의 지시에 따라 디자이너 대신 드로잉을 생성한다. 이때 각 요소의 선택, 분리, 결합, 배치, 색채와 질감 조정 등 모두는 AI의 계산 과정에서 이루어지며, 디자이너는 완성된 하나의 이미지를 얻게 된다. 상기한 기존의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드로잉 제작에서의 여러 그리기 도구 사용 행위 없이 단지 텍스트의 입력으로 이미지를 그려낸다. 추가적인 수정 또한 프롬프트 입력을 통해 수행된다. 즉, 디자이너의 의도는 텍스트로 전달될 뿐이며, 그 해석과 시각적 구현은 AI가 독자적으로 수행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드로잉의 창의성은 디자이너보다는 AI에 귀속될 여지가 있으며, 이로 인해 창의성의 주체와 저작권의 귀속에 관한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Sobel, 2024). 따라서 AI 도구를 활용하더라도,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작업의 과정과 결과에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실무적 방안과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필요하다. 이미 지난해 유럽 의회(European Parliament)는 AI를 사용한 창작물은 창작자의 권리가 보장되기 어려움을 문제로 제기하며 ‘인공지능 규제법(AI Act)’ 초안을 발의하였고, 여기서 창작자는 AI 사용에 대한 표기를 명확히 밝히는 것으로 일시적인 해답을 내놓았다(Manera, 2024: 136). 디자이너가 AI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방법의 하나로 AI 도구에 미드저니의 파라미터 기능이나 스테이블 디퓨전의 컨트롤넷 기능을 통해 이미지에 디자이너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 생성형 AI의 본질적 속성이 컴퓨터화된 자동화 작업을 통해 디자이너 대신 기계 장치가 이미지 생성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창의성의 귀속 문제는 계속해서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AI를 활용한 조경 드로잉 결과물에는 두 가지 주요한 우려가 제기된다. 첫째, 드로잉 결과물에 맥락(context)이 부재할 가능성이 있다. AI가 학습 과정에서 의미나 사회․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Manovich and Arielli, 2024: 104). 조경 디자인은 단순한 시각적 외양의 재현을 넘어, 계절과 식생과 같은 자연 생태적 요소, 장소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맥락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어 진행된다. 그러나 AI는 이러한 맥락을 해석하지 않고, 오로지 데이터에 기반해 ‘가장 그럴듯한’ 결과를 예측해 이미지를 생성한다(Manovich and Arielli, 2024: 80). 예컨대, 전통성을 강조해야 하는 국내 도시공원을 설계하는 경우, AI는 지형이나 식생 조건, 전통성에 대한 맥락과 무관하게 외양만 그럴듯한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다. 결과물이 시각적 질이 높아 보일지라도, 실제 조경 실무 현장에서는 현실적 맥락에 부적절한 디자인으로 여겨질 우려가 있다(Rekittke and Hayles, 2025).
둘째, 기존의 경관 미학 스타일을 반영한 이미지가 재생산될 가능성이 있다. 드로잉 매체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이전 매체의 전형적 양식이 양산되는 것이다. 이미지 생성형 AI는 방대한 기존에 존재하는 시각 자료를 학습하고 그러한 데이터를 기초로 가장 그럴듯한 결과를 산출하기 때문에(Manovich and Arielli, 2024: 80), 새로운 프롬프트 설계가 동반되지 않으면 완전히 새로운 양식보다는 사용자의 기대에 부합하는 익숙한 형식을 제시한다. 그 결과, 조경 디자인에서 빈번히 이용되는 전형적 디자인 양식은 능숙하게 재현되고, 결국 기존 경관 미학이나 디자인 관습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 특히 AI가 축적된 조경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면, 조경 이론가들이 비판한 바 있는 목가적 풍경에 기반한 픽처레스크(picturesque) 미학이 반영된 사실주의적 이미지, 이러한 이념을 계승하는 생태적 경관 이미지가 AI 드로잉에도 그대로 답습될 가능성이 높다(이명준과 배정한, 2018; Herrington and Zielnicki, 2019). 나아가 AI 생성물이 또 다른 AI에 의해 반복 학습되는 소위 ‘자기순환(cannibalism)’ 현상으로 데이터와 표현 양식의 획일화를 부추길 수 있고(Manovich and Arielli, 2024: 185), 조경 드로잉도 이러한 획일화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후변화나 복잡한 도시 문제와 같은 새로운 과제에 대응해야 하는 조경 설계가 여전히 18세기 영국 풍경화식 정원과 옴스테드식 공원의 이상화된 자연관에 머문다면(Herrington and Zielnicki, 2019), 아무리 정교한 AI 모델이라 하더라도 조경 디자인은 동일한 답을 반복할 우려가 있다.
AI의 등장으로 조경 디자이너의 역할이 변화하고 새로운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이미지 생성형 AI는 디자이너가 주체가 되는 디자인 과정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며, 디자이너의 전통적인 ‘그리기’ 행위를 생략시키고 있다. 스케치부터 수채화 효과, 투시도, 특정 작가의 화풍 재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표현 기법을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AI는 더 이상 단순한 디자이너의 보조 도구가 아니라 디자이너의 위치에 근접한 보조 디자이너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를 활용한 조경 설계가 점차 보편화된다면, 디자이너는 AI가 수행하는 드로잉 과정을 지도하는 ‘감독자(director)’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즉, 디자이너는 직접 그리는 행위보다는, 설계의 콘셉트와 방향을 총괄하고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조정하는 창의적 감독자로서의 역할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AI 드로잉 시대의 감독자로서 조경 디자이너에게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전문 역량이 요구된다. 첫째, 프롬프트 설계 능력이다. 감독자는 설계 콘셉트와 목적을 텍스트 형태로 구체화하여 AI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생성된 결과를 검토하고 수정하여 최종 이미지 결과물을 완성한다. 이를 위해 자연적 요소, 공간의 분위기, 이용자의 경험 등을 자연어로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둘째, 매체의 기능을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디자이너는 각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능의 특성과 한계를 파악하고, 드로잉 목적에 맞게 적절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식재나 포장 시각화에는 스테이블 디퓨전의 컨트롤넷을, 투시도의 부분 수정에는 어도비의 파이어 플라이(Adobe Firefly)를 활용하는 식으로 매체별 전략을 세워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활용은 AI를 사용하는 디자인 과정이 지닌 한계점을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다. 예컨대, 디자이너는 컨트롤넷을 통해 특정 스타일이나 형태를 정교하게 수정할 수 있다. 생태 조건 및 공간 구성에 대한 정보를 입력하면서 앞서 한계로 논의했던 맥락 결여 문제를 일부 보완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디자인 의도를 반영해 모델을 직접 학습시키는 알고리즘 디렉팅(algorithm directing) 역시 새로운 전문 역량으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AI 도구는 계속해서 빠르게 진화하고 있어, 디자이너는 새로운 AI 도구와 기능의 동향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미 어도비의 파이어 플라이에는 구글의 나노 바나나(Nano Banana) 이미지 모델이 탑재되어 사용자에게 질 좋은 생성 결과물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고, 렌더링 매체인 디 파이브(D5)도 매번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AI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셋째, 앞서 언급한 바 있는 AI 드로잉의 맥락 결여 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AI가 생성한 이미지가 실제 공간의 생태, 문화, 사회적 조건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검토 및 평가하고 이미지를 편집해가는 역량이 요구된다. 디자이너가 설계 평가 요소와 항목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결과물을 검토하여 보완해가는 과정을 통해 현실에 부합하는 최적의 기능적 디자인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경 미학의 창의적 확장을 위한 탐구가 요청된다. AI가 제공하는 디자인 기능과 인터페이스는 AI로 생성된 조경 이미지의 미적 특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AI 조경 디자인이 편의와 작업 효율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어 발전해가는 방향은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획일화된 경관 미학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음을 비판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AI가 제공하는 기능을 단순히 효율적 도구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체가 지닌 새로운 미학적 잠재력을 활용하여 새로운 경관의 아름다움을 탐색해야 한다. AI가 드로잉 행위를 대체하더라도, 디자이너는 여전히 설계의 기본 방향과 과정, 결과를 조율해가는 창의적 주체로서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
5. 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연구는 최근 새로운 드로잉 매체로 부상하고 있는 이미지 생성형 AI와 관련한 미학적 담론을 검토하고, AI 조경 드로잉의 과정과 결과물에 나타나는 미학적 특징과 내재된 쟁점을 비판적으로 논의하였다. 매체 미학자 레프 마노비치와 엠마누엘레 아리엘리에 따르면, 이미지 생성형 AI는 이전 미디어에서 시각화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구현하고, 예측적 미디어로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생성할 수 있으며, 드로잉 과정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고 독자적인 미적 특질을 구현하면서 단순한 기계가 아닌 ‘디자이너’로 격상되고 있다. 달리와 미드저니를 비롯한 다양한 AI 플랫폼은 프롬프트 기반의 텍스트 입력이라는 독특한 미학적 매커니즘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디어 효과를 창출하며, 조경 설계의 전 과정에 활용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AI를 활용한 조경 드로잉 및 디자인 과정과 결과에는 다음과 같은 이론적․실무적 쟁점이 발견되었다. 첫째, AI 조경 드로잉은 AI의 새로운 미디어 효과에 따라 목가적 풍경에 기반한 전통적 경관 미학을 탈피하여 대안적 경관 미학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디자인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매개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둘째, AI 조경 드로잉은 디자이너가 텍스트 기반의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드로잉 생성 과정은 AI가 자율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드로잉의 창의성 귀속과 저작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셋째, AI 조경 드로잉은 실제 장소의 환경, 문화, 역사적 맥락과 무관한 이미지를 생성하여 조경 실무에서는 부적절한 디자인으로 여겨질 우려가 있으며, AI가 기존의 익숙한 경관 미학 이미지를 학습하여 이와 유사한 획일화된 경관 미학을 재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AI는 새로운 미학적 효과를 통해 대안적 경관 미학을 실험하는 창의적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기존의 고착된 경관 미학을 재생산하는 단순한 기계적 도구로 작동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의 조경 디자이너는 전통적인 그리기 행위가 생략되고 프롬프트 설계가 중요해짐에 따라, AI가 수행하는 드로잉 과정을 총괄하는 감독자의 역할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다양한 AI 기능을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AI 리터러시(literacy)와 AI가 생성한 이미지의 맥락 결여 문제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보완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이 연구는 이미지 생성형 AI의 이론적 담론을 검토하고 조경 드로잉의 범위에서 그 특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한계를 지닌다. 첫째, 생성형 AI가 산출한 결과물의 실제 활용 가능성이나 설계 적용 후 시공, 관리 과정에 대한 사후 평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AI 이미지가 자연 환경, 문화, 역사, 장소성과 같은 조경 고유의 조건을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반영하는지를 다룬 실증적 사례 분석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둘째, 이 연구는 모든 이미지 생성형 AI 플랫폼이나 모델을 포괄적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상용화된 일부 플랫폼을 대상으로 프롬프트 설계에 대한 비교적 정형화된 접근 방식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또한, 다양한 조경 드로잉 유형 중 투시도에 분석의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이 논의를 전체 조경 드로잉 영역으로 확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셋째, 이 연구에서 다룬 AI 플랫폼과 기능은 특정 시점의 기술 수준에 한정되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AI 기술의 발전과 알고리즘의 고도화에 따라, 이 연구의 논의 일부는 향후 수정과 보완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한계들은 후속 연구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조경 설계라는 특수한 분야 안에서 이미지 생성형 AI의 미학적 가능성과 내재된 쟁점을 비판적으로 탐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단순히 AI 기술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AI가 조경 디자인의 미학적 기반과 실천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적으로 고찰하였다. 향후 연구에서는 조경 프로젝트의 전 과정에 이미지 생성형 AI를 직접 적용해보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 그 효과와 한계를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조경 디자인에서 프롬프트 작성의 체계화, 조경 분야에 특화된 학습 데이터 구축, 디자이너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설계에 대한 기술적 연구 역시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조경 디자이너가 생성형 AI 시대에 창의성과 비판적 역량을 유지하며 작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