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우리나라 국토의 64% 이상이 산지로 그 지형을 따라 물이 모이고, 계류가 모여 하천을 이룬다. 하천은 지형을 따라 산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강으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우리나라 하천에 대한 기준은 하천법에 의해 관리되는 국가하천과 지방하천, 그 외에 별도로 지자체의 지정에 따라 소하천정비법에 의해 관리되는 소하천으로 구분된다. 암거배수의 설치로 소하천은 대부분 복개되거나 매립되어 주거지와 도로로 바뀌어 그 원형을 찾기가 힘들고, 이·치수를 목적으로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은 호안 블록과 댐 건설, 수중보의 설치로 직강화되고 수심이 깊어져 그 본래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서울의 한강은 국가하천으로 길이 41.5km로 전체 한강 수계 연장길이의 10%가량을 차지한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경기도 양수리에서 만나 비로소 한강이 되며, 한강은 팔당을 지나 미사리, 서울, 김포를 지나 서해 바다로 나간다. 서울의 한강은 조선시대에는 물류를 위한 수로로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상수원으로 주요한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서울의 한강은 오염되어 상수원으로 기능을 잃어 가기 시작했고, 1980년대 이후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는 위락의 장소로 변화되었다.
서울과 서울 부근의 한강은 토목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재는 자연상태의 한강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행주대교에서 팔당댐에 이르는 한강구간이 현재의 콘크리트 인공 수로와 같이 변화한 것은 1967–1970년 사이에 ‘한강개발사업’으로 한강의 모래를 준설하고, 강둑을 도로로 조성하면서 섬을 폭파하고 직강화화면서 본격화되었다. 또한 강변을 매립해 아파트를 건설하고, 각종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들이 그대로 유입되고, 자연정화 기능의 강변 습지와 모래밭이 사라져 갔다. 그 이후 1982–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은 하수처리장 건설로 한강의 수질이 일부 나아지기는 했으나 한강은 콘크리트 제방과 콘크리트 보의 인공 수로가 되어 생태계는 물론 수변경관이 훼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한강사, 1985).
훼손된 우리나라 하천의 생태적 재생을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토목 위주의 호안처리공법 및 하천의 지형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식생 도입 등 또 다른 형태의 동일한 수변경관으로 조성되고 있다. 하천의 생태적 재생을 위해서는 하천지형의 형성과정에 대한 이해와 그에 따른 다양한 미지형 공간의 특징, 인공적인 개발 이전의 수변공간의 원형을 찾아 본래 모습에 대한 연구의 선행이 필요하다.
인공적인 대규모 개발이전의 수변공간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는 시대적으로는 근대화 및 일제강점기 이전인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문헌자료를 활용하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문헌자료로 그 당시 실경을 표현한 진경산수화는 조선시대 문예 부흥기라 불리는 18세기에 발현된 장르로서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직접 사행하여 표현하여 한국적인 미감과 특성을 잘 드러낸 회화 사료이며, 특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 수도 한강의 수변공간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물론 진경산수화는 사진과 같이 사실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하는 간접적인 자료로 한계는 있지만 지역과 지형의 특색을 반영한 수변공간의 방향 설정을 위해서는 유용한 사료로 판단된다.
본 연구의 범위는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속 한강 수변공간 해석을 통해 대규모 개발 이전 한강의 수변경관의 특징을 찾아내어 지금의 인공화된 하천과 비교하고 지형과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생태하천으로 재생을 위한 제언에 기초자료로 제안코자 한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한강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발췌하기 위해 문헌자료 중 ‘진경산수화 겸재 정선’(최완수, 1993)에 나온 한수주유(漢水舟遊, Boat Tour of Han River)에서 한강의 수변공간이 포함된 작품을 분류하고, 그 목록을 작품명, 한강 내 현재 위치, 주요 화재로 구분하여 작성한다(표 1 참조).
‘진경산수화 겸재 정선(최완수, 1993)’에 포함된 작품 중 ‘한수주유’에 소개된 29점의 작품은 대부분이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첩’의 그림이며, 기타 화첩으로 명시되지 않은 2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한강 일대의 수변경관을 그린 그림은 총 25점의 작품으로 상기와 같다. 작품명을 통해 알 수 있는 한강을 대상으로 한 주요 화재는 자연지형으로 여울, 산, 바위, 모래밭, 벼랑, 나루터가 있으며, 인공 구조물로 분원, 서원 등 건축물과 누정, 그리고 행태로 행호, 말타기 등이 있다.;
옛 그림을 통한 하천의 수변경관요소 분석의 틀 마련을 위해 하천의 정의와 범위, 하천지형의 특징과 식생, 미지형의 사례조사를 선행하고, 수변경관의 정의와 요소를 구분하여 판단기준을 수립한다. 아울러 하천지형의 주요 구분과 화자의 위치에 따라 경관의 범위와 깊이가 달라지는 풍경화의 특징을 반영하고자 조망요소의 개념을 추가하여 겸재 정선의 한강 진경산수화를 해석하는 틀로 활용한다. 각 작품에 ‘진경산수화 겸재 정선’(최완수, 1993)의 문헌자료에 나온 작품해설을 활용하여 그림에 표시하고, 분석의 틀에 반영한다.
이를 진경산수화에 표현된 한강 수변경관의 특징으로 경관조망과 지형적, 이용적 특징으로 나누어 해석하여 한강의 대규모 개발 이전의 자연 생태하천의 원형을 고찰한다. 하천의 종적·횡적 특징, 미지형, 수변식생과 표현, 건축물과 배의 종류 및 위치, 토지이용, 사람의 행태 등으로 나누어 해석한다.
2. 한강 수변경관의 이해
하천은 크기와 관계없이 구배를 가지고 일정한 물길(河道, stream channel)을 따라 흐르는 수체(水體, water body)를 의미한다. 하천의 천(川)은 상형문자로 양안의 높은 언덕 사이를 물이 흐르는 형상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 하천법은 ‘비나 눈이 되어 공중에서 내려온 천수(天水)가 동력에 의하여 여러 가지 저항을 물리치고 낮은 곳을 향해 유하하여 호소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이 물이 흐르는 가늘고 긴 요지(凹地)를 하도(河道), 유수에 접하는 부분을 하상(河床)이라 하고, 이것과 유수를 합하여 하천(河川)’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천의 범위를 하천구역이라 하고, 물이 흐르는 토지, 하천 부속물 부지, 제방 외 지역 등의 세 가지 구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연하천의 종적 지형은 구릉성 산지의 기반암에 의해 자유로운 유로변동 및 자유곡류가 제한 받는 감입곡류하천의 특성(권혁재, 1980)으로 크게 상류, 중류, 하류 특성지로 구분된다. 서울 한강의 종적구조는 중류이며, 중류와 하류 특성지의 특징이 혼재한다. 중류 특성지는 상류에 비해 넓은 하폭, 하도의 종단구배와 유속이 완만하여 여울과 소(riffle-pool)가 반복되고, 하상은 옥석이나 자갈이 거칠다. 하류 특성지는 하폭이 가장 넓고 완만한 종단경사로 유속이 느리고 수량이 풍부하며, 하상은 모래, 흙으로 수변에는 갈대 식생군락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자연하천의 횡적 지형은 형태적으로 크게 수중권, 하중도권, 수변권, 고수부지권, 하천제방권으로 구분되며, 수위별 권역과 대응이 가능하다. 하천지역 식생의 전형적 대상분포는 수변부, 무식물대, 초본식물대, 관목림대, 연목림대, 경목림대로 이루어지며, 하천변을 포함한 습한 입지에 발달하는 수계식물(aquatic plants)은 다양한 구조를 가지며, 육상식물역(terrestrial plant zone)에 발달하는 수목의 경우에는 지상식물로 관목, 교목으로 구분된다(이율경과 김종원, 2005).
본 연구를 위해 서울 한강의 횡적구조 및 식생은 연중 하도와 접하는 수계식물 식생대의 ‘수중·수변권’의 갈대, 갈풀, 물억새 등의 초본 수종을, 중수위권 이상 육상식물역의 ‘육상권’의 관·교목으로 갯버들, 오리나무, 버드나무, 왕버들, 참느릅나무, 느티나무 등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또한 공격사면으로 ‘하천절벽’, 활주사면의 ‘충적지’로 구분하여 하천의 횡적특성과 식생을 분석한다.
하도(河道)의 미지형은 하천에서 연속으로 물이 흐르는 부분으로 하천 지형의 세부적인 특징 파악을 위해 필요하다. 물이 부딪치는 충수역인 외곡부의 공격사면(erosion zone)과 내곡부의 활주사면(deposition zone)으로 나뉘어지며, 공격사면은 급경사의 단애와 같은 하천절벽이, 활주사면은 완경사의 흔히 자갈 또는 모래로 이루어진 충적지가 형성된다(표 2 참조).
자료: 국토해양부(2010), 「미래지향적인 친수공간 형성을 위한 수변경관 가이드라인」, 하도 내의 미지형 참조 p. 25
경관(landscape)은 일반적으로 ‘경치(scenery)’와 같은 감각적 대상을 뜻하거나 ‘특색 있는 풍경 형태를 가진 일정한 지역’과 같이 지역적 대상을 말하나 중요한 것은 인간과 주변 환경이 포함된 개념으로 인간의 영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개념이다. 수변(水邊)은 물의 주변을 의미하며, 바다, 하천, 호수, 연못과 같이 물이 흐르거나 담겨져 있는 공간의 가장자리를 의미한다. 또한 수변공간은 ‘물과 땅이 맞닿아 있는 선, 수제선(waterline)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공간적 범위’로 하천 혹은 바다와 연계된 공간을 의미하며, 강과 연계된 둔치와 제방 안쪽 거주 및 이용지역을 포함하는 개념이다(국토연구원, 2009).
수변경관(riverfront landscape)은 수변 자체와 수변에 대한 인간영역의 인위적 경관들로 구성되는 경관으로 수변지역에서 시각적으로 바라보는 형상과 감각적, 심리적으로 인지되는 경관적 이미지이며, 물리적 측면에서 자연생태경관, 인공경관, 행태가 모여 하나의 경관으로 인식되는 것을 의미한다(권영상과 조상규, 2011).
본 연구에서는 서울 한강의 수변경관을 크게 2가지로 하천지형과 식생의 자연경관요소와 하천주변의 건축물, 토지이용의 인공경관과 인간활동의 행태경관을 포함한 인공경관요소로 체계를 구성하여 한강 수변경관의 원형을 찾고자 한다(표 3 참조).
자료: 국토해양부(2010), 미래지향적인 친수공간 형성을 위한 수변경관 가이드라인 p. 24; 일본 토목학회(1991), 수변의 경관설계를 기초로 재작성
연구대상 작품으로 발췌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25점 작품의 수변경관 요소 추출 및 분석의 틀은 작품이 그려진 1740년에서 1744년 사이에 18세기 조선시대 한양 한강의 수변경관을 해석하는 기본구조로 활용한다.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최완수, 1993)의 내용을 근거로 각 작품마다 그림 위에 경관요소를 명기하고, 이를 토대로 분석의 틀을 채워 한강의 전반적인 수변경관의 특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한강개발 이전의 경성지도와 현재의 서울 한강지도에 25점의 작품의 위치와 작품에 담긴 산과 나루의 위치를 표기하여 한강유역의 변화된 모습을 비교하고, 겸재 정선이 한강진경을 그린 1700년대와 현재 2000년대의 변화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아울러 작품 화재의 위치와 동일한 위치의 현재의 경관이 담긴 사진 자료와 진경산수화 그림을 비교하여 변화된 수변경관을 이해한다. 25점의 작품 중 제화가 담긴 9점은 제화의 내용을 분석하여 그림에서 읽지 못한 그 당시 한강의 수변경관의 특징과 해석에 참고하고자 한다(그림 1 참조).
분석의 결과로 각 작품별 수변경관요소 분석의 종합 내용은 부록 1을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경관조망, 지형적 특징, 인공적 특징으로 나누어 그 원형과 변화양상을 해석한다(표 4 참조).
3. 겸재 정선의 한강진경과 수변경관 해석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25점을 화자가 화재를 바라보는 조망의 구조를 ‘정면’인지 ‘측면’인지에 따라 구분하였다. 이는 한강이라는 하천의 특성 상 하도의 양쪽에서 맞은 편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정면’의 조망구조는 가까이 맞은 편의 나루터와 하천주변에서 관찰하여 화재를 관찰하고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망구조는 주로 근경으로 작품의 구성이 이루어져 한강의 미지형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분석이 가능한 사료가 된다. 세부적인 표현으로 수면과 수변이 만나고, 산과 바위의 지형 굴곡이 좀 더 세부적인 필치로 묘사되고 있는 특징을 지닌다. 그 대표적 작품으로 「우천」은 정면의 근경을 묘사하여 바위벼랑의 굴곡과 여울 등의 수면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으며, 「송파진」은 하도의 반대 맞은편에서 송파진 나루의 모습과 지형, 멀리 남한산성과 소나무의 열식까지 필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그림 2a, 2b 참조).
또한 ‘측면’의 조망구조는 하도를 중심으로 화자의 위치와 동일하거나 맞은편 하천주변까지 넓은 시야로 관찰이 가능한 구조이다. 따라서 멀리 원경의 작품 구성으로 주로 표현되며, 근경이 생략되거나 중경이 정면에 묘사되는 특징을 지닌다. 그 당시 한강의 원경은 대부분이 외사산과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의 경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 서울의 고층건물과 도로에 의한 경관훼손이 없어 한 폭의 그림 같은 편안한 경관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대표적 작품으로 「압구정」은 한강이 굽이치는 곶부리 지역에 솟은 봉우리로 압구정이 위치한 별서와 마을의 모습을 중경으로 멀리 측면으로 보이는 원경의 남산과 산세를, 「목면조돈」은 지금의 남산과 서울 강북의 산세를 옅은 담묵으로 그 당시 한양의 산세를 조감하는 경관을 담고 있다(그림 2c, 2d 참조).
‘정면’과 ‘측면’의 조망구조의 차이를 지금의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145 부근의 한강변에 위치하여 솟구쳐 나온 듯한 산 봉우리인 절두산에서 찾을 수 있다. 절두산을 담고 있는 한강진경 작품으로 「양화진」, 「양화환도」, 「소악후월」이 있다. 「양화진」은 화재인 절두산을 정면에서 근경으로 담고 있다. 「양화환도」는 맞은편 양화나루에서 배를 부르는 도강 현황을 그린 작품으로 측면의 구조에서 양쪽의 하천주변을 동시에 담고 있다. 「소악후월」은 소악루에서 달 뜨기를 기다린다는 내용으로 한강 건너편에 달이 뜨는 남산을 바라보며, 그 앞에 절두산과 같은 면에서 하천주변의 선유봉, 두미암, 탑산까지 담고 있는 차이를 볼 수 있다(그림 3b–3d 참조). 한강의 수변경관을 다양한 조망구조로 접근하면서 그 세부적인 미지형에서부터 한강주변의 특색 있는 지형도를 보듯 원경과 근경을 한번에 담은 겸재 정선의 한강진경은 한강을 다각적으로 조망하고 감상하는 경관 조망(정기호, 2009)의 다양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이 겸재 정선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재해석된 한강의 원형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겸재 정선의 한강진경 25점의 화재의 위치를 1960–1980년대 사이 2번에 걸친 한강개발사업 전후의 한강 지도에 그 위치를 표시하여 한강 지형의 원형을 지도를 통해 거듭 확인하였다. 현재 지도의 한강은 직강화되고 하폭이 동일한 거대한 인공수로의 형태로 하천의 종적, 횡적 지형적 특징이 사라지고 획일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그림 4a 참조). 그러나 한강개발사업 이전 지도를 통해 본 한강은 넓은 모래톱과 다양한 하폭과 수위, 감입곡류하천의 종적, 횡적 지형적 특징이 다르게 나타났다(그림 4b 참조).
작품의 위치,
작품에 나타난 산의 위치,
작품에 나타난 나루의 위치
① 작품에 나타난 산 1. 운길산(606.4) 2. 예봉산(678.8m) 3. 아차산(295.7) 4. 남한산(522.1), 관악산(632.2), 청계산(616.3) 5. 남산(270.8) 6. 북한산(833.5) 7. 북악산(삼각산, 342.5) 8. 인왕산(339.8) 9. 안산(295.9) 10. 노고산(104.5) 11. 와우산(101.8) 12. 염창산(공암산, 증산, 54.8) 13. 탑산(31) 14. 궁산(74.4) 15. 개화산(128.4) 16. 덕양산(124.8)
② 작품에 나타난 나루 a. 용나루(龍津渡) b. 도미나루(渡迷津) c. 미음진 d. 광진(広津) e. 송파진(松坡津), 삼전도(三田渡), 신천진(新川津) f. 입석포(立石浦) g. 동작진(銅雀津) h. 용산진(龍山津) I. 마포나루 j. 서강진(西江津) k. 양화도(揚花渡) l. 공암진(孔巖津) m. 행주진(幸州津)
한강의 종적 지형적 특징으로 한강 상류에 「녹운탄」, 「독백탄」, 「우천」의 작품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고 물길이 변화하는 위치에 입지하여 유속이 빠른 여울의 지형이 나타났다. 작품명의 ‘탄(灘)’은 여울을 의미함에서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녹운탄」 작품 속에는 사공들이 삿대와 노질에 여념이 없는 모습, 「독백탄」 작품에서 물의 넘실거림을 표현한 필선, 족자섬 맞은편의 억센 바위 위에서 2명의 뱃사공이 물 속에 배를 줄로 잡아당기는 모습은 한강의 상류와 중류가 만나는 접점에서 여울이 나타나는 중류특성지의 특성을 보인다(그림 5a 참조).
나머지 작품은 팔당댐 아래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에 위치하여 지리적 구분으로는 중류에 해당하나 폭이 넓고 하상이 모래와 흙으로 이루어진 하류특성지의 종적 지형적 특성을 보인다. 또한 화재의 분포는 대체로 겸재 정선이 관직으로 근무하였던 양천현, 행호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미호, 지금의 하남 미사리 지역에 스승의 서원1)과 조선시대 18세기 진경시대에 교류하던 사대부 집안의 한강 주변 별서와 누정을 담고 있다(그림 5b 참조).
한강의 횡적 지형적 특징으로 공격사면에 나타나는 ‘절벽’과 활주사면에 ‘충적지’로 크게 구분하였는데, 종적 특성이 중류특성지로 나타난 작품은 모두 절벽이 확인되어 공격사면의 특성을 나타냈다. 하류특성지의 경우 한강주변의 지형, 산세 등에 따라 부분적으로 가파른 바위와 모래톱이 나타나기도 하고, 넓은 모래톱이 표현되어 활주사면 충적지의 특성이 혼재되어 있다(그림 5c, 5d 참조).
분석의 틀을 활용한 한강 하천의 미지형 7가지 경관요소를 분석한 결과 모든 작품에서 모래톱이 나타나고 있으며, 수변에 표현된 모래톱은 면적이 좁거나 넓은 정도의 차이가 확인된다. 이는 하천의 종적, 횡적 지형에 따라 수심과 유속, 퇴적의 정도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주변의 산세와 한강이 만나는 지형이 그대로 담긴 단애로 가파른 벼랑과 바위, 봉우리는 겸재 정선의 작품에 모래톱 다음으로 많이 표현되고 있는 경관요소이다. 그러나 지금 한강의 미지형은 수변과 인접한 주요 수변경관 요소인 모래톱과 사주, 하중도, 벼랑과 바위, 봉우리는 매립이나 도로 건설, 골재 채취로 대부분 사라지거나 육지화되어 한강의 자연 생태와 수변 미지형의 아름다움은 상실되었다. 이는 겸재 정선의 화재의 위치가 대부분 확인이 가능하며, 이를 근접한 위치에서 확인한 현재의 사진(겸재정선기념관, 2010 제공)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다(그림 6 참조).
또한 모래의 사주와 하중도, 흙으로 만들어진 언덕인 토파(土坡)가 겸재 정선의 한강진경에서도 표현되고 있으며, 이는 본격적인 한강종합개발 이전에 제작된 1910-1930년대 서울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난지도[옛 이름 중초(中草), 현재 수색동]와 여의도, 뚝섬, 잠실은 겸재정선의 작품과 옛 지도를 통해 하중도였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하중도가 위치한 곳에 화재의 위치가 집중되어 있어 경관이 수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밖에 한강 상류에 위치한 작품을 통해 여울과 소의 미지형을 확인할 수 있으나 그림의 담묵으로만 표현된 물과 육지가 맞닿는 수변권의 표현은 습지의 미지형을 가늠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겸재 정선이 한강진경에서 식생을 표현하는 방식은 수변 주변의 지형을 푸른색으로 도색하여 초본식물이 분포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 속에서 수변의 초본식물 및 관목식물의 종류는 확인이 어려웠다. 그러나 건축물 주변 및 산세와 산봉우리의 중턱과 꼭대기, 바위 벼랑의 꼭대기, 모래톱에 교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그 당시 한강 주변에 자생하는 버드나무 숲과 잡목 숲, 산등성이를 따라 나타나는 소나무 숲에서 우리나라 자생수종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특징적인 것은 대규모 기와집이나 별서 주변으로 수형이 뛰어난 노거수나 소나무가 독립수로 식재되어 대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7 참조).
겸재 정선의 한강진경의 화재의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주요요소로 서울과 수도권을 둘러싼 산과 한강에 인접한 구릉성 산지가 있다. 수도권을 둘러싼 산으로 해발 500m 이상으로 북쪽의 북한산(옛 명칭은 삼각산), 남쪽의 남한산, 관악산, 청계산, 동쪽에 운길산과 예봉산이 화재로 담겨 있다. 옛 서울을 둘러싼 산으로 해발 300m 이상 북악산, 인왕산과 해발 200m 이상의 남산(옛 명칭은 목멱산)이 있다. 한강을 따라 해발 200m 이상의 아차산과 안산, 100m 이상의 노고산, 와우산, 덕양산, 개화산이 담겨 있으며, 한강에 인접하여 해발 1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로 염창산, 궁산(옛 이름 파산)이 화재로 담겨 있어 현재까지 한강 일대 산세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그림 4 참조).
한강에 인접한 해발 30m 정도의 구릉성 산지이자 단애로 탑산, 압구정 일대, 선유봉은 한강개발로 발파되어 사라졌으며, 겸재 정선의 「공암층탑」의 광주바위만 현재의 허준 근린공원 내 인공 연못에 남아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서울특별시, 2001; 2013). 한강에 인접한 가파른 단애로 현존하는 절두산(옛 명칭은 잠두봉)은 한강 수변에 직접 접해 있었으나 한강개발로 육지화되고 도로로 둘러싸이며, 한강의 단애라는 특이 지형은 사라졌다.
또한, 대부분의 그림 속에 모래톱과 사주가 보이고, 「금성평사」의 제화에서도 한강변의 넓은 공간을 십리(十里)에 모래톱과 사주(평사, 平沙)를 포함하고 있는 석양호(夕陽湖)로 언급하고 있어 지금과는 다른 지형적 특징이 담겨 있다. 1970년대 팔당댐, 잠실 수중보 건설 등 한강개발로 수심과 하폭, 유속이 다양한 자유곡류하천에서 유속이 감소하고 수심이 증가하였다. 산지형과 인접한 팔당댐 인근을 제외하고 1km 정도로 동일하게 호소화되어 소와 여울, 모래톱이 한강 전반에 걸쳐 사라진 것이다. 특히 지금의 잠실, 여의도, 난지도는 한강의 하중도였고, 하남 미사리, 이촌동, 반포, 뚝섬 일대는 모래톱과 사주, 범람원이었으나 매립되어 그 원형은 사라지고 도시화 되었다. 현재 한강의 인공형 하중도로 노들섬, 선유도, 밤섬, 자연형 하중도로 족자섬 일부가 남아 있다(그림 4 참조).
「종해청조」의 작품명에서 종해헌은 겸재 정선이 근무하던 지방 수령의 집무실인 동헌의 이름으로, ‘종해헌에서 조수 소리를 듣는다’를 의미한다. 이는 제화를 통해 서해의 옛 이름 종해, 크구나 너른 바다란 말 믿겠다(대재창해신, 大哉滄海信), 조수의 소리를 노래처럼 듣는다(조성가, 潮聲歌)에서 재차 확인이 가능하다. 난지도가 위치한 한강에서 서해바다와 조수간만의 차로 물이 흘러들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한강은 지금도 한강종합개발사업(1986) 이후 1988년 신곡수중보를 물이나 유사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해 김포대교 직하류에 건설하였고(황승용과 이삼희, 2018) 서해안 바다의 조석에 따른 해수면 높이의 변화가 있는 감조하천(感潮河川)의 특징이 남아있다.
누각(樓閣)이 표현된 작품은 「소악후월」과 「안현석봉」으로 소악루에서 남산에 달이 뜨는 모습과 안산의 봉수대, 한강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경관(강영조와 배미경, 2002)을 담고 있다(그림 8a 참조).
정자(亭子)는 다수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별서의 형태로 벼랑 끝 높은 곳이나 산봉우리에 위치한 「녹운탄」, 「압구정」, 「이수정」(이상배와 이장희, 2012), 「낙건정」, 산 중턱에 위치한 「금성평사」의 망호정, 「개화사」의 장밀헌, 강변에 위치한 귀래정, 관란정, 매학당(이종묵, 2016)의 「귀래정」과 낙건정, 귀래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행호관어」 의 작품에서 경관을 위에서 조망하거나 한강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 다양하게 입지해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8b–8d 참조).
건축물은 크게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독의 형태로 동떨어져 있거나 촌락을 이루어 마을을 이루는 집성촌으로 표현되어 있다. 기와집은 여러 작품에서 화재가 되는 주요요소로 한강의 수변경관을 즐기려는 서울 세가의 누정과 별장, 개인주택이 한강 수변을 따라 전반적으로 입지해 있었다. 그 외에 관아의 동헌인 「종해청조」의 종해헌, 「우천」의 사옹원 분원2), 「송파진」의 객관, 「미호1」의 서원의 건축물3)이 있으며, 특히 사옹원 분원은 땔나무와 그릇의 운송이 편한 한강 주변에 위치하여 그 당시 한강의 주요기능이 물류를 위한 수로였음을 알 수 있으나 겸재 정선의 그림 속 건축물의 용도와 관련해서는 이후 연구에서 위치와 용도에서 논란이 있어 이를 주기에 언급하여 보완하고자 한다(그림 8e~8g 참조). 또한, 그 당시 건축물은 원지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위치하여 가파른 길로 연결되거나 접근성이 다소 어려워 보이나 지금의 한강은 고층의 건축물이 서울의 중·원경을 대부분 가리지만 조선시대의 건축물은 그 층고와 규모가 산세에 묻혀 수변경관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가집은 산세와 수변에 입지한 마을인 초가촌과 기와집 인근에 2-3채씩 기와집의 유지관리를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 살던 협호가 있다(그림 8h 참조). 토지이용은 마을을 이루거나 한강 수변에 가까이 입지한 나루 등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전답을 표현한 작품도 「미호 1」과 「미호 2」에서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나루는 화재가 나루터인 「광진」, 「송파진」, 「양화진」, 「양화환도」, 「동작진」을 포함해 대부분의 작품에서 배와 사공을 통해 짐작할 수 있으며, 화재의 위치가 나루의 위치와 대부분 겹치거나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한강개발사업 이전의 지도와 한강사(1985)의 나루터의 위치를 재차 확인하고, 이를 화재의 위치와 비교하였을 때 나루터 일대의 명승지를 작품에 담고 있는 것이다(그림 4 참조). 송파진의 경우 송파구 전자간행물 온라인사진전의 자료를 보면 나루 일대에 장터가 있었으나 겸재 정선은 「송파진」에서도 장터보다는 경승지를 담고 있다. 용나루에서 행주진까지 나루터는 1900년 한강철교를 시작으로 1936년 광진교, 1965년 양화대교, 1972년 잠실대교, 1984년 동작대교, 1995년 행주대교까지 다리가 건설(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1)되며 그 기능이 대체되고, 공간이 사라졌다.
행태경관요소는 작품 속에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를 구분하고 이를 토대로 사람이 어떠한 행태를 나타내는지를 분석하였다. 또한 겸재 정선의 화제와 사천 이병연의 시제가 담긴 시화환상간(詩畫換相看)의 25점의 작품 중에서 제화(題畫)가 담긴 9점의 작품을 발췌하여 그림에서 담지 못한 그 당시 한강의 인간행태의 세부적인 특징과 문인들의 한강에 대한 행태와 의미를 분석하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배와 연관된 사공이나 어부이며, 소수나 다수의 인원이 도선과 낚시의 행태를 나타냈으며, 그 외 행태로 조망과 말타기 정도로 구분된다. 주요 화재가 경관으로 사람을 다양하거나 세밀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배의 종류로는 크게 돛단배와 나룻배, 낚싯배로 표현되고 있다. 돛단배는 돛을 올리고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표현으로 돛을 내리고 정박한 나루터의 모습으로도 묘사되고 있다. 한강을 건너기 위해 사공을 부르는 사람과 정박한 나룻배, 사공의 나루질로 움직이는 나룻배, 한강의 물고기를 낚시질로 잡는 낚시꾼의 나룻배, 대규모 고기잡이를 위한 어선을 담고 있다(그림 9a–9c 참조). 이는 제화를 통해 배를 불러 떠나가고(환선거, 喚船去), 배를 불러 돌이키고(환주선, 喚舟旋), 배로 물건을 실어 나르고(조운, 漕運), 나뭇짐을 지고 오르내리고(부신래, 負薪來)를 통해 그 당시 한강에서 나타난 도선과 물류의 교통과 생업의 인간행태를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빙처부신」에서 강원도와 지방으로부터 땔감을 배로 날라 얼음이 언 벼랑길을 따라 나르는 모습과 「우천」에서 사옹원의 분원과 객사 등이 나루터에 인접한 한강주변에 위치하여 분원의 재료와 도자기를 수송하는 것에서 조선시대 한강의 이용행태가 주로 한강을 건너는 도선과 한양을 오가는 물류의 교통수단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작품 속 표현 중 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묘사된 사항이 없고, 1910-1930년 지도에서도 한강교 외에는 교량이 확인되지 않아 그 당시 배가 수도 한양을 오가는 물류수송의 주요 교통수단이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여러 작품에서 고기잡이를 위해 나룻배에 사람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으며, 사립문을 나서는 사람도 낚싯대를 어께에 매고 이동하고 있다. 「행호」에서 특산물로 잡히는 응어와 황복어 고기잡이 배들이 그물을 몰고 있는 모습은 지금의 한강에서는 보기 어려운 행태 중에 하나이다(그림 9d 참조). 이는 제화에 담긴 낚싯배(어주, 漁艇, 고기 잡는 배), 고기잡이 노래(어가, 漁歌,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물고기를 잡는 데 쓰는 그물(어망, 漁網)을 통해 생업인 고기잡이의 상세한 인간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 「행호관어」 에서는 그 당시 한강에서 잡혔던 어종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다 물고기인 복어(하돈, 河豚)와 웅어(위어, 葦魚)를 복사꽃(도화, 桃花)이 떠내려오는 늦봄(춘만, 春晚)과 초여름(하초, 夏初)에 국과 회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한강과 임진강에서 회유성 어종 중 하나인 황복이 4–6월에 어획되고 있기는 하나 한강의 뚝섬까지 볼 수 있었던 회유성 어종들이 1988년 신곡수중보를 건설로 회귀하지 않게 되면서 사라졌다.
조망의 이용행태는 건축물 안에서 사람이 앉아 경관을 바라보고 한강 수변의 토파(土坡)에서 낚싯대를 둘러맨 사람이 먼 산을 응시하는 등의 표현도 있으나, 작품의 대부분은 누정, 별서 등의 건축물에서 한강의 수변경관을 즐기기 위해 조망하는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외에 말타기는 조선신대 양반들이 한강의 풍경을 즐기기 위한 유람이나 이동 등 교통수단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 9e, 9f 참조).
그림에서는 그 당시 문인들의 ‘조망’의 행태를 확인하였다면, 제화에서는 문인들의 조망과 인식의 ‘관조’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한강을 통해 하루의 변화를 인식하고 일상화된 생활 공간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해가 뜨거나 지는 새벽 빛(曙色, 서색), 아침 빛(朝光, 조광), 첫 햇살(초일, 初日), 매일 아침(매단, 每旦), 저녁 빛(만색, 晩色), 저녁 때의 햇빛(석양, 夕陽), 저녁빛이 저물고(모색침, 暮色侵), 산빛이 저물고(山色晚, 산색만), 밝은 달이 떠오르면(명월출, 明月出)과 같이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는 때에 한강의 일상을 담고 있다.
「종해청조」의 제화에서 한강의 특징인 조수간만의 차이를 넓고 큰 바다(창해, 滄海), 넓고 큰 바닷물(창랑수, 滄浪水), 조수의 소리(조가, 潮歌),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조종, 朝宗)에서 한강의 조수소리, 물소리를 듣는 것도 한강의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행태 중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그림 9e 참조).
4. 결론
본 연구는 겸재 정선이 그린 한강진경 25점의 그림을 대상으로 관련 해설서와 제화, 지도, 사진 등의 문헌자료를 통해 작품이 그려진 조선시대 18세기 서울 한강의 수변경관을 분석하고 그 특징을 도출하였다. 그림에 담긴 서울 한강의 수변경관을 크게 조망요소 및 자연경관요소, 인공경관요소로 나누어 분석하였고, 이를 서울 한강의 경관조망과 지형적, 이용적 특징으로 나누어 그 당시 한강의 원형을 해석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대규모 한강개발 전후의 한강 수변경관의 주요한 변화 양상과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한강의 지형과 수변경관의 주요 조망대상과 역할의 변화이다. 한강은 지형적으로 하도는 직강화되고 하폭은 넓어지고 수심은 깊어지고 유속은 느려지며 거대한 수로의 형태로 호소화되었다. 한강의 양안을 따라 도로가 조성되고 육지화되고 도시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한강의 물과 육지가 만나는 수변(水邊)의 미지형인 모래톱과 사주, 하중도, 단애, 소와 여울 등은 사라졌다. 한강의 주요 조망대상은 근경의 한강의 물과 육지가 만나는 경계, 수변(水邊)의 미지형에서 한강의 넓은 수면과 한강을 가로지르는 대교로 변화하였다. 또한 중·원경의 한눈에 보이는 서울의 지형과 산세는 한강을 둘러싼 수평적인 도로와 고층 건축물로 대체되며, 한강의 넓은 수면은 바탕으로 서울을 둘러싼 산세는 배경으로 그 역할이 달라졌다.
한강을 이용하는 행태와 접근 정도의 변화이다. 한강을 건너는 도선과 물류를 위한 나루가 있던 위치에는 대부분 대교가 건설되며 사라졌다. 또한 한강에서는 상수원 보호 및 생태보호 등의 사유로 배를 이용한 고기잡이의 생업 행태는 거의 사라졌다. 그 당시 문인들은 밥을 먹거나 발을 걷으며 난간에 젖어드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해가 뜨고 지는 때의 변화를 인식하고 한강의 수변경관을 감상하였다. 그리고 한강 하류가 서해안과 접하여 감조하천의 수위 변화를 일상생활에서 한강의 조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한강과 접하여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한강에서 교통과 생업, 하루의 변화를 인식하고, 일상생활의 행태로 직접적 접근의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한강은 일상에서 벗어난 여가의 행태로 간접적 접근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지금 한강의 수변경관의 가치는 그 이전과 다르게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 이전의 원형을 연구한 것은 한강 본연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상기시켜 보고자 한 것이다. 원형을 복원하는 것도 어렵고, 설사 복원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원형인지 지속적인 의문이 발생한다. 특히 지형의 훼손은 복원이라는 것이 더욱 어렵기에 자연환경의 원형인 산과 하천을 개발하기 이전에 그 현황에 대한 조사와 분석, 가치에 대한 논의가 더욱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1960-1980년대 대규모 한강종합개발 이전 한강의 수변경관의 원형을 해석하여 지금의 변화된 한강 수변경관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데에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대한 연구만으로 그 당시의 한강 수변경관의 전반을 이해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옛 그림을 통한 현재의 개발이전 경관의 원형을 해석하는 방법론은 경관의 원형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이후 그 수법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부언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