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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 도시계획서 상의 공원녹지 개념과 현황의 변화 양상

조세호*, 김영민**
Seho Cho*, Youngmin Kim**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주) 싸이트플래닝건축사사무소 대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부교수
*Assistant Manager, Siteplanning Architects Co., Ltd.
**Associate Professor,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University of Seoul
Corresponding author: Youngmin Kim,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University of Seoul, Seoul 02504, Korea, Tel.: +82-2- 6490-2847, E-mail: ymkim@uos.ac.kr

© Copyright 2019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r 07, 2019 ; Revised: Mar 31, 2019 ; Accepted: Mar 31, 2019

Published Online: Apr 30, 2019

국문초록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 경성도시계획 문헌에 기록된 공원녹지 현황표를 분석하여 근대 공원녹지계획의 의의와 한계를 파악하였다. 1925년부터 1940년의 문서 7개를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1930년과 1940년의 문헌은 공식적인 경성 공원녹지 계획안을 담고 있다. 경성의 근대 도시계획 흐름에서 공원녹지는 1920년대까지는 중요한 계획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의 제정을 계기로 1930년대부터 공원계획은 법정 시가지계획의 일부가 되었고, 1940년에 경성시가지계획공원안을 통해 경성의 종합적인 공원녹지계획이 완성된다. 도시계획 초기에 공원은 위생시설로 인식되다가 이후 방공, 여가, 문화적 기능을 하는 공간으로 계획된다. 주요 문헌의 계획 내용을 비교하면 규모와 기능에 따른 공원의 유형 구분, 공간적 배치를 고려한 계획 기준, 시설녹지를 통한 녹지체계의 구상 등의 중요한 계획 내용의 발전이 있었다. 공원녹지계획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공원녹지의 수나 면적의 실질적인 증가는 거의 없었으며, 계획안과 현황 사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나타난다. 1920년대에는 경성운동장이 유일하게 조성된 시설이었으며, 1930년대에도 삼청공원, 앵정공원 두 개소만 신설된다. 1930년의 계획에서 38개소가, 1940년에는 140개소의 계획 공원이 제안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산림의 공원화, 대한제국 황실 토지의 공원화, 공원 용도의 중복지정, 소규모 아동공원 중심의 실행 등 현실적 조건에서 공원녹지의 양과 질을 향상하려는 대안이 계속해서 탐색되었다. 부족한 예산과 전쟁 준비의 상황으로 인해 일제강점기의 공원녹지계획안은 상당 부분 실현되지 못했지만, 해방 이후 서울의 공원녹지체계를 만들어나가는 중요한 틀로서 역할을 한다.

ABSTRACT

The study examines the significance and limits of modern park planning by analyzing major planning documents of Gyeongseong in the Japanese colonial era. Among seven selected documents from 1925 to 1940, which show the contents related with park planning, documents of 1930 and 1940 presented the official park plan of Gyeongseong. By the 1920s, the park plan was not a major concern in urban planning of Gyeongseong; however, as the planning law as enacted in 1934, the park plan legally became a part of the official master planning process in the 1930s. In 1940, the most comprehensive park plan for Gyeongseong was published. In the beginning of modern urban planning, a park was mainly perceived as a sanitation utility. From the 1920s to the 1930s, the park planning system was significantly improved including systemic classification of parks, guideline development considering spatial planning, and introduction of a concept of infra-structural green space. Despite of the improvement in the park planning, the actual quantity of the overall green spaces barely changed and there was a huge discrepancy between the planning ideal and the reality. The Gyeongseong stadium was the only facility newly built in the 1920s, and only two parks were constructed in the 1930s. The plan to build 38 new parks in the 1930, and 140 in the 1940 was barely realized. However, there were efforts to improve parks and green spaces of Gyeongseong: Such as appropriating natural forest as parks, designating royal palaces as parks, and focusing on constructing smaller scale children's parks. Even though the ideal plan could not be fully implemented due to the war time situation and tight budget, the park system of Gyeongseong provided the framework of park planning of Seoul after the independence.

Keywords: 근대; 경성; 일제강점기; 공원계획; 도시녹지
Keywords: Modern; Gyeongseong; Japanese Colonial Era; Park Planning; Urban Green Space

I. 서론

1. 연구의 배경 및 목적

19세기 서구의 근대 문물이 도입되면서 우리에게도 공원의 개념이 소개된다. 1876년 김기수는 「수신사일기」에서 일본의 우에노 공원을 소개했으며, 1895년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센트럴 파크의 기록을 남긴다. 1897년에는 한양에 탑골공원, 독립공원, 왜성대공원이 조성된다. 그러나 공원계획은 개별 공원의 조성과는 다른 방식의 사고와 접근을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공원계획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들어서야 수립된다. 서구 도시계획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1930년의 경성 도시계획안에는 공원계획이 포함되며,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제정되면서 공원계획은 법정계획의 하나로 제시된다. 1940년에는 경성 시가지계획을 위한 공원계획안이 수립되었으나, 전쟁 말의 상황으로 인해 계획 실행되지 않은 구상으로 남는다.

근대 경성의 공원에 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첫째, 공원계획과 제도에 관한 연구의 동향이 있다. 손정목과 염복규는 전반적인 경성의 도시계획사를 다루면서 공원계획을 그 일부로서 다루었다(Son, 1900; Yum, 2009; 2016). 이들의 연구는 근대 도시계획의 흐름 속에서 공원계획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으나, 특정 시기에 한정된 부분의 공원계획에 초점을 맞추어 공원계획의 전체적인 변화를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김덕삼, 황기원, 박인재와 이재근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도시공원사 전반을 고찰하면서 근대의 공원계획을 살펴보았다(Kim, 1990; Hwang, 2001; Park and Lee, 2002). 이들의 연구는 공원계획의 발전 과정을 통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나, 일제강점기의 공원계획에 관한 내용은 한정적이다. 근대에 초점을 맞춘 도시공원사 연구 중에는 강신용의 연구가 가장 대표적이다(Kang, 1994; 1995)1). 최근의 연구로는 아동공원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공원계획을 분석한 안상민과 이시다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Ahn and Ishida, 2014). 근대의 공원계획을 다룬 연구들은 대부분 1930년과 1940년의 계획안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현황의 변화는 소극적으로 다루어왔다. 때문에, 공원현황이 기록된 조사서나 회의록, 관보 등의 자료는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둘째, 개별 공원을 중점적으로 다룬 연구의 동향이 있다. 박승진과 김해경은 탑골공원을, 이유직은 독립공원의 조성과정과 공간적 내용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Park, 2003; Kim et al., 2013; Lee, 2008) 남산공원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도 있다. 서영애는 일제강점기의 남산공원의 이용행태를 분석하였고, 손용훈과 서영애는 남산공원의 설계개념을, 박희성은 일제강점기 남산 일대 공원의 변화과정을 고찰하였다(Son and Seo, 2012; Seo and Son, 2013; Seo, 2015; Park, 2015). 이후 경성운동장으로 바뀌는 훈련원공원에 관해서는 손환 그리고 김해경과 김영수의 연구가 있다(Son, 2003; Kim and Kim, 2016). 이상배, 김해경과 최현임은 장충단공원의 변화를 다루었으며(Lee, 2005; Kim and Choi, 2013), 김현숙, 우동선, 김정은은 대한제국의 궁에서 여가 공간으로 바뀐 창경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Kim, 2008; Woo, 2009; Kim, 2015). 이들 연구는 각 공원에 대한 상세한 자료에 근거하고 있어 개별 공원을 중심으로 공원에 대한 담론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단위 공간으로서 공원의 조성은 정책적, 행정적인 관점에서 수립되는 공원계획과는 차이가 있으며, 개별 공원에 관한 연구는 전체적인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공원의 의의와 한계를 올바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본 연구의 목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제강점기 공원녹지계획에 대한 자료 정리와 구축이다. 본 연구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와 경성부가 작성한 경성의 도시계획 관련 문헌을 검토하여 공원과 녹지 현황이 나타난 자료를 정리하였다. 지금까지의 도시공원사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은 계획 사료를 추가하였으며,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는 신문기사와는 다른 관점의 객관적인 사료를 제공함으로써 이후의 근대 연구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른 하나는 계획 관점에서 일제강점기 경성의 공원녹지 현황의 변화와 공원녹지계획의 발전 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근대의 개별공원에 대한 상당한 연구성과가 있었으나, 이를 계획 측면에서 종합하고 분석하려는 시도는 부족했다. 본 연구는 선행연구가 파악하지 못한 공원계획의 정책적 측면의 의도와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통해 개별공원에 관한 연구와 계획 측면의 연구성과를 종합하는 의의를 지닌다.

2. 연구의 범위와 구성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일제강점기 즉, 일제가 국권을 피탈한 1910년부터 광복을 맞이한 1945년의 기간으로 한정하였다. 공간적 범위는 일제강점기의 서울에 해당하는 경성부로 한정하고, 이하 서울을 경성이라고 표현한다. 연구는 조선총독부, 경성부, 경성도시계획연구회에서 작성된 조사서, 계획서, 회의록, 관보 등 공원녹지 현황과 계획 내용이 담긴 1차 문헌을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였다.

연구는 다음과 같은 구성을 따른다. 연구의 2장과 3장은 선정된 자료에서 나타난 공원녹지의 현황과 계획의 내용을 분석한다. 공원녹지계획에 관한 내용은 많은 선행연구에서 다루어졌으므로 본 연구는 조사서나 계획안에 정리된 공원녹지 현황의 변화 그리고 현황과 계획안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다. 당시 존재했던 공원녹지의 명칭, 개설일, 위치, 면적, 공사비, 유지비의 변화를 살펴보고, 다른 부문의 도시계획안, 신문기사, 사진, 회의록 등과 비교하며 공원녹지의 변화양상을 분석하였다. 이와 함께 도시계획에서 공원녹지의 제도적, 개념적 변화를 파악하였다. 2장에서는 1925년의 조사서에서부터 1930년의 도시계획안까지 1920년대의 계획 문헌을 다루며, 3장에서는 1932년의 조사서에서부터 1940년의 공원계획안까지 1930년대와 1940년대의 계획 문헌을 다룬다. 1940년 이후의 문헌 내용은 1940년 공원계획안과 차이가 없으므로 본 연구는 1940년의 공원결정안까지만을 다룬다. 내용적으로 공원계획과 관련된 문헌의 성격은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 이후 크게 변화하나, 계획안으로는 1930년의 자료가 이전의 도시계획 내용을 종합하는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사료의 분류는 1930년을 기준으로 나누었다. 4장에서는 2장과 3장의 분석 내용을 토대로 일제강점기의 공원녹지의 전반적인 변화를 계획 관점에서 분석하고, 변화의 양상을 파악한다. 현황과 계획상의 공원 개수와 유형의 변화를 비교하고, 각 문헌에서 나타난 면적의 변화를 분석하였다. 5장은 앞서 다룬 분석의 내용을 종합하며, 일제강점기 공원계획에서 나타나는 공원녹지 현황 변화의 의미를 고찰한다.

3. 연구의 대상

일제강점기의 공식 계획 문헌 중 공원녹지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공식 문헌 중 현황이 기록되거나, 주요한 계획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은 9개로 파악되었다(Table 1 참조). 이중 공원녹지의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가 정리된 문헌은 7개로 1925년 「경성도시계획조사자료」, 1927년 「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1928년 「경성도시계획조사서」, 1930년 「경성도시계획서」, 1932년 「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1936년 「조선도시문제회의록」, 1940년 「경성시가지계획공원결정안」 이다. 경성시가지계획안의 내용은 원문과 함께 전문이 번역된 1965년의 「서울도시계획」을 함께 참고하였다. 본 연구는 이들 7개의 자료를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한다. 본 연구는 자료에 대한 기술의 엄정성을 위해 각 문헌의 현황조사표를 정리하며, 원자료의 용어와 형식을 최대한 유지였으며, 일부 중복적인 내용도 그대로 기술하였다. 또한, 현황표의 수치상의 오류가 일부 발견되었으나, 원자료의 수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주석을 통해서 정정하였다2).

Table 1. Planning documents related with park and green space of Gyeongseong (1925~1940)
No. Year Title Publisher Source Document number Contents related with park
Status Plan
1 1925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경성도시계획조사자료) Gyeongseong-bu (경성부) National Diet Library of Japan Digital Collection AK2-411-4 ×
2 1927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vol. 1) Gyeongseong-bu (경성부) National Library of Korea EK0000019073 ×
3 1928 Urban Planning Survey of Gyeongseong (경성도시계획조사서) Gyeongseong-bu (경성부) National Assembly Library MONO3200001059 ×
4 1930 Urban Planning of Gyeongseong (경성도시계획서)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조선총독부) National Assembly Library MONO3197120211
5 1932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vol. 2) Gyeongseong-bu (경성부) National Library of Korea EK0019073002 ×
6 1936 The Urban Problems Minutes of Joseon (조선도시문제회의록) The Urban Planning Study Group of Gyeongseong (경성도시계획연구회) National Assembly Library MONO3198002090 ×
7 1938 Civil Engineering Planning of Gyeongseong-bu (경성부토목사업개요) Gyeongseong-bu (경성부) National Library of Korea 6338-2
8 1938 Urban Planning Manual of Gyeongseong-bu (경성부도시계획요람) Gyeongseong-bu (경성부) National Library of Korea MONO3197030894 ×
9 1940 Decision of Park Plan of Gyeongseong Urban Planning (경성시가지계획공원 결정안)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조선총독부) National Archives of Korea CJA001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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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1920년대의 공원녹지 현황과 계획

1. 1925년 「경성도시계획조사자료」

1925년 「경성도시계획조사자료」는 경성의 도시계획에서 처음으로 공원과 녹지를 계획 대상으로 다룬 문헌이다. 이 조사서는 조선총독부의 지시를 받아 경성부가 실행한 조사에 다른 자료를 더해 작성되었다. 서언에서 조사서의 자료는 개략적이며, 이후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여 “첫 번째 경성부 도시계획 기본조사”로서 역할을 하리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조사서가 경성의 도시계획을 준비하기 위한 첫 현황조사의 결과물이며, 추가적인 조사를 전제로 한 기초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원녹지 현황에 관한 기술은 6장인 ‘위생보건 및 풍속에 관한 현상조사’에서 나타나며, 구체적인 수치는 ‘제84호 경성부 공원, 유보지 및 운동장 일람표’에 정리되어 있다(Table 2 참조). 일람표에는 면적, 공사비, 유지비 등의 공원 현황자료가 제시되어 있다. 또한, 조사서에서 공원은 위생과 관련된 도시시설로 구분된다.

Table 2. Park and green space status of 1925
No. Type Name Address of Japanese colonial era Area(pyeong/m2) Opening year Total construction cost(円) Annual maintenance cost(円)
1 Park (공원) Namyang-namsan Park (남양남산공원) Namsan-jeong and Waeseongdae-jeong (남산정 및 왜성대정) 48,975(161,901) 大正1, 08 (1912년 8월) Unknown 1,674.000
2 Jangchungdan Park (장충단공원) Dongsaheon-jeong and Seosaheon-jeong (동사헌정 및 서사헌정) 140,104.35(463,155) 大正8, 09 (1919년 9월) 33,625.000 4,742.000
3 Hullyeonwon Park (훈련원공원) Hwangguem-jeong 6, 7jeongmok (황금정 6, 7정목) 45,031(148,863) 大正8. 09 (1919년 9월) 25,689.000 2,254.000
4 Sajikdan Park (사직단공원) Sajik-dong (사직동) 69,892.19(231,049) 大正13, 05 (1924년 5월) 3,000.000 None
5 Hyochangwon Park (효창원공원) Guem-jeong (금정) 28,246(93,375) 大正13, 08 (1924년 8월) 11,000.000 None
6 Pagoda Park (파고다공원) Jongno-2jeongmok (종로 2정목) 3,333(11,019) Seongjong 2 year (1471년) Unknown 2,171.500
7 Mancheol Park (만철공원) Hangang-tong (한강통) 7,558(24,985) 大正4, 10 (1915년 10월) 5,410.670 576.000
Summary - - 343,139.540(1,134,347) - - -
8 Walkway (유보지) Suwon(수원)1 Taepyeong-jeong1, 2jeongmok (태평정 1, 2정목) 543.75(1,798) 大正12, 04 (1923년 4월) 4,750.000 -
9 Suwon(수원)2 Taepyeong-jeong1jeongmok, near by Singyo (태평정 1정목, 신교 부근) 1,250(4,132) 大正3 (1914년) Unknown -
Summary - - 1,793(5,930) - - -
10 Field (운동장) Sin-Yongsan Hangang-tong Samgakji (신용산 한강통 삼각지) 500(1,653) 明治41 (1908년) None None
Summary - - 500(1,653) - - -
Total - - 345,433.290(1,141,930) - - -
Ratio to total area - 3.5 -
Park area per capita - 1.2 Total area 10,964,000(36,244,628.1m2)
Population per pyeong(坪) - 0.835 -

Source: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1925(경성도시계획조사자료, 1925), R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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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표에 나타난 공원녹지는 공원, 유보지 (遊步地), 운동장의 세 종류로 총 10개소이다. 유보(遊步)란 일본어로 ‘산책 (散歩․さんぽ) 을 의미한다. 유보지는 면적도 협소하며 유지비도 조사되어 있지 않아 공원에 비교해 위계가 낮은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설개요의 설명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음악당, 테니스코트, 연못 등 상당히 큰 규모의 시설이 설치된 공원과는 달리 유보지의 경우 보행로, 변소, 식재 등의 기본적인 시설만 설치되어 있다. 운동장은 현대적 의미의 운동을 위한 공간과는 다른 성격의 공간이다. 시설개요에 “광장으로서 설비 없음”이라는 기술이 되었으며, 다른 사진과 기사 등의 참고자료와 비교해볼 때 교통광장의 성격을 가진 공지로 판단된다. 조사서에서 공원으로 구분된 7개소 중 장충단공원, 훈련원공원, 사직단공원, 효창원공원의 4개소는 대한제국의 궁, 제단, 묘를 공원으로 지정한 공간이다. 파고다공원은 대한제국이 개설한 공원이며, 남양남산공원은 일본인들의 요구에 따라 신사가 들어서면서 조성된 공원이다. 남산공원의 개설년도는 1912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신사에 부속된 공원은 1897년경에 조성되며, 남산공원의 전신인 왜성대공원은 1907년도에 만들어졌다. 만철공원 (滿鐵公園) 은 일본의 남만주철도주식회사 (南滿洲鐵道株式會社) 에서 운영했던 공원으로 파악된다. 이는 만철사원 운동회, 철도공장 견학 등의 신문기사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3).

2. 1927년 「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1927년「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는 경성부가 1925년의 자료를 보완한 조사서이다. 이 조사서는 조선총독부와 경성부가 함께 도시계획안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자료의 성격을 갖는다(Son, 1990). 계획안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은 없으나, 보고서에는 ‘경성도시계획지역 및 지구예정도’가 포함되어 있어 개략적인 공원계획의 구상을 볼 수 있다. 본 조사서에서 공원녹지에 대한 현황은 ‘제4장 위생과 보안’에서 ‘경성부 공원 유보지 및 운동장 일람표’로 정리되어 있으며, 형식은 1925년과 동일하다(Table 3 참조).

Table 3. Park and green space status of 1927
No. Type Name Address of Japanese colonial era Area(pyeong/m2) Opening year Total construction cost(円) Annual maintenance cost(円)
1 Park (공원) Hanyang-namsan Park (한양남산공원) Namsan-jeong and Waeseongdae-jeong (남산정 및 왜성대정) 48,975(161,901) 大正1, 08 (1912년 8월) Unknown 1,674.000
2 Jangchungdan Park (장충단공원) Dongsaheon-jeong and Seosaheon-jeong (동사헌정 및 서사헌정) 140,104.35(463,155) 大正8, 09 (1919년 9월) 33,625.000 4,742.000
3 Hullyeonwon Park (훈련원공원) Hwangguem-jeong 6, 7jeongmok (황금정 6, 7정목) 45,031(148,863) 大正8, 09 (1919년 9월) 25,689.000 2,254.000
4 Sajikdan Park (사직단공원) Sajik-dong (사직동) 69,892.19(231,049) 大正13, 05 (1924년 5월) 3,000.000 None
5 Hyochangwon Park (효창원공원) Guem-jeong (황금정) 28,246(93,375) 大正13, 08 (1924년 8월) 11,000.000 None
6 Pagoda Park (파고다공원) Jongno-2jeongmok (종로 2정목) 3,333(11,019) Seongjong 2nd year (1471년) Unknown 2,171.500
7 Railway Park (철도공원) Hangang-tong (한강통) 7,558(24,985) 大正4, 10 (1915년 10월) 5,410.670 576.000
Summary - - 343,139.540(1,134,347) - - -
8 Walkway (유보지) Suwon(수원)1 Taepyeong-jeong1, 2jeongmok (태평정 1, 2정목) 543.75(1,798) 大正12, 04 (1923년 4월) 4,750.000 -
9 Suwon(수원)2 Taepyeong-jeong1jeongmok, Near by Singyo (태평정 1정목, 신교 부근) 1,250(4,132) 大正3 (1914년) Unknown -
Summary - - 1,793.75(5,930) - - -
10 Field (운동장) Sin-Yongsan Hangang-tong Samgakji (신용산 한강통 삼각지) 500(1,653) 明治41 (1908년) None None
11 Gyeongseong field (경성운동장) Hwangguem-jeong 7jeongmok (황금정 7정목) 5,227(17,279) 大正14 (1925년) 155,000.000 9,651.000 (大正15년)
Summary - - 5,727(18,932) - - -
Total - - 350,660.29(1,159,209) - - -
Ratio to total area - 0.032 -
Park area per capita - 1.020 Total area 10,629,500(35,138,843m2)
Population per pyeong(坪) - 0.980 Total population 336,354

Source: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1927(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1927), R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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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조사서와 마찬가지로 공원은 위생과 관련된 시설로 인식되고 있다. 조사서는 구체적으로 서구와 일본의 도시를 비교하여 불량한 경성의 위생상태를 지적하며, 대책으로 비위생지역에 대한 구획정리, 상하수도 부설과 함께 소공원 설비를 제안한다. 이전 문헌에 나타난 공원녹지에 경성운동장 1개소가 추가되어 경성부 내 공원녹지는 총 11개소로 나타난다. 만철공원이 철도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된 점을 제외하고, 공원녹지의 면적과 유지비에 변화는 없다. 경성운동장은 기존의 운동장과 함께 분류되고 있으나, 운동장과는 별도의 종류로 기재되어 있어 기존의 운동장과는 다른 성격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경성운동장은 1915년에 신설된 철도공원과 비교해볼 때 면적은 상대적으로 작음에도 불구하고 조성비가 3배가 투자되어 상당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사서의 내용을 보면 야구장, 정구장, 육상경기장, 마장, 아동운동장 등의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유지비 역시 공원녹지 중 가장 많은 예산이 소요되고 있으며, 20배 이상 규모가 큰 장충단공원 유지비의 두 배가 넘은 예산이 책정되어 단위면적당 유지비도 다른 공원에 비해 높다. 1925년에 비해 경성운동장이 추가되어 공원녹지의 총면적은 증가하였으나, 1인당 공원 면적은 감소하였다. 이는 인구증가에 따른 공원녹지 면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1인당 공원면적이 감소했다는 것인데, 1925년의 인구 기준이 불분명하며, 1928년 조사서에서도 1925년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므로 당시 1인당 공원면적의 수치의 기준은 분명하지 않다4).

조사서는 구체적인 공원계획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경성도시계획지역 및 지구예정도’가 포함되어 개략적인 공원계획의 내용이 파악이 가능하다(Figure 1 참조). 공원지역은 진한 녹색으로 표시된 부분으로 사직단공원, 파고다공원, 종묘, 훈련원공원과 경성운동장, 천장산 일대, 남산공원과 장충단공원 일대, 효창원공원, 철도공원과 총독관저 일대, 노량진 일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이미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던 공원을 제외한 종묘, 총독관저 일대, 노량진 일대의 지역은 새롭게 계획된 지역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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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Zoning plan of Gyeongseong-bu

Source: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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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28년 「경성도시계획조사서」

1928년 「경성도시계획조사서」는 경성부가 이전의 자료와 계획안을 보완한 조사서이자 도시계획안이다5). 이 조사서는 가로망의 노선들을 지정하고, 구획정리예정지구를 전후 비교 도면을 이용해 보여주는 등 상당히 자세한 계획 내용을 제시한다. 공원녹지 현황은 ‘제2장 도시계획 지역과 지구’의 ‘제6절 공원지구’의 ‘경성부 공원 유보지 일람표’에서 나타난다(Table 4 참조). 또한, 당시 경성부의 현황이 표현된 부도가 포함되어 있어 공원녹지의 위치와 규모를 공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Figure 2, 3 참조). ‘제4장 도시계획 구획정리’에서는 도심지 재개발 지역 내 구체적인 공원 계획지의 위치와 면적이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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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Existing plan of Gyeongseong-bu

Source: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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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Zoning plan of Gyeongseong-bu

Source: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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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4. Park and green space status of 1928
No. Type Name Address of Japanese colonial era Area(pyeong/m2) Opening year Total construction cost(円) Annual maintenance cost(円)
1 Park (공원) Hanyang-namsan Park (한양남산공원) Namsan-jeong and Waeseongdae-jeong (남산정 및 왜성대정) 84,325(278,760) 大正1, 08 (1912년 8월) Unknown 1,974
2 Jangchungdan Park (장충단공원) Dongsaheon-jeong and Seosaheon-jeong (동사헌정 및 서사헌정) 140,104(463,155) 大正8, 09 (1919년 9월) 33,625 4,742
3 Gyeongseong Field (경성운동장) Hwangguem-jeong 6, 7jeongmok (황금정 6, 7정목) 45,031(148,863) 大正14, 10 (1925년 10월) 155,000 10,268
4 Sajikdan Park (사직단공원) Sajik-dong (사직동) 68,632(226,883) 大正13, 05 (1924년 5월) 3,000 370
5 Hyochangwon Park (효창원공원) Guem-jeong (금정) 28,246(93,375) 大正13, 08 (1924년 8월) 11,000 140
6 Pagoda Park (파고다공원) Jongno-2jeongmok (종로 2정목) 3,333(11,019) Seongjong 2nd year (1471년) Unknown 2,171
7 Railway Park (철도공원) Hangang-tong (한강통) 7,558(24,985) 大正4, 10 (1915년 10월) 5,410 576
Summary - - 369,671(1,222,052)6) - - -
8 Walkway (유보지) Suwon(수원)1 Taepyeong-jeong1, 2jeongmok (태평정 1, 2정목) 543.75(1,798) 大正12, 04 (1923년 4월) 4,7507) Unknown
9 Suwon(수원)2 Taepyeong-jeong1jeongmok, Near by Singyo (태평정 1정목, 신교 부근) 1,250(4,132) 大正3 (1914년) Unknown -
10 Field (유보장) - Sin-Yongsan Hangang-tong Samgakji (신용산 한강통 삼각지) 500(1,653) 明治41 (1908년) None None
Summary - - 2,293(7,583) - - -
Total - - 371,964(1,229,633)8) - 208,035 -
Ratio to total area - 0.035 Total population 336,354 大正14(1925)
Park area per capita - 1.106
Population per pyeong(坪) - 0.904

Source: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1928(경성도시계획서, 1928), R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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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의 공원녹지는 10개소로 1927년보다 1개소가 줄었다. 공원은 7개소이며, 2개소의 유보지 이외에 유보장이라는 종별 구분이 새롭게 보이는데, 1927년 조사서의 ‘운동장’을 ‘유보장’으로 변경한 것이다. 1925년의 3번 공원이었던 훈련원공원은 경성운동장으로 변경되면서 운동장의 유형은 삭제된다. 사라진 훈련원공원과 경성운동장의 면적과 주소가 동일하여 훈련원공원 내 경성운동장 조성에 따른 명칭 변경임을 알 수 있다. 남산공원은 상당한 규모로 면적이 확장되었으며, 그에 따른 유지비도 증가하였다. 1927년의 조사에서는 사직단공원과 효창원공원의 유지비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1928년부터는 유지비가 파악되어 있다. 면적을 고려했을 때 이 두 공원의 유지비는 다른 공원에 비해 상당히 작다. 또한, 만철공원이 철도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된다. 남산공원 면적 증가로 전체 공원면적은 상당히 늘었으며, 일인당 공원면적도 증가하였다. 이때 총인구수는 1927년 자료와 동일하며, 1925년(대정 14년) 의 조사자료라고 기술되어있다.

공원계획과 관련되어 가장 주목할 점은 지역지구제가 도입되어 공원이 지구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업, 공업, 주거, 특별지역의 네 지역이 설정되었으며, 지구로서는 방화지구와 공원지구가 설정되었다. 상대적으로 이전 문헌에서 강조되던 위생과 보건시설로서 공원녹지의 역할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경성도시계획 지역지구 예정도’를 1927년의 계획도와 비교해 보면 ‘공원지역’으로 표기된 부분이 ‘공원지구’와 동일하다. 이전의 공원지역이 공원지구로 바뀌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공원계획지에 큰 변화가 없으나, 새로운 공원이 경복궁의 북동쪽 지역에 추가로 계획되었다. 구체적인 공원계획지에 관한 설명은 제시되어 있지 않아 계획의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조사서에는 종로 양측의 5개 구역에 관한 ‘지구정리예정구도’가 첨부되어 있는데, 기존 파고다 공원의 면적을 세 배로 확장하고, 수송동(壽松洞) 에 공원을 신설할 계획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지역지구제도에 따른 공원지구와는 다른 토지구획정리에 따른 도시시설로서 공원 조성 계획에 해당한다.

4. 1930년 「경성도시계획서」의 내용

1930년 「경성도시계획서」는 1920년대에 진행된 도시계획안과 조사서의 성과를 정리한 보고서의 성격을 갖는다9)(Figure 4 참조). 공원 현황도는 각 공원의 명칭과 면적만을 기술하고 있어 이전의 문헌에 비해 상세하지 않다. 공원녹지계획의 경우, 1926년, 1927년의 자료와는 달리 계획도가 제시된 부도가 포함되지 않아 공원계획의 공간적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10). 그러나 이전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은 ‘경성도시계획표’가 작성되어 공원계획지의 명칭, 면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공원녹지에 관한 내용은 ‘제4장 위생시설’에서 언급된다. ‘제1절 총설’의 기술을 보면 공원은 상하수도와 같은 도시위생시설로 분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절 공원’에서 다시 위생시설로서 역할을 강조하며, 재난 상황에 필요한 방재시설로서 공원의 역할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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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The cover of urban planning of Gyeongseong

Source: Urban Planning of Gyeongseong,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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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녹지의 현황은 ‘제63표 경성부 공원, 유보지와 운동장 일람표’에 정리되어 있다(Table 5 참조). 일람표는 이전 자료보다 간략화 되어 유형, 명칭, 소재지, 면적만을 기록하고 있다. 경성부의 공원녹지는 총 11개소로 훈련원공원이 다시 나타나고, 경성운동장은 공원이 아닌 운동장으로 분류되어 있다. 면적으로 볼 때 경성운동장의 운동시설만을 훈련원공원에서 분리하여 운동장으로 분류하였다고 판단된다. 이전의 조사서에서 유보지의 하나였던 수원이 황토현광장으로 유보장이 삼각지로 명칭이 바뀌었다. 남산공원의 면적은 1928년에 비해 상당히 축소된 것으로 나타나지만, 1925년, 1927년의 자료와 비교할 때 큰 변화는 없다. 남산공원 이외의 공원녹지의 면적에서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보고서에는 시가지에 있는 파고다공원을 제외하고 대체로 산림을 이용하는 것에 편중되고 있다는 언급이 나타나 이용 가능한 공원을 확보하려는 경성부의 계획 목표에 현황이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Table 5. Park and green space status of 1930
No. Type Name Address of Japanese colonial era Area(pyeong/m2)
1 Park (공원) Namsan-Hanyang Park (남산한양공원) Namsan-jeong and Waeseongdae-jeong(남산정 및 왜성대정) 161,618
2 Jangchungdan Park(장충단공원) Dongsaheon-jeong and Seosaheon-jeong(동사헌정 및 서사헌정) 462,344
3 Hullyeonwon Park(훈련원공원) Hwangguem-jeong 6, 7jeongmok(황금정 6, 7정목) 148,602
4 Sajikdan Park(사직단공원) Sajik-dong(사직동) 230,644
5 Hyochang Park(효창공원) Guem-jeong(효창정) 93,212
6 Pagoda Park(파고다공원) Jongno-2jeongmok(종로 2정목) 10,999
7 Railway Park(철도공원) Hangang-tong(한강통) 24,941
Summary - - 1,132,360
8 Walkway (유보지) Suwon1(수원) Taepyeong-jeong1, 2jeongmok(태평정 1, 2정목) 1,794
9 Hwangtohyeon Plaza(황토현광장) Taepyeong-jeong1jeongmok, Near by Singyo(태평정 1정목, 신교 부근) 4,125
10 Samgakji(삼각지) Sin-Yongsan Hangang-tong Samgakji(신용산 한강통 삼각지) 1,650
Summary - - 7,569
11 Field Gyeongseong Field(경성운동장) Hwangguem-jeong 7jeongmok(황금정 7정목) 17,249
Summary - - 17,249
Total - - 1,157,178

Source: Urban planning of Gyeongseong, 1930(경성도시계획서,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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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내용을 보면 도시계획의 목표 연도는 1959년, 추계인구수는 70만 명이다. 계획서는 일본과 구미의 사례를 참조한 구체적인 공원녹지계획의 기준이 나타난다. 공원 면적 산출 기준으로 도시 총면적의 1할, 인구를 고려할 때는 인당 20m2 내외로 제시되며, 이에 따라 총면적 5,528,600m2, 38개소의 계획 공원이 제안된다. 이때 표고 70m 이상의 산림 약 14,750,000m2 가 공원으로 편입되어 전체 면적에 포함되어 계획 공원으로는 달성되지 못하는 계획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공원의 체계는 도시공원, 근린공원, 아동공원, 운동공원, 운동경기장으로 구분하였고, 각 유형에 따른 배치와 면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경성도시계획 공원표’에는 구체적인 계획면적과 명칭, 유형이 나타난다. 대한제국의 궁궐을 경복원, 창덕원, 덕수원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대중에게 개방할 계획이 제시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원녹지계획에 따르면 경성부 총면적에 대한 공원녹지의 비율은 5.1%, 인구 1인당 7.8m2로 증가한다.

5. 1920년대 계획 문헌에서 나타난 공원녹지의 특징

1920년대 경성의 체계적인 도시계획안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만 대부분 계획은 실행되지 못한다11). 이 중 1928년의 조사서가 1920년대의 도시계획안 중 가장 포괄적이고 상세하며, 1920년대 도시계획의 성과는 1930년의 「경성도시계획서」를 통해 정리된다. 1920년대 도시계획 문헌에 나타난 공원녹지의 현황을 보면 1925년 최초 조사에서 나타난 7개의 공원과 3개의 유보지가 1930년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1925년 공원녹지 현황을 보면 7개의 공원 중 훈련원공원, 장충단공원, 사직단공원, 효창원공원은 신규 계획 공원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소유의 공간을 공원화한 공간이다. 남산공원, 파고다공원은 이미 19세기에 조성되어 있던 공원이며, 민간에서 조성한 철도공원도 1915년에 조성되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1920년대에 새롭게 조성된 공원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1920년대 공원녹지계획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1925년 경성운동장의 조성이다. 훈련원공원 내에 조성이 되었기 때문에 공원의 개소가 증가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경성운동장은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가장 대규모의 예산이 집행된 공원녹지 시설이었다. 당시의 기사를 보면 경성운동장은 일본뿐 아니라, 동양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운동시설로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 황태자의 결혼을 기념하는 경성운동장의 조성배경은 도시계획 차원의 공원녹지 확보와는 무관하며, 일반 시민의 이용보다는 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위한 경기장의 성격이 강하다(Son, 2004).

공원녹지계획의 구체적 내용은 1920년대의 다른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으며, 1930년의 계획서에서 유일하게 기술된다. 이때 38개소의 공원이 계획되지만 실제로 조성된 공원은 없다. 1920년대의 경성 도시계획에서 공원녹지의 필요성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았으며, 다른 도시계획 사안과 비교하면 공원녹지계획의 위상이 높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일본 도시계획에서 공원녹지의 중요성이 경성의 경우처럼 낮게 평가되었던 것은 아니다. 1889년의 동경 시구개정사업에서는 공원녹지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실제로 60만평의 공원녹지를 확보했다. 공원녹지계획의 달성률은 69%로, 평균 40%인 도시계획 사업의 달성률보다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Kim, 2014).

계획 내용을 보면 공원을 위생시설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920년대 계획 문헌에서 1928년 조사서를 제외하고 모두 위생 및 보건을 다루는 장에서 공원녹지계획을 다루고 있다. 위생과 보건의 측면에서 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한 서구 도시계획의 영향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12). 하지만 서구의 경우 위생시설로서의 공원의 기능적 측면 못지않게 문화․여가 시설로서의 필요성이 강조되는데, 1920년대 일제강점기의 공원녹지계획에서 이러한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1920년대 공원녹지계획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은 공원을 지역지구제의 한 체계로 다루려는 시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1927년과 1928년의 계획도에서 이러한 공원녹지의 계획 체계에 대한 초기 구상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계획 특징은 1928년에 지역지구제와 별도로 토지구획정리를 통한 공원조성의 구상이다. 이러한 공원녹지의 이중적 계획 틀은 1930년대 도시계획에서 이어진다. 하지만, 1920년대 초부터 3차에 걸쳐 수립된 도시계획은 법적 근거 부재와 재원조달 곤란 등으로 실현되지 못하며, 도시계획 내 포함된 공원계획도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했다(Kang and Jang, 2004).

III. 1930년대의 공원녹지 현황과 계획

1. 1932년 「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1932년 「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는 1927년에 발행된 동명의 보고서와 내용상 큰 차이가 없다. 보고서의 정확한 목적이 기술되지 않으나,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제정되는 상황에서 경성부가 새로운 계획안을 준비하기 위한 조사서였다고 판단된다13). 공원녹지에 관한 내용은 ‘제4장 위생시설’에 나타나며, 현황은 ‘경성부 공원, 유보지 및 운동장 일람표’에 정리되어있다(Table 6 참조). 조사서에서 계획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 공원녹지의 총 개소 수는 1930년의 11개소에서 9개소로 줄었다. 경성운동장과 통합된 효창원공원이 제외되었으며, 유보장에서 유보지로 변경된 삼각지도 제외되었다. 명칭과 개시년도의 일부 수정이 나타난다. 공원의 총면적의 큰 변화는 없으나, 일부 공원에는 상당한 면적 변화가 나타난다. 장충단공원의 면적이 절반으로 줄어든 반면, 효창원공원은 세배 정도의 면적 증가가 있었으며, 경성운동장도 면적이 다섯 배 증가하였다. 각 년의 유지비는 1928년에 비해 큰 변화가 없으며, 시설개요에서도 큰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Table 6. Park and green space status of 1932
No. Type Name Address of Japanese colonial era Area(pyeong/m2) Opening year Total construction cost(円) Annual maintenance cost(円)
1 Park (공원) Namsan Park (남산공원) Namsan-jeong and Waeseongdae-jeong (남산정 및 왜성대정) 53,610(177,223) 明治30, 03 (1897년 3월) Unknown 1,674.000
2 Jangchungdan Park (장충단공원) Dongsaheon-jeong and Seosaheon-jeong (동사헌정 및 서사헌정) 75,062(248,139) 大正8, 09 (1919년 9월) 33,625.000 4,742.000
4 Sajikdan Park (사직단공원) Hwangguem-jeong 6, 7jeongmok (황금정 6, 7정목) 68,819(227,50) 大正11, 10 (1922년 5월) 3,000.000 None
5 Hyochangwon Park (효창원공원) Sajik-dong (사직동) 82,518(272,787) 大正13, 06 (1924년 6월) 11,000.000 None
6 Pagoda Park (파고다공원) Guem-jeong (금정) 3,333(11,019) Seongjong 2nd year (1471년) Unknown 2,171.500
7 Railway Park (철도공원) Jongno-2jeongmok (종로 2정목) 7,558(24,985) 大正4, 10 (1915년 10월) 5,410.670 596.000
Summary - Hangang-tong (한강통) 228,752.67(954,556) - - -
8 Walkway (유보지) Suwon(수원)1 Taepyeong-jeong1, 2jeongmok (태평정 1, 2정목) 543.75(1,798) 大正12, 04 (1923년 4월) 4,750.000 -
9 Suwon(수원)2 Taepyeong-jeong1jeongmok, Near by Singyo (태평정 1정목 및 신교 부근) 1,250(4,132) 大正3 (1914년) Unknown -
Summary - 1793.75(5,930) - - -
10 Gyeongseong field (경성운동장) - Hwangguem-jeong 7jeongmok (황금정 7정목) 22,700(75,041) 大正14, 05 (1925년 5월) 155,000.000 9,972
Summary - - 22,700(75,041) - - -
Total - - 315,393.75(1,042,624) - 208,035 -

Source: Urban planning survey data of Gyeongseong, 1932(경성도시계획자료조사서, 1932), R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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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36년 「조선도시문제회의록」의 내용

1936년 「조선도시문제회의록」은 조선총독부가 전국적으로 실시한 시가지계획령의 목적과 계획 방법을 교육하기 위해 열린 회의의 기록이다(Figure 5 참조). 공원녹지에 관한 내용과 현황은 쿠도 타케시로(工藤武城) 의 “보건사상의 보급에 대해”와 혼다 타츠요시 (本田建義) 의 “공원에 속하는 시설과 보건의 관계”라는 발표문에서 나타난다. 회의록은 개인적 견해의 기록이어서 경성부나 총독부의 공식의견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성의 도시계획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온 경성도시계획연구회의 자료이며, 조선시가지계획령 공표 이후 시가지계획안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공원녹지와 관련된 계획 견해와 현황을 보여주는 유일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현황자료에는 공원의 명칭과 면적만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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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The cover of the Urban Problems Minutes of Joseon

Source: The Urban Problems Minutes of Joseon,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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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인 쿠도가 경성의사회의 대표로서 의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표 제목과 발표자의 신분을 보면 공원은 도시 보건과 관련된 위생시설로 인식되고 있음이 재확인된다. 쿠도는 경성의 공해 문제에 대해 경성의 사망자를 일본과 구미의 도시와 비교하며 심각성을 언급하며, 과도한 인구밀도로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원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의학적으로 요구되는 기준에 따라 도시 총면적의 10%, 인당 20m2의 공원 면적이 필요하며, 대경성 (大京城) 이 되어 면적 비율로는 3백만 평, 인구 비율로는 7백만 평의 공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파고다공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원은 산악지이기 때문에 여가 및 방재시설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안으로 편입된 지역에 공원을 설치하고, 구에 다수의 소아유원 (小兒乳園) 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한제국의 궁과 묘를 공원으로 개방할 것을 건의한다. 또, 다른 발표자인 혼다 역시 위생시설로서 공원의 기능을 강조한다. 그는 서구의 공원 정책을 소개하며, 경성은 물론 일본의 주요 도시도 서구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발표에 포함된 현황표는 대부분의 수치가 1928년의 현황표와 동일하여 이를 참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28년의 현황과 다른 내용도 나타난다. 두 개의 수원이 태평정수원과 신교수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태평정수원은 기존의 수원1과 면적이 같고, 신교수원은 수원2의 소재지가 신교 부근으로 나타나고 있어 같은 장소로 판단된다. 다만, 신교수원의 경우 면적이 1928년에 비해 줄었다. 유보장의 명칭은 삼각지 유보장으로 변경되었다. 현황표에 나타난 공원녹지는 10개소이며, 이전의 유보지도 공원으로 구분하고 있다(Table 7 참조).

Table 7. Park and green space status of 1936
No. Name Area(m2)
1 Namsan Park(남산공원) 278,760
2 Jangchungdan Park(장충단공원) 463,153
3 Gyeongseong Field(경성운동장) 148,862
4 Sajikdan Park(사직단공원) 226,882
5 Hyochangwon Park(효창원공원) 93,375
6 Pagoda Park(파고다공원) 11,018
7 Cheoldo Park(철도공원) 24,985
8 Taepyeong-jeong Suwon(태평정 수원) 1,795
9 Singyo Suwon(신교 수원) 826
10 Samgakji-Yubojang(삼각지 유보장) 1,652
Total 1,229,633
Ratio to total area 0.035
Per capita park area(坪) 1.106
Population per pyeong(坪) 0.904

Source: The Urban Problems Minutes of Joseon, 1936; Kyungin-Munhwasa,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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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40년 「경성시가지계획공원결정안」의 내용

1940년의 「경성시가지계획공원결정안」은 1934년에 공표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른 유일한 법적 공원계획안이다. 이전의 안들에 비해 공원계획 내용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서구와 일본 주요 도시의 사례분석을 토대로 계획 공원의 유형과 기준이 체계적으로 제시된다. 반면, 현황은 이전의 자료에 비해 구체적이지 못하다. 공원녹지의 기능은 포괄적으로 정의된다. 보건 및 위생시설로서 중요성이 강조되며, 시민의 휴양․오락, 아동의 교화․훈육, 도시 미관 개선을 위한 시설의 기능이 언급된다. 이와 함께 화재 시 방화선의 역할을 하는 방재 및 피난시설, 전시 상황을 고려한 방공시설로서의 필요성을 공원계획의 이유로 제시한다.

공원현황을 정리한 일람표에 따르면 공원녹지는 총 11개소로 공원 7개소, 특수정원 (特殊庭園) 2개소, 운동장 2개소로 구분되어 있다(Table 8 참조). 공원의 경우, 앵정공원과 삼청공원 2개소가 신설된 것으로 나타난다. 공원녹지 유형의 변화를 보면 대한제국의 궁이었던 창경궁과 덕수궁을 공원화한 특수정원이 추가되었으며, 이전의 유보지는 제외되었다. 공원이었던 철도공원은 운동장으로 분류되었다. 1932년의 조사자료와 비교하면 대부분의 기존 공원의 면적이 축소된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사직단공원의 면적이 1/4로 축소된 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앵정공원과 삼청공원이 추가되고, 특수정원이 추가되면서 공원녹지의 총면적의 차이는 거의 없다. 결정안은 현황에 대해 대부분의 공원이 경사가 급하며 위치도 편재되어 시민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필요한 아동공원은 제대로 된 시설이 없고 시내에는 유사시에 피난할 만한 공지가 전무 상태이므로 우려되는 바가 크다고 평가한다.

Table 8. Park and green space status of 1940
No. Type Name Address Area(m2)
1 Park (공원) Namsan-Hanyang Park (남산한양공원) Namsan-jeong and Waeseongdae-jeong (남산정 및 왜성대정) 113,300
2 Jangchungdan Park (장충단공원) Seosaheon-jeong (서사헌정) 213,500
3 Hyochang Park (효창공원) Cheongyeop-jeong (청엽정) 236,600
4 Sajikdan Park (사직단공원) Sajik-jeong (사직정) 50,000
5 Samcheong Park (삼청공원) Samcheong-jeong (삼청정) 187,500
6 Pagoda Park (파고다공원) Jongno-2jeongmok (종로 2정목) 11,400
7 Anjeong Park (앵정공원) Anjeong-jeong (앵정정) 1,000
Summary - - 812,800
8 Changgyeongwon (창경원) Waryong-jeong(와룡정) 183,300
9 Special Garden (특수정원) Deoksugung (덕수궁) Jeongdong-jeong (정동정) 66,700
Summary - - 250,000
10 Field (운동장) Gyeongseong field (경성운동장) Hwangguem-jeong 7jeongmok (황금정 7정목) 73,500
11 Railway Park(철도공원) Hangang-tong 16(한강통 16) 23,700
Summary - - 97,200
Total - - 1,160,000

Source: Decision of park plan of Gyeongseong Urban Planning, 1940 (경성시가지계획공원결정안,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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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안은 대공원 18개소, 근린공원 23개소, 아동공원 86개소, 도로공원 13개소의 총 140개소의 13,812,000m2에 달하는 공원을 제시한다(Figure 6 참조). 계획 공원의 면적에 기존 공원의 면적을 포함하면 약 15,000,000m2가 되어 시가지계획 구역 총면적의 11.06% 정도가 된다. 이는 면적 기준 계획 목표인 10%는 초과하나, 인당 면적 기준은 13.6m2로 인당 소요면적 20m2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하지만 산림 면적을 추가로 고려하면 총 도시면적의 20.27%, 한강의 하천부지를 더하면 37%가 되므로 공지량은 충분하다고 언급한다. 도심부에서는 대규모의 토지 취득이 곤란하기 때문에 소규모 아동공원의 계획이 중심이 되고 있다. 대공원과 근린공원의 경우 교외에 계획이 한정되어 있다. 결정안은 구미의 공원제도를 참고하여 ‘공원배치모식도’와 같은 공간적 계획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Figure 7 참조). 공원과 풍치지구를 연결하는 도로공원의 개념이 제시되어 면적 공원계획에 그치지 않고 도시 녹지체계를 연결하려는 구상이 나타난다.

jkila-47-2-117-g6
Figure 6. The park planning map of Gyeongseong

Source: Urban planning of Seoul, 1965 (서울도시계획,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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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Park planning diagram of Gyeongseong Urban Planning

Source: Decision of park Plan of Gyeongseong Urban Planning, 1940 (경성시가지계획공원결정안,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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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30년대 계획 문헌에서 나타난 공원녹지의 특징

1930년대 도시계획의 가장 큰 변화는 1934년의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른 법정계획으로서 시가지계획의 제정이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제정되면서 1930년대의 도시계획은 1920년대와는 다른 틀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1930년대의 도시계획안이 1920년대와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법적 틀과 실행의 방식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연속성을 갖는 계획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30년대에 경성을 포함하여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시가지계획안을 발표한다. 일반적으로 시가지계획의 절차는 첫 단계로 계획구역을 고시하고, 이어서 가로계획과 토지구획정리를 구획한 후 지역제와 공원계획을 차례로 고시하는 순서를 거쳤다14). 따라서 공원계획은 시가지계획의 부분이지만 독립된 계획안으로서 시가지계획의 전체 과정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1930년대의 공원계획 문헌들은 1940년 「경성시가지계획공원결정안」의 준비 과정의 기록으로 볼 수 있으며, 결정안 이후 1940년대의 공원계획 관련 문서는 1940년의 결정안의 수정, 보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만큼 1940년의 공원계획안은 일제강점기 후반부 경성의 공원녹지계획의 종합안일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전체를 통틀어 가장 상세하고 자세한 계획 구상을 담고 있다.

1930년대 도시계획 문헌의 공원녹지 현황을 보면 1940년의 결정안 이전에는 신규 조성된 공원 없이 1920년대의 공원 개소와 동일하며, 일부 면적의 증감만 나타난다. 1940년의 결정안에는 앵정공원과 삼청공원의 두 개소가 신규 조성된 것으로 나타나며, 특수정원의 형태로 창경원과 덕수궁이 공원녹지로 편입되었다. 삼청공원은 1934년에 산림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40년 공원계획안의 수립안과 함께 대공원으로 지정된다. 앵정공원은 1935년 앵정소학교가 만들어지면서 함께 조성된 아동공원이다. 따라서 두 공원은 결정안에 따라 만들어진 공원이 아니라 새로운 공원녹지체계에 편입된 기존의 공원이다.

계획 내용을 보면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위생시설로서 공원의 기능이 강조되나, 전쟁 말의 상황으로 인해 방공․방화시설로의 기능이 중요해진다. 1930년 계획안에 나타난 공원의 종류와 규모에 따른 유치거리를 제시한 계획에서 규모에 따른 공간적 배치까지 고려한 공원계획체계가 나타난다. 또한, 단위 공원의 조성을 넘어서 도로공원을 통해 공원과 풍치지구를 연결하려는 도시 녹지체계의 개념이 제시된다. 1920년대 공원계획에서 나타난 지역지구제에 따른 공원지구가 발전되어 1940년에는 풍치지구가 용도지역으로 지정되고, 1942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이 개정되면서 녹지지역이 지정된다. 도시시설로서 공원은 소규모 공원 조성에 초점을 맞추어 토지구획정리를 통해 조성할 수 있도록 체계화된다. 1930년대 신규 조성된 앵정공원과 삼청공원은 후자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IV. 경성부 공원녹지의 변화

1. 경성부 공원녹지 유형의 변화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 관련 문헌에서 나타나는 공원녹지의 유형과 개수의 변화는 Table 9와 같다. 현황을 보면 1925년부터 1940년까지 공원녹지의 전체 개수는 거의 변화가 없다. 반면, 계획을 보면 1928년까지는 공원의 계획 내용과 현황의 큰 차이는 없다가 1930년에는 38개, 1940년에는 140개로 계획된 공원의 수가 증가한다. 1920년대 일제의 도시계획에서 공원녹지는 큰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가, 1930년에 비로소 계획 측면에서 공원녹지의 중요성이 인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930년 이후에도 계획 목표와 실제로 조성된 공원수에는 큰 폭의 괴리가 나타난다. 이는 공원녹지가 열악한 현실적 조건에서 우선적 실행의 계획 대상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Table 9. Change of number and types of parks and green spaces of Gyeongseong-bu
Year 1925 1927 1928 1930 1932 1936 1940
Number and types of park and green space Park(공원)(7) Park(7) Park(7) Park(7) Park(6) Park(10) Park(7)
Walkway (유보지)(2) Walkway(2) Walkway(2) Walkway(3) Walkway(2) Special Garden (특수정원)(2)
Field (운동장)(1) Field(운동장)(1) Field(유보장)(1) Field(운동장)(1) Gyeongseong field(1) Field(운동장)(2)
Gyeongseong field(1)
Total 10 11 10 11 9 10 11
Number and types of planned park and green space - Park zone (공원지역)(9) Park district (공원지구)(10) Urban Park(도시공원)(7) - - Grand Park (대공원)(18)
Neighborhood Park(근린공원)(24) Neighborhood Park (근린공원)(23)
Children Park(아동공원)(38) Children Park (아동공원)(86)
Sports Park(운동공원)(6) Parkway (도로공원)(13)
Total - 9 10 38* - - 140**

* All of 38 parks were designated as children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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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유형의 변화를 보면 1930년과 1940년 계획에서는 규모와 성격에 따른 위계적 분화가 나타난다. 1930년 공원의 유형은 기능과 규모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으나, 1940년에는 이러한 기준이 체계화가 되며, 각 유형에 따른 자세한 상세 기준이 제시된다. 1930년과 1940년 모두 공원의 유형은 중복설정되어있다. 일제의 도시계획에서 공원녹지의 계획 목표는 서구의 사례를 보았을 때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는데 계획 공원만으로는 이를 달성하기가 어려웠으며, 공원 유형의 중복지정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15). 주목할 점은 1940년 계획에서 아동공원의 수가 현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1938년의 도시계획요람과 1940년의 공원결정안에는 재정상의 문제로 도심지에 토지를 취득하기 어려워 소규모의 아동공원 중심으로 계획을 실행하려는 구상이 나타난다16). 이를 통해 아동공원의 증가는 아동의 복지에 관한 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성이 수월한 소규모 공원에 초점을 맞추려는 계획 방향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1930년의 안이 계획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1940년의 안은 실행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40년에 계획된 공원 유형을 보면 도로공원이 공원과는 구분되는 시설녹지의 개념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시설녹지는 1940년에 처음 제시된 개념은 아니다. 1920년대에 공원녹지 현황에는 공원과는 다른 유형으로 구분된 유보지와 유보장이 나타나며, 이는 일종의 시설녹지로 볼 수 있다. 또한, 1930년의 계획안에는 계획 공원의 유형으로 제시되지는 않지만, 공원도로라는 개념이 제시되고 있다17). 따라서 현황의 구분에서 이미 공원과 녹지가 구분되고 있으며, 1930년과 1940년의 계획안에서는 각각 공원도로, 도로공원으로 공원과 구분되는 시설녹지로 발전된다. 하지만 공원녹지계획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통틀어 공원녹지 현황의 유형과 계획 공원의 유형은 일치되지 않는데, 이는 계획된 공원의 유형을 적용할 만큼 공원의 수가 많지 않았으며, 기존의 공원들은 계획 구상처럼 기능이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황과 계획의 유형 구분의 차이는 또 다른 계획과 현황의 큰 괴리를 보여준다.

2. 경성부 공원녹지 현황의 면적 변화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 관련 문헌에서 나타나는 공원녹지 현황의 명칭과 면적의 변화는 Table 10과 같다. 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도시계획에 따라 신규 조성된 공원은 1940년 결정안에서 나타나는 삼청공원과 앵정공원이 유일하다. 특수정원으로 지정된 창경원과 덕수궁은 기존의 대한제국의 궁이었기 때문에 신규 조성된 공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1940년 이후 계획안에 따라 신규 조성된 공원의 현황은 공식 자료가 없어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기존의 연구에서도 1940년 이후의 신규 공원 조성현황은 일치하지 않는다. 황기원은 1945년도 시설공원 현황에서 신규조성된 공원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Kang and Jang (2004)은 1941년 3월 남대문 공원이 계획된 공원 중 유일하고 조성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연구에서 이러한 판단의 공식적인 인용 출처는 밝히고 있지 않다. Ahn and Ishida (2014)의 연구는 1940년 이후의 공원 조성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고증을 실시하고 있다. 연구는 1940년의 계획과 1959년의 조사자료를 비교하고, 2010년에 현장조사를 실시해 검증하고 있다. 그러나 공식 자료에는 공원계획지로 기술되어 있어 실제 공원이 있었는지는 검증이 어려우며, 현장조사 결과에서 공지나 공원으로 남아있는 경우는 5개소에 불과하였다18). 5개소의 공원 조성 연도는 분명하지 않다.

Table 10. Change of name and total area of parks and green spaces in Gyeongseong-bu
No. Type Name (Openning→change) 1925 1927 1928 1930 1932 1936 1940
1 Park (공원) HanyangNamsan Park(한양남산공원)(1897)→Namsan Park(남산공원)(1932) 161,901 161,901 *278,760 ▼161,618 177,223 278,760 ▼113,300
2 Jangchungdan Park(장충단공원)(1919) 463,155 463,155 463,155 462,344 ▼248,139 463,153 ▼213,500
3 Hullyeonwon Park(훈련원공원)(1919)→Gyeongseong Field(경성운동장)(1928) 148,863 148,863 148,863 148,602 - 148,862 -
4 Sajikdan Park(사직단공원)(1922) 231,049 231,049 226,883 230,644 227,501 226,882 ▼50,000
5 Hyochangwon Park(효창원공원)(1924)→Hyochang Park(효창공원)(40) 93,375 93,375 93,375 93,212 ▲272,787 ▼93,375 ▼236,600
6 Pagoda Park(파고다공원)(1897) 11,019 11,019 11,019 10,999 11,019 11,018 ▲11,400
7 Mancheol Park(만철공원)(1915)→Railway Park(철도공원)(1925) 24,985 24,985 24,985 24,941 24,985 24,985 ▼23,700
8 Walkway (유보지) Suwon1(수원)(1923)→Taepyeong-jeong Suwon(태평정수원)(1936) 1,798 1,798 1,798 1,794 1,798 1,795 -
9 Suwon2(수원)(1914)→Hwangtohyeon plaza(황토현광장)(1930) →Singyo Suwon(신교수원)(1946) 4,132 4,132 4,132 4,125 4,132 ▼826 -
10 Field (운동장, 유보장) Field(운동장)(1908)→Yubojang(유보장)(1928)→Samgakji(삼각지)(1930) 1,653 1,653 1,653 1,650 - 1,652 -
11 - Gyeongseong Field(경성운동장)(1925) - 17,279 - 17,249 ▲75,041 - ▼73,500
12 Park(공원) Samcheong Park(삼청공원)(Forest Park 1934)→(Grand Park 1940) - - - - - - 187,000
13 Park(공원) Anjeong Park(앵정공원)(1935)→(Children's Park 1940) - - - - - - 1,000
14 Special Garden (특수정원) Changgyungwon(창경원)(1940) - - - - - - 183,300
15 Deoksugung(덕수궁)(1940) - - - - - - 66,700
Total area(m2) - 1,141,930 1,159,209 1,254,623 1,157,178 1,042,625 1,229,633 1,160,000

* ▲ Increased, ▼ Decre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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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부터 1940년까지 공원녹지의 총면적은 거의 변화가 없으나, 일부 공원에서 상당한 면적의 변화가 나타난다19). 문헌에 따라 면적이 다르더라도 과거의 자료와 동일한 수치들이 나타나 실제로 공원의 확장과 축소가 이루어졌다기보다는 행정적인 공원의 범위 설정의 변화에 따른 변동이라고 판단된다. 남산공원의 경우, 1928년 면적이 크게 증가하였다가 1932년과 1940년에는 축소가 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주변의 산림지역을 공원으로 편입하고 제외하면서 생긴 변화로 판단된다. 1940년에 나타난 남산공원의 축소는 1932년 남산공원 내에 있던 경성신사가 대규모로 영역을 확장하는데 이에 따른 변경으로 판단된다20). 장충단공원과 효창원공원 역시 문헌의 기술과 계획도의 영역을 보면 상당한 면적의 산림이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1930년과 1940년에 나타난 장충단공원의 면적의 축소와 효창공원의 면적 증가는 남산공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림지역과 공원 영역의 조정에 따른 변화라고 판단된다. 1940년 장충단공원의 추가적인 축소는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기념하기 위한 박문사 (博文社) 조성을 위한 부지의 양도와 관련이 되어있으며21), 1940년 사직단공원의 면적 축소는 1931년 공원 북쪽에 매동보통학교가 설립과 함께 이루어진 필지 분할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22). 하지만 이때 축소된 면적은 3,000평에 불과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남산공원, 장충단공원, 효창공원 면적의 증감은 예산의 부족으로 신규 공원의 조성이 어려웠으며, 설령 예산이 확보되더라도 계획 공원으로는 계획 목표를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산림지역의 공원 편입을 통해 공원녹지의 계획 목표를 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남산공원의 계획자인 혼다 세로쿠 (本多静六)는 산림공원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산지를 공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였고23), 일제강점기의 공원녹지 관련 문헌에서는 지속적으로 산림지역의 공원 편입에 대한 논의가 나타난다. 산림지를 공원면적에 편입하면 경성부의 공원녹지계획 목표를 손쉽게 충족시킬 수 있지만, 실제로 이용이 불가능한 공간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어 산림지의 공원화는 일제강점기 내내 논란을 야기하는 정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40년의 현황에서 나타나는 창경원과 덕수궁의 특수정원 지정도 현실적 한계 내에서 공원녹지의 면적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의 하나였다. 그러나 1930년의 계획안에는 경복궁을 포함한 대한제국의 궁들이 공원으로 편입되었지만 1940년의 계획안에는 이들이 공원으로 지정되지는 않는다. 동경의 황실 정원들이 19세기에 이미 공원화가 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식민통치기에 대한제국의 상징적 공간을 공원화하는 정책이 민감한 사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24).

V. 결론

본 연구를 통해 밝혀낸 일제강점기 경성의 공원녹지의 변화 양상과 공원녹지계획의 발전 과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근대 경성의 도시계획 흐름 속에서 공원녹지계획의 위상은 지속적으로 변화하였다. 공원녹지계획은 일제강점기 초기 도시계획에서 중요한 고려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지만, 후기의 도시계획 과정에서 그 역할과 비중이 커진다. 근대 경성의 도시계획은 1934년 조선시가지계획령의 제정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는다. 1920년대의 도시계획은 1930년의 계획안을 통해 정리되고, 1930년대의 도시계획은 1920년대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공원녹지계획도 법정계획으로 위상이 높아지며 시가지계획을 마무리하는 독립된 계획안으로 수립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통치의 특수성과 전쟁 말기의 상황으로 인해 공원녹지계획은 우선적 실행의 대상은 아니었다. 1940년 「경성시가지계획공원결정안」은 실행을 전제로 한 계획안으로 구체적인 계획적 내용의 대부분은 실행되지 못한 한계가 있다.

둘째, 경성의 공원녹지계획은 발전 과정에는 개념, 체계, 조성 기법 상의 특징적 양상이 나타난다. 개념적으로 1920년대 도시계획에서 공원녹지는 도시위생시설로서 인식되었으나, 1930년대 도시계획 문헌에서는 공원녹지의 다양한 필요성과 역할이 제시된다. 1930년대에는 위생시설로서 역할 이외에도 공원의 문화, 여가, 교육적 기능이 함께 언급되며, 특히 전시를 대비한 방공시설로의 기능이 강조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공원녹지계획의 체계에도 발전된 사항들이 나타난다. 1920년대에 제시된 공원 유형의 구분은 1930년대에 들어 구체적인 공간 배치 방식과 계획 기준이 함께 제시되면서 체계화된다. 또한, 1930년대의 도로공원의 개념은 면적 단위의 공원 조성을 넘어서 도시적인 녹지체계에 대한 구상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공원녹지 조성 기법의 발전이 있었다. 1920년대 도시계획 문헌에서 지역지구제와 토지구획정리 제도를 활용한 공원 조성의 방식이 제시되며, 1930년대에는 이러한 이중의 제도적 실행 방식이 구체화 된다. 지구지역제도에 따라 풍치지구와 녹지지역이 설정되었고, 토지구획정리를 통해 소규모 아동공원 중심의 도시계획시설로서의 공원 조성계획이 마련된다.

셋째, 경성의 공원녹지계획의 내용과 실제의 현황은 상당히 괴리된 양상을 보인다. 공원녹지계획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동안 공원녹지의 수나 면적의 실질적인 증가는 거의 없었다. 1930년의 계획안에서는 38개소의 계획 공원이 제시되나, 단 1개소도 실현되지 못한다. 1920년대에 신규 조성된 시설은 훈련원공원 내에 조성된 경성운동장에 불과하다. 1940년의 공원결정안에서는 140개소의 계획 공원이 제시되지만, 실제 조성된 공원은 앵정공원과 삼청공원 2개소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두 공원 역시 도시계획안에 따라 조성된 것이 아니라, 자연녹지 지역을 공원으로 편입하거나 신규 택지 사업 시 개별적으로 공원을 조성한 결과이다.

넷째, 현실적 제약 속에서 공원녹지를 확보하려는 계획적 노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공원녹지계획은 대부분 실행되지 못했지만, 공원녹지의 양과 질을 향상하려는 계획적 대안들이 제시되었다. 그중 하나는 산림공원 개념의 도입이었다. 대부분의 일제강점기의 도시계획 문헌에서는 경성 일대의 풍부한 자연녹지를 공원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또, 다른 하나는 대한제국 황실 소유의 토지를 공원화하는 대안이었다. 1920년대의 현황에 나타나는 기존 공원은 대부분 신규 조성이 아닌 황실 토지의 공원 지정을 통해서 확보되었고, 1940년에는 추가적으로 궁을 특수정원으로 지정해 공원녹지 면적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또한, 1930년과 1940년의 계획안에는 양적으로 불충분한 공원녹지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공원의 유형을 중복으로 지정하였으며, 1940년에는 토지의 확보가 수월한 소규모 아동공원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규 택지개발지에 공원을 조성하려는 계획적 구상이 제시된다.

본 연구는 도시계획 관점에서 경성 전체의 공원녹지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연구를 보완할 수 있는 자료와 분석을 제시한다. 하지만 개별 공원에 관한 연구의 결과와 계획 문헌에서 제시된 수치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의 연구에서 개별 공원에 대한 설계 및 관리 문헌 등의 자료와 비교 검토하여 계획 차원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Notes

주 1. 강신용은 1995년에 저서 초판을 출판하였으나, 이후 2004년 강신용과 장윤환이 공저한 동명의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개정된 2004년의 저서를 기준으로 내용을 기술하였다.

주 2. 각 문헌의 시설개요의 원문 내용에 대해서는 내용의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아 표의 형태로 포함하지 않고 본문에서만 그 내용을 다루었다. 1925년, 1927년, 1928년, 1932년의 조사서 일람표에 시설개요의 항목이 나타나며, 1925년의 자료와 이후의 자료는 내용상 큰 변화가 없이 대부분 동일하다.

주 3. “본사 주최 부인 견학단원 철도공장을 견학”, (Mailsinbo, 1921. 3. 6.); “만철의 운동회, 작 18일 오전부터 용산철도 공원에서”, (Mailsinbo, 1920. 4. 19.).

주 4. 계산상의 오류일 가능성도 있다. 전체 공원면적과 1인당 공원면적을 역으로 환산하면 경성의 총인구수는 344,647명 이어야 하지만 표에서는 336,354로 8,000명 정도의 큰 차이가 나타난다.

주 5. 손정목은 본 문헌을 1920년대 경성도시계획의 2차안으로 판단한다(Son, 1990: 147-160).

주 6. 오류로 추정되며 정확한 개별 공원면적의 합계는 377,229 (1,247,040 m2) 이다.

주 7. 1927년과 1932년의 문헌을 비교할 때 총공비를 유지비에 기재한 오류로 판단된다.

주 8. 오류로 추정되며, 정확한 개별 공원면적의 합계는 379,522 (1,254,623 m2) 이다.

주 9. 손정목은 1930년의 계획안은 그동안의 결과를 정리하는 의미로 발표한 자료로 추측한다. 염복규 역시 손정목의 의견에 동의하며, 실행에 따른 재원계획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 극소수의 책자만이 출간되었다는 점을 들어 실행을 전제로 한 계획안이 아닌 보고용이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음을 참조 (Son, 1990: 147-160; Yum, 2017: 41-65).

주 10. 염복규는 동일한 위계의 「부산도시계획서」, 「대구도시계획서」에는 상세한 부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경성도시계획서」에도 부도가 있었으나, 소실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Yum, 2017: 59).

주 11. 경성도시연구회는 일본의 ‘도시계획조사회’를 모델로 하여 1921년 결성된 민간단체이다. 경성부나 총독부의 하위기관은 아니었지만, 경성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경성부는 도시계획사안에 대해서 연구회의 자문을 구했으며, 경성의 도시계획조사 사업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법적체계의 미비와 재정상의 문제로 경성도시연구회가 주도한 1920년대의 도시계획은 실행되지 못한다(Park, 2000)

주 12. 일본의 근대 도시계획에 미친 서구도시계획의 영향은 김나영의 논문에서 심도 있게 분석되고 있으며, 서구의 근대 도시계획에서 위생․보건과 관련된 공원의 기능에 관한 내용은 황주영의 논문에서 상세히 기술되고 있다(Kim, 2014; Hwang, 2014).

주 13. 동아일보 1935년 3월 3일 기사에 따르면 총독부 내무국은 1935년 경성, 인천, 개성 등 17개 주요 도시에 대한 시가지계획안을 수립하기 위해 경비 1만 5천 원을 들여 시가지계획조사를 착수한다. 따라서 1932년의 조사서는 경성부가 총독부와는 별도로 작성한 문헌일 수 있다(Yoon, 2016: 71-104).

주 14. 시가지계획이 발표된 도시들은 맨 처음 계획구역을 고시하고, 이어서 가로계획과 토지구획정리를 구획한 후 지역제와 공원계획을 차례로 고시하였다. Jeong, I. H. (2009) A study on ‘land division standard drawing’ in the decision reason statements for town planning. The Architectural Institute of Korea 25 (12): 252.

주 15. 1930년의 계획안과 1940년의 공원결정안에서 일인당 공원면적의 목표는 20m2으로 설정되어 있다. 1940년 공원결정안에서 조사한 서구의 현황에 따르면 경성의 계획 목표 인구와 동일한 해외의 국가의 일인당 공원면적을 보면 영국이 12.87m2, 미국이 14.1m2, 독일이 6.64m2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경성의 공원계획 목표치는 국제적 기준으로 보아도 높으며, 당시 경성부의 재정적 상황을 보면 실현되기 어려운 수치였다(Seoul, 1968: 28).

주 16. 1940년 공원결정안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특히 시가지의 중앙부에 있어서는 광대한 토지의 취득이 실제상 곤란하므로 직면적으로 필요가 통감되는 아동공원의 설치를 주로 하고, 교외지의 아동공원의 배치는 토지구획정리사업의 실시에 의하여 그 배치를 결정함이 편리할 것으로 미루어 이들 구역에 대하여는 대공원과 근린공원의 계획만으로 끝이었다(Seoul, 1968: 30).”

주 17. 1940년 공원결정안에는 공원 외에 공원에 준하는 유로 도로공원과 가원이 지정되어 있다(Seoul, 1968: 26).

주 18. Ahn, S. M. and J. I. Ishida (2014): 163.

주 19. 1928년의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1936년의 자료를 분석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주 20. Park, H. S. (2015): 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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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3. Son, Y. H. and Y. A. Seo (2012): 23-31.

주 24. 강신용과 장윤환은 대한제국의 상징적 공간을 공원화한 일제의 정책이 문화적 말살을 의도한 식민정책이었다고 비판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고증에 근거한 판단이 요구된다. 일본의 경우 이미 1889년 동경시구개정때 황실 정원인 어료림의 상당부분을 공원화했으며, 서구에서도 왕실 공간의 공원화가 일반적이었으므로 경성에 국한된 식민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Kang and Jang,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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