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세계 평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의 축제라 할 수 있다. 고대 올림픽은 신을 모시는 일종의 제례 행사로 시작되었는데, BC 8세기부터 시작되었으니 그 역사가 오래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신의 제례에는 올림피아에서 열리던 올림피아(Olympia)제, 델포이에서 열리던 피티아(Pythia)제, 네메아에서 열리던 네메아(Nemea)제, 코린트에서 열리던 이스토미아(Isthmia)제가 대표적인 축제였다. 그중 제우스 신의 제전이었던 올림피아 제가 가장 성대하고 유명하였다(Figure 1 참조). 특히 올림피아제는 BC 776년에 시작하여 AD 393년까지 4년마다 개최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 문화의 총체였던 고대 올림픽은 로마의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이교도의 종교행사로 간주하여 4세기 말에 중단되었다가 19세기 말 스포츠 마니아이자 세계 평화를 사랑했던 프랑스인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on, 1863~1937)1) 남작에 의해 부활하여 지금까지 세계의 축전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제24회 하계 올림픽이 처음으로 개최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는 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대회가 매우 친숙한 제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올림픽에 참가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제10회 올림픽이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마라톤과 복싱 등 2종목 3명의 선수가 일본 대표로 참가했다. 그 후 1936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11회 올림픽에서는 마라톤, 축구, 복싱 등 7명의 한국 선수들이 역시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하였다. 당시 마라톤에 참가한 손기정 선수의 우승은 우리 민족에겐 올림픽 참가 역사상 가장 반갑고도 우울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시상대 위의 손기정 선수는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두 손으로는 월계수 화분을 받쳐 들고 있다. 우승 트로피를 받고도 고개를 숙이며 화분으로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가린 손기정 선수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이 애처로워 했다. 그 장면은 우리나라 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는데, 독일의 유명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은 “Der traurigste aller Olympiasieger(가장 슬픈 올림픽 우승자)”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손기정 선수의 심정과 성장 배경, 당시 한국의 상황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Figure 2 참조).2)
한편, 손기정 선수가 머리에 쓰고 있던 월계관과 화분에 심어진 월계수는 과거에는 없었던 상징물로 특히 화분에 심긴 월계수를 올림픽 시상식에서 수여한 사례는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또한 월계관과 월계수는 남부 유럽에서 자라는 월계수(Laurus nobilis)가 아니라, 중부 유럽에서 자라는 로부르참나무(Quercus robur)로 흔히 ‘올림픽 참나무(Olympic oaks)’, 또는 ‘히틀러 참나무(Hitler oaks)’로도 불린다.3) 당시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130명의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 모두에게 로부르참나무 월계관과 월계수 화분을 선물하였는데, 이는 독일의 힘과 환대를 표현하고자 했던 의도였다. 당시의 금메달리스트들은 본국으로 귀국하여 부상으로 받은 참나무를 심어 현재 소위 ‘히틀러 참나무’라고 불리는 로부르참나무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자라고 있다.
그런데 손기정 선수가 1936년에 베를린 올림픽에서 받은 것으로 알려진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Pin Oak at Son keechung Memorial Park)’는 수종명이 대왕참나무(Quercus palustris)로 미국이 원산지이다. 현재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가 대왕참나무라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일반인들은 물론 수목 전문가나 역사학자, 또는 관련 분야 종사자들조차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일부 언론이나 책에서는 ‘히틀러가 미국의 대왕참나무를 묘목 때 형태가 비슷한 독일 참나무로 잘못 알았다’4)거나 ‘당시 월계수를 구할 수 없었던 독일 베를린은 대체할 나무로 대왕참나무에 주목했다’ 5), 또는 ‘어린 나무는 품종이 달라도 비슷해 보여 묘목관리자가 착오했을 것이다.’6) ‘당시 독일에서는 월계수나 올리브나무가 없어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참나무 종류로 만든 관과 화분을 부상으로 수여하였다7)’ 등등의 이유를 들어 대왕참나무의 내력을 밝히고 있다. 이런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어린이 도서에도 ‘히틀러가 준 대왕참나무’로 표기되어 있다.8)
그러나 이것은 독일의 역사적-, 문화적-, 자연적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적절치 않은 추론이다. 그 이유는 우선 독일은 참나무를 신성시한 오랜 역사와 문화가 있다. 또한, 독일인들은 자국의 대표 수종으로 참나무9)를 꼽고 있으며, 독일 전역에 3~4종이 자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나치의 문양에도 참나무가 그려져 있다. 게다가 당시 미국과 적대적이었던 독일이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축제에 하필 미국산 대왕참나무를 부상으로 수여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 우승자에게 무궁화 대신 일본의 벚나무 묘목을 부상으로 수여한 격이다.
이와 같은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 본 논문은
– 올림픽과 월계관의 내력,
–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참나무 월계관과 월계수 묘목의 수상 연원,
– 손기정 선수 귀국 후 월계관과 월계수의 관리 및 현황 등을 중심으로 당시의 국내외 관련 기사와 여러 자료를 확인하여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의 정확한 내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1936년 제11회 독일 베를린 올림픽 당시 월계수와 관련된 독일의 신문 기사들과 2014년 출간된 독일 최고 권위의 시사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에 기고된 관련 내용을 분석하였다. 또한 당시(1936년) 국내 신문에 소개된 손기정 선수와 월계수 자료, 그리고 2005년 출간된 >양정고 100년사> 등의 관련 자료뿐 아니라, 국내에 발표된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신문 기사와 서울시 홈페이지에 개시된 관련 내용 등을 검토하였다. 그 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관리 사항들을 파악하였다.
II. 본론
고대 그리스의 신들을 위한 축전에는 올리브나무10)와 월계수11)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올리브나무는 제우스와 올림피아 제전에, 월계수는 아폴론과 피에다 제전과 관련이 깊다.
올리브나무는 헤라클레스가 북극 지방에서 올림피아로 옮겨와 제우스 신전 옆에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기원전 776년부터 시작된 올림피아(Olympia) 제전에서 승리한 자는 ‘제우스의 나뭇가지‘라고 불리는 올리브나무로 만든 화관을 부상으로 받았다. 또한 아폴론이 델포이 신탁소에서 피톤(Phyton)을 물리친 후, 피톤에게 승리한 아폴론을 추억하기 위해 거행되었던 피티아(Phytia)제전12)에서는 월계관이 상으로 주어졌다. 아폴론이 피톤을 죽인 후 월계수 가지로 속죄하고 정화 의식을 치른 것을 계기로 그리스인들은 싸움에서 흘린 피를 월계수를 통해서 속죄하고 정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로마인들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전쟁에 승리한 후에는 곧바로 그들의 무기와 깃발을 월계수 가지로 정화했다. 로마에서는 승전보를 전하는 편지(litterae laureatae)는 항상 월계수 가지로 묶었다. 또한 승리를 축하하는 개선 행진에 최고 지휘관은 승리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전통은 오래 지속되었으며, 월계수는 승리와 개선 행진의 상징으로 바뀌었다(Laudert, 2004).
결국 제우스신을 추앙하며 가장 성대히 열렸던 올림피아 제전에서는 올리브나무를, 아폴론을 추모하여 거행된 피에타 축전에서는 월계수를 승리의 화환으로 사용하였다. 근대 최초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제1회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렸는데. 시상식에서 우승자에게는 은메달과 올리브 가지를, 2등을 한 선수에게는 동메달과 월계관을 부상으로 수여했다. 그 이유도 바로 그런 연유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00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다시 열린 제28회 올림픽에서는 고대 올림픽을 기념하는 의미로 우승자에서 올리브 화환을 수여했다.
한편, 승리의 상징으로 수여되던 월계관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명예로운 시인에게 내리는 계관 시인(桂冠詩人, poet laureate) 칭호로도 사용되었다. 그 밖에도 여러 경기나 학문 등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상장이나 위패에도 월계관을 새겨 넣는데, 예컨대 노벨상의 상장에도 월계관의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포츠를 통해 교육과 문화, 평화에 공헌하며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계승한 인물에게 월계관상(Olympic Laurel)을 제정하고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케냐의 육상영웅 킵 케이노(Kip keino)가 처음으로 수상했다.
참나무는 독일의 오랜 상징이자 현재까지도 독일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다. 독일은 예로부터 참나무를 신성시하고 숭배했다. 참나무를 뜻하는 켈트어 다이르(dair)는 고대 켈트족의 제사장을 뜻하는 드루이드(Druide)에서 유래되었으며, 게르만족은 신성한 참나무를 뇌우(雷雨)의 신(Donar)14)에게 바쳤는데, 이 뇌우의 신을 기념하는 날이 도너스타크(Donnerstag)15)이다.
독일인들의 성씨 중에는 참나무와 관련된 성도 많으며, 독일 지명 중 참나무에서 유래된 지명도 약 1,4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Laudert, 2004). 독일에 자생하는 참나무류는 로부르참나무(Quercus robur)16)와 페트레아참나무(Quercus petraea)17), 푸베센스참나무(Quercus pubescens)18) 등이다. 독일에서는 1983년부터 ‘올해의 나무(Baum des Jahres)’를 선정하기 시작하였는데, 첫해(1983년)에 선정된 나무가 바로 ‘독일참나무(Deutsche Eiche, german oak)’라고 불리는 로부르참나무였다. 종교개혁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마틴 루터(Martin Luther)를 기념하기 위해 독일 전국에 심긴 나무19)도 역시 로부르참나무이다. 독일인들이 참나무 중에서도 특히 로부르참나무를 사랑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독일에서 참나무 잎이 승리와 영웅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813년 독일 철십자 훈장이 시초였다. 프리드릭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는 1813년 브레슬라우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에게 철십자 훈장을 수여했는데(Eugene Godet, 1935), 그 철십자 훈장에 바로 ‘독일참나무’라 불리는 로부르참나무가 문양으로 그려져 있다(Figure 3 참조). 19세기 중반 독일의 체조협회에서는 우승자에게 월계관 대신 참나무 잎으로 엮은 화관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초기 나치즘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으며, 히틀러가 회원으로 있었던 툴레 협회(Thule Gesellschaft)20)의 상징 문양에는 하켄크로이츠 아래 로부르참나무 문양이 그려져 있다(Figure 4 참조). 그 후 나치스(Nazis)의 독일 노동당 표장(標章)에도 독수리가 발톱으로 참나무 엽환(葉環)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나치 독일 노동당 표장은 나중에 나치의 상징이 되었다(Laudert. 2004)(Figure 5 참조).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여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이때 강력한 독일 재건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나치당을 결성한 사람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였다. 1934년 총통이 된 히틀러는 독일의 힘과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1936년 베를린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절호의 기회였다. 당시 종목별 우승자 130명에게는 독일의 상징인 로부로참나무 월계관과 로부르참나무 묘목이 심어진 화분을 부상으로 수여하였다. 그중 로부르참나무 화분을 부상으로 수여하자는 의견은 총통인 히틀러나 선전부장 괴벨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시 베를린시의 정원사였던 헤르만 로테(Hermann Rothe)의 아이디어였다(Trede, 2014a).
당시 독일의 일간지 ‘도이치 자이퉁(Deutsche Zeitung)’의 <올핌픽 우승자에게 수여된 참나무 묘목>이라는 기사에서 참나무 묘목을 받은 우승자가 고국에 돌아가 적당한 장소에 심고 가꾸기를 희망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참나무 묘목은 1년생으로 크기는 약 70cm이며 특별 제작한 화분에 심겨 있었다. 화분에는 “승리의 영광을 위해 자라고, 또 다른 업적을 이루자(Wachse zur Ehre des Sieges, Rufe zur weiteren Tat!)”라고 새겨져 있었다.21) 비슷한 내용의 기사는 당시의 우리나라 신문에도 게재되어 있다. 1936년 8월 16일 자 동아일보에는 <우승자를 표창하는 감남과 상수리, 독일이 다시 부활시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베를린 올림픽에서 수여한 로부르참나무의 내력에 관해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또 ‘분에 심은 상수리나무’라는 사진 설명과 함께 독일의 로부르참나무 묘목 화분의 사진을 싣고 있다(Figure 6 참조).
최근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자가 받은 로부르참나무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실태를 추적한 내용을 <히틀러의 올림픽 참나무(Hitlers Olympia-Eichen)>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하였다(Trede, 2014b). 기사는 당시 여러 우승자의 히틀러 참나무와 관련된 사진과 내용을 다루고 있다. 육상 선수로 참가해 4개의 금메달을 딴 미국의 조지 오웬스(James Cleveland “Jesse" Owens) 선수도 미국으로 귀국한 후 부상으로 받은 로부르참나무를 심었으며, 그중 1그루가 아직 자라고 있다고 한다(Figure 7, 8 참조). Figure 7에서 볼 수 있듯이 오웬스가 양손에 들고 있는 참나무는 손기정이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로부르참나무이다. 여자 원반던지기에서 금메달을 딴 독일 선수 기젤라 마우에르마이어(Gisela Mauermayer)도 로부르참나무 묘목과 월계관을 받았다(Figure 9 참조). 그러나 위의 기사에는 손기정 선수의 월계관 기념수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 부상으로 수여한 로부르참나무와 대왕참나무는 같은 참나뭇과지만, 자생지와 생태적-, 형태적 특성이 서로 다른 종이다. 본 논문에서는 간략하게 형태적 차이만을 설명하고자 한다. 로부르참나무와 대왕참나무의 형태적 차이는 잎의 모습으로, 특히 잎의 가장자리가 확연히 구분된다.
로부르참나무는 독일의 대표적인 참나무로 수고 약 30∼40m까지 자라며, 흉고직경은 약 1m에 달한다. 잎의 형태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신갈나무와 매우 유사하다. 잎의 길이는 약 10∼15cm, 폭은 약 5~8cm에 달한다. 잎의 가장자리는 물결처럼 파상거치이고 엽병은 아주 짧다(Figure 10 참조). 반면에 대왕참나무는 미국 동북부지역이 자생지로서 수고 약 30∼40m, 흉고직경 약 1.5m에 이르고 속성수이다. 잎의 길이는 약 10∼16cm, 폭은 약 5~12cm에 달한다. 잎의 가장자리는 5∼6개로 깊게 갈라져 있고 끝이 날카롭다. 엽병은 약 2∼6cm에 달해 비교적 길다(Figure 11 참조).
손기정 선수가 받은 월계관은 등록문화재 제489호로 현재 손기정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Figure 12 참조). 부상으로 받은 월계수 묘목은 기념관 앞뜰 잔디밭에 심어져 현재는 큰 나무로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서울시가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라는 명칭으로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Figure 13, 14 참조).
월계관은 시상대에서 손기정 선수가 머리에 쓰고 있던 것으로 잎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의 형태라던가 잎의 크기 등을 고려할 때,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것이 확실하다. 월계관의 크기는 좌우 약 20cm, 앞뒤 약 25cm 정도이고, 앞쪽에 베를린 올림픽 상징 장식과 그 아래 ‘제11회 육상선수’라는 리본이 달려 있다. 머리 뒷부분에 해당되는 월계관의 가운데 부분은 큰 잎으로, 머리 앞부분에 해당되는 월계관 앞부분은 작은 잎으로 장식된 것을 볼 수 있다. 월계관 기념수는 대왕참나무로 현재 수고 약 15m, 흉고직경 약 60cm에 달하며, 근원부 주변에 약간의 외과수술 흔적이 있지만, 생육은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기념수 바로 옆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한편, 1987년 양정고등학교가 만리동에서 양천구로 이전 시 기념수 종자를 배양하여 10그루를 교정에 심었다고 하며, 2011년과 2020년에는 기념수에 버섯균이 침입하고 수액이 유출되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아 외과수술을 시행하였다. 한편, 2017년에는 열매 70개를 채취하여 국립수목원에 보냈다고 한다. 현재 기념수의 종자는 국립수목원 종자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안내판에는 “…원래 그리스에서는 지중해 부근에서 자라는 월계수의 잎이 달린 가지로 월계관을 만들었으나, 독일의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미국 참나무의 잎이 달린 가지를 대신 사용하였다”라는 설명문이 적혀있다(Figure 13 참조).
한편,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일주일 뒤인 1936년 8월 16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우승자를 표창하는 감남과 상수리, 독일이 다시 부활시켜>라는 기사에서, “…백림 올림픽 스타디움 시상대에 올라서서 받는 월계관은 아직 순결한 독일 여자들이 손으로 친히 짜서 만든 영광의 감람관(橄欖冠)22) 중에 하나입니다. 손형이 들고 올 상수리나무23)는 과연 어디다가 심어서 그의 자라는 것을 볼 것인지 알아볼 만합니다. 고대에 독일의 신성한 재판은 달밤 상수리나무 옆에서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독일이 이번에 각 종목에 우승한 사람에게 주어져 각 고국에 심어 달라고 하는 것은 2척(60cm)가량 되는 나무를 분에 심은 것인데, 이번에 손형이 가지고 올 나무는 분에 심은 것을 세관이 하락하지 않으므로 뽑아서 가지고 올 수밖에 없지만, 세관에서는 규칙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합니다. 그러나 만일 환영 나가는 분이 전문가 하나를 데리고 가서 흙을 담은 분을 배에 가지고 올라가 세관의 입회하에 옮겨 심어 가지고 오면 된다고 합니다.”라고 화분에 심은 로부르참나무에 관해 상세히 적고 있다.
손기정 선수는 올림픽이 끝난 후, 독일에서 출발하여 배와 비행기를 갈아타며 10월 17일 고국에 도착했다. 손기정 선수가 받은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월계관은 현재까지 그대로 보관되어 있지만, 문제는 교정에 심은 대왕참나무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첫째, 손기정 선수가 부상으로 받은 참나무 묘목은 원래 대왕참나무였다.
둘째, 귀국 도중이나, 귀국 후 겨울을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일로 로부르참나무가 대왕참나무로 뒤바뀌었을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추론은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 이유는 전술했듯이 당시 우승자에게 수여한 로부르참나무가 전 세계에 퍼져 자라고 있는데, 유독 손기정 선수에게만 대왕참나무를 수여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손기정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월계관도 로부르참나무로 제작된 것이다. 월계관은 독일산 로부르참나무로 만들고 월계수는 미국산 대왕참나무를 수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단서는 당시의 손기정 선수의 수상식 사진이다(Figure 2 참조). 거의 같은 모습은 월계관을 쓰고 월계수 화분을 들고 활짝 웃는 미국 육상 선수 조지 오웬스의 사진이나 독일의 기젤라 마우에르마이어 선수에서 찾아 볼 수 있다(Figure 7, 9 참조). 사진만으로도 손기정 선수의 머리에 쓴 월계관과 화분에 심긴 월계수가 같은 수종이며, 잎의 형태로 보아 대왕참나무가 아니라 로부르참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로부르참나무 잎과 현재 대왕참나무의 잎 형태는 확연히 다르다(Figure 15, 16 참조).
두 번째 추론으로는 손기정 선수가 오랜 기간 동안 배와 비행기를 갈아 타면서 일본을 거쳐 귀국하였으므로 그 과정 중에 묘목이 바뀌었을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귀국 후 겨울 동안 월계수를 보관했던 양정고 김교신 선생24)의 일화가 단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양정고 체육 교사 김연창 선생이 김교신 선생과 월계수에 얽힌 이야기를 쓴 내용이 <양정 100년사>에 소개되어 있다. 다음은 김연창 선생의 글이다(Yangjeong General Alumni Association, 2006).
“…그해 겨울 동안 보관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마다 김교신 선생은 자기가 월동하도록 보관하겠다고 고집하였으나 나는 온실이 있는 집에 보관하자고 하였다. 그때 선생은 화를 내면서 “내가 생물학자인데 말라 죽일까봐 그럽니까? 나에게 맡기세요”하고 노기가 등등한지라 일임하고 말았다. 그래서 김 선생은 월계수를 자기 방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듬해 봄이 되어 김 선생은 월계수 분을 들고 와서 “큰일 났어요. 월계수가 말라 죽게 되었어요, 어쩌죠?” 하면서 큰 걱정을 했다. 나는 행여나 김 선생의 기분을 잡칠까 봐, “고집을 부리더니 기어코 죽였구나”하는 말을 꿀꺽 삼키고 온화한 말씨로 “잘해봅시다. 살리도록 연구하죠”라고 했더니 “김연창선생의 말대로 어느 온실에 부탁할 것을 내가 공연히 고집을 부려 실패했습니다. 어이 하죠?” 하고 풀이 죽어 말했다. 나는 “기왕 말라 죽은 것이라면 별도리가 없는 노릇이니 뿌리가 살아 있는지나 확인하시죠.” 했더니, 김 선생은 월계수를 분에서 뽑아보고 “아직 뿌리는 살아 있으니…” 한다. 우리는 의논 끝에 월계수를 들고 김 선생이 뿌리로부터 10센티미터가량 칼로 잘라서 교정 한 모퉁이 지금 월계수가 있는 곳에 고이 심고 둘레에 목책을 쳐서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고 물을 주어 보살폈다. 천우신조, 천만다행으로 얼마 지난 후에 월계수 싹이 점점 자라서 지금 있는 그대로 교실 높이까지 커져 양정학교의 발전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25)
양정고등학교의 생물 교사인 김교신 선생은 온실에 심어 관리하자는 체육 교사 김연창 선생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집을 부려 자기 방에서 보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겨울을 지나면서 피해를 보아 겨우 뿌리만 살아 있는 월계수를 이듬해 봄에 교정에 심어 살린 것이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교정에는 로부르참나무가 자라야 하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대왕참나무로 자라게 된 것이다. 혹시 이 과정에서 나무가 뒤바뀔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추정해볼 수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인 관련 자료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결국 본고에서는 독일산 로부르참나무가 북미산 대왕참나무로 뒤바뀐 결정적 실마리를 찾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추후의 과제로 남겨 놓고자 한다.
III. 결론 및 제언
손기정선수의 올림픽 제패는 일제강점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자부심과 민족정기를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손기정 선수가 부상으로 받은 묘목은 현재 서울역 서쪽 만리동 언덕의 손기정 체육공원에 자라고 있다. 서울시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된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는 손기정 선수의 불굴의 정신과 당시 쓰라린 과거의 역사가 담긴 나무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매체에서는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가 독일의 로부르참나무가 아니라 미국의 대왕참나무인 내력에 대해 히틀러의 단순 착오에 의한 결과라거나 다소 억지스러운 추측으로 그 내력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기념관 앞에 자라고 있는 대왕참나무를 당시 수여받은 진품 월계수라 믿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서울시 홈페이지의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설명문이나 손기정 기념관의 대왕참나무 앞에 세워진 안내문에도 그릇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만약 전후 사정을 따져보고 그 이유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그 내력을 진실처럼 공표한다면 또 다른 역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고에서는 여러 자료를 근거로 당시 손기정 선수가 독일에서 수여받은 월계관과 월계수는 독일의 대표적인 참나무인 로부르참나무였음을 밝혔다. 최근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의 보도에 히틀러참나무라고 불리는 당시 로부르참나무의 내력과 현황이 상세히 발표되었다. 이 기사에 의하면 손기정 기념수가 대왕참나무가 아니라 로부르참나무인 것이 다시한번 입증되었다. 또한 당시의 손기정 선수 사진뿐 아니라 다른 종목의 우승 선수들이 부상으로 받은 로부르참나무 묘목 사진과 그 묘목이 현재까지 자라고 있는 자료가 남아있어 더욱 그 사실을 증명한다. 억지스럽게 꿰맞춘 사실은 진실이 될 수 없다. 결국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손기정 선수가 받은 월계관과 월계수는 모두 독일의 대표 수종인 로부르참나무라는 사실이다.
본고가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의 잘못된 내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다음과 같은 제언을 드리고자 한다.
우선, 손기정 기념관 잔디밭에 자라고 있는 대왕참나무는 여러 우여곡절과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음으로 지속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또한 당시에 올림픽 우승자가 부상으로 받은 월계관과 월계수는 모두 독일의 대표 수종인 로부르참나무였으므로 지금이라도 관련된 로부르참나무의 열매나 묘목을 구해 손기정 기념공원에 심는 것도 의미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그간의 사정과 내력을 상세히 설명하는 새로운 안내판을 설치할 것을 제안하며, 서울시는 홈페이지와 기타 정부 기관에 게시된 내용을 수정하고 새로운 사실들을 고지해야 할 것이다.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는 것은 이미 고인이 되신 손기정 선수의 정신을 기리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