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국제화의 흐름 가운데 고유성과 정체성 찾기는 문화와 관련된 학문 분야의 화두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동아시아권의 나라들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세계인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현대의 시각과 세계화된 문화적 언어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현시대의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키워드를 가지고 전통정원의 특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용미학’이란 공간을 느끼고 감상하는 수용자 중심의 개념이다. 공간의 의미를 구체화시키는 주체는 수용자이며, 수용자의 감상과 느낌이 빠진 공간 해석은 불완전한 것이다. 한국 전통 정원은 정원을 즐기는 감상자의 시와 글은 풍부하게 남아 있어 문화창작이 이루어지는 풍류의 장소이며, 이를 통한 수심양성(修心養性)과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끼는 장소였다(Jung, 1986, Jo and Seo, 2008). 이러한 측면에서 전통정원은 감상자가 의미를 채워가는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진상(眞相)을 최고로 여겨 정원의 형태를 미완성으로 남겨두고서 자연의 상태를 즐기도록 하는 기법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통정원은 이러한 ‘틈의 개념’이 살아 있는 정원이다. 정원 안에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떠한 감상을 남겼는가 하는 감상의 측면이 중요한 정원이라 할 수 있다. 당대의 사람들이 정원을 어떻게 활용하였고,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는가를 규명하는 것이 정원문화 가치의 본질에 근접하는 방법이다(Jo and Seo, 2008). 따라서 정원 해석 연구의 관점 중 감상을 다루는 것도 중요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원에 남겨진 감상 또한 그것의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 특히 별서정원은 조영가 개인의 사유적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이상세계의 원형이 공간 속에서 표현되는 대표적인 장소가 정원이라 할 때(Kim, 2017), 별서정원은 조영가의 내면의 이상적 원형이 담겨 있고, 그곳을 타인이 감상할 때 다양한 해석의 기작이 발생할 수 있다. 작가-작품-독자의 틈을 전제로 독자 중심의 해석을 강조하는 수용미학으로 이 공간을 해석해 본다면 현대의 감상자의 기대지평이 반영된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전통정원의 조영시점, 형태적 해석을 넘어선 풍부한 인문적 해석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Chon(1999)은 소쇄원은 다양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소쇄원 안에서는 나만이 느끼는 주관적인 감상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이해도 모두 가능하여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가벼운 즐김이 있다면 동시에 소쇄원의 구성요소와 내재적 의미를 탐구하는 분석적 연구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소쇄원의 감상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가치와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수용미학의 틈 개념에 근거하여 대표 전통정원의 하나인 소쇄원을 해석하였다. 궁극적으로 전통 공간을 현대의 언어와 국제화된 문화이론으로 재해석하여 전통 정원이 가진 감상 측면의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Ⅱ. 수용미학과 한국 전통공간
수용미학은 독일의 Hans R. Jauss가 <Literary History as a Challenge to Literary Theory(Literaturgeschichte als Provokation fur die Literaturwissenschaft, 1967)>에서 언급한 이후 세계의 문학사와 미학이론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론이다(www.doopedia.co.kr ‘수용미학’). 작가와 작품의 관계만을 다루던 ‘생산의 미학’에서 벗어나 작품과 독자의 관계에 있어 역동적 역사과정을 주제로 하는 ‘수용과 작용의 미학’을 열었다.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문화적 상황의 지평(地平)과 독자가 위치하는 상황의 지평은 상이하다. Cha(1985)는 작품의 감상과 평가는 이 서로 다른 두 지평의 일치와 어긋남이라는 상호작용 속에서 전개되며, 이렇게 해서 작품의 수용자는 ‘작용사(作用史)’로서 기술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예술작품이란,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는 진리표현 양식이 아니라, 수용자의 작품 경험에서 그 내용의 의미가 비로소 활성화되고 구체화된다. 공간설계에서는 일부러 이러한 지평의 어긋남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것을 ‘생소화(生疏化)’라 한다. 이것은 수용자의 신체참여(공간 이용)를 통해 생길 수 있는 ‘이벤트’, ‘미확정적인 공간’을 유발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Gil, 2003). 공간의 경계를 한정하지 않고, 공간의 성격을 한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한국 전통공간에서도 나타난다(Figure 1 참조).
수용미학의 틈의 개념이 전통정원의 해석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검토를 위해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전통정원의 특성을 깊이 있게 탐색한 연구로는 정동오를 비롯한 조경 및 건축의 학자와 설계가, 미학자의 연구가 있다.
Jung(1986)은 전통정원이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에 중국의 영향을 받아 왔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국, 일본과는 다른 특징 있는 양식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그 특징을 신선사상의 배경, 직선적인 윤곽선 처리, 원지의 형태와 구성의 단조로움, 수심양성의 장, 풍류생활의 장, 자연과의 일체감 형성으로 말한다. Lim(2005)은 ‘가변성’과 ‘무형성’을 통해 전통 공간을 이야기한다. 대표적 사상으로 불교의 공(空)사상과 도가의 비움 사상을 든다. 건축공간에서 이 두 사상은 ‘가변성’과 ‘무형성’으로 표현된다. 가변성은 불교의 공사상을 따르는데, 탈정형, 탈인위, 탈정확, 질박함, 은근함, 오묘함으로 설명한다. 무형성은 한국의 지리적 특징에 맞게 적용된 건축적 특징이다.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재료를 사용하고, 자연의 원리를 모방한다. 그렇게 자연과 일체감을 갖는다. Kim(1999)은 전통건축공간의 특징을 ‘집합 이론’으로 말한다. 건물과 건물, 건물과 담장 등 구성요소들이 모인 집합체의 집합 방법이 곧 건축의 유형이 된다고 말한다. Kim(1988)은 ‘무즉유(無卽有)’의 개념으로 전통공간을 설명한다.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세상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하는 만화경의 세계와 같이 비가시성과 산만함의 미학적 가능성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권삼윤, 박정욱, 김인철, 승효상은 같은 차원에서 전통 공간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틈의 미학, 공(空)의 미학, 비움의 미학, 빈자의 미학은 모두 공 사상과 비움 사상의 영향을 받은 공간의 특징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채움보다 비움이 중요한 공간, 정(情)을 통해 완벽해지는 ‘미완(未完)의 정원’ 등의 메시지는 ‘틈 개념’으로 귀결된다. 전통 공간은 개별적인 것들의 조합이며, 그 개별적인 것들 사이에 빈공간이 존재한다. 그러한 빈공간은 사람의 생활과 삶, 정(情)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상 학자들의 주장을 ‘틈개념’과 연관하여 자연관과 공간관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자연관의 특성은 사상의 측면, 표현의 측면, 감상의 측면으로 나눌 수 있으며, 공간관의 특성은 물리적 틈, 미확정성, 비움으로 나뉜다. 자연관을 살펴보면, 사상의 측면에서 자연 일부로 여겨 일체감을 추구하는 점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표현의 측면에서 자연의 묘사와 상징이 아닌 진상(眞相)을 추구하고, 감상의 측면에서 인간과 자연의 정신적 교감, 정나눔을 중시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공간관을 살펴보면, 물리적 틈, 미확정성, 비움으로 나뉜다. 물리적 틈은 건물의 중첩적 배치와 그사이에 생겨나는 빈 공간이다. 미확정성이란 공간이 무한하게 변할 수 있는 가변성을 말한다. 비움은 공간의 비움과 여백이 더 중시되고, 여백의 공간에서 다양한 쓰임으로 채우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수용미학적 공간설계와 유사하다. 수용미학의 틈도 완결된 형태와 의미의 직접적 전달을 경계하고, 감상자의 감상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Table 1 참조).
III. 소쇄원 해석의 틀
소쇄원은 명승으로 지정된 별서이다. 이곳은 소쇄공 양산보(瀟灑公 梁山甫)가 조영하였다. 전체 면적은 약 4,600m2이며,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 복원 중수하고 현재 대봉대(待鳳臺), 광풍각(光風閣), 제월당(齊月堂)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민간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이었던 곳이다(www.soswaewon.org).
양산보는 자신의 집 인근에 소쇄원을 조영하고, 정자 건물을 세웠다. 온돌방과 마루가 함께 있어 기숙과 휴양을 같이 했던 생활의 장소이다. 별뫼 지역1)에는 당대의 문인들이 성산가단2)을 형성했다. 그들은 활발한 인적교류를 통해 예술적 향기가 높은 문학작품의 산실을 이루었다. 자미탄의 원림은 문학 활동이 이루어진 무대와 같은 곳이다. ‘수용미학의 작가-작품-독자’의 구조로 살피기 적합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연구의 방법은 수용미학의 구조와 전통공간의 자연관을 종합하여 분석의 틀을 구성한다. 이후 소쇄원을 사례로 하여 독자적 감상을 통해 해석한다.
작가-작품-독자의 삼중 구조로, 작가의 측면에서 조영가의 생애와 사상, 정원에 내재한 철학을 살피고, 작품의 측면에서는 정원의 형태적 특성을 찾는다. 독자의 측면은 정원 안에서 풍류를 즐기는 당대의 사람들의 감상행위와 현재에 그 공간을 조명하는 현대인의 감상으로 나누어 살폈다.
문학의 틈은 작가와 독자의 지평의 어긋남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존재하지만, 공간의 틈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생소화(生疏化)’시켜 우연적인 신체 참여와 의미의 다양화를 시도한다. 공간설계에서 작가-작품-독자의 성격은 ‘작가: 의도를 가진 주체’, ‘작품: 형태적 특성’, ‘독자: 행위와 행태를 보이는 대상’이 된다. 이 성격은 전통공간을 분석하는 기초적 틀로 적용된다. 틈개념의 구조에서 살핀 바와 같이 ‘작가-작품-독자’의 삼중 구조에 따라 공간설계에서 보이는 성격을 ‘생소화, 미확정성, 구체화’로 구분하였다. 이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작가, 작품, 독자의 형태에 따른 것인데, 작가는 공간의 성격을 주도하는 점에서 의도를 가진 주체로서 공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작품은 형태적 특성으로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그리고 독자는 행위와 체험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수용하거나, 또는 전혀 예상하지 않은 행위와 감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독자의 예측 가능한 행위나, 예측 불가능한 행위 모두 작가가 부여하는 의미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이상의 조작적 정의를 통해 전통정원을 해석하기 위한 분석의 틀을 도출하였다(Table 2, 3 참조).
Ⅳ. 수용미학으로 해석한 소쇄원
중심 관찰대상은 공간구성 요소 중 조영분석과 관련도가 높은 미의 기준, 표현방식, 이상향이 담긴 곳으로 하였다. 조영가가 살던 시대적 배경과 자신의 생각이 담긴 과거지평을 알기 위해 ‘양산보의 생애에 있었던 사건’과 ‘소쇄원에 남겨진 언어들’을 풀이하였다.
<처사공실기>에는 양산보가 어렸을 때 이곳 계곡에서 놀다가 물오리가 헤엄치는 대로 따라 올라가게 되었는데, 지금 소쇄원 자리에 이르자 작은 폭포와 못을 이루며 계곡이 깊어지고, 주위의 풍광이 너무도 수려하여 언젠가는 여기에 와서 살 뜻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 후 기묘사화로 낙향하게 된 후 소쇄원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정확한 조영 시기는 알 수 없다3).
양산보는 효심이 지극하였고 은일의 삶을 추구하였다4). 소쇄원이 500년의 역사의 풍파를 거치면서도 원형 그대로 남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된 데는 양산보의 유언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그는 평천장기를 따라 자손 대대로 땅을 팔지 말 것이라고 유언하였다.
‘소쇄원에 남겨진 언어들의 풀이’를 통해 양산보 조영 당시의 과거지평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원림과 건물의 각 이름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소쇄원(瀟灑園)>은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 ‘깨끗하고 시원하다’라는 말이다. 소쇄원은 ‘물 맑고 시원하며, 깨끗한 원림’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면 ‘속세를 떠난 느낌이 있다’라는 뜻이다. 또 소쇄원을 두고 노래한 김춘택(金春澤)과 윤인서(尹仁恕)의 시를 통해 소쇄원의 ‘소쇄’가 뜻하는 산수의 맑고 깨끗함보다는 마음과 기운이 맑고 깨끗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5) 애양단6)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마음은 효심이다. 소쇄원 사실에서 소쇄공의 행적과 관련된 내용을 읽다 보면 그에게서 스며나는 관념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효’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제월당과 광풍각은 양산보가 주무숙7)을 존경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황정견이 주무숙에 대한 인물평8)에 있는 글을 빌려 ‘광풍각’과 ‘제월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월당은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이므로 제월은 ‘비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광풍각은 청량한 바람을 맞이하기 좋은 공간이다. 대봉대(待鳳臺)와 초가 정자는 시원한 벽오동 그늘 아래서 ‘봉황을 기다리는 곳’이다. 김봉렬은 봉황이 매우 귀한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상징한다고 말하며, 소쇄원을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공간으로 해석한다(Kim, 2006). 손님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마음 때문에 여러 문인이 거쳐가며 그처럼 많은 흔적을 남기고 가도록 만든 것이다. 정기호도 대봉대(待鳳臺)와 오동나무가 기다림과 봉황에 의지하려는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말한다(Jung, 1998). 또한, 봉황은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상징이다. 은자의 삶을 살면서도 세상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현세적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작가적 관점에서 양산보의 삶과 조영관을 이해한다면 소쇄원을 “삶의 철학이 이름들로 묻어나는 정원”이라 하겠다.
소쇄원의 형태분석은 미확정성(未確定性)에 초점을 두고 관찰하였다. 자연형태와 대조를 이루는 기하학의 형태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외원과 내원의 대조적인 것, 미확정적인 공간구성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동선의 흐름, 공간의 확장, 개념적 공간의 의미, 여러 기록을 통한 소쇄원의 공간 분석 자료를 활용하였다.
먼저, 자연지형과 대조를 보이는 요소들로는 ‘계류와 방지’, ‘다리와 수로’, ‘담과 단’이 있다. 소쇄원의 계류(오곡류)는 다섯 번 굽이치는 물의 흐름을 보이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방지(소당(小塘)과 산지순아(散池蓴芽))는 네모 모양으로 닫혀 있어, 이 두 가지 요소가 대조를 이룬다.
또, 자연지형과 내원의 경계도 대조를 이루는데, 소쇄원에 둘러쳐진 몇 개소의 담장은 외원과 내원을 구분지어주는 경계이다. 하지만 높이가 낮아 폐쇄적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골바람을 막아주고, 영역의 한계를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오곡문 글자가 새겨진 담장은 물의 흐름을 막지 않고, 특별히 물을 위한 입구를 모양내지도 않고 그냥 돌 몇 개를 쌓아 벽이 지나가는 받침만 받쳐놓고 있다. 자연지형에 반대되는 직선의 요소만으로 경계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을 받지 않게 하는 절제된 모습이다. 여러 개의 단도 자연지형에 맞추어 여러 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단은 모두 직선으로 필요한 만큼만 층을 나누고 있다. 소쇄원에 담장이 많은 이유는 이 지역이 지네형국10)이기 때문에 담장을 쌓아 지네의 기를 눌렀다. 또, 지네와 대응하여 소쇄원 반대편 마을 이름을 닭뫼라 부른다. 이것은 풍수사상에 따라 지형과 경계(담장)의 형태적 대립을 가능하게 하는 사상적 원인이 된다.
다리도 형태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소쇄원에는 투죽위교(透竹危橋), 협로수황(夾路修簧), 약작(略彴), 그리고 수로인 고목, 이렇게 네 개의 다리가 있는데, 투죽위교11)와 협로수황이 아치형이지만, 약작과 고목은 직선의 원목 형태를 보인다.
음양사상을 보이는 예로 광풍각과 제월당을 분리하는 담의 형태가 있다. 이 두 개의 건물은 마치 태극 문양처럼 분리되어있다. 초정과 소당(小塘)의 관계를 음양으로 해석한다(Park 2001). 초정을 중심으로 경치가 부채를 펼치듯 좌우 균형을 맞추어 반원형으로 나열된다. 그 경치는 음양의 조화를 꾀하며, 음지인 물(水)의 부분과 양지인 산(山)의 부분이 완벽한 태극의 형상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가 심겨 있는 계곡은 굴곡과 자연미가 살아 있고, 화목이 심겨 있는 화계는 평면과 인공미를 살리는 구성의 대비도 보인다. 음양 사상은 전통공간에서 발견하게 되는 음과 양의 이원의 성격을 보이는 예이다(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1983).
따라서 이원성의 관점에서 소쇄원을 정의한다면 “인공의 문양이 자연의 질서에 맞춰 배치되어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정원”이라 하겠다.
소쇄원의 공간에서 보이는 미확정성은 ‘경계’와 ‘흐름, 방향성’, ‘공간의 성격’ 그리고 ‘공간의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 확정적인 경계와 흐름은 물리적 요소에 의해 관찰할 수 있고, 미확정적인 공간의 성격과 영역은 비물리적인 요소인 공간의 활용이나, 관념상의 공간 영역이 이에 해당한다.
먼저 미확정적인 경계는 열려 있는 담, 문과 입구에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담장이 경계를 만들고 있는데, 모든 담이 닫혀있지 않아 공간을 한정 짓지 않고 있다. 이렇게 막히지 않은 담장은 소쇄원의 공간을 한정하지 않고, 공간을 한정하지 않는 전통 정원은 관념적으로도 자유롭다. 담장은 폐쇄감이 있기 마련이어서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움을 파괴할 수 있는데, 소쇄원은 대문이 없는 개방 공간과 돌다리를 놓여진 듯 담장 밑으로 냇물이 자연 그대로 흐르게 한다. 절묘한 개방성,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인공의 겸손이 바로 이런 곳에서도 드러나고 있다(Yoo, 1992). 절묘한 개방성, 이것은 미 확정적인 경계로 생긴 소쇄원의 고도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입구와 경계가 열려 있는 것은 공간의 흐름도 그만큼 자유롭게 한다. 담이 방향성을 강요하지 않아서 공간 안에서의 동선의 흐름도, 시선의 방향도 규제받지 않는다. 이것은 다만 동선과 시선을 유도하는 길의 방향성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건물의 배치에 따른 방향도 그러한 자유로움을 보인다.
공간의 성격이 미확정성을 보인다는 것은 한 공간의 성격을 정해놓지 않아 자유롭고 다양한 사용이 가능한 특징을 말한다. 소쇄원은 삶의 공간이고, 사상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에게 강학하는 학문의 장소이며, 풍류와 위락의 공간으로 제공되어 당대의 문인들이 ‘누정가단(樓亭歌壇)’을 형성하게 됨으로써 이곳은 풍경에서나 의미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공간의 영역은 관념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쇄원의 넓이는 보통 내원(內園) 영역을 이야기한 것이다. 물리적인 면적이 그러하지만, 외원(外園)까지 범위를 확대한다면 이보다 훨씬 넓은 정원이 된다12). 그리고 관념상의 소쇄원은 무등산을 넘어 나주의 금성산까지 확대된다. 소쇄원 진입부로 연장해 보면 창암촌13)부터 수박정, 황금정, 행정에 이르고, 오곡 문 쪽으로 연장해 보면 세 개의 골짜기에 둘러싸인 영역인 절등재, 고암동, 옹정봉, 한천정사, 죽림재에 이른다. 또한 소쇄공 집안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은 소쇄공의 묘소가 있는 가마터로부터 현재 충민사가 위치한 화암촌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이었다고 전해진다. 별서정원의 외부공간구조를 담장 안의 내원, 담장 밖의 가시권에 속하는 외원, 정원공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향 권역의 3개 영역으로 나누고 있으며, 공간요소의 상징성과 차경체계의 의미 표상을 바탕으로 시조의 기승전결 형식을 이용한 고찰도 있다(Chon, 1999).
소쇄원의 공간 철학에 가장 많이 적용되는 개념은 ‘무이구곡(武夷九曲)’14)이다. 이는 주자가 학문을 닦던 곳이라 하여 성리학자들에게 유토피아였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당쟁에 회의를 느껴 이러한 도교적 은일과 은둔에 대한 동경을 꿈꾸는 이가 많았다. 소쇄원을 무이도가와 관련해 보면, 내원과 외원의 이 일대는 김인후의 무이도가 해석15)과 결부시킨 유추해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천득염도 소쇄원의 영역과 공간에 대한 분석에 있어 그 근본은 공통된 인식을 가지지만 관찰시각과 표현방법에 있어 다소 차이를 가진다고 말한다. 과거 양산보가 소쇄원의 공간 범위를 어떤 관념을 가지고 조영하였는지 우리는 추측으로 가름하지만, 현재는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소쇄원의 영역을 다양하게 나누고 있다.
따라서 미확정성의 관점에서 소쇄원을 정의한다면 “열린 경계로 인한 억지스런 방향의 강요가 없어 흐름이 자유롭고, 관념에 따라 얼마든지 확장할 수도, 나눌 수도 있는 자유로운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소쇄원을 중심으로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기록이 남아있다. 소쇄원의 시문은 전체 111편이며, 양산보를 중심으로 송순, 김인후, 고경명, 정철 등이 활동하였고, 후세대에 송시열도 소쇄원에 애착을 가진 인물로서 그의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외에도 소쇄원 조영 세대에 포함되는 여러 인물이 있지만, 본 논문에서는 풍류적 감상자 입장에서 감상을 남긴 인물인 송순, 김인후, 고경명, 정철의 감상을 살펴보았다. 역사 속 인물들의 기록을 통해 살핀 소쇄원은 안빈낙도의 세계로 묘사하고, 그 안에서 행해지는 활동에서 신선처럼 풍류를 즐기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송순과 정철에게는 소쇄원은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은 공간으로 비춰진다. 면양집 연보에 담긴 송순16)의 감상에는 슬픈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가련한 매화를 보고 탄식을 내뱉고, 새도 자신을 조롱한다는 야속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찾아오는 이가 없다는 외로움의 표현이나, 속된 마음을 씻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도 나타난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멀리 떠나 먼지 하나 없는 이곳에 와보니’라는 글에서 수심이 가득하고 괴로운 마음을 소쇄원에서 정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철17)은 소쇄원 초정에 부치는 시에서 손님이 와서 취하고 깨지도 않는다는 취흥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삶의 희로애락에 함께 하는 친구이다. 소쇄원에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는 술에 취해 쓰러져 쉴 수 있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김인후와 고경명은 소쇄원의 정원 요소를 대상으로 감상을 남겼으며 소쇄원 구성요소의 재미와 자연의 탐미를 느낄 수 있다. 김인후는 소쇄원 48영18)에 소쇄원의 건축물, 첨경물, 조경 식물, 날씨와 사계, 밤과 낮의 변화, 산거 등을 담아내고 있다. 소쇄원의 아름다운 경치를 소요자적하면서 자연을 즐기고, 이를 관조하면서 자연탐미의 경지에 드는 정경을 그렸다. 이곳의 자연경관을 빌어 태평성세와 양산보 가문의 무궁한 번영을 축원하는 도의(道義)를 함축하고 있다. 고경명19)은 직유적 표현을 구사하여 소쇄원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조담(槽潭)이 흘러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소리는 가야금, 거문고 소리와 같고, 조담 위에 서린 노송의 가지는 덮개처럼 노래하고, 작은 집은 그림으로 꾸민 배로 표현한다. 광풍각의 분합문은 펼치면 우산 같다는 표현에서 그의 흥미로운 시적 표현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소쇄원을 관념 속의 공간으로 느끼고 있고, 공간구성 요소들을 표현하고, 노래할 때도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관념적인 표현을 많이 한다.
송시열20)은 이곳을 자주 순방하였고,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소쇄원도와 현판을 남겼다. 현재의 남아 있는 소쇄원의 모습에 흔적을 가장 많이 남긴 감상자이다. 소쇄원도는 소쇄원 48영에 영향을 받아 그려진 개념도로 소쇄원 48영의 시적 감흥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21).
그들은 소쇄원에서 풍류를 즐기며 글과 그림과 시로 감상을 남겼다. 유난히 많은 감상을 낳게 한 소쇄원은 풍류의 장이었음과 동시에 문단이 되었다. 풍류활동과 감상을 통해 소쇄원을 정의한다면 “시서화(詩書畵)를 통해 시적표현으로 승화되는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전통 정원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는 정원이기에 현대인의 감상도 소쇄원을 완성하는 부분이라 판단된다. 더구나 현대 시각에서 나온 감상에는 당대에 있을 수 없던 내용이 많다. 본 논문에서 살핀 연구자들의 감상은 답사기를 책으로 편 연구자인 유홍준22), 천득염23), 김개천24), 김봉렬25), 박정욱26), 신영훈27), 박거루28)의 감상을 살펴보았다. 이들의 감상을 정리해 보면 소쇄원의 형태 구성과 자연 순응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오늘날의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는 표현들도 있어 흥미를 더한다.
현대적 시각의 감상을 살펴 보면, 먼저, 소쇄원 의미를 “양산보의 생애와 삶의 철학과 일체화하여 감상을 펼치는 성향”을 보인다. 유홍준이 말하는 ‘호화판 인생의 풍류, 반민중적 성격’은 양산보가 소쇄원을 경영할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상황에 의문을 갖고 말한 표현이다. 천득염이 말하는 ‘유교적 은일과 서구적, 현세적 자연관’은 양산보가 낙향하여 은일자의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관직에 욕심을 두지 않은 것일 뿐, 현실적이고 사유재산을 중시하는 양산보의 삶의 자세에 주목하였다. Kim(2005)도 양산보가 세속에서 벗어나 있었을 뿐, 교육과 치평 등 현실적 염원을 가지고 있었음에 주목하고 있다.
둘째로, “선인들의 예술성에 감복하는 성향”이다. 신영훈과 김봉렬, 박정욱은 선인들의 특별한 안목과 정원을 시로 승화시킨 예술혼을 극찬하였다. 더불어 그러한 선인들의 안목과 예술성을 본받아야 함도 지적한다. 유홍준은 현대인의 문화적 감수성으로 복원을 하는 것은 원래 없는 것만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셋째로, “현대인의 자세에 대한 반성”이다. Yoo(1992)와 Park(1996)은 소쇄원을 복원하는 일과 답사객의 문화의식을 들어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Ⅴ. 결론
수용미학 이전에는 작가가 작품의 모든 의미를 결정하였다면, 수용미학 이후에는 독자의 존재를 중시하여, 작가와 시대와 생각이 다른 독자가 작품의 의미를 완성한다. 본 논문에서는 작가-작품-독자의 삼중 구조와 공간설계에서의 틈개념의 성격(생소화, 미확정성, 구체화)에 따라 소쇄원을 해석하였다. 작가적 측면에서는 조영가 양산보의 사상과 철학을, 작품의 측면에서는 정원의 형태적 특성을, 독자의 측면에서는 소쇄원에 남겨진 감상과 기록을 중심으로 살피었다.
첫째로, 조영 분석 결과, 당시의 역사적 사건과 조영가의 글을 통해 양산보의 사상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정원에 남겨진 한자어, 즉, 각 요소의 이름의 뜻풀이를 통해 조영의식을 알 수 있는 흔적이었다(Table 4 참조).
둘째로, 형태 분석 결과, 이원성과 미확정성을 발견하게 된다. 자연적 형태와 이원성을 보이는 인위적인 형태를 사용하였는데, 정원을 이루는 문양은 인위적인 문양이 많이 쓰였으나, 그것들이 놓인 방식을 보면 자연을 왜곡하지 않고 자연 질서에 순응함을 알 수 있다. 일정한 방향성도 통일성도 없고 동선을 강요하지도 시선을 고정시키지도 않는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김한배가 말한 무즉유(無卽有)의 철학처럼 시각화, 고정화되지 않아 질서가 없는(無)듯 하지만 그 없는 것(無)이 미확정성으로 분명히 존재(有)한다. 또한, 규모와 경계도 한정짓지 않는 미확정성을 보인다. 이러한 미확정성은 관념의 자유가 허용되는 정원을 만들었다(Table 5 참조).
마지막으로, 활동과 감상 분석은 당대의 풍류활동을 통한 감상과 현대적 시각에서의 감상으로 나누었다. 김인후, 정철 등은 소쇄원에서 풍류를 즐기며, 글과 그림과 시로 감상을 남겼다. 소쇄원은 이들 풍류객에 의해 시어(詩語)로 승화된 정원이다. 전통정원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완성되는 정원이기에 현대인의 감상도 소쇄원을 완성시키는 중요 요소로 판단된다. 더구나 현대의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감상을 통해 긴 시대동안 존재해온 소쇄원의 과거지평과 기대지평의 틈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Table 6, 7 참조).
소쇄원은 조영가의 삶과 풍류객의 철학이 정원 곳곳에 이름으로 묻어남을 발견하게 된다. 형태적으로는 자연과 인공의 조화는 관념에 따라 공간의 규모와 형태가 자유롭게 변하는 공간이며, 정원이 가진 내재적 가치가 다양한 활동과 감상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풍류활동을 통한 감상이 정원의 의미를 풍부하게 하였고, 현대의 감상에서는 소쇄원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성격이 중심을 이룬다.
앞서 이론적 고찰을 통해 전통공간의 특징을 살핀 바와 같이 정동오를 비롯한 학자들은 전통정원의 자연순응성에 대해 동양의 사상적 바탕에서 기인한 것이며, 미완의 형태로서 진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지금까지의 연구가 정원의 형태와 조영에 담긴 사상적 측면을 중심으로 하였다면, 본 논문은 감상자의 입장에서 정원을 바라보는 것을 추가하였다. 감상자의 해석을 중심으로 전통정원을 다루어 참여를 통한 정원의 의미를 풍부히 하려는 시도다. 감상자를 주목하는 수용미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하여 전통정원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 이 논문의 의의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관점과 공간 원리인 무정형, 비움 등의 특징이 미학적으로 공유된 개념이라고 볼 때 수용미학을 통해 새로이 발견되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점에서 한계를 지니나, 감상자를 공간 해석의 주체로 가져와 그 중요성을 발견한 점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소쇄원에 관한 백여개의 시문이 있고, 높은 인지도와 방문율을 가진 정원이기에 많은 감상기록을 활용한 분석 연구가 필요하다. 현대인의 시각을 밝히는 것도 흥미로운 연구가 될 것이다. 나아가 전통적 자연관에서 확장되는 미학 이론, 그것을 통한 전통공간의 재해석과 재현방식에 관한 연구로 확장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