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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徐有榘)의 향촌 주거환경 조성에 관한 구상

심명주 *
Myung Joo Shim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대만국립양명교통대학 인문사회과학원 인문사회 교육 중심 겸임교수
*Adjunct Professor, College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National Yangming Chiaotong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Myung Joo Shim, Adjunct Professor, College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s, National Yangming Chiaotong University, Taipei 112034, Taiwan, Tel.: +886-933931307, E-mail: secolaw@naver.com

본 논문은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형비포치」를 통해 본 서유구의 향촌공간 구상』의 일부를 수정 보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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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Feb 11, 2022; Revised: Mar 31, 2022; Accepted: Mar 31, 2022

Published Online: Apr 30, 2022

국문초록

이 논문은『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제14지『이운지(怡雲志)』의 1권「형비포치(衡泌鋪置)」에 수록된 향촌의 주거 환경 조성에 관한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구상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임원경제’ 기획 실천을 위한 토대인 향촌의 주거 공간은 서유구가『임원경제지』를 통해 지향한 바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서, 본고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원림·간소(園林·澗沼)⟩ 는「형비포치」를 구성하는 네 부분 중 두 번째 주거환경 및 조경을 과 관련된 내용이다. 서유구는 ⟨원림·간소(園林·澗沼)⟩ 를 통해 당시 문인들 사이에 이상적 정원에 대한 영감을 준 정도로 이해되었던 명말 유민 황주성의「장취원기」를 조선적 풍수관에 입각해 해독하고, 장취원의 내용으로부터 배운 이상적 주거 환경 조건을 조선의 향촌 주거에 실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본고에서 고찰한 서유구의 중국 문헌에 대한 접근 방식과 이를 통해 배운 내용을 조선에 적용하는 태도는『임원경제지』⟩예언(例言)⟩에서 천명한 ‘조선만을 위한 내용을 채록한다’라는『임원경제지』 저술의 목표를 보여주는 일례이자 서유구의 지향을 알아 볼 수 있는 중요성을 띠고 있다.

ABSTRACT

In this paper, we have examined Seo Yu-gu’s concept of rural home landscaping by reviewing the contents in Wonrim· Ganso in Hyungbipochi. The origin of his concept of rural residential landscaping reflects the Joseon Fengshui perspective following Bokgeo Sayo. Keeping in mind the requirements for living environment based on the Joseon Fengshui perspective, Seo Yu-gu interpreted Jiangjiuyuanji and introduced the components of ideal living that he had obtained from it in ways applicable and suitable to rural homes in Joseon. Jiangjiuyuanji, which contains the natural elements such as mountains, water, fields, and trees, could have been well received by Joseon scholars. As Seo Yu-gu explained in Sangtaekji, it had all the components of Nakto. In sum, constructing the hedges with three layers to promote the safety of rural residents and protect the food sources, utilising water sources for rural homes in various ways, and creating a beautiful courtyard Seokgasan and ponds were Seo Yu-gu’s ways of reproducing the requirements for Nakto described in Jiangjiuyuanji such as a safe living environment surrounded by mountains resembling a lotus flower castle, a plentiful water source, and a beautiful natural environment based on the principle of ‘Bokgeo Sayo’. In other words, through the content of his writing Wonrim·Ganso, he was articulating his thoughts on how to realise the ideal living conditions described in Jiangjiuyuanji in ways applicable to rural homes in Joseon. In the extended context of Imwon gyeongje ji, such deliberation of Seo Yu-gu shows a glimpse of the goals and practices he pursued through it. The content of Wonrim·Ganso in Hyungbipochi truly manifests Seo Yu-gu’s approach to and understanding of Chinese literature. Moreover, his suggestions for application in rural Joseon villages verify the orientation and practical goals of Imwon gyeongjeji as he stated in the preface that ‘the book was written specially for Joseon’.

Keywords: 임원경제지; 형비포치; 원림간소; 장취원기; 향촌 주거 공간
Keywords: Imwon Gyeongje Ji; Hyungbipochi; Wonrim·Ganso; Jiangjiuyuanji; A Rural Residential Space

Ⅰ. 서론

본 고는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향촌(鄕村) 주거 환경 조성에 관한 구상을 고찰한 연구이다. 조선 후기 문인 서유구가 찬술한『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1)는 향촌에 거주하는 사인(士人)들의 생활에 참고가 되도록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구축해 놓은 거질의 생활백과사전, 즉 유서(類書)이다.『임원경제지』는 모두 16개 분야로 이루어져 있으며 농림축산업은 물론이고 어업, 천문, 건축, 의학, 의례 등 당시 실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지식을 800여 종의 문헌을 참고하여 서유구의 학문 체계 속에 녹여 정리해 놓았다. 서유구는『임원경제지』 ⟨예언⟩(Seo, 2005)을 통해『임원경제지』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가지 큰 주제가 식력(食力)과 양지(養志)2) 로 대표되며, 식력은 먹고사는 실생활 문제와 관련된 것이고 양지는 휴식과 교양 등 문화 예술 활동과 관련된 내용이라 밝히고 있다.

그중 향촌 주거(住居) 조성과 관련된 저술은 문화예술백과사전으로 알려진 제14지『이운지(怡雲志)』의 1권「형비포치(衡泌鋪置)」3)에 수록되어 있으며, 서유구가 기획한 향촌 주거(住居)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임원경제지』 각 지와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살펴볼 수 있다(Kim, 2014; Shim, 2019).「형비포치」의 구성은 ⟨총론(總論)⟩, ⟨원림·간소(園林·澗沼)⟩, ⟨재료·정사(齋寮·亭榭)⟩, ⟨궤탑·문구(几搨·文具)⟩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촌 생활의 조건과 전반적인 주거 조성에 관한 간략한 소개를 담은 ⟨총론⟩에 이어, ⟨원림·간소⟩에서는 주거 환경 및 조경의 문제를 논의하고, 세 번째 ⟨재료·정사⟩에서는 구체적인 향촌 주거 건축물의 조영 방법을 서술하고, 마지막 ⟨궤탑·문구⟩에서는 주거 내부의 인테리어에 해당하는 기물 배치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본 고에서는「형비포치」를 구성하는 네 가지 내용 중 주거 공간 구성을 위한 주변 환경과 조경, 즉 주거 공간을 위한 밑그림이 수록된 ⟨원림·간소⟩의 내용을 통해, 서유구가 기획한 향촌 주거 환경의 내용과 의미를 알아보도록 한다. ⟨원림·간소⟩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첫 번째로 중국 명말 청초의 문인 황주성이 저술한 이상적 원림 구상에 관한「장취원기」4)와 조선의 이상적 원림을 설명한「용도서·귀문원」의 도해에 관한 내용과 함께, 두 번째로 조선 향촌에서 실제로 조성할 수 있는 주거 환경 및 조경 요소에 관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얼핏 보아, 이상적 원림과 실제 주거 환경의 내용이 크게 관련성이 없는 단순한 나열식 서술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원림·간소⟩의 상세한 내용 고찰을 통해, 서유구는「장취원기」에 수록된 이상적 원림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건들을 바탕으로 조선 향촌에 활용할 수 있는 점들을 축출하여 실제 주거 환경 조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서유구는 황주성이 저술한 상상의 원림 공간인 ‘장취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의 향촌 주거 환경 조성에 필요한 실질적인 내용을 구상하는데 영감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관련된 논의를 위해 본고에서는 먼저「장취원기」에 대한 서유구의 이해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원림·간소(園林·澗沼)⟩에는「장취원기」의 거의 전문이 수록되어 있으며(Ahn, 2001), 이렇게 장편의 내용을 수록한 의도는 서유구가 황주성의「장취원기」를 조선의 향촌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모범적 사례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고5), 이에 관해 심도 있는 고찰을 진행해 보고자 한다. 이어서,「장취원기」를 통해 파악한 이상적 주거 환경 요소들을 서유구가 조선 향촌에 실질적으로 응용해 보고자 한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 서유구가 조성하고자 한 ‘조선의 풍토에 적합한 이상적인 향촌 주거 환경’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고찰해 보도록 한다. 나아가 본고에서는 본문을 통해 살핀 서유구『임원경제지』의 ‘임원경제 기획’의 가장 중요한 물리적 토대라 볼 수 있는 향촌 주거 환경 조성과 관련된 일례를 통해, 서유구가『임원경제지』 ⟨예언⟩에서 천명한『임원경제지』는 ‘오로지 조선만을 위한 책(此書專為我國而發, 故所採)6)’이라는 저술의 지향(指向)을 확인해 보도록 한다.

Ⅱ. 장취원기에 대한 서유구의 이해

「장취원기」에 대한 서유구의 이해에 앞서, 서유구가 생각한 향촌의 이상적인 생활을 실현할 수 있는 자연환경과 조건이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서유구의 향촌 주거 환경 구상의 출발점은 조선 후기 진산진수(眞山眞水)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적 주거 풍수관7)(Choi, 2014; 2015)이라 볼 수 있다. 서유구는 「형비포치」 ⟨총론⟩(Seo, 2019)의 내용을 통해 임원의 생활 조건과 주거지 조성을 위한 주변 환경에 대해서 말한 바 있다.

주거지 주변의 일곱 가지 경관요소(山居七勝 : 以怪石奇峯、走泉、深潭、老木、嘉草、新花、視遠七者爲勝.), 나무와 바위의 배치를 통한 자연 환경의 조성(居山有四法:樹無行次, 石無位置, 屋無宏肆, 心無機事), 숲과 물이 그윽한 곳이 명산에 거주하는 것과 맞먹는 좋은 입지(卜築娛老 : 不能卜居名山, 卽于岡阜迴複及林水幽翳處)

라는 등의 내용을 통해 일단 주거지 주변의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터를 잡는 것이 실제 주거지 조성보다 선행되는 일이라 밝히고 있다. 「형비포치」 ⟨재료정사⟩ 부분에 수록된 여러 종류의 주거 공간 서술의 말머리에서 건축 공간이 들어서는 자연환경 조건인 ‘입지’부터 설명하는 사실을 볼 때, 서유구는 향촌 거주를 위해 공간의 ‘입지’ 즉 환경 조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임원 생활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살 만한 삶의 터전 즉 환경 조건을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일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살 만한 삶의 터전을 조선 땅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유구가 ⟨총론⟩에서 인용한 중국 저서들 속에서 발견한 이상적이라 생각되는 향촌 생활 조건을 조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물리적 환경 조건에서 조선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선 사람들만의 이상적인 생활 방식으로 구현해 내려면 먼저 우리 땅의 어느 곳이 좋은 곳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단순히 산과 물이 있는 곳에 집을 짓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서유구는 이러한 조건을 서유구 자신이 살아가는 조선 땅에서 조선 고유의 방식으로 실현하고픈 소망으로 현실적인 주거 환경을 위한 조건을 알려주고자 했다(Ahn, 2019). 이를 위해 서유구는『임원경제지 상택지(相宅志)』에서 이러한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은 어떤 곳이며 어떤 요건을 구비해야 하는지에 관해 설명하며, 지리(地理), 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의 네 가지 조건을 이상적인 거주 생활을 위한 ‘복거(卜居)’의 요소로 들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Seo, 2019).

복거는 살 곳의 첫째가 지리, 둘째는 생업을 경영할 수 있는 입지조건 곧 생리이며, 셋째는 미풍양속인 인심, 넷째가 환경인 산수라 한다. 이들 네 가지 요소 중 단 하나만 부족하여도 낙토가 될 수 없다. 비록 지리적 조건이 좋으나 생리, 즉 생계유지가 어려우면 오래도록 거주하기 어렵고, 지리와 생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나 마을 사람의 인심이 좋지 않으면 거주함에 후회가 있고, 근처에 아름다운 산수가 없으면 거주자의 성정을 맑게 할 수 없다. / 徐有榘, 『林園經濟志』, 『相宅志』 卷1, ⟨卜居四要⟩, “凡卜居之地, 地理爲上, 生理次之, 其次人心, 其次山水, 四者關一, 非樂土也. 地理雖佳, 生利乏則不能久居 ; 生利雖好, 地理惡則不能久居; 地理及生理俱好, 而人心不淑, 則必有悔吝; 近處無山水可賞處, 則無以陶瀉性情.”8)

여기서 지리(地理)라고 하는 것은 땅의 형태나 주변의 지리적 형국(形局: 어떤 일이 벌어진 형편이나 국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생리(生理)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여건이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깊은 산속에서 세속(世俗)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피해야 하고 오히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들판이 가까운 곳이 좋다. 다음으로 인심(人心)이라고 한 것은 함께 사는 주변의 사람들이 어떠한가의 문제이다. 인심이 좋은 곳이면 화목하고 평화로운 일들이 많겠지만 인심이 흉악한 곳에서는 흉한 일들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관념에 따르면, 서유구가 생각하고 있는 살기 좋은 이상적인 터는 결국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생업을 해결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꼽은 산수(山水)는 마음을 고요히 하여 성정을 닦을 수 있는 곳을 의미하지 반드시 깊은 산속이나 절경의 풍광을 지닌 곳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서유구가 제시하는 주거지를 고르는 4가지의 주요한 원칙은 기존의 저술에서 보여주는 다소간 추상적인 해설9)과는 달리 좀 더 실용적인 관점을 토대로 제시된 듯하다. 다시 말해, 서유구가 말하는 이상적 주거지인 ‘낙토(樂土)’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나 ‘유토피아’와 같은 환상적인 이상형이 아니라 향촌의 좋은 지리 조건 속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함께 사는 사람도 좋고, 산수도 좋아 오래도록 생활할 수 있는 곳을 의미한다. 즉, 서유구가 생각한 조선만의 이상적인 향촌 생활을 위한 조건은 생업을 운영하며 살아가기 좋은 곳을 택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단순히 생업에 좋은 지리적인 조건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좋은 환경을 갖추고, 주변 산수와 경관까지도 고려하는 보다 확장된 거주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함께, 서유구는『임원경제지 상택지』 점기(占基) ⟨총론⟩의 ‘육욕육유(六欲六有)’(Seo, 2019)에서 향촌의 이상적 주거지인 ‘낙토’의 조건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복거에는 육욕(六欲)과 육유(六有)가 있으니, 여섯 가지 바람직한 바인 육욕(六欲)은 첫째로 산이 있어도 너무 가파르거나 낮아도 너무 낮은 언덕이 아니어야 한다. 둘째로 집이 호사하더라도 너무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도 너무 누추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로 동산은 구불구불하게 연결되어 집을 둘러싸야 한다. 넷째로 샘이 준설되어야 한다. 다섯째로 들판은 넓으면서도 햇빛이 잘 들어야 한다. 여섯째로 나무는 오래되어야 한다. ‘육유’로는 첫째 집의 가장자리에 텃밭이 있어 채소를 가꿀 수 있어야 하고 둘째로 텃밭의 가장자리에는 논밭이 있어 찰벼나 메벼를 심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논밭의 가장자리에는 샘이 있어서 고기를 잡거나 물을 댈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하천 밖에는 산기슭이 있어야 하며 다섯째, 그 기슭 밖에는 산봉우리가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문필봉이나 얹은머리나 구름이 솟아나는 모양처럼 멀리서도 바라볼 만해야 한다. 여섯째 또 반드시 살 곳의 집 안팎에는 수십 집이 있어 도적이 대물을 훔치는 일을 경계하고 물난리와 화재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마을을 이룰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말을 모질게 하는 사람이 그 사이에 끼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살 곳을 고르는 방법의 대략이다. / 徐有榘, 『林園經濟志』 『相宅志』 卷1, 「總論」, ⟨六欲, 六有⟩, “卜居有術 : 山欲其高不至嵂, 卑不至塿 ; 宅欲其華不至汰, 儉不至陋 ; 園欲其迤而拱, 坪欲其曠而陽 ; 樹欲其故, 泉欲其渫. 宅之畔有圃焉, 可蔬可蓏 ; 圃之畔有田焉, 可秫可秔 ; 田之畔有泉焉, 可漁可漑 ; 川外有麓, 麓外有峯焉, 如筆格如螺髻如潑雲, 可望而眺也. 又須局內外有編戶數十百, 可以警盜竊資水火, 而最不可使蓬其心銛其舌者廁於其間, 以敗人意思, 此其大略也.”10)

위의 ‘육욕육유(六欲六有)’ 중 ‘육욕’ 부분은 주거지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물리적 환경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동산, 샘, 들판, 나무는 자연적인 것이고 집은 인위적인 건물에 해당하나 크게 보면 물리적 조건이다. 두 번째로 ‘육유’는 향촌에서의 실제 생활과 생계 해결 문제와 관련한 것으로 논밭이 필요하고, 물 사용에 문제가 없어야 하고, 산수는 멀리 보이는 경관이 아름다우면 좋고, 인심은 주변에 인가들이 모여 살아 상부상조할 수 있으면 좋다고 설명하며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말을 모질게 하는 사람이 그 사이에 끼어서 사람들의 생각을 망치게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육욕(六欲)은 복거사요의 지리, 즉 지리적인 형국을 자세히 설명한 것에 해당하며, 육유(六有)는 복거사요의 생리, 산수, 인심에 관해 서유구가 생각한 사회·문화적 요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가옥(家屋)을 중심으로 인근 텃밭과 텃밭 주변에는 논이 있고, 논 근방에는 물을 댈 수 있는 샘과 하천이 있으며, 이들을 둘러싼 동산은 다니기 불편하지 않게 나지막하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이왕이면 보기 좋은 문필봉(文筆峰: 붓의 끝처럼 생긴 산봉우리)이면 좋다고 말한다. 또한 수십 호 정도가 모여 살아 서로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돕고 살아가는 모습이 서유구가 조선 땅에서 이상적이라 생각하고 실현하고자 한 향촌 생활이다.

그럼, 이상 살펴본 조선의 향촌 주거를 위한 낙토 조건인 ‘복거사요’ 및 ‘육욕육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유구가 소개한 중국의 이상적 생활 공간으로 소개된「장취원기」가 담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Seo, 2019).

장취원은 정해진 장소가 따로 없으며, 오직 천하의 산수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빼어난 곳을 골라 만든다. 그 땅의 주위로는 모두 높은 산과 험준한 고개가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어 마치 연꽃 모양의 성(城)과 같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모두 겹쳐져 있기도 하고, 구부러져 있기도 하고, 큰 산이 작은 산을 둘러싸기도 하고, 작은 산이 작으면서도 큰 산보다 높기도 하지만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이 산들의 이름은 모두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산은 오직 좌우 두 산뿐이니, 왼쪽은 ‘장산(將山)’이고, 오른쪽은 ‘취산(就山)’이다. 산의 높이는 각각 수천 길이 되나 장산 높이가 취산보다 더 높은데, 취산의 높이는 장산과 비교해서 보자면 대략 1/3 정도 낮을 뿐이다. 산의 모습을 보면 그 내부는 움푹 파여 있고 바깥쪽은 가파르게 솟아 있어서 속세와 떨어져 단절되어 있으므로 서로 통할만한 길이 없다. 그러나 취산의 허리부분 서남쪽의 틈에 구멍이 하나 있는데, 사람의 몸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정도이며 구멍은 위에서 아래로 나 있기 때문에 꿈틀대듯이 기어서 오르락내리락하며 어둠 속에서 수 백 보를 가야 동굴 입구에 도달하게 된다. 입구의 바깥에는 시내가 있어 또한 인간 세상의 계곡과 통할 수 있다. 그러나 동굴 입구는 겨우 우물 크기만 하며 산꼭대기에 있는 샘물은 나는 듯이 흘러 곧장 아래로 내려오다가 흔들흔들 늘어지면서 폭포수가 되어 동굴 입구 바로 앞에 떨어지며, 사계절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 모습이 마치 발을 걸어 놓은 듯하여 폭포수를 뚫고 출입하지 않는다면 그곳이 동굴이라는 사실을 결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통하는 나루터를 묻는 사람은 오래도록 없었다. 여기가 바로 이 산의 경계선이다. 산 안으로는 넓고 평탄하며 기름진 땅이 펼쳐 있고 그 땅의 너비와 길이는 백 리가 되는데, 논밭·촌락·사찰·부도(浮圖, 사리탑)가 그림 병풍처럼 또렷하게 늘어서 있다. 대개 이 세상의 모든 물산과 모든 생업이 하나라도 갖춰지지 않은 것이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면서도 겸손하며 거만함과 속이는 일이 거의 없어 다투거나 빼앗는 등의 일이 있는지조차 대대로 알지 못한다. 그 땅의 기운은 온화하고 맑으며 가시나무가 자라지 않고, 범·이리·뱀·쥐·모기·독충 따위도 없다. 이것이 바로 이 산의 풍토이다. 산의 모퉁이마다 나는 듯이 흐르는 샘물이 있어 그 물이 절벽에 매달려 아래로 흐르면서 폭포를 이루고, 그 물이 모여서 시내를 이루며, 그 물이 흘러서 못을 이룬다. 여기 저기 작은 배나 뗏목이 통행할 수가 있고, 장산과 취산 아래에는 시냇물이 십여 리에 걸쳐 산을 에워싸고 흐르며, 그 안에 평야가 있다. 또 산등성이·고개·호수·저수지·수풀·들판·습지 등이 들쑥날쑥 솟아 있거나 숨어 있다. 여기가 나의 정원이 있는 곳이다. / 黃周星撰, 「將就園記」, “園無定所, 惟擇天下山水最佳勝處爲之. 其地周遭, 皆崇山峻嶺匼帀環抱如蓮花城. 繞城之山, 凡爲岯焉者, 岊焉者, 霍焉峘焉者, 不知其幾也. 名皆不著, 其著者惟左右兩山, 左曰 “將山”, 右曰 “就山”. 高各數千仞, 而將之高過于就, 就之視將, 大約減三之一耳. 山形內壍而外峭, 隔絶塵世, 無徑可通. 獨就山之腰西南隙有一穴, 僅可容身, 穴自上而下, 蜿蜓登降, 暝行數百步, 乃達洞口, 口外有澗, 亦可通人間溪谷. 然洞口纔大如井, 而山巓有泉, 飛流直下, 搖曳爲瀑, 正當洞口, 四時不竭, 狀若懸簾, 自非衝瀑出入, 絶不知其爲洞, 故終古無問津者, 此則玆山之界限也. 山中寬平衍沃, 廣袤可百里, 田疇、村落、壇刹、浮圖歷歷如畫屛, 凡宇宙間百物之産、百工之業, 無一不備. 居人淳樸親遜, 略無囂詐, 累世不知有鬪辨、爭奪之事焉. 地氣和淑, 不生荊棘, 亦無虎狼、蛇鼠、蚊蚋、螫蠚之屬, 此則玆山之風土也. 山陬各有飛泉, 下注懸爲瀑, 匯爲澗, 流爲池沼, 隨處可通舠筏, 而將、就兩山之下, 溪流環繞十餘里, 中有平野, 亦復有岡嶺、湖陂、林藪、原濕, 參錯起伏, 此吾園之所在也.”11)

상술한 인용문은 「장취원기」에 수록된 장취원의 환경과 입지와 관련된 부분이다. 본문의 인용문 이후 전개되는 내용은 모두 ‘장취원’ 안의 화목 및 건축물과 관련된 서술로, 황주성은 화목과 건축물이 위치할 곳으로 인용문의 내용인 장취원이 자리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설명한다. 상술한 내용은 앞서 설명한 복거를 위한 사요인 지리, 생리, 인심, 산수의 부분과 다음과 같이 대비시켜 볼 수 있다.

첫 번째, 지리(地理)와 관련된 조건이다. ‘장원’과 ‘취원’으로 이루어지는 황주성의 ‘장취원’은 사실 정해진 장소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천하의 산수에서 아름답고 빼어난 곳은 어디든 ‘장취원’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 주위를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외부 세계와 거의 차단되어 있다. 취산에 있는 작은 통로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데 이것으로 볼 때 밖에서 안을 거의 보기 힘든 모습이다. 황주성은 이곳을 ‘연꽃 모양의 성(蓮花城)’과 같다고 한다. 세속의 위협과 동떨어진 곳을 의미하는 은유적 표현이라 생각된다. 장취원은 이렇게 외부세계와 격리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어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두 번째, 생리(生理)와 관련된 조건이다. 장취원의 내부는 넓고 기름진 땅에 드문드문 촌락이 펼쳐진다. 세상의 모든 물산과 생업을 위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생리와 관련된 문제에서 장취원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세 번째, 인심(人心)은 이러하다. 황주성은 이곳의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고 겸손하고 거만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다투거나 빼앗지 않는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운이 온화하고 맑아 가시나무도 자라지 않는다. 심지어 맹수, 독충, 모기 같이 사람에게 위험이 되는 동물도 곤충도 없다. 사람들의 성정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땅의 기운이 온화하기가 이를 곳이 없고 인심은 더할 나위가 없다고 한다.

네 번째, 산수(山水)는 절벽의 폭포가 시내와 못을 이루고 산을 에워싸고, 배와 뗏목이 다니는 모습이 보이고, 그 안으로 평야가 펼쳐지며 산등성이의 고개, 호수, 수풀, 들판 등이 어우러지며 평화롭고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Figure 1, 2, 3 참조)12)(Weidne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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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1. Jiangjiuyuan(將就園)

Source: Listed in Beijing da tushuguan cang(北京大圖書館藏) Xiawei tang ji(夏為堂記).

Download Original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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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2. The part of Jiangyuan(將園) among Jiangjiuyuan(將就園)

Source: Listed in Beijing da tushuguan cang(北京大圖書館藏) Xiawei tang ji(夏為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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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3. The part of Jiuyuan(就園) among Jiangjiuyuan(將就園)

Source: Listed in Beijing da tushuguan cang(北京大圖書館藏) Xiawei tang ji(夏為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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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살펴본 대로 황주성의 장취원은 ‘복거사요’를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진정한 낙토(樂土) 요건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장취원은 복거사요의 ‘생리’ 요소뿐만 아니라, ‘지리’, ‘인심’, ‘산수’의 3가지 요소를 골고루 갖추어 자연 요소인 진산진수를 배경으로 인공 요소인 건축물이 조화롭게 배치된 완벽한 이상적 환경, 즉 낙토의 주거 요건을 구비하고 있다. 서유구가 「장취원기」의 많은 부분을 ⟨원림·간소⟩에 채록해 넣은 이유가 이러한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복거(卜居)를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가진 낙토인 장취원에 매료되어 자신의 주거지 구성을 위한 글에 원림과 주거 조성을 위한 사례로 소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서유구를 포함한 조선 후기 문인들을 매료시키고 또 한편에서 주거 관련 상상의 열기를 고취했던 여러 요소들 중에 「장취원기」(Ahn, 2004)가 가진 천혜의 낙토의 요건, 즉 자연적으로 생겨난, 혹은 하늘이 내려준 복 받은 땅은 이들에게 중국이라는 지역의 장벽을 뛰어넘어 공간의 보편성을 부여하며, 창작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거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조선 후기에 「장취원기」는 이중환의 『택리지』(Lee, 1751)와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참고 자료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형비포치」와의 관련성 속에서 살필 수 있는 다른 부분은 서유구가 「장취원기」의 내용에서 조선의 향촌 주거 조경을 위해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을까 하는 점이다. 적절한 입지를 찾아 적당한 용도의 건물을 조영하는 방법, 다양한 화목의 배치 방법, 조영물의 명명법 등등 여러 가지 방법이나 내용을 취해 적용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 서유구에게 장취원의 모습은 중국뿐 아니라 조선에서도 이상적 향촌 생활 구현을 위해 유용한 내용을 담은 전범(典範)으로 여겨졌을 것이라 판단된다. 서유구는 이상적인 생활을 위한 자연 조건을 가진 장취원에 이어 조선의 향촌 가옥에 환경과 조경 요소를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장취원(將就園)과 같이 이상적인 자연환경과 조경이 존재하여 그 안에서 살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서유구는 조선의 향촌에서 양질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조선의 향촌에서 실현 가능한 주거 환경 조성의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13).

Ⅲ. 이상적 향촌 주거 환경 조성을 위한 구상

장취원(將就園)이 소개한 주거 조건은 사람이 살기에 안전하고, 먹을거리도 풍부하고, 도처에 맑은 물이 넘쳐나며, 그곳의 주민들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언제든 교감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한 주거 조건은 조선 땅에서 현실적으로 찾기 힘들 것이다. 좋은 산을 찾아 위치한 가옥들은 간혹 산에 사는 맹수의 침입을 두려워해야 하고, 좋은 땅을 찾아 집을 짓기는 했지만 물이 멀리 있어 불편함을 해소할 방법을 찾기도 해야 한다. 장취원에 뒤이어 서술된 울타리, 연못, 석가산 등은 서유구가 조선의 현실적인 조건과 장취원에 구비된 촌락을 비교해 보며, 조선 향촌에서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생활하고, 먹거리도 해결하며, 물 걱정도 없고, 자연과도 교감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으로부터 나온 방안이라 볼 수 있다. 즉, 서유구는 조선 땅에서「장취원기」에서 살핀 안락한 촌락 생활을 실현할 수 있는 나름의 방안을 몇 가지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 번째로 서유구는 가옥 주변의 울타리 조성법부터 설명한다. 울타리라면 얼핏 생각하기에 공간의 경계를 의미하는 형식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으나 ⟨원림·간소⟩를 통해 본 울타리는 장취원에서 살핀 촌락을 둘러싼 연화성(蓮花城) 모양(연꽃 모양의 성)의 중첩된 산처럼 공간의 경계 역할뿐만 아니라 가옥 주변의 과실수를 보호하여 생산량 증가에 도움이 되고, 겹겹이 쌓인 울타리는 주거의 난방에도 유리하며, 맹수의 침입으로부터 거주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서유구는 조부인 서명응(徐命膺, 1716~1787)의 『고사십이집(攷事十二集)』을 인용하여(Seo, 2019) 집 주변 울타리 조성법(籬園法)을 설명하고 있다(Figure 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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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4. Explained How to Build Hedges around the House(籬園法)- painting by Juhwan Cha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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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임원에 살면서 담장으로 정원이나 텃밭을 둘러싸려 한다면 그 품을 들이기가 쉽지 않을 뿐만이 아니다. 장마라도 한 번 거치면 담이 여기저기 무너지기 때문에 망가진 곳은 수리해야 하므로 그 일이 계속하기에 어려운 방법임을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집의 북쪽에는 정원을 만들어서 과실수를 재배해야 하고, 『사기(史記)』에서 “연(燕)·진(秦) 땅에 1,000그루의 밤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안읍(安邑) 땅에 1,000그루의 대추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 회(淮)·제(濟) 땅에 1,000그루의 배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 촉(蜀)·한(漢) 땅에 1,000그루의 귤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1,000호(戶)의 식읍(食邑 : 예전에, 국가에서 왕족이나 공신들에게 내려 주어 조세를 받아 쓰게 하는 마을을 이르던 말)을 가진 제후와 같다.”라 했다. 여기에서는 대개 각 지방 토질과 풍속에 알맞은 나무를 말하고 있을 뿐이니 다시 각 지역의 기후와 토질을 잘 헤아려서 감·복숭아·능금·아가위 따위의 과실수도 더해서 심어야 한다. 집의 좌우에는 텃밭을 만들어서 채소를 재배해야 한다. 모두 구종법(區種法 : 구덩이에 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을 쓴다. 특히 토란을 널리 재배하는데, 구종법으로 토란을 재배하면 가뭄에도 해를 입지 않아서 흉년에 양곡으로 대체할 수 있다. 집의 남쪽 한 면은 빈 터로 남겨서 윗 못과 아랫 못을 판다. 못은 하나는 작게 만들고 하나는 크게 만들어, 작은 못에는 연(蓮)을 재배하고, 큰 못에는 물고기를 기른다. 정원과 텃밭의 바깥을 둘러싸도록 정방형으로 멧대추나무(酸棗)를 줄지어 심고, 이 나무들과 이어가서 엮은 바자로 울타리를 만드는데, 『제민요술(齊民要術)』의 방법과 같이 한다. 또 그 울타리 바깥에 버드나무를 줄지어 심고, 또 버드나무 바깥으로 느릅나무를 줄지어 심되 모두 멧대추나무 심는 방식으로 심는다면, 임원에 살면서 그윽한 정취를 북돋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실과 채소를 채취하면 그 물건을 시장에서 양곡으로 바꿀 수 있으므로 경작하는 일을 대신할 수도 있다. 버드나무는 땔감으로 베어 쓸 수도 있는데, 도주공(陶朱公) 범려(范蠡)가 말한 “1,000그루의 버드나무를 재배하면 땔감과 숯을 풍족하게 쓸 수 있다.”라는 말이 이것이다. 그리고 느릅나무로는 장(醬)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최식(崔寔)의 『월령(月令)』에서 “3월에 느릅나무씨를 따서 장(醬)을 만들면 매우 향기롭고 맛이 좋다.”라 했고, 또 이를 ‘모투(𨡭䤅 : 느릅나무 장)’라 한 말이 이것이다. 여기에서 반드시 멧대추나무를 안에 심고 느릅나무를 바깥에 심는 까닭은 일반적으로 멧대추나무는 서리를 가장 잘 막아주기 때문이다. 꽃이나 과실수가 그 가운데에 있으면 대단히 무성하게 자라므로 멧대추나무를 안에 심는 것이다. 반면 느릅나무의 성질은 땅에 부채질하듯이 하여 땅을 서늘하게 하는 경향이 있으니 오곡을 그 아래에 심어서는 안 되므로 느릅나무는 바깥에 심는 것이다. / 徐有榘, 『林園經濟志』 『怡雲志』 卷1, 「衡泌鋪置」, ⟨園林、澗沼⟩, ⟨籬園法⟩, “凡林居, 若欲以垣墻圍繞園圃, 則非惟力未易辦, 一遇霖潦, 東頽西圮, 修毁補破, 決知其難繼之道也.宜於舍北爲園, 種以果木, ‘『史記』曰:“燕ㆍ秦千樹栗、安邑千樹棗、淮ㆍ濟千株梨、蜀·漢千樹橘,其人皆與千戶侯等.” 此蓋道其各方土俗之宜耳, 更須斟酌風氣、土性, 添以柹、桃、林檎、柤果之屬.’ 舍左右爲圃, 種以蔬菜. ‘皆用區種法, 尤廣種芋子, 區種旱不爲災, 芋子歉歲可代粮.’ 空其南一面, 鑿上下池, 一小一大, 小者種蓮, 大者養魚. 環園圃之外, 正方列植酸棗, 編爲笆籬, 一如 『齊民要術』之法. ‘案. 詳見『晚學志』.’ 又其外列植柳木, 又其外列植楡木, 皆如酸棗, 則不但林居可助幽趣, 果蔬摘采, 貨市易粮米以代耕. 柳可薪樵, 陶朱公所謂“種柳千樹, 可足柴炭” 是也. 楡可作醬, 崔寔『月令』所謂“三月采楡仁, 作醬甚香美”, 亦謂之“��䤅” 是也. 其必內棗外楡者, 凡棗樹最能辟霜, 花果在其中, 特茂故居內. 楡性扇地, 五穀不宜植其下, 故居外也.”14)

인용문에서는 울타리를 만들기 전에 일단 가옥을 중심으로 집 북쪽에 정원을 만들어 과실수를 재배한다고 설명한다. 과실수는 각 지방 토질과 풍속을 헤아려 적절한 수종을 선택해야 한다. 과실수의 중요성은 토지와 그에 딸린 백성을 나라에서 하사받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큰 중요성을 갖는다고 부연한다. 일단 과수원이 조성되면, 집 좌우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재배해야 한다. 무엇보다 구종법(區種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구종법은 일정 간격으로 땅을 구획하여 적절한 거리를 두고 씨앗을 심는 방법으로 도랑에 줄지어 심거나 혹은 구덩이에만 파종하는 법이 있다. 이 방법이 중요한 이유는 가뭄을 막아 어려운 때를 구제하는 채소를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씨앗을 뿌릴 때 반드시 소 쟁기질을 할 필요는 없고 다만 가래나 괭이로 밭을 갈아도 되기 때문에 이 또한 향촌의 부유하지 않은 자들은 유용하게 사용되어 식량 수급의 문제를 다소간 해소할 수 있다15)(Figure 4 참조).

이어서 집의 남쪽에는 작은 연못, 큰 연못을 조성하여 각각 연과 물고기를 기른다. 집 가까이에 큰 연못을 만들면 습기가 차고 축축해져서 집에 스며들 경우 집이 쉽게 무너지게 되거나, 사람에게 스며들 경우 사람에게 병이 쉽게 생기므로 집 가까운 쪽에는 5~6보 되는 곳에 작은 연못, 조금 떨어져 땅의 넓이에 따라 큰 연못을 조성한다. 땅의 크기에 따라 만들지만 크면 클수록 좋고 도주공 범려(范蠡)의 양어법17)을 따라 만들어도 좋다. 작은 연못은 연꽃을 심어 산책할 때 감상하도록 하고 큰 연못은 생업을 위한 양어(養魚) 공간으로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본격적인 울타리 조성을 위해 정원과 텃밭을 둘러싸 정방형으로 멧대추나무를 줄지어 심어 가장 안쪽의 울타리를 만들고, 그 뒤로 버드나무를 사용해 안쪽 울타리를 둘러싸고, 가장 바깥쪽으로 느릅나무를 줄지어 심어 울타리를 조성하는데 모두 바자[(笆子: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따위로 발처럼 엮거나 결어서 만든 물건(物件)]로 만들도록 한다. 울타리의 조성법에 사용된 나무들은 모두 각각의 기능이 있다. 먼저 멧대추나무는 서리를 막아 주는 역할을 해 그 안의 꽃이나 과실을 보호하고, 버드나무는 땔감으로 유용하며 느릅나무는 장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어 식재료로 유용하다.

‘리원법(籬園法)’에서 서유구는 울타리를 조성하는 방법 이외에, 향촌 가옥을 중심으로 과수원, 연못, 텃밭을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먼저 설명하고, 이들 주변에 울타리를 세 겹으로 만들어 향촌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보기에도 좋은 배치를 세심하게 지시하고 있다. 서유구는 이와 함께『임원경제지 『만학지』 권1 〈총서(總敍)〉 ‘보호하고 기르기(䕶養)’, ‘정원의 울타리 만드는 법(作園籬法)’에 『제민요술』의 기사를 포함해 30종의 나무를 이용하여 울타리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히 기록해 참조하도록 하고 있다. 내용 중 서유구가 특히 강조한 것은 울타리가 과수원의 도둑을 막고 호랑이나 표범의 피해도 줄이는 방안이라는 부분인데, 즉 과실수를 천 그루, 만 그루 심어도 수확량은 그중 삼분의 일도 되지 않는 향촌의 실정에서 과수원 전체를 빙 둘러 울타리를 만들면 과일을 도둑으로부터 지키고 맹수의 공격도 피하여 주민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이라 강조한다.

울타리는 가옥 한 채, 혹은 촌락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이러한 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몇몇 회화 작품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의 ⟨일속산방도(一粟山房圖)⟩ Figure 5를 보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에 조성된 가옥 주변으로 울타리가 빙 둘러져 있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데, 이는 주거 안전 도모를 위한 울타리로 보인다. 또한 과수원 주변에 만들어 과실의 보호에 중점을 둔 울타리는 ⟨고원방고(羔園訪古)⟩ Figure 6을 통해 볼 수 있는데,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목사가 되어 탐라지역을 탐방하며 그린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중의 하나로 과원 둘레에는 방풍림으로 대나무가 심어져 있고, 과원의 밖에는 참나무밭(眞木田)과 매화나무(梅宗木)가 조성되어 있으며, 운랑천(雲浪泉)으로 추정되는 물(水)과 인근에는 그 물을 이용한 논(畓)이 형성되어 있음을 그림에서 볼 수 있다. 그림을 통해 대나무로 조성된 울타리를 방풍림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알 수 있는데, 서유구가 소개한 ‘리원법’의 울타리에 관한 설명에서도 정원과 텃밭의 바깥을 둘러싸도록 정방형으로 멧대추나무(酸棗)를 줄지어 심어 과실을 서리에서 보호하도록 하는 유사한 내용을 살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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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5. Whole view of the fence in Ilsoksanbangdo(一粟山房圖)

Source: Seoul Art Center Seoul Calligraphy Museu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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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6. Orchard fence of Tamlasunryukdo(耽羅巡歷圖) Gowonbanggo(羔園訪古)

Source: National JeJu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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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원법’에는 한 가구를 중심으로 한 울타리 조성법만 적혀 있지만, 여기서 소개된 울타리 조영법은 십여 호 혹은 그보다 규모가 큰 작은 촌락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밭농사와 과수원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연못에 양어하며 함께 재산도 불리는 하나의 작은 촌락을 세 겹의 울타리로 두르면, 촌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며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조선 땅에는 장취원에서 본 산들이 겹겹이 둘러싼 ‘연화성’ 같은 외부의 위협을 단절시키는 완벽한 차단막은 존재하지 않지만 각기 다른 수종으로 만든 세 겹 울타리를 만들면 가옥과 주민의 안전함은 기본으로 보장하고, 먹거리도 제공하고 난방 효과도 있으니, 이렇게 보면 조선에서 서유구가 소개하는 울타리는 장취원의 연화성과 비교해 촌민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실질적이며 다양한 혜택이 있어 보인다. 리원법에 이어 서유구는 크고 작은 연못의 조성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Seo, 2019). 향촌에 살기 위해서는 지당(池塘)을 포함한 수원(水原)은 중요하다. 향촌 가옥 안에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든다면, 집 주변의 작은 논밭에 물을 대는 수원(水原)의 역할을 하거나, 물고기를 기를 수 있고, 때론 조경적인 미감을 주어 가슴을 청정히 씻어주는 등 다양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못에는 세가지 장점이 있으니, 물고기를 기를 수 있고, 논밭에 물을 댈 수도 있고, 또 청정하게 가슴속을 씻어 줄 수 있다. / 徐有榘, 『林園經濟志』 『怡雲志』 卷1, 「衡泌鋪置」, ⟨園林、澗沼⟩, ⟨大小池塘⟩, “池塘有三善, 可以養魚, 可以漑田, 又可以淨襟靈.18)

앞서 살핀 ‘장취원’의 이상적 생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산꼭대기에 있는 샘물이 사계절 내내 물이 마르지 않으며, 장산과 취산 아래에 시냇물이 십여 리에 걸쳐 산을 에워싸고 흐르는 물의 풍부함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사계절 내내 마르지 않는 물을 어디에서나 풍부하게 쓸 수 있는 이상적인 여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의 향촌에서 ‘장취원’처럼 물 걱정 없는 생활을 어떻게 실현할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향촌 가옥들의 앞마당 혹은 근방에 적절한 수자원이 없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서유구는 이점을 감안하여 수원이 없을 경우에 인공적으로 연못을 만드는 방법을 세세히 적어 놓았다. 첫 번째로 우선 땅을 파고, 돌로 흙을 단단히 다지고 물이 세어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 뒤에 기와 굽는 흙으로 두텁게 바르고서 땔감을 쌓아 놓고 흙이 익을 때까지 구우면 고인 물이 새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로 항아리를 이용하는 방법인데 큰 항아리를 구덩이에 두어 물을 저장하고 작은 구멍을 뚫어 대나무를 이용해 못에 물을 끌어들이면 물이 마르지 않고 또 그 위에 갈대나 부들을 심거나 물고기를 기르면 이것이 항아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항아리는 구운 흙 대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집 앞마당의 작은 연못을 만들 경우 이렇게 구덩이를 파고 연꽃을 재배하거나 물고기를 기르면 딱 적당할 듯싶다. 지금의 어항과 비슷한 역할인 듯하다. 수원이 없으므로 물이 마르지 않도록 소뼈를 물에 넣어두라고 권유한다.

그런데 만일 집안에 수원이 없을 경우 항아리를 묻거나 하는 방법 이외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원을 끌어오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서유구는 이를 위해 ‘인천법(引泉法: 물을 끓어 오는 법)’을 사용해 보라고 말한다. ‘인천법’은 향촌 가옥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데 유용한 방법이므로 인용문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Seo, 2019).

수원이 가까이에 있을 경우에는 도랑을 통해 물을 저절로 끌어올 수 있지만, 수원이 멀리 있는 경우에는 임홍(林洪)의 『산가청사(山家淸事)』에 나오는 ‘대나무 쪼개어 샘물을 끌어오는 법(剖竹引泉法)’을 쓴다. 『산가청사』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죽(脩竹, 가늘고 길쭉한 대)을 쪼개어 서로 이은 뒤에 대나무못을 박고 고정시킨 다음 샘물 중에 맛있는 물을 끌어들여서 항아리에 저장한다. 두보(杜甫)가 말한 ‘대나무를 쪼개어 샘물을 흐르게 하네(剖竹走泉源).’라는 시가, 바로 이것이다.” 또 왕정(王禎)의 『농서(農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통(連筒)은 대나무로 물을 소통시킨다. 일반적으로 사는 곳이 샘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물을 길어다 쓰기에 불편하다. 큰 대나무를 가져다가 안으로 대의 마디 속을 뚫고 처음과 끝을 서로 이어서 끊어지지 않게 한다. 이를 평지에 설치하거나 냇물이나 계곡을 건너 물을 끌어온다. 이리하여 연못이나 부엌이나 목욕간 등에 댄다. 약초밭이나 채소밭과 같은 곳에도 이 물을 댈 수 있다. 두보의 시에서도 ‘연통으로 작은 동산에 물을 대네(連筒灌小園).’라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끌어온 물은 동산을 지나 담장을 뚫고 흐르다가 괴석(塊石 : 돌덩이보다 작은 돌)을 만나면 잔잔하게 부딪쳐 흐르고, 구유처럼 파인 바위를 만나면 작은 도랑이 되거나, 작거나 큰 바위들이 담처럼 쌓인 곳을 만나면 벼루를 씻는 곳이 되거나 혹은 물오리를 기르는 곳이 되거나, 연을 심는 곳이 된다. 지류의 남은 물줄기로 또 꽃밭에 물을 주거나 텃밭에 물을 댈 수도 있다. 산골에 살면서 이런 물이 없다면 비록 원림과 정사(亭榭)에 한 때의 성대한 시설을 다 갖추게 하더라도, 이는 마치 사람의 혈맥이 마르고 껄끄럽게 되거나 나무의 진액이 말라 시든 모습과 같다. 원활하고 신통하게 하는 기틀은 사라질 것이다. / 徐有榘, 『林園經濟志』 『怡雲志』 卷1, 「衡泌鋪置」, ⟨園林、澗沼⟩, ⟨引泉法⟩, “泉源近者, 自可渠引, 遠者用林洪 『山家淸事』剖竹引泉法. ‘『山家淸事』云 “剖脩竹相接, 各釘以竹丁, 引泉之甘者, 貯之以缸. 杜甫所謂 ‘剖竹走泉源’ 者此也.” 又王禎『農書』云 “連筒, 以竹通水也. 凡所居相離水泉頗遠, 不便汲. 用取大竹, 內通其節, 令本末相續, 連延不斷, 閣之平地, 或架越澗谷, 引水而至, 注之池沿及庖湢之間, 如藥畦、蔬圃亦可供用. 杜詩所謂 ‘連筒灌小園’.” 過園穿墻, 得怪石則爲潺溜, 得石槽則爲細渠, 得小大石甃則爲洗研之地, 爲養鸂鶒之地, 爲種芙蕖之地, 支流餘派又可以澆花灌圃. 山棲無此, 則雖使園林、亭榭極一時之盛, 如人血眽燥澁, 如樹津液枯瘁, 圓活靈通之機息矣.”19)

물을 집 가까이에서 얻을 수 없을 경우 서유구는 연통(連筒)을 이용해 물을 끌어 오는 법을 이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대나무는 오랫동안 물을 이동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연통을 이용해 끌어온 샘물은 연못에 물을 대거나 생활용수로 쓰기도 하고 약초밭 혹은 채소밭에 이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또 흐르면서 바위를 만나 작은 도랑을 만들어, 벼루를 씻거나 물오리를 기르거나 연을 심을 수 있는 정취 깃든 공간을 조성하기도 한다. 향촌에 있어 이러한 물이 없다면 나무의 진액이 말라 시든 모습 같을 것이고 혈맥(血脈)이 없는 것 같아 생명처럼 중요한 요소라 설명한다.

향촌 가옥에서 연통으로 물을 끌어오는 방법과 관련하여 ⟨다산초당도⟩ Figure 7을 보도록 하자. ⟨다산초당도⟩는 1812년 초의선사가 제작한 『백운첩(白雲帖)』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다산초당’은 정약용(丁若鏞)이 강진 유배시절(1801~1818)에 조성한 것이다. 그림 속에서는 전형적인 향촌 가옥과 집 앞에 규모가 작지 않은 지당이 눈에 띈다. 다산은 ⟨다산화사(茶山花史)⟩에서 초당 위쪽으로 샘물을 홈통으로 이곳에 물을 댔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지당은 가옥 밖의 지당과 연결되어 물을 흘려보내고, 이 물은 개천을 따라 흐르는 모습이다. 서유구가 ⟨원림·간소⟩ ‘인천법’에서 멀리 있는 물을 끌어 오는 방법으로 일러준 대나무통을 정약용도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고 있어 대나무통이 멀리 있는 샘물을 끌어오는 유용한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리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조선은 물 부족으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고초를 겪었다. 생존에 기본 요소인 물이 없다면 감히 양질의 생활을 생각할 여유가 있겠는가? 서유구는 향촌민의 안전을 지켜주는 울타리에 이어 생존에 직결되는 물 문제를 언급하며 이상적 촌락 생활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현실적 방법을 차근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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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7. Two ponds and landscaping in Dasanchodangdo(茶山草堂圖)

Source: Baekwuunchup(白雲帖) by Chouisunsa(艸衣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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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주거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현실적 방법이라기보다 집안에서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가옥 내의 인공적인 조경법에 관한 설명이다. 장취원에는 주민들의 안전과 생업을 환경이 구비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에 더해 아름답고 온화하며 맑은 자연환경은 사람들을 순박하고 친절하고 겸손하며 속이거나 다투지 않게 만든다고 말한다. 조선의 자연환경도 사실 이에 못지 않은 곳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일부러 나서기보다는 집안에서 매일 소박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누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자연을 축소하여 인위적으로 가옥 안에 배치하여 심리적 교감을 느끼는 대상으로 서유구가 고안한 것은 석가산이나 연못이었다.

서유구는 자연을 감상하는 인공적인 조경을 위해 값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태호석을 취급하지 않고, 조선에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주변의 돌을 이용해 큰 규모 대신 깊이와 심미감을 조성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만약 물에 달아 반질반질한 돌을 얻을 수 없으면 단단하지 않은 돌을 쪼아서 괴석(塊石)을 만든다.

괴석을 연못가에 쌓아 바위와 골짜기가 그윽하게 보이도록 하라(水潤石如不可得, 則取軟石琢造怪石, 就池邊疊積爲山, 使巖壑幽深)20)

라고 설명하는데, 비록 석가산(石假山)의 규모는 크지 않아도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 느껴지는 깊이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으로 감상을 위한 내실을 기하고 있다. 또한 서유구는 석가산과 관련해 인공 폭포를 만드는 흥미로운 방법으로 ‘산의 뒤쪽에는 큰 항아리를 두고 물을 저장한 뒤, 대나무를 구부려 산꼭대기로부터 굽이굽이 돌면서 물을 끌어 내렸다가 못 가까이에 와서 폭포가 되어 항아리에 떨어지도록 만든다.’라고 한다.

이 석가산을 아침, 저녁으로 마주하면 저절로 기이한 풍취(風趣)가 많이 느껴진다. / 山後置大甕貯水, 屈竹汲引自山頂縈廻, 近池作瀑. 朝夕相對, 自多奇趣.)21)

이 방법은 항아리와 대나무를 이용해 석가산 주변에 인공 폭포를 만드는 방법인데, 항아리로 떨어지는 물소리를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독특한 풍취(風趣)를 불러 일으켰다고 말하며, 자연 속의 폭포를 집안에서 대리만족하며 느끼는 정취를 설명한다. 서유구가 말한 인공 폭포나 석가산은 모두 집안에서 자연을 대리만족하기 위한 방편이다. 온화하며 맑은 자연환경을 매일 직접 접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이나, 그것이 어렵다면 가옥 내부에 소박하고 작게라도 자연을 만들어 심성을 고양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상적인 향촌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주거 환경을 구비한 「장취원기」와 서유구의「장취원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선의 향촌에서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주거 환경 및 조경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장취원이 구비한 사람이 살기에 안전하고, 먹을거리도 풍부하고, 도처에 맑은 물이 넘쳐나며, 주민들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언제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완벽한 주거 환경은 조선 땅에서 현실적으로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거 환경 조건은 조선 땅의 환경과 향촌 가옥에 적합한 방식으로 만들어 낼 수는 있다. 집 주변의 울타리의 조영, 집 안의 다양한 연못, 그리고 심미적 조경물인 석가산의 예들로부터 알 수 있듯이, 서유구는 ⟨원림·간소⟩에 「장취원기」를 수록하며 장취원이 가진 이상적 삶의 조건을 배워 조선 향촌 의 주거 환경 조성에 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조선의 향촌 주민이 장취원에 사는 주민처럼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주거 환경 조건을 조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 서유구가 고민한 실질적 방안이라 말할 수 있다.

Ⅳ. 결론

이상, 본 고에서는「형비포치」 ⟨원림·간소⟩의 내용을 통해 서유구의 향촌 주거 환경 조성과 관련한 구상을 살펴보았다. 서유구의 향촌 주거 환경 구상의 출발점은 ‘복거사요’를 기본으로 하는 조선적 풍수관이라 볼 수 있다. 서유구는 조선의 풍수관에 입각한 주거 환경 조건에 입각하여「장취원기」를 해독하고,「장취원기」를 통해 얻어낸 이상적 주거 요건을 조선 땅에서 조선의 향촌 가옥에 적합한 방식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소개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조선 후기에 중국 원림 조영에 관한 서적들이 조선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를 들어 명대 원림 조영의 전범으로 여겨지는 『원야』의 경우22)(Kim and Ahn, 1993), 원림의 모든 조영물을 인공적으로 조영해 낸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 산, 물, 돌 모두 ‘창조’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듯이, 중국의 조원기(造園記)들은 대부분 이러한 각도에서 인공미를 추구하는 과정을 적은 것이라 이해해 볼 수 있다23). 이러한 관점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창조한다는 관념은 집 짓는 터에 대해 지리, 즉 산과 물의 적절한 지연적 지리 형국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주거 환경을 사유하는 조선 문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장취원기」의 경우는 산, 물, 들, 나무와 같은 모든 자연 요소들이 갖추어져 서유구가『상택지』를 통해 설명한 ‘낙토’의 조건을 인공이 아닌 자연적인 모습으로 구비한 것으로 조선의 문인들에게는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서유구는 ‘복거사요’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장취원기」를 통해 살핀 낙토 조건인, 연화성으로 둘러싸인 안전한 주거 환경, 도처에 산재한 풍부한 수자원, 아름다운 산수 등의 내용을 조선의 향촌 주거에서 주민 안전의 도모와 식량 보호를 위한 세 겹 울타리 조성, 가옥의 수자원 활용을 위한 다양한 방법의 소개, 심미적인 주거 환경 조성을 위한 석가산과 연못의 조경으로 재구성하여 소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유구는 ⟨원림·간소⟩의 내용을 통해「장취원기」가 가진 이상적 조건을 어떤 방식으로 조선 향촌의 가옥 환경을 조성하는데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형비포치」 ⟨원림·간소⟩의 내용 속에서 살핀 서유구의 중국 문헌에 대한 접근 및 이해와 조선 향촌에서의 적용 방안 등을 통해,『임원경제지』 ⟨예언⟩에 제시된 ‘이 책은 조선만을 위한 저술’이라는 서유구의 임원경제 기획의 지향과 실천적 목표를 확인해 볼 수 있다.

Notes

주 1.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유구가 약 36년 동안(1806년~1842년) 저술한 농업 백과사전으로, 총 113권 52책으로 구성돼 있으며, 16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전원생활을 하는 선비에게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설명하기 위한 생활과학서의 성격을 띤다.

주 2. 식력은 먹고사는 문제를 의미하고 양지는 문화와 예술에 관한 문제이다.

주 3. 형비(衡泌)는 은자가 살아가는 집을 가리키고, 포치(鋪置)는 배치의 의미를 갖는다. 즉 「형비포치」는 은자가 생활하는 주거 공간의 배치를 의미한다. 형비(衡泌)는 『詩經·陳風』 중 ⟨衡門⟩ 편의 “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饑”(형문의 아래, 한가히 지낼 만하네. 철철 흐르는 샘물로 배고픔은 면할 수 있네)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주 4. 장취원(將就園)의 ‘장취(將就)’는 『시경(詩經)』의 다음 시에서 유래한다. “나는 장차(將) 앞으로 나아가(就) 옛 뜻을 계승하려 하나 오히려 해맬 수 있네.(將予就之, 繼猶判渙)”, 『毛詩注疏』 卷28, 「周頌」, ⟨閔予小子⟩.

주 5. 황주성의 「장취원기(將就園記)」는 조선시대 문인들에게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상상의 원림에 관한 글을 집필하는 데 많은 영감을 준 글로 잘 알려져 있다. 「장취원기」와 관련한 내용은 안대회, 「상상속의 정원」, 『문헌과 해석』 16, 문헌과 해석사 2001.

주 6. 서유구,「임원십육지예언(例言)」,『임원십육지』, 1, 보경문화사 영인, 2005, 1면.

주 7. 최원석, ‘유학과 풍수 -조선시대 풍수론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南冥學 19.(2014), 225-256. : 최원석 ‘한국 풍수론 전개의 양상과 특색’, 대한지리학회지 50.6(2015): 695-715.

주 8. 원문과 번역문은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역, 『임원경제지 상택지』, 풍석문화재단, 2019를 참조.

주 9. 농업과 관련해 살기 좋은 일련의 조건을 갖춘 곳을 기록한 저술로는 허균(許筠)의 『한정록(閑情錄)』 제16권 「치농(治農)」의 ‘택지조(擇地條)’가 첫 기록이라 알려져 있다. 허균의 『한정록』에서 보여주는 삶을 살아가기 좋은 곳을 뜻하는 택지(擇地)는 18세기 초반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인용되었고, 복거(卜居)라는 단어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1751년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도 복거(卜居), 가거(可居) 등의 명칭이 나타난다. 택지, 복거, 가거가 의미하는 바는 생업을 운영하며 살아가기 좋은 곳을 택한다는 뜻인데, 이 의미는 생업을 위한 단순히 좋은 지리적인 조건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으로도 좋은 환경을 갖추고, 주변 산수와 경관까지도 고려한 보다 넓은 의미로 확장되었다. : 김영진, 「농서를 통해본 조선후기 낙토(복거) 사상」, 『농촌계획』, 1998.

주 10. 풍석 서유구 저,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상택지』, 71~72쪽.

주 11. 번역문은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번역, 『임원경제지 이운지』 1, 2019, 94~113쪽 참조.

주 12. Ellen Weidner, “Between worlds: Huangzhouxiang’s Imaginary Garden,” Trauma and Transcendence in Early Qing Litera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6, pp.249-281.

주 13. 서유구가 고민한 주거지 선택과 관련하여; 안대회, ‘조선 후기의 좋은 집터, 이상적 거주공간의 이론과 실제―『임원경제지』「상택지」를 중심으로.’ 민족문화연구, 83,(2019), 447-479. 참조.

주 14.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이운지』 1, 풍석문화재단, 2019, 120~123쪽.

주 15. 서유구 저, 정명현·김정기 역주, 『임원경제지 본리지』 1, 소와당, 2018. 125~133쪽.

주 16. 서유구 저, 임원경제연구소 번역, 『임원경제지 이운지』 1, 123쪽 ‘정원에 울타리 치는 법 개괄도’ 인용.

주 17. 양어법은 도주공(陶朱公)의 『양어경(養魚經)』에 수록되어 있다. 도주공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월(越)나라 대부(大夫) 범려(范蠡)의 별칭이다. 도주공의 글 중에서 물고기 길러 이익을 내는 법에 대해 쓴 것이 『양어경』이다. 도주공 『양어경』은 최한기(崔漢綺)가 지은 『농정회요(農政會要)』에 수록되어 있다. 『고농서국역총서』 12, 『농정회요(農政會要)』 Ⅲ, 농촌진흥청, 2007.

주 18.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이운지』 1, 풍석문화재단, 2019. 124~125쪽.

주 19.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이운지』 1, 130~132쪽 참조.

주 20.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이운지』 1, 127쪽 참조.

주 21. 풍석 서유구 지음, 임원경제연구소 옮김, 『임원경제지 이운지』 1, 앞의 책, 128쪽 참조.

주 22. 計成 저, 김성우, 안대회 역, 『원야』, 예경, 1993.

주 23. 장지아지,『중국의 전통 조경 문화』, 문운당, 2008, 58쪽~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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