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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미학의 다변화와 일상미학의 부상 - 유리코 사이토의 일상미학 이론의 의제와 쟁점을 중심으로 -

배정한 * , **
Jeong-Hann Pae *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서울대학교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조경학전공 교수
*Professor,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Adjunct Researcher, Research Institute of Agriculture and Life Sciences, Seoul National University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분야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의 성과이다(NRF-2019S1A5A 2A01047194).

Corresponding author : Jeong-Hann Pae, Professor,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Tel.: +82-2-880-4877, E-mail: jhannpa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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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ived: Mar 02, 2023; Revised: Mar 16, 2023; Accepted: Mar 16, 2023

Published Online: Mar 31, 2023

국문초록

이 논문은 다변화하고 있는 환경미학의 최근 전개 양상을 고찰하고, 환경미학의 중요한 갈래로 부상하고 있는 일상미학의 주요 의제와 주장, 쟁점과 의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1960년대의 문화 변동과 환경주의를 바탕으로 싹튼 환경미학은 20세기 후반 이론적 기반을 다지며 성장했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대상과 주제의 다변화 과정에 진입했다. 학문적 성숙기를 맞은 환경미학은 도시를 포함한 인문환경 전반으로 이론적 영토를 확장했으며, 도시 환경과 경관의 계획․설계 담론으로서 실천적 좌표를 제시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환경미학의 가장 주목할 성과는 ‘일상미학’의 성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미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유리코 사이토는 미학 이론의 대상과 범위를 일상의 사물, 사건, 행동, 환경으로 확장한다. 그는 기존의 예술 중심적 미학이 간과해온 일상의 미시적이고 감각적인 국면을 미학의 시선으로 발굴해 현대 도시의 환경과 경관, 공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다양한 층위를 새롭게 해석하며, 일상에 숨겨진 ‘미적인 것의 힘’이 삶의 질과 세상의 상태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분석한다. 그는 일상의 대상과 환경에 내재한 특유의 성질과 분위기에 대한 감상을 고찰하고, 일상의 미적 감상과 판단이 낳는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경계하기 위해 ‘도덕적-미적 판단’을 제안한다. 이 논문은 일상미학의 쟁점과 의의를 첫째 미학의 확장과 모호한 일상, 둘째 도덕적-미적 판단과 돌봄의 미학, 셋째 도시 재생 경관과 미학적 문해력으로 파악한다. 특히 사이토가 주장하는 일상미학의 도덕적 덕목, 즉 돌봄, 사려 깊음, 감수성, 존중 등은 동시대 도시 재생 경관의 실천에 대한 비평적 준거를 마련해준다. 그가 강조하는 ‘미학적 문해력’은 일상의 도시 환경과 경관 해석에 환경미학의 관점이 필요한 이유를 입증하는 핵심 개념이다.

ABSTRACT

This paper explores the recent development of environmental aesthetics and critically examines the main agendas, claims, issues, and implications of everyday aesthetics, which is emerging as an important branch of environmental aesthetics. Environmental aesthetics began in the context of cultural change and environmentalism in the 1960s and expanded in the second half of the 20th century with a solid theoretical foundation. At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it entered a process of diversification of objects and subjects. Having reached academic maturity, environmental aesthetics has expanded into theoretical territory considering the urban environment and the human environment, providing practical coordinates as a discourse for planning and designing urban environments and landscapes. The most notable achievement of environmental aesthetics since the mid-2000s is the establishment of ‘everyday aesthetics’. Yuriko Saito, who is leading the research on everyday aesthetics, expanded the objects and scope of aesthetic theory to everyday objects, events, activities, and environments. She excavates the microscopic and sensory aspects of everyday life, which have been overlooked by conventional art-centered aesthetics, through the lens of aesthetics. She reinterprets various layers of phenomena in contemporary urban landscapes and analyzes how the ‘power of the aesthetic’ hidden in everyday life profoundly affects the quality of life and the state of the world. Saito examines the appreciation of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and ambiance inherent in everyday objects and environments and proposes a ‘moral-aesthetic judgment’ to alert citizens to the environmental, social, and political consequences of everyday aesthetic appreciation and response. This paper identifies the issues and implications of everyday aesthetics as first, the expansion of aesthetics and the ambiguous everyday, second, the moral-aesthetic judgment and the aesthetics of care, and third, urban regeneration landscapes and aesthetic literacy. In particular, the moral virtues of everyday aesthetics that Saito proposes, such as care, thoughtfulness, sensitivity, and respect, provide a critical reference for the practice of contemporary urban regeneration landscapes. The ‘aesthetic literacy’ is a key concept demonstrating why an environmental aesthetics perspective is necessary to interpret everyday urban environments and landscapes.

Keywords: 미학적 문해력; 미적인 것의 힘; 도덕적-미적 판단; 돌봄의 미학; 도시 재생 경관
Keywords: Aesthetic Literacy; Power of the Aesthetic; Moral-Aesthetic Judgment; Aesthetics of Care; Urban Regeneration Landscape

1. 머리말

68혁명과 히피 문화, 인권과 자유, 반전 운동과 환경주의로 대표되는 저항의 시대. 근대 이후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기성의 가치에 균열을 일으킨 1960년대의 사회 변혁과 문화 변동 속에서 싹튼 환경미학(environmental aesthetics)은 환경의 문제를 미학적 논의로 돌파하고자 하는 동시에 미학의 문제를 환경 개념으로 타개하고자 했다. 로널드 헵번(Hepburn, 1963)에 의해 시작된 20세기 환경미학은 미학은 물론 철학, 지리학, 조경학 등 다양한 학문 분과의 자양분을 토대로 성장했으며, 특히 1980-90년대의 아놀드 벌리언트(Berleant, 1991; 1992; 1997)와 알렌 칼슨(Carlson, 2000)을 거치며 개념적 기반과 이론적 영토를 다진다. 20세기 후반의 환경미학은 특별한 방식의 미적 경험론을 지지하고 예술의 독자성과 자율성에 초점을 둔 근대 미학의 오랜 전통에 대한 반성이자 자연, 환경, 자연미를 미학의 주제로 복권시킨 대안적 시도라는 점에서, 그리고 전 지구적으로 대두된 환경 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대응의 한 갈래라는 점에서 다각적 반향을 낳았다.

자연환경 위주로 전개되던 환경미학 연구는 1990년대 말부터 세기의 전환기를 거치며 도시를 포함한 인문환경 전반으로 논의 대상을 확장한다. 학문적 성숙기를 맞으며 환경미학은 도시 환경과 경관의 물리적 계획과 설계 이론으로서도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환경미학의 관점과 대상은 한층 더 다양해지는데, 최근에는 이른바 ‘일상미학’(everyday aesthetics)이 환경미학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Carlson, 2014). 일상미학이란 “미학의 대상을 환경의 모든 요소 및 환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과 사건으로 규정하는 확장된 영역의 미학”(손은신과 배정한, 2016: 37)이다. 이러한 흐름의 최전선을 이끌고 있는 유리코 사이토(Saito, 2007; 2017; 2022)는 일상의 삶과 도시 환경을 연구 대상으로 포섭하고 있다. 미학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일상미학의 관점과 의제는 동시대 조경 이론과 설계의 주요 과제인 도시 재생, 장소성, 커뮤니티 참여 설계, 일상 경관 등과 접속하며 환경미학과 조경학의 융합 연구를 초대한다.

이 논문은 환경미학의 연구 지형 전반을 고찰하고 이론적 체계를 재구성하여 도시 환경과 경관 연구의 미학적 준거를 구축하고자 하는 오랜 기획의 한 부분이다. 필자는 20세기 환경미학 전반의 연구 동향과 경관미학의 쟁점을 상세히 논구하고(배정한, 1996; 배정한과 조정송, 1995), 환경미학 정립기의 방향을 이끈 양대 이론, 즉 아놀드 벌리언트의 ‘참여 이론’(조정송과 배정한, 1994)과 알렌 칼슨의 ‘객관주의적 자연 감상론’(배정한과 조정송, 1996)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바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환경미학과 현대 조경 이론의 접면을 탐색한 바 있다(배정한, 1998). 이번 논문에서는 2000년대 이후 환경미학의 전개와 다변화 양상을 고찰하고(2장), 환경미학의 한 분과로서 다층적 의제를 생산하고 있는 유리코 사이토의 일상미학 이론의 주요 주장과 의의, 쟁점을 검토하고자 한다(3장과 4장). 일상미학과 조경 이론의 교점을 찾고 도시 경관 연구와 실천에 대한 일상미학의 함의를 구하는 논의 또한 논문의 행간에서 전개될 것이다.

2. 2000년대 이후 환경미학의 전개와 다변화

20세기 후반 영어권 환경미학을 이끈 선구적 미학자로 아놀드 벌리언트(Arnold Berleant)와 알렌 칼슨(Allen Carlson)을 꼽는 데에는 이견을 찾기 어렵다. 아놀드 벌리언트는 존 듀이(John Dewey)의 ‘하나의 경험(an experience)’론과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ua-Ponty)의 현상학에 영향받은 미학자로, 그의 환경미학을 구성하는 핵심 개념은 ‘참여(engagement)’다. 벌리언트는 무관심적 관조(disinterested contemplation)를 전제로 한 전통적 미학의 기본 교의에 도전하여 주체와 객체의 상호 참여가 미적 경험의 전제라는 주장을 펼친다(Berleat, 1991; 1992). 그는 ‘미적’이라는 방식의 고유한 감각 능력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거리를 두고 대상을 관조하는 태도, 즉 무관심성에 기초한 미적 태도론으로는 실제의 미적 경험을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미적 장(aesthetic field)’이라는 대안적 개념에서 출발하는데, 미적 장이란 미적 경험이 일어나는 총체적 상황을 의미한다(Berleat, 1970). 미적 장에서의 미적 경험은 고립된 지각자의 관조적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활동이 지각적으로 통합된 공감각적(synaesthetic) 경험이다. 그러므로 미적 장은 곧 ‘환경’이다. 이러할 때 환경은 유기적 인식, 의식적․비의식적 의미, 지리적 위치, 물질적 존재, 개인의 시간과 운동 모두의 연합체이며, 인간과 분리된 환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에 대한 우리의 미적 경험은 분리적 경험이 아니라 주체와 객체가 통합된 참여적(engaged) 경험이며, 이러한 참여를 통해 환경의 미적 차원이 확장된다는 것이 벌리언트 이론의 핵심 주장이다(조정송과 배정한, 1994; 안원현, 2005). 그의 참여 개념은 환경의 지각을 미학의 시계 속에 포함시켰으며 도덕적 영역이나 지적 영역과 분리되지 않는 미적 영역, 즉 일상적 환경의 미를 미학의 대상으로 포섭함으로써 환경미학의 성립을 시도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벌리언트가 예술의 미적 경험과 환경의 미적 경험을 참여라는 ‘하나의’ 틀로 포섭하는데 반해, 알렌 칼슨은 예술과 자연의 존재론적․인식론적 차이를 구별하고 양자에 ‘다른’ 미학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자연에 적합한 미적 감상은 곧 자연과학 지식에 바탕을 둔 객관적 인지의 문제라는 것이 칼슨의 기본 입장이다(Carlson, 2000). 칼슨의 이른바 ‘객관주의적 자연 감상론’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재구성해 설명할 수 있다(배정한과 조정송, 1996). ⒜ 무관심성을 변용한 미적 태도 개념에서 도출된 ‘감상’ 개념은 자연의 감상을 설명하기에 유용하며, 특히 대상중심적 성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객관주의적이다. ⒝ 자연은 자연으로 감상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환경모델’이 자연 감상의 방식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모델이다. ⒞ 특히 우리는 자연의 ‘질서’를 감상한다. ⒟ 자연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미적 판단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적절한 범주는 과학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칼슨은 환경을 환경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대상 자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인지 능력을 강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환경모델’에 입각한 그의 환경미학 이론은 과학적 인지주의(cognitivism)라고 불리기도 했다.

벌리언트의 참여론과 칼슨의 인지주의가 서로 대립하며 주도하던 환경미학의 지형은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다변화되기 시작한다. 칼슨이 평가하듯(Carlson, 2014), 1994년 핀란드 콜리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환경미학학술대회를 기점으로 환경미학 연구자의 층이 두터워졌으며, 환경미학에 속속 참여한 다양한 필자가 참여한 책『경관, 자연미, 예술』(Kemal and Gaskell, 1993)은 환경미학의 연구 대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은 환경미학이 다음 단계로 발돋움하는 분수령이었다. 미학계의 대표 학술지『미학과 예술비평(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이 환경미학 특집호를 기획 출간한 것이다. 벌리언트와 칼슨이 공동 편집한 특집호(Berleant and Carlson, 1998)를 통해 여러 신진 연구자가 환경미학에 합류했으며, 그 성과는 후에『자연환경의 미학』(Carlson and Berleant, 2004)으로 대폭 보완되어 출간되었다. 특히 에밀리 브래디(Emily Brady)는 자연의 미적 감상에서 상상(imagination)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벌리언트의 비인지주의와 칼슨의 인지주의 모두를 넘어서는 대안적 기획을 선보였는데(Brady, 1998), 그의 이론은 환경과 경관의 필요충분한 미적 감상에는 다감각적 참여, 무관심성, 상상력, 정서, 지적 구성 요소 간의 열린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통합 미학’론으로 발전한다(Brady, 2003).

자연환경 위주로 전개되던 환경미학 연구는 세기의 전환기를 거치며 도시를 포함한 인문환경(human environment) 전반으로 논의의 대상을 확장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성과로는 아놀드 벌리언트의『경관에서 살기: 환경미학을 향하여』(Berleat, 1997), 마라 밀러(Mara Miller)의『예술로서 정원』(Miller, 1993), 스테파니 로스(Stephanie Ross)의『정원이 의미하는 것』(Ross, 1998), 벌리언트와 칼슨이 함께 엮은『인문환경의 미학』(Berleant and Carlson, 2007)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확장은 인간의 행위와 무관한 순수 자연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촉발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도시와 건조 환경은 자연과 구분되는 것이 아닌 불가분의 연속적 환경으로 파악된다. 도시는 자연과 대비되는 환경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가 자연 및 세계와 접속하는 지점에 위치하며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인문환경인 것이다. 환경미학은 인간이 도시-환경을 통해 자연-세계와 주고받는 영향의 메커니즘을 미적(감각적) 측면에서 논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해갔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환경미학의 관점과 대상은 다양한 갈래로 분기되며 이른바 “환경미학의 성숙기”(Carlson, 2014: 22)를 맞는다. 맬컴 버드(Malcom Budd)의『자연의 미적 감상』(Budd, 2002), 에밀리 브래디의『자연환경의 미학』(Brady, 2003), 로널드 무어(Ronald Moore)의『자연미: 예술 너머의 미학 이론』(Moore, 2008), 글렌 파슨스(Glenn Parsons)와 알렌 칼슨의『기능미』(Parsons and Carlson, 2008), 아놀드 벌리언트의『미학과 환경』(Berleant, 2005)과『감수성과 감각: 인간 세계의 미학적 변화』(Berleant, 2010), 스벤 아른첸(Sven Arntzen)과 에밀리 브래디가 편집한『대지의 인간: 문화 경관의 윤리학과 미학』(Arntzen and Brady, 2008), 알렌 칼슨과 셸리아 린톳(Shelia Lintott)이 엮은『자연, 미학, 환경주의: 아름다움에서 의무로』(Carlson and Lintott, 2008)에 이르기까지 환경미학은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의 미학적 국면은 물론 윤리학적 측면까지 다루며 다층화된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환경미학자들이 거둔 가장 큰 성취는 일상 생활과 환경을 연구 대상으로 포함한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명 ‘일상미학(everyday aesthetics)’이라는 분과가 환경미학의 토대 위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Light and Smith, 2005; Saito, 2007; Leddy, 2012; 2021; Potgieter, 2017). 이러한 흐름은 첫째, 환경이 대상물의 총합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행위를 포함한 동적 총체라는 점, 둘째, 미학의 암묵지가 예술과 미 바깥에 널리 펼쳐져 있다는 점, 셋째, 기성의 척도로 해명하기 어려운 미적 가치들에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며 학문적 동력을 얻었다. 특히 유리코 사이토(Yuriko Saito)는 기성의 주류 미학이 간과해온 삶의 미시적이고 감각적인 면모들을 미학의 관점으로 발굴함으로써 현대 도시의 일상과 환경, 공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해석하는 일상미학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Saito, 2007; 2017; 2022). 본 논문의 3장과 4장은 사이토가 정초한 일상미학의 주요 논제와 주장, 그 의의와 쟁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데 할애될 것이다.

지구온난화, 기후 변화,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감소, 물 부족, 자원과 에너지 고갈 등 서로 연결된 복합적 난제가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오늘날, 환경미학자들 또한 기후 변화와 위기에 대응하는 미학적 의제를 제시하며 인류세(Anthropocene) 담론에 동참하고 있다(Auer, 2019; Brady, 2014; Haught 2017; Dow, 2022). 동시대의 새로운 화두인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환경을 바꾸는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Crutzen and Stoermer, 2000), 다시 말해 지구 역사에서 과거 어떤 시대보다 지구 시스템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시대 상황을 뜻한다. 지질학을 비롯한 지구과학에서 제기된 인류세 논의는 생태주의 환경 운동, 탄소 저감을 위한 지구공학, 환경 정책과 정치학, 탈탄소 경제학, 포스트 휴머니즘과 탈인간중심주의,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를 필두로 한 신유물론, 생태예술 등 다양한 분야는 물론 환경미학에서도 시급한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에밀리 브래디는 기후 변화와 환경미학의 교점을 추적하면서 인류세를 맞은 우리의 미적 경험과 실천이 환경에 대한 태도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브래디는 자연의 미와 가치를 강조하는 기존 환경미학은 기후 변화에 대한 실천적 행동을 이끌지 못하며, 한층 더 실용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의 환경미학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는 빙하권과 대기권 등 종래에 논의되지 않았던 환경의 미, 지구 환경의 부정적 미와 윤리적 가치에 환경미학의 좌표를 마련하고 있다(Brady, 2014; 2022; Brady and Prior, 2020).

2018년,『미학과 예술비평』이 20년 만에 다시 꾸린 환경미학 특집호(Shapshay and Tenen, eds., 2018)는 환경미학의 지형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 미, 녹색: 환경주의와 미학(The Good, the Beautiful, the Green: Environmentalism and Aesthetics)”이라는 특집 주제가 그러한 다변화와 다층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환경미학과 환경윤리학의 접점(Carlson, 2018; Brady, 2018), 미학적 환경주의(Stewart and Johnson, 2018), 일상의 소비 미학과 환경윤리(Saito, 2018)를 논구하는 경향뿐 아니라 비인간 및 동물의 미학과 윤리학(Cross, 2018)으로까지 확장된 연구 추세를 살필 수 있다. 이렇듯 1960년대에 태동한 환경미학은 벌리언트의 참여론과 칼슨의 인지주의를 중심으로 자연환경의 미적 경험과 감상을 탐구하던 시기를 넘어 1990년대 후반부터 인문환경으로 연구 대상을 넓혔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상의 생활과 환경, 인류세와 기후 변화의 문제로 논의의 지평을 계속 확장해가고 있다.

3. 일상미학의 의제와 주장

“자연에 대한 적확한 미적 감상은 존재하는가?”(Saito, 1984)라는 도전적 질문을 던지며 환경미학의 중심으로 진입한 일본계 미국인 미학자 유리코 사이토는 2000년대 이후 환경미학의 대상과 주제를 확장해 ‘일상미학’으로 범주화할 수 있는 일련의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Saito, 2007; 2017; 2022). 이러한 확장에는 그가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대학(RISD)에서 철학(또는 미학)이나 순수 예술이 아닌 건축, 조경, 그래픽 디자인, 제품 디자인 전공 학생들을 교육해온 독특한 이력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즉 그는 일상 곳곳에 편재한 디자인된 사물과 환경의 미적(감각적) 특질에 주목함으로써 철학에 기반한 제도권 미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기획을 체화한 셈이다. 실제로 그는 RISD의 교육 경험을 통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일상적 대상”의 디자인과 그것에 대한 감상 및 판단이 “삶의 질과 세상의 상태를 향상시킨다”(Saito, 2007: 1-2)는 점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사이토의 대표 저작인『일상의 미학(Everyday Aesthetics)』(Saito, 2007)은 우리가 일상에서 관계 맺는 상황과 환경의 감각적 특질―크기, 형상, 색, 질감, 소리, 냄새 등―에 내재한 미학적 이슈를 발굴해 이론화하며, 일상의 미학적 국면이 환경, 사회, 정치에 미치는 영향과 파장을 파악한다. 이 책은 일상미학에 대한 일련의 후속 논의와 다각적 토론을 낳으며 미학계는 물론 건축, 조경, 도시설계 등 전문 실천 분야의 주목을 받았다.『일상의 미학』에 이어 사이토는『익숙한 것의 미학(Aesthetics of the Familiar)』(Saito, 2017)과『돌봄의 미학(Aesthetics of Care)』(Saito, 2022)을 발표하면서 일상미학의 구조와 주장을 정련해가고 있다. 다음에서는『일상의 미학』을 중심으로 그의 이론을 구성하는 주요 의제와 주장을 조감하고, 이어질 4장에서는『일상의 미학』과 함께『익숙한 것의 미학』 및『돌봄의 미학』 전반을 관통하는 일상미학의 의의와 쟁점을 논하기로 한다.

유리코 사이토의 논의는 오늘날의 미학 이론이 일상의 사물과 환경이 지니는 미적 특질과 양상, 일상생활의 미적 경험과 현상을 경시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Saito, 2007: 1장, 9-53). 최근의 미학은 예술뿐 아니라 자연, 도시 환경, 대중예술, 음식, 게임, 스포츠 등 다양한 비예술을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예술을 중심에 놓는 20세기 분석 미학(analytical aesthetics)의 획일적 틀에 묶여 있다. 이러한 주류 미학은 비예술 대상과 일상의 미적 국면을 해명하는 데 부적절하거나 역부족이다. 뿐만 아니라 ‘무관심적 관조’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미적 경험을 설명해온 18세기 이후 서구의 근대 미학은 일상에서 다양한 반응과 행동을 낳는 미적 경험의 현실적 국면들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이 사이토가 제기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일상의 미학은 “평범하게 경험되는 일상생활”(Saito, 2007: 48)의 미학이어야 하는데, 주류 미학의 미적 경험론은 “일상의 바로 그 일상성”(Saito, 2007: 50)을 포착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관조적 경험은 일상의 환경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일몰, 눈부신 미소, 어린아이의 얼굴을 떠올려 보자. 구경꾼 같은 관조적 태도를 취하게 하는 전형적인 예술 경험과 달리, 일상의 미적 차원은 다양하고 역동적이며 청소, 구입, 수리, 폐기 등과 같은 특수한 행동을 이끈다. …… 일상의 행동 중심적 차원은 …… 미학의 레이더를 옮겨준다. …… 나는 명백하고 당연한 것을 재발견하고 검토해 그것의 경이로움을 탐구하는 철학의 정신을 우리의 미적 삶에 적용하고자”(Saito, 2007: 4-5) 한다.

다음으로 사이토는 일상미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예증한다(Saito, 2007: 2장, 54-103).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고 마당을 쓸고 물건을 고를 때와 같은 일상의 매 순간마다 우리는 실은 미적 감상과 판단을 한다. 사이토는 “셔츠의 얼룩과 주름 관리, 개인적인 몸단장, 소유물과 자산의 외관 돌보기”(Saito, 2007: 54)처럼 일견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에도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 못지않은 미학적 고려가 개입된다는 점을 자연의 피조물, 경관, 인공 환경, 소비재와 상품 등 다양한 예를 들어 논증한다(Saito, 2007: 58-69). 나아가 그는 우리가 매일 내리는 일상의 미적 판단이 중대한 함의를 지닌다는 점을 논한다. 일상의 미적 태도와 선택이 환경에 미치는 결과를 다각도로 예증하며 일상미학이라 부를 수 있는 담론이 일상의 사물과 환경에 대한 판단과 평가에 얼마나 중요한지 논하는 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일상미학은 미와 관련된 삶의 다양한 국면을 실제 그대로 진실하게 다루게 해주며 그 내용을 풍부하게 한다. 더 나아가 일상의 미적 감상과 평가는 “삶의 질과 세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결정하게 한다”(Saito, 2007: 69). 그가 말하는 “미적인 것의 힘(the power of the aesthetic)”(Saito, 2007: 68-72)이 일상에 자리하는 지점이다.

사이토의 논의는 일상에서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미적 경험의 특정한 국면들을 탐구하고 분석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용적(paradigmatic) 함의에 논거를 두고 미학적 분석을 진행하는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일상의 “미적인 것의 힘”을 논증한다. 얼핏 보면 사소해 보여 무시하기 마련인 “일상의 미적 반응은 때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때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중대한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결과를 낳는다”(Saito, 2007: 6).『일상의 미학』 3장에서는 흔히 경험되지만 명료하게 분석된 경우는 거의 없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 특유의 성질과 분위기(ambience)에 대한 감상을 면밀히 검토한다(Saito, 2007: 104-148). 진기한 특성을 지닌 자연물과 어떤 대상다운 특성(like-ness)을 가진 자연 개체, 그리고 재료 고유의 특질(truth to material)을 지닌 대상에 대한 감상을 다층적으로 예증하는 그의 논의는 미적 감상의 도덕적(moral) 차원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즉 미적 감상의 기저에 있는 태도가 감상 대상의 고유한 속성을 수용하고 찬미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겸허하고 정중한 자세를 길러 준다는 것이다. 사이토는 긍정적인 미적 경험을 판단하고 조율하는 태도의 필요성, 즉 미적 경험과 도덕적 고려의 조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사이토는 한 걸음 더 나아가『일상의 미학』 4장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련의 친숙한 경험들을 추적한다(Saito, 2007: 149-204). 그는 깨끗한, 정돈된, 어질러진, 오래된, 황폐한 등의 특질과 관련되는 경험의 양상을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논의하면서 그러한 특질들이 실존의 보편 법칙인 일시성(transience)에 의해 좌우된다고 예증하며(Saito, 2007: 152-172), 노화하는 외모/노후한 외양(appearance of aging)의 미적 특성을 다각도로 해명한다(Saito, 2007: 173-204). 어떤 사물과 환경을 새것 상태로 영구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원래대로 똑같이 머무르는 것은 없다. 이러한 특성을 그는 18세기 영국의 픽처레스크(picturesque) 미학과 일본의 와비(wabi) 미학 등 풍부한 역사적 선례를 통해 논구할 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다양한 국면에서 발굴한다. 예컨대 “우리는 방을 청소하고, 책상 위를 정돈하고, 셔츠의 얼룩을 제거하고, 산뜻하고 단정해 보이도록 잔디를 깎고, 닳아서 너덜너덜한 소파를 버리는 데 익숙하다. 반면 우리는 골동품 탁자의 빈티지 외관, 고서의 곰팡냄새와 부스러질 것 같은 느낌, 오래된 그림의 빛바랜 색을 높이 평가한다”(Saito, 2007: 6-7).

이처럼 어떤 사물과 환경의 오래되고 노화한 외관에 대한 대조적 반응은 일상의 미적 속성에 대한 우리의 복잡한 신념과 태도를 보여준다. 일시성과 노화의 흔적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반응에서 사이토는 두 가지 함의를 끌어낸다. 첫째, 우리의 신체와 소유물의 외관은 우리의 미적 취향뿐 아니라 도덕적 특성에 대한 타인의 판단을 이끈다는 점이다. 둘째, 어떤 물질적 대상이 겪는 노화 과정에 대한 반응은 실존적 용모 및 태도와 난해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반응의 한쪽 끝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열망, 예컨대 혼란함, 난잡함, 더러움, 노화의 징후 등에 대한 저항이다. 다른 끝은 결국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인정, 더 나아가 찬양이다. 사이토는 대상 특유의 성질과 분위기에 대한 미적 감상에 도덕적 한계가 있다는 3장의 논의를 넘어, 4장에서는 일시성―곧 덧없음―이나 노화의 조절과 통제를 포기하고 숙명에 복종하는 경향의 이면을 신중하게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시성과 노화의 미적 국면이 어떤 정치 의제나 사회 시스템을 인정하거나 고취하는 데 적용되면 피해 막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떨어지는 벚꽃의 미에 대한 일본의 전통적 감수성을 군국주의 미학으로 연결해 제2차 세계대전의 카미가제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강요한(Saito, 2007: 196)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사이토는 일상의 미적 경험은 중대한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파장을 낳으며, 특히 도덕적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주장을 발전시킨다(Saito, 2007: 5장, 205-242). 예를 들어 태풍과 지진 같은 극단적 기상 상황이나 재해가 일어나는 환경에 대한 미적 경험, 무질서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대한 미적 경험은 안전뿐 아니라 도덕적 문제와 상충되기도 한다. 이러한 난맥을 넘어서고자 사이토는 “도덕적-미적 판단” 개념을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도덕적-미적 판단은 “대상물의 의도나 목적으로부터 자유로운, 대상물이 만들어내는 감각적 경험에 대한 도덕적 판단”(Saito, 2007: 208)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일상 사물과 환경의 미적(감각적) 특질과 연관된 돌봄, 고려, 감수성, 존중 등과 같은 도덕적 판단이다. 도덕적-미적 판단은 삶의 질, 안전, 건강, 소통 등을 갖춘 미학적 복지(aesthetic welfare)의 필요조건이며, 한 사회를 미학적 환경을 갖춘 사회로 완성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사이토의 주장이다. 도덕적 덕목의 수양은 행동을 통해 실천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신중하게 디자인된 사물과 환경의 창조 및 감상을 통해서도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의 미학』(Saito, 2007)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사이토의 의제와 주장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일상의 미적 국면에 대한 주목은 풍요로운 미적 삶의 다양한 차원을 실제 그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일상의 미적 태도와 반응이 낳는 지대한 결과를 인식하고 고려하게 하는 미학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서 미적인 것은 없어도 되는 사치도 아니고 하찮은 사소함도 아니다. 특히 일상의 미학은 일상생활과 직접 연결된다. 계속 무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적 삶의 미적 차원을 잃을 뿐이다. 그러나 그 존재를 인정하고 그 중요성을 탐구함으로써 일상의 미적 차원을 획득할 수 있다”(Saito, 2007: 8).『익숙한 것의 미학(Aesthetics of the Familiar)』(Saito, 2017)에서는 일상미학에서 일상의 의미, ‘미적인 것의 힘’의 영향, ‘미학적 문해력’의 필요성에 대한 탐구가 확장되고,『돌봄의 미학(Aesthetics of Care)』(Saito, 2022)에서는 일상미학의 도덕적/윤리적 차원이 ‘돌봄’ 개념을 중심으로 심화된다.

4. 일상미학의 쟁점과 의의

4.1 미학의 확장과 모호한 일상

앞의 3장에서 논한 유리코 사이토의 일상미학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확장’의 전략이다. 그는 예술론 중심의 분석 미학과 특별한 방식의 미적 경험―특히 무관심적 관조―론을 고수하는 기존 미학 이론의 대상과 범위를 일상의 사물, 사건과 행동, 환경으로 확장하는 논의를 일관되게 펼친다. 제도권의 주류 미학으로는 보물상자에 갇힌 일상의 미적 차원을 끄집어낼 수 없으므로 새로운 미학적 관점의 구축과 실천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의 전략은 사이토 이론의 가장 중요한 의의인 동시에 논리적 쟁점이기도 하다.

우선 사이토의 일상미학을 통해 확장된 미학이 역설적으로 제도권 예술계(artworld)에 의존하고 있다(손은신과 배정한, 2016: 38)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는 환경예술과 대지예술을 포괄하는 동시대 미학조차도 기존의 예술계에 경도되어 일상 환경의 미적 국면을 포괄하지 못한다고 분석하며, 그러한 난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환경과 사물 그리고 행동을 미적 대상으로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감상자의 의지가 필요하다(Saito, 2007: 42)고 말한다. 그러나 감상자의 의지가 일상의 미적 경험의 필요조건이라면, 경험 대상에 대한 교육이나 애착을 통해 갖출 수 있는 그러한 미적 태도는 누구나 일상에서 평범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게 정제된 취향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감상자가 환경과 일상의 미적 국면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못지않은 특별한 미적 감식안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알렌 칼슨은 사이토의 이론이 “일상성의 바로 그 일상성을 포착하는 데 실패하는 역설”(Carlson, 2008: 877)을 품고 있다고 지적한다.

확장의 전략에 제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문은 사이토가 일상의 미적 특질을 해명하면서 주로 대상의 ‘기능’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독특하고 고유하며 차별적인 성질, 즉 ‘-다움’을 갖춘 일상의 어떤 대상이나 현상이 미적 특질을 지닌다고 다각적으로 예증한다. 그에 따르면, 어떤 백조가 백조답고 어떤 돼지가 돼지다운 것은 그 개체 혹은 대상의 본질적이고 특징적인 기능이 적절하게 표현되거나 발현되는 경우이며 그러할 때 우리는 그러한 개체 혹은 대상을 미적으로 감상한다(Saito, 2007: 3장, 특히 105-107). 그러나 기능성에 대한 강조는『일상의 미학』 4장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논증과 모순되는 점이 적지 않다. 예컨대 그는 더럽거나 지저분한 상태의 환경이나 금이 가고 깨진 찻잔처럼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운 대상, 즉 기능성에 기반하지 않은 일상의 대상일지라도 우리의 미적 경험을 끌어내는 경우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그 미적 특질을 논한다. 또한 5장에서 강조하는 ‘도덕적-미적 판단’은 대상의 기능으로부터 자유로운 감각적 경험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므로 3장에서 강조하는 ‘-다움’, 즉 기능성에 대한 강조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미학을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사이토의 논의는 대부분 예증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사이토가 들고 있는 예시는 그 종류가 놀랍도록 다양해서 마치 복잡하게 뒤엉킨 분더카머(Wunderkammer; 박물관의 전신 격으로,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해 진열한 방)를 연상하게 한다. 그가 일상의 환경과 사물 그리고 행동에서 발굴한 미적 특질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만큼 범주의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는 일상의 미적 속성과 그 경험을 해명하기 위해 때로는 일상의 일부를 일상으로부터 분리하고, 또 때로는 일상의 일상성 그대로를 수용한 것이 아닐까. 토마스 레디는 이러한 점과 관련해 사이토가 말하는 일상의 미적 감상에 두 가지가 방식이 혼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즉 “하나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찾는 방식(규범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평범함 속에서 평범한 것을 강조하는 방식(기술적 접근)이다”(Leddy, 2009).

이처럼『일상의 미학』이 출간된 이후 다양한 토론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가장 큰 쟁점은 그가 미학을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했으나 일상미학의 ‘일상’ 자체가 명료하게 정의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예컨대, Carlson, 2008; Leddy, 2009; Wilkinson, 2009). 즉 그가 논하는 일상이 때로는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미적 태도나 취향을 전제로 하는 비일상―때로는 예술계에 속하는 대상이나 활동―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쟁점에 대해 사이토는 후속 저서『익숙한 것의 미학』(Saito, 2017)에서 일상미학의 “일상은 본질적으로 규정하기 힘들고, 동시에 많은 논쟁을 초대하는 개념”(Saito, 2017: 9)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일상미학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상인지 구별하는 것보다는 “일상의 사물과 활동에 대한 우리의 태도”(Saito, 2017: 10)가 갖는 실질적 파급력을 간파하고 사회적 책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편으로는 익숙한 것(the familiar)을 낯설게 함(defamiliarization)으로써 일상의 미적 국면을 파악하고(Saito, 2017: 11-22) 다른 한편으로는 열린 마음과 감수성을 통해 익숙하고 평범한 것 자체를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예리한 미적 감각을 기르면(Saito, 2017: 23-36) 일상의 미학적 지평이 넓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4.2 도덕적-미적 판단과 돌봄의 미학

사이토가 구축하고 있는 일상미학 이론의 가장 고유한 측면이자 중요한 의의는 일상에 대한 미적 감상과 태도의 도덕적 차원을 강조하는 점이다. 그는 일상의 환경에 대한 미적 선택의 사회적 중요성을 다양한 사례―이를테면 고르게 깎고 푸르게 관리한 잔디밭에 선호가 낳는 환경적 결과(Saito, 2007: 65, 85, 155)―를 들어 논증한다. 또한 그는 특정한 현상의 심미화가 초래하는 정치적․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도 다각적으로 예증―이를테면 지는 벚꽃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일본의 전통 문화가 제2차 세계대전의 군국주의 미학으로 치닫는 파국(Saito, 2007: 196)―한다. 즉 일상의 대상과 환경에 대한 우리의 (때로는 의식적이고 때로는 무의식적인) 미적 감상과 판단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영향과 파장을 낳는다는 것이다. “일상의 미적 국면은 삶의 질과 세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이토의 반복되는 주장이 놓이는 지점이다. 따라서 그는 일상의 미학적 판단은 도덕적 판단을 동반해야 하며 도덕적 판단에 의해 조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곧 그가 제안하는 “도덕적-미적 판단”(Saito, 2007: 207-213)의 핵심 배경이다.

사이토가 말하는 도덕적 덕목, 즉 돌봄, 사려 깊음, 감수성, 존중 등(Saito, 2007: 206)은 일상의 대상과 환경을 디자인하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미학적 취향 및 기준과 함께 고려되어야 할 유의미한 논제이지만, 도덕적인 것과 미적인 것의 관계가 서로 필요충분조건을 맺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도덕적인 것과 미적인 것 사이의 그의 논증이 범주의 오류에 속한다는 비판(손은신과 배정한, 2016: 39)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토의 “도덕적-미적 판단” 개념은 일상미학과 환경미학의 실천성, 즉 미학과 사회의 관계적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보장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천성은 아놀드 벌리언트가 말하는 미학의 사회적 역할, 즉 미학은 “사회적 실천을 탐색하는 비판적 도구로 쓰일 뿐 아니라 …… 사회의 개선 방향을 비추는 등대”(Berleant, 2010: 193)라는 점과 공명한다. “사회적 미학의 중심에는 윤리적 가치가 놓인다”(Berleant, 2010: 95).

일상의 미적 국면이 낳는 영향과 결과에 대한 논의는『익숙한 것의 미학』(Saito, 2017)에서 더 큰 폭으로 확장된다. 사이토는 “일상의 미적 선호와 취향이 삶의 질과 세상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세계 만들기(world-making) 프로젝트”(Saito, 2017: 143)라는 과감한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한층 더 강조한다. 그는 일상미학이 낳는 환경적 결과를 논증하기 위해 경관, 생명체, 농산물의 외관(또는 이미지)이 생태적 난제와 직결되는 사례들을 펼친다(Saito, 2017: 141-144). 정치적 결과와 관련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경관의 미와 내셔널리즘을 정치적으로 전용한 역사적 선례들을 다룬다(Saito, 2017: 144-146). 사회적 결과를 예증하는 과정에서는 주로 일상의 미학적 요소가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여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문제를 논한다(Saito, 2017: 146-149). 때로는 부정적 파장을 낳기도 하는 그러한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이토는 ‘돌봄’과 ‘존중’을 위시한 도덕적 고려의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다도, 정원, 환경 디자인 등에서 세밀한 사례들을 발굴한다(Saito, 2017: 149-195).

도덕적 (또는 윤리적) 고려에 대한 강조는 최근 출간된『돌봄의 미학』(Saito, 2022)에서 한층 심화된다. 사이토는 환경미학과 일상미학의 구체적 실천을 이끄는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그 좌표를 대변하는 개념이 곧 돌봄(care)이다. “‘돌봄’은 윤리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을 통합해 우리의 일상 생활에 깊이 자리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인간 혹은 비인간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규정하고, 우리 자신을 세계에 위치시키며, 고결한 삶의 방식과 좋은 삶을 가꾸게 한다. 돌봄의 관계성은 세계에 거주하는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존재 방식을 결정한다”(Saito, 2022: 2). 우리가 일상의 사물과 환경 그리고 행동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거나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돌볼 때 일상의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에서 미학적 질감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이토가 거듭 제기하는 “미학적 문해력(aesthetic literacy)”의 필요성(Saito, 2017: 186, 196, 225)은 곧 일상미학의 성립 기반이자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3 도시 재생 경관과 미학적 문해력

유리코 사이토의 일상미학이 제기하는 “미학적 문해력”의 필요성은 일상의 도시 환경과 경관에 대한 실천적 함의를 갖는다. 특히 동시대 한국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관 실천―정책, 계획, 설계 등―과 일상 경관의 소비는 미학적 문해력의 계발과 함양을 요청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도시 공간 변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이슈 중 하나는 재생이다. 도시 재생은 쇠퇴한 도시 공간을 재개발이 아닌 재생의 방식으로 정비해 활성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총칭이며, 각종 도시 정책과 이론, 계획과 설계를 지배하면서 기존의 다양한 사업을 포섭해왔다. 도시 재생은 기능의 변환을 통한 활성화를 추구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공간을 정비하는 물리적 변화를 수반한다. 또한 활성화의 실체는 공간을 이용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의 활발한 활동과 직결되므로 공간 소비자 대중의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요구가 도시 재생의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점은 도시 재생이 사회․경제적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형태와 경관의 외양에 대한 대중의 미적 선호와 긴밀하게 연동하는 것임을 방증한다. 따라서 도시 재생 경관에 대한 전문가는 물론 시민의 미학적 문해력이 필요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한국 대중문화에서 복고, 레트로, 빈티지, 앤티크 등과 같이 과거를 찬미하는 취향이 넓은 공감대를 얻고 유사한 시기에 도시 재생 붐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시 재생이 대중의 과거 지향적 미감과 도시 개발이 맞닿은 지점에 위치한다는 해석은 최근의 일상 경관 소비 현상에 대해 유의미한 설명력을 갖는다. 각종 도시 정책의 재생 비전과 ‘-로수길’이나 ‘-리단길’로 불리는 ‘뜨는 동네’들 또는 성수동, 연남동, 을지로 등 핫플레이스들은 미학적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20세기 한옥들이 누추한 모습으로 남아 있던 서울 종로 한복판의 익선동은 지붕, 기둥, 보만 남은 한옥의 표피 사이를 통유리로 채워 개조한 카페들이 가득한 경관으로 급변했다. 그 내부에는 조선식 가구의 모조품, 1970년대의 다이얼 전화기, 일본식 벽지, 유럽풍 샹들리에, 동남아풍 소품이 뒤섞여 있다. 피상적이고 표피적인 노스탤지어 미감으로 채워진 경관 사이를 개화기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양장을 빌려 입은 사람들이 산책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일상미학의 임무 중 하나는 미적인 것의 힘에 대한 우리의 자각을 깨우고 ‘미학적 문해력’을 계발하는 것”(Saito, 2017: 186)이라는 사이토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악의 없이 무심결에 도시 경관을 경험하고 소비하며 재생산하고 있지만, 그러한 미적 취향과 판단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상적 도시 환경의 조건과 경관 문화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사이토의 논의는 그러한 영향을 경계하고 교정할 수 있는 환경미학과 일상미학의 실천적 기획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획득한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흔히 ‘샤로수길’로 불리는 서울대입구역과 낙성대 사이의 골목길은 자생적 도시 재생과 활성화에 성공한 사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관악구청의 공식 설명을 보면, 길 이름은 “서울대 정문의 ‘샤’와 ‘가로수길’을 패러디”한 것이며 “개성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라는 내용이 나온다. 샤로수길 가로 경관의 미적 경험(임한솔과 배정한, 2021)을 지배하는 이 ‘개성 있는 가게들’은 주로 1980년대에 얼렁뚱땅 형성된 무질서한 주택가의 건물 1층에 들어섰다. 볼품없는 파사드를 통유리로 바꾸거나 거친 질감의 목재를 덧대거나 노출콘크리트를 흉내낸 패널을 덧붙였다. 일부러 깨트려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한 벽돌도 단골 재료다. 일본식 선술집의 격자형 문짝과 휘장이 달려 있기도 하고, ‘응답하라 1988’ 풍의 ‘레트로 룩’ 간판이 걸려 있기도 하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음식점과 술집과 카페를 결합한 비스트로, 수제 맥주집과 햄버거집, 크로스오버 막걸리 카페가 오래된 옷가게, 낡은 세탁소, 허름한 철물점과 동거한다. 미국식 브런치와 프랑스식 홍합 요리를 파는 식당이 있고, 태국 수도의 이름을 내건 야시장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과실주와 칠레의 국민 술을 파는 남미 음식점까지 있다. 맛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명소로 빼곡한 샤로수길의 ‘개성 있는 가게들’의 입지 여건, 건물, 업종, 업주 모두를 표현하는 단어로는 사실 개성보다는 전형이나 획일이 더 적절하다. 이곳의 도시 문화와 경관을 즐기며 지갑을 열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포스팅하는 소비자들은 정교하게 기획된 복고 미감의 매뉴얼을 충실하게 따르며 몰개성의 미학을 무방비로 수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상미학의 역할이 일상 환경의 긍정적인 미적 국면을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미적 자극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것에도 있다는 사이토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미학의 사회적 실천은 미적인 것의 힘을 강화하는 일일 뿐 아니라 때로는 약화시키는 일인 것이다. 폴 던컴(Duncum, 2007)이 말하듯, 현대 도시에서 미학의 문제는 부차적이지 않고 오히려 중심에 위치한다. “상업적 미학의 속성에 대한 주목은 광고의 힘을 파악하고 증진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무비판적인 광고의 힘을 약화시켜 소비자의 미학적 분별력을 기르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Leddy, 2012: 211)는 토머스 레디의 견해에 빗대 이해하자면, 사이토가 제시하는 일상의 미적 국면에 대한 “미학적 문해력”(Saito, 2017: 186, 196, 225)은 일상의 도시 환경과 경관을 진단하고 경계하는 비판적 실천의 기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낡고 노후한 일상 환경과 대상에 대한 사이토의 정교한 미학적 분석(Saito, 2007: 173-204)은 최근 도시 재생 경관의 복고 지향 미감을 비판적으로 독해할 수 있는 문해력을 길러 준다. 미학적 문해력은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구축하는 건축․도시․조경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필수적인 덕목이다. 환경미학이 건축․도시․조경 교육은 물론 시민 교육의 기초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5. 맺음말

이 논문은 다변화하고 있는 환경미학의 최근 전개 양상을 고찰하고, 환경미학의 한 갈래로 부상하고 있는 일상미학 이론의 주요 의제와 주장, 쟁점과 의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1960년대의 문화 변동과 환경주의를 자양분 삼아 싹튼 환경미학은 20세기 후반 이론적 기반을 다지며 성장했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학문적 성숙기를 맞으며 대상과 주제 면에서 다변화 과정에 진입했다. 아놀드 벌리언트의 참여 미학과 알렌 칼슨의 인지주의 자연 감상론을 넘어, 환경미학은 도시를 포함한 인문환경 전반으로 이론적 영토를 확장했으며 도시 환경과 경관의 계획․설계 담론과 교직하는 실천적 좌표를 제시했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환경미학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일상미학’의 성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미학은 일상의 삶과 환경을 미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포섭함으로써 환경미학의 확장을 시도하고 미학의 사회적 실천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

『일상의 미학』(Saito, 2007),『익숙한 것의 미학』(Saito, 2017),『돌봄의 미학』(Saito, 2022)을 잇따라 발표하며 일상미학의 이론적 지형을 구축하고 있는 유리코 사이토는 기성의 주류 미학이 간과해온 일상의 미시적이고 감각적인 국면을 미학의 시선으로 발굴해 현대 도시의 환경과 경관, 공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다양한 층위를 새롭게 해석한다. 사이토는 기존의 미적 경험론과 예술 중심적 미학으로는 일상의 사물과 환경이 지닌 미적 특질과 일상생활의 풍요로운 미적 국면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일상미학의 필요성과 함의를 다양한 방식으로 예증한다. 그가 말하는 “미적인 것의 힘”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미적 감상과 평가가 “삶의 질과 세상의 상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의 단적인 표현이다. 그는 흔히 경험되지만 명료하게 분석된 경우는 거의 없는, 일상의 대상과 환경 특유의 성질과 분위기에 대한 감상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깨끗한, 정돈된, 어질러진, 오래된, 황폐한 등의 특질과 관련되는 미적 경험의 양상을 논의하면서 일시성과 노화의 미학적 함의를 길어 올린다. 또한 그는 일상의 미적 감상과 판단은 때로는 긍정적인 방향에서 때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을 전개하며 그러한 난맥을 넘어설 수 있는 “도덕적-미적 판단” 개념을 제안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일상의 대상과 환경에 대한 “미학적 문해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며, 미학과 윤리학이 교차하는 “돌봄” 개념을 통해 일상미학의 실천적 지평을 확장할 것을 주장한다.

미학 이론의 대상과 범위를 일상의 사물, 사건과 행동, 환경으로 확장하는 사이토의 전략은 일상미학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이자 동시에 쟁점이기도 하다. 그의 일상미학이 토론의 장에 던져진 이후 제기된 반론의 다수는 일상미학의 ‘일상’이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일상미학에서 중요한 것은 일상과 비일상의 구별이 아니라 일상의 대상과 환경에 대한 우리의 미적 태도와 감상이 갖는 파급력을 간파하고 사회적 책임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이토 이론의 가장 고유한 측면은 일상에 대한 미적 감상과 태도의 도덕적/윤리적 차원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일상의 미학적 판단은 도덕적 판단에 의해 조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도덕적-미적 판단”을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도덕적 덕목, 즉 돌봄, 사려 깊음, 감수성, 존중 등은 도시 환경과 경관의 이론과 실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지점에서 그는 “미학적 문해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미학적 문해력은 동시대 도시의 정형화된 구축 방식을 경계하고 획일적 경관 소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게 한다는 점에서 일상미학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일상미학은 주류 미학이 담아내지 못한 일상적 삶과 환경의 미적 국면을 포착하고, 실천성을 지향하면서도 이론 논쟁에 함몰되어온 환경미학의 문제를 극복하며, 미학적 논의를 일상 환경 및 도시 경관의 복합적 현상과 실천적으로 연결하는 기획을 펼쳐가고 있다1).

Notes

주 1. 필자는 이 논문의 주제와 내용을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환경미학’ 강의에서 학생들과 함께 수년간 토론하며 발전시켰다. 일상미학의 의의와 쟁점에 관한 다양한 창의적 의견과 비판적 관점을 개진했던 여러 수강생들에게, 특히 손은신(현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 임한솔(현 서울대교 환경계획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신명진(현 성균관대학교 강사), 박소영(현 서울대학교 박사과정) 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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