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유네스코 세계유산 문화경관 등재 경향 분석

이제이*, 성종상**
Jaei Lee*, Jong-Sang Sung**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충남연구원 공간환경연구실 연구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Researcher, Department of Spatial & Environmental Planning, ChungNam Institute
**Professor, Graduate School of Environment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이 논문은 2024년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재원으로 통일·평화기반구축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결과물임.

Corresponding author : Jong-Sang Sung, Professor, Graduate School of Environmental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08826, Korea, Tel: +82-2-880-1423, E-mail: jssung@snu.ac.kr

© Copyright 2024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Jun 04, 2024; Revised: Jun 18, 2024; Accepted: Jun 20, 2024

Published Online: Aug 31, 2024

국문초록

본 연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121개 문화경관의 등재 경향과 특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문화경관 유산의 특성과 가치를 이해하고, 향후 문화경관으로 등재할 유산의 선정 기준과 등재 방안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UNESCO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공식 문서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각 문화경관의 기본 정보와 속성 정보를 수집하여 기술통계 분석을 실시하고, 분석 결과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도출된 주요 경향성과 관련된 개별 문화경관 사례를 추가적으로 검토하였다. 분석 결과, 문화경관은 유럽과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1992년 이후 등재 건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음을 확인하였다. 문화경관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반영한 경관의 독특성, 전통문화와 토지 이용 방식의 중요성 등을 인정받아 주로 등재기준 (iv), (iii), (v), (ii)를 중심으로 등재되고 있다. 또한 문화경관은 크게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관,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 연상적 경관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서도 농업, 산업 등 인간 활동과 자연환경의 장기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세계유산 문화경관이 자연과 문화, 유형과 무형, 물질과 비물질을 아우르는 복합적 가치 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문화유산 인식과 보전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개별 요소가 아닌 전체적 맥락을 중시하고 경관의 동적 변화 과정 자체에 주목하는 통합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문화경관은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서 지역 정체성 확립, 공동체 회복력 강화,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 등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문화경관의 보전과 관리에는 경관의 역동적 진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관점과 지역 공동체와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 참여에 기반한 거버넌스 체계가 요구된다. 본 연구는 문화경관의 특성과 가치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제고하고, 향후 문화경관 유산의 선정과 관리를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inscription trends and characteristics of 121 cultural landscapes inscribed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to gain a comprehensive understanding of their inherent values and attributes. By employing a dual methodology involving descriptive statistical analysis and in-depth case studies, this research investigates the geographical distribution, temporal inscription patterns, selection criteria, and typologies of these landscapes. The data for this study were collected from official documents and databases available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Center website, ensuring the reliability and authenticity of the information. The analysis reveals that cultural landscapes are predominantly concentrated in Europe and Asia, with a steady increase in inscriptions since 1992. These landscapes are primarily recognized for their uniqueness in reflecting human-nature interactions, as well as the importance of traditional culture and land-use practices, resulting in their inscription mainly under criteria (iv), (iii), (v), and (ii). Furthermore, cultural landscapes can be broadly categorized into three types: designed landscapes, organically evolved landscapes, and associative landscapes. Among these, organically evolved landscapes, formed through long-term interactions between human activities such as agriculture and industry and the natural environment, constitute a significant proportion. These findings suggest that UNESCO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s possess a complex value system encompassing nature and culture, tangible and intangible elements, and material and non-material aspects. This necessitates a fundamental shift in the perception and preservation approaches to cultural heritage, requiring an integrated approach that emphasizes the overall context rather than individual elements and focuses on the dynamic process of landscape evolution itself. Moreover, cultural landscapes have the potential to contribute to sustainable development models by fostering regional identity, strengthening community resilience, and promoting sustainable economic growth. Therefore, the preservation and management of cultural landscapes require a perspective that holistically views the dynamic evolution process of the landscape and a governance system based on the active participation of local communities and stakeholders. This study contributes to enhancing the in-depth understanding of the characteristics and values of cultural landscapes and provides a foundation for the selection and management of future cultural landscape heritage sites.

Keywords: 인간-자연 상호작용; 세계유산 등재기준; 설계된 경관;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 연상적 경관
Keywords: Human-Nature Interaction; World Heritage Inscription Criteria; Designed Landscapes; Organically Evolved Landscapes; Associative Landscapes

1. 서론

1964년에 제2차 국제 역사적 기념건조물 건축가 및 전문가 총회에서 채택된 유네스코의 베니스 헌장(Venice Charter) 제1조에는 세계유산으로서 역사적 기념물은 단순히 특정 위대한 작품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문화적 중요성을 얻은 과거의 성과물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이후 유네스코나 이코모스 등 세계유산을 다루는 국제기구에서는 유산에 대한 개념과 범주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오고 있다(성종상과 이원호, 2021).

1992년 세계유산위원회와 위원국은 세계유산제도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등재 불균형을 타파하고자 분리되어 있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사무국을 통합하고 균형 있는 관리체계 구축하기 위해 세계유산센터를 설립하였다. 같은 시기 유네스코는 문화경관의 개념을 세계유산의 한 범주로 채택하면서 자연과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던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유기적으로 연계된 연속체로서 유산의 개념과 범위가 확장되었고, 세계유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대되었다(정해준, 2021; 이현경 등, 2023).

세계유산운영지침(Operational Guidelin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 이하 ‘운영지침’)에 따르면, 문화경관은 "인간과 자연환경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지역(combined works of nature and of man)"으로 정의1)된다(UNESCO, 2023). 문화경관은 인간 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힘과 자연환경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해온 결과물이다. 문화경관의 개념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기존에는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경관들이 문화경관의 범주가 생겨난 이후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 문화경관 유형으로 등재된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국제사회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으로 경제적 지원과 관광객 유입으로 연결되어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강동진, 2006).

2024년 5월 현재 세계유산은 168개국에서 총 1,199개가 지정되어 있다2). 이 중 ‘문화유산’ 933개와 ‘복합유산’ 39개 중에서 ‘문화경관’은 여러 국가에 걸쳐 있어 중복으로 계상되는 6개3)를 제외하면 121개로 분류된다4). 본 연구의 목적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121개의 문화경관 사례를 분석하여 등재 경향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간 문화경관의 개념을 다루는 연구와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나, 세계유산 문화경관의 등재 경향성을 다룬 연구는 없었다. 운영지침에서 제시한 문화경관의 정의와 내용을 살펴보고 문화경관 유산의 등재 경향을 분석한 본 연구는 한국에 아직 세계유산 문화경관 등재 사례가 전무한 현 시점에서 문화경관 개념과 실천 방안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에 본 연구는 문화경관 유산이 지닌 가치와 동향을 분석함으로써 문화경관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제고하고, 한국의 문화경관 개념 정립과 가치 평가, 보전 및 관리 전략 수립, 그리고 잠재적 세계유산 문화경관의 발굴과 등재 추진 등에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향후 문화경관으로 등재할 유산의 선정 기준과 등재 방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2. 선행연구 검토 및 연구방법

2.1 선행연구 검토

문화경관은 ‘문화’와 ‘경관’이 결합된 용어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자연 경관에 인간의 영향이 가해져 형성된 경관’이라는 광범위한 의미로 정의한다. 사전에 따르면 오늘날 지표면의 상당 부분이 문화경관에 속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화경관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인간 활동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관을 총칭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문화경관'이라는 개념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은 19세기 중·후반 독일과 프랑스의 지리학 연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이 두 나라의 지리학자들은 인간과 자연환경 간 상호작용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형성되는 독특한 경관에 대해 탐구하였다. 이들의 연구는 후에 '문화경관'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Wylie, 2007; 정해준, 2022). 이후 프리드리히 라첼(Friedrich Ratzel, 1844-1904)에 의해 학술적으로 처음 정의(Jones, 2003; 정해준, 2022)되면서 '문화경관'은 지리학 및 관련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학술적 기반 위에 문화경관 개념은 점차 확장되고 발전하였으며, 문화경관에 대한 보전과 관리의 필요성이 국제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베니스 헌장(1964) 이후 유산의 주요 대상이 건축물과 같은 개별 구조물에서 면적인 범위를 아우르는 광역적 대상으로, 그리고 도시나 인공물에서 농촌과 자연경관까지 확장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호주 이코모스의 버라 헌장(Burra Charter, 1979)에서는 유산뿐 아니라 유산이 있는 장소(place)의 문화적 중요성(cultural significance)을 유지하고 유산과 주변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 관계를 문화유산 관리대상에 포함하면서 유산의 가치 판단에 있어서도 단순히 역사적 의미를 넘어 해당 유산이 위치한 사회문화적, 정신적 맥락을 중시하게 되었다(성종상, 2020). 이런 맥락에서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세계유산 운영지침'을 개정하면서 '문화경관'을 세계유산의 한 범주로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문화경관은 세계유산 분야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 중요성은 역사도시경관(historic urban landscape),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 등의 개념과 함께 문화유산 담론에서 더욱 강조되었다.

문화경관에 대한 선행연구는 이론적 정의와 분류(최원석, 2012; Brown, 2018; 정해준, 2022; 김예림과 성종상, 2023; 오정심, 2023 등), 사례 연구(이제이 등, 2016; 정주연과 이혜은, 2016; 노시훈, 2020; Porter, 2020; Tost et al., 2021 등), 보존 및 관리 방안 연구(노시훈, 2019; Koch and Gillespie, 2024 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문화경관의 복합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보전하고 관리하기 위한 학문적 기반을 제공한다. 다만, 문화경관이 복잡하고 다양한 개념과 속성(성종상, 2020)을 지닌 만큼 선행연구에서 나타나는 문화경관의 정의와 분류 또한 다양하다. 연구자들마다 자신의 연구 목적과 관점에 따라 문화경관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방식에 차이를 보이며, 이는 문화경관 연구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문화경관 유산에 한정하여 등재 경향을 살펴보는 것이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운영지침에서 정의하는 문화경관의 개념을 차용한 선행연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최원석(2012)은 세계유산 문화경관 중 산 유산에 주목하여, 산 유산이 지닌 자연적, 문화적 가치를 조명하고 그 가치와 특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보존 및 관리 방안을 모색했다. 정주연과 이혜은(2016)은 아시아에서 문화경관으로 등재된 유산 중 농업유산지역에 해당되는 3개 사례에 대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특징 분석을 통해 세계유산으로서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규명하면서 공통적인 특징을 파악하였다. Brown(2018)은 세계유산 목록에 문화경관을 포함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회의였던 1992년 프랑스 라 페티트 피에르에서 열린 회의의 중요성을 조명하고, 회의가 문화경관 개념의 도입과 확립에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하였다. 정해준(2018)은 보길도 윤선도 원림(명승 34호)을 세계유산 문화경관적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문화경관으로 등재추진 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맞추어 분석하였다. Porter(2020)는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English Lake District) 사례를 통해 세계유산 지정이 지역 브랜딩과 전략적 계획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얻은 교훈과 정책적 제언을 제시하였다. 정해준(2022)은 지난 100년간 서구에서 논의된 문화경관에 대한 학제간 학술 담론을 '형태로서의 경관, 상징으로서의 경관, 장소로서의 경관'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고찰하여, 국내 문화경관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Koch and Gillespie(2024)는 세계유산의 문화경관 범주가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문화경관 범주의 현황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이 연구는 문화경관의 가치와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해서 제도적, 실천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상의 선행연구들은 유네스코에서 정의하는 문화경관의 개념과 가치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세계유산 문화경관의 등재, 관리, 활용 방안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문화경관 연구와 정책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2.2 연구방법

본 연구는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121개 문화경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였다. 분석의 틀로는 UNESCO가 제시한 세계유산 등재기준(i~x), 문화경관의 하위 유형(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관,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경관, 연상적 경관), 그리고 경관의 주제적 특성 등을 활용하였다.

구체적인 연구 절차로는 먼저 UNESCO 세계유산 센터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공식 문서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각 문화경관의 기본 정보와 속성 정보를 수집하였다. 여기에는 해당 경관이 위치한 지역(아프리카, 아랍, 아시아·태평양, 유럽·북미, 중남미), 등재 연도(1979-1990, 1991-2000, 2001-2010, 2011-2021), 그리고 앞서 언급한 등재기준, 경관 유형, 주제 등이 포함된다. 수집된 데이터는 Excel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코딩 및 정리하였으며, 기술통계 분석을 통해 UNESCO 문화경관의 시공간적 분포 특성, 적용 등재기준의 경향성, 대표적인 경관 유형과 주제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도출된 주요 경향성과 관련된 개별 문화경관 사례를 추가적으로 검토하였다. 예컨대 농업 경관이 문화경관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 사례로 필리핀의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Rice Terraces of the Philippine Cordilleras),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of Honghe Hani Rice Terraces) 등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거시적 차원의 계량 분석과 미시적 차원의 사례 분석을 연계함으로써, 유네스코 문화경관의 보편성과 특수성, 그리고 다양성과 유사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역동적 양상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분석의 전 과정에서 문화경관 관련 연구에 축적된 선행 담론들을 지속적으로 참고함으로써, 연구 결과에 대한 심층적 해석과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3. 세계유산 문화경관 등재경향 분석

3.1 지리적 분포

세계 각 지역에 등재된 문화경관을 분석한 결과, 유럽 및 북미 지역은 65개의 문화경관을 보유하여 전체의 53.7%로 유럽과 북미 지역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에는 전체의 21.5%(26개)에 해당하는 문화경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프리카는 12.4%(15개),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에는 9.1%(11개), 아랍국가 3.3%(4개) 순으로 문화경관 유산을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Figure 1 참조). 문화경관 등재의 위치와 수는 유럽의 영향력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내에서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Brumann and Gfeller, 2022).

jkila-52-4-18-g1
Figure 1. Distribution of UNESCO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s by continent
Download Original Figure

문화경관 유산의 반 이상이 유럽에 집중되어 있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자들이 비판적 시각을 제기해 왔다. 이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제도가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비유럽 지역의 문화경관 가치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Gfeller(2015)는 1990년대 초반 문화경관 개념이 도입될 당시부터 유럽 국가들이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문화경관 가치 평가 기준과 방식이 유럽적 기준에 맞춰져 왔음을 비판했다. 당초 문화경관 범주를 만든 의도는 그동안 과소 대표되었던 지역과 주제에서 유산 신청이 이루어지도록 장려하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유럽 국가들이 새로운 기준에 부합하는 유산을 대거 신청하고, 유럽의 농경 및 산업 경관이 다수 등재된 반면, 비서구 지역의 문화경관은 상대적으로 과소 대표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Han(2006)은 문화경관의 심미적 가치 평가에 있어 서구 중심적 시각이 반영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로 인해 비유럽 문화경관의 미적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으며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문화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전통적 심미 기준이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제도는 그동안 서구 중심적 시각에 기반을 두고 운영되어 왔다. 이는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별개의 범주로 구분하여 등재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네스코는 ‘진정성에 관한 나라 문서(Nara Document on Authenticity)’를 통해 진정성 개념을 확장하고, 기존에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분리되어 있던 10가지 등재기준을 통합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문화경관의 도입과 확산 역시 자연과 문화를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하는 비서구의 세계관을 반영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경관은 여전히 유럽에 편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는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세계유산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2 등재 시기

문화경관이 세계유산 목록에 공식적으로 도입된 1992년 이후 등재 건수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 25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45개, 2011년부터 2020년까지 45개, 추가로 2021년 한 해 동안 6개가 지정되었다. 1990년대에는 문화경관 개념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등재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2001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2011년부터 2020년 사이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전반적으로 문화경관에 대한 등재 관심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다.

세계유산은 등재 이후 해당 유산의 범위, 가치, 유형 등을 변경할 수 있는데, 1992년 이전에 지정된 기존 세계유산 중에서 3개의 유산이 문화경관으로 인정된 바 있다. 1986년에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영국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킬다(St Kilda)가 2005년에는 유산이 가진 인류 역사와 문화적 중요성이 강조되어 문화경관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통가리로 국립공원(Tongariro National Park)은 1990년에 자연유산으로 처음 등재되었고, 1993년에 문화유산 기준(ⅵ)이 추가되면서 '연상적 문화경관(associative cultural landscape)'으로 재등재되었다. 이는 마오리 족의 전통과 정신적 유대를 반영한 것으로, 원주민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한 선구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호주의 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Uluru-Kata Tjuta National Park)은 통가리로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자연유산에서 문화경관으로 재등재된 대표적 사례이다. 1987년에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공원은 1994년 제1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문화유산 기준 (v), (vi)이 추가되면서 '연상적 문화경관'으로 재등재되었다. 두 공원의 문화경관으로의 변경 등재는 자연의 가치뿐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원주민의 문화, 그들의 세계관을 인정했다는 의미이며 이는 기존 세계유산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자연과 문화를 별개로 인식하던 기존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경관의 가치를 조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3 등재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6개의 문화유산 기준((i)~(vi))과 4개의 자연유산 기준((vii) ~(x))이 적용되고 있다. 문화경관의 경우 주로 문화유산 기준에 의해 평가되지만, 뛰어난 자연환경을 지닌 경우 자연유산 기준도 함께 적용된다(Table 1 참조).

Table 1. World heritage inscription criteria according to the operational guidelin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
Criteria Discription
(i)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Represent a masterpiece of human creative genius;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Exhibit an important interchange of human values, over a span of time or within a cultural area of the world, on developments in architecture or technology, monumental arts, town-planning or landscape design;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Bear a unique or at least exceptional testimony to a cultural tradition or to a civilization which is living or which has disappeared;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Be an outstanding example of a type of building, architectural or technological ensemble or landscape which illustrates (a) significant stage(s) in human history;
(v) 문화(또는 문화권)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인간 거주지, 토지 이용 또는 바다 이용, 특히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진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뛰어난 사례일 것
Be an outstanding example of a traditional human settlement, land-use, or sea-use which is representative of a culture (or cultures), or human interaction with the environment especially when it has become vulnerable under the impact of irreversible change;
(vi)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 사건 또는 살아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예술적/문학적 작품과 직접적 또는 유형적 연관성이 있을 것 (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
Be directly or tangibly associated with events or living traditions, with ideas, or with beliefs, with artistic and literary works of outstanding universal significance. (The Committee considers that this criterion should preferably be used in conjunction with other criteria);
(vii)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을 포함할 것
Contain superlative natural phenomena or areas of exceptional natural beauty and aesthetic importance; threatened species of outstanding universal value from the point of view of science or conservation.
(viii) 생명의 기록이나, 지형 발전상의 지질학적 주요 진행과정, 지형학이나 자연지리학적 측면의 중요 특징을 포함해 지구 역사상 주요 단계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일 것
Be outstanding examples representing major stages of earth’s history, including the record of life, significant on-going geological processes in the development of landforms, or significant geomorphic or physiographic features;
(ix) 육상, 민물, 해안 및 해양 생태계와 동․식물 군락의 진화 및 발전에 있어 생태학적, 생물학적 주요 진행 과정을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일 것
Be outstanding examples representing significant on-going ecological and biological processes in the evolution and development of terrestrial, fresh water, coastal and marine ecosystems and communities of plants and animals;
(x) 과학이나 보존 관점에서 볼 때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을 포함한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를 포괄할 것
Contain the most important and significant natural habitats for in-situ conservation of biological diversity, including those containing threatened species of Outstanding Universal Value from the point of view of science or conservation.

source: UNESCO, 2023

Download Excel Table

세계유산 문화경관의 등재기준별 분포를 분석한 결과, 등재기준 (iv)가 70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그 뒤를 이어 (iii)이 67건, (v)가 60건, (ii)가 44건 순으로 나타났다. 반면 등재기준 (i)은 6건, (vii)은 6건, (viii)과 (ix)는 각 5건, (x)는 4건에 그쳐 상대적으로 적용 사례가 적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각 문화경관이 단일 기준으로 등재된 것이 아니라 복수의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중복 집계된 결과이나 등재된 문화경관 유산 중 50% 이상에 해당하는 문화경관이 기준 (iv), (iii), (v)를 충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Figure 2 참조).

jkila-52-4-18-g2
Figure 2. Number of cultural landscape heritage sites by inscription criteria
Download Original Figure

그 중 기준 (iv)인 "뛰어난 건물, 건축이나 기술 총체, 경관의 대표 사례"에 해당하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이 형성한 농업경관이나 도시경관, 산업경관 등이 기준 (iv)를 통해 세계유산 문화경관으로 등재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준 (iv) 단독으로 등재된 유산은 3개5)이며, 주로 기준 (ii)와 기준 (iii)과 함께 채택되었다(Figure 3 참조).

jkila-52-4-18-g3
Figure 3. Number of cultural landscapes by inscription criteria combinations
Download Original Figure

전체 121개 문화경관 중 등재기준 (ii)와 (iv)가 동시에 적용된 경우가 11건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는 해당 문화경관들이 특정 시대 또는 문화권 내에서 건축, 기술, 기념물, 도시 계획, 조경 설계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 교환을 보여줄 뿐 아니라 뛰어난 사례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이에 해당하는 유산들은 전통 마을, 사냥터, 정원, 종교경관, 산업경관 등 다양한 경관 유형을 포괄하고 있다.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기준 (ii)와 (iii)이 복합 적용된 사례로, 총 10건이 이에 속한다. 이들 문화경관은 광산, 주거지 유적, 계곡, 산업경관, 종교경관, 농업경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화 교류의 증거이자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명의 독보적 또는 특출한 증거로서의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등재기준 중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 기준 (iii)은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혹은 적어도 특출한 증거"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어 온 살아있는 문화전통의 탁월한 증거이자 예술적, 문화적 발전을 반영하는 문화경관의 가치를 인정하는 기준이다. 기준 (iii)을 단독으로 충족시킨 문화경관은 4건에 불과하나, 이들은 모두 암석 유적이나 동굴로 이루어져 있어 선사시대 또는 고대 문명의 흔적을 간직한 경관으로 해석된다.

한편, 기준 (iii)은 기준 (iv)와 더불어 기준 (v)와도 빈번하게 복합 적용되었는데, 그 사례가 총 11건에 이른다. 이 중 7건이 전통적인 농업 또는 목축 활동의 결과로 형성된 농업경관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어온 토지 이용 방식과 생활 양식이 빚어낸 독특한 경관적 가치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암석 유적, 산악경관, 역사적 무역 경로, 양식장 등 다양한 경관 유형이 기준 (iii)과 (v)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문화경관 평가에 있어 문화전통의 지속성과 토지 이용의 실례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세계유산제도 내 무형적 요소를 포괄하는 접근법을 담고 있는 기준 (vi)(WHIPIC, 2023)은 “탁월한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 사건 또는 살아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예술적/문학적 작품과 직접적 또는 유형적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문화와 자연 사이의 무형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문화경관의 가치를 잘 담아낸다. 특히 기준 (vi)으로 등재된 유산에는 다음 절에서 살펴볼 문화경관 유형 중 하나인 ‘연상적 경관’과 관련된 유산이 많다.

자연유산 등재기준 중에서는 기준 (vii) "최상의 자연 현상이나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이 문화경관에 가장 많이 적용되었다. 이는 문화경관 내에 존재하는 뛰어난 자연경관의 가치가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활동과 자연환경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이 빚어낸 문화경관의 심미적 가치가 주목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그 외의 자연유산 기준과 기준 (i)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은 문화경관에 상대적으로 적게 적용되었다. 이는 문화경관이 개별 기념물의 탁월성보다는 총체적인 경관의 유기적 진화 과정과 그 안에 내재된 의미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문화경관은 인간과 자연의 장기적인 상호작용의 산물로서, 개별 구성요소의 독창성보다는 전체적인 맥락과 층위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UNESCO 세계유산 문화경관은 등재기준 (iv), (iii), (v), (ii)를 중심으로 등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경관의 가치 판단에 있어 인간과 자연의 오랜 상호작용으로 형성된 경관의 독특성, 전통문화의 유산으로서의 중요성, 그리고 경관 자체의 심미적 우수성 등이 핵심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문화경관은 인간 사회와 자연환경의 복합적인 관계성이 투영된 종합적인 산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3.4 문화경관 유형

전술한 바와 같이 세계유산 운영지침은 문화경관을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관,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지속 경관, 화석 경관), 연상적 경관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본 연구에서는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121개 문화경관을 대상으로, 각 유산의 특성과 가치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공식문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UNESCO 세계유산센터 홈페이지에 게시된 각 문화경관의 개요 설명과 더불어, 등재 신청 당시 제출된 등재신청서(Nomination Files), 이에 대한 ICOMOS(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등 자문기구의 평가 보고서(Advisory Bodies Evaluations), 등재 심사 결과가 반영된 세계유산위원회 결정사항(Decisions), 그리고 등재 이후 지속적인 보호 및 관리를 위해 수립된 관리계획서(Management Plans) 등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문헌 조사를 통해 각 문화경관이 어떠한 특징을 지니며, 세계유산 운영지침에서 제시한 세 가지 유형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였다. 의도적으로 설계된 정원, 공원 등은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관으로, 전통적인 토지 이용 방식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농업 및 산업 경관 등은 지속 경관으로, 과거의 토지 이용 방식이 중단되었으나 그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경우는 화석 경관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특정 종교, 예술, 문화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관은 연상적 경관으로 구분하였다.

개별 문화경관의 특성을 검토한 결과, 상당수의 유산들이 두 가지 이상의 유형적 특징을 복합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각 문화경관을 단일 유형으로 명확히 분류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분석을 위해서 각 문화경관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본질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하여 대표 유형을 선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형별 분포 현황을 정리하였다. 비록 이러한 방식이 개별 문화경관이 지닌 다층적 속성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하나, 전반적인 경향성을 파악하는 데는 유용할 것으로 판단한다.

첫 번째로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관은 미적, 경제적, 사회적 목적에 따라 계획되고 조성된 정원, 공원, 도시 계획 등을 포괄하며, 인간의 창의성과 계획적 활동의 산물로 평가된다. 독일 데사우 뵐리츠 정원(Garden Kingdom of Dessau-Wörlitz)과 베르그파르크 빌헬름스회에(Bergpark Wilhelmshöhe), 싱가포르 보타닉 가든(Singapore Botanic Gardens) 등의 정원과 공원, 스페인의 아란후에스 문화경관(Aranjuez Cultural Landscape)과 파세오 델 프라도와 부엔 레티로 예술과학 경관(Paseo del Prado and Buen Retiro, a landscape of Arts and Sciences), 포르투갈의 신트라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of Sintra)등의 마을 및 도시 경관 등이 대표 사례이다.

다만 일부 경관의 경우 복합적인 특성으로 인해 단일 유형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탈리아의 발 도르차(Val d’Orcia)는 농업 경관으로서 유기적 진화 경관에 속하나,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이상을 구현하고자 의도적으로 재설계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체코 레드니체·발티체 문화경관(Lednice-Valtice Cultural Landscape)은 리히텐슈타인 가문에 의해 설계된 인공경관이지만, 해당 가문의 역사와 18~19세기 유럽의 문화적, 예술적 변화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연상적 경관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포르투갈 브라가의 봉 제수스 두 몬테 성소(Sanctuary of Bom Jesus do Monte in Braga) 역시 계획적 설계의 산물이나, 오랜 세월 신앙과 문화적 전통을 이어온 성소로서 연상적 경관 속성 또한 지니고 있다.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는 다시 현재까지 전통적 토지이용이 지속되는 지속 경관과 과거의 토지이용 흔적만 남은 화석 경관으로 구분된다. 지속 경관의 대표 사례로는 중국 훙허하니족의 다랑논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of Honghe Hani Rice Terraces), 스페인의 트라문타나 산맥의 문화경관(Cultural Landscape of the Serra de Tramuntana), 포르투갈 알투 도루 와인 산지(Alto Douro Wine Region) 등을 포함하는 농업경관이다. 다만, 이 유형의 농업경관 역시 유기적 진화 경관으로 분류되지만, 돌담과 구조와 같이 인간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관의 속성을 지니는 유산들도 있다.

한편, 지속경관에는 몽골의 오르콘 계곡 문화경관(Orkhon Valley Cultural Landscape), 아르헨티나의 우마우카 협곡(Quebrada de Humahuaca) 등의 계곡 및 협곡경관, 에티오피아의 콘소 문화경관(Konso Cultural Landscape), 나이지리아의 수쿠르 문화경관(Sukur Cultural Landscape) 등의 마을경관, 호수, 원주민 공동체, 양식장, 섬 경관, 석회암 지형 등을 포함한다. 이들은 오랜 기간 지속된 인간의 토지이용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고 발전해온 살아있는 문화경관으로 평가된다.

화석 경관은 주로 농업 활동이 중단된 농업 경관, 광업, 제조업 등 산업 활동이 현재는 중단되었으나 그 흔적이 경관에 남아있는 광산 등과 같은 산업 경관, 고대 정착지와 그 주변 경관을 포함하는 고고학적 경관 등으로 구성된다. 파푸아뉴기니의 쿠크 초기 농경지(Kuk Early Agricultural Site), 영국의 콘월과 서부 데번 광산 경관(Cornwall and West Devon Mining Landscape), 체코와 독일 국경에 위치한 에르츠 산맥(크루슈네호리 산맥) 광업 지역(Erzgebirge/Krušnohoří Mining Region), 우크라이나의 케르소네소스 타우리카 고대 도시와 코라(Ancient City of Tauric Chersonese and its Chora), 리투아니아의 케르나베 고고 유적(Kernavė Archaeological Site (Cultural Reserve of Kernavė)) 등을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이들은 과거 인간 활동의 흔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어 경관에 남아있으나, 현재는 그러한 활동이 중단된 상태로 과거의 토지이용 방식과 문화를 대변하는 유산으로 인식된다.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이 UNESCO 세계유산 문화경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내부의 세부 유형 분포는 이들 유산의 본질적 특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UNESCO는 문화경관 선정에 있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고 진화해온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경관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전통적인 농업, 목축, 산업 활동 등이 현재까지 이어지며 살아있는 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사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UNESCO가 단순한 경관의 심미성이나 특정 시점의 모습보다는, 인간의 지속가능한 토지이용과 문화적 실천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고 경관에 각인되어온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진화의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UNESCO의 시각은 문화경관을 보전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의 중요성을 시사하며, 단순한 경관의 물리적 보호를 넘어 그것을 형성해온 인간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연상적 경관은 특정 역사적 사건, 전설, 믿음, 예술적·문학적 작품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관으로, 그 자체의 물리적 특성보다는 연관된 문화적, 정신적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인식된다(UNESCO, 2021). 대표적인 사례로는 중국 우타이 산(Mount Wutai), 키르기스스탄의 술라이만투 성산(Sulaiman-Too Sacred Mountain), 일본의 기이 산지의 성지와 참배길(Sacred Sites and Pilgrimage Routes in the Kii Mountain Range)등의 산악 경관과 나이지리아의 오순-오소그보 신성숲(Osun-Osogbo Sacred Grove), 케냐의 미지켄다 부족의 신성한 카야 숲(Sacred Mijikenda Kaya Forests) 등이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종교, 영적 전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경관으로 평가된다.

또한 호주 울룰루-카타추타 국립공원(Uluru-Kata Tjuta National Park), 탐갈리 고고 경관의 암면 조각(Petroglyphs of the Archaeological Landscape of Tanbaly) 등의 암석 유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 산과 바다 사이의 카리오카 경관(Rio de Janeiro: Carioca Landscapes between the Mountain and the Sea) 등의 도시 경관, 그리고 해양경관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타푸타푸아테아(Taputapuātea)와 미국의 파파하노모쿠아키아(Papahānaumokuākea) 등 다양한 유형의 경관이 연상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처럼 연상적 경관은 인간 정신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는 경관으로, 물리적 실체로서의 경관과 그에 투영된 무형의 가치가 결합하여 독특한 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연경관 그 자체의 심미적, 생태적 중요성과 더불어 오랜 세월 축적되어온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인류 문화유산으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3.5 주제별 분류

121개 문화경관 유산을 주제별로 분석해 보면, 농업경관, 산, 성지나 종교적 대상지, 역사문화경로, 원주민 공동체 및 문화유적, 역사도시, 산업경관, 정주지 등과 공원 혹은 정원 등 다양한 주제의 문화경관이 포함되어 있다(성종상, 2020).

문화경관 중 상당수는 전통적인 농업 활동이 오랜 기간 지속되며 형성한 농업경관이다. 이들은 독특한 농업 기술, 토지 이용 방식, 경작 체계 등을 반영하고 있으며,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한 상호작용의 산물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필리핀의 코르딜레라스의 계단식 논(Rice Terraces of the Philippine Cordilleras), 콜롬비아의 커피 문화경관(Coffee Cultural Landscape of Colombia) 등이 있다.

농업경관과 비슷한 주제로 유목민과 목축 공동체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과 토지 이용이 형성한 경관도 문화경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계절에 따른 이동과 방목 활동, 그에 따른 토지 이용의 특징을 보여주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목 및 목축 문화의 가치를 대변한다. 리흐터스펠트 문화 및 식물경관(Richtersveld Cultural and Botanical Landscape), 프랑스의 코스와 세벤의 중세 농경목축 문화 경관(The Causses and the Cévennes, Mediterranean agro-pastoral Cultural Landscape), 스웨덴의 욀란드 남부 농업 경관(Agricultural Landscape of Southern Öland) 등이 이에 속한다. 인도네시아의 발리 절벽 논(Cultural Landscape of Bali Province)은 전통적인 수리 시스템인 수박(Subak) 시스템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업경관이면서 인간, 자연, 신의 조화를 강조하는 철학을 담고 있어 종교경관에도 속한다.

특정 종교 또는 신앙 체계와 관련된 경관도 문화경관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이들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 건조물, 자연 지형, 의례 공간 등이 어우러진 성스러운 경관으로, 해당 종교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한다. 폴란드의 칼바리아 제브지도프스카, 마니에리스모 건축과 공원 단지 및 순례 공원(Kalwaria Zebrzydowska: the Mannerist Architectural and Park Landscape Complex and Pilgrimage Park), 마다가스카르 암보히망가 왕실 언덕(Royal Hill of Ambohimanga)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이탈리아의 피에몬테와 롬바르디아의 사크리 몬티(Sacri Monti of Piedmont and Lombardy), 라오스의 참파삭 문화 경관 내 왓 푸 사원과 고대 주거지(Vat Phou and Associated Ancient Settlements within the Champasak Cultural Landscape) 등 다양한 종교 및 의례 경관이 문화경관으로 등재되어 있다.

문화경관 중에는 특정 산업 활동의 결과로 형성된 독특한 경관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은 과거 또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채굴, 제조, 가공 등의 산업 활동이 환경에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해 형성된 경관적 특징을 보여준다. 독일의 춤메라우 채굴 경관(Mining Cultural Landscape Erzgebirge/Krušnohoří), 영국의 블래내번 산업 경관(Blaenavon Industrial Landscape)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산업 경관은 과거 활발히 이루어졌던 광업, 제조업 등 산업 활동이 현재는 중단되었으나 그 흔적이 경관에 남아있다.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산업의 유산으로, 당시의 기술 수준, 생산 방식, 노동 환경 등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영국의 블래내번 산업 경관(Blaenavon Industrial Landscape)과 콘월과 서부 데번 광산 경관(Cornwall and West Devon Mining Landscape), 우루과이의 프라이벤토스 산업경관(Fray Bentos Industrial Landscape), 폴란드의 크셰미온키, 선사시대의 줄무늬 플린트 광산 지역(Krzemionki Prehistoric Striped Flint Mining Region), 루마니아의 로시아 몬타나 광산 경관(Roșia Montană Mining Landscape)등이 있다. 이들은 철강, 석탄, 구리, 금, 은 등을 생산하던 광산과 관련 시설을 중심으로 형성된 경관으로, 산업혁명 시기 및 그 이전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산업 활동이 지역 경제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담고 있다. 산업 경관은 인간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산업 활동의 실체를 오롯이 보여주는 동시에, 그로 인한 사회적, 환경적 변화상을 집약적으로 담아내고 있어 문화경관으로서의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UNESCO 세계유산 문화경관은 농업, 유목 및 목축, 산업, 종교, 등 인간 활동의 다양한 양상이 자연환경과 오랜 시간 동안 상호작용하며 형성한 복합적인 경관을 아우른다. 각 유형은 인간 사회와 자연의 독특한 관계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지역 공동체의 생활 방식, 가치관, 세계관 등을 경관에 투영함으로써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인류의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4. 세계유산 문화경관 분석을 통한 시사점 도출

4.1 문화경관이 지닌 복합적 가치

문화경관은 지역적, 문화적 맥락을 반영하여 다양한 유형과 특징을 보이는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Fowler, 2003).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문화경관 유산을 살펴본 결과, 문화경관은 자연과 문화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복합적인 결과물임을 확인하였다. 문화경관에는 자연환경의 특성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살아온 인간 공동체의 문화, 역사, 삶의 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유형의 요소와 무형의 요소, 문화와 자연, 그리고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사이의 연계를 포함하면서 사회경제적, 정신적, 종교적 측면에서의 다층적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Aplin, 2007). 문화경관 내의 물리적 요소들은 그것을 만들고 가꾸어온 공동체의 전통지식, 기술, 신앙, 관습 등 무형의 요소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Mitchell et al., 2009). 해당 유산의 가치가 단순히 물리적 환경에 그치지 않고, 무형적인 측면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성격을 지녀야 문화경관으로 등재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덴마크의 쿠자타 그린란드: 고대 노르웨이인과 이누이트의 빙원 농경 경관(Kujataa Greenland: Norse and Inuit Farming at the Edge of the Ice Cap)은 10세기부터 15세기까지 노르웨이 바이킹들이 정착하여 농업을 영위한 곳으로, 후에 이누이트들이 정착하면서 그들의 독특한 농업 및 사냥 방식이 더해진 곳이다. 노르드인은 이 지역에서 목초지와 농경지를 개간하여 사용했으며, 이누이트인들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냥과 어로 활동을 영위하면서 독창적인 문화경관을 형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언어, 역사적 지명, 생태 지식, 공예품 및 계절적 의식과 활동 등의 다양한 무형유산도 포함한다(UNESCO WHC, 2017). 이러한 무형적 요소들은 고대 노르웨이인과 이누이트의 문화경관을 풍부하게 하며, 이 지역의 유산이 단순한 물리적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한다.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문화경관의 복합적 속성은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이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총체적 문화유산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문화경관의 진정한 가치는 유형과 무형, 자연과 문화를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에서 비로소 온전히 인식될 수 있다.

문화경관은 변화하는 사회적 요구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토지의 사용과 공간 구조를 재구성한 결과이다(Antrop, 2005). 문화경관은 고정되고 불변하는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동적 실체(Taylor and Lennon, 2011)로서, 자연과 문화, 물질과 비물질,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층적 구성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최근 들어 더욱 강조되는 무형유산, 공동체 참여 등의 관점이 문화경관 평가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어 문화유산의 보전과 관리에 있어 기존의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연-문화 연계성에 기반을 둔 통합적 접근과 변화 관리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4.2 문화유산 보전6)의 새로운 패러다임

동적이고 진화하는 유산으로서 문화경관 개념의 등장은 유산 보전과 관리 패러다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의 유산 인식이 주로 물리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무형유산, 기억, 장소성 등 보다 다원적이고 역동적인 유산 가치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Fairclough, 2008). 이에 따라 문화유산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변화, 사회문화적 맥락의 변동, 그리고 인간 활동의 영향 등 다양한 요인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경관의 보전은 특정 시점의 경관을 정태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경관의 변화 과정을 관리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동태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Mitchell et al., 2009). 이를 위해서는 문화경관을 형성해 온 자연적, 문화적 요인들에 대한 통합적 이해와 더불어, 경관의 미래상을 고려한 장기적 비전과 관리 전략이 요구된다.

또한 문화경관의 보전에는 유산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가치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핵심적이다(Rössler, 2006). 전문가 주도의 하향식 의사결정이 아닌, 지역 공동체와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문화경관의 보전 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경관이 지닌 복합적 가치체계와 동적 속성을 고려할 때, 다양한 주체들 간의 소통과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시사한다.

문화경관의 변화 과정을 관리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통합적 접근을 실천한 사례로는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들 수 있다. 2017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 지역은 5년 단위로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 관리 계획((The English Lake District Management Plan)을 수립함으로써 자연환경, 문화유산, 지역경제, 관광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통합 관리 비전과 전략을 제시한다(LDNPA, 2021). 이 전략에는 기후변화 대응, 생물다양성 증진, 전통 농업 및 축산 활동의 지속, 역사 건축물 및 고고유적의 보전, 장인기술 전승, 지역경제 활성화, 지속가능한 관광 등 경관의 다원적 가치를 총체적으로 증진하기 위한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계획의 수립과 이행 과정에서 지역 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협력을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립공원 관리 주체인 레이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청(Lake District National Park Authority)은 지역 주민, 농민, 관광사업자, 시민사회단체 등과 긴밀히 소통하며, 상호 이해와 합의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이끌어내고 있다. 각종 워크숍, 공청회, 자문회의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이를 관리 정책에 반영하는 한편, 주민 주도의 경관 관리 활동을 지원한다(Porter, 2020). 이러한 통합 관리체계를 바탕으로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변화하는 자연적, 사회경제적 여건 속에서도 경관의 보편적 가치를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해가고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농경문화유산의 조화, 보전과 활용의 균형, 그리고 지역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토대로 살아있는 문화경관을 이어가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사례는 동태적이고 통합적인 문화경관 관리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다.

문화경관 개념은 기존의 문화유산 보전 패러다임을 확장하고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과거의 문화유산 보전 접근법이 주로 개별 문화재나 역사 건축물의 원형 유지에 집중해 왔다면, 문화경관은 유산의 살아있는 역동성과 끊임없는 진화 과정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히 특정 시점에 고정된 경관의 모습을 정태적으로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관을 형성해 온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작용과 변화 과정 자체를 관리하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동태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자연과 문화를 별개로 여겼던 이분법적 관점을 탈피하고, 양자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하려는 노력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전문가 중심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해당 문화경관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지역 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보장하는 문화유산 거버넌스도 문화경관 보전 패러다임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이처럼 문화경관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 판단, 그리고 보전 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관리를 위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문화경관은 대상 자체보다는 그 형성 과정에, 개별 요소보다는 전체적 연결에, 통제보다는 이해당사자의 참여에 방점을 둔다. 이러한 문화경관의 패러다임은 문화유산 분야는 물론, 지속가능한 발전 논의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4.3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서의 문화경관

문화경관은 자연과 문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문화경관의 보전과 관리는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

문화경관은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를 재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포르토베네레, 친퀘 테레와 섬들(Portovenere, Cinque Terre, and the Islands)은 전통적인 농업 방식과 현대적 관광 산업이 결합된 형태로, 지역 주민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문화경관을 보전하고 있다(UNESCO WHC, n.d.). 이러한 접근은 공동체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문화경관의 보전을 통해 지속 가능한 관광을 촉진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또 다른 사례로, 호주의 버즈 빔 문화경관(Budj Bim Cultural Landscape)은 버즈 빔(관광) 기본계획(Budj Bim (Tourism) Master Plan) 수립을 통해 해당 유산이 지속 가능한 관광 목적지이자 군디트마라(Gunditjmara) 부족 커뮤니티의 터전으로서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계획은 문화경관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며, 군디트마라 사람들, 정부 및 관광 산업이 버즈 빔 경관을 관광지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개발하는 데 필요한 지침을 마련한다(ARUP, 2021).

문화경관은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자연환경과 인간의 문화적, 역사적 활동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다. 사례들을 통해 본 문화경관은 환경적 지속가능성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유산 관리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문화경관은 자연과 문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이자 지역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동체의 회복력을 강화하며,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유산으로서 전 세계 다양한 문화경관의 보전과 발전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5. 결론

본 연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121개 문화경관을 대상으로 등재 경향성과 특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문화경관이 단순한 물리적 경관을 넘어 인간과 자연의 장기적 상호작용을 통해 축적된 유·무형의 복합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화경관은 주로 유럽과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1992년 세계유산 목록에 도입된 이후 등재 건수가 꾸준히 증가해 왔다. 문화경관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반영한 경관의 독특성, 전통문화와 토지 이용 방식의 중요성 등을 인정받아 주로 등재기준 (iv), (iii), (v), (ii)를 충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문화경관은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관,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 연상적 경관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에서도 농업, 산업 등 인간 활동과 자연환경의 장기적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 유기적으로 진화된 경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UNESCO 세계유산 문화경관이 자연과 문화, 유형과 무형, 물질과 비물질을 아우르는 복합적 가치 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문화유산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보전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것으로, 개별 구성요소보다는 전체적 맥락을, 특정 시점의 정태적 모습보다는 경관의 동적 변화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하는 통합적 접근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 문화경관은 자연환경과 인간 활동의 조화로운 공존을 지향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로서, 지역 정체성 확립, 공동체 회복력 강화,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 등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에 문화경관의 보전과 관리를 위해서는 기존의 정태적이고 물리적인 접근에서 탈피하여, 경관의 동적 진화 과정을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통합적 관점과 다원적 가치 인식이 요구된다. 또한 전문가 주도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와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 참여와 협력에 기반한 거버넌스 체계가 필수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 향후 문화경관의 세계유산 등재와 관리에 있어서는 이러한 통합적이고 역동적인 관점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경관에 대한 통합적 관점은 조경 계획과 설계 과정에서 물리적 형태나 기능적 요구사항에 국한되지 않고, 자연환경과 인간 활동의 상호작용, 유형·무형의 문화적 요소, 그리고 경관의 시간적 변화 과정 등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반영하는 조경 계획과 설계 방식의 필요성을 환기시킨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 마을, 농경지 등에 투영된 우리 민족의 삶의 방식과 지혜,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생 등을 문화경관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그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 판단한다.

비록 본 연구는 121개 문화경관 유산에 대한 계량적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문화경관의 특성과 가치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제고하고, 향후 문화경관 유산의 선정 기준과 등재 방안을 모색하는 데 유용한 기초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Notes

주 1. 운영지침에서는 문화경관을 세 가지 주요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인위적으로 설계되고 조성된 경관(landscape designed and created intentionally by people)’이다. 정원, 공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농경지, 마을 등과 같이 ‘유기적으로 진화해 온 경관(the organically evolved landscape)’이다. 유기적으로 진화한 경관은 이는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유적(화석) 경관(a relict (or fossil) landscape)'은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또는 일정 기간에 걸쳐 종료된 채로 주요 특징만 물리적 형태로 남아있는 경관이다. 반면 '지속 경관(a continuing landscape)'은 과거에 형성됐지만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여전히 활발한 사회적 역할을 유지하고 있으며, 진화 과정이 아직 진행 중인 경관을 뜻한다. 이 두 경관 유형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화의 중요한 물질적 증거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이다(UNESCO, 2023). 마지막은 ‘연상적 문화경관(the associative cultural landscape)’으로 물질적 측면보다는 자연 요소와 관련된 종교적, 예술적 또는 문화적 연관성을 지닌 경관이다. 종교적 성지나 원주민 문화를 예로 들 수 있다(UNESCO, 2023).

주 2. https://whc.unesco.org/en/list/ (2024년 5월 14일 검색).

주 3. 자선의 식민지(Colonies of Benevolence), 쿠로니아 모래톱(Curonian Spit), 에르츠 산맥(크루슈네호리 산맥) 광업 지역(Erzgebirge/Krušnohoří Mining Region), 페르퇴/노이지들러 호 문화 경관(Fertö / Neusiedlersee Cultural Landscape), 무스카우어 공원 / 무자코프스키 공원(Muskauer Park / Park Mużakowski), 피레네 산맥 – 몽 페르뒤 산(Pyrénées - Mont Perdu) 등이 월경유산에 해당된다.

주 4. 2009년에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된 ‘드레스덴 엘베 밸리(Dresden Elbe Valley)’는 제외하였다.

주 5. 비날레스 계곡(Viñales Valley), 브라가의 봉 제수스 두 몬테 성소(Sanctuary of Bom Jesus do Monte in Braga), 디야르바키르 요새 및 헤브셀 정원 문화경관(Diyarbakır Fortress and Hevsel Gardens Cultural Landscape) 등이 이에 해당한다.

주 6. 국내에서는 아직 보존과 보전의 의미가 유사하게 사용되나 유산, 특히 문화경관의 개념적 특성을 고려할 때, 경관의 동적 속성을 전제로 유산적 가치를 유지하는 '보전(conservation)'이라는 용어가 원형 유지를 의미하는 '보존(preservation)'보다 더 적절하다고 판단되므로, 본 연구에서는 '보전'이라는 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한다.

References

1.

강동진(2006) 세계문화유산의 완충구역 관리 개념 정립. 국토계획 41(1): 7-20.

2.

김예림, 성종상(2023) 해양문화경관의 개념 고찰. 국토연구 117: 121-144.

3.

노시훈(2019) 도시재생사업에 있어서 문화경관의 보존과 활용 연구 -「경관법」과 문화영향평가를 중심으로. 인문학연구 57: 7-41.

4.

노시훈(2020) 문화경관유산의 보존을 통한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 구현: 생투앙 벼룩시장의 ZPPAUP, AVAP를 중심으로. 도시연구, (18), 147-181.

5.

성종상, 이원호(2021) 조경으로 보는 역사와 전통: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문화유산.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 성종상 편. 168-179. 도서출판 한숲.

6.

성종상(2020) 세계유산으로서 문화경관의 가치와 의미,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 창립 20주년 기념 세계유산의 새로운 해석과 전망. 43-96.

7.

오정심(2023)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문화경관' 유형과 특성 연구: 전라남도 신안군 사례를 중심으로. 文化財 56(1): 162-180.

8.

이제이, 성종상, 손용훈, 김태균(2016) 조선시대 선비들의 행락공간으로서 세검정 일대의 문화경관. 한국전통조경학회지 34(2): 75-86.

9.

이현경, 유희준, 남수미(2023) 유네스코 세계유산 협약 50주년, 현재 및 과제.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56(2): 264-279.

10.

정주연, 이혜은(2016) 문화경관으로 등재된 세계유산의 비교 -아시아 논농사지역을 중심으로. 경관과 지리 26(3): 87-106.

11.

정해준(2018) 전통 원림의 세계유산 문화경관적 가치 - 분명히 규정된 경관으로서의 보길도 윤선도 원림을 대상으로. Journal of Korean Institute of Tradi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16: 14-27.

12.

정해준(2021) 문화경관: 인간 문화와 자연환경의 상호 작용.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 성종상 편. 196-209. 도서출판 한숲.

13.

정해준(2022) 문화경관 학술 담론 재고 - 경관유산 연구 및 정책 확장과 적용을 위하여. Journal of Korean Institute of Tradi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20: 26-37.

14.

최원석(2012) 세계유산의 문화경관 유형에 관한 고찰. 문화역사지리 24(1): 27-49.

15.

WHIPIC(유네스코 세계유산 국제해석설명센터)(2023) 세계유산 등재기준 (vi)의 해석 전략에 관한 연구. 유네스코 세계유산 국제해석설명센터.

16.

Antrop, M(2005) Why landscapes of the past are important for the future. Landscape and Urban Planning 70(1-2): 21-34.

17.

Aplin, G. (2007).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s. International Journal of Heritage Studies 13(6): 427-446.

18.

ARUP. (2021) Budj Bim Cultural Landscape Masterplan 2022-2030.

19.

Brown, S.(2018) World heritage and cultural landscapes: An account of the 1992 La Petite Pierre meeting. Heritage & Society 11(1): 19-43.

20.

Brumann, C., and A. É. Gfeller(2022) Cultural landscapes and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Perpetuating European dominance. International Journal of Heritage Studies 28(2): 147-162.

21.

Fairclough, G.(2008) New Heritage, an Introductory Essay-People, Landscape and Change. In The Heritage Reader (pp. 297-312). Graham Fairclough ... [et al.]. New York: Routledge.

22.

Fowler, P. J.(2003)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s 1992-2002. Paris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23.

Gfeller, A. E.(2015) Anthropologizing and indigenizing heritage: The origins of the UNESCO global strategy for a representative, balanced and credible world heritage list. Journal of Social Archaeology 15(3), 366-386.

24.

Han, F.(2006) The Chinese view of nature: Tourism in China's scenic and historic interest areas (Doctoral dissertation, Queensland University of Technology).

25.

Jones, M.(2003) The concept of cultural landscape: Discourse and narratives. In Landscape Interfaces: Cultural Heritage in Changing Landscapes, 21-51.

26.

Koch, E., and J. Gillespie(2024) Under-utilisation of the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 category? A timely ques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Heritage Studies 30(7): 768-783.

27.

LDNPA(2021) Lake District National Park Partnership’s Management Plan 2020-2025. Kendal, UK: Lake District National Park Authority.

28.

Mitchell, N., M. Rössler, and P. M. Tricaud(2009)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s: A Handbook for Conservation and Management. Paris: UNESCO.

29.

Porter, N.(2020) Strategic planning and place branding in a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 A case study of the english lake district, UK. European Planning Studie 28(7): 1291-1314.

30.

Rössler, M.(2006)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s: A UNESCO flagship programme 1992-2006. Landscape Research 31(4): 333-353.

31.

Taylor, K., and J. Lennon(2011) Cultural landscapes: a bridge between culture and nature? International Journal of Heritage Studies 17(6): 537-554.

32.

Tost, M., G. Ammerer, A. Kot‐niewiadomska, and K. Gugerell(2021) Mining and Europe’s world heritage cultural landscapes. Resources (Basel) 10(2): 1-17.

33.

UNESCO(2023) Operational Guideline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 UNESCO.

34.

Wylie, J.(2007) Landscape, Oxon: Routledge.

35.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https://whc.unesco.org/

36.

UNESCO World Heritage Centre(2017) Decision 41 COM 8B.22 Kujataa Greenland: Norse and Inuit Farming at the Edge of the Ice Cap. Retrieved from https://whc.unesco.org/en/decisions/6894/

37.

UNESCO World Heritage Centre(n.d.) Portovenere, Cinque Terre, and the Islands (Palmaria, Tino and Tinetto). UNESCO. https://whc.unesco.org/en/list/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