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과거 한국 학교의 외부 공간은 효율성과 집단주의의 가치를 기반으로 신체 단련이나 교내 집회 등 매우 제한적인 용도로만 활용되었다(이재진과 최지희, 2024). 그러나 급속한 성장기 이후 도시 속 학교의 가능성이 새롭게 재조명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학교 공간 재조성 사업이 진행되어 오고 있다.
1999년부터 25년 동안 정부부처, 지자체, 비영리단체, 대기업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여 학교의 외부공간이 보다 나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생태환경미래학교, 학교숲 가꾸기, 녹색학교사업, 학교공원화사업, 명상숲, 꿈꾸는 환경학교 등의 이름으로 다양한 사업들이 실행되었다(허윤선 등, 2014). 이와 같은 프로젝트들에서는 다른 시설사업과는 달리 공간 조성의 방향성을 선정하고 설계하는 부분부터 모든 과정에 학교 구성원을 비롯한 잠재 이용자가 참여하며, 단순한 의견수렴 뿐 아니라 생태문해력 증진을 위한 교육의 과정이 포함된다(정신영과 정태열, 2022). 또한 다양한 주체와 과정을 유연하게 연계시키고 단편적이고 분절적인 공간개선에 그치지 않을 수 있도록 조경 전문가, 관련 전공 교사 등을 촉진자로 활용한다(경상남도교육청, 2020). 경상남도에서는 생태환경미래학교1)를 통해 2020년부터 경남교육청의 지원을 바탕으로 학교가 생태환경교육, 지역과의 교류, 미세먼지 및 탄소 저감 등의 기능을 하는 장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 옥외공간 개선 사업의 목적과 취지는 교육적, 환경적, 도시적(사회적) 기능 개선으로 요약될 수 있다(표 1 참조).
기능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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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적 | 생태 체험과 관찰을 할 수 있고 다양한 놀이환경 제공 |
환경적 | 광역 녹지네트워크를 조성함에 있어 도심 속 거점 녹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음 |
도시ˑ사회적 | 접근성이 높은 곳에 위치하여 지역 커뮤니티 스페이스로 기능 |
학교의 외부공간은 무엇보다도 그 교육적 기능이 다양한 측면에서 향상될 수 있다. 그곳은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도시의 아이와 청소년들이 이를 가장 쉽게 체험하고 관찰하며 이해할 수 있는 일차적인 공간이다(김인호, 2002). 어느 때보다 절실히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습득해야 하는 세대를 위한 장소로써의 학교 옥외공간은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자연과 교감하고 학습과 체험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임이 틀림없다(김인호와 김귀곤 1998). 생태 체험이나 관찰과 더불어 개개인의 자발성을 중시하는 놀이 역시 올바른 교육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야외놀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학교 외부공간은 과거 교육의 개념에서 더욱 확장된 의미의 교육적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백재봉 등, 2006).
또한 학교 옥외공간은 환경적 측면에서 기능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충분한 녹지를 담을 수 있는 학교 공간은 도심 속 온도를 낮추어 열섬효과를 완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고,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을 걸러내어 공기 질을 개선하며, 지표수유출저감, 소음저감 등의 환경적 기능을 할 수 있다(Akbari et al., 2001; Wong et al., 2007). 도심에 고르게 분포된 학교가 ‘학교숲’ 혹은 ‘학교공원’으로 탈바꿈 된다면 도시의 광역적 녹색 네트워크를 구축함에 있어 거점 숲의 역할을 할 수 있다(산림청, 2020).
도시적 관점에서도 학교는 학교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을 비롯한 도시민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간이다. 빠른 성장이 우선시되었던 우리나라 현대 도시의 팽창 단계에서는 충분한 면적의 녹지가 배분되지 못한 반면, 상당규모의 외부공간이 딸린 학교는 도시 어느 곳에서든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공공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 대도시의 맥락 속에서 학교는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 오픈스페이스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김후경과 이현택, 2005).
그러나 이와 같은 도시 속 교육 공간이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기능하도록 재구조화시키는 사업에서는 일반적인 공간 조성 사업에서보다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접근방식이 요구되므로 많은 프로젝트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경남지역에서 2020년 이후 현재까지 진행된 23개의 생태환경미래학교 사업 중 함안 유원초등학교와 양산 범어중학교 두 곳의 사례를 중심으로, 설계과정과 결과를 살펴보고 사업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기 위한 개선 방향을 도출한다. 대승적이고 추상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프로젝트 일련의 과정을 현실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될 학교 외부공간 개선 사업의 질적 수준 제고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 나은 교육적, 사회적 결과를 위해 학교 공간 설계의 접근 방식으로 사용자 참여형 설계가 점점 더 많이 채택되고 있다. 사용자 참여 설계(User Participatory Design)는 “계획 및 설계, 의사결정, 실행 그리고 전반적인 디자인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사용자가 직접 계획과 설계 그리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정의된다(조창희와 이화룡, 2015). 헨리 샤노프(Henry Sanoff)는 참여 설계를 “사용자가 환경의 조성, 유지, 관리 등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시도”라고 정의하며, 사용자가 환경 조성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전문가보다 더 명료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조재문 등, 2023). 이러한 설계 방식은 역사적으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 이론과 도시계획 분야의 소통적 계획 이론에 근거한다(김연금 등, 2003). 기존 공급자 중심의 방법론에서 벗어난 참여형 설계는 하버마스가 제시한 ‘소통’을 바탕으로 수요자의 요구도와 선호도가 반영된 결과물을 완성해 만족도와 주인의식을 높인다. 다양한 이용자의 의견을 조율하고 반영해야 하는 설계 방식의 특성상 참여 설계에서는 이해관계자 간의 소통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이광수와 류수훈(2019)은 학교시설의 사용자 참여 설계 프로세스를 크게 3단계로 구분한다. 1단계는 사용자 요구사항 파악을 위한 워크숍 준비 단계, 2단계는 설계에 대한 토론 및 사용자 의견 반영 단계, 3단계는 수정·보완된 설계안을 최종 평가하는 단계이다. 조재문 등(2023)은 이용자 참여 설계를 적용한 과정을 “사전설문, 정기 협의회, 참여 설계, 인사이트 투어, 사후평가”의 5단계로 구분하여 디자인 개선안을 도출하였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상황에 따라 중간 과정을 대체하거나 생략할 수 있으며, 실제 사용자의 목표와 경험을 얻는데 집중하는 특성이 있다.
전문가의 결과물보다 과정이 중요시되고, 설계 주체가 전환된 이와 같은 방식은 특히 공공공간 설계 분야에서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형성한다. 그중에서도 학교 공간의 사용자 참여 설계는 물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공간의 구축’이라는 개념보다 ‘교육과정’과 ‘사용자(학습자)’가 강조된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이화룡과 조창희, 2013).
학교 공간에서도 참여형 설계는 학생, 교사, 학부모 등 실제 공간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필요와 요구를 직접 표현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함으로써 공간의 실용성과 만족도를 높인다(이광수와 류수훈, 2019). 학교 옥외공간의 주요 이용 주체는 학생인 만큼 특히 학생들이 자신들이 사용할 공간에 대해 직접 설계를 주도하고, 학교 구성원들과 함께 콘셉트 디자인을 도출하는 것이 이러한 접근법의 목표라 할 수 있다(한세민, 2021).
조세환과 김태현(2004)은 학교 공간 참여형 설계는 계획·설계, 시공, 유지·관리의 전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효과적이라 분석한다. 각 단계별로 적합한 참여 방식이 존재하며, 계획·설계 단계에서는 조경사업 주제 선정 워크숍, 조경학교 개교, 조경설계 샤렛(charette) 참여, 주민 주도 조경 워크숍 등이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샤렛’은 한정된 시간 동안 특정 문제 해결을 위해 브레인스토밍이나 아이디어 스케치 등을 통해 창의적인 설계 및 계획을 제안하는 다양한 그룹 활동으로, 사용자의 입장을 잘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다(조세환과 김태현, 2004).
참여디자인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의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도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정은주 등(2013)에 따르면 그려보기나 모형을 활용하여 학교 건물을 중심으로 대상 옥외공간에 원하는 시설과 공간을 배치하는 ‘대안 제안’ 수준의 ‘시각적 표현’ 과정이 사용자 본인들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박종혜와 이민아(2021)는 공간지도 읽기, 공간답사, 사진 촬영, 사진지도 만들기, 교사 간담회, 설문조사, 운영위원회와 지역주민 인터뷰 등을 통한 공간 선호도 조사 뿐만 아니라 ‘내가 꿈꾸는 놀이터 그리기’ 작업을 통해 사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밝힌다.
한편 여러 이용 주체들과 함께 생태환경미래학교가 지향하는 다양한 층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은 사업의 물리적 규모에 비해 간단하지만은 않다. 계획 과정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수용하기 위해 본 사업에서는 사용자 참여 과정에 조율자의 역할을 하는 촉진자가 도입된다. 촉진자는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에서 워크숍을 개최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 민간과 공공부문에 대한 편견 없는 중재자이자 여러 상황에 대해 자문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이화룡과 조창희, 2013).
2. 연구 방법
본 연구의 첫 번째 설계 대상지는 경상남도 함안 유원초등학교로 2021년 6월에서 2022년 2월까지 설계가 진행되었다. 학교 건물과 외부공간은 1939년 완공되었으며 장방형 부지 두 면을 ㄴ자 모양으로 건물이 감싸고 있는 전형적인 학교 배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세부 대상지는 운동장 남동쪽 구석으로 학교 건물에서 가장 먼 거리에 위치해 이용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며 최종 조성 면적은 약 800m2이다. 두 번째 대상지는 양산 범어중학교로 2022년 7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설계가 진행되었다. 범어중은 2007년 양산의 신도시건설과 함께 들어선 학교로, 비교적 현대적으로 설계되어 테라스, 필로티, 중정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부 대상지는 가장 사용 빈도가 높은 중정 공간 570m2와 2층 테라스 145m2로, 중정 공간에 집중하여 설계가 진행되었다(그림 1 참조).
본 연구에서는 두 학교에서 진행되었던 사업의 과정을 크게 본격적인 설계의 전 단계인 사전 준비 과정, 설계가와 촉진가가 대상지의 상황을 분석하고 안을 제시하는 단계인 기본계획 및 설계과정, 실제 물리적 환경 조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단계인 실시설계 및 시공 과정의 세 단계로 구분하였다(표 2 참조).
2030 생태환경 미래 학교 추진계획2)에 따라 경남교육청에서는 각 지원학교의 제안서 심사를 통해 사업 대상 학교를 선정한다. 제안서에는 크게 학교 현황, 사업추진 계획, 예산계획을 작성하게 되어있고, 세부적으로 사업의 필요성, 교육과정 운영계획, 사용자 참여 설계 방법, 지역 연계 공간 활용 계획, 공모 세부 유형, 탄소중립 실현 방안, 향후 운영계획 등에 대한 항목을 통해 학교 옥외공간 개선의 방향성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작성 가이드라인이 제시 되어있다. 유원초등학교와 범어중학교는 각각 2021년과 2022년에 제안서를 제출하여 심사를 거쳐 사업 대상 학교로 선정되었다.
또한 경남교육청에서는 공사비, 설계비, 촉진자 용역비, 교육과정 운영비 등을 지원하기 위해 각 학교당 1억 5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였다. 2020년에서 2024년까지 생태숲 미래 학교 사업에 선정된 학교의 수와 지원 비용은 2020년 5개 학교 총 10억 5천만 원, 2021년 8개 학교 총 12억 원, 2022년, 2023년, 2024년 10개 학교 총 15억 원으로 전체적인 사업 규모는 증가하였지만, 학교당 지원 금액은 증가하지 않았다(경상남도 교육청, 2020; 2021; 2022; 2023).
이론적 고찰에서 거론된 설계 접근 방식에서와 같이 두 사업의 설계과정에서도 이용자와 전문가가 더욱 밀접하고 체계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워크숍이 도입되고, 옥외공간 조성 관련 전문가인 촉진자가 개입하여 사업 전반의 과정을 중재하고 조율하였다.
촉진자는 학교와 주변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 구성원들에게 학교 외부공간과 관련된 생태교육을 실시한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의 중요성을 알리고 예상되는 결과와 영향력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그들은 이용자들과 함께 잘 만들어진 공간을 답사하고 그곳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간의 순기능을 보다 직접적으로 체험시키기도 한다. 워크숍에서는 교육과 더불어 보다 바람직한 방식으로 이용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기 위해 설문은 물론 토론, 그려보기, 만들어보기 등 다양한 활동이 추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원초등학교의 경우 초등학교 2, 3, 4, 5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총 세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생태교육을 실시하고 이용자의 선호도를 파악하였으며 범어중학교에서도 중학교 1, 2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현장답사를 포함하여 총 세 차례의 워크숍을 실시하였다(표 3 참조). 두 프로젝트에서 모두 조별 토론을 거쳐, 시설·공간 그리기를 통한 이미지 조사와 시설·공간 배치하기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워크숍 참여자들은 학교의 현황, 자신들이 원하는 옥외공간 조성 방향, 학교가 더욱 잘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 중 학교 구성원을 대상으로 새로 조성 될 공간에서 어떠한 활동을 하고 싶고 어떠한 공간을 원하는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선호 시설 및 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촉진자는 기본설계를 진행하였고 이후 학교 행정 의사결정권자와 전문가가 모인 협의회를 통해 설계안을 조율하고 수정하였다.
차수 | 유원초등학교 워크숍 | 범어중학교 워크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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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참석인원 | 일시 | 참석인원 | |
1차 | 2021.06.22. | 13명 | 2022.07.27. | 27명 |
2차 | 2021.07.07. | 27명 | 2022.08.05. | 21명 |
3차 | 2021.08.04. | 9명 | 2022.08.16. | 20명 |
현장답사 | COVID-19로 미시행 | - | 2022.08.16. | 20명 |
생태환경미래학교의 실시설계는 촉진자가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촉진자가 속한 업체가 엔지니어링산업진흥법령에서 인정하는 기술사사무소에 등록된 곳이어야 한다. 생태환경미래학교와 유사한 학교 외부공간 재조성 사업에서 실시설계의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촉진자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경남지역 생태숲미래학교의 경우 모두 촉진자와 실시설계자가 구분되어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유원초등학교와 범어중학교에서도 역시 경남지역 조경설계업체가 실시설계를 맡아 진행하였다. 실시설계 완료 이전, 학교 행정담당자, 교사, 설계가, 촉진자가 모여 협의회를 진행하며 설계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거쳤으며,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학교 측에서 시공사를 선정하여 공사가 진행되었다.
완공 후 일정 기간이 지난 2024년 7월 범어중학교와 유원초등학교의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공간 이용도 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은 사업의 취지와 이용자의 요구가 실제 공간에 반영이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개선된 외부공간의 전반적인 인식(1문항), 활용 빈도(1문항), 이용 행태(6문항), 응답자 일반사항(1문항)의 4개 대분류 항목으로 구성하였다(표 4 참조).
3. 결과
일반적으로 설계 프로젝트는 다양한 상황을 거치며 초기 계획과 시공 결과에 어떠한 형태로든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다. 생태환경미래학교 역시 설계의 각 단계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표 5와 6은 두 프로젝트의 사전 준비 단계, 기본계획 및 설계, 실시설계 및 시공 단계에서 제안된 주요시설 및 공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 단계 시설물 반영 정도: O 반영, △ 일부 반영, X 미반영
총 1억 5천만 원의 사업비 중 유원초등학교와 범어중학교 각 학교의 사업 추진 예산을 살펴보면 모두 시공비, 사업운용비 및 예비비, 설계가 및 촉진자 용역비 순서로 예산을 배분했으며 촉진자와 설계가의 용역비는 5백만 원에서 1천만 원 사이로 책정되었다3)(유원초등학교, 2021; 범어중학교, 2022).
사업 신청서에서 밝히고 있는 유원초의 조성 방향성은 인근 고속도로, 콘크리트 파쇄공장 등이 위치 해있어 미세먼지 저감이 주요 기능이며, 여기에 생태교육, 놀이, 휴식 활동을 담는 것으로 계획했다. 범어중학교는 환경적·사회적 효과보다, 환경교육 학습장 조성, 교실 속 환경 교육 프로그램 개발, 생태연못 조성, 생태동아리 운영 등 교육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두 학교 제안서 모두에서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 유지관리 방안에 대해서는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들로 간략히만 언급하고 있다(유원초등학교, 2021; 범어중학교, 2022).
워크숍 중 진행된 선호도 조사에, 유원초등학교는 1학년~6학년 학생이 참여하여 총 62부, 범어중학교는 1, 2학년 학생이 참여하여 98부의 조사 결과를 분석에 이용하였다.
유원초등학교 선호 시설의 경우 놀이시설(그물놀이터, 트램펄린, 물놀이장, 그네, 정글짐, 미끄럼틀 등) 32%, 정원(꽃밭) 18%, 사육장 12%, 수경시설(연못, 분수 및 레인가든) 12%, 벤치(평상, 흔들의자, 해먹 포함) 10%, 잔디밭(잔디운동장) 4% 온실 3%, 기타 9%로 놀이공간에 대한 선호가 뚜렷했으며, 생태 체험 및 관찰(정원, 레인가든, 온실, 사육장)을 위한 시설에 대한 수요가 그다음으로 높았다. 기대 활동 역시 놀이 및 운동 28%, 휴식 및 담소 나누기 21%, 텃밭 가꾸기 및 식물관찰 18%, 동물 키우기 14%, 낮잠 8%, 야외 학습 4%, 영화감상 3%, 기타 4%로, ‘놀이’-‘체험 및 관찰’-‘교육 및 학습’의 순서로 이어져, 시설 선호의 순서와 일관된 결과를 보였다.
범어중학교에서의 선호 시설은 벤치(평상, 흔들의자, 해먹 포함) 24%, 정원 16%, 잔디밭(잔디운동장) 13%, 수경시설(연못 및 분수) 11%, 놀이시설 10%, 숲속 교실 및 도서관 10%, 파고라 8%, 포토존 4%, 기타 4%로 휴식 공간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졌으며 독서나 관찰 등 비교적 정적인 활동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기대 활동 역시 휴식(담소 나누기, 낮잠 자기, 누워있기, 멍때리기 등 포함) 32%, 놀이 및 운동 18%, 독서 및 시험공부 18%, 동식물 키우기 12%, 생태관찰 8%, 캠핑 4% 기타 8%로 나타나 휴식 활동이 가장 선호되었고 놀이, 학업, 생태 체험에 대한 활동들이 비교적 고르게 요구되고 있었다.
워크숍과 설문을 통해 가장 중요한 이용 주체인 학생 중심의 수요를 파악하였으나 특히 초등학생의 선호는 옥외공간의 유희적 기능에 편중된 경향이 크다. 그러므로 보다 다양한 학교 구성원과 소통하고 현실적인 상황들을 고려하여 초기 구상안의 방향성에 맞는 설계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초기 제안서에서 강조된 생태적, 교육적 기능이 사업의 취지와 부합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유희적 기능은 주 이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므로 기본설계안에서는 생태적 기능과 함께 놀이, 체험·관찰, 교육·학습의 기능과 활동이 고르게 담길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설계의 큰 골격은 다양한 경험과 활동이 유도될 수 있도록 곡률이 작은 곡선으로 이루어진 동선과 마운딩, 레인가든으로 구성되었다. 녹지들은 모두 관리가 쉬우면서도 자연의 변화를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수종들로 구성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놀이, 교육, 체험 및 관찰, 휴식을 위한 시설들을 배치하였다. 특히 나무 그루터기가 포장에서부터 앉음벽, 놀이시설로까지 확장되어 배치되었는데 이는 교육에서부터 놀이까지 다양한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주요 설계 언어이다. 이에 더해 기존 텃밭과 연계하여 더욱 개선된 체험 및 관찰 공간을 조성하고, 기존 놀이공간을 연장하여 다양한 활동이 유발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 밖에도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는 원형 평상 공간, 전체적인 원형의 설계 형태에 맞춘 트램펄린 등의 놀이시설이 더해졌다(그림 3 참조).
범어중학교 역시 학생을 비롯한 이용자의 수요조사 자료와 더불어 사업의 방향성에 부합할 수 있도록 휴식과 학습, 그리고 교육의 기능을 강조하여 초기 설계를 진행하였다. 다양한 높이의 건물로 구성된 학교의 외부공간은 중정, 여러 형태의 옥상, 테라스, 운동장 스탠드, 건물 후면부, 필로티 공간, 건물 전면부 등 여러 유형의 공간으로 구분된다. 한정된 예산을 바탕으로 중정 한 곳에 집중하여 양질의 공간을 조성한 후, 추후 확장하여 테라스, 옥상, 운동장 스탠드, 필로티 공간, 건물 전면부 등의 장소를 차례로 재조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활용 가능성이 가장 높은 중정 공간에 휴식 기능이 강조된 공간을 설계하였고, 주요시설로 마운딩과 결합 된 벤치, 해먹 휴식 공간, 수경시설, 음지식물 정원, 저관리형 초지 등을 제안하였다. 이 중 마운딩은 중정 공간이 가지고 있던 위요감을 휴먼스케일에서 다시 강조하며 더욱 아늑하고 사적인 느낌의 공간을 제공하는, 중정 재조성 설계의 가장 특징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해먹 쉼터는 휴식과 유희 활동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일종의 작은 랜드마크로, 공간에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는 시설이다(그림 4 참조).
유원초등학교는 2021년 10월부터 두 달간의 실시설계를 거쳐 11월 착공, 2022년 2월에 완공하였으며 범어중학교는 2022년 10월부터 두 달간의 실시설계를 거쳐 12월 착공, 2023년 2월에 완공하였다. 두 학교 모두에서 실시설계 시작 전 1회, 실시설계 진행 중 2회씩 진행된 협의회를 통해 관리, 시공, 안전 등과 관련한 다양한 현실적 의견들을 수렴하여 최종 실시설계안을 작성하였다(그림 5 참조).
유원초등학교 생태숲미래학교 기본설계안에서 제안되었던 그루터기 놀이시설 및 벤치, 동물사육사, 저관리형 초지, 숲속 평상은 시공 단계에서 구현되지 않고 맨발 걷기 길이 추가되어, 결과적으로 시공된 주요 시설 및 공간은 트렘폴린, 초화류 언덕, 파고라, 벤치, 맨발 둘레길, 레인가든 등이다(표 5 참조). 곡선형의 전체적인 골격, 즉 동선, 마운딩, 레인가든의 평면적 형태는 유지되었으나 안전사고에 대한 학교측의 우려로 설계의 주요 언어인 그루터기 놀이시설·벤치·포장은 실시설계 단계에서 제외되었으며, 넓고 지붕이 없는 평상은 보다 용이한 관리를 위하여 기성품 파고라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초기 설계에서 의도되었던 전반적인 공간감은 유지되었으나, 하나의 설계 언어로 놀이, 휴식, 교육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 그루터기가 제외되며 설계의 독특성, 심미성, 기능성이 반감되었다(그림 7 참조).
기본설계단계에서 제안되었던 해먹 쉼터, 연못, 마운딩과 결합된 벤치는 시공 단계에서 구현되지 않고 시공 단계에서 하트모양 조형 벤치가 새롭게 추가되어, 결과적으로 시공된 주요 시설 및 공간은 데크 포장, 음지식물 정원, 조형 벤치 등이다(표 6 참조). 해먹 쉼터는 학교 측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 제기로 실시설계 단계에서 제외되었고, 연못과 마운딩은 본래 계획에 없었던 2층 테라스 조성에 비용을 할애하기 위해 평평한 녹지대와 데크 포장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시공 과정에서 포토존의 기능을 하는 하트모양의 기성품 조형 벤치가 설치되었다. 따라서 중정 공간에 집중되었던 입체적인 설계 요소와 공간에 정체성을 더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요소가 제외되며 기본설계의 의도가 크게 희석되었다. 휴식 기능 강조를 위한 위요감과 사적인 공간감이 줄어들었으며 형태와 색채가 강렬한 기성품 조형 벤치의 배치로 공간의 심미성과 기능성이 약화 되었다(그림 8 참조).
전 단계 시설물 반영 정도: O 반영, △ 일부 반영, X 미반영
공간 이용도 조사에서는 유원초등학교 1~6학년 학생 45명, 교직원 7명이 설문에 참여하여 총 52부, 범어중학교 1, 2학년 학생 98명, 교직원 12명이 참여한 설문지 중 무응답이 많은 2부를 제외하고 총 108부의 설문지가 분석에 사용되었다.
유원 초등학교의 개선된 외부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4.22점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교육, 학습, 독서 활동이 3.95점으로 비교적 활발히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놀이(2.92점), 체험 및 관찰 활동(2.29점) 등 본래 이용자가 요구했던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새롭게 조성된 공간은 지역 주민들과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학교의 개방 정도는 사업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표 7 참조).
범어 중학교의 개선된 외부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4.19점으로 유원초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휴식활동(3.32점)을 제외한 놀이(1.72점), 학습 및 독서(2.22점), 체험 및 관찰 활동(1.26점) 등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범어중학교에서도 역시 ‘지역 주민과의 공동 이용’ 항목은 평균도 낮고 표준편차도 낮아, 응답자 대다수가 ‘공동이용이 거의 없다’고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표 8 참조).
4. 결론 및 제언
앞서 살펴본 사업의 과정에서는 기본설계의 주요 요소들이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와 비용 및 관리 문제로 제외되었고, 맞춤형 시설보다는 전반적인 설계의 심미적, 기능적 균형에서 벗어난 기성품들이 도입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사업의 주요 취지인 ‘지역을 위한 열린 학교’ 역시 학생의 활동 범위를 안전하게 통제하고 야간 사각지대에 대한 감시를 책임져야 할 학교의 입장에서는 현실과 거리가 있는 목표로, 학교의 도시적·지역적 역할은 두 학교 모두에서 처음부터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표 1 참조). 결과적으로 시공된 공간에서는 초기 설계의 입체적인 의도는 대부분 사라지고 평면적 요소만 도면에 반영되었으며, 지역 내 학교의 역할 또한 사업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므로 녹지 면적이 늘어나고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사업의 일차원적인 목표는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기능을 발현시키고자 했던 프로젝트의 의도가 완공된 공간에 온전히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업의 단계별 계획 변화와 그 사유를 살펴봄으로써 예산편성의 방법, 의사결정의 구조와 방식, 안전과 관리를 우선시하는 관리자의 일반적인 인식이 사업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 추론할 수 있다(표 9, 10 참조).
O 반영, △ 일부 반영, X 미반영
O 반영, X 미반영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생태숲미래학교사업에 선정된 학교의 수는 5개 학교에서 10개 학교로, 전체적인 예산 규모 역시 10억 5천만 원에서 15억 원으로 꾸준히 늘어났지만, 학교당 지원 금액은 오히려 줄었다. 현재 한 학교당 지원 금액인 1억 5천만 원이라는 액수는 단순한 물리적 환경개선을 넘어, 사업의 목표에서 내세우고 있는 도시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양질의 공간을 조성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예산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1억 원 안팎의 제한된 공사비는 광범위한 학교 옥외공간 개선의 다양한 가능성 중 선택과 집중을 요구한다. 다양한 설계 요소 중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중요하며 우선순위가 제각기 다른 다양한 설계 참여자의 의견 조율이 필수적이다. 앞선 두 사례의 행정 의사결정권자들은 촉진자나 설계가의 의견과는 다르게, 범어중학교의 2층 테라스 조성과 같이 더욱 넓은 면적에 많은 시설물이 도입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4). 생태환경미래학교와 같은 행정 주도형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에 무게를 두는 것이 필연적일 수 있겠으나, 이 때문에 실제 주이용자에게 불필요한 시설물과 공간이 조성되기도 했다5).
학교의 행정가들이 만족할 만한 양적인 변화와 전문가가 원하는 질적인 변화 모두를 이루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사비의 증액이다. 2020년도부터 2024년도까지 50%가량 늘어난 사업 비용을 양적으로 많은 학교를 위해 쓰기보다는 적은 수의 학교가 혜택을 보더라도 한 학교당 지원되는 금액을 지금보다 높게 책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육부 예산 이외의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태숲미래학교와 같은 사업을 다각도로 기획할 수 있는 일반 및 사회적기업, 설계사, 시공사, 공무원, 교육자 등 민·관·학으로 구성된 조직체의 구성을 시도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기업에는 학교숲 조성 후원을 통해 ESG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정부, 교육부, 학교, 기업 등의 적극적인 연계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현재 500만 원에서 1000만 원 사이로 지출되는 설계자와 촉진자의 용역비용은 그들이 감리와 설득의 과정에 더욱 시간을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재고될 필요가 있다. 사례에 나타난 품질 낮은 기성품의 활용, 대상지 범위의 양적 확장은 촉진자나 설계자와 제대로 된 협의를 거치지 않고 시공단계에서 이루어진 것들로, 전문가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설계사의 입장에서 현재 책정된 용역비는 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는 최저치에 못 미친다. 보수의 적합성과 업무효율은 효율성임금이론을 통해 그 상관관계가 이미 오래전부터 학술적으로도 입증되어 있는바, 설계가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어떠한 형태로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생태환경미래학교 사업의 운영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George, 1984). 합당한 비용을 지급하고 인증된 전문가를 활용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한꺼번에 많은 수의 학교를 지원하기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합리적인 예산계획을 세워야 한다.
두 사례의 사업 과정에 드러난 바와 같이, 드러난 학교 관리인에게 있어 학교의 외부공간은 아이들의 창의력 함양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이라기보다 잘 통제되고 관리 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나친 보호의 부정적인 면과 잠재적 위험의 긍정적 가능성에 관하여 이야기해 왔다. 아동교육 전문가인 Hansen Sandseter et al.(2023)은 위험한 놀이에 참여한 아동은 이러한 유형의 놀이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또래보다 신체적으로 더 활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사회성이 높았음을 학술적으로 밝혔다. 김연금 조경작업소 울 소장은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며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잠재적 위험의 포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김연금, 2022). 그러나 유원초와 범어중의 시공 사례에서는 그러한 가능성들이 설계 단계를 거치며 많은 부분 제거되었다. 학생들의 안전에 관한 지나친 우려는 아이들에게 잠재적 위험을 내포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며, 이는 단기적 워크숍이나 교육을 통해 한 번에 변화시키기 어려운 문제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이들을 다루는 교육자와 관리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2001년도부터 우리나라의 지자체들은 학교 외부공간의 도시적 가능성에 주목하여 학교 담장 허물기 운동을 비롯한 학교 공원화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들은 사업이 시작된 지 10년도 지나지 않아 치안, 외부인 무단침입, 쓰레기 투기, 학생 관리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불거지자 허물었던 담장을 다시 철제 펜스로 복원하였다(오빛나리 2015). 생태환경미래학교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지역 주민이 활용 가능한 ‘마을 생태 쉼터’ 조성은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극복되어야 할 점이 많다(표 1 참조). 담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역 주민과 공간을 공유하는 방법, 담장을 일부 허물고 그 자리를 다른 시설로 대체하는 방안 등 맥락에 맞는 다양한 공간적 전략이 구상될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변화에 따른 다양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주체는 학교이기 때문에 학교가 지역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처음부터 주도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지역과 연계되었을 때 학교에는 어떠한 이익이 있을지, 관리의 측면에서 어떠한 지원과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인식적 차원에서 학교와 주변 지역간의 명확한 용도 구분을 장기적으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생태환경미래학교의 조성은 학생 중심의 참여형 설계를 바탕으로 진행되었지만, 학생은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도 최종 의사결정권자도 아니므로 사실상 주요 설계 결정 단계에서는 소외되었다. 실제 공간을 이용하게 될 그룹의 요구와 설계를 의뢰하는 그룹의 요구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학생들의 요구는 유원초등학교의 경우 놀이공간, 범어중학교의 경우 휴식 및 놀이와 체험 공간이 주를 이루었고, 의사 결정권을 갖는 학교측의 요구는 안전하고 감시가 용이한 시설의 도입이 가장 우선시 되었다. 두 학교의 시공 결과를 통해 주이용자의 요구보다 관리자의 요구가 더 많이 관철되었음을 알 수 있다(표 9, 10 참조). 또한 학교 조직의 위계 구조상 소수의 사적인 취향이 설계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으며 이는 범어중학교에 시공된 하트모양 조형 벤치나 유원초등학교의 맨발 걷기길 등의 결과로 나타났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학교의 교직원들은 행정적 차원에서가 아닌 학생들의 관점에서 공간을 조성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며 학생, 공간 관리자, 교직원, 교장의 순서로 공간에 대한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학생 이외의 관리자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되 설계의 큰 방향성과 가이드라인 마련에 집중하여 실현 가능하고 사업의 취지와 부합하는 설계를 완성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 연구는 생태환경미래학교의 두 사례를 바탕으로 사업 취지를 전적으로 반영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점을 도출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학교 옥외공간은 환경적·사회적·교육적 관점에서 매우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구조적 개조라기보다 부분적 시설 도입이나 단순한 녹색 치장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부는 예산편성과 가이드라인 마련과 같은 제도적 차원에서, 학교는 학생들을 위한 공간에 대한 인식 제고와 의사결정 방식의 개선을 통해 전반적인 옥외공간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학교의 외부공간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사업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여겨지며, 본 연구는 더욱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생태환경미래학교 사업의 실효성 증진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