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북한의 현지지도는 산업 현장 전반에 지도자가 직접 가서 현장의 문제를 보고 받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통치 방식이다. 「로동신문」(이하 노동신문)은 현지지도를 비롯한 통치자의 현안을 신문 1면에 고정적으로 제재하는데, 현지지도 기사에는 지도자가 현장에 몇 번에 걸쳐 왔으며,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말을 했는지 상세히 기술하는 특징이 있다. 2017년 금산포젓갈가공공장과 금산포수산사업소 현지지도에 관한 노동신문 기사 또한 김정은의 지도 내용을 자세히 인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관에 대한 김정은의 언급을 볼 수 있다.
부두 및 호안, 능금도―취섬방조제 공사도 흠잡을데없이 하였다고 하시면서 공해가 전혀 없고 해양생태학적으로 깨끗한 명당자리에 자리잡고 있는 금산포젓갈가공공장은 가까이에서 보아도 멋있고 멀리에서 보아도 희한하다고, 풍치수려한 능금도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고, 금산포지구에 또 하나의 경관의 생겨났다고 말씀하시였다(Headquarters Political Press Group, 2017).
위 기사는 북한에 경관의 개념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자료다. 하지만 같은 단어라 할지라도 그 사전적 정의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혹은 사전적 정의는 유사하더라도, 각기 다른 시대적 흐름에 놓인 같은 단어는 통용되는 의미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에 따라 제기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북한에서 쓰이는 ‘경관’을 ‘landscape’으로 번역할 수 있는가? ‘경관’이란 단어는 주로 무엇을 지칭하며, 그 대상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그 대상을 통해 북한에서 경관이 내포하는 사회적․문화적 특징을 읽어낼 수 있는가? 이 논문은 북한 문헌에 쓰인 경관의 시대적 경향을 탐구함으로써 경관의 사회적․문화적 기의(記意)를 읽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글에 ‘경관’이 표기된 문헌을 찾기 위해, 북한자료센터 내 데이터 검색 시스템을 활용해 해당 글을 목록화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관’과 같은 동음이의어, ‘국경관문도시’ 등의 붙여 쓰기로 인해 검색된 글 등을 제외했다. 연속 간행물의 경우, 실물을 통해 내용과 페이지를 재확인했다. 사전의 경우, 조선말대사전을 비롯한 북한에서 출판된 조선말 사전을 모두 파악했다. 다음으로 목록화한 글을 시간의 흐름을 따라 파악하고, 시기별 빈도와 내용을 분석했다. 먼저 10년 단위로 문헌 내 표기된 ‘경관’을 분류해 빈도를 도출했다. 그 다음 목록화한 문헌에서 ‘경관’이 지칭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해 논문이 정한 종류에 따라 분류했다. 경관의 종류는 경관이 표기된 글 전반을 분류할 수 있도록 정했으며, 그 결과는 개념 정의, 산․봉․고원, 공원, 수목․식물, 국제행사명, 지역․지구, 바닷가, 유적지, 천연기념물, 농수산업 현장, 공장․기업소, 국외 자연환경이다. 마지막으로 시기에 따라 문헌 내 ‘경관’에서 어떤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 후, 관련 사례를 토대로 그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된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해석했다.
이 논문의 각 장은 앞서 제기한 의문에 대한 답을 유추하고 해석하는 단계로 구성된다. Ⅱ장에서는 북한의 어학 사전과 이론서를 중심으로 ‘경관’의 사전적 의미와 기본 개념을 살펴본다. Ⅲ장에서는 시기별 문헌 내 ‘경관’의 등장 빈도 추이와 경관의 종류를 분석한다. Ⅳ장에서는 Ⅲ장에서 파악한 경향을 관련 사례를 통해 해석한다.
Ⅱ. 북한에서 ‘경관’의 사전적․이론적 정의
‘경관’은 환경이라는 물리적 실체뿐만 아니라, 관찰자와의 관계를 강조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데니스 코스그로브(Cosgrove, 1985: 55)는 경관이 “개별적인 관찰자에 의해 전유될 수 있는 세계의 구성과 구조를 보는 방식(a way of seeing)”이며, “관찰자로 하여금 주관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레임을 제공”한다고 정의한다. Hwang(1989: 66)은 경관을 정의하는 데서 오는 몇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landscape은 인간과 생물의 실제생활이 영위되는 환경의 실체가 아니라, 환경으로부터 심리적으로 이탈한 관자(觀者)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정관(靜觀)할 경우에 형성되는 이미지라는 공통성”을 지님을 시사했다. 대체로 경관에 대한 정의는 보는 이와 대상 사이의 시각적 관계에 중점을 두는 한편, 그 대상을 특정한 외적 특질에 한정시키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북한에서 ‘경관’에 대한 정의는 1960년 출판된「조선말사전 1」 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후 2017년 출판된 「조선말대사전: 증보판 1」 에 이르는 동안 정의한 것을 볼 수 있다.1) 최근에 이르기까지 조선말 사전에서 경관은 어휘에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지형, 기후, 토양, 생물계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제적 활동 등이 서로 작용하여 이뤄진 일정한 지역의 통일된 특성으로 정의된다(Institute of Language and Literature, Academy of Scien ces ed., 1960: 226; Social Science Publishing House ed., 2017: 335).
북한에서 ‘경관’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시점과 배경에 대해, 1957년 출판된 「일반 자연 지리」 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은 러시아 지리학자 알렉산드르 폴로빈킨(Aleksandr A. Polovinkin)이 저술한 교원 대학용 지리 교과서의 번역본으로, 경관의 정의에 대한 학자들의 이견을 서술함으로써 경관의 특성을 설명한다. 저자는 러시아 지리학자 레프 베르크(Lev Simonovich Berg)의 말을 인용해, 경관이 “기복, 기후, 물, 토양의 피복과 식물의 피복 및 동물계의 특성과 또한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어떤 대(帶) 내부에서 전형적으로 반복되는 조화(調和) 잡힌 단일한 전체”임을 설명한다(Polovinkin, 1952).
플로빈킨은 저서에서 ‘조화 잡힌 단일한 전체’라는 베르크의 견해에 대치하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경관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는데, 이러한 전개 방식은 그가 생각하는 경관의 면모가 잘 드러나게 한다. “조화성이란 술어는 경관의 요소 호상간의 완전한 적응을 의미”하지만, 경관에서 “요소들의 완전한 적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며, 경관은 부단한 변화의 산물이므로 “서로 상반되는 요인들 간의 영역 투쟁의 산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Polovinkin, 1952: 299). 경관에 대한 플로빈킨의 정의는 특정 영역에 해당하는 자연 요소들의 끊임없는 생태적 작용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결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출판된 「조선말사전」 에서 이미 ‘경관’을 정의한다는 점에서 이것이 오래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의 또한 자연에서부터 인간의 경제적 활동에 의한 작용에 의한 시각적 특질 전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기후, 지형, 토양 따위의 자연적 요소에 대하여 인간의 활동이 작용하여 만들어낸 지역의 통일된 특성”인 ‘경관’과 동의어로 판단할 수 있다(표준국어대사전). 나아가 ‘경관’을 ‘landscape’로 번역할 수 있는가란 의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추론을 할 수 있다. 북한에서 1957년 출판된 「일반자연지리」 는 Общая Физическая География(Total Physical Geography)의 번역본이다. 이 책의 저자인 A. 플로빈킨은 모스크바 주립 교육 대학교(Moscow State Pedagogical University)의 지리학부 교수로, 학교 홈페이지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2)이 대학 지리학부의 5개 학과 중 하나는 ‘Geology and Geochemistry of a Landscape’이다.3) 해당 학교의 지리학부 내 학과명이 ‘landscape’을 포함하고, 이 학교 교수의 지리학 저서에 ‘경관’이란 용어가 쓰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에서 ‘경관’은 ‘landscape’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다.
Ⅲ. 북한 문헌에서 ‘경관’ 사용 경향
북한 문헌에서 ‘경관’이라는 단어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인 1957년부터 2018년까지 글에 ‘경관’을 포함한 문헌은 총 52개다(Table 1 참조). 「로동신문」 에서 총 22개의 가장 많은 개수의 글을 확인했으며, 그 다음으로 연속 간행물인 「천리마」 와 「민족문화유산」 에서 19개의 글을 확인했다. 그밖에도 어학 사전과 이론서에서 각각 9개와 2개의 글을 확인했다.
각 글에서 ‘경관’이 지칭하는 대상을 파악하고 분류한 결과는 Table 2와 같다. 하나의 글에서 ‘경관’이 여러 가지를 지칭하는 경우에는 이를 중복하여 썼다. 대부분 글에서 ‘경관’은 경치로 이름이 있고, 자연현상이 한눈에 보이는 산․봉․고원을 서술하는 데 사용됐다. 다음으로 어학사전과 이론서에서 ‘경관’에 관한 서술이 많았다. 10회 중 8회는 어학사전에서 ‘경관’을 정의한 것으로, 1960년, 1962년, 1972년, 1981년, 2004년, 2006년, 2007년, 2017년에 출판된 조선말사전과 지리용어사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탄자니아 등의 국외 자연환경을 서술한 글에서 ‘경관’이 4회 사용됐으며, 그밖에 수목․식물, 국제행사명, 공원, 지역․지구, 농수산업 현장, 바닷가, 유적지, 천연기념물, 공장․기업소로 분류할 수 있는 대상을 서술하는 글에서 ‘경관’이 각각 1회에서 3회 사용됐다.
다음으로 글에 ‘경관’이 사용된 횟수를 10년 단위로 나눠 확인했다(Figure 1 참조). 그 결과로 처음 ‘경관’을 확인했던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1~2회로 횟수가 적었으나, 1980대부터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으며, 점차 증가 추세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는 총 24회로, 총 10회가 나타난 2001년부터 2010년에 비해 횟수가 2.4배 증가했다.
북한은 지도자 체제가 사회 변동을 주도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므로, 북한의 지도자 집권 시기를 기준으로 문헌 내 ‘경관’의 사용 횟수를 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김정일 집권기(1995년~2010년)을 범위로 할 때, 그 시기의 글에서 ‘경관’이 사용된 횟수는 12회다. 이는 김정은 집권기(2011년~2018년 기준)의 절반 수치로,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면서 다수의 글에서 ‘경관’에 대한 서술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공고했고, 1970년대부터 이미 출판 보도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다(Byeon, 2008: 123). 1980년에 열린 조선노동당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은 공식적으로 후계자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Chung, 2001: 337). Byeon(2011: 153)에 따르면 1980년부터 김정일은 후계자로서 공인되고, 그에 상응하는 권력을 본격적으로 갖게 됐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김정일이 출판 보도에 관여하는 동시에 후계자의 지위까지 얻은 때는 1980년이다. 이 시기를 기준으로 시기별 문헌 내 ‘경관’의 사용 횟수를 재분류하면 1980년부터 2010년까지 31회, 2011년부터 2018년까지 24회로 전자의 횟수가 더 크다. 다만 두 시기는 각각 30년간, 7년간이라는 큰 격차가 있다. 따라서 문헌에서 ‘경관’이 점차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김정일이 출판 보도 분야에 관여하고 후계자의 권력을 갖게 된 시기부터지만, ‘경관’이라는 단어가 더욱 자주 사용된 시기는 김정은 체제부터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와 지도자로서 권력을 가진 시기인 1980년부터 2010년까지를 기준으로, 이 시기 동안 출판된 글에서 ‘경관’이 지칭하는 대상을 Table 2에서 정한 경관 분류에 따라 나눈 결과는 Figure 2와 같다. 산․봉․고원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경관을 서술한 횟수가 21회로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전체의 61.7%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이론서와 사전에서 경관의 개념을 정의한 횟수는 5회로 산․봉․고원으로 분류된 횟수와 큰 차이가 있다. 그 다음 ‘경관’은 국외 자연환경에 관한 글에서 2회, 바닷가, 유적지, 천연기념물에 관한 글에서는 1회 사용됐다. 따라서 이 시기 동안의 ‘경관’은 산․봉․고원에 관한 서술 용어로서의 성격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경관’이 21회 사용된 산․봉․고원에 관한 글에서 ‘경관’이 지칭하는 대상은 백두산이 8회로 가장 많다. 그 다음 금강산과 묘향산이 각 4회이며, 칠보산 2회, 모란봉과 부전고원이 각 1회 순으로 이들에 관한 서술에서 ‘경관’이 사용됐다. 1980년~2010년 동안 ‘경관’은 산․봉․고원 중에서도 백두산을 서술하기 위한 단어로 다수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김정은 집권이 시작된 2011년부터 2018년까지를 기준으로, 이 시기 동안 출판될 글에서 ‘경관’이 지칭하는 대상을 경관 분류에 따라 나눈 결과는 Figure 3과 같다. 앞서 김정일 권력 시기로 정한 1980년부터 2010년까지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집권 시기 또한 산․봉․고원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경관을 서술한 횟수가 8회로 가장 많다. 이는 전체의 33.3%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높은 비율은 아니다. 그러나 8회 중 7회가 백두산에 관한 글이란 점에서 백두산과 ‘경관’ 간의 연관성은 여전히 높음을 알 수 있다.
또한 Figure 2에서 김정일 권력 시기에 출판된 문헌에서 서술된 경관의 종류를 산․봉․고원, 개념 정의, 국외 자연환경, 바닷가, 유적지, 천연기념물과 같이 총 6가지로 분류한 반면, Figure 3에서는 경관의 종류를 산․봉․고원, 수목․식물, 국제행사명, 지역․지구, 공원, 농수산업 현장, 국외 자연환경, 공장․기업소와 같이 총 9가지로 분류했다. 종류의 가짓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주로 자연환경 위주로 종류가 구분된 김정일 권력 시기와 달리, 김정은 집권 시기에는 지역․지구, 공원, 농수산업 현장, 공장․기업소와 같이 인간의 경제적 활동에 의한 대상까지를 ‘경관’을 사용해 서술했다는 점이 큰 차이라 할 수 있다.
1957년부터 2018년까지 ‘경관’을 포함하는 북한 내 출판 또는 보도된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 경향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로, 다수의 글에서 백두산과 ‘경관’은 긴밀한 연관성이 나타났다. 이는 김정일과 김정은을 기준으로 나눈 두 시기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다.
둘째로, 2010년 이전까지는 주로 ‘경관’이 산․봉․고원, 국외 자연환경, 천연기념물, 바닷가와 같은 고유한 시각적 특징이 드러나는 일정한 영역의 자연환경을 서술하는 단어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2011년부터는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지역․지구, 공원, 농수산업 현장, 공장․기업소와 같은 도시환경의 서술에도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경관’이 사용된 글의 증가 추세를 통해 시대에 따라 서술 배경에 차이가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북한 문헌에서 ‘경관’은 김정일이 출판 보도 분야에 관여한 1980년대부터 차츰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횟수가 급격히 많아진 것은 김정은 체제부터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으로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 또는 상황이 양적으로 증가해, 출판 및 보도 매체에 반영된 것일 수 있다. 또는 시대에 따라 어떤 것을 경관으로 인식하는 데 있어 문화적 차이가 발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위의 세 가지 경향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경관’이 가지는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정통성 투영의 대상’, ‘도시로 확장된 시각성’, ‘가시화된 사회주의 선경’으로 해석할 수 있다.
Ⅳ. 북한에서 ‘경관’의 사회적․문화적 의미
1980년대 북한의 대중잡지에서 경관은 산과 동글 등의 자연물을 소개하는 글에서 주로 볼 수 있다. 1984년 룡문대굴에 관한 “아까 본것과는 달리 섬세하고 화려한 들꽃들의 장식이 아니라, 큼직하고 박력있는 층암절벽과 기암괴석들이 층층으로 장식된 장엄하고 무게있는 경관”(Lee, 1984: 115)이란 부분, 그리고 1990년 묘향산에 관한 “묘향산이 천하절승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세상 만물의 모양을 다 나타내는 기묘한 바위들로 이루어진 뭇봉우리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그 어데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수려한 산악경관을 이루기 때문”(Moon, 1990: 87)이란 내용을 통해 경관이 보기 드물고 장엄한 자연물을 지칭하는 데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1990년대는 백두산을 혁명전적지로 만드는 작업이 본격화된 시기다. 백두산의 표상을 연구한 박계리와 문정희는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하는 백두산 밀영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백두산지구 비밀 근거지들에 대한 발굴사업”이 1989년부터 본격화된 점을 지적한다(Park and Moon, 2011: 48). 이 시기부터 ‘경관’은 백두산에 관한 서술에 다수 사용된다.
“김정일동지께서는⋯백두산이 품고 있는 자연비밀이 우리 시대에 와서 비로소 전면적으로 밝혀지게 된 것은 바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88년 1월 21일 우리 과학원 지리학연구소에 백두산연구집단을 꾸려 주시고, 여기에 유능한 지질, 동물, 식물, 미생물력사학자들을 망라한 백두산탐험대를 뭇도록 하는 국가적 조치를 취하여 주시였습니다.⋯백두산의 백색부석분출년대를 결정하는 것은 화산분출과정과 화산지대의 자연경관의 진화과정을 밝히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므로 세계의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Lim, 1992: 141-143).
그 이후에는 백두산의 과학적 현상과 김정일의 일화 사이의 경관학적 연관성을 강조하는 글이 출판된다. 백두산 봉우리의 개수가 216개인 것과 김정일의 생일이 일치한다는 글이 대표적이다(Lee, 2011; Chollimasa, 2002: 72). 이는 원래 백두산이 일제강점기 김일성의 항일 무대로 선전됐고,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상징성이 김정일에게도 이어지도록 하는 논리적 근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백두산천지종합탐험대에서는 혁명의 성산 백두산련봉들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밝혀냈다. 종합탐험대가 오랜 기간 조사측량한데 의하면 경관학적으로 볼 때 상대높이가 20m 이상 되는 봉우리수가 216개라는 것을 확증하였다.⋯하여 이번에 백두산천지종합탐험대에 의하여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신비하게도 216개의 봉우리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 소식은 오늘 우리 인민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고 있다(Chollimasa, 2002: 72).
백두산을 무대로 한 후계 구도의 연결은 김정은 체제에서도 이어진다. 과거 수령(김일성)과 장군(김정일)이 활동했던 백두산을 원수(김정은) 또한 올랐다는 글을 통해 백두산이 후계자로서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매개체임을 알 수 있다.
령역이 광범하고 산세가 장엄하며 경관 또한 독특하고 이채로운 백두산이 자기를 한껏 드러내며 만방에 떨치는 순간이 바로 해돋이순간이다.⋯백두산호랑이로 명성 떨치신 우리 수령님께서 눈보라만리길에 찍으신 피어린 자욱자욱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사령부옹위의 총성을 울리시며 찍으신 일편단심의 고귀한 자욱,⋯주체87(1998)년 10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의 해돋이를 보시려고 몸소 새벽어둠을 헤치시며 백두산에 오르시였다.⋯지난해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백두산에 오르시였다.⋯참으로 우리 원수님의 기상은 백두산불노을의 기상이다(Kim, 2015).
주목할 점은 위 글에서 김정일이 과거 백두산을 오른 시점이다. Jung and Kwak(2015: 180)은 연구에서 헌법 개정 및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추대가 이뤄진 1998년을 김정일의 실질적 집권기로 판단한다. 이 의견에 따르면 1998년 해돋이를 보기 위해 백두산에 오른 행위는 공식화한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백두산이란 상징을 통해 더욱 공고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위 글로 본 김정은이 백두산을 오른 해가 2014년이다. 김정일이 백두산을 오른 해와 실질적 집권기와의 연관성을 통해 김정은 체제에서 2014년이 갖는 중요성과 상징성을 유추할 수 있다.
글에서 ‘경관’으로 지칭하는 대상이 종류부터 규모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진 것은 김정은 체제인 2011년을 기점으로 나타난 변화다. 그 이전에는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자연현상에 따른 시각적 결과물이 ‘경관’으로 서술됐다면, 최근에는 하나의 경관을 만들기 위한 구성 요소에도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지피식물은 이미 도시록화와 원림식물배치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재로서 환경을 보호하고 원림경관을 풍부하게 하며 록지의 생물다양성을 늘이는데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Head Office Journalist 2014a).
키나무와 꽃관목만으로는 생활환경에 대한 미적요구를 완전히 보장할 수 없다. 제일 아래층인 땅겉면까지 식물로 피복해야 비로소 그림같이 아름다운 여러가지 식물경관이 형성될 수 있다(Head Office Journalist 2014b).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 김정은 체제부터 증가한 건설사업과 연계해 고찰할 수 있다. 아파트 건설을 예로, 1990년대에 시작된 경제난 이후 북한은 고층아파트 건설이 어려웠으며, 이는 200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다(Hong, 2014: 37-42). 그러나 건설사업이 추진됨에 따라 건축물뿐만 아니라, 녹지에 이르기까지 좋은 경관을 위한 사업 범위의 확장이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2012년에 평양에서 <산림 및 경관회복에 관한 국제토론회>가 개최된 점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산림 및 경관회복에 관한 국제토론회에 참가할 중국, 네데를란드, 단마르크, 도이췰란드, 미국, 영국, 카나다대표들이 6일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하였다. 또한 이날 환경교육보급계획집행국장이 왔다(Head Office Journalist, 2012).
평양국제새기술경제정보쎈터와 환경교육보급계획의 공동주최로 산림 및 경관회복에 관한 국제토론회가 7일부터 9일까지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였다.⋯연설자들은 지구의 환경을 보호하는 문제는 인류의 생존, 미래와 련관되는 심각한 문제로 나서고 있다고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 환경분야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이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였다(Korean Central News Agency, 2012).
공원을 경관의 차원에서 강조하는 양상 또한 김정은 체제에 출판 및 보도된 글을 통해 볼 수 있는 특징이다. 2011년 평양민속공원 건설에 관한 보도와 2015년 도시생태공원에 관한 보도에서 ‘경관’은 공원을 구성하는 일부이자 공원 전반의 외적 특질을 서술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됐다. 이 글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공통점은 ‘경관’의 지칭하는 대상의 범위가 ‘자연환경을 포함하는 도시’로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백두산, 금강산을 비롯한 자연경관들이 공원안의 여러곳에 펼쳐지고 있으며 민속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활쏘기, 씨름, 널뛰기, 그네뛰기, 윷놀이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게 민속놀이구가 훌륭히 꾸려지고 있다.⋯그 나날 군인건설자들속에서는 조각품, 력사유적, 무늬장식같은 것을 자체의 힘으로 얼마든지 훌륭히 재현하는 솜씨있는 재간둥이들이 수많이 나왔다(Park, 2011).
자료에 의하면 지금 세계적으로 환경보호와 순수한 자연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날로 높아지면서 생태공원을 건설하는데 관심을 돌리고 있다. 지난 시기 도시화와 공업화의 빠른 진척으로 도시생태환경이 심히 파괴되고 공원건설에서 미학성만 강조한데로부터 인공경관이 많이 늘어나고 순수한 자연경관은 줄어들었다. 생태공원은 구역의 생태계를 보호하고 수복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자연생태에 대한 교육과 체험, 휴 식과 오락기능을 수행하는 공원이다(Head office journalist, 2015).
2011년 이후 출판 또는 보도된 문헌에서 ‘경관’을 사용한 서술 대상이 확장된 것을 통해 건설 경기 회복에 대한 김정은 체제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조선말사전에서 ‘경관’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제적 활동으로 발생한 특성 또는 지역을 포함했으나, 2000년대까지 ‘경관’은 자연환경의 서술에 주로 사용됐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당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시각성을 강조할 수 있는 건설 대상이 거의 부재했고, 이로 인해 ‘경관’이 지칭하는 대상 범위가 한정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화려한 시각성을 강조하기 어려운 대신, 김정일 체제는 나름의 도시 전반의 시각화 방식을 구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일의 지도 활동과 활동 현장의 연계를 통해 이뤄진다. 2004년 시작된 <선군8경>이 대표적 예다(Figure 4 참조). <선군8경>은 김정일의 선군정치와 관련된 일화를 풀이한 것으로, ‘백두산의 해돋이’, ‘대홍단의 감자꽃바다’, ‘울림폭포의 메아리’, ‘범안리의 선경’, ‘다박솔초소의 설경’, ‘철령의 철쭉’, ‘한드레벌의 지평선’, ‘장자강의 불야성’으로 이뤄져 있다.
Figure 4에서 볼 수 있듯, <선군8경>은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읽는 것’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글의 초점은 여덟 가지 경관에 있기보다 그곳에서 활동한 지도자에 맞춰져 있다. “사생결단의 의지를 안으시고 10여차례나 철령을 넘나드시며”라는 구절과 “북방의 사나운 대소한추위를 무릅쓰시고 자강땅을 찾으시여 6천여리의 강행군길을 이어가시며” 등의 구절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선군8경>은 보여주는 대신 연상시키는 김정일 체제의 시각화 전략을 살펴볼 수 있는 단면이다. 김정일이 1970년대부터 출판 보도 분야를 장악했던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최근 출판된 글에서는 ‘사회주의 선경’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경관을 선별했다는 점에서 <선군8경>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선경’에 관한 글은 그 초점이 지도자의 활동보다는 경관 자체에 맞춰진 서술 방식의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나라의 이름난 경관들을 조선8경, 관서8경, 관동8경 등으로 긍지높이 꼽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다 범상하게 흐르는 세월속의 특이한 모습이거나 자연그대로의 산수경개에 불과하였다. 오늘의 선경은 선군이라는 시대어와 함께 불리우는 말 그대로 선군말 그대로 선군선경이다.⋯이 땅우에 사회주의문명국의 새 선경들을 끝없이 펼치고 있다. 룡림과 만포땅에 희한한 사회주의 새 전설이 꽃펴났고, 창전거리와 릉라도에 사회주의웃음소리가 넘치고 있다. 평양민속공원과⋯원수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대동강에 새롭게 떠오른 식당배 <대동강>호에서 안아보는 강반의 정서는 얼마나 가슴쩌릿한 것이며, 새롭게 일신된 수도와 지방의 공원, 유원지들에 넘쳐나는 행복⋯(Han, 2013).
위의 글은 <선군8경>에 관한 글처럼 지도자의 활동에 관해 서술하는 부분이 있으나, 구체적이기보다는 “세심한 지도”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이 사용됐다. 또한 관동팔경, 관서팔경, 조선팔경으로 지정된 옛 경관을 “자연그대로의 산수경개에 불과”하다는 말로 낮추는 한편, 창전거리, 릉라도, 평양민속공원 등의 ‘사회주의 선경’이야말로 웃음소리가 넘치는 곳으로 치켜세운다. 이러한 특징은 다음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오늘날 평양의 아름다움은 수려한 자연경관만이 아니다. 도시의 경치가 아무리 뛰어났다 하더라도 시대의 문명이 깃들지 못하고 인민의 행복이 무르녹지 않는다면 어찌 아름다움을 말할 수 있으랴. 모란봉에서 바라보이는 강건너 문수벌, 우리 평양의 동부를 이루는 지역에 선군시대의 풍치를 자랑하며 누뿌리 아득하게 들어앉은 기념비적창조물들⋯문수벌에 인민의 새 거리가 솟아오르던 나날이 인상깊다(Han, 2014).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 나라에는 이름난 절경들이 많다. 해금강과 해칠보, 통천의 총석정이며 명사십리 그리고 서해의 몽금포자랑⋯허나 <이채어경>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다.⋯이는 위대한 김정은시대에 창조된 이채로운 사회주의바다선경이다(Park and Choi, 2015).
‘사회주의 선경’에 관한 글은 이러한 ‘선경’이 도시와 산업 현장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조선시대 8경과는 확실히 구분 짓고자 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을 통해 크게 두 가지의 추론을 할 수 있다. 먼저, ‘선군8경’과 ‘사회주의 선경’은 각 시대의 서로 다른 경관을 가시화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일 수 있다. 다음으로, ‘선경’은 ‘경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사회주의 산물을 선별하기 위한 목적성을 내포할 수 있다. 김정은 체제에서 ‘경관’의 범주는 도시 전반으로 점차 넓어졌고, 숫자를 이용해 경관을 꼽기에는 그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경관 위의 경관과 같은 추가적 개념의 필요성을 불러올 수 있다.
Ⅴ. 결론
이 논문은 북한의 출판․보도 매체에서 ‘경관’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포착하고, 글에서 ‘경관’이 지칭하는 대상과 글의 맥락을 시대적 흐름에 따라 파악함으로써 북한 내 ‘경관’의 사회적․문화적 기의를 읽고자 했다. 먼저, ‘경관’의 사전적 정의와 경관 이론서를 통해 북한에서 ‘경관’이 ‘landscape’과 매우 유사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파악했다. 다음으로, 연속 간행물 글과 신문 기사에서 ‘경관’이 무엇을 서술하기 위한 단어로 사용됐는지 경관의 종류에 따라 나눈 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파악했다.
그 결과, 북한 내 문헌에서 ‘경관’은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시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서술 경향의 차이가 나타났다. 김정일 체제인 2010년까지 출판된 문헌에서 ‘경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등장 횟수가 증가했지만,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등의 유명한 자연환경의 서술 위주로 사용된 경향이 나타났다. 반면, 2011년부터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글에서 ‘경관’의 사용 횟수는 급격히 증가한다. 이 뿐만 아니라 ‘경관’을 사용해 서술하는 대상 또한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평양 문수지구와 보천보 일대와 같은 지역․지구, 평양민속공원과 생태공원, 그리고 산업 현장과 공장․기업소에 이르는 다양성이 나타났다.
특정 시기를 기점으로 나타난 몇 가지 경향을 바탕으로, 북한에서 ‘경관’이 가지는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정통성 투영의 대상’, ‘도시로 확장된 시각성’, ‘가시화된 사회주의 선경’으로 나눠 해석할 수 있다.
먼저, 백두산에 관한 글에서 ‘경관’은 후계자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매개체로 사용됐다. 경관학적으로 216개인 백두산의 봉우리 개수와 김정일의 생일이 일치한다고 밝힌 글. 실질적 집권기에 각 지도자가 올랐던 백두산의 경관을 묘사한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김정은 체제에서 ‘경관’은 인간의 경제적 활동에 의한 시각적 작용의 결과물까지를 서술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특히 공원에 관한 글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도시 전반의 생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건설사업의 성과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김정은 집권 시기의 특징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경관 차원의 성과를 가시화하는 방법으로, 김정은 집권 시기에는 ‘사회주의 선경’과 같은 경관 서열화의 용어를 채택했다. 과거 <선군8경>이 김정일의 지도 활동을 서술하는 여덟 가지 배경 무대의 역할에 한정됐다면, ‘사회주의 선경’은 특별하되 무한히 생성 가능한 경관이다. 이는 과거의 그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경관의 가시화 장치의 하나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논문은 현재 국내 공공기관에서 열람할 수 있는 북한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만약 더 많은 분석 자료가 추가될 수 있다면 더욱 풍부한 해석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논문은 북한에서 ‘경관’이란 단어의 사용 양상과 시대에 따른 의미 변화를 탐구하고자 했다. 향후 북한 관련 경관 정책 또는 실천 분야에서의 활용 가능성에 논문의 의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