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학문과 제도의 도입 이후 괄목할 만하게 성장한 한국의 조경에 있어 분야 발전을 위한 다양한 문제의 제기가 존재한다. 이들 중 조경은 현장에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설계․시공 간의 정합성’ 확보 관련 이슈’1)가 무엇보다 주목된다. 또한 실제의 조경 현장은 다른 분야와 복합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관련분야와의 의사소통과 협력체계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관련분야와의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토대로, 설계와 시공 간의 부정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본 연구는 한국조경 50주년을 맞은 2022년, 현대 한국조경을 대표하는 작품 중 민간부문 1위로 선정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Landscape Architecture Korea, 2021. 12)을 대상으로 한다. 연구내용으로는 건축과 조경 분야에서 다수의 상을 획득2)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의 환경 중 특별히 조경의 구현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 과정상에서 발견되는 함의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제까지 본 대상 환경을 다룬 연구는 다음과 같다. Kim et al.(2020)은 텍스트 마이닝(text minning)기법을 활용하여 기업의 사옥이라는 사적 공간을 방문하는 동기를 규명하고자 하였는바, 이때 공공성의 인식이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 부분에서 조경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점을 밝혔다. 반면 기계설비 분야의 연구인 Choi et al.(2018)은 신사옥의 에너지 절약시스템 설계기법을 소개하며, 그 절감 효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본 연구는 상기한 선행연구와 달리 민간사옥인 아모레 퍼시픽 신사옥 조경의 구현과정을 근거이론(ground theory)이라는 해석기법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조경 실무와 제도개선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본 연구의 방법론이 되는 근거이론은 사회과학연구로부터 대두되었으나, 조경설계와 시공이 현실로 구현될 수 있었던 매커니즘을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활용되어왔다. 즉 광교호수공원을 대상으로 한 Hong and Park(2016), 경의선숲길공원의 연남동 구간을 대상으로 한 Kim and Hong(2019)의 연구 등이 그것이다. 이들 연구는 대상환경의 구현과정에 깊이 참여했던 설계자, 감리자, 시공자들을 대상으로 정성적 심층면담을 시행함으로써 당해 환경조성의 개입했던 매커니즘을 귀납적으로 조명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반면, 공공환경을 다루었던 위의 연구들과 달리 민간부문을 대상으로 하는 본 연구는 또 다른 측면의 연구성과를 드러낼 것이다.
2. 연구 대상환경과 연구방법론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한강로에 면해 용산 미군기지 입구와 근접한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 100일대의 대지면적 14,525.7㎡에 조성된 환경이다. 건축물은 지하 7층에서 지상 22층, 건축면적 8,704.89㎡, 연면적 189,260.05㎡의 규모를 갖는다. 국제지명설계 공모과정3)을 거쳐 2010년 7월에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이후 DCA로 표기)를 주 설계자로 진행하였으며, 국내의 로컬 설계 파트너로는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가 건축 부문을, 조경설계 서안(주)이 조경설계를 담당하였고, 시공은 현대건설(주)이, 감리는 ㈜건원엔지니어링이 참여하였다. 공모 당선작 선정 이후 4년여의 세부설계와 검토 과정을 거쳐 2014년 9월 착공하여 3년 2개월 만인 2017년 11월에 완공되었다.
준공된 건물 외관은 21,511개의 흰색 알루미늄 핀을 불규칙하게 세로로 세워 놓아 커다란 사각 박스(box)처럼 보이나, 설계자는 이를 한국의 고전미를 품은 달항아리를 재해석한 것으로 설명한다4). 건축물 매스(mass) 내부에는 Ryu(2019. 6)이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주목하였고, Yoo(2018)가 한옥의 마당을 3차원의 오피스에 도입하였다고 이해한 큰 중정 세 곳이 설정되어 있다. 이는 자연을 건축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교목도 생육 가능한 4m 깊이의 토심을 확보한 환경이다. 용도 측면에서는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일반인들의 이용이 상시 가능한 판매점, 카페, 도서관, 미술관을 아트리움 내부에 도입하여 지역 커뮤니티의 활성화와 공공성 제고를 위한 설계자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5)(Figure 1 참조).

신사옥의 조경 공간은 전술한 건축 내부 중정(5층, 11층, 17층)과 부지 내 건축물 외부, 그리고 기부채납이 이루어진 지상부 가로공원 영역 등으로 구분되는바, 이들 조성상황을 공간별로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건물 내부 모든 중정의 천장은 막혀 있지만 4면 중 좌우는 열려 있어 빛, 바람, 비가 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 3개소 중 가로 37m, 세로 64m, 높이 27m로 가장 규모가 큰 5층 중정에는 남산의 스카이라인을 모티브로 한 완만한 마운딩 4개소가 있다. 건축선이 가지는 엄격한 질서와 대조되는 이 자유곡선형 녹지에는 다간형 청단풍(R15~40) 31주와 음지에 강한 줄사철이 하부식생으로 도입되어 있다. 반면 5층 중정 가운데에는 가로, 세로 각각 25m, 깊이 8cm의 수경시설인 투영지(mirror pond)가 도입되었다. 이 결과, 1층 로비 천장 상부의 움직이는 물이 유리를 통과하면서 햇볕을 끌어들이며, 같은 층 식당, 카페, 피트니스 센터의 기능을 보조한다. 11층도 5층과 유사하게 다간형 청단풍이 식재되었고 17층 역시 멀리 보이는 남산의 지형을 끌어들인 마운딩을 형성하면서 키 낮은 관목류로서 진달래, 나나스덜꿩나무, 백당나무, 병아리꽃나무 등을 도입하였다.
한편 지상의 본사 건물 주변과 기부채납시설인 가로공원은 사람들의 접근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볼륨감’과 통합된 ‘단순미’를 발휘하도록 수고 10m 내외의 튤립나무 숲이 도입되고 있다. 외부공간의 포장재로는 오밀조밀한 직사각형의 소포석이 모자이크 형태로 마감되었고, 녹지 가장자리의 노출콘크리트 연식 벤치는 건물과 연속되고 있다.
본 연구가 활용하는 근거이론은 질적 연구방법론의 한 유형이다. 1920년대부터 주로 사회현상 연구에 사용되다가 논리실증주의에 의해 쇠퇴기를 맞기도 했던 질적 연구방법론은 1960년대에 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새롭게 부활하였으며, 이 기간에 근거이론도 시작되었다. 국내에는 1987년 대한간호학회를 통해 이 방법론이 소개된 이후,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적용되어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왔으며, 주요 질적 연구방법론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Choe, 2005).
현장 중심적 연구의 성격을 갖는 근거이론은 특정한 현상 속에 내포된 자료를 수집하고 태도나 행동상황 등을 심층 조사하고 귀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제 현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방법론이다(Stern, 1980; Kim, 2013). 근거이론의 특장점으로는 특정한 상황에 대한 직관과 이해를 통해 인간의 행위, 상호작용과 이에 대한 의미를 통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근거이론에서 자료의 분석은 코딩(coding), 개념화(concept), 분해 및 조합(categories)의 과정을 통해 이론화(Strauss and Cobin, 1998)하며, 정보의 범주를 만드는 코딩과정의 세부는 개방 코딩(open coding), 범주들을 연결시키는 축 코딩(axial coding), 범주 간의 관계들을 정리하고 이론을 구성하는 선택 코딩(selective coding)으로 구분된다(Im, 2019). 본 연구 관련 문헌자료와 인터뷰 내용을 중심어 위주로 정리하는 개방 코딩과 이들 정보를 범주화하면서 관계를 분석하는 축 코딩을 거쳐, 핵심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을 수행하였다(Figure 2 참조).
이 중 근거이론의 주요 분석의 틀로 기능하는 축 코딩의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인과적 조건(causal conditions)은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사건이나 사고’를, 맥락적 조건(context conditions)은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공간에서 차원적으로 교차하는 조건들의 특수한 조합’을 말한다. 반면 중재적 조건(inter-vening conditions)은 ‘인과적 조건이 현상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거나 바꾸는 조건’을 지칭하며, 현(phenomenon)은 ‘현재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일컫는 각각의 용어이다. 또한 전략과 상호작용(actions and interactional strategies)은 ‘사람들이 직면하는 상황이나 문제, 쟁점 등을 다루는 방식’이고, 결과(consequences)는 ‘전략적 행동이나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로서, 행동이나 상호작용에 의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Strauss and Corbin, 1990; Kim, 2014).
본 연구는 관련 문헌조사와 별개로, 신사옥 구현과정에 깊숙이 참여했던 발주처의 건축과 조경 분야 전문가, 조경설계사의 담당자, 조경디자인 감리자 총 4인을 대상으로 한 심층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인터뷰의 진행방법은 사전 질문지6)를 메일로 배포하고 2022년 7월 11일부터 7월 29일 기한 중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1시간 반 내외의 인터뷰를 시행하면서 동의를 구해 녹취하고 이후 문서화하여 분석하였다(Table 1 참조).
3. 결과 및 고찰
문서화한 인터뷰 내용에서 키워드를 추출하고 이들 정보를 범주화하고 그 관계망을 분석한 결과는 Table 2와 같으며, 범주 간 연관성을 Figure 3의 다이어그램으로 작성하였다. 축 코딩의 결과인 범주별 주요 내용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분석 결과 용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건립에 영향을 제공한 주요 인과적 요인으로 ‘클라이언트의 장소애착’을 도출할 수 있었다. 즉 이 용산구 한강로 부지는 1956년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에 의해 사업의 기틀을 처음 세워진 곳으로 1958년 이 자리에 3층 규모의 본사를 처음 지었고, 이후 18년 뒤인 1976년에는 10층 규모의 건물을 준공했던 장소이다. 이러한 점에서 창업주와 회사는 이곳을 회사의 ‘모태가 된 터전’으로 인식하고 오늘날까지 보전하며 과감한 투자를 통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의 장소’로 활용하는 등 남다른 장소 애착을 보여준다.
아울러 ‘회사와 클라이언트의 공적 성향’ 역시 신사옥 건설의 접근 태도에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주력 사업의 성격상 ‘아름다움과 건강으로 인류에 공헌하겠다.’라는 고(故) 서성환(1923-2003) ‘선대 회장의 창업정신’과 “우리는 화장품이 아니라 문화를 전파하는 기업이다.”를 강조해온 ‘현 오너의 사회공헌 의지’를 사업에 투영하고자 하였다. 이는 ESG경영이 대두되기 이전부터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라는 공공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가치와도 상통된 측면을 보여준다. 즉 ‘창업주 정신’은 기업의 사회적 기여를 중시하는 후대의 경영방침으로 이어져, 민간사옥의 건축에서 공공성을 최대한 담보시킬 수 있는 태도를 견지한 것으로 판단된다.
용산 아모레 퍼시픽 신사옥의 건설과 관련된 맥락적 조건들을 범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근래 용산 지역은 거대도시 서울에서도 개발의 압력이 급속도로 팽창된 지역이었다. 즉 용산미군부대 이전이 급속도로 진전됨에 따라, 용산(국가)공원 계획이 진전되었으며, 이에 발맞춘 주변 지역의 재정비와 도시개발이 요청되고 있었다. 이렇듯 ‘용산지역의 개발여건 성숙’은 그동안 억눌려왔던 ‘지역발전의 요구’를 분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는 바, 대상지 일대는 지구단위계획상의 ‘특별설계구역’의 위상을 점하였으며, ‘민간의 참여를 지지하는 지역개발이 장려’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렇듯 용산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은 지역 일대의 정비가 요청되는 시점에서 이 새로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맥락이 형성된 것이다. 이는 전술한 바와 같이 클라이언트가 창업주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지구단위재정비 등의 과정에서 오랜 기간 내부계획안을 보완, 수정하면서 개발의 적기를 모색해 온 태도를 견지한 결과7)로 이해된다.
전술하였듯 클라이언트는 신사옥 건설을 통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며, 기업문화와 부합되는 독창적 디자인을 원하였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국제지명 현상공모’를 추진했으며, 그 당선작인 DCA 디자인의 철학과 세부 계획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했다.8) 건축과 조경이 합일된 당선안의 강점을 믿고 신뢰한 이러한 태도는 일반적 입찰방식과 달리 ‘해외 디자인의 이해, 당선안에 대한 별도의 기술 제안, 공사 기간과 시공 능력, 가격’ 등을 종합심사․평가하는 기술․가격 제안 입찰방식을 채택케 하였다. 고급 난이도가 복합된 공모제안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우수 건설사의 선점하기 위한 이러한 선행조처는 결과적으로 공모 이후 4년여의 세부설계 수행과정에서 설계와 시공간의 상호 의견이 충분히 조율될 수 있는 기초적 토대로 작용했다. 더불어 발주처와 DCA는 국내 로컬 설계사들과의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을 다음과 같이 구축하였다. 즉 발주처 쪽의 건설관련 전문가 그룹, 책임 설계자로서의 DCA, 국내 로컬 파트너로서의 건축과 조경설계사, 조경 디자인감리자, 시공자 등이 참여하는 협력실무팀(task force)을 형성9)하고 이를 정기, 부정기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현상이 작동했던 요인을 유추하면 다음과 같다. 사실 건물 내 세 곳의 대규모 중정을 제안한 현상설계 공모안은 본질적으로 건축과 조경 간 개념을 공유하며 이를 관통하는 설계언어로 일체화하는 통합적 설계(integrated design)의 성격을 보유한다. 즉 건축과 조경이 일체화되는 중정 공간의 품질이 건축의 품격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조직이었으며, 이러한 측면은 책임 설계사인 DCA가 국내 시장에 어두운 측면을 고려할 때, 더욱 절실한 상황이었다.
신사옥 설립을 위한 과정에서 현상공모 당선자의 의사결정 없이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발주처의 공모 당선안의 존중’이 중요한 중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울러 발주처는 시공구현의 과정에 있어 MA회의 이전에 분야별 전문가의 의견을 자문받고, 이견 사항은 공정 주간공정회의와 분야별 설계회의를 통해 이슈를 점검하고 다시 논의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재점검, 토의되는 방식으로 합리적인 의견조정과정을 거쳤다.
한편 전술한 협력실무팀 운영에 있어 국내 로컬 조경설계사는 조경디자인 감리의 필요성을 강력히 요청하였으며, 이 제안이 수용되어 상주 조경디자인 감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즉 DCA와 조경설계사의 디자인 변경 사항이나 시공사의 이견은 조경디자인 감리의 중재로 정리되고 다시 워크샵의 피드백 과정을 통해 해결하였다10). 이처럼 조경디자인 감리의 역할11)은 본 사업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 ‘시공사의 품질관리팀 구성’ 역시 중재적 요인에서 중요했음이 파악되었다. 즉 시공사에 의한 품질관리팀 조직은 시공사 및 협력업체의 분야별 기술자 중 선별하여 감리 분야별 담당자 책임관리 체계와 연계되도록 하였다.
신사옥 건설과 관련하여 수반되거나 야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과 상호작용은 주로 다음과 같다. 즉 공무, 설계, 시공 업무를 분업화하되, 상호 유기적으로 조직될 수 있도록 전사적 사업관리(ERP)시스템12)을 통해 업무 내용을 상호 열람하고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였다. 또한 계획안에 대한 사전 시뮬레이션을 통해 공모 당선안에 대한 이견조율을 시행한 바, 대표적 사례로 5층 옥상의 식재수종 변경을 거론할 수 있다.
즉 공모당선자인 DCA는 중정부의 수목으로 한국적 아름다움의 상징하는 대형 소나무의 군락식재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전문가의 일조 시뮬레이션(Figure 3 참조)의 검토와 수목생리학 전문가의 자문 등을 합리적으로 반영하여 간헐적 양지에서 생육이 가능한 청단풍으로 수종 변경을 하였던 상황13)은 인터뷰 내용에서도 자주 등장하곤 하였다.

아울러 많은 경우의 판단과정에서 실물모형 제작 후 세부 시공도면을 작성하는 방식을 활용하였다. 즉 ‘실물 모형제작을 통한 확인 후 최종적 의사결정’이 일반화되었으며, 이때 모든 디테일이 체크되었다. 이렇듯 ‘실물 척도의 모형제작을 통한 현장감(sense of realism)의 확인’이 크게 주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즉 실물 크기의 모델 제작은 디테일 구현의 측면에서도 효과적이었으며, 특정 공간에 적합한 스케일을 미리 체험하고 도면에서 미처 파악하기 힘든 스케일감을 확인하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도면과 현장의 차이를 보정하는 측면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작업은 중정 내 화강석 판석 포장 구조 형식의 대안 공법인 페데스탈(pedestal) 공법의 검토 결정14), 소포석의 규격과 형태 디자인15) 등 공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Figure 4, Figure 5 참조).
반면 대상 환경이 방대하여 실물모형을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축소모형을 통한 검토를 시행하였다. 이는 5층 중정의 전체적 경관을 고려한 조경수의 배치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즉 이곳의 배식을 위한 청단풍의 경우, 수차례 수목 농장 방문 후 선발하여 가식장에 확보한 수목 개체별로 나무 조서를 만들고, 그 형태를 심볼 이미지로서 도면화하여 데이터 베이스화하는 등의 준비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후 이들 청단풍의 이미지를 조합하는 배식 대안을 모형을 만들어 점검한 후 배식하였다16)(Figure 6 참조). 또한 시공단계에서는 ‘일일 품질관리 회의’ 방식을 채택하여 식재와 시설물 및 구조물에서의 요구되는 공정을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였다. 즉 결정된 수목은 사전 뿌리돌림, 가식, 정식의 절차를 진행하였고, 관목과 지피류, 잔디 등도 전량 계약재배를 의뢰하고 주기적인 농장 점검을 통해 ‘철저한 품질관리’를 꾀하였다.

이러한 의사소통은 장비와 이를 뒷받침하는 장인기술자의 활용17)에 있어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기능했다. 즉 옥상에 대교목 식재를 위해서는 타워크레인과 백호우가, 1장에 240kg에 달하는 화강석 판석과 성인 2명(약 140kg으로 추산)의 무게를 지지할 수 있는 구조가 요구되어 이동 시에는 특수장비인 겐트리 크레인에 흡입판이 부착된 양중기를 제작하여 아연도 각관의 페데스탈(pedestal) 구조를 적기 시공하였다.
현장 시공 이전에 충분히 사전 검증과 전문가 간의 소통을 촉진시킨 상기의 노력들은 환경의 품질 향상을 꾀하면서도 현상공모안이 큰 수정 없이 구현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으며, 건설환경에 대한 국내외의 많은 수상실적은 환경 품질에 대한 인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발주처 역시 이에 만족하여 준공 이후 별도의 예산을 투입해 ‘New Beauty Space’라는 방대한 양의 건설지 2권을 출간해 관련기관과 단체에 배포하고 홍보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아모레 퍼시픽 신사옥은 고유의 독특한 정체성(identity)과 긍지를 확보하였으며, 특히 민간사옥 저층부에서 공공성을 제고한 측면에서 시민 대중에게 사랑받는 환경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인터뷰 시 내부인들 대부분이 신사옥에 근무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의견을 주었듯 만족도 높은 근무환경으로 평가되고 있다.
4. 결론 및 시사점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조경이라는 특수해를 해석한 본 연구 결과를 통해 발견되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관련분야 간 효율적 협력체계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즉 대개의 건설 현장에서 건축, 인테리어, 토목, 설비, 전기, 조경 등이 분야별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여러 분야가 공유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은 발주처, 감리단, 시공책임자 간의 협의와 조율 정도를 통해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본 사례는 공사비 위주로 시공사를 선정해 온 이제까지의 발주 관행과 달리, 전문성과 특수성 측면에 비중을 두어 시공 준비단계에 시공사를 선정하였다. 또한 이 단계에서 조경 디자인감리의 필요성이 인정되어 상기한 관련분야 전문가협의체의 일원으로 역할을 수행케 한 점이 주목된다. 이렇듯 본 사례는 발주처, 책임 및 전문분야의 로컬 설계사, 일반 감리와 조경 디자인 감리, 시공사 등이 모두 참여하여 공동의 목표를 위한 분야 간 협력 실무팀(task force)을 구성하고 운영하여 효율적 의사결정과 작업수행을 가능케 한 점이 돋보인다.
둘째, ‘설계와 시공에 대한 통합적 인식과 함께, 기획과 계획․설계로부터 시공구현까지의 연속성(continuity to construction) 확보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이 주목된다. 해외의 수준과 견주어지는 국내 조경설계에 대한 평가와 달리, 많은 환경의 최종적 완성도는 미흡한 실정이다. 이는 국내 조경 실무에서 설계와 시공이 분리되어 상호 소통하지 못하는 업역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조경설계업체는 디테일에 대한 고민과 투자보다는 큰 개념과 시각적 효과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상기한 측면은 설계와 시공이 통합된 이교원의 조경방식을 토탈 디자인방식으로 언급하면서 높은 완성도와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다라고 언급한 내용(Seo et al., 2007)과도 시사점을 공유한다. 즉 근거이론을 통해 분석한 본 사례는 건축과 조경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공모안의 구현을 위해 건축과 조경이 개념을 공유하면서 협력했던 내용을 보여준다. 아울러 본 연구 중 ‘설계․시공의 정합성’ 확보를 위해 거론된 다수의 장치들은 작금의 현장실무 결과의 질적 제고를 위한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조경 디자인 감리의 운영과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많은 경우, 설계는 현장의 세부적인 상황 전부를 고려하기 어려우며, 더욱이 현장 상황은 유관 공정이 진행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조경디자인 개념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관련분야 간 협의와 조율 그리고 적절한 대응이 요구된다. 이렇듯 설계와 시공의 종합적인 코디네이터로서의 조경디자인 감리의 임무가 막중하지만, 현행 법령상의 제도는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교호수공원, 경의선숲길공원의 연남동 구간 등에서는 설계사나 발주처의 자발적 의지로 조경디자인 감리를 시행함으로써 호평받는 공공환경을 확보한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 본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역시 조경디자인 감리가 총괄적 코디네이터 역할을 톡톡히 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우수한 품질 확보를 위한 조경디자인 감리의 필요성은 다양한 경험을 통헤 논증되는 바, 선도적으로 현상공모사업 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사업에서부터 제도의 도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양질의 품질을 담보하는 다양한 수단의 강구’가 요청된다. 본 사례 역시 구현할 환경의 사전점검과 평가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거론하였다. 실물 척도로 제작 가능한 대상의 경우 샘플 모형(mock-up)이 이미 오래전 이교원 조경의 방식과 유사하게 이루어졌으며, 식재와 같은 큰 스케일에서는 축소모형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이 강구되었었다. 이들은 관련협의체의 운영 시 설계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공유케 하는 매개체이자, 이후 상세도의 기초로서 기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표준화, 규격화, 다양화, 소량화라는 조경의 속성을 극복하기 위한 장인정신(craftmanship)의 고양을 위해서도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이상 본 연구는 민간영역에서의 조경이 관련분야와의 유기적인 관계 설정과 더불어 시공 품질관리를 위해 요구되는 매커니즘을 다루었다. 다양한 공종과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업역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오늘날 현대조경에 있어서는 관련분야 간의 네트워크(network)를 조정하는 코디네이터(coordinator)로서의 조경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향후 실무 현실을 대변하는 현장 중심적 사례연구의 축적을 통해 관련 제도와 행정의 개선, 그리고 조경설계와 시공의 품질 향상을 통한 업역의 경쟁력 강화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