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전 지구적 차원에서 기후와 환경 문제로 지속가능한 식재가 요구되는 여건에서 근간의 원예적 정원에 대한 인기는 여러해살이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배경이 된다. 여러해살이풀은 수년, 길게는 수십 년간 생존하며, 꽃뿐 아니라 잎도 관상 요소가 되고, 여러 종을 심어놓으면 계절별로 아름답고 역동적 경관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문 분야마다 여러해살이풀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르고, 기존 정원 식재 관련 문헌과 설계 지침에서 일년생 초화류나 관목류와 함께 미적 식물 재료로서 이해에 머물러 있다. 독립된 항목으로서 여러해살이풀의 일관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다양한 실무적 관점에 따라 혼재된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식재 후 활착률 저하, 유지관리의 비효율성, 식생 경관의 불안정성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교목, 관목과 잔디가 중심이 된 우리나라 조경식재에서 정원 식물로서 여러해살이풀의 활용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초창기 연구로서 방광자 등(1998)은 조경적 가치를 지닌 100종의 자생 초본 식물을 화단 군식용, 지피용, 실내정원용, 절개사면 녹화, 암석원, 도로면 척박지 녹화, 호안조경용으로 분류하였다. 진혜영 등(2014)은 야생화 53종의 생태환경, 형태와 특성, 번식 방법, 재배와 관리 방법, 이용 방법, 관리 포인트 등 식재관리 매뉴얼을 제공하고 식재 디자인과 모델정원을 개발하였다. 또한 손관화(2013)는 국내 화훼종묘회사, 초화류 생산농원, 식물원, 수목원에서 보유하거나 생산, 유통하는 정원용 여러해살이풀을 조사하여 생육 특성별로 구분한 뒤 화색, 초장, 개화기를 기록한 목록을 제공하였다. 1,000종이 넘는 여러해살이풀의 정보를 학명과 함께 제공하고 원예종까지 포함했다는 점에서 자생종을 대상으로 한 두 연구와 차별성이 있으나 정원용 식물의 외형으로만 분류했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독일은 20세기에 자연에서 정원 조성을 위한 영감을 찾기 시작하고, 야생 동물과 친화적이며 유지관리가 쉽고 지속 가능한 서식처 기반 식물 조합 연구가 진행되었다. 특히 정원 식재에서 여러해살이풀이 생태적 안정성과 지속성 측면에서 중요한 식물군이라는 점을 인식한 리하르트 한젠(Richard Hansen, 1912~2001)은 식물학적 속성과 외형적 기준에 초점을 맞추었던 기존 식물 분류 체계와 달리 ‘정원 서식처(garden habitat)’라는 실천적 개념을 중심으로 다양한 환경 조건에 대한 식물의 적응성과 생태적 기능을 고려하여 여러해살이풀을 분류하였다. 이는 정원 식재의 설계·시공·유지관리 단계에서 시간성과 현장성을 반영한 환경에 맞추어 적응력이 높은 여러해살이풀의 분류 체계로서 가치를 지닌다.
한젠의 이론이 세상에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한젠의 정원 서식처 기반 여러해살이풀 분류 체계가 지닌 구조적 논리와 적용 의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여러해살이풀 식재 설계에서 생태학적 설득력과 조경 실무의 간극을 해소할 수 있는 이론적 틀에 다가서는 데 목적이 있다. 한젠의 작업에 대한 고찰이 우리나라 환경에 적합한 정원 식재와 여러해살이풀 연구의 방향성 정립을 위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먼저 연구 대상이 된 인물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리하르트 한젠의 생애와 정원 작업 등 주요 이력을 조사하여 한젠의 연구 수행 장소이자 연구 수단이 되었던 바이헨슈테판 시험정원(Sichtungsgarten Weihenstephan)과 이론, 그의 정원관과 성취 및 업적 등 의의를 정리하였다. 핵심 연구는 한젠과 프리드리히 슈탈(Friedrich Stahl)의 저서(1981)가 국내 번역본이 없으므로 영문 번역서 ⌜Perennials and their Garden Habitats(Hansen and Stahl, 1993; 이후 ⌜여러해살이풀과 정원 서식처ᒧ로 표기)ᒧ를 사용하였다(그림 1 참조). 이 책의 공저자인 슈탈은 한젠의 연구를 도왔던 조교로 한젠의 사후에 교육과 시험정원 관리를 맡기도 했으나, 정원 서식처 기반 여러해살이풀 분류의 개념 정립과 연구는 한젠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책은 여러해살이풀의 재배 방법, 적지적소(right place right perennial) 식재 개념, 여러해살이풀 식재 디자인 방법, 여러해살이풀 식재와 관리, 정원 서식처의 여러해살이풀로 구성되었다. 마지막 장인 ‘정원 서식처의 여러해살이풀’에서 서식처별 분류에 해당하는 식물 정보로 학명, 원산지, 초장, 화색, 개화기, 식물 특성과 적용 방법이 제시되었으며, 각 서식처의 분류명들이 정원의 환경과 식물의 구체적인 특성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가장 긴 분류명은 숲 가장자리 서식서의 ‘개방된 숲 가장자리의 건조-촉촉한 모래질, 규소가 풍부한 토양에서 양지와 밝은 그늘에 적합한 여러해살이풀’과 ‘밝은 곳부터 그늘진 곳까지, 또한 교목과 관목 아래에서도 자라는 적당한 여름 가뭄에 강한 여러해살이풀’이다. 이러한 사실에 착안하여 본 연구의 방법을 설정하였다.
본 연구의 목적인 한젠의 정원 서식처 기반 여러해살이풀 분류 특성을 도출하기 위해서 먼저 ⌜여러해살이풀과 정원 서식처ᒧ에 수록된 숲, 숲 가장자리, 개방지, 암석정원, 꽃밭, 물가, 물 서식처에 대한 내용을 구조화하였다. 서식처 식물 분류 특성이 드러나도록 분류의 위계를 한글 표로 재구성하고, 서식처 소분류별로 한젠이 제시한 식물 목록을 작성하였다. 식물 목록 작성 시 우리나라 국가표준재배식물목록(이유미, 2016)과 국가표준식물목록(이유미, 2017)을 대조하여 표준 국명을 수록하였다. 이때 동일 종이 없는 경우 속명으로 대체 표기하였다. 정리한 표를 통해서 한젠이 설정한 정원 서식처별 의미있는 환경과 식재 여건을 해석하였다.
다음으로 분류 항목명에서 ‘그늘을 견디는’, ‘가뭄을 견디는’, ‘대체로 축축하고 습한’, ‘영양이 풍부한’, ‘모래질, 규소가 풍부한’, ‘돌이 많은, 스텝 같은(steppe-like)’, ‘단명(短命)하는’, ‘넓게 퍼지는’, ‘키가 크고 강한 침입성’과 같은 유의미한 키워드를 추출하였다1). 수집한 키워드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서 식재 설계 요소인 생육 환경, 식물 특성, 적용 방법을 한젠의 서식처 분류 속성으로 이해하고 분석 틀로 설정하였다. 각 서식처의 중분류와 소분류 항목을 행으로, 속성의 세부 요소들을 열로 하여 매트릭스를 구성하고 추출한 키워드를 코딩한 표를 작성하였다. 이 표를 토대로 하여 7가지 정원 서식처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속성별 세부 요소들의 분포 특성을 고찰하고, 세부 요소별로 키워드를 재분류하여 한젠이 설정한 다양하고 상세한 기준을 파악하였다. 이러한 분류 기준으로서 속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서식처의 주요 식물과 특수 지역과 특수 조건의 식물 정보를 통해서 한젠의 정원 서식처 기반 여러해살이풀의 분류 특성을 도출하였다.
2. 리하르트 한젠의 여러해살이풀 연구
리하르트 한젠은 1912년 7월 10일, 독일의 홀슈타인주 노르토르프(Nortorf)에서 태어났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렐링엔(Rellingen)의 나무재배원에서 견습생으로 일했고, 이후 1936년까지 칼 푀르스터(Karl Foerster, 1874~1970)가 운영하는 포츠담-보르님 정원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1936년부터 1939년에는 베를린의 홈볼트대학(Humboldt University)에서 원예학을 공부했다. 한젠은 칼 푀르스터 외에도 조경가 헤르만 마테른(Hermann Mattern, 1902~1971)과 현대 식물사회학의 창시자인 라인홀트 튀센(Reinhold Tüxen, 1899~1980)에게 사사를 받았다(Korner et al., 2016).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한젠은 튀센의 ‘이론과 응용식물사회학연구소(Arbeitsstelle fűr theoretische und angewandte Pflanzensoziologie)’에서 일했으며,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중앙식생지도작성센터(Zentralstelle für Vegetations-kartierung)’에서 튀센의 조수로 일하며 연구의 기초를 다졌다(Karl-Foerster-Stiftung n.d.).
1947년, 한젠은 뮌헨의 프라이징-바이헨슈테판대학(Freising-Weihenstephan)에 식물학 강사로 임용되었고, 같은 해 바이헨슈테판 시험정원을 조성했다(고정희, 2018). 이 시험정원은 이후 여러해살이풀의 다양한 생육 특성과 적합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실험장이 되었다(그림 2a 참조). 한젠은 1948년 바이헨슈테판 대학의 ‘여러해살이풀, 관목과 응용식물사회학연구소(Institut für Stauden, Geholze und Angewandte Pflanzensociologie)’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정원 식물 배치와 상호작용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시작하였다(Goecke, 2012)(그림 2b 참조). 그는 1952년 독일에 원예종 여러해살이풀 고유성 테스트 제도를 도입하였고, 1957년에 국제여러해살이풀재배학회를 설립하여 여러해살이풀의 재배, 품종 관리, 적용 기법 분야를 공고히 하였다. 1961년에 ‘여러해살이풀의 자연적 생육 조건과 생장 특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고정희, 2018), 1972년에는 ‘서식처와 여러해살이풀의 주요 지표’라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Karl-Foerster-Stiftung, n.d.).
한젠은 여러해살이풀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여러 개의 영예로운 수상을 하였다. 1972년 독일 여러해살이풀 정원가 연합회로부터 Karl-Foerster-Ring을, 1983년에 게오르크 아렌츠 기념 메달(Georg Arends Memorial Medal)과 독일연방공로훈장(Federal Cross of Merit)을, 1986년에 바이에른 미술 아카데미상(Friedrich Ludwig von Sckell Ring of Honor)을 수상했으며, 1987년 독일정원예술과 조경문화학회(German Society for Garden Art and Landscape Culture)의 명예 회원이 되었다(Goecke, 2012). 그는 스승인 칼 푀르스터, 울리히 볼프(Ulrich Wolf), 헤르만 마테른의 개념을 토대로 독자적인 연구를 수행하여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식물 전문가이자 저술가로서 명성을 확립하였다. 은퇴 후 슈탈과 공동 저술한 ⌜Die Stauden und ihre Lebensbereiche in Garten und Park(1981)ᒧ로 여러해살이풀의 정원 서식처 유형을 규정하였으며, 이 책이 1993년 영어 번역서로 출간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한젠은 여러해살이풀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기고 2001년 프라이징-바이헨슈테판에서 영면하였다(Goecke, 2012).
한젠은 인공적, 문화적 산물인 정원과 자연적, 생태적 실체인 서식처로 대치되는 두 개념을 통합하여 여러해살이풀을 분류하였다. 한젠이 이렇게 독자적인 식재 디자인 이론을 개발할 수 있던 배경으로 튀센 휘하에서 식생과 서식처 관계를 이해하고 그의 연구 방법론을 습득한 것, 생태 정원설계의 선구자인 알빈 자이퍼트(Alwin Seifert, 1890~1972)의 연구를 확장하며 식물사회학의 식물 군집 개념을 원예적 실천에 적용할 수 있는 규칙 개발, 그리고 브라운 블랑케(Braun-Blanquet, 1884~1980)의 식물 생육 형태에 대한 개념이 있다(Korner et al., 2016).
한젠은 정원을 문화적 장소로 인식하고 설계가 필요한 공간이며, 자연의 식물 군집을 모델로 삼아 식물이 자신의 생태적 지위에 적합하도록 배치하여 유지관리 작업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원에서 자연적 역동성이 경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한젠이 추구한 이상적 정원 상태인 성숙한 정원(mature garden)은 문화적 유지 관리하에서 식생이 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발달 단계(optimal stage of vegetation development)를 의미하였다. 또한 정원을 단순히 자연보존 공간으로 여기지 않고 생태적 요소와 미적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Korner et al., 2016). 그는 서식처 개념과 정교한 식재 목록을 통해서 원예적으로 적용가능한 식물사회학적 접근법을 제시하면서 미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틀을 제공하였다.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 1944~) 디자인의 정원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유지관리가 필요한 반면, 한젠의 접근 방식은 생태학과 디자인, 즉 과학과 예술을 동등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입지(site)에 적합한 식재를 중시한 한젠은 입지를 어떤 특정 장소에서 식물의 번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환경 요인의 합이라고 정의했다. 토양 유형과 구조, 배수와 영양 공급, 기후와 미기후, 빛과 그늘, 경사도와 주변 지형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러한 입지 조건과 식물 특성을 반영하여 서식처별 식물 목록을 제시하였다. 그의 정원 서식처 기반 여러해살이풀 연구는 관념적 범주화에 그치지 않고, 수십 년간 시험정원에서 실증적 관찰과 생육 실험을 통해 체계화한 결과이다. 그의 연구는 이후 개발된 여러해살이풀 혼합체 모듈, 여러해살이풀을 중심으로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자연주의 미학을 결합한 뉴저먼 스타일(new german style) 등 20세기 후반 식재 스타일의 혁명적 변화에 기여했다(Schmidt and Schmitz, 2021). 여러해살이풀 연구 체계는 우르스 발저(Urs Walser, 1944~2021), 카시안 슈미트(Cassian Schmidt, 1963~) 등 한젠의 제자들로부터 지속되고 있으며, 식재 디자이너들에게 지식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21세기 피트 아우돌프에 의해 주목받은 자연주의 식재도 여러해살이풀이 중심 재료로서 한젠의 서식처 기반 정원 식재와 궤를 같이한다.
한젠의 정원 서식처 개념이 세상에 나온 지 45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의 식재 관행에서는 생소하다. 정원을 서식처로 기능하게 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며, 경제적 이점을 떠나 정원에서 식물의 생장과 번식, 개화와 결실, 경쟁과 도태라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3. 정원 서식처 기반 여러해살이풀의 분류 특성
한젠은 정원 서식처를 숲(woodland)(그림 3a 참조), 숲 가장자리(woodland’s edge)(그림 3b 참조), 개방지(open ground)(그림 3c 참조), 암석정원(rock gardens)(그림 3d 참조), 꽃밭(borders)(그림 3e 참조), 물가(water’s edge and marshy)(그림 3f 참조), 물(water)(그림 3g 참조)로 규정하고, 각 서식처에 적합한 여러해살이풀을 분류하였다. 7가지 중에서 숲, 숲 가장자리, 개방지, 물가, 물은 자연 서식처이고, 암석정원, 꽃밭은 인공 정원이다. 이는 한젠이 경험적으로 정원이 되는 다양한 환경으로 구성한 결과이다. 여기서 숲(woodland)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forest’와 다른, 낮은 밀도의 교목과 관목이 있어 어느 정도 햇빛이 드는 다소 개방적인 지역을 지칭한다. 숲 가장자리는 침엽수나 낙엽수로 상부가 개방된 곳과 닫힌 곳이 있으며, 낙엽을 견딜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에게 적합한 환경이다. 개방지는 교목과 관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상부가 막히지 않고 열린 곳이며, 암석정원은 돌과 바위로 고유의 특별한 환경을 형성한다. 꽃밭은 정원에서 가장 화려한 식생 경관을 형성하는 곳이다. 물가는 매력적인 곳으로서 시각적 관심을 끌어내고 생물 서식처 기능을 만족시켜야 하며, 물은 정원에서 작은 규모이므로 열린 수역이 유지되도록 수생식물 관리와 부영양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곳이다.
한젠은 7가지 정원 서식처 각각에 대해 생육 환경과 적용지를 중심으로 중분류한 후 식물의 특성을 반영하여 한 단계 더 구분한 3단계 분류법으로 정리하였다. 각 서식처의 하위 분류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상기한 서식처 특성을 반영하여 다른 방식으로 분류하였다(표 1 참조). 숲은 ‘새로 조경된 정원’인지, ‘성숙한 숲’인지 구분하였고, 빛 조건으로 ‘그늘(shade)’, ‘약한 그늘(light shade)’, ‘반그늘(semi-shade, partial shade)’이 많았으며 토양수분은 ‘촉촉(moist)’이 많았다2). 새로 조경된 정원에서 ‘건조에서 촉촉(dry to moist)’과 ‘그늘을 견디는(shade-tolerant)’ 항목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정원 조성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환경 변화와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식물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특수 지역에서 적용지를 ‘낙엽수 아래’, ‘성목의 침엽수 아래’처럼 상세한 조건을 제시하였다.
숲 가장자리는 ‘숲 가장자리에 제한된’, ‘숲 가장자리와 느슨하게 연결된’의 표현으로 숲과의 관계에 따른 항목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입지 특성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생육 환경의 차이를 반영한 실용적 분류 방법은 직관적 이해를 통해서 정원 적용 시 유용하다. 빛 조건인 ‘그늘’, ‘반그늘’, ‘약한 그늘’, ‘밝은 그늘(bright shade)’, ‘양지(sun)’는 서식처 중에서 가장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토양수분도 ‘건조에서 촉촉’, ‘적정 건조에서 촉촉(moderately dry to moist)’, ‘촉촉에서 주기적 가뭄(moist to periodic drought)’, ‘봄에 촉촉’, ‘여름 가뭄’과 같이 역동적 변화를 담은 표현이 많다. 숲 가장자리에서 잘 자라는 식물은 옆으로 기면서 퍼지거나 위로 기어오르는 종들로 상부 수목의 성장에 따라 적응하고 수목 아래 그늘진 곳을 채운다. ‘지피(groundcover)’, ‘덩굴성(climbing)’, ‘넓게 퍼지는(widely spreading)’, ‘무리지어 자라는(clump-forming)’, ‘수분을 좋아하는(moisture-loving)’, ‘매우 왕성한(very vigorous)’, ‘침입성(invasive)’, ‘자연발아하는(self-seeding)’과 같은 생육 특성이 표현되었다. 특이하게도 ‘깎기에 강한(mowing-tolerant)’이라는 항목은 잔디밭에서 숲으로 전이되는 중간 지대에 식재하기 좋은 식물을 감안한 것이다. 숲 가장자리에 적합한 ‘침입성’ 식물로서 ‘교목과 관목 사이에 심기 좋은 식물(2.2.3)’과 ‘축축하고 비옥한 제방에 대량으로 심기 좋은 키 큰 식물(2.3.5)’은 다른 식물과 조화롭게 어울려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서식처를 제시함으로써 정원 식물로 수용했다는 데 특별함이 있다. 적용지로 ‘따뜻한 경사지’, ‘개방된 숲 가장자리’, ‘교목과 관목 사이’, ‘꽃밭’, ‘물가’, ‘교목과 관목 아래’, ‘대형 공원과 정원’, ‘제방’이 제시되었다.
개방지는 ‘잔디 대체용’, ‘꽃이 피는 초원과 다른 유형의 풀밭’, ‘덥고 건조하고 돌이 많은 스텝’으로 차별성 있는 경관이 설정되고, 대부분 양지이므로 토양수분과 관련하여 건조한, 촉촉한, 축축한(damp)까지 순차적으로 분류했다. ‘촉촉에서 적정 건조’가 가장 많았고, ‘촉촉하거나 가끔 건조(moist or intermittently dry)’, ‘여름에 때때로 건조’, ‘짧은 가뭄’, ‘촉촉에서 축축’, ‘다소 축축’ 등 다양하였다. 개방지 특성을 반영한 ‘낙엽을 견디지 못하는’, ‘잔디처럼 퍼지는(turf-forming)’과 ‘자연발아하는’, ‘왕성한’, ‘침입성’, ‘튼튼한(robust)’ 식물들이 있었다, 이는 상부 수목의 영향 없이 빛이 충분한 서식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는 단명식물(3.4.3)’은 ‘자연발아하고’ 외형적으로 ‘눈에 띄는(eye-catching)’ 특성이 있어서 버려진 땅을 빠르게 채우고 이후에는 다른 식물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개방지 식물의 적용지로 ‘잔디밭’, ‘양지바른 테라스’, ‘남향의 경사지’, ‘보호벽 아래’, ‘나지(bare area)’, ‘제방(embankment)’, ‘버려진 땅(waste areas)’, ‘수변(waterside)’, ‘초지(meadow)’가 있다. 적용 방법에서 개방지에만 등장하는 ‘성긴 식재(sparsely planting)’는 스텝, 프레리 식물에 해당된다. ‘일찍 꽃 피는 종과 섞지 않음(not to mix with earlier-flowering species)’은 한여름과 가을에 개화하는 식물의 적용 방법으로서 이른 개화 후 초라해지는 식물들과 함께 섞지 않도록 분류한 것이다.
암석정원은 주로 ‘건조’보다는 ‘촉촉’한 환경에서 잘 사는 식물로 구성되었다. 한젠이 실험한 지역은 우리나라와 달리 연중 비가 고르게 내리므로 암석정원이 돌과 바위로 멀칭 효과를 주어 촉촉한 환경이 되는 것이다. ‘바위 사이의 건조한 양지의 사질 토양(4.2)’에는 ‘가뭄을 견디는’ 식물들이 있어 참고할 만하다. 토성으로 ‘사질(sandy)’, ‘자갈 많은(gravelly)’, ‘사질 양토(sandy loam)’, ‘모래에서 양토’가 있으며, 토양양분은 ‘미네랄 풍부(mineral-rich)’가 많아서 암석정원 서식처의 특성을 보여준다. ‘정형식·장식적 암석정원(4.1)’에는 ‘지속적으로 꽃 피는’, ‘왕성한’, ‘단명하는(short-lived)’, ‘자연발아 잘하는’, ‘봄에 꽃 피는’ 식물들이 있다. 특히 ‘애호가용(for enthusiasts)’ 식물로 분류된 것이 많았는데, 이들은 ‘까다로운(difficult)’과 ‘민감한(sensitive)’ 특성이 있다. 암석정원 식물의 외형 특성으로 ‘다채로운(colorful)’, ‘쿠션·카펫형(cushion·carpet-forming)’, ‘앙증맞은(dainty)’이 있고, 애호가용 식물을 제외하면 대부분 ‘관리가 필요 없는(undemanding)’ 식물이었다. 적용지로 ‘암석정원의 테라스’, ‘돌 사이 개방지’, ‘집 옆의 포장된 곳’, ‘뜨거운 경사지’, ‘암석정원 입구’, ‘연못이나 하천 가장자리의 축축한 자갈 비탈’, ‘하천과 연못 가장자리에서 자주 범람하거나 늪지대가 되는 지역’처럼 다양하다.
관수, 시비, 제초 등 관리가 잘되는 환경 조건을 전제로 한 꽃밭은 ‘숲·숲 가장자리·개방지 식물에서 유래한 꽃밭용’이라는 다른 서식처 유형의 분류명과 식물의 생태적 특성인 ‘단명’, ‘비내한성(tender)’, ‘시골 허브정원’, ‘튤립·히아신스’가 세부 분류에 활용되었다. 분류 항목의 일관성 있는 맥락보다 실용성이 토대가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빛 조건은 ‘양지’가 가장 많았고, 토양수분은 대부분 ‘촉촉에서 축축’으로 관수가 잘 되는 것이 전제되었다. 토성에 관한 키워드가 많지 않았으나 ‘점토질’에 ‘배수 안 좋은’ 곳은 ‘미국 하이브리드 백합(5.3.6)’이 해당된다. 꽃밭용 여러해살이풀은 다채롭고 지속적으로 꽃이 피는 식물이며, 집중적으로 관리되는 화단에 선택되고 재배된 것들이다. 생육 특성으로 ‘지속적으로 꽃 피는(free-flowering)’, ‘단명하는’, ‘비내한성’이 있고, 외형 특성으로 ‘장식적인(decorative)’, ‘현란한(showy)’, ‘이국적인(exotic)’과 같이 다른 서식처에 없는 화려함을 표현하는 키워드들이 등장한다. 적용지는 대부분 ‘꽃밭’이며, ‘물가’, ‘새로 조성된 초본 꽃밭’, ‘집 벽의 하부 양지’, ‘교목과 관목 근처’, ‘허브 정원’도 있다.
물가 서식처는 ‘젖은 가장자리가 없는 인공 연못’, ‘젖은 연못 가장자리와 얕은 물’, ‘양지이며 습지대’, ‘물로 채워진 우묵한 곳과 얕은 연못’ 등 입지의 건습 정도에 따라 분류하였다. 토양수분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모든 소분류에 있었는데, ‘젖은 가장자리가 없는 인공 연못 주변(6.1)’만 건조한 조건이고, 나머지는 ‘젖은 토양’, ‘얕은 물’, ‘축축-젖은 토양’, ‘축축’, ‘습지의(moory)’, ‘늪(bog)’, ‘봄과 초여름에 습하나 겨울에 건조한’과 같이 습지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였다. 식물의 생육 특성으로 ‘왕성한’, ‘침입성’, ‘비침입성’, ‘내한성(hardy)’이 있다. 적용지는 ‘인공 연못 주변’, ‘호수와 연못가’, ‘물가’, ‘도랑이나 물가(in ditches or at the water’s edge)’, ‘얕은 연못’, ‘물웅덩이(water-filled depressions)’고, ‘비내한성 식물(6.2.3)’은 ‘겨울에 온실’이 해당한다.
물 서식처는 물의 형상에 따라 ‘잔잔한 물’, ‘샘·개울·도랑’ 등 흐르는 물과 ‘수중’으로 구분하였다. 서식 환경이 물 자체이기 때문에 토양수분 조건이 언급되지 않았다. ‘잎이 물에 떠있는(with floating leaves)’, ‘부유하는(floating)’, ‘수중의(submerged)’와 같이 식물이 자라는 모습과 ‘수련속’, ‘양치식물’, ‘개구리밥아과(duckweed)’ 식물이 별도 분류되었다. 적용지는 ‘잔잔한 물’에서 ‘서늘하고 맑고 얕은 작은 연못’, ‘어두운 늪지(dark, moory substrate)’가 있다.
여러해살이풀 분류에 사용된 어휘로서 서식처별 소분류 항목의 명명에서 유의미한 키워드를 코딩한 결과 생육 환경, 식물 특성, 적용 방법이라는 세 가지 속성으로 매핑하였다. 생육 환경은 빛, 토양수분, 토성, 토양양분, 토양반응, 온도로 구성되고, 식물 특성은 생육 특성, 외형 특성, 분류 특성, 생태 특성이 포함되었으며, 적용 방법에는 식재 방법, 적용지, 유지관리가 명시되었다(표 2 참조. 숲 서식처로 예시). 7가지 서식처 전체 정보를 매핑한 후 수를 집계하였는데(표 3 참조), 122개 소분류 항목 중에서 개방지가 27개로 가장 많았고, 암석정원(25), 숲 가장자리(20), 꽃밭(19), 숲(16) 순서였다. 여기서 많은 수는 그만큼 식물 선택 시 서식처 안에서도 다양한 조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속성을 보면, 생육 환경 항목이 압도적으로 많고 식물 특성과생육 환경 중에서 식물 생장의 기본 요건인 토양수분과 빛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고, 토양양분이 중시되었으며, 토양반응과 토성의 빈도가 낮았다. 온도는 비내한성 식물에만 출현하였는데 온대성 식물이 주류였던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식물의 생장에 따른 상호작용과 활동성을 중시하여 생육 특성을 많이 언급했으며, 또한 여러해살이풀을 정원에 식재하는 목적으로 제공한 목록이므로 적용 방법을 표현하는 키워드가 많이 사용되었다.
정원 서식처별 소분류 개수를 보면, 숲은 16개 모든 소분류 항목마다 빛에 대한 키워드가 있고, 숲 가장자리와 개방지에도 1개가 빠진 정도이다. 또한 개방지와 암석정원에서 모든 소분류 항목에 토양수분에 대한 키워드가 있다. 따라서 숲은 빛 조건에 따라 서식처가 분류되고, 개방지와 암석정원은 토양수분에 따라 분류됨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정원 식물을 분류할 때 외형에 집중하는 측면과 달리 식물의 환경적응성, 생장 형태, 개화 특성 등 식물의 생육 특성을 중시함으로써 한젠의 분류가 과학적이며 매우 실용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전체 서식처 분류 항목의 키워드를 종합하고 속성별로 분류하였다(표 4 참조). 먼저 생육환경 중에서 빈도가 높았던 토양수분을 표현한 키워드가 가장 다양했다. 토양수분은 ‘건조’, ‘촉촉’, ‘축축’, ‘젖은(wet)’ 등의 기본 조건 외에도 ‘건조-촉촉’, ‘촉촉-축축’, ‘주기적 가뭄’, ‘간헐적 건조’ 등 키워드를 결합하여 역동적 변화를 반영하고, ‘여름에 때때로 건조’, ‘봄에 촉촉’, ‘봄과 초여름에 습하고 겨울에 건조’ 등 여름과 봄, 겨울의 계절적 특성을 상세하게 반영하였다. 토성은 수분 함량에 따른 ‘모래’부터 ‘양토’, ‘점토질’로 구분되고, 돌이나 자갈이 많은 성향과 배수의 용이성이 포괄되었다. 토양양분은 보편적 평가로서 ‘비옥한(fertile)’, ‘영양 풍부(nutrient-rich)’, ‘영양 부족(nutrient-poor)’, ‘너무 척박하지 않은(not too poor)’ 외에도 ‘미네랄이 풍부한(mineral-rich)’, ‘부식질이 풍부한(humus-rich)’, ‘규소 함량이 높은(silica-rich)’처럼 일부 요소에 한정된 표현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서늘한(cool)’부터 ‘온화한(temperate)’, ‘따뜻한(warm)’, ‘더운(hot)’까지 식물별 생육에 적합한 온도가 제시되었다.
다음으로 식물 특성 중에서 생육 특성에 대한 키워드가 가장 많았다. 환경에 대한 적응성은 가뭄, 수분, 열, 따뜻함, 해, 그늘, 내한성, 석회, 낙엽 등 다양한 변수가 제시되었고, ‘넓게 퍼지는’, ‘잔디처럼 퍼지는’, ‘덩굴성’, ‘지피’, ‘무리지어 자라는’, 그리고 수생 식물과 관련한 ‘잎이 물에 떠있는’, ‘부유하는’, ‘수중의’와 ‘자연발아하는’, ‘한해살이’, ‘두해살이’, ‘여러해살이’ 등으로 시각적 형상과 시간성을 설명하는 생장 형태가 묘사되었다. 또한 봄, 늦봄, 초여름, 한여름, 가을로 꽃이 피는 시기와 함께 오래, 지속적으로 피는 개화 특성이 제시되었다. 마지막 생육 특성의 기질은 ‘왕성한’과 ‘튼튼한’, ‘깎기에 강한’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민감한’, ‘까다로운’, ‘변덕스러운(capricious)’, ‘단명하는’이라는 부정적 측면, 그리고 ‘침입성’과 ‘비침입성’으로 설정되어 한젠의 예리한 식물 관찰의 성취가 이해되었다. 식물의 외형 특성은 키와 규모에 대한 지칭 외에 ‘쿠션형’, ‘카펫형’, ‘가죽 같은 잎(leathery leaf)’처럼 형태가 묘사되었고, ‘눈에 띄는’, ‘다채로운’, ‘장식적인’, ‘현란한’, ‘이국적인’으로 화려함이 두드러지는 형태 형용사와 ‘구근(bulb)’, ‘알줄기(corm)’, ‘괴경(tuber)’, ‘소관목(dwarf shrub)’, ‘아관목(sub-shrub)’으로 식물을 구분하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그 밖에 구체적 식물명과 북미, 남미, 남아프리카 대륙과 스텝, 지중해, 온대 등 원산지 정보도 포함되었다.
마지막으로 적용 방법은 식재 방법, 적용지, 유지관리로 구분하였다. 적용지에 대한 표현이 가장 많았는데, 집과 구조물 인근, 지형과 관련된 경사지·초지·제방, 잔디밭, 교목 하부, 꽃밭, 암석정원, 물가와 물로 구분되어 정원 서식처 유형을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식재 방법은 현호색, 진달래속, 봄수선화와 함께 식재하는 방법, 식재 밀도와 관련된 정보와 애호가를 위한 식재가 구분되었다. 유지관리는 정원형, 공원형, 관리의 필요 유무로 나누었다. 살펴본 속성별 키워드는 여러해살이풀 식재에 참조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전달력이 높은 구체적 표현들로서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생태적 식재 설계에서 토종 식물만 활용하도록 이해하는 경향과 달리 한젠은 서식 환경에 적합하다면 식물을 폭넓게 활용하였다. 한젠은 서식처별 소분류 항목마다 많은 식물명을 제시하였다. 한젠은 숲, 숲 가장자리, 개방지, 암석정원, 꽃밭, 물가, 물 서식처에 전체 2,746종의 식물을 제시하였다(표 1 참조). 이 중에는 중복 분류된 식물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특정 식물들이 여러 서식처에 반복 등장한 점은 한젠이 다양한 환경에의 적응성과 정원 내 활용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평가한 결과를 시사한다. 예를 들어 빈카(Vinca minor)는 숲, 숲 가장자리, 개방지, 꽃밭의 10개 소분류에 포함되었고, 중국노루오줌(Astilbe chinensis)은 숲, 숲 가장자리, 암석정원, 꽃밭의 6개 소분류에 포함되었다. 아주가(Ajuga reptans)는 숲 가장자리, 개방지, 암석정원의 5개 소분류에 포함되었고, 칼루나 불가리스(Calluna vulgaris)는 숲, 숲 가장자리, 개방지, 물가의 5개 소분류에 포함되었다. 누운자반풀(Omphalodes verna)은 숲, 숲 가장자리, 암석정원의 5개 소분류에 포함되었고, 버들 용담(Gentiana asclepiadea)은 숲, 숲 가장자리, 암석정원, 물가의 4개 소분류에 포함되었다. 봄은방울수선(Leucojum vernum)은 숲, 숲 가장자리, 암석정원, 물가의 4개 소분류에 포함되었고, 유럽금매화(Trollius europaeus)는 개방지, 암석정원, 꽃밭, 물가의 4개 소분류에 포함되었다. 이들은 대표적으로 여러 번 등장한 식물로 정원의 여러 서식처 환경에서 쓰임새가 많은 식물인 셈이다.
구근류는 별도로 분류되고 물가와 물을 제외한 각 서식처의 빛 조건, 토양수분 조건에 적합한 구근류와 조합 방법이 상세히 제시되었다. 한젠이 정원에서 계절감과 시각적 리듬을 제공하는 데 구근류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한젠의 분류에서 특정 식물을 분류명으로 지정하였는데, 이들은 해당 서식처의 주요 식물로 간주할 수 있다. 숲 서식처의 고사리(그림 4a 참조)·비비추(그림 4b 참조)·그라스(그림 4c 참조), 숲 가장자리의 수선화(그림 4d 참조), 꽃밭의 튤립(그림 4e 참조)·백합(그림 4f 참조)·히아신스(그림 4g 참조)·니포피아(그림 4h 참조)·그라스, 암석정원의 용담(그림 4i 참조), 개방지의 그라스(그림 4c 참조)·에리카(그림 4j 참조)·칼루나(그림 4k 참조), 물 서식처의 수련(그림 4l 참조)이 이에 해당한다.
한젠은 예외적 의미의 ‘특수 지역(special sites)’을 분류 항목으로 설정하고 하위에 ‘특수 조건(special conditions)’을 명시하여 적합한 식물을 제시하였다. 숲 서식처의 중분류 항목인 ‘그늘과 반그늘의 특수 지역(1.3)’은 나머지 중분류 두 개에 ‘그늘과 약한 그늘’이라고 동일하게 명명한 것으로 볼 때, ‘그늘과 반그늘’은 숲 서식처에서 특수한 환경이라고 이해한 것이며, 하위 소분류에 ‘서늘하고 부분적으로 그늘지며 대체로 축축하고 습한 지역(1.3.1)’과 같이 간략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환경, ‘더 까다로운 여러해살이풀을 위한 특수 조건(1.3.3)’, ‘열정적인 식물 애호가들을 위한 여러해살이풀(1.3.2)’이 있다. 숲 가장자리 서식처에도 ‘특수 조건’이 설정되었는데, ‘서늘하고 축축하며 양지 또는 약간 그늘진 곳(2.3.1)’, ‘따뜻한 양지 또는 밝은 그늘의 모퉁이(2.3.2)’, 그리고 ‘밝은 곳부터 그늘진 곳까지, 교목과 관목 아래에서도 자라는 적당한 여름 가뭄에 강한 여러해살이풀(2.3.3)’, ‘양지의 숲 가장자리에서 여름 가뭄에 적합한 여러해살이풀(2.3.4)’, ‘대형 공원과 정원에 적합한 키가 크고 강한 침입성의 여러해살이풀(2.3.5)’로 구성되었다. 이들 사이에서 맥락이 읽혀지지 않는데, 한젠의 경험에서 나온 환경 이해와 효용성을 고려한 설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암석정원의 ‘특수 조건’은 ‘대형 암석정원에 적합한 아고산대 키 큰 초본(4.6.1)’, ‘이탄과 늪지 토양으로 풍부한 장소에 적합한 애호가용 식물(4.6.2)’, ‘용담속(Gentiana)(4.6.3)’, ‘암석정원에서 축축한(- 젖은) 장소에 적합한 식물(4.6.4)’, ‘축축하고 자갈 많은 비탈, 특히 연못이나 개울가에 적합한 식물(4.6.5)’, ‘암석정원에서 주기적으로 축축한 장소에 적합한 구근(4.6.6)’으로 구성되었다. 바위에 의존하지 않는 종을 위한 특수한 식재 위치로 주로 축축한 토양, 특별한 토양(이탄과 늪지)을 고려하였다. 또한 물가 서식처의 중분류 항목인 ‘특수 조건에 적합한 여러해살이풀(6.4)’의 하위에 ‘봄과 초여름에 습하지만 겨울에 건조한 장소(6.4.1)’, ‘일정치 않게 축축한, 주로 습지의 조건(6.4.2)’, ‘산성, 습지의 축축하거나 젖은 조건(6.4.3)’이 설정되어 계절적 한계와 불규칙한 환경, 그리고 토양반응이 고려되었다. 물 서식처에는 ‘잔잔한 물의 특수 조건에 적합한 여러해살이풀(7.1.2)’ 한 가지가 있었다.
한젠은 대부분 서식처 조건에서 별 관리 없이도 잘 자라는 식물들을 제시하였지만, 숲, 암석정원, 꽃밭, 물 서식처에 식물 애호가를 위한 식물을 따로 분류하여 제시하였다. 특히 암석정원에는 ‘바위 사이의 건조한 양지의 사질 토양용 식물(4.2)’의 소분류에 ‘애호가를 위한 추천 식물(4.2.3)’과 ‘양지 또는 밝은 그늘, 바위 사이의 촉촉한 사질토양에 적합한 식물(4.3)’의 소분류에 ‘애호가를 위한 더 까다로운 종(4.3.2)’, ‘바위 사이의 촉촉-축축한 토양에서 밝은 그늘-완전 그늘에 적합한 여러해살이풀(4.5.1)’의 소분류에 ‘애호가를 위한 식물(대부분 내한성)’이 제시되어 암석정원에 적극적으로 장식되고 관리되는 서식처 역할이 부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애호가를 위한 식물로 많은 종이 제시되었으며, 숲 서식처의 노빌리스노루귀(그림 5a 참조)·일본나도승마(그림 5b 참조)·상귀나리아카나덴시스(그림 5c 참조), 암석정원의 난쟁이패랭이꽃(그림 5d 참조)·주걱세덤(그림 5e 참조)·왜란(그림 5f 참조), 꽃밭의 종꽃아가판서스(그림 5g 참조)·범부채(그림 5h 참조)가 그 예이다.
4. 결론
리하르트 한젠은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독일의 식물학자이며 원예가이고 조경가로서 정원을 식물의 서식처로 바라본, 생태학적 관점의 혁신적 연구자였다. 그는 여러해살이풀의 서식처별 적응성, 지속성, 상호작용 등 생태학적 적합성을 실증적으로 평가한 시험정원(sichtungsgarten)을 통해서 정원을 여러해살이풀이 생존하는 서식처로 설정하고 정원 서식처 유형을 정의함으로써 독자적 이론을 구축하였다. 또한 실제 정원 환경에서 여러해살이풀의 장기 활동성을 검증하여 생태적 조합이 가능한 식물 목록을 발표함으로써 이후 여러해살이풀 혼합체 모듈, 여러해살이풀을 중심으로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자연주의 미학을 결합한 뉴저먼 스타일, 자연주의 식재로 전개되었다.
한젠의 업적을 집대성한 ⌜여러해살이풀과 정원 서식처ᒧ에는 적지적소의 여러해살이풀 식재 개념, 식재 디자인, 관리를 포괄한 정원 서식처 유형별 식재 가능한 여러해살이풀 수종이 제시되었다. 이때 위계를 구분하여 생육 환경과 적용지를 중심으로 중분류한 후 세부 환경 조건과 도입 여건, 식물 특성을 반영하여 소분류하였는데, 본 연구는 특별하게 설정한 여러해살이풀의 분류 체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한젠이 경험하여 체득한 여러해살이풀의 적응 환경과 정원에 도입하기 위한 조건들을 이해하였다.
한젠이 정원 서식처 유형을 자연환경이 우세한 숲, 숲 가장자리, 개방지, 물가, 물과 인공적으로 조성되는 암석정원, 꽃밭을 제시함으로써 정원으로 수용가능한 다양한 경관을 포괄했다. 그가 설정한 서식처별 개념 이미지를 통해서 우리의 보편적 관념과 차별화된 이해가 가능하다. 7가지 정원 서식처 기반 여러해살이풀의 분류 특성을 도출한 결과, 첫째, 한젠은 서식처별 소분류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각 서식처 특성에 맞추어 다양하고 상세한 조건을 설정하였다. 둘째, 정원 서식처 분류 항목명에 빈번하게 언급된 생육 환경, 식물 특성, 적용 방법을 분류 기준의 속성으로 이해하고 빈도 분석한 결과, 시간과 계절 변화에 따른 역동성을 반영하여 세밀하게 표현된 토양수분과 빛이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였다. 식물 특성에서 시각적 형상과 시간성을 설명하는 생장 형태, 꽃이 피는 시기와 지속성, 식물별 독특한 기질이 명시되어 한젠의 예리한 식물 관찰의 성취가 드러났다. 셋째, 한젠은 다양한 지역의 식물과 원예종을 포괄하여 폭넓게 활용하였으며, 여러 정원 서식처에 반복 등장한 빈카, 중국노루오줌, 아주가, 칼루나 불가리스, 누운자반풀, 버들 용담 등은 쓰임새가 많은 식물로 확인되었다. 더불어 중분류와 소분류 항목명으로 설정한 숲 서식처의 고사리·비비추·그라스, 숲 가장자리의 수선화, 꽃밭의 튤립·백합·히아신스·니포피아·그라스, 암석정원의 용담, 개방지의 그라스·에리카·칼루나, 물 서식처의 수련을 정원 서식처별 주요 식물로 간주할 수 있다. 넷째, 숲, 숲 가장자리, 암석정원, 물가, 물 서식처에 특수 조건에 적합한 식물을 제시하였고, 숲, 암석정원, 꽃밭, 물 서식처에는 식물 애호가를 위한 식물을 제시하여 정원 사용자의 관심을 반영함으로써 식물 선택의 다양성을 확장하였다.
결론적으로, 한젠의 여러해살이풀 분류 체계는 형식적 식물 분류 도식에서 나아가 생태학적 원리에 기반한 정원설계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다. 즉, 생육환경과 식물특성에 대한 정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태적 회복력과 유지관리의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식재 설계 이론이다. 독일 바이헨슈테판과 우리나라 모두 온대성 기후대지만, 우리나라는 더 춥거나 덥고, 더 습하거나 건조한 극단적 기후 조건을 가진다. 또한 계절별 강우량, 기온, 일조량의 차이가 있으며, 지역의 미세한 토양 조건도 다르므로 한젠이 분류한 여러해살이풀을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환경에 적합한 서식처 조건들을 정의하고 식물의 장기 활동성을 실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젠의 경험을 실증하는 여러해살이풀 서식 환경의 속성 표현에 가치를 둔 본 연구가 영문 번역서 정보를 다시 한글로 바꾸는 작업의 한계를 지니지만, 정원을 초본 식물의 서식처보다는 ‘이식처’로 활용하는 식재 관행에 대응하여 정원 식물을 보는 관점의 변화가 우리나라 정원 문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





